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5월 1주차 |
BOOK SUMMARY | ||
썰의 흑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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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톰 필립스, 존 엘리지 (지은이), 홍한결 (옮긴이) 출판 윌북 출간 2024.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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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 없는 소리에 휘둘리기 십상인 현대인들을 위한 필독서 | ||
도서요약 보기썰의 흑역사 썰, 그 화려한 이야기의 역사 집단적 흑역사의 출발 요즘은 걸핏하면 음모론을 들먹인다. 유명인의 가십을 다룬 트위터 게시글도 음모론이라고 부른다.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역사 해석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음모론이라고 낙인찍는다. 정치인들은 자기에게 누가 무슨 비판이라도 했다 하면 음모론이라고 비난하며, 심각한 표정으로 공적 담론의 수준이 떨어졌다고 개탄하곤 한다. 반드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음모론’이란 말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가? 언뜻 간단해 보이지만 파고들면 금방 복잡해지는 문제다. 일단 음모론이란 단어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이 단어는 두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 음모론은 ‘음모’에 관한 ‘이론’이다. 당연한 소리 아닌가 싶겠지만, 느슨하게 음모론이라고 칭하는 이야기 중에는 두 요소 중 하나가 빠진 경우가 많다. 가장 흔한 건 비밀리에 협력하는 집단이 없는 경우다. 사람들은 유명인의 가십이든 외계인의 존재든, 이전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이면 무엇이든 음모론이라고 부르곤 한다. 하지만 그 사실을 숨기려고 애쓰는 무리가 없다면 음모라고 할 수 없다. 음모를 꾸민 사람이 없는데 음모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언론에서는 그런 점에 구애받지 않고 음모란 말을 쓰기도 한다. 최근에 음모론으로 표현된 사례 중 몇 가지만 들어보자. 먼저 “네스호의 괴물이 실존한다.” 이는 음모론이 아니라 그냥 사변 생물학이다. 다음으로 “배우 앤 해서웨이는 셰익스피어의 부인 앤 해서웨이가 환생한 사람”이라는 설은 음모론이 아니라 그냥 동명이인의 오해다. “안나와 엘사의 남동생이 타잔”이라는 설도 음모론이 아니다. 안나와 엘사는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에 나오는 가공의 캐릭터들이니, 역시 가공의 캐릭터인 타잔과의 관계는 전적으로 상상하기 나름이다. 그런가 하면, 여러 사람이 비밀리에 뭔가를 한다는 조건도 그것만으로는 음모가 되기에 부족하다. 바깥세상에 무언가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가 있어야 한다. 가령 이득을 취한다거나 남의 뒤통수를 친다거나 역사를 바꾼다거나 하는 의도로 말이다. 예컨대 영국 정부의 내각 회의 말미에 항상 은밀한 난교 파티가 벌어진다는 주장이 있다고 하자. 글쎄... 상상만 해도 참 불편하고 끔찍한 얘기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음모가 되지는 않는다. 음모라면 자신들만의 테두리를 넘어 외부에 어떤 영향을 구체적, 의도적으로 끼쳐야 한다. 아니라면 음모라기보다는 회원 전용 비공개 클럽 활동에 가깝다. 음모를 ‘여러 사람이 비밀리에 뭔가를 하는 것’으로 정의할 때 의외로 까다로운 측면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비밀이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비밀리에 무엇을 한다는 말은 단순히 공개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공개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비공개적으로 한다는 뜻인데, 사람은 원래 일상사의 대부분을 비공개적으로 한다. 즉 비밀이란 말에는 자신이 하는 일을 감추기 위해 적극적으로 손을 쓴다는 뜻이 담겨 있다. 무언가가 비밀이었다는 주장은 음모론의 핵심이자, 우리가 음모론에 끌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타블로이드 신문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비밀이라는 말만 갖다 붙이면 세상 무슨 일이든 음산하거나 야릇한 느낌이 난다. 