유대인의 세계관
 
지은이 : 홍익희 (지은이)
출판사 : 클라우드나인
출판일 : 2024년 03월




  • 유대인의 위대한 성취의 원동력은 독특한 세계관에 있다고 합니다. 각자 받은 달란트대로 유니크하게, 가능성에 최선을 다하는 유대인의 세계관을 종교관, 경제관, 자녀교육관, 개척관, 국가관으로 나누어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유대인의 세계관


    [종교관] 하느님 자녀로서의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하느님의 형상을 찾아 자신을 발전시킨다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는 구원관이 다르다

    이슬람교만큼 빠르게 성장한 종교는 없었다. 지금도 이슬람교의 증가 속도는 가파르다. 613년 무함마드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장점을 따서 이슬람교를 만들었다. 무함마드는 유대인 디아스포라 공동체와 똑같은 유형의 ‘움마 공동체’를 만들어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고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다. 움마 공동체는 ‘형제애와 평등사상’을 지향한다. 이는 유대인 공동체의 체다카(약자를 돌봄)와 미슈파트(하늘 아래 모든 사람은 평등함)와 동일하다.


    이처럼 움마의 중심에는 혈연보다도 강한 무슬림(이슬람교도)의 ‘형제애’와 성별, 인종, 계급을 초월한 ‘평등사상’이 자리잡고 있다. 움마 공동체는 사막 사회에 뿌리 깊었던 남존여비의 차별을 하지 않고 마지막 한 톨까지 나눠 먹는 정신으로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 게다가 유대인의 공동체는 배타적이지만 움마 공동체는 개방적이었다. 믿음만 있으면 누구나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알라 이외에 다른 신은 없고 무함마드는 알라의 선지자다.”라고 암송하는 순간 누구나 형제가 되고 움마의 구성원이 됐다. 이를 반긴건 사회적 약자인 힘없는 서민과 소외 계층이었다.


    사막의 척박한 환경 속에 아랍 부족들은 툭하면 이웃 부족을 약탈하거나 전쟁을 벌였다. 그런 호전적인 부족들을 하나로 묶어 움마 공동체로 만든 게 무함마드였다. 공동체 정신이 이들을 순한 양으로 변모시켜 움마는 이슬람교의 원형이 된다. 이슬람교는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신정일치의 총체적 사회 시스템이 됐다. 움마는 형제애로 똘똘 뭉친 신앙 공동체이자 이슬람교 메시지를 전파하는 사명을 지닌 신도 공동체란 의미로 사용됐다. 움마 공동체와 신정일치의 강한 종교적 지도력이 이슬람교 성장의 비결이다.


    유대교는 율법 준수, 기독교는 믿음, 이슬람교는 행위로 구원받는다

    이처럼 교세를 키워가는 이슬람교와 이 종교의 모태인 유대교와 기독교 등 세 종교 간 대표적 차이는 ‘구원에 대한 견해’다. 기독교는 인간의 죄가 십자가의 피로 속죄한 예수를 믿음으로써 구원된다고 가르친다. 반면 유대교는 율법을 실천하고 선행하면 구원된다고 생각한다. 무슬림도 선하고 바른 행동을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들은 ‘실천적 다섯 기둥(아르칸)’이라 불리는 종교적 의무 ‘5행(行)’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 이는 ‘알라 이외에 다른 신은 없고 무함마드는 그의 선지자다.’라는 신조를 암송하고, 매일 메카를 향해 하루 다섯 번 기도하고, 가난한 자를 위해 자선을 베풀고, 라마단 기간 중 금식을 하고, 평생 한 번 이상 성지 순례를 하는 것이다. 정리하면, 유대교는 율법의 실천에 의한 구원, 기독교는 믿음에 의한 구원, 이슬람교는 행위에 의한 구원을 강조한다.


    인간은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기에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거는 기대가 있다. 그래서 유대교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합당한 삶을 살지 않는 것이 죄다. 주어진 가능성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게으름’과 ‘무능력’이 죄다. 자신의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믿지 않고 자기계발을 게을리하는 사람은 하느님께 죄를 짓는 것이다. 하느님이 주신 자기 안의 달란트(재능)를 찾아내 힘을 다해 이를 키워 나가지 않아 무능력한 사람이 되는 것이 하느님께 죄를 짓는 것이다. 따라서 유대인에게 신앙이란 자신에게 내재한 하느님의 형상을 찾아 자신을 발전시켜 나가는 노력이다.



