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류의 조건》은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른바 일류라고 일컬어지는 이들이 어떻게 성공을 이뤄낼 수 있었는지에 대한 그들의 디테일한 행동과 사례를 저자의 남다른 통찰과 분석을 통해 해답을 제시한다. 이 책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 괴테, 존 매켄로, 스즈키 이치로, 비요크, 혼다 쇼이치로 등 문학,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경영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의 일류를 포함하고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이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은 넓고 포괄적인 범위에서 응용이 가능한 ‘숙달’이며, 숙달에 이르기 위해서는 가장 근본적인 세 가지 힘, 즉 ‘훔치는 힘’, ‘요약하는 힘’, ‘추진하는 힘’을 체화하여 나만의 ‘스타일’을 확립하면 ‘어떠한’ 미지의 영역을 마주하더라도 단연 돋보이는 ‘일류’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실용적인 자기계발서다.
■ 저자 사이토 다카시
1960년 일본 시즈오카에서 태어나 도쿄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했다. 졸업 후 동 대학원인 도쿄 대학 대학원 교육학연구과 박사과정을 거쳐 현재 메이지 대학교 문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1년 출간된 《신체 감각을 되찾다》로 ‘신쵸 학예상’을 수상했고, 《소리 내어 읽고 싶은 일본어》는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마이니치 출판문화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욱하는 아이들》, 《질문력》, 《추진력》, 《코멘트력》, 《연애력》, 《독서력》, 《커뮤니케이션 능력》, 《삼색 볼펜 정보 활용술》, 《일하는 마음에 불을 지피다》, 《분노하는 몸》, 《기회 혁명》 등이 있다.
■ 역자 정현
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인문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국내 기업에서 근무하며 분야를 넓혔다. 말을 모으고 매개하는 작업에 매력을 느껴 번역가의 길에 들어섰고, 바른번역 전문과정을 거쳐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교양으로 읽는 반도체 상식》, 《바른 회사 생활》, 《R선생님의 간식》 등이 있다.
■ 차례
추천의 글
프롤로그
제1장 | 아이들에게 물려줄 ‘세 가지의 힘’
숙달에 이르는 보편적 원리를 ‘기술화’하라
훔치는 힘
한 프로 야구 선수의 아이디어
기술을 훔치기 위한 전제
기술을 ‘훔치는 힘’과 모방의 차이
암묵지와 형식지의 순환
문과와 이과의 대립을 뛰어넘어
기초 능력은 공통분모다
‘중요도’를 의식하라
‘요약하는 힘’의 기본
2 대 8 공식
관심으로 이루어진 자석을 만들어라
제2장 | 스포츠로 두뇌를 단련하라
심오한 스포츠의 세계
축소판을 통해 연습하기
기술화의 요령
하스미 시게히코는 고다르에게 무슨 질문을 던졌는가
리더의 코멘트 능력
최고의 시절을 되찾다
틀과 오류
이견의 견
기술과 상상력
제3장 | ‘동경’을 동경하는 마음
자기만의 스타일로 변형
버릇의 기술화
사카구치 안고의 이야기
스타일은 일관된 변형이다
무나카타 시코의 꿈
스타일의 계보를 의식하는 습관
욕망은 다른 사람의 욕망을 모방한 것
흑막의 정치가, 조제프 푸셰
비욘 보그와 존 매켄로
혼다를 이룩한 창조적 관계
시로야마 사부로의 판단
제4장 | 숙달론의 기본서 《쓰레즈레구사》
나무 타기의 달인
징조를 읽는 힘
에너지의 집중
도의 달인
달인 체험
숙달론의 교과서를 찾는 습관
‘격언화’의 효용
제5장 | 신체 감각을 기술화하라
두뇌를 단련하는 유아 교육
의식의 조각을 늘려라
뇌를 활성화하는 방법
내 머릿속에는 몇 명의 작업자가 깨어 있을까
‘감동’은 의미의 충만함에서 온다
댄서는 ‘무심’하다?
의식의 밀도와 속도의 관계
나무의 촉감을 전하는 기술
데루스 우잘라의 기술로서의 감각
합리적 애니미즘
감성의 폭을 넓혀나가는 용기
제6장 | 무라카미 하루키의 스타일 만들기
스타일은 존재감을 낳는다
스타일의 그릇을 키워라
소설을 쓰는데 왜 달려야 하는가?
