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 시민불복종
 
지은이 : 헨리 데이비드 소로(역:이종인)
출판사 : 현대지성
출판일 : 2021년 12월




  • 자신이 원했던 인생이 아님을 한탄하며 ‘조용한 절망’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인생의 독립기념일을 만들어주고, 나만의 월든을 선물해주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월든 . 시민 불복종


    나는 낙담을 칭송하는 글은 쓰지 않을 생각이다. 이른 아침, 자기 횃대 위에 서서 요란하게 떠들어대는 수탉처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자랑스럽게 펼쳐놓을 것이다. 아직 잠들어 있는 내 이웃을 깨우기 위해서라도.


    생활경제

    사실, 노고에 시달리는 인간은 매일매일 고결하게 살아갈 여유가 없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인간다운 관계를 유지해나갈 만한 형편이 못 된다. 그의 노동은 시장에서 가치가 점점 하락한다. 그는 단지 기계처럼 일할 뿐 다른 것이 될 시간이 없다. 성장하려면 자기 무지를 깨달아야 하는데, 오로지 자신이 아는 지식만 사용하고 있으니 어떻게 알아채겠는가?


    세상의 평가는 우리가 자신에게 내리는 평가에 비하면 허약한 폭군이다.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개인의 운명을 암시, 아니 결정한다. 우리는 공상과 상상이라는 서인도 제도에서 자신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 당신에게는 그런 자기 해방을 가져올 윌버포스가 있는가?


    편견을 내다버리는 데 너무 늦은 때란 없다. 아무리 오래된 사고방식이나 행동방식이라도 검증하지 않고 믿어서는 안 된다. 오늘 모든 사람이 진실이라고 동조하고 묵인하던 것이 내일 거짓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 자기 땅을 비옥하게 적실 비구름이라고 믿었는데 알고 보니 연기처럼 사라질 의견 한 조각이었던 것이다.


    우리 인간의 체질이 여러 가지이듯 자연과 인생도 여러 가지다. 다른 사람에게 어떤 인생이 펼쳐지리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는가? 사람이 상대방의 눈을 잠시 들여다보는 것보다 더 큰 기적이 발생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한 시간 내에 세상 모든 시대를 살 수 있다. 아니, 모든 시대의 모든 세상을 살 수도 있다. 역사, 시가, 신화! 남의 경험을 이토록 경이롭고 유익하게 적은 글을 또 어디에서 읽을 수 있단 말인가.


    대부분 사치품과 인생을 안락하게 하는 많은 편의품은 굳이 없어도 될 뿐만 아니라 인류 정신을 고양하는 데는 커다란 방해물이 된다. 사치품과 편의품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일찍이 가장 현명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보다 더 소박하고 척박한 삶을 살았다. 중국, 인도, 페르시아, 그리스 등지에서 만난 고대의 철학자들은 겉모습은 가난하기 짝이 없지만 내면은 그렇게 풍요로울 수 없었다. 우리는 이들에 대해 모르는 게 많다.


    농부는 문제 자체보다 더 복잡한 공식으로 생계 문제를 해결하려 애쓴다. 구두끈 정도나 살 수 있는 아주 적은 돈을 얻으려고 소 떼에 투기하는 것이다. 그는 안락과 독립을 확보하려고, 아주 능숙한 기술을 발휘하면서 털 스프링이 달린 덫을 놓는다. 하지만 덫을 놓고 돌아서는 순간 자기 덫에 다리가 걸리고 만다. 이것이 그가 가난한 이유다. 이와 비슷한 이유로 우리는 많은 사치품에 둘러싸여 있으나 미개인이 누린 천 가지의 안락함과 비교해볼 때 가난한 것이다.


