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임팩트 2023
 
지은이 : 강재호 외
출판사 : 21세기북스
출판일 : 2022년 11월




  • 빅테크, 긱 경제, 뉴스포털, 스트리밍 서비스... 국내 최고 석학들이 ‘플랫폼 소사이어티’의 미래를 이야기합니다. 사회 전반과 일상에 파고든 디지털 플랫폼의 현황과 가치를 분석하고 이러한 플랫폼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함으로써 앞으로 마주할 미래 사회를 엿봅니다.


    플랫폼 임팩트 2023


    플랫폼 자본주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_김홍중

    플랫폼 자본주의의 등장

    ‘감시 자본주의’에서 주보프(Shoshana Zuboff)는 플랫폼 자본주의의 기본 메커니즘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감시 자본주의는 일방적으로 인간의 경험을 공짜 원재료로 삼아 행동 데이터로 번역한다. 이 데이터 중 일부는 상품이나 서비스 개선에 활용되지만, 나머지는 사유화된 행동 잉여로 분류되어 ‘기계 지능’이라고 알려진 고도의 제조공정에 투입되고, 당신이 지금 혹은 장차 할 행동을 예상하는 예측 상품(prediction product)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예측 상품은 행동의 예측이 거래되는 새로운 종류의 시장에서 거래된다. 나는 이 시장을 행동의 선물거래가 이루어지는 미래행동시장(behavioral futures market)이라고 부를 것이다.”(주보프, 2021: 31-32)


    감시 자본주의는 자본주의 역사에서도 최초로 발견되는 새로운 특성들을 보여준다. 그 핵심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사용자들의 비시장적 활동 흔적들을 가치의 원천으로 전환시킨다는 점에 있다. 달리 표현하면, ‘행동 잉여(behavioral surplus)’에 대한 “디지털 수탈(digital dispossession)”이 그 본질을 이룬다(주보프, 2021: 151). ‘행동 잉여’란 플랫폼 유저들이 인터넷 검색 엔진을 포함한 다수의 알고리즘 장치를 통해 수행한 활동 흔적을 가리킨다. 유저의 생명 활동, 욕망 추구, 시간 사용, 관심의 표명, 소비나 여행, 친교와 문화적 향유 등의 방대한 흔적을 담고 있는 데이터는 기업의 이윤으로 전환된다.


    문제는 사용자의 행동이 동의 없이 수집되고, 수집된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과 방법은 사용자에게 주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데이터를 통해 얻은 기업의 수익을 행위자는 배당받지 못한다. 결국 플랫폼 자본주의 속에서 행위자는 “인간이라는 천연자원”으로 전락한다(주보프, 2021: 152). 착취나 소외같이 자본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사용되던 예전의 용어들이 다시 부상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Terranova, 2000; Andrejevic, 2011: 서르닉, 2020).


    사회적 공장

    이런 과정을 통해 형성된 플랫폼 자본주의의 가장 현저한 특성은 무엇일까? 우리는 그 고유한 가치 창출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 플랫폼 자본주의의 주된 가치는 공장에서 생성되지 않는다. 대신 유저들이 인터넷이나 모바일 기기 혹은 SNS에 접속하여 수행한 클릭, 검색, 소비, 카드 지불, 여행, 이동, 운전, 독서 등 활동의 흔적을 데이터로 가공하는 과정에서 가치가 발생한다(이항우, 2020a; 264-265).


    노동은 근육의 움직임이 아니라 타이핑이 되었다. 그런데 플랫폼 자본주의는 ‘타이핑’이라는 이미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각종 센서와 카메라가 부착된 웨어러블 기기들, 모바일 전화, 사물인터넷, 유비쿼터스 컴퓨팅, 스마트 홈이나 스마트 시티 혹은 스마트 자동차에서의 일상적 활동들을 떠올려보라. 손목에 애플워치를 차고 자고 일어나 조깅하고 출근하는 사람은 자면서도, 꿈꾸면서도, 걷고, 숨 쉬면서 이미 노동을 하고 있다. 여가나 스포츠를 즐기면서도 그는 자신의 수면 시간, 패턴, 질, 심박수, 이동 거리 등에 대한 데이터를 플랫폼 기업에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 의미의 노동 외부에서 수행되는 이 행동들은 노동과 노동 아닌 것의 경계를 붕괴시킨다. 말하자면, 노동은 이제 더 이상 의식적이고 지향적인 인간 행위가 아니게 된 것이다. 디지털 네트워크에 접속된 사용자는 노동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채 노동을 통해 달성하려는 목적이나 의도 없이 노동한다. 노동과 여가, 공장과 사회, 생산과 소비의 구분도 힘들어졌다.


