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현대에 들어 시간 관리는 더욱 각광받고 있다. ‘시간이 곧 금’이라는 격언은 진리로 자리잡았고, ‘워라밸’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그런데 이 모든 시간 관리의 원전은 무엇일까? 바로 세네카의 글이다. 그는 무려 이천 년 전부터 시간의 중요성을 설파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이 짧은 게 아니라, 우리가 짧게 만들고 낭비한 것입니다.” 그는 주어진 짧은 생을 잘 살아갈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하며 글을 썼다. 그가 남긴 글들은 몽테뉴, 단테, 흄 등 수많은 고전 사상가들을 넘어 알랭 드 보통이나 고명환 같은 현대의 지성인들에게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간이란 존재의 본질은 이천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세네카는 그 본질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파악한 철학자였다. 세네카의 글에서 우리는 혼란스러운 삶을 올바로 인도해줄 삶의 자세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 저자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
후기 스토아철학 대표 사상가. 고대 로마 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정치인이며, 시인이자 비극작가이다. 기원전 4년 에스파냐에서 태어났으며 로마에서 자라면서 수사학과 변론술, 철학을 공부했는데 특히 스토아 철학자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젊어서는 천식과 결핵을 앓았고, 우울증으로 자살 시도도 여러 차례 했다. 늦깎이로 정계에 입문하지만 8년간 코르시카 섬에서 유배 생활을 하게 된다. 다시 로마로 복귀할 때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에게 맡겨진 직책은 어린 네로의 가정교사라는 숙명적인 자리였다. 결국 세네카는 5년 동안 네로의 가정교사로 일하고, 네로가 황제가 된 후에는 10년 동안 보좌역을 맡게 된다.
황제가 된 네로는 처음에는 선정을 베풀었으나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후로 폭정이 극에 달한다. 이에 절망을 느낀 세네카는 관직에서 물러나 학문과 집필 활동에 몰두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황제 암살 계획에 연루되었다는 의심을 받게 되면서 네로로부터 즉각 자결하라는 명을 받는다. 결국 세네카는 자신의 제자였던 황제의 명을 받들어 스스로 정맥을 끊고 독약을 마시며 생을 마감한다.
공포와 광기가 가득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부침이 많은 삶을 살아온 경험이 세네카의 철학적 근간을 만들었다. 그는 후기 스토아철학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12편의 에세이와 9편의 비극작품을 남겼다. 그가 남긴 저서들은 널리 애독되었는데, ‘제 2의 세네카’로 불리는 몽테뉴와 단테, 루소, 흄,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 알랭 드보통 등 세계의 지성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저서들은 이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에게 삶의 나침반이 되어주고 있다.
■ 역자 김한슬기
성균관대학교 글로벌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바른번역에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나폴레온 힐의 인생 수업』, 『삶의 마지막까지, 눈이 부시게』, 『조이 오브 워크』, 『후츠파CHUTZPAH』, 『코리안 오디세이』 등이 있다.