집중력과 지속력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몰입으로 ‘들어가는 시스템’을 만들어라
자신만의 필살기를 만들어라
모든 것을 교차한다는 것에 대하여
리듬이 몸에 스미게 하라
동양의 전통, 호흡법
에필로그
저자 후기
한 분야에 있어 통달한 전문가, 즉 ‘일류’가 되기 위해 근본적인 조건 세 가지인 ‘훔치는 힘’, ‘요약하는 힘’, ‘추진하는 힘’을 갖추어야 함을 설파합니다. 어떠한 조건이나 환경에서도 자체로서 빛을 발할 수 있는 돋보이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는 길을 안내합니다.
일류의 조건
아이들에게 물려줄 ‘세 가지의 힘’
숙달에 이르는 보편적 원리를 ‘기술화’하라
어느 시대든 부모는 아이들이 성장하고 발전하기를 바란다. 사회구조의 변동 폭이 비교적 크지 않았던 시대에는 부모 자신이 터득해 온 노하우나 가치관 그대로를 아이들에게 전수하면, 아이들은 이 발자취를 따라 안전하게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대 간의 전수’가 이루어지며 현세대와 다음 세대가 거의 비슷한 방식과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급변하면서 자주적으로 재생산이 이루어지던 시대와는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정보혁명을 핵심으로 한 세계적인 사회구조 변화의 물결 속에서 이전 세대는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물려주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려워졌다. 거품경제가 가져온 사회적 윤리 규범의 붕괴와 불황의 장기화로, 어른들조차 자녀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에 관한 판단에 자신감을 잃었다.
부모 세대로부터 계승 받을 미덕이 없는 사회는 당연히 불안정하다. 비록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에 반기를 들더라도 무언가를 전수하려는 의지 자체가 무너져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 젊은 층이 겪는 고질적인 문제의 대부분은 ‘우리의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물려주어야 하는가?’에 관한 기성세대의 확신과 공통 인식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격변하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아이들에게 전하고 가르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떤 사회, 어떤 환경에서도 거뜬히 살아가는 힘’이다. 단, 여기에서 말하는 ‘살아가는 힘’이란, 원시시대에서나 필요한 생물학적 생명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살아가는 힘’이란, ‘숙달에 이르는 보편적 원리’를 반복적 체험을 통해 ‘기술로 만드는 것’이다. 어떤 사회에나 ‘일’은 존재한다. 경험이 전혀 없는 낯선 영역의 일이라도 숙달에 이르는 비결을 찾아내는 힘이 있다면 용기를 갖고 새로운 영역에 도전장을 던질 수 있다.
훔치는 힘
교육의 본래 의미는 배우는 힘을 기르는 데 있다. 가르침이 있어도 배움이 없으면 교육이라 부를 수 없다. 반대로 가르침이 없어도 배움이 있다면 그야말로 훌륭한 교육이라 말할 수 있다. 교육이라 하면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는 것’이라는 관계적 개념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래서는 ‘훔치는 힘’을 기를 수 없다.
문법과 예의에 맞는 말로 찬찬히 배울 수 없을 때, 혹은 말로 배우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체득하고 싶을 때야말로 ‘기술을 훔쳐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의식이 싹튼다. 기술은 보고 듣기만 해서는 몸에 익힐 수 없기 때문에 ‘훔친다’, ‘그대로 따라 한다’는 적극적인 자세로 달려들어야 비로소 어렴풋하게나마 감을 잡을 수 있다.
현 교육 시스템 아래에서는 ‘훔치는 힘’을 길러야 한다는 의식이 흐릿해지기 쉽다. 학생들은 교사가 주입하는 지식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이기 때문에 정해진 것 외에 새로운 기술을 훔쳐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의지가 생기지 않는다. 이는 교사도 마찬가지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최대한 많은 양의 지식을 전달하는 데에 신경을 집중하기 때문에, 진정한 배움과 삶의 지혜를 전달할 여력이 없을 뿐더러 근본적인 원리를 전수해야 한다는 의식 자체가 점점 희박해진다.
그러나 ‘훔치는 힘’이라는 기초적인 힘을 제대로 체화하면 어떤 사회,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무리 없이 살아낼 수 있으며, 숙달도 빠르다. 이렇게 중요한 사실이 정작 공교육 현장에서는 강조되지 않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한 프로 야구 선수의 아이디어
1970년대 일본의 퍼시픽 리그를 대표하던 한큐 브레이브스(현 오릭스 버팔로스)의 간판 투수인 야마다 히사시가 싱커(Sinker)2라는 기술을 익히기까지의 과정은 ‘훔치는 힘’이 숙달에 필요한 기본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야마다 선수의 시그니처는 아트 스로'라고 불릴 만큼 유려한 언더핸드 투구 폼(Under- hand Throw)3이었으며, 이 기술로 프로 야구 통산 284승이라는 진기록을 남겼다.