    플랫폼 자본주의의 노동은 “탈영토화되고 분산되고 탈중심화” 된 모습을 띤다(Rosalind and Pratt, 2008:7). 이처럼 “사회 전체가 이윤의 처분에 놓이게 되는”(네그리, 2012: 119-120) 상황에서 출현하는 새로운 영역, 그것이 바로 ‘사회적 공장’이다(Campbell, 2018; 이항우, 2017: 126).


    비사회적 ‘소셜’

    2000년대 중반 이후 웹 2.0 기술이 확산되면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그동안 수동적 위치에 있던 인터넷 이용자들을 적극적 행위자로 끌어올렸고 이들의 활동이 시장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사실일 것이다(원용진, 박서연, 2021: 145-148). 우리가 ‘소셜’이라 부르는 새로운 활동 영역, 표현 영역, 존재 영역이 기업의 이윤 활동에 개방된 것은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서였다(마라찌, 2013: 69-70). 웹 2.0과 소셜 미디어의 등장과 더불어 형성된 온라인 사회성을 ‘소셜’ 혹은 ‘소셜적인 것’이라 불러보자. 이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회(society)’ 혹은 ‘사회적(social)’이라 부르는 것과 매우 다른 세계인 것이다. 그 차이는 무엇인가?


    원래 ‘사회’ 혹은 ‘사회적’이라는 용어는 20세기 후반까지 여러 상이한 의미로 사용되어왔다. 예를 들어 뒤르켐이 주장한 인간 삶의 최종 심급, 푸코와 아렌트가 주장한 근대적 통치 섹터, 짐멜이 주장한 관계를 만드는 원형적 힘, 니체가 주장한 대중적 삶의 형식, 마르크스가 주장한 규범적 유토피아 등이 그것이다(김홍중, 2017). 그런데 이런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사회’라는 용어에는 합의 가능한 공통의 의미가 존재하고 있었다. 가령 사회보장, 사회적 평등, 사회정의, 사회정책, 사회문제, 사회악, 사회국가, 사회적 기업, 사회적 약자와 같은 용어들을 떠올려보자. 이 용어들에 ‘사회’는 국가로 대표되는 정치 논리와 시장으로 대표되는 경제 논리로 환원되지 않는 연대와 공존, 부조, 증여 같은 도덕적 가치를 함축하고 있다. ‘사회’는 복지국가로 제도화되는, 리스크를 공동 관리하는 공동체, 국가와 시장의 하부에 존재하는 삶의 공적 토대를 의미해왔다(Donzelot, 1994).


    그런데 소셜 미디어가 생성시킨 ‘소셜’의 감각은 이 전통적 ‘사회’의 의미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2004년에 창립된 페이스북이 이를 잘 보여준다. 가령 페이스북을 통해 만나는 친구들은 알고리즘에 의해 소개되고 연결되고 관리된다. 알고리즘은 페이스북 뉴스피드에 어떤 스토리가 올라와야 하는지를 결정하며, 그것이 친구의 범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우정은 “계산 가능한(computable)” 무언가가 된다(Butcher, 2018: 8). 소셜 미디어의 작용 속에서 형성되는 소셜은 이처럼 “프로그램화된 사회성”(Butcher, 2018: 4-12) 혹은 “플랫폼화 된 사회성”(van Dijck, 2013)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것은 기술적으로 매개되어 있고, 계산되며, 컴퓨터 소프트웨어와 알고리즘에 의해 통제되는 새로운 유형의 사회성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확장된 친밀성에 더 가깝다.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특히 정치적 커뮤니케이션의 맥락에서 다양한 연구들은 소셜 미디어에서 쉽게 발견되는 “동화 편향(assimilation bias)”(Petty et al., 1997: 611-615) 혹은 “선택적 노출”(Iyengar and Han, 2009: 19-39) 경향을 지적하고 있다(장덕진, 2011; Ellison, Steinfield and Lampe, 2007; 박상운, 2014). 이는 반드시 정치 커뮤니케이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SNS 전반에서 발견되는 현상이기도 하다(하상응, 2021). 인터넷이 확산될 무렵 많은 사람이 기대했던 열린 공론장, 확장된 민주적 소통 같은 이상은 SNS의 실제 현실과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자신과 유사한 사람들이 행사하는 동조 압력과 가짜 뉴스, 그리고 일종의 메아리방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유승호, 2012: 33-41). 더 나아가 소셜 미디어가 혐오, 분리, 적대와 같은 반사회적 효과를 생산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바디야나단, 2020).