    이처럼 인생의 가장 좋은 시기를 돈 버느라고 다 보내고 나서 가장 가치 없는 시기에 의심스러운 자유를 누리겠다고 하는 것은 어떤 영국인의 에피소드를 생각나게 하지 않는가. 그는 먼저 돈을 벌기 위해 인도로 갔다. 나중에 영국으로 돌아와 시인의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는 인도로 갈 게 아니라 지금 당장 다락방으로 올라가 시를 썼어야 마땅했다.



    내가 살았던 곳과 그렇게 살았던 이유

    나는 의도적인 삶을 살고 싶었으므로 숲속으로 들어갔다. 삶의 본질적인 사실을 직면하고, 삶이 내게 가르쳐주는 것을 배울 수 있을지를 살폈다. 죽을 때가 되어서야 내가 온전한 삶을 살지 못했음을 자각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삶은 너무나 소중한 것이기에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불가피하지 않는 한, 이런 목표를 단념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깊이 있게 살면서 인생의 골수를 모두 빨아먹고 싶었고, 삶이 아닌 것은 모두 쫓아내버릴 정도로 강건하게 스파르타인처럼 살고 싶었다. 삶을 넓게 바싹 베어내면서 구석으로 몰아붙여 삶의 가장 밑바닥 조건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왜 우리는 이처럼 서두르면서 삶을 낭비하는가? 우리는 배가 고프기도 전에 굶어죽기로 결심한 사람 같다. 제때의 한 바늘은 내일의 아홉 땀을 아껴준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내일의 아홉 땀을 아끼기 위해 오늘 천 땀의 바늘을 찔러대고 있다.



    숲속의 소리

    늘 깨어 있으면서 자연의 언어를 들으려는 필요는 어떤 방법이나 훈련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반드시 보아야 할 것을 관찰하는 자연 속 훈련에 비하면, 정선된 역사, 철학, 시학 강좌, 최상급 사교 모임, 탁월한 생활 습관 등은 열등하게 보일 뿐이다. 당신은 그저 배우는 독자가 되고 싶은가 아니면 사물을 꿰뚫어 보는 견자가 되고 싶은가? 견자가 되려면 당신의 운명을 읽고, 당신 앞에 놓인 것을 보고, 미래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내 인생을 두른 넓은 여백을 나는 사랑한다. 때때로 여름 아침에는, 평소처럼 목욕하고 나서 해 뜰 때부터 정오까지 햇빛 환한 문턱에 앉아, 소나무와 호두나무와 옻나무에 둘러싸여 완전한 고독과 정적 속에서 명상에 잠겼다. 그러면 새들은 집 주위에서 울어대거나 집 안으로 소리 없이 날아들어 왔다. 그러면 어느덧 해가 집 서쪽 창에 떨어지고, 저 멀리 대로에서 어떤 여행자의 마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면 나는 시간이 많이 경과되었음을 깨닫는다.


    밤중에 키가 크는 옥수수처럼 나는 그 계절에 많이 성장했으며, 이때는 내가 두 손으로 한 어떤 일보다 더 좋은 계절이었다. 내 삶에서 공제된 시간이 전혀 아니었으며, 통상적인 시간 계산에는 들어가지 않는, 덤으로 주어진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다.


    새와 꽃이 자기 기준을 가지고 내게 시험을 친다면 나는 합격될 것이다. 인간은 내면에서 자신에게 중요한 일을 발견해야 한다. 자연 속 하루는 아주 평온하므로 그가 이런 식으로 게으름을 피워도 비난하지 않는다.



    고독

    나는 때때로 자연의 사물 속에서 가장 달콤하고 부드러우며, 가장 정직하고 고무적인 동아리 모임을 발견했다. 심지어 불쌍한 염세주의자와 심각한 우울증 환자도 이런 벗을 얻을 수 있다. 자연 한가운데 살면서 오감을 평온하게 유지하는 사람에게는 우울증이라는 아주 검은 체액(體液)이 생길 수 없다. 어떤 폭풍우가 불어온다고 해도 건강하고 정직한 사람 귀에는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의 춘풍처럼 들린다. 그 어떤 것도 소박하고 용감한 사람 마음에 천박한 슬픔을 강요하지 못한다. 사계절의 우정을 반갑게 맞아들이는 한, 그 어떤 것도 내 인생을 부담스러운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



    베이커 농장

    삶이 그대 직업이 아니라 오락이 되게 하라. 땅을 즐기되 그것을 소유하지 마라. 모험과 믿음이 부족하여 인간은 지금 있는 그곳에 있고, 사고팔고, 지지고 볶으면서 한평생을 농노처럼 보낸다.