■ 차례
1장. 인생의 짧음에 관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
진짜 문제는 인생을 허비한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일부만을 진정으로 살고 있다”
누구도 오롯이 스스로의 주인이 되지 않습니다
자신조차 못한 일을 타인에게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아껴야 할 것을 낭비하고 있는 꼴
온전히 스스로를 위해 보낸 시간은 얼마나 됩니까?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흘려보내는 시간
인생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착각
행운은 스스로를 이기지 못해 무너져 내리기도 합니다
자신만을 위해 산다는 헛되고도 달콤한 희망
위대한 사내의 소원은 단지 평화로운 나날을 즐기는 것
자랑하던 것이 저주가 될 때
한시도 쉬지 못했다는 불평
불평불만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천년이 주어진대도
술을 마시느라 숨 돌릴 틈조차 없이 바쁜 사람들
제대로 사는 법, 제대로 죽는 법
시간을 내어줄 정도로 귀한 것은 없습니다
의미 없이 빼앗긴 시간들
현재에 충실한 사람은 빼앗길 것이 없습니다
오래 살았어도 제대로 살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이미 가지고도
앞으로 남은 시간을 헤아릴 수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인생의 일부를 바친다 해도
인생은 돌아가지도, 멈추지도 않고 흘러갑니다
미래를 위해 오늘을 버리지 마세요
“가장 빛나는 날은 늘 가장 먼저 달아난다”
과거를 떠올리며 불편한 마음이 든다면
마음의 갈라진 틈새로 흘러내리는 시간
현재는 잠시도 멈추지 않고 흐르는 물살과 같습니다
죽음에 끌려가는 짧은 인생
아무리 짧은 인생이 주어져도 모자라지 않으니
게으름을 피우느라 바쁘게 사는 사람들
쾌락을 탐하느라 바쁘게 사는 사람들
진짜 여유를 즐기는 시간은 철학하는 시간뿐입니다
철학자들에게 받는 환대
위대한 철학자는 잘 죽는 법을 가르칩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사라지거나 줄어들지 않는 것
밤을 기다리며 낮을 허비하고, 아침을 두려워하며 밤을 흘려보냅니다
즐거운 순간에도 불안을 떨치지 못하는 이유
우연히 주어진 행운은 불안정합니다
인생은 끊임없이 새로운 일거리를 줍니다
인생의 창고를 돌아보는 시간
마음의 눈을 들어 철학을 탐구하세요
타인의 기준에 맞추느라 분주한 사람만큼 비참한 사람은 없습니다
수치스러운 죽음
숨 거둘 때까지 일을 놓지 못한다면
우리 인생은 계속해서 흐르고 있습니다
2장. 행복한 삶에 관하여
행복으로 가는 방향을 먼저 정하세요
많은 사람이 가는 길을 멀리하세요
자신이 갈 길은 스스로 정하세요
자신과 대화를 나누세요
당신을 부러워하는 사람을 경계하세요
간절히 원하는 것은 당신 옆에 있습니다
자연과 균형을 이루는 삶이 행복한 삶입니다
선은 여러 형태로 표현되지만 결국 같습니다
애쓰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우연히 주어진 행운을 경계하세요
어리석은 자의 이성은 자신에게 해를 끼칩니다
쾌락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합니다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쾌락과 미덕은 다릅니다
최고의 선은 변하지 않습니다
즐거움의 노예가 아닌 삶의 주인이 되십시오
열쇠는 나의 내면에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할 때 주저하는 이유는
쾌락은 목적이 아니라 부산물입니다
무엇을 얻으려고 미덕을 쌓습니까?
행복은 쾌락이 아닌 절제에서 비롯됩니다
나약한 적에게 굴복당한다면
즐거움이 선사하는 광기
틈틈이 시답잖은 농담을 던지듯
나태함에 명예로운 이름이 주어지면
자연으로는 사치를 부릴 수 없습니다
악행을 감춰줄 선한 후원자
이성보다 좋은 길잡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파도에 휩쓸리는 바닷사람과 같이
쾌락을 누리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착각
최고의 선에 악한 것을 섞지 마십시오
억압당한 자유는 우연의 노예가 됩니다
모든 시련은 자연 법칙에 따라 발생했음을
자신을 따를 수 있는데 왜 억지로 끌려다닙니까?
미덕이 우리에게 베푸는 대가
삶에 묶인 매듭을 풀기 위한 행운
왜 당신은 입으로만 떠들고 있습니까?