    이에 더해 플랫폼 자본주의에서 소셜, 즉 온라인 사회성을 뜻하는 소셜은 더 이상 오프라인 사회성의 그림자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 또한 중요하다. 진 트웬지(Jean Twenge)가 ‘i세대’라 부른, 1995년 이후 출생한 청소년들은 스마트폰을 통한 활동에 압도적으로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이들은 얼굴을 맞댄 직접적 상호작용에는 훨씬 적은 시간을 쓰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트윈지, 2018). 이런 현상은 정치적 숙의 같은 사회적 절차들이 기계적 과정으로 대체되는 “탈사회적 편향”(안드레예비치, 2021: 80)과 함께 진행되고 있다. ‘소셜’은 20세기적 ‘사회성’을 잠식해가고 있다.



    미국의 반독점법: 시장의 효율성 대 민주적 정당성 _하상응

    미국의 반독점법 역사: 시장 점유율? 소비자의 후생?

    미국 반독점 규제 논리는 1970년대에 큰 변화를 맞는다. 1978년에 출판된 ‘반독점 역설(The Antitrust Paradox)’의 저자인 법학자 보크(Robert Bork)는 반독점법의 근본적인 의도가 소비자의 권익 보호 및 경제적 효율성의 확보여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Bork, 1978). 보크에 따르면 독점을 통해 상품의 가격을 고정시키거나 인상하는 행위는 규제의 대상이 되지만, 독점 혹은 과점으로 보이는 행위가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다면 반독점법을 적용할 수 없다. 예를 들어 10개의 기업이 경쟁하던 시장에서 1개의 기업이 인수합병을 통해 살아남은 경우, 그 기업이 생산하는 상품의 가격이 올랐다면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반독점법 적용이 가능하겠지만, 상품의 가격이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낮아졌다면 독점이 소비자의 효용을 높였기 때문에 반독점법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반독점법의 목적은 경쟁을 보장하는 것이지 특정 경쟁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다. 5개의 기업이 20%씩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상황이 항상 한 개의 기업이 100%의 시장 점유율을 보이는 상황보다 반드시 상대적으로 더 경쟁적인 상황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것이다. 보크의 입장을 따르는 법경제학 학자들은 시카고학파(Chicago School)를 만들어 독점의 판단 기준을 시장 점유율로부터 소비자 후생으로 바꾸는 데 기여하였다.


    시카고학파의 입장은 반독점 행위를 대표하는 수직적 통합(vertical integration)과 약탈적 가격(predatory pricing)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에도 변화를 주었다. 우선 수직적 통합이란 상품을 생산하는 업종과 상품을 판매하는 업종처럼 서로 인접한 업종을 한 기업이 통합하여 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 동종 기업을 인수합병하여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행위는 수평적 통합(horizontal integration)이라고 구분해서 지칭한다.


    전통적인 입장에서 보면 수직적 통합은 두 가지 이유에서 반독점 규제의 대상이다. 재화 ‘생산’의 영역에서 이미 독점적 지위를 확보한 기업이 재화 ‘판매’의 영역에까지 그 지배력을 확장하려고 하는 지렛대 효과(leverage effect)의 문제가 하나이다. 자신이 생산한 물품을 자신이 소유한 소매상에게만 제공하고, 다른 소매상에게는 제공하지 않거나 불리한 조건으로 제공하는 시장배제(foreclosure)가 또 하나의 이유이다. 하지만 시카고학파의 눈에는 수직적 통합이 거래 비용을 줄여 시장의 효율성을 높였기 때문에 반드시 반독점 규제의 대상으로 봐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편 약탈적 가격은 경쟁 기업을 시장에서 도태시킬 목적으로 당분간 손해를 보더라도 상품 가격을 낮추는 행위인데, 전통적인 입장에서는 당연히 규제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시카고학파는 약탈적 가격이 기업의 합리적인 행동이라고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기업이 약탈적 가격을 채택해 입은 손해를 시장 내 독점 지위를 확보한 이후 회복했다는 증거가 있어야 반독점 규제의 대상이 된다는 주장을 편다.