언더핸드 스로는 공을 낮게 던지는 투구 폼으로, 타자 앞에서 공의 낙폭이 크다는 장점이 있지만, 공의 스피드가 느린 단점이 있다. 하지만 야마다의 공은 낮게 출발하여 직구로 솟아오르는 속도가 압도적이어서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마다 가뿐하게 삼진으로 잡아냈다. 야마다는 빠른 인하이 피칭(In-high Pitching)으로 타자를 삼진아웃시키는 것이 주특기였다. 이를 지켜본 감독이 코너에서의 컨트롤을 유지하라는 조언을 했지만, 그는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며 속구로 승부를 보았고 보란 듯이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세월 앞에 장사는 없었다. 야마다 선수도 시간이 지날수록 직구만으로는 더 이상 승산이 없음을 느끼고 변화구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당시 한큐 브레이브스팀에는 또 다른 언더핸드 투수인 아다치 고히로가 있었다. 아다치는 야마다와 대조적으로 스피드는 다소 떨어졌지만, 커브와 싱커 기술로 상대를 제압하는 피칭을 구사하는 선수였다.
한창 싱커를 연구하던 야마다는 좀처럼 뜻대로 되지 않자, 용기를 내어 아다치에게 싱커 기술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아다치는 “싱커를 던지게 되면 자네의 주특기인 직구와 스피드를 포기해야 하니, 아직은 싱커를 던질 때가 아니야.”라며 거절했다. 하지만 이미 필사적인 마음이었던 야마다는 포기하지 않았다. 야마다는 아다치가 불펜에서 투구 연습을 할 때마다 뒤에서 지켜보았다.
아다치의 투구 폼을 훔쳐보며 그가 구사하는 기술을 그대로 따라 하기 시작했다. 사실 당시 아다치의 의도는 이러했다.
“야마다가 언젠가는 나를 능가할 선수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그 당시 그의 부탁대로 선뜻 싱커를 가르쳐 주었다면, 나로서는 당장 밥줄이 끊기는 상황이 될 것이므로 바로는 가르쳐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야마다는 역시 연습벌레이자 집념의 사나이였다.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훔쳐서라도 배우겠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포스트 시즌이 시작될 무렵 야마다의 투구 자세와 싱커를 보며 나는 그날이 왔음을 직감했다. 한 팀에 같은 스타일의 투수가 두 명씩이나 있을 이유는 없지 않나.”
그야말로 프로다운 답변이다. 프로의 세계는 친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력과 결과로 평가받는 냉정한 세계다. 눈에 불을 켜고 훔쳐보아야만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그냥 바라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반복 경험하며 부딪혀봐야 비로소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야마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요즘 선수들은 하나하나 친절하게 가르쳐주기를 원한다. 하지만 우리 때에는 나보다 앞선 선수들을 따라 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쉽사리 가르쳐주지 않으니 기웃거리며 훔쳐보고 무작정 따라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면 상대방의 특징이나 버릇까지 모방하게 되어 그 기술이 몸에 익을 무렵에는 이미 내 것이 된다.”
훔쳐서라도 기술을 익히고야 말겠다는 야마다의 의지를 지켜보던 아다치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야마다는 그 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아다치가 제게 싱커를 바로 가르쳐 주었다면, 저는 ‘아, 겨우 이런 거였잖아.’ 하고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가 거절하자 저는 더욱 절실해져 밤낮으로 방법을 고민하며 연습에 몰두했습니다. 이제 어렴풋이 알겠다 싶을 때 마침 아다치가 제게 손을 내밀었고, 저는 그가 하는 말을 바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충고가 저의 투구 폼을 완성해 줬죠.”
이 이야기는 충고의 진정한 가치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기술을 훔치려는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에 달 렸음을 보여준다.
‘기술을 훔치는 힘’은 ‘기술을 훔치려는 의지’가 있어야 강해질 수 있다. 단순한 ‘모방’과 ‘훔쳐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의 차이가 바로 이 부분이다.