    [자녀교육관] 하느님의 자녀로서 각자 다른 달란트를 받았다

    외톨이는 어떻게 세계적인 영화감독이 되었는가 (스티븐 스필버그 이야기)

    열두 살 때까지 자녀 교육에 혼신을 다한다

    유대인은 스스로 남과 다른 유니크(unique)한 존재가 되기를 원한다.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다른 달란트(재능)를 주셨다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녀 교육도 자녀가 ‘베스트(best)’가 아니라 ‘유니크’ 한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베스트는 반에서 단 한 명뿐이지만 유니크는 모든 학생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교육철학으로 실제 유대인들은 각자 자기 분야에서 우뚝 서는 존재로 성장한다. 유대인이 어떻게 유니크한 존재로 성장하는지 그들의 사상과 교육 방법을 알아보자.


    유대인 자녀 교육의 대원칙은 엄마와 아빠의 ‘공동 육아와 공동 교육’이다. 이를 위해 결혼하면 1년간 집안 살림과 경제를 여자가 책임지고 남자는 히브리 학교에 들어가 유대교와 유대 전통을 배운다. 아빠가 아이에게 가르쳐야 할 것을 배우는 일종의 '아빠 학교'다.


    또 하나의 원칙은 자녀가 성인식을 행하기 이전인 열두 살 때까지만 자녀 교육에 혼신의 힘을 다한다는 점이다. 엄마는 자녀가 태어나면 매사에 기도로 아이를 돌본다. 아이가 말귀를 알아들으면 그때부터 율법을 가르친다. 알아듣건 못 알아듣건 이러한 엄마의 반복된 암송 교육이 훗날 아이의 창의성 발현에 큰 도움이 된다. 엄마가 유대인이면 그 자녀를 유대인으로 인정한다. 엄마가 아이의 영혼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유대인 부모는 아이의 재능에 맞는 교육을 한다

    아빠 또한 자녀가 성인식을 치르지 않은 미성년인 한 어김없이 일찍 귀가해 밥상머리에서 자녀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며 대화를 나눈다. 이른바 밥상머리 교육이다. 또 취침 전 베갯머리에서 반드시 15분 이상 책을 읽어준다. 이를 통해 자녀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자녀가 호기심을 보이는 곳에 그의 달란트가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부모와 밥상머리 대화와 베갯머리 이야기를 함께한 아이는 네 살이 되면 일반 아이들이 800~900단어를 알 때 1,500단어 이상을 인지한다. 이후 부모와 더불어 하는 독서 습관을 통해 차이는 더 벌어져 몰입도와 이해력에서 성큼 앞선다. 나아가 사유의 폭과 깊이가 달라진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유대인은 자녀를 부모가 바라는 형태로 이끌지 않고 먼저 재능이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한다는 점이다. 『탈무드』에는 “자녀를 가르치기 전에 자기 눈에 감긴 수건부터 풀라.”라는 말이 있다. 자녀의 재능과 개성을 무시한 채 부모의 욕심을 앞세우지 말라는 뜻이다. 유대인 부모는 하느님께서 개개인에게 남과 다른 독특한 재능을 주셨다고 믿는다. 따라서 자녀가 그 독특한 재능을 찾아내고 살려 창의적인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자녀의 지적 호기심을 부단히 자극해 좋아하고 잘할 수 있고 보람을 느끼는 것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자녀가 자신의 재능을 찾아내 열정을 갖고 매진하다 보면 어느새 자기 분야에서 우뚝 서게 된다.



    [개척관] 하느님의 자녀로서 받은 가능성에 최선을 다해 산다

    컴퓨터 알고리즘 투자 기법을 개발하다 (제임스 사이먼스 이야기)

    수학으로 시장을 풀어내 헤지펀드의 대가가 되다

    월가의 전설 제임스 사이먼스(James Simons)는 하버드대학교 교수 출신이다. 그는 월가 최초로 컴퓨터 알고리즘 투자 기법을 개발한 금융 공학자로 연간 수입이 3조 원에 이른다. 그의 회사는 수학자들

    이 개발한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자동 매매만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즉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수학적 분석만을 의사결정의 토대로 삼는 시스템이다.