    플랫폼 기업 대상 반독점법의 논리

    20세기 후반 정부에 의한 독점 규제가 실질적으로 무력화된 상황은 금융위기를 겪고 난 2010년대에 들어와서야 변화를 보인다. 시장 내의 독과점, 특히 플랫폼 시장에서의 독과점 문제에 대한 관심과 우려는 2017년에 출판된 한 영향력 있는 논문에 의해 촉발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아마존의 반독점 패러독스(Amazon’s Antitrust Paradox)’라는 제목의 긴 논문은 당시 20대 후반에 불과했던 예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학생인 리나 칸(Lina Khan)에 의해 작성되었다. 칸은 독과점 및 경쟁 여부를 소비자 후생이라는 근시안적 관점에서 파악하는 시카고학파의 논리에 도전장을 내민다(Khan, 2017). 이 논문에서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 문제는 앞에서 언급한 두 가지 기준인 1) 수직적 통합과 2) 약탈적 가격의 관점에서 분석되고 있다.


    첫째, 플랫폼 기업은 그 성격상 수직적 통합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높다. 플랫폼 경제에서 소비자와 판매자 혹은 생산자는 온라인 플랫폼에 의해 연결된다. 중개인의 역할을 하면서 시장의 인프라를 제공하는 플랫폼이 판매자 혹은 생산자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경쟁에 뛰어들게 되면, 기존의 판매자 혹은 생산자에게 불리한 상황이 연출된다. 온라인 플랫폼 기업이 소비자와 판매자를 이어주는 와중에 판매자 혹은 생산자의 정보를 이미 모아놓은 상황이기 때문에 온라인 플랫폼 기업이 자회사를 만들어 판매와 생산에 뛰어들게 되면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둘째, 온라인 플랫폼 기업이 약탈적 가격 정책을 펼 인센티브가 크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플랫폼 기업은 일차적으로 중개인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눈앞의 이익보다는 외연 확장이 더 중요하다.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한 온라인 플랫폼 기업이 중개 서비스를 독점하는 유일한 플랫폼이 되는 것이다. 시장 점유율에 대한 집착은 결국 약탈적 가격 책정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공급독점 상황에서의 재화의 가격이 완전경쟁 상황에서의 재화의 가격보다 높아 독점 이윤이 생긴다는 논리를 너무 기계적으로 이해하다 보니 약탈적 가격 정책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칸의 논리는 거대기업 아마존의 행보를 경험적으로 분석하여 뒷받침되고 있다. 아마존은 현재 세계 시장에서 가장 큰 기업 중 하나이다. 원래 온라인 서점으로 시작한 아마존은 그 영역을 꾸준히 확장시켜왔다. 아마존은 온라인 상품 판매 플랫폼일 뿐만 아니라 수백만 명에 이르는 판매자들을 위한 장터를 운영하는 플랫폼이기도 하다. 현금 사용이 필요 없는 편의점, 실물 서점도 운영할 뿐만 아니라 홀푸드 인수 이후 식료품 소매업에도 뛰어든 상황이다. 또한 아마존은 직접 상품을 제조하기도 한다. 아마존 킨들이 차지하는 전자책(e-book) 시장 점유율은 80%가 넘고, 알렉사(Alexa)를 통해 디지털 비서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이외에도 아마존은 물류, 배송 네트워크, 패션 디자인, 영화 제작, 경매, 신용 대출 및 결제 서비스, 클라우드 컴퓨팅 서버 운영까지 간여하고 있다. 이토록 눈부시게 아마존은 성장했지만, 이윤은 거의 내지 않았다. 바로 이 부분이 아마존의 약탈적 가격 정책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이미 가격을 정할 수 있는 실질적인 독과점 위치에 있으면서도 서비스와 상품 가격을 비용보다도 낮게 책정하여 시장 점유율을 높였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런 전략을 통해 아마존은 전자상거래(e-commerce) 시장에서 필수적인 인프라를 제공하는 위치에 올랐다.


