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처 노멀
 
지은이 : 로히트 바르가바, 헨리 쿠티뉴메이슨 (지은이), 김정혜 (옮긴이)
출판사 : 매일경제신문사
출판일 : 2023년 11월




  • 앞으로 10년 우리의 삶과 일, 건강과 행복을 좌우하는 트렌드는 무엇일까요? 소비자 트렌드 분석 세계 최고 기업 트렌드워칭과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트렌드 보고서를 발행하는 논오비어스가 힘을 합쳐 예측한 10년 후 미래 트렌드 30가지를 담았습니다.


    퓨처 노멀


    어떻게 우리는 관계를 맺고 건강하게 잘 지낼까

    멀티버스 아이덴티티

    우리가 무슨 옷을 입는가는 가장 가시적인 자기 표현 수단 중 하나다. 요컨대 우리의 옷차림은 우리의 자신감부터 우리에 대한 타인의 첫인상을 만드는 방식까지, 모든 것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정체성은 옷과 장신구 또는 외모를 통한 자기 표현 방식보다 훨씬 더 깊이가 있다. 정체성을 형성하는 요소는 두 가지다. 첫째는 인종부터 국적까지 우리가 소속된 모든 공동체다. 그리고 우리가 있을 곳을 찾기 위해 어떻게 노력하는가가 정체성을 결정하는 두 번째 요소다.


    이것은 온라인에도 정확히 적용된다. 지난 10년 동안 가상 아이덴티티(Virtual Identity), 즉 온라인에서의 정체성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환골탈태의 과정을 겪었다. 초창기 소셜 미디어는 아주 엄격한 지침을 따라야 하는, 마치 게임 같았다. 우리는 가장 잘나온 사진만 공유하거나 가장 좋았던 시간과 경험에 관한 글만 게시했다. 그 시절에는 소셜 미디어와 관련해 불문율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소셜 미디어가 자신의 가장 멋진 모습과 기억하고 싶은, 그리고 타인이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사건이나 일을 게시하는 공간이라고 말이다. 당시 우리의 온라인 정체성도 이런 불문율을 따랐다. 아주 세세하게 계산해 엄선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 이와 같은 게시글과 소통하는 수단 역시 이러한 암묵적인 규칙을 강화한 것처럼 보였다. 게시물에 사람들이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은 딱 하나, 무언가에 ‘좋아요’ 버튼을 누르는 것이 전부였다.


    돌이켜보면, 소셜 미디어 생태계가 부추긴 가짜 진정성이 역풍에 직면하는 것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삶이 어떻게 언제나 좋기만 할까. 때로는 실직도 하고 더러는 헤어짐도 경험하며 가끔은 도둑을 맞는 것이 인생이다. 소셜 미디어의 현실과 실생활의 괴리가 클수록, 우리는 우리의 온라인 정체성이 거짓이라는 자각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비록 완전한 거짓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완벽하게 진실한 정체성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자 이런 자각은 특정 집단을 향한 격렬한 반감으로 나타났다. 유명인과 인플루언서를 포함해 거짓처럼 보이는 정체성을 꾸며내려 지나치게 노력하는 부류였다. 가짜 정체성은 직감적으로 포착하기가 갈수록 쉬워졌다. 시쳇말로, 척 보면 알게 됐다. ‘축복받은’이라는 해시태그 ‘#blessed’는 역설의 대명사가 됐다.