    이제 주식시장은 사람의 ‘경험이나 감’이 아니라 컴퓨터 매매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를 주도한 제임스 사이먼스는 환경 변화에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큰돈을 버는 것으로 유명하다. 다우지수가 반 토막이 난 글로벌 금융위기 때조차 고수익을 냈다. 2008년 수익률 152퍼센트로 79억 달러, 2009년 수익률 75퍼센트로 39억 달러, 2010년 58퍼센트로 58억 달러를 벌어 불황기에 오히려 큰 수익을 냈다. 헤지펀드가 평균 10퍼센트의 손해를 기록한 2011년조차 수익률 71퍼센트로 71억 달러를 벌었다. 헤지펀드는 뮤추얼펀드와 달리 많은 수수료를 뗀다. 사이먼스의 르네상스 테크놀로지는 고정 수수료 5퍼센트에 성과 수수료는 수익의 44퍼센트에 이른다. 그럼에도 투자자들이 줄을 선다. 과연 사이먼스는 어떤 방법으로 불황기에도 이런 큰 수익을 내는 것일까?


    직감이나 경험이 아닌 데이터로 패턴을 찾는다

    1938년 미국 보스턴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제임스 사이먼스는 호기심 가득한 천재다. 그는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수학과를 20세에 조기 졸업한 기념으로 뭔가 의미 있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친구들과 함께 스쿠터로 아메리카 대륙 종단에 나섰다. 여행 명칭은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죽기 살기로'였다. 하지만 중간에 위험한 고비를 넘기며 콜롬비아 보고타까지만 여행했다.


    여행을 마친 후 버클리대학원에 진학하고 결혼했다. 그는 축의금 5,000달러로 주식 투자를 시작했는데 변동성이 큰 대두 투자로 갈아탔다. 새벽마다 시장에 나가 대두 가격 움직임을 살피며 가격변동을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3년 만에 미분기하학으로 박사학위를 땄다. 그 뒤 MIT 교수로 재직하다 그만두고 친구들과 함께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제조회사를 창업했다. 회사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뒤 1963년 하버드대학교 교수가 됐다.


    이번에도 교수직에 만족하지 못한 사이먼스는 뭔가 새로운 도전거리를 찾았다. 결국 이듬해 연봉이 두 배 많은 국가안보국(NSA) 산하 국방분석연구소로 자리를 옮겼다. 암호 해독 부서에 배치된 사이먼스는 의미 없어 보이는 난해한 데이터와 씨름하며 패턴을 찾아내는 일을 맡았다. 그는 그곳에서 선임들에게 패턴을 활용한 수학 모델과 컴퓨터 알고리즘을 만드는 방법을 처음 배웠다.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그 뒤 그는 초고속 암호 해독 알고리즘을 개발해 그간 풀지 못했던 소련 암호 해독에 성공했다.


    1960년대만 해도 컴퓨터가 귀해 증권사들이 데이터를 카드 분류 방식으로 관리했을 때다. 사이먼스는 컴퓨터를 활용해 여러 프로그램을 시험해볼 수 있는 행운아였다. 이때 그는 암호 해독에서 귀중한 힌트를 얻는다. 곧 주식시장에서도 무의미한 것처럼 보이는 여러 신호 사이에서 유의미한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주식 투자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어 투자하기로 했으나 자금 마련에 실패했다. 사이먼스는 퇴역 합참 의장의 베트남 전쟁 옹호 칼럼을 반박하는 인터뷰를 했다가 연구소에서 해고당했다.


    하지만 그의 수학 실력을 익히 아는 학계는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사이먼스는 1968년 뉴욕주립대학교 스토니브룩 캠퍼스의 수학과 학과장으로 초빙되어 30세에 다시 교수가 됐다. 그는 1976년 38세에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부르는 베블런상을 받았다. 그가 학과장으로 재직했던 10년간 유명 교수 20명을 초빙해 스토니브룩 수학과를 일류로 키워냈다. 하지만 그의 못다 이룬 꿈, 곧 주식 투자에 대한 미련이 다시 꿈틀거렸다. 1978년 과감히 종신 교수직을 내던지고 마흔 살에 자신의 투자회사를 설립해 금융계에 뛰어들었다.