    더 높은 법

    인간은 언제나 자기 영혼이 하는 진실한 얘기를 들어야 한다. 그것은 희미하지만 꾸준한 소리다.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처음에는 어떤 극단이나 광기 쪽으로 인도하지 않을까 우려할 수도 있으나 결국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믿음으로 단호하게 대하면 오히려 그쪽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임을 깨닫는다. 단 한 명의 건전한 인간이 듣는 작지만 확고한 반대 목소리가 마침내 인류의 주장과 관습을 이겨낼 수도 있다. 어떤 사람도 자기 영혼을 따라가다 길을 잃는 경우는 없다. 그 길을 따라가다 신체적으로 허약해질 수도 있으나, 그 누구도 그런 결과가 개탄스럽다고 할 수 없다. 그것은 더 높은 원칙에 부응하면서 소신 있게 살아간 삶이기 때문이다.



    겨울의 월든 호수

    어느 조용한 겨울밤을 보낸 후에 나는 어떤 느낌을 받으며 잠에서 깼다. 무슨 질문이 나에게 왔고, 나는 꿈속에서 그 질문에 대답하려고 헛되이 애썼다. 무엇이, 어떻게, 언제, 어디서? 그러나 모든 피조물이 사는 자연이 동트고 있었다.


    자연은 평온하고 만족스러운 얼굴로 내 넓은 창문을 들여다보았고 자연의 입술에는 아무 질문도 없었다. 질문이 없으니 답변도 없고, 나는 이제 자연과 대낮을 맞아들이기 위해 깨어났다. 어린 소나무들이 점점이 박힌 땅 위에 깊이 쌓인 눈과, 집이 있는 언덕 등성이는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전진하라! 자연은 아무 질문도 하지 않고, 더욱이 우리 인간이 묻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는다. 자연은 오래전에 그렇게 결단했다.



    맺음말

    나는 숲에 들어간 것과 똑같이 훌륭한 이유로 숲을 떠났다. 내가 보기에 나는 앞으로 여러 번의 삶을 살아야 했는데, 그 숲속 삶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내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 경계선 없는 어떤 곳에서 발언하고 싶다. 잠에서 깨어난 사람이 이제 막 잠을 깨려는 순간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듯 이야기하고 싶다.


    왜 우리는 이처럼 성공하려고 절망적일 정도로 서두르고 또 그로 인해 절망적인 일들을 저지르는가? 만약 어떤 사람이 동료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가 다른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에게 자신이 듣는 음악 소리에 따라 걷게 하라. 그 소리가 아무리 신중하고 또 멀리서 울려오더라도. 그가 사과나무나 참나무처럼 빨리 숙성하는 문제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자신의 봄철을 억지로 여름으로 바꾸어놓아야 할까?


    우리 천성에 부합하는 외부 조건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면, 우리가 그 대신에 다른 현실을 들이댄다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우리는 헛된 현실을 따라가다가 난파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힘들게 푸른 색깔의 유리 하늘을 건설하기로 작정했다고 해보자. 유리 하늘 건설이 끝났을 때, 그 너머 아스라한 곳에서 진정한 푸른 하늘을 보게 되어, 그 유리 하늘은 진짜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될 텐데 그래도 우리는 유리 하늘을 건설하겠다고 할 것인가?


    자기 삶이 아무리 비천하더라도 씩씩하게 맞아