    우리가 디지털 도구와 미디어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과 자아상 사이에 균형을 맞출 수 있는 방법은 앞으로 더 많아지리라 예상된다. 가상 아바타도 이러한 수단의 유력한 후보다. 전략적으로 최대한 절제시킨 자신의 가상 아바타를 만들고, 이 아바타를 통해 진짜 자신의 특정 측면만 의도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물론 가상 아바타가 우리 정체성과 성격의 미묘한 특징을 전부 담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부분적으로는 자신을 지나치게 노출시키는 개인 정보 공유에 대한 심적 저항감과 사생활 보호 욕구 때문이다. 하지만 가상 아바타를 만들 때 우리가 선택하는 여러 결정이 인생을 변화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예컨대 가상 세계에 자신을 음악가로 소개하는 가상 자아를 창조한다고 하자. 이것은 현실 세계에서도 스스로가 음악에 대한 열정을 더욱 열렬히 추구하도록 영감을 줄지 모른다. 스탠퍼드대학교 가상인간상호작용연구소(Stanford Virtual Human Interaction Lab)가 2007년 한 연구에서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용어를 만들었다. 그 유명한 ‘프로테우스 효과(Proteus Effect)’다. 이것은 “타인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우리가 자신의 디지털 자기표상(Self-Representation)에 일치하는 방식으로 행동”하게 되는 경향을 일컫는다.


    궁극적으로는, 이것이 바로 이 책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퓨처 노멀’이다. 멀티버스 아이덴티티가 진실하고 진짜라는 믿음이 깊어져 결국에는 가장 진실하고 가장 자신다운 현실의 정체성을 강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퓨처 노멀에서는 자신다워지는 것이 자기계발서 작가들이 설파하는 야심찬 목표를 훨씬 초월할 수도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에서 온전히 자신다워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미래선도자(Instigator): 레디플레이어미

    대표적인 아바타 개발 플랫폼 레디플레이어미(Ready Player Me)에서 가상 아바타를 만들 때 머리 모양이나 눈썹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2011년 어니스트 클라인(Ernest Cline)이 발표한 베스트셀러 SF 소설 ‘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One)’의 이름을 딴 이 플랫폼에서는 기술적인 능력이 없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레디플레이어미 같은 플랫폼 덕분에, 가상 세계로의 기술적인 진입 장벽이 허물어졌다. 이제 더는 가상 세계가 기술에 정통한 사람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레디플레이어미에서는 수천 개의 게임과 앱에서 호환되는 가상 아바타를 쉽게 만들 수 있다. 창업자 팀무 투케(Timmu Toke)가 중독성 있는 이 플랫폼을 만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구나 자신의 아바타를 손쉽게 만들고 메타버스 전반에서 자유롭게 활용하도록 해주기 위해서였다.


    레디플레이어미는 5,000만 달러가 넘는 투자를 유치하고 삼성, 로레알, 아디다스 등을 포함해 수백 개의 브랜드와 파트너십을 체결했으며 가상 아바타 세계에 입문하는 사람들의 이른바 ‘원픽’ 플랫폼으로 급부상 중이다. 가상 아바타를 즐겨왔던 사용자들도 레디플레이어미가 제공하는 여타 플랫폼과의 통합에 거는 기대가 크다. 자신의 디지털 아이덴티티를 탐구할 매력적인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 중 대표적인 다른 하나는 인공지능 기반의 가상 아바타 개발 플랫폼으로 디즈니가 지원하는 인월드AI(Inworld AI)이다. 인월드AI는 약속한다.


    “사람들이 레디플레이어미에서 만드는 아바타 같은 가상 캐릭터에 인공지능으로 생명력을 불어넣겠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떤 아바타를 만들까? 실제 자신과 확연히 다른 아바타를 만드는 사람이 많을까? 캐나다의 앨버타대학교에서 발표한 어떤 연구 결과가 이 물음에 대신 답해준다.


    “대부분의 사람은 아바타를 만들 때 현실의 자신을 약간만 변형할 뿐이다.”


    오해하지 말자. 현실 세계에서도 손가락으로 레이저를 쏘거나 슈퍼맨처럼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닐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위의 연구 결과에서 한 가지를 유추해볼 수 있다. 우리는 가상 아바타에 자신의 진짜 자아를 상당 부분 주입할 가능성이 크다. 즉 우리의 가상 아바타는 우리의 진짜 자아와 아주 많이 닮게 된다. 진짜 자아의 본질을 유지하고 싶은 이 욕구는, 가상 아바타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게 된다. 심지어 이와 비슷한 욕구는 우리가 온라인과 오프라인 ‘두 세계 모두’에서 자신의 성격적 특성을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찾도록 유도할 것이다. 이 두 가지 현상의 결과는 명백하다. 디지털 세계와 현실 세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함으로써 우리의 참된 정체성이 멀티버스 공간에 존재하게 된다.