기사 제목을 “은밀한 사랑의 둥지”라고 뽑으면 “동거인과 거주하는 아파트”보다 얼마나 더 자극적인가. 사람은 원래 자기 몫이 아니었던 정보를 무척 좋아하니,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하겠다는 약속만큼 관심을 확실히 끄는 방법도 없다. 하지만 당신이 이전까지 몰랐던 정보였다고 해서 꼭 누군가 적극적으로 그 정보를 감추려 했다고는 할 수 없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불거진 여러 백신 음모론에서는 저마다 비밀 정보를 입수했다고 했지만, 실상은 이미 몇 달 전에 관련 기관에서 일반인들에게 공개한 정보였다. 더군다나 공개, 비공개, 비밀을 가르는 경계는 모호해서 선을 어디에 그어야 하는지를 놓고 의견이 나뉘기 일쑤다. 우리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는 일들은 사실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애매한 공간에서 벌어질 때가 많다. 악행은 안 보이는 곳에서 벌어지기도 한다. 그건 맞다. 그런데 일상사의 대부분도 안 보이는 곳에서 벌어진다. 우리는 둘을 잘 구분하지 못하다 보니 모든 것을 음모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인간은 왜 음모론에 사족을 못 쓸까 우리를 토끼굴로 이끄는 함정 온갖 음모론자들이 음모론을 믿는 이유를 한 번에 설명해주는 대통일 이론 같은 것은 없다. 인간의 뇌는 참으로 복잡하고, 인간의 심리적 편향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토끼굴에 빠져서 좀처럼 다시 나오려고 하지 않는 이유를 몇 가지 더 살펴볼 필요는 있겠다. - 인지부조화 인지부조화란 자아정체감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거나 세심하게 구축된 신념체계와 모순되는 정보를 접했을 때 느끼는 심리적 불편감을 가리킨다. 베이컨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다가 어릴 적 친구 집에서 데리고 놀았던 애완용 미니 돼지 생각이 났을 때의 기분이나, 좋아하는 축구팀이 정말 세계 최강인지 실제 성적에 비추어 따져볼 때의 기분을 아는지? 바로 그런 불편한 기분이다. 우리 뇌는 인지부조화에 대처하는 요령이 몇 가지 있다. 하나는 확증 편향으로, 껄끄러운 정보는 무시하고 원하는 서사에 맞는 정보만 선별적으로 취하려는 경향이다. 이를테면 “사실 우리 팀이 최근에 불운이 겹치긴 했지!” 하는 식이다. 또 하나는 자기합리화 편향으로, 논리 정연한 서사를 구축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잘한 일이고 거의 최선의 행동을 했다고 스스로 설득하는 재주다. “그 돼지와 이 돼지는 종이 달라. 그리고 큰 돼지는 사람을 잡아먹을 수도 있다고. 잡아먹힐 바엔 잡아먹는 게 낫지!” 하는 식이다. 이 두 가지 편향은 심리적 방어기제로써 유용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신념체계에 어긋나는 정보를 접할 때마다 신념체계를 싹 다시 구축해야 한다면 얼마나 일이 많아지겠는가. 이러한 수단 덕분에 우리는 기존 생각에 어긋나는 정보를 축소하고 무시하는 데도 선수다. - 알고 싶은 욕구 우리는 불완전한 서사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 음모론에 눈을 돌리기도 한다. 사회학자 타모츠 시부타니에 따르면 루머는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뉴스로, 정보에 대한 대중의 수요가 정규 채널을 통한 공급을 넘어설 때 생겨나기 쉽다. 음모론도 똑같은 현상을 보일 때가 많은데, 루머가 조금 더 나아가면 음모론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은 아니다. 따라서 뉴스감이 되는 극적인 사건은 온갖 음모론을 끌어들이는 자석 구실을 하기 쉽다. 사람들은 관련 사건 정보를 갈구하지만 검증된 정보는 턱없이 부족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미제 살인 사건, 비행기 추락 사고, 신종 전염병 확산 등이 그런 예다. 대중은 사건의 전모를 갈구하지만, 완전한 스토리는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야 나오거나 어쩌면 영원히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비유하자면, 추리소설을 읽는데 마지막 다섯 페이지가 뜯겨져서 없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뇌는 범인의 정체를 마구 추측하지 않을 수 없다. -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 대부분의 사람은 큰 맥락에서 봤을 때 중요한 인물이 아니다. 특별한 인물도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든 그 점을 만회하기 위해 이런저런 행동에 몰두하며 산다. 종교를 믿기도 하고, 정치 운동에 참여하기도 하고, 무작정 연애 행각을 벌이기도 하고, 가수/스포츠팀/TV 프로그램의 열성 팬이 되기도 한다. ‘나’라는 사람도 나름대로 중요하다고 외치기 위해서다. 