    보너스를 활용해서 동료와의 협업을 이끌어낸다

    유대인의 특징은 무엇을 하든 ‘함께’한다는 점이다. 사이먼스 역시 천재 동료들을 끌어들였다. 1979년 암호 해독을 같이했던 수학자 레너드 바움과 스토니브룩 동료 교수 제임스 엑스를 영입했다. 그 들과 외환 거래를 함께하며 암호 해독 때처럼 시장에서 유의미한 패턴을 찾아 투자 모델을 만들기 시작했다. 투자 모델이 완성되기도 전에 모금한 300여만 달러를 수천만 달러로 불렸다. 그 뒤 거래 품목을 늘려 원자재와 채권 선물에도 투자했다. 그들은 시장 데이터를 모아 마침내 수학적 투자 모델을 만들었다.


    사이먼스는 천재 수학자인 동시에 천재 경영자였다. 40년 전에 이미 동료들이 창의성을 발휘하도록 자유근무제는 물론 쾌적한 업무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뉴욕이 아니라 따듯한 서부에서 살고 싶다는 동료들을 위해 캘리포니아 해변가에 별도 투자회사를 마련했다. 그는 MBA나 금융계 출신을 뽑지 않고 수학자, 물리학자, 기상학자들을 채용해 분야별 투자 모델을 개발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홀로 연구하는 데 익숙해 팀원 간 소통과 협력에 문제가 많았다. 사이먼스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매주 업무 토론을 정례화해 정보를 공유하게 했고 격주로 전문가 특강을 듣고 이를 어떻게 업무에 접목할지 토론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치 않았다. 사이먼스는 궁리 끝에 소통과 협력을 제도화하기로 마음먹고 새로운 보너스 시스템을 만들었다. 개인별 보너스 지급액을 책정할 때, 예를 들면 본인 성과는 40퍼센트를 차지하고 동료를 도와준 성과는 60퍼센트를 차지하도록 구성해 내가 성과를 내기보다 동료가 성과를 내도록 도와주면 더 많은 보너스를 받게 설계했다. 그리고 장기간 실적을 반영해 협동이 제도로 자리잡고 체질처럼 익숙해지도록 만들었다. 이로써 서로 소통하고 협동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국가관] 하느님의 자녀로서 약속받은 땅으로 돌아간다

    대기업 없이 스타트업으로 경제 기적을 이루다

    군사용 정보통신기술 발전에서 출발하다

    1973년 10월 6일 ‘욤 키푸르 전쟁’이라 부르는 4차 중동전쟁이 발발했다. 이집트는 병력 75만 명과 탱크 3만 2,000대, 소련제 미사일까지 총동원해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기습당한 이스라엘의 피해는 막심했다. 이스라엘이 자랑하던 시나이 전선의 모래언덕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고 골란고원이 점령됐다. 특히 지난 전쟁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여준 이스라엘 전차부대와 전투기는 이집트군이 쏘아대는 성능 좋은 소련제 미사일 공격에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


    이스라엘은 패배 직전까지 갔던 이 전쟁에 큰 충격을 받았다. 보병과 전차는 미사일 공격 앞에 무용지물임을 깨달았다.


    100만 명의 고학력 러시아 유대인을 받아들이다

    그 후 이스라엘은 방위산업 전략을 180도 바꿔 전차 등 재래식 무기 개발이 아니라 적의 공격을 사전에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는 체제로 바꿔갔다. 이를 위해 제일 먼저 1952년 창설된 첩보부대를 ‘8200’ 인터넷 보안부대로 바꾸고 인터넷 첩보 활동을 강화했다. 과학기술 전문 장교 집단 ‘탈피오트’를 창설하여 이들을 중심으로 방위산업을 군사용 정보통신기술 위주로 발전시켰다. 곧 정보산업과 인공위성, 인터넷을 활용한 레이더, 미사일, 미사일방어체계 아이언돔, 무인비행기, 드론 등이 주력이 됐다. 이러한 첨단 방위산업기술이 전역 후 이들의 창업 아이템이 되었다. 8200부대와 탈피오트는 이후 국가 스타트업 육성 정책의 핵심이 됐다. 8200부대 출신들이 창업한 스타트업이 1,000개가 넘으며 그중 사이버보안 기업만 400개에 이른다. 인터넷 방화벽 시장 세계 점유율 1위인 체크포인트 설립자 길 슈웨드(Gil Shwed) 역시 8200부대 출신이다. 이러한 추세는 탈피오트도 마찬가지다. 미사일방어체계 아이언돔도 탈피오트 사관후보생의 아이디어로 시작돼 병기개발청 라파엘이 생산에 성공했다. 라파엘은 우리나라 연평도에 배치된 4세대 스파이크 미사일도 개발했다.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가의 성격과 경제 방향을 바꾼 나라다. 사회주의 국가로 출발했으나 1980년대 후반에 자본주의를 접목해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했다. 이런 신생 자본주의 국가에 1991년 12월 26일 소련의 붕괴로 국경 봉쇄가 풀리면서 약 100만 명의 고학력 러시아 유대인들이 물밀듯이 이주해왔다. 이들 중 약 23퍼센트가 과학자로 대부분 소련 국립 연구기관에서 근무한 경력자들이었다. 이스라엘 수석과학관실은 이들의 높은 과학 수준과 기술력을 상업화하기로 하고 미국 유대인 단체의 협조를 받아 이스라엘 전역에 24개의 기술 인큐베이터를 설립하고 기술창업 보육사업을 전개했다.