기술을 훔치기 위한 전제
무언가를 ‘기술’이라 부른다는 것은 이미 그 행위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능숙하게 하는 상태라는 뜻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무조건 따라 하기만 했을 것이다. 그것은 패션일 수도 있고, 단순한 버릇이나 전체적인 느낌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을 ‘훔칠 수 있으려면’ 몸소 체험하며 시행착오를 수없이 반복해야 한다.
기술을 훔치려면 그저 눈으로 보기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범위를 좁혀 반드시 훔쳐야 할 핵심을 찾아내야 한다. 이 핵심 포인트를 걸러내는 과정이 곧 기술을 훔치기 위한 밑바탕이 된다. 핵심 포인트는 ‘기술’이라는 퍼즐을 완성하기 위한 마지막 한 조각이 되어줄 것이다. 물론 완성해야 할 퍼즐 역시 누가 손에 간단히 쥐여주는 것이 아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듯, 필요한 사람이 직접 찾아 나서야 한다.
‘기술을 훔친다’고 하면 기술이 없는 사람이 숙달된 사람의 기술을 모방하고 따라 하는 상황만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미 숙달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 초보자에게서 특정 기술이나 비법을 훔치는 일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전체적인 기량은 다소 부족한 사람이라도 하나하나의 기술을 따로 떼어놓고 보면, 그중 한 가지 기술면에서는 일류의 실력을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기술을 훔치려는 의지는 전문가일수록 높다. 좀 더 전문적이고 능숙해지기 위한 힌트와 아이디어를 얻으려는 욕구가 강하기 때문이다. 반면, 초보자 중에는 이미 일정 수준 이상으로 기술에 숙달했음에도 그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미 어떤 분야에 통달한 사람의 눈으로는 초보자의 무의식적인 행동에서도 힌트를 찾을 수 있는 법이다. 자신보다 미숙한 사람에게서도 배울 점을 찾아내는 그들의 의식은, 한 집단 내에서 정상의 자리에 오른 뒤에도 성장을 계속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기술을 ‘훔치는 힘’과 모방의 차이
기술을 훔치는 힘은 단순한 모방과 전혀 다르다. 외형적인 모습만 모방할 뿐, 그 속에 숨은 본질을 놓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유명한 선수의 패션이나 특유의 버릇을 모방하는 데만 치중하여, 정작 그 선수의 기술은 흉내조차 내지 못하는 극단적인 사례도 있다. 그만큼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도 표면적인 퍼포먼스를 흉내 내기에만 급급한 것은 모방에 불과할 뿐, 기술을 훔쳐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고 할 수 없다. 기술을 훔쳐내는 힘의 근본은 암묵적으로 이루어지는 작용을 인지하여 자기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밖으로 드러난 ‘생각 또는 의식’을 다시 한 번 자기 몸에 체화시킴으로써,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완전히 기술을 훔칠 수 있는 것이다.
기초 능력은 공통분모다
모든 사람을 문과와 이과의 두 갈래로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는, 굳이 다른 영역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나 학구열을 불태울 필요가 없다는 변명을 뒷받침하는 도구가 된다. 이렇듯 편협한 사고를 유발하는 이분법적 논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 두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한 가지는 ‘훔치는 힘’, ‘추진하는 힘’, ‘요약하는 힘’의 세 가지 힘을 문과 대 이과라는 차이에 얽매임 없이 어느 영역에서나 꼭 필요한 보편적 기초 능력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책을 많이 읽고 요지를 추출하는 기술이야말로 모든 구분을 뛰어넘는 필수 기술이라는 점을 받아들이고, 완전히 몸에 배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우선 세 가지 힘이 문과·이과를 넘어 모든 영역에 적용되는 기초적 능력이라는 주장의 타당성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앞서 언급했듯 이 세 가지 힘은 어떤 일을 할 때 꼭 필요한 공통 능력이라는 관점에서 내가 만든 말로서 어느 교과서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이 ‘세 가지 힘’을 주제로 강연했을 때, 동경대학교 공과대학의 호리에 이치노 교수는 이 세 가지 힘이야말로 이과 계열 연구자들에게 필요한 기초 능력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 세 가지 힘은 이과 계열 학문을 공부하는 사람도 반드시 갖추어야 할 중요한 기초 능력입니다. 공과 대학을 예로 들면 학부나 대학원 시절에는 대부분의 수업이 실험 위주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실험이 성공하려면 따라 하는 힘, 즉 ‘훔치는 힘’이 꼭 필요합니다. 교수나 선배들의 실험 방법과 순서를 잘 관찰하고 거기서 요령을 확실하게 훔쳐야만 제대로 된 실험이 가능하거든요.