그런데 당신이 세상의 비밀을 아는 몇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해보자. 지구의 실제 모양, 외계인의 존재, 미국 정부의 대규모 마인드컨트롤 실험 등 감춰진 진실을 당신만이 알고 있다. 순식간에 당신은 특별한 사람이 된다. 두말할 것 없이 무척 솔깃한 이야기다. 평소에 누릴 수 없는 지위를 만끽할 기회니까. 더 나아가 당신이 정부 최고위층의 비리에 맞서 싸우는 시민군의 일원이라면, 당신은 그저 진실을 쫓는 사람이 아니다. 영웅이다. 썰은 무엇을 먹고 자라는가 일루미나티: 세계적 음모론의 탄생 1776년 5월, 바이에른의 잉골슈타트라는 도시에서 아담 바이스하우프트라는 한 대학 교수가 뜻이 맞는 제자 몇 명을 모아 학술 단체를 결성했다. 교수는 종교와 인간과 사회에 대해 남다른 사상을 품고 있었다. 지방 도시의 대학교수가 원대한 뜻을 품어온 역사는 길었다. 바이스하우프트도 제자들을 전문직 종사자로 교육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제자들이 앞으로 세상에 나가 저마다 권세를 누리는 위치에 오른 후에도 자신과 배움의 전당에서 토론하며 연마한 신념을 간직하게 하고 싶었다. 그렇다. 그 말 많은 일루미나티다. 인간사에 몰래 간섭하는 모든 집단을 가리키는 대명사이자 200년 넘는 세월 동안 각종 음모를 배후에서 조종한 사악한 무리의 상징이 된 이름이다. 이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망상 속의 일루미나티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음모론 중 하나일 뿐 아니라, 오늘날 대단히 다양한 음모론을 직접 파생시킨 원천이기도 하다. 그 파생 이론들 가운데는 일루미나티라는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 것도 많다. 바이스하우프트와 위험한 사상 바이스하우프트가 주창한 그 ‘위험한’ 사상은 무엇이었을까? 워낙 이단적이고 전복적이어서 국가 권력의 탄압을 받았던 그 사상의 내용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듣자. 오늘날 한 학자는 그 사상을 이렇게 요약했다. “자유사상, 공화주의, 정교분리, 자유주의, 성 평등.” 놀랍지 않은가? 라틴어로 ‘밝아진 자들, 계몽된 자들’을 뜻하는 ‘일루미나티’라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단체는 계몽주의의 산물이었다. 그들의 사상은 이미 100여 년간 유럽 사상을 형성해왔던 흐름과 궤를 같이했다. 바이스하우프트는 특히 장자크 루소의 철학에 심취하여, 근대 국가는 그 특성상 부패와 억압을 유발하므로 인간의 자연적 행복을 가로막는다는 견해에 공감했다. 그래서 국가와 교회의 권위적, 절대적 권력에 반대했고 국가와 교회가 없는 미래를 꿈꿨다. 자유와 평등의 개념을 고민했고, 인간 사회가 더 나아질 길은 미신이나 교리가 아니라 이성의 힘에 있다고 믿었다. 이 같은 신조는 당대 사람들이 보기에 급진적이었을지 몰라도, 독자적인 것은 결코 아니었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좋은 이야기이긴 한데 좀 따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쉽게 말해 존 레넌의 ‘이매진’ 가사 내용 아닌가. 그런데 바이스하우프트가 품은 사상의 특징이 있었으니 자신이 그리는 인류의 이상향을 실현하는 방법이었다. 바로 비밀 결사를 조직해 사상 추종자들을 사회의 유력한 위치에 심는다는 계획이었다. 이 결사단 내에는 여러 개의 등급이 있어서, 각 단원은 ‘초심자’에서 시작해 ‘계몽 미네르발’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단원들은 철저히 비밀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암호명으로 활동했다. 암호명은 보통 고전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바이스하우프트는 ‘스파르타쿠스’였고, 초창기 단원 중에는 카이사르와 맞서며 공화정을 수호했던 로마 정치가 ‘카토’의 이름을 딴 사람도 있었다. 결사단의 수장인 바이스하우프트가 지시를 내리면 계통을 따라 지시가 하달되는 구조였다. 바이스하우프트는 명령에 권위를 더하기 위해 자신보다 등급이 높은 ‘상급자’라고 하는, 철저히 허구적인 신비의 존재가 있음을 암시하곤 했다. 거대 음모론의 시작 고작 10년 동안만 활동했으며 활동 중에도 독일어권 내에서조차 영향력이 제한적이었고 그 외 지역에서는 사실상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했던 작은 단체가, 어떻게 전설 속의 일루미나티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 짧은 답은, 1789년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구체제의 전복, 왕족과 귀족들의 처형에 이어 정파의 이합집산에 따른 유혈 폭력이 갈수록 격해지면서 유럽 전역을 뒤흔들었다. 