저는 최악을 면하려 애쓰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위대한 인물들도 비난을 받았습니다
“나는 내 삶을 살았다”
악인은 스스로를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말한 것을 전부 행동으로 옮기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자연은 이미 나에게 모든 것을 주었습니다
비록 실패하더라도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병든 눈이 햇빛을 견디지 못하듯
굳이 부를 멀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부유한 현자가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부는 중요한 가치를 지닙니다
부를 대하는 태도
가난에서 지혜가 나오지는 않습니다
떳떳하게 부를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
현자는 부를 떠벌리지도, 숨기지도 않습니다
무슨 핑계를 대고 부를 거절하겠습니까?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많아서는 안 됩니다
베푼 선행은 필요할 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현자는 무분별하게 퍼주지 않습니다
공부한다고 완벽한 지혜를 얻은 것은 아닙니다
선이 아니더라도 부는 유용하고 좋은 겁니다
만약 제게 부가 주어진다면
기왕이면 포로보다는 정복자가 되는 편이 낫습니다
좋은 것,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을 선택하겠습니다
위험이 언제든 찾아올 수 있음을 아는 것
어떤 공격도 불쌍한 어린아이의 울음소리처럼 들릴 뿐
비방하는 자는 나에게 고통을 줄 수 없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말
집에 초상이 난 줄도 모른 채 서커스를 구경하는 사람
3장. 마음의 평온에 관하여
자신을 의심하지 마세요
흔들림 없이 잔잔한 마음, 에우티미아
밝은 빛 아래 나의 결점을 드러내세요
여유를 억지로 견디는 나날들
마음은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인간은 스스로에게서 달아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자신의 결점입니다
스스로 할 일을 찾으면 권태롭지 않습니다
가치 있는 사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발자국이 남습니다
무기를 손에서 놓기 전에 협상에 나서야 합니다
세상에는 열려 있는 곳이 더 많습니다
양쪽 팔이 잘려 무기를 들 수 없다면 함성을 질러 아군의 힘을 북돋아 주면 됩니다
몸을 숨겨서는 스스로를 지킬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을 정확히 평가해야 합니다
자신의 성향과 능력에 맞는 일을 택하십시오
사람을 고를 때는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진정한 친구는 얼굴만 봐도 즐겁습니다
병든 사람과 함께하면 병이 퍼지기 마련입니다
매사 불평불만을 일삼는 사람은 피해야 합니다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주인 없이 살 수 있는 노예, 노예 없이 살지 못하는 주인
검소함이 부를 가져올 겁니다
절약은 운명이 아닌 스스로에게서 부를 구하는 것
커다란 돛을 펼치고 항해하는 사람은 폭풍을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책을 사서는 안 됩니다
불행을 받아들이면 평온해집니다
모든 인간은 무언가에 매여 살아갑니다
높은 곳에는 절벽이 있기 마련입니다
운명이 우리를 멈추기 전에 스스로 멈춰서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빌려온 겁니다
빌려 쓴 모든 것을 흔쾌히 돌려드리겠습니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면 살 겁니다
죽음은 예정된 일입니다
누군가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많이 가진 사람도 운명은 거스를 수 없습니다
중요하지 않은 일에는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바쁘게 무작정 떠도는 습관
가장 만나기 어려운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현자에게는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믿고, 좋아하고, 존중하십시오
죽음 앞에서도 당당하고 초연했던 인물들
한탄하기보다는 웃어넘기세요
타인에게 보이기 위해 슬퍼하지 마세요
위대한 인물은 죽음을 통해 불멸이 됩니다
스스로를 숨기지 마세요
홀로 되는 시간과 함께 있는 시간을 적절히 섞으세요
충분한 휴식은 마음을 강하고 날카롭게 만듭니다
축제일을 만든 이유
가끔씩 취하도록 술을 마셔도 괜찮습니다
신이 나야만 위한 업적을 남길 수 있습니다
마음을 꾸준히 돌보십시오
몽테뉴, 단테, 소로, 알랭 드 보통을 매료시킨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가 남긴 열두 편의 에세이 중 세 편을 엮어, 짧은 인생을 행복하고 평온하게 살아낼 지혜를 담았습니다.