    칸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 행태를 효과적으로 막기 위한 두 가지 방안을 제안한다. 하나는 플랫폼 기업의 이해 충돌(conflict of interests) 방지에 초점을 두는 것이다. 일정 수준의 시장 점유율을 가진 플랫폼 기업이 수직적 통합을 수행하여 시장 질서를 교란시키기 전에 미리 개입하는 것을 원한다. 즉 시장 점유율이 충분히 높은 기업은 관련된 다른 업종에 자회사를 만들지 못하게 하는 정책을 말한다. 유사한 맥락에서 약탈적 가격 정책을 막기 위해 손실 회복 증명을 사후에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전적 추정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시장 점유율이 충분히 높은 디지털 플랫폼 기업이 원가 이하로 상품 가격을 책정한 것이 밝혀진다면 그 자체로 약탈행위로 간주하고 개입하자는 것이다.


    다른 하나의 방안은 플랫폼 기업의 서비스를 공공 서비스로 규정하여 사후 규제를 하는 방법이다. 플랫폼 기업의 활동이 기본적으로 네트워크 효과를 추구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독점 혹은 과점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정이 자연스럽게 독과점이 생긴다고 해도 시장 질서 및 소비자의 권익에 해를 끼칠 가능성은 있다. 이에 실제로는 사기업이 운영하고 있더라도 공익사업으로 취급되어 국가의 규제를 받는 운송, 통신, 생활필수품목인 전기, 가스, 수도 등과 유사한 시각으로 온라인 플랫폼을 바라보자는 것이다.


    온라인 플랫폼 서비스를 생활 필수 네트워크 산업으로 규정하면 일반인들이 모두 합리적인 요금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구체적으로 플랫폼 기업이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차별적인 가격을 설정하는 것을 금지하는 방법이 주효할 것이다. 즉 아마존과 같은 기업이 자사 상품을 우대하지 못하게 하고 생산자 혹은 소비자의 일부를 차별하는 것을 금지한다면, 플랫폼 기업이 자연적으로 확장된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플랫폼 노동의 (비)물질성: 우버 노동자의 사례 _강재호

    우버와 플랫폼 노동자

    2021년 2월 19일 영국 대법원은 우버(Uber) 회사의 항소를 기각하여 소위 우버 사건(Aslam & others v. Uber)의 사법적 판단이 일단락되었다. 2016년 고용심판소의 심리에서 시작된 이 재판의 원고들은 런던에서 일하는 우버의 전, 현직 운전자들이다. 우버가 최저임금법상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점, 노동시간법상 유급휴가를 부여하지 않은 점에 대한 판단을 요청한 사건이다. 우버는 원고들이 자영업자이자 자신들의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소비자라 주장하였다. 그러나 고용심판소는 우버 운전자들은 ‘노무제공자(worker)’라 판결하였다(Carney, 2017). 이 사건은 영국에서의 고용구조 유형 문제를 넘어, 플랫폼 자본주의에서 노동과 노동자의 성격과 지위에 대한 주요한 논쟁을 촉발하였다(Kenner, 2019). 이 논쟁은 노동자-소비자, 노동시간-여가시간, 노동공간-사적공간 등 기존의 자본-노동의 이원적 관계로는 더 이상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또한 갖고 있다. 이 글에서 나는 영국 우버 사건을 플랫폼 노동의 비물질성 문제를 중심으로 재구성하면서, 몇 가지 사회이론적 쟁점을 도출해보려 한다.