    그리고 이들을 본격 지원하기 위해 1993년에 ‘요즈마 펀드’를 설립해 해외 벤처캐피털과 글로벌 기업의 연구개발(R&D)센터 유치에 사활을 걸었다. 투자 수익에 대한 비과세, 투자 후 5년 내 요즈마 지분을 싼값에 되살 수 있도록 하는 획기적인 인센티브로 대성공을 거뒀다. 초기 스타트업들이 매년 20여 개씩 성공을 거두자 전 세계 벤처캐피털들이 이스라엘로 몰려들었다. 1억 달러로 시작한 요즈마 펀드는 크게 성장해 5년 후 민영화됐으며 10년 후에는 규모가 40억 달러로 커졌다.


    세계 약품의 25퍼센트가 이스라엘의 기술에 기반한다

    이스라엘 스타트업의 또 다른 배출구는 대학과 연구소다. 이스라엘은 건국 30여 년 전에 설립한 대학과 연구소를 중심으로 방위산업을 육성해 왔으며 또 이를 토대로 기술 혁신을 이루고 하이테크 산업을 발전시켰다. 그리고 이들 대학과 연구소는 보유한 기술을 민간기업에 접목하기 위한 기술 이전 조직을 별도로 만들었다. 바이츠만연구소의 예다, 테크니온공과대학교의 T-3, 히브리대학교의 이슘, 텔아비브대학교의 라못 등이다. 이들의 기술사업화 실적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이다.


    1959년에 설립된 바이츠만연구소의 예다에 따르면, 세계 약품 시장 매출액 중 약 4분의 1은 이스라엘 과학자들의 기술을 이용해 개발됐다고 한다. 학생 수가 1,380명인 바이츠만연구소의 기술사업화 성과가 200여 미국 대학 성과의 절반에 필적한다. 1964년에 설립된 히브리대학교의 이슘의 경우도 기술 이전을 통해 연 매출 20억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이들의 설립 연도만 보아도 이스라엘 대학교와 연구소가 일찍부터 연구 결과의 실용화를 얼마나 중시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스라엘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네 차례 중동전쟁과 러시아 유대인 100만 명의 유입으로 특이한 구조를 갖게 된다. 스타트업의 요람이 군대와 산업계와 대학의 연합 전선인 군·산·학 복합체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서 매년 1,000여 개 스타트업이 탄생해 한 해에 창업하는 스타트업 수가 유럽 전체 스타트업 수를 능가한다. 현재 이스라엘 스타트업 수가 7,000개가 넘다 보니 이들의 젊은 피를 수혈하기 위해 이스라엘에 세워진 다국적 기업들의 연구개발센터가 무려 400개에 달한다. 이들은 대부분 이스라엘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형태로 연구소를 시작했고 관련 하이테크 연구와 병행해 지금도 유망한 스타트업을 사냥하고 있다.


    현재 이스라엘은 변변한 글로벌 대기업 하나 없이 스타트업과 방산 기업들이 국내총생산GDP 증가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2022년 10월 발표한 국제통화기금(IMF) 자료에 의하면, 2022년 이스라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5만 5,358달러에 달한다. 이는 팬데믹 상황에서 프랑스와 영국은 물론 독일보다 높은 수치이며, 2020년 4만 4,181달러, 2021년 5만 1,449달러에서 2년 만에 25.3퍼센트가 껑충 뛴 비약을 보여주었다. 스타트업이 이룬 경제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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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