그럼에도 인생은 흐른다
인생의 짧음에 관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
사람들은 인간의 수명에 관해서 짓궂은 자연의 섭리라며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애초에 타고난 수명이 얼마 안 되는데다가, 주어진 그 짧은 시간조차 순식간에 흘러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남은 인생을 준비만 하다가 어느새 삶의 막바지에 접어들고 말죠.
이렇게 스쳐 지나가는 삶을 아쉬워하는 이는 평범한 사람들만이 아닙니다. 위인조차 인생을 찰나처럼 느끼며 그 안타까움을 노래했습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의술가인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을 남겼지요.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현자라는 칭호에 걸맞지 않게 자연의 섭리에 불만을 표시한 적이 있습니다.
‘자연은 어떤 짐승에게 인간의 다섯 배에서 열 배에 달하는 긴 수명을 선사했지만, 대단한 업적을 세우는 인간에게는 훨씬 짧은 시간만을 허락했다.’
진짜 문제는 인생을 허비한다는 데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수명이 짧은 것이 아니라 인생의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한다는 데 있습니다. 인생은 충분히 깁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한다면 위대한 업적을 이루고도 남을 겁니다. 하지만 대부분 사치를 즐기고 무관심하게 살면서 선하지 않은 목적을 추구하는 데 시간을 낭비합니다. 그러느라 삶은 미처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에 쏜살같이 흘러가 버리죠. 그러니 인간에게 주어진 수명이 짧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생을 짧게 만들고,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시간을 함부로 쓰는 겁니다.
엄청난 재산도 주인을 잘못 만나면 금세 바닥납니다. 반면에 몇 푼 안 되는 돈이라도 주인을 잘 만나면 알뜰살뜰 잘 쓰이듯, 타고난 수명 또한 적절히 활용한다면 결코 부족하지 않을 겁니다.
아껴야 할 것을 낭비하고 있는 꼴
각 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이 한자리에 모여 ‘인간은 왜 시간과 돈을 이렇게 다루는가?’를 두고 몇 날 며칠을 고민한다고 해봅시다. 아마 그들도 인간의 어두운 면에 대한 비밀은 풀 수 없을 겁니다.
인간은 자기 재산을 넘보는 사람을 가만히 두고보지 못합니다. 누군가 자기 땅을 조금이라도 넘어오려고 하면 주저하지 않고 돌을 들고 무기를 휘두릅니다. 하지만 타인이 자기 인생을 침범하도록 내버려 둡니다. 심지어 인생 전체를 순순히 남의 손에 넘겨주기도 합니다.
단 몇 푼이라도 돈을 내어주는 일은 꺼리면서 삶을 내어주는 데는 주저함이 없습니다. 재산에는 인색하면서 시간을 나누는 데는 거리낌이 없으니, 정작 아껴야 할 것을 낭비하고 있는 꼴이 아닙니까?
인생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착각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만나봤을 겁니다. “나는 오십 세부터는 은퇴하고 삶을 즐길 것이며, 육십 세부터는 모든 공무에서 손을 떼겠소.”
하지만 그때까지 인생이 이어지리라는 보장이 있습니까? 인생이 계획한 대로 흘러갈 것이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자신을 위해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다 쓰고 남은 자투리뿐이라면 아깝지 않겠습니까? 또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낭비하는 시간을 삶에서 굳이 마련해 두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인생이 끝나갈 무렵에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지 않겠습니까?
그때까지 살 수 있을지도 모르면서 오십 세, 육십 세가 되어서야 제대로 된 자기 인생을 살아보겠다니, 누구나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망각한 어리석은 계획이 아닙니까?
제대로 사는 법, 제대로 죽는 법
다들 알다시피 벌여놓은 일이 많아서 너무 바쁜 사람은 어느 한 가지 일도 제대로 소화할 수 없습니다. 관심사가 여러 군데로 분산되면 웅변도, 학문도 깊이 파고들 수가 없으니까 무엇을 하든 억지로 쑤셔넣은 것처럼 한쪽이 튀어나오기 마련입니다.