    우버 플랫폼 노동의 쟁점

    플랫폼 노동의 물질성과 비물질성

    우버 운전자의 지위를 ‘노무제공자’라는 제3의 지위로 규정한 판결은 플랫폼 노동의 비물질성을 산업자본주의에 기반한 이론적 틀로서는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움을 보여준다. 우버 운전자의 ‘노동’은 승객을 ‘운송하는 운전’이자 동시에 우버 앱에 접속하고, GPS를 안내받고, 운전자의 신원 검토, 승객 확인, 요금, 수수료, 세금 등을 취급하는 행위가 플랫폼에서 이루어지는 ‘비물질 노동’을 포함한다. 우버 노동은 플랫폼 노동이 물질성과 비물질성의 교차성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증명해준다. 특히 후기 자본주의에서 노동의 비물질성 문제는 앙드레 고르스(André Gorz, 2010)와 같은 비판사회이론가들, 그리고 특히 이탈리아 자율주의 사회이론가들(Hardt and Negri, 2000; Lazzarato, 2005, 2017 and 2018; Virno, 2004 and 2008; Beradi, 2009)이 2000년대 이후 주목하고 논쟁해온 이론적 주제이다. 비물질 노동은 일반적으로는 지식, 정보, 커뮤니케이션 혹은 정서적 반응 등과 같은 비물질적 생산물들을 생산해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Lazzarato, 2005). 고르스는 노동의 비물질성에 기반한 지식정보사회의 도래를 선언하면서 이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부의 생산이 ‘자본-노동 관계’를 초과하게 된다는 점을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정보기술은 지식이자 지식 생산기술이요, 제조, 규제, 발명, 조정의 수단입니다. 그 안에서는 직접생산자와 생산수단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분리하던 사회적 분할이 사라집니다. 생산자는 더 이상 노동수단을 통해 자본에 지배받지 않습니다. 지식 생산과 물질적, 비물질적 부의 생산은 혼용됩니다. 고정자본은 더 이상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습니다. 생산의 주된 힘은 기계라는 자본도, 돈이라는 자본도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상상하고, 발명하고, 자신의 지식, 부의 생산과 인지 능력을 함께 늘려갈 때 발휘하는 생생한 열정입니다. 이 사실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체험한 사람들 안에 고정자본은 포섭되고 내재화됩니다. 이럴 때 자기 생성이 곧 부의 생산이 되고, 부의 생산이 곧 자기 생성이 됩니다.”(Gorz, 2015: 22-23)


    사회적 기계로서의 플랫폼

    우버는 플랫폼 회사, 구체적으로는 린 플랫폼(lean platform) 유형의 회사이다. 린 플랫폼은 ‘자산 소유와 비용을 최대한 축소하여 최대의 수익을 내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Srnicek, 2020: 56). 즉 우버는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지 않으면서 운송업을 하는 회사이다. 플랫폼을 ‘복수 집단이 교류하는 디지털 인프라 구조’라 정의하면, 플랫폼은 단지 소비자와 생산자를 연결해주는 역할에 국한되지 않고, ‘소비자, 광고주, 서비스 제공자, 생산자, 공급자’, 심지어 기계로서의 ‘물리적 객체’ 등 다양한 이용자와 기술 환경을 연결하는 하나의 ‘기계’라 할 수 있다. 사회적 기계로서 플랫폼은 네트워크의 인프라를 설계하는 데 그 핵심적 기능이 있다.


    플랫폼 기업으로서의 우버는 우버 운전자의 노동이 물질성과 비물질성의 이중성, 인터넷 기업과 운송기업의 이중성으로 구성되었음을 보여준다. 이 이중성의 동학은 노동 주체의 플랫폼화가 ‘사회적 복종’뿐만 아니라 ‘기계적 예속’이라는 또 하나의 이중성에서 작동함을 보여준다. 랏자라또는 사회적 복종과 기계적 예속의 이중성으로 주체화와 탈주체화를 재구성하는데, 이 접근은 플랫폼과 노동 주체의 상호작용을 더욱 체계적으로 분석할 수 있게 도와준다. 랏자라또에 따르면, ‘사회적 복종(social subjection)’은 “개체화된 주체를 생산하고 그들의 의식-재현 행위를 형성”하는 반면, 탈주체화로서의 ‘기계적 예속(machinic enslavement)’은 “개체화된 주체, 의식, 재현을 해체하며, 전체적이고 초개체적인 층위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이다(Lazzarato, 2018, 16). ‘사회적 복종’과 ‘기계적 예속’의 장치들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바로 ‘주체성 생산’이 일어난다. 플랫폼 자본주의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기계’, ‘조직과 기술’ 등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주체성을 생산하는 ‘거대기계(megamachine)’ (Mumphord, 1971)라 할 수 있다. ‘노무제공자’로서 우버 운전자는 자신들의 ‘법적 주체성’을 규정하는 사회적 복종 또는 종속화와, 플랫폼의 부속품처럼 기능하는 기계적 예속화의 이중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우버 플랫폼이라는 기계는 우버 운전자라는 인간이 ‘노무제공자’라는 주체로서 이 기계에 행위하며 관계를 맺는 외적 대상인 동시에, 우버 운전자-우버 회사, 우버 운전자-승객, 승객-우버 회사 사이에 존재하는 하나의 ‘매개체’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버 회사는 또한 수없이 많은 하위 주체와 기계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과정에 참여하는 인간은 ‘생체-정보 기계’(Beradi, 2013)로 생산되고, 해체되고, 재생산되고, 확대된다.