    어떻게 우리는 생활하고 일하고 소비할까

    보편적인 원격 근무

    테크놀로지가 위험 직군의 일을 로봇이 대신해주는 미래를 약속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군대는 원격 기술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집단 가운데 하나였다. 가령 미국 군대는 지난 십수 년간 뉴멕시코주에 위치한 군사 기지에서 드론을 조종해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분쟁 지역들에서 무장 단체 조직원으로 의심되는 수천 명을 사살했다. 하지만 오늘날 다양한 테크놀로지가 통합되고 주류로 부상함에 따라, 단조롭고 많은 시간이 소요되며 심지어 사람들이 꺼리는 직군에서도 원격 근무가 가능해지고 있다.


    로봇의 주변 상황 인식 능력과 물리적인 작업 수행 능력은 인공지능 덕분에 갈수록 개선되고 있다. 5G 기술은 지연 또는 대기 시간(Latency)을 인간이 지각할 수 있는 수준 아래로 떨어뜨릴 것이다. 이런 대기 시간(Latency)는 입력과 응답 사이의 시간 간격으로 영상 통화와 게임에서 만족도를 갉아먹는 요소이다. 가상 현실과 혼합 현실(Mixed Reality, MR)은 인간이 디지털화된 현실을 사실상 조종할 수 있게 해주는 수준에 더욱 근접하고 있다. 종합적으로 말해, 이러한 테크놀로지는 블루칼라라고 불리는 기술직 근로자가 원격으로 작업하는 세상을 더욱 앞당기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많은 사람에게 원격 근무를 실현시켜 줬다. 하지만 원격 근무에서 배제된 직업군이 여전히 많다. 재택 근무 ‘혁명’은 명백히 화이트칼라로 대변되는 사무직의 전유물이었다. 하루 종일 노트북 앞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가상 업무 환경으로 쉽게 전환할 수 있다. 하지만 전화 또는 와이파이 연결로 업무를 처리할 수 없는 사람은 어떻게 될까? 테크놀로지가 계속 발전하면 도태되는 직업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이미 퇴보한 직군도 다수 있다. 반면에 테크놀로지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 수행 방식과 물리적인 노동 환경을 변화시키는 방향으로 재창조되는 직군도 많다. 작가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개발자는 오래 전부터 원격 근무의 유연성을 만끽한다. 퓨처 노멀에서는 원격 촬영기사부터 원격 트럭 운전기사까지 이제껏 원격 근무의 불모지로 여겨졌던 직군에서도 원격 근무가 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직군으로 확대될 것이다.


    이러한 퓨처 노멀은 어떤 모습일까? 무엇보다 노동 접근성이 더 많은 산업으로 더욱 공평하게 분배된다. 또한 신체적 능력과 교육 수준과는 상관없이 더 많은 노동자가 원격 근무의 혜택을 더 쉽게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미래선도자: 아인라이드

    영국 서리(Surrey)에 있는 유명한 톱기어(Top Gear)의 주행 시험 트랙을 무언가가 질주하고 있었다. 평범한 경주용 자동차가 아니었다. 무소음에 가까운 대형 전기 화물차였다. 운송 산업의 전기화와 자동화를 목표로 설립된 스웨덴의 스타트업 아인라이드(Einride)가 제작한 자율주행 트럭 팟(Pod)의 시제품이었다. 이 트럭은 시험 트랙에서 최대 시속 50마일, 즉 시속 80킬로미터를 주파했고 완충 시에 80~110마일, 128~176킬로미터)을 주행할 수 있었다.