일단 기본적인 실험 절차를 익히면 그다음 단계로 자신이 직접 연구 과제를 설정하고 기획하는 경험을 쌓아야 하는데, 이때 필요한 것이 ‘추진하는 힘’입니다. 실험을 중심으로 한 연구 절차를 스스로 기획하고 추진해 나가는 일은 연구자로서 반드시 해내야 하는 작업입니다.
어쩌면 ‘코멘트력’이나 ‘질문력’이 이과 계열 공부에 왜 필요한지 전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국제적 규모의 학회 등에서는 자신의 연구 성과를 발표하는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본인의 연구 성과를 요약하여 잘 전달하는 능력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발표에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적절한 코멘트를 제시하는 능력을 지닌 젊은 연구자들은, 그 이후에도 크게 성장할 확률이 높습니다. 저는 우리 학생들에게 적극적으로 학회나 모임에 참석하여 자기 생각과 연구 실적을 발표하면서, 상대방의 발표 내용에도 정확하게 질문하고 의견을 나누는 경험을 충분히 쌓도록 강조합니다. 그러한 능력이 이후 자신의 연구에 얼마나 큰 보탬이 되는지 언젠가 깨닫게 될 겁니다.”
호리에 교수의 의견을 통해 나는 이 세 가지 힘이 이과 계열 연구원이나 학자를 양성하는 데 중요한 기초 능력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호리에 이치노 교수는 이 세 가지 힘이 기업체와 같은 일반 회사에서도 분명히 중요한 능력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업무를 익히는 단계에서는 상사나 선배 직원의 비법을 ‘훔치는 힘’이 필수적이고, 여러 명의 부하직원을 관리해야 하는 중간 관리직이 되면 조직을 활성화하는 ‘추진하는 힘’이 필요하며, 상급 관리자가 되어서는 자신이 직접 나서서 모든 일을 진행하기보다 부하 직원들의 업무에 적절한 질문과 조언을 할 수 있는 ‘요약 및 코멘트하는 힘’이 절실하다는 의견도 남겼다.
요컨대, 문과 대 이과, 혹은 학교 공부 대 회사 업무와 같이 모든 영역을 이분하는 사고의 결점을 보완해야만 세 가지 힘이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중요도’를 의식하라
이 ‘세 가지 힘’과 꾸준한 독서를 연결하는 것이 바로 ‘요약력’이다. 요약력은 문과와 이과 계열 모두에게 공통으로 필요한 능력이다. 요약이라고 하면 흔히 몇 페이지쯤 되는 글을 200자 내외로 요약하는 과제를 떠올리기 쉽지만,
좀 더 포괄적인 관점으로 요약력을 새롭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영화 감상을 한 후 다른 사람에게 줄거리나 감상평을 전달하는 것도 요약력에 해당한다.
또한 무도나 예술 분야에서 강조하는 ‘형식(틀)’ 역시 요약력의 결정체다. 다양한 움직임 중 가장 기본이 되는 동작을 통해 전체를 집약적으로 나타낸다. 이것이 바로 ‘형식’의 주요 기능이며, 현실 속에 존재하는 다채로운 움직임들을 요약하여 담는 것이라 정의할 수 있다.
이미 문자로 기록한 것을 양적으로 짧게 줄이기만 해서는 요약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영상이나 현실 자체를 요약하는 능력이야말로 한층 고도의 능력이다. 요약력은 그 자체를 꾸준히 의식해야만 향상할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든 정확한 요약 능력을 발휘할 수 있으면 상대방과 요점에서 벗어난 대화를 할 위험이 줄어들 뿐 아니라 오히려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진다.
요컨대, 요약력이야말로 숙달의 기본인 셈이다. 한 가지 기술에 숙달하려면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를 명확히 이해하는 과정이 전제되며, 과제의 요지를 엉뚱하게 이해하면 숙달에 이르는 길은 멀어지고 만다. 먼저, 복수의 과제 중 중요한 과제를 정확히 파악한다. 다양한 과제를 비교 분석하여 우선순위를 매기고, 선정된 과제들을 중요도에 맞게 시간순으로 배치한다. 자신에게 적합한 커리큘럼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변수가 많은 속성의 현실 자체를 요약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그뿐 아니라 자신에게 할당한 과제와 수많은 과제를 비교, 분석하여 우선순위를 매기고 그 자료를 바탕으로 시간적 배열을 해나가야 한다. 이것이 이른바 커리큘럼 ‘구성 능력’이다. 본인에게 적합한 커리큘럼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속성을 가진 현실을 제대로 인지하고 요약하는 힘이 필요하다.