바쁘게 사는 사람은 인생을 사는 방법을 배우는 데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사실, 제대로 사는 방법만큼 배우기 어려운 일이 없습니다. 다른 기술이야 어딜 가든 스승을 찾을 수 있는데다가 어떤 기술은 어린아이조차 금방 습득할 정도로 간단합니다.
하지만 제대로 사는 법을 익히려면 평생이 걸립니다. 쉽게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제대로 죽는 법 또한 일생에 걸쳐 배워야 합니다.
의미 없이 빼앗긴 시간들
자기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하게나마 알아차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엄청난 부에 압도된 인물이 수많은 군중 앞에서, 또는 법정 한가운데서 간절히 변론하다가 이렇게 외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을 겁니다. “제가 살아도 사는 게 아닙니다!” 당연히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을 겁니다. 자기 주변에 서성이는 사람을 잘 구분해야죠.
당신이 꼭 필요하지도 않은 일에 빼앗긴 시간은 얼마나 됩니까? 또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빼앗길 참입니까? 자식을 앞세운 노파가 슬퍼하느라 흘려보낸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호시탐탐 유산에 눈독을 들이는 자를 자극하려고 꾀병을 부리는 시간은 또 어떻습니까? 진실한 우정을 나눈 적도 없으면서 권력을 자랑하려고 찾아온 이들에게 빼앗긴 시간은 또 얼마나 깁니까?
남은 인생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아마 자신을 위해 보낼 시간이 얼마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겁니다.
미래를 위해 오늘을 버리지 마세요
참 어리석게도 선견지명을 자랑하고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더 나은 삶을 바라며 분주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항상 다가올 인생을 준비하느라 눈앞에 닥친 삶을 누리지 못합니다.
먼 미래의 계획을 위해 오늘 할 일을 미루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큰 낭비입니다. 다음을 기약하며 매일같이 주어지는 새로운 날을 낭비해서는 안 됩니다. 미래에 대한 기대는 인생을 사는 데 가장 큰 장애물입니다. 언젠가 다가올 그날에 기대어 오늘을 버리는 것과 같으니까요. 이는 마치 운명의 손에 미래를 맡기고 당장 내 손에 쥔 현재를 흘려보내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어디를 보고 있습니까? 목표는 무엇입니까?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오직 오늘을 사십시오.
인생은 끊임없이 새로운 일거리를 줍니다
위대한 성취를 이루고도 늘 전전긍긍하는 사람은 지나간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마음속에 넣어두지 않습니다. 관심사가 사라지면 새로운 관심사를 찾고, 소원이 이루어지면 새로운 소원을 빌고, 야망이 실현되면 새로운 야망을 품기 때문입니다. 이는 고통에서 벗어날 생각은 하지 않고 새로운 고통을 찾아 나서는 꼴입니다.
자기 명예를 힘들게 지켜왔던 사람은 이제는 다른 사람의 명예를 지켜주느라 더 많은 시간을 허비합니다. 또 어렵사리 정치판을 떠난 사람은 다른 정치인의 선거 유세에 열을 올립니다. 재판을 받느라 진땀을 빼던 사람이 어느새 판사가 되고, 판사 자리에서 내려와서는 재판장이 됩니다. 자신의 재산을 건사하느라 쩔쩔매던 사람은 어느새 돈을 받고 남의 재산을 관리해 주고 있습니다. 마침내 전장에서 물러난 장군은 집정관직을 수행하느라 진땀을 뺍니다.
부유하게 태어났든, 빈곤하게 태어났든, 어떤 상황에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인생이 끊임없이 새로운 일거리를 주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우리는 여유를 바라되 그것에 빠져서 즐겨서는 안 됩니다.