    경제성 있는 장거리 자율주행 트럭은 화물 운송 산업의 오랜 염원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이것은 많은 트럭 운전기사에게 불안감을 안겨 줬다. 이들의 불안감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어쨌건 자율화 기술, 즉 오토노머스 테크놀로지(Autonomous Technology)가 직업에 미치는 위협을 분석하는 거의 모든 언론 기사가 가장 먼저 사라질 거라고 꼽는 ‘지는 직업’ 1순위 목록에 트럭 운전기사가 어김없이 포함된다. 바야흐로 4차 산업 혁명으로 트럭 운전기사는 종말이 기정사실화되는 모양새다. 이는 18세기 후반에 시작된 근대 산업혁명의 최대 피해 직군인 직조공을 떠올리게 한다.


    운송 회사도 경영하는 아인라이드가 흥미로운 구인 광고를 냈다. 원격 트럭 운전기사를 모집한다는 광고였다. 아인라이드는 세계 최초로 공공 도로를 수시로 달리는 자율주행 전기 화물차를 운행하는 회사가 될 터였다. 그런데 아인라이드의 접근법이 경쟁사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여기에는 아인라이드의 창업자 로베르트 팔크(Robert Falck)의 독특한 관점이 작용한다. 여타 운송업체가 인간을 완전히 배제시키는 100퍼센트 무인 트럭을 지향하는 것에 반해, 팔크는 인간 개입을 어느 정도 유지하는 것이 아인라이드의 상업적인 성공을 결정짓는 비결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


    2022년 초 아인라이드는 세계 최초 팟 원격 운영자로 10년 트럭 운전 경력의 티퍼니 히스콧(Tiffany Heathcott)을 채용한다고 발표했다. 여담이지만 히스콧은 지난 10년간 남편과 함께 팀을 이뤄 트럭을 직접 운전했다. 아인라이드의 팟 기술은, 한 명의 운영자가 최대 10대의 반자율 주행 팟 트럭을 원격으로 제어할 수 있게 해준다. 팟 트럭은 대부분 자율 모드로 주행하지만, 장애물을 만나면 인간에게 원격 제어를 요청한다. 아인라이드는 운영자 한 사람이 팟 트럭 10대를 원격 제어할 수 있다면, 트럭 운송 산업 전체의 연료비가 1마일당(1.6킬로미터) 60센트에서 18센트로 70퍼센트 줄어들고, 미국 전체의 운송 비용이 30퍼센트 감소할 수 있다고 내다본다. 그렇다면 트럭 운전기사가 일자리를 잃을 위험에 처했을까? 아인라이드는 미국은 ‘이미’ 트럭 운전 기사가 부족하다고, 이는 트럭 운송 산업의 고질병인 높은 이직률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오히려 팟이 트럭 운전기사 부족 문제에 대한 해법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속내가 담긴 말이다.


    그렇다면 팟의 1호 원격 운영자의 생각은 어떨까? 히스콧은 원격 운영자의 유연한 일정이 트럭 운송업으로 많은 여성을 유인할 거라고 말한다. 히스콧은 예전 트럭 운전기사로서의 삶과 트럭 원격 운영자라는 현재의 삶을 비교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원격 팟 운영자가 되고 나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매일 집으로 퇴근할 수 있다는 거예요. 트럭을 몰 때는 꿈도 못 꿀 일이었죠. 보통은 애들 식구와도 영상통화로 얼굴 보는 것에 만족해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애들도 손주들도 얼굴을 직접 볼 수 있어요. 손주들도 이제 휴대폰 화면이 아니라 눈으로 직접 할머니를 만나죠. 정말 멋져요. 바로 이것이 아인라이드가 내 삶을 가장 크게 변화시키는 부분이에요.”