    기업가로서의 플랫폼 노동자

    우버는 운전자들을 ‘자기 기업가’라는 ‘인적 자본’으로 지속적으로 조직화한다. 즉 끊임없이 자신의 ‘자유’와 ‘자율성’에 입각하여 자기 자신의 관계를 조정해야 하는 개인으로 호출한다. 타자가 아닌 자신과 끊임없이 경쟁하고 협상하는 자아의 형성은 포스트-포디즘의 특수한 ‘사회적 복종’의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우버의 마케팅은 노동조건에 대한 협상 과정이 자신의 책임 하에 주체 자신이 자율적으로 내린 결정이라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반면 ‘기계적 예속화’는 파편적, 표준적, 하위 개체적 주체의 활용을 통해 작동한다. 우버 운전자들이 사실상 ‘기업가적 자본주의 정신을 가진 자영업자’이건, 노무제공자이건, 고용노동자이건, 그 주체성을 또한 해체하는 작동이다. 즉 ‘가분체(dividual)’ 또는 ‘분인(le dividuel)’이라 번역되는 ‘분할 가능한 것’으로 탈주체화시키면서 기계적 종속화는 작동한다.


    노동 과정의 측면에서 우버 플랫폼으로의 기계적 예속화는 ‘사회의 탈숙련화(social deskilling)’(Andrejevic, 2020)를 또한 촉진한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즉 우버 운전자의 노동 과정은 자동화된 기술 코드와 지능 기계장치에 점점 의존하며 상징과 정동의 조작 및 사용 쪽으로 변해간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의 탈숙련’ 상태는 “일상의 여러 판단, 기억, 학습, 결정을 점점 더 데이터 자동화 알고리즘 기술에 광범위하게 의존하고 위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며, 기술적 예속화를 더욱 촉진한다(이광석, 2021: 45).


    이 ‘기업가’로서의 ‘주체화(subjectivation)’는 ‘자본에 의한 자기 생산의 완전한 포섭(the total subsumption)’을 증명한다(Lazzaratto and Negri, 205:295). 기존의 ‘자본-노동’의 관계는 ‘자본-삶’의 관계로 재배치된다. 노동과 여가, 자기계발, 문화적 활동 등의 삶의 구별은 사라진다. 사실상 이제 삶 자체가 노동이 된다. 이전의 테일러주의적 산업사회에서 노동자 집단은 ‘일상의 문화에 의해 발달된 실용적인 지식, 기술, 습관을 박탈당하고 철저한 노동 분업을 통해 작동’하였다. 반면 “포스트-포디즘의 노동자들은 게임, 팀 스포츠, 캠페인, 논쟁, 뮤지컬 및 연극 활동과 같은 모든 문화적 수하물을 가지고 생산과정에 들어가야 한다. 즉흥과 협력을 위한 노동자들의 활기와 능력은 이 ‘일’ 밖의 활동들에서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포스트-포디즘적 기업이 작동하고 착취하는 것은 그들 일상의 지식이다.”(Gorz, 2010: 10) 즉 “생산시간과 향유(jouissance) 시간을 분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총체적 생활시간(un tempes de vie global)”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노동이 아닌 ‘삶’ 자체가 자본에 포섭된다는 주장이다(Lazzaratto and Negri, 205: 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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