행복한 삶에 관하여
행복으로 가는 방향을 먼저 정하세요
우리는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지만 정확히 무엇이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지 알지 못합니다. 행복하게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 행복에 가까워지려고 애쓸수록 오히려 잘못된 길을 선택해서 행복이란 목표에서 멀어지기도 하죠. 애초에 방향을 반대로 잘못 잡았다면 노력할수록 점점 더 빠르게 행복에서 멀어지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먼저 목표를 정확히 세워야 합니다. 그런 다음 목적지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을 찾아야 하죠.
당신이 올바른 방향으로 들어선다면 자연스러운 욕구를 따르면서도 하루하루 행복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갔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말만 따라서 마음이 떠돈다면 잘못된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선한 마음으로 행복을 추구하려 밤낮으로 노력해도 그저 방황하며 짧은 생을 허비하고 말 겁니다.
자신과 대화를 나누세요
행복한 삶을 바란다면 투표를 앞둔 유권자처럼 “이쪽을 선택하는 사람이 가장 많은 것 같아.”라고 이야기해서는 곤란합니다. 다수가 선택하는 길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잘못된 판단 쪽에 사람이 몰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대중이 흔히 선택하는 길을 따르기보다 무엇이 자신에게 최선일지 고심해야 합니다. 또한 최악의 논리를 옹호하는 상스러운 이들을 경계하고, 무엇이 지속 가능한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고민해 보길 바랍니다.
제가 말하는 ‘상스러운 이들’은 거적을 걸친 하층민일 수도, 보석으로 치장한 왕족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됩니다. 진실과 거짓을 판단하려면 마음의 눈으로 상대를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자신에게 무엇이 이로운지 판단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이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자신과 충분히 대화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자신과의 대화는 처음에는 꽤나 어색하고 괴롭겠지만 마침내 스스로 진실을 털어놓게 될 겁니다.
간절히 원하는 것은 당신 옆에 있습니다
겉보기에만 그럴싸한 무언가를 좇으면 안 됩니다. 내실이 단단하고 선하며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멀리서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어디로 손을 뻗어야 할지 안다면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혹시 당신은 바로 옆에 간절히 원하는 목표를 놔두고, 어둠 속을 헤매며 여기저기에 부딪히고 있지 않습니까?
애쓰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행복한 삶을 바란다면 자유롭고, 올바르고, 의연하고, 한결같으며 두려움과 욕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명예를 유일한 선으로, 수치를 유일한 악으로 여기십시오. 이외의 것들은 행복한 삶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하고, 최고의 선에 가치를 더하지도 빼지도 못하는 사소하고 무가치한 요소일 뿐입니다. 이런 원칙을 지닌 사람이라면 굳이 애쓰지 않아도 언제나 명랑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가지지 못한 것에 욕심내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서 기쁨을 찾기 때문입니다.
이에 비하면 비루한 육체가 누리는 찰나의 쾌락은 하찮고 우습지 않겠습니까? 행복한 이들은 스쳐가는 쾌락과 통증 따위는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쾌락과 미덕은 다릅니다
쾌락을 최고의 선이라고 여기는 사람조차 자신이 불명예스러운 판단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쾌락과 미덕을 구분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명랑하게 살 수 없으면 명예로운 삶을 살 수 없고, 명예롭게 살 수 없으면 명랑하게 살 수 없다는 식의 억지 논리를 펼칩니다. 하지만 저는 완전히 다른 두 개념을 어떻게 하나로 엮을 수 있는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쾌락과 미덕을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습니까?
물론 모든 선은 미덕에서 비롯되기에 우리가 아끼고 갈망하는 모든 것은 미덕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쾌락과 미덕을 구분할 수 없다면 명예롭지 못하지만 즐거운 것도, 무엇보다 명예롭지만 고통을 감내하고 어렵게 얻어야 하는 것도 없어야 합니다.
가장 비천한 삶에도 쾌락은 존재하지만 사악한 삶에는 미덕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은 쾌락이 없어서가 아니라 쾌락 때문에 불행한 삶을 살고 있죠. 그러니 쾌락과 미덕은 불가분의 관계라고 할 수 없습니다. 미덕은 쾌락과 별개로 존재하며 쾌락을 필요로 하지 않는 미덕도 때로 존재합니다.