    위의 모든 실험은 “로봇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는 전통적인 인식과는 상당히 다른 미래를 예상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3D 기피 직군을 포함해 모든 업종에서 원격 근무가 가능하다는 아이디어는 지극히 매력적이다. 더럽고(Dirty) 어렵고(Difficult) 위험한(Dangerous) 일에서 더 확실히 해방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블루칼라 업무를 원격으로 완수할 수 있는 퓨처 노멀이 마냥 장밋빛은 아닐 가능성이 크다. 말 그대로 기존 산업에 혼란을 초래하는 파괴적 혁신일 수 있다. 솔직히 이러한 추세가 미래 노동과 미래 사회에 심대하고 거대한 몇 가지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지리적 여건, 육체 노동을 감당할 수 있는 체력, 오랫동안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불편함, 교통 접근성 등이 더는 특정 직군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을 때, 모든 산업의 본질은 거대한 변화를 피할 수 없다.


    어떻게 우리의 인간성이 살아남게 될까

    도시 숲

    수십억 인구가 기회와 문명의 이기를 찾아 현대 도시들로 몰려들었다. 이미 상업 중심지로 각광 받던 대도시는 당연하고 샌프란시스코, 상하이, 케냐 수도 나이로비 등이 크게 성장했다. 또한 두바이, 싱가포르 같은 신흥 국제 거점 도시와 중국 충칭과 인도 러크나우(Lucknow)부터 탄자니아의 수도 다르에스살람(Dar es Salaam)까지 무명에 가까웠던 여러 도시가 성장의 대열에 합류했다. 이러한 시기에 현대 도시는 동전의 양면 같은 두 얼굴을 가졌다. 성장을 견인하는 거대한 엔진인 동시에, 시민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여러 위험 요소를 점점 더 많이 만들어냈다. 대도시에서 살자면 대기 오염, 협소한 생활 공간, 점증하는 범죄 등을 감내하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오늘날에는 홍수와 화재 같은 극한 기후의 재앙적인 결과까지 대도시 주민을 더욱 힘들게 만든다.


    우상향하는 기온, 심화하는 오염, 밀집 환경이 유발하는 스트레스 등으로 전 세계 도시가 몸살을 앓는다. 이에 대응해 도시들이 꺼내든 카드는 지역 사회에 도시 숲을 조성하는 것이다. 도시 숲은 말 그대로다. 도시국가인 싱가포르가 이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려준다. 싱가포르를 걸어보면 20세기에 우후죽순 세워진 커다란 콘크리트 마천루와는 상당히 달라진, 말뜻 그대로 녹색이 더 많아진 도시 경관을 볼 수 있다. 심지어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을 벗어나기도 전에 싱가포르의 ‘정원 속 도시(City in a Garden)’에 대한 열망을 느낄 수 있다. 싱가포르 창이공항과 연결된 쇼핑센터 주얼창이에어포트(Jewel Changi Airport)의 둥근 지붕은 세계 최대 실내 폭포를 품고 있어 공항 대합실의 냉방에 도움이 된다. 또한 공기 정화 효과가 있는 200종 이상의 동식물이 실내에 서식하고 있다. 2012년 싱가포르는 101헥타르(1.01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 자연공원 가든스바이더베이(Gardens by the Bay)를 개장했다. 이곳에는 나무 모양의 대형 구조물로 공원의 상징인 ‘슈퍼트리(Supertrees)’ 18그루가 25~50미터 높이의 수직 정원을 형성할 뿐 아니라, 플라워돔(Flower Dome)과 클라우드포레스트(Cloud Forest)라고 불리는 초대형 냉각 온실 두 개가 들어서 있다. 도시 중심부에 위치한 20층짜리 아파트 건물 에덴(EDEN)은 ‘식물 샹들리에’가 설치돼 식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면서 각 아파트 세대에 자연 그늘을 드리운다.


    식물로 뒤덮인 녹색 건물과 녹색 도시의 인기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도시 주민의 생활 방식에서 지속적인 변화를 촉발시켰다. 개개인은 자신의 웰빙을 증진시키기 위해 자연과의 연결을 추구하고 기업은 직원들의 사무실 복귀를 독려하기 위해 더욱 풍요로운 경험을 창조하고 싶어 한다. 또한 대기 오염과 기후 변화의 위험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 높아지고 도시도 이러한 인식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퓨처 노멀에서도 에어컨이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데에 기여하겠지만 유일한 수단은 결코 아닐 것이다. 도시에 자연을 들여온다면 어떻게 될까? 도시는 우리가 경제적 필요성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감내하는 곳이 아니라 살기 좋고 우리가 ‘살고 싶은’ 영원한 삶의 터전이 될 것이다.