각국의 지배층은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 워낙 크고 극적인 사건이었기에 통상적인 설명으로는 부족해 보였다. 그래서 모든 것을 사회체제의 근본적인 지속 불가능성 탓이 아니라 어떤 ‘사악한 적’의 탓으로 돌리는 설명이 등장했다. 기존 체제를 옹호하고 유지하려는 사람들은 이에 귀가 솔깃했다. 그러나 일루미나티 음모론이 시작된 곳은 프랑스가 아니었다. 늘 그렇듯이 세계적 현상의 출발은 철저히 국지적이었다. 일루미나티가 계몽주의의 산물이었다면, 일루미나티 음모론은 반계몽주의라는 신흥 세력에서 비롯됐다. 반계몽주의는 변화를 반대하는 이들의 느슨한 연합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구성원은 국왕의 절대 권력을 옹호한 왕당파, 하느님 말씀이 아닌 합리주의 원칙에 기초한 도덕률에 경악한 종교인, 평등 담론이 껄끄러웠던 지주 등이었다. 물론 이들은 스스로 반계몽주의자라고 칭하지는 않았다. 누구나 자신의 견해가 진정한 계몽주의라고 주장했다. 독일어권에서 일루미나티 스캔들은 이러한 반계몽주의자들이 결집하는 구심점을 제공했다. 그에 따라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부터도 음모론이 솔솔 피어났다. 한 예로, 에른스트 폰 괴흐하우젠이라는 사람은 다소 황당한 이론을 내세웠다. 그는 ‘세계주의 공화국의 폭로(Exposure of the Cosmopolitan Republic, 1786년)’라는 저서에서 ‘세계주의-예수회 음모’라는 것이 있다고 주장했는데, 내용인즉슨 ‘세계주의자’라고 하는 소수 지식인 집단이 비밀리에 활동하며 역사 속에서 여러 사회를 조종해왔다는 것이다. 일루미나티는 그 거대한 음모의 한 수단이고, 가톨릭교회가 배후에서 음모를 주도하고 있다고 했다. 괴흐하우젠은 물론 개신교도였다. 가톨릭과 세속적 계몽주의가 한통속이라는 이론이었으니, 그야말로 기이하기 짝이 없었다. 그의 주장은 대체로 비웃음을 샀다. 흥미로운 점이라면 이후의 음모론에서 많이 반복되는 테마를 일찍이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첫째, 자기가 싫어하는 세력들은 다 한패라고 간주하는 경향이다. 서로가 지독히 혐오하는 세력이라 해도 상관없다. 둘째, 그로 인해 발생하는 커다란 논리 구멍을 메우기 위해 쓰는 방법이다. 가톨릭교회가 도대체 왜 계몽주의를 퍼뜨린다는 것인가? 괴흐하우젠의 대답은 간단했다. 혼란과 무법 상태를 조성함으로써 사람들이 질서를 갈구하며 교회에 다시 의지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라는 것. 이처럼 어떤 음모의 주목표가 혼돈을 유발하여 권력을 장악하거나 강화하는 데 있다는 발상은 거듭하여 나타나는 패턴으로, 이는 ‘시온 장로 의정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사실 이 패턴은 음모론이 말이 안 될 때 아주 유용한 탈출구라고 할 수 있다. 혼란 조성이 목표라면 그 어떤 현상도 다 설명될 수 있으니까. 썰, 세상을 움직이기 시작하다 괴담의 확산: 바이러스를 둘러싼 설들 과거 무서운 신종 질병이 유행할 때 항상 그랬듯, 이번 팬데믹이 음모론을 촉발한 것 자체는 놀랄 일이 아니었다. 음모론 이외에 온갖 터무니없는 설들이 입에 오르내린 것도 새삼스럽지 않았다. 음모론은 인간이 세상을 오해하는 갖가지 창의적인 방법의 하나일 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퍼지면서 수많은 거짓 정보도 함께 퍼져나갔다. 허위 정보는 바이러스처럼 국경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나라에서 나라로 쉽게 옮겨갔다. 5G 원인설과 백신 속 마이크로 칩 그런데 코로나19 음모론 중 굵직한 것들은 대체로 하루아침에 생겨난 게 아니었다. 팬데믹으로 인해 새로 탄생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전부터 있었던 음모론들이고 그중엔 역사가 오래된 것도 많다. 여기에 팬데믹 개념이 합쳐지면서 갑자기 광범위하게 더욱 열렬한 신봉자들을 포섭하게 된 것이다. 그뿐 아니라, 단 한 가지 뉴스가 세계인의 공통 화두가 되면서 이전에는 서로 단절되어 있었던 음모론 집단 사이에 교류의 물꼬가 터졌다. 한 집단의 음모론을 다른 집단에서도 인정해주기 시작했고, 신봉자들은 새로 알게 된 다른 음모론도 자신의 서사에 반영해 넣었다. 가령 바이러스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틈새 이론들조차 기본적인 세계관에 부합하거나 논리의 구멍을 메워줄 수 있다면 바로 채택되어 더 큰 이론 속에 통합되었다. 팬데믹 속에서 음모론들은 마치 변신 합체 로봇처럼 결합해 거대한 하나의 모습으로 우뚝 섰다. 바야흐로 ‘초음모론’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5G 음모론을 예로 들어보자. 비교적 최근에 나온 5G 이동통신 기술이 팬데믹의 원인이라는 공포가 세계 곳곳에 퍼졌다. 이 음모론은 특히 영국에서 기승을 부리며 실제로 여러 사건을 일으켰다. 이동통신 기지국 등 통신 시설에 방화가 일어났고, 외부에서 작업하는 통신 기술자들에게 욕설과 협박이 쏟아졌다. 당시는 휴대전화와 인터넷에 의존한 일용품 수요가 그 어느 때보다 컸던 시기였다는 점이 씁쓸한 아이러니다. 