쾌락을 누리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착각
선이 아닌 악을 좇으며 목표를 달성한 사람은 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냥꾼은 죽음을 무릅쓰고 힘겹게 맹수를 포획하지만 맹수를 잡은 순간부터 불안에 떨며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맹수가 주인을 갈가리 찢어버리는 사고가 잦기 때문입니다.
쾌락도 마찬가지입니다. 쾌락을 좇는 사람은 원하던 즐거움을 얻었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거대한 악에 사로잡혀 쾌락의 노예가 되곤 합니다. 더 크고 다양한 쾌락을 누리는 사람이 더 행복할 것이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사실 이들은 쾌락에 사로잡혀 저속한 기쁨을 섬기고 있을 뿐입니다.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은 정작 해야 할 급한 일은 다 미뤄두고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는 무시한 채 짐승의 발자국을 좇아 맹수의 보금자리를 찾아 나서는 사냥꾼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는 쾌락의 배를 불리겠다고 인간이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본성인 자유를 포기하는 꼴입니다. 자기를 위해 쾌락을 사는 것이 아니라 쾌락을 위해 자기를 파는 셈 아니겠습니까?
마음의 평온에 관하여
자신을 의심하지 마세요
폭풍이 막 지나간 바다에는 거센 파도가 일렁입니다. 잔잔한 바다에도 잔물결이 일어납니다. 그러니 지난 일에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 마십시오. 자기를 질책하며 화를 내거나 다른 사람에게 충고를 구할 필요도 없습니다.
자기에게 확신을 가지세요. 그래야 올바른 길을 걷고 있다는 믿음이 생깁니다. 사방으로 뻗어 있는 수많은 갈림길에서도 이를 의심하지 마십시오. 확신을 잃는 순간 바로 옆에 올바른 길을 두고 헤매게 될 테니까요.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자신의 결점입니다
자신에게서 달아나지 않으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모든 인간은 죽을 때까지 자신에게서 벗어날 수 없으며, 그 부담은 어떤 짐보다 무겁게 어깨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우리를 괴롭게 하는 고난은 환경이나 장소가 아닌 자신의 결점에서 비롯됩니다. 나약한 사람은 인내가 부족하기에 노력을 계속 이어가거나 쾌락을 절제하지 못할 뿐 아니라 어떤 행위를 오랜 기간 지속할 수 없습니다. 툭하면 목적을 바꾸니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같은 자리에 되돌아와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새로운 시도를 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이런 자기 결점을 견디지 못해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에게서 달아나는 사람은 제멋대로 살면서 시간을 낭비하다가 세상만사가 귀찮아지면 이렇게 불평합니다. “언제까지 똑같은 나날을 견디며 살아야 하지?”
스스로 할 일을 찾으면 권태롭지 않습니다
누군가 권태를 극복할 방법을 묻는다면 저는 할 일을 찾으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아테노도루스가 말했듯, 가장 좋은 방법은 공적인 일에 전념하고 시민으로서 의무를 다하며 바쁘게 사는 겁니다.
쇠약한 사람은 볕이 잘 드는 곳을 찾아 체조를 하고 건강을 관리하는 데 시간을 투자할 것이고, 운동선수는 근육과 근력을 키우는 데 하루의 대부분을 할애할 겁니다. 한 나라의 국민, 더 나아가 인류를 위해 일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자신의 능력과 관심을 최대로 활용해 국가에 봉사하는 길을 찾으십시오. 그 길에서 자신을 갈고닦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을 정확히 평가해야 합니다
저는 “죽은 것처럼 사느니 죽는 게 낫다”는 쿠리우스 덴타투스 장군의 말에 동의합니다. 죽기도 전에 살아 있는 사람 명단에서 제외되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나라를 위해 봉사하기에 좋지 않은 시대에 태어났다면 여가를 즐기고 학문에 정진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합니다. 항해를 하다가 바다가 거칠어지면 배는 항구를 찾아 뭍으로 들어오듯 당신도 나라에서 놓아줄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그곳을 떠나십시오.