요약의 기본은, 핵심을 남기고 그 외의 주변 요소는 과감히 ‘버리는 것’이다. ‘버린다’고 해서 무작정 쳐내는 것이 아니라, 남겨둔 핵심 속에 어떤 형태로든 녹여, 버려지는 요소에도 가치를 부여하는 것, 이러한 요약이 가장 이상적인 요약이다. 요약력이란 결국 ‘중요도’를 파악하는 것이다. 회의 자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형식적인 보고에 할애하느라 정작 의사결정이 필요한 중요 사항은 제대로 논의조차 못 하는 상황이 적지 않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중요도에 대한 의식이 부족한 탓이다. 형식적인 절차에 치중하다 보면 시간을 효율적으로 분배하지 못하고 에너지를 낭비하게 된다. 중요도가 낮은 문제에 80퍼센트 이상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중요도의 오류를 방지하려면 80퍼센트 이상의 시간과 에너지를 중요한 사항에 쏟을 수 있도록 항상 비축해 두는 것이 좋다.
‘동경’을 동경하는 마음
자기만의 스타일로 변형
‘숙달의 비결’이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앞서 인용한 야마다 히사시 선수의 ‘야마다 표 싱커’라는 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함축한다. 사람의 신체와 관련한 기술의 경우, 각자의 신체적 특성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변형되어 기술로 자리 잡는다. 물론 기술은 어느 정도 객관성이 있는 개념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공통으로 인식할 수 있는 속성을 가진다.
그러나 기술이 한 개인의 특기로 자리 잡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각자의 신체적 특성에 따라 미묘한 변형이 발생 한다. 이 미묘한 변형을 항상 의식하고 연구해 두지 않으면 원하는 기술을 몸에 익히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싱커라는 기술을 연습할 때도 사람마다 손가락 길이도 다를 뿐더러 팔을 휘두르는 속도와 각도도 제각각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완전히 똑같은 싱커를 재현할 수는 없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똑같은 싱커를 던지려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다른 싱커를 익히게 되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처음부터 상대방과 자신의 차이점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연습에 임한다는 점이다. 내 속에서 이 기술이 어떤 변형 작용을 일으키는가?'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능력이 숙달의 관건이다. 결국 이 능력이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는 결정적 힌트이기 때문이다.
기본기나 틀을 익힐 때 자신도 모르는 새 잘못된 방법이 몸에 배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버릇’이라고 한다. 버릇은 본인이 기본을 벗어난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몸에 익기 때문에 수정하기 힘들다. 기본자세나 틀을 수없이 반복하는 이유는 무의식중에 발생하는 오류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고, 그 오류를 수정하는 인식 능력을 키우기 위함이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이것을 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는 인식력을 다져 가는 것이야말로 숙달의 비결이다. 이 인식력은 마치 손쉽게 배율을 바꿀 수 있는 현미경이나 망원경과 같은 것이다. 예를 들어 공을 쥘 때나 던질 때의 팔꿈치와 손목의 관계를 보는 것은 미시적 관점이다. 반면에 특정 기술이 자신의 전체 경기 스타일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는지 분석하는 것은 거시적 관점이다. 미시에서 거시에 이르는 광범위한 영역을 넘나들며 배율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목적하는 기술을 찾아내고 그 기술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대부분 기술이라는 것은 제각각 독립적으로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일정 수준에 도달한 기술적 시스템 속에 녹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기술이 가진 가치와 의미는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다른 기술들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달라진다. 다시 싱커를 예로 든다면 포볼을 내주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헛스윙을 유도하기 위한 싱커인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무엇을 위해 그 기술이 필요한가. 그 기술은 자신이 가진 전체 기술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 이렇듯 과제를 명확히 인식하게 하는 거시적 관점은 기술 숙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명확한 목적의식이 구체적이고 능동적인 고민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만약 어떠한 목적의식도 없이 무조건 타인의 기술을 흉내만 낸다면 ‘수박 겉핥기’에 머물고 만다. 기술을 습득하는 기본 원리는 마치 양복 디자인과 같다. 실제로 옷을 만들 때 각자의 체형에 맞게 디테일을 조정하는 것처럼, 기술을 습득할 때도 기본에 충실하되 상황에 맞게 변형하고 조절하는 과정이 원활할 때 최대한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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