    미래선도자: 스테파노 보에리

    새로운 많은 트렌드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근본적인 개념이 고대에서 비롯한다는 사실이다. 자연 친화적인 녹색 건물과 녹색 건물의 공식적인 명칭이랄 수 있는 바이오필릭 디자인(Biophilic Design)도 이런 트렌드에 포함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고대 도시 바빌론의 공중정원이 모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디자인에 자연을 포함시키고 자연을 중심에 두는 현대 건축 양식을 시작한 사람은 누구일까?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도시계획을 가르치는 전임 교수이자 건축가인 스테파노 보에리(Stefano Boeri)였다. 보에리가 보스코베르티칼레(Bosco Verticale)를 설계했는데, 수직 숲(Vertical Forest)이라는 뜻의 이 건물이 자연친화적인 일명 숲 빌딩의 시초이다. 고층 아파트 건물 두 동으로 2014년에 완공된 보스코베르티칼레는 건물의 디자인과 구조를 고려해 엄선한 900그루의 나무와 2만 개의 식물이 빼곡하게 심어져 있다. 식물은 실내 온도 조절에 도움이 되고 외부 소음을 최소화하며 아파트 내부로 유입되는 먼지를 감소시킨다. 이러한 수직 숲이 입주자들을 위해 독특하고 아름다운 주거 경험을 창조하는 것이야 당연하다. 이에 더해 주변 환경에도 크게 기여한다. 도시에 녹지 공간을 늘릴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을 제공하고 지역의 생물 다양성을 높이는 까닭이다. 보스코베르티칼레에 식재된 크고 작은 초목을 지상에 심었다면 3만 제곱미터의 땅이 필요했을 터이지만, 두 건물의 대지 면적은 그것의 10분의 1인 3,000제곱미터에 불과하다.


    보에리는 획기적인 보스코베르티칼레 프로젝트를 출범시킨 이래로 엄청나게 바쁘다. 알바니아 수도 티라나(Tirana), 이집트가 건설하는 신 행정수도(New Administrative Capital), 중국 후베이성의 황강 등지에서 유사한 건물을 설계하며 ‘도시 숲’의 전도사로서 맹활약한다.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가장 매력적인 프로젝트 중 하나는 2021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서 준공된 19층짜리 트뤼도버티칼포레스트(Trudo Vertical Forest)다. 각 세대 정원 발코니에 관목과 식물을 합쳐 1만 그루 이상이 식재된 이 건물은 고급 아파트 단지가 아니다. 녹색 솔루션이 소수에게든 허용되고 돈이 많이 들어갈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임대형 공공 복지 주택이다. 이곳에 식재된 식물도 이런 점을 고려해 최소한의 관리 비용으로도 잘 생장할 수 있는 종류로 엄선됐다.


    눈치 챘는지 모르겠지만 도시 숲이라는 개념 자체에 약간의 모순이 있다. 이는 도시의 정체성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된다. 도시란 많은 점에서 인간과 자연과의 분리를 보여주는 궁극의 표상이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는 능력도 자연을 거부하는 능력도 매우 미약하다. 거시적으로는 기후 위기가 이것에 대한 증거다. 개인적인 수준에서는 자연과의 접촉 부족으로 정신적, 신체적 건강 문제가 증가한다는 사실이 자연과의 관계에서 인간의 힘이 얼마나 미미한가를 보여준다. 이렇게 볼 때 퓨처 노멀에서 도시 숲의 역할 하나가 명확해진다. 우리 인간이 자연 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다시 연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물며 무수히 많은 환경적인 혜택은 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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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