또 한 가지 아이러니는, 공격의 표적이 된 기지국과 기술자들의 상당수는 5G와 무관했다는 것이다. 5G와 코로나19를 연결 짓는 이 음모론은 팬데믹 초기에 출현했다. 의혹이 소셜미디어상에 처음 등장한 것은 2020년 1월이다. 중국의 신종 바이러스 확산이 세계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기 시작했지만, 아직 공식 팬데믹 선언이 있기 전이었다. 처음 제기된 의혹은 그저 추측에 불과했다. 현재는 삭제된 한 페이스북 게시글은 이런 내용이었다. “우한은 5G가 처음 도입된 곳이다. (...) 5G가 면역체계를 망가뜨려 감기의 독성을 높이는 게 아닐까?” 음모론은 이처럼 우연의 일치에서 비롯될 때가 많다. 정확히 말하면 우연이 단순히 우연이 아니리라는 의심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연의 일치’라는 것은 흐지부지 사라져버리곤 하는데, 이 경우도 그렇다. 먼저 우한이 중국에서 5G가 가장 먼저 도입된 도시들 중 하나였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말 그대로 하나였을 뿐이다. 중국의 5G 서비스는 베이징, 상하이, 선전, 난징, 청두, 차오저우, 톈진 등 50개 도시에서 동시에 개통됐다. 게다가 중국은 세계에서 5G를 처음 상용화한 나라도 아니다. 5G는 이미 미국, 영국, 한국 등 여러 나라에서 운영 중이었다. 코로나19가 출현했을 무렵 우한은 5G가 보급된 세계 수백 도시 중 하나였을 뿐이다. 알고 보면 딱히 수상한 우연이랄 게 없지만, 그래도 5G 음모론에 심취한 이들은 계속 생겨났다. 그렇다면 코로나와 5G를 연결 짓는 음모론은 왜 그리 생명력이 길었을까? 한 가지 이유는 이 음모론이 하나가 아니라 몇 가지 상충하는 음모론이 합쳐진 것이라는 데 있다. 2020년 3~4월쯤에 5G 반대 페이스북 그룹 중 아무 곳에나 들어가보면 모든 집단이 비교적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바이러스는 실존하며 5G가 면역체계를 억제하거나 바이러스 자체를 강력하게 만듦으로써 경미한 병이 심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한쪽에서는 바이러스는 존재하지 않고 5G가 병을 일으키는 직접적 원인이며, 모든 증상은 전자기파에 노출된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또 한쪽에서는 바이러스가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아픈 사람도 없다고 주장했다. 병원은 텅텅 비어 있고, 팬데믹 자체가 거대한 사기극이며 정부가 봉쇄령을 내리고 그 틈에 몰래 5G를 설치하기 위한 계략이라는 것이다. 주장 간에 내용이 상충한다는 점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들 집단은 5G가 여하튼 해로운 기술이며 팬데믹과 모종의 관계가 있으리라는 공통의 믿음으로 뭉쳐 있었다. 논리는 바뀔 수 있지만 결론은 정해져 있었다. * * *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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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사이토 다카시 (지은이), 정현 (옮긴이) 출판 필름(Feelm) 출간 2024.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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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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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S & BRIEFINGS | ||
암호 화폐의 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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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현대의 그 어떤 비즈니스 현상보다 경제학자, 투자자, 정부를 더 양극화한 것은 암호 화폐일 것이다. 뜨거운 논쟁의 대상인 이 암호 화폐의... | ||
[RH] 로봇이 정말 우리 일자리를 훔치고 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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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로봇이 인간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노동 시장을 크게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고 쉽게 가정한다.이 가정은 옳은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