이때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그다음에 자신이 시작하려는 새로운 일을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함께 일할 사람과 그로써 이익을 볼 사람을 따져봐야 합니다.
인간은 무릇 자신이 지닌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으니 무엇보다 자신을 정확히 평가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말주변을 믿다가 실수를 저지르고, 어떤 사람은 자기 그릇 이상의 부를 요구하고, 어떤 사람은 나약한 자신의 몸으로 버티기 힘겨운 업무를 수행하려 합니다.
정치를 하려면 어느 정도의 뻔뻔함을 갖춰야 하니 지나치게 겸손한 사람에게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또, 법정에서 일하기에 너무 고집이 센 사람도 있습니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벌컥 화를 내다가 성급하게 말을 내뱉는 사람이나 중도中度를 모르고 아슬아슬한 농담을 일삼는 사람 또한 공직에는 맞지 않으니 욕심을 내려놓고 조용히 사는 편이 낫습니다. 고집이 세고 참을성이 없는 성정을 타고난 사람이 멋대로 말을 하게 내버려 뒀다가는 사회에 해를 끼칠 수 있으니 애초에 그런 자리로 나가지 않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불행을 받아들이면 평온해집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어려운 시기를 지날 수 있습니다. 이때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풀 수도, 끊을 수도 없는 사슬에 얽매일 수 있죠. 처음에 사슬은 다리에 걸린 무거운 족쇄로 느껴져 불편할 겁니다. 하지만 몸부림치기를 그만두고 사슬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으면 어느덧 적응하게 됩니다.
이를 필연으로 여기면 용감하게 버틸 수 있고, 습관으로 받아들이면 수월하게 견딜 수 있습니다. 어떤 인생을 살든지 자신에게 찾아온 불행을 혐오하지 않고 선뜻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언제나 즐거움과 휴식과 기쁨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자연은 인간이 어떤 괴로움을 짊어지고 태어났는지 잘 알기에 우리 괴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가장 심각한 병에도 금세 익숙해지는 습관을 함께 주었습니다. 처음 역경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고통이 똑같이 계속된다면 제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견딜 수 없을 겁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빌려온 겁니다
현명한 사람은 움츠러들어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길 필요가 없습니다. 현자는 자신감이 넘쳐 운명에 맞서길 주저하지도, 결코 운명 앞에서 물러서지도 않습니다. 운명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현자는 하인, 재산, 지위뿐 아니라 몸과 눈과 손, 인생을 소중하게 만드는 온갖 가치,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도 빌려온 것처럼 살다가 돌려줄 때가 되면 무덤덤하게 자신이 가진 것을 내놓을 겁니다.
물론 그 무엇도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해서 스스로를 가치 없다고 여기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신실한 사람이 타인이 맡긴 재산을 소중히 돌보듯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성실하고 신중하게 수행합니다.
스스로를 믿고, 좋아하고, 존중하십시오
마음의 안정에 가장 큰 방해가 되는 변덕이라는 악덕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때로는 고집이 불안과 불행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변덕은 자제력 자체가 없기에 훨씬 골치가 아픕니다. 물론 고집을 부리면 변화하지 못하고, 변덕을 부리면 견디지 못하니 둘 다 평온을 찾는 데 방해가 되기는 마찬가지겠군요.
무엇보다 평온한 마음을 원한다면 외부의 관심사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자기를 믿고, 좋아하고, 존중하며, 타인의 사정에 개입하는 습관을 멀리하십시오. 그리고 자신에게 헌신하십시오. 또한 손실을 가볍게 넘기고 고난을 온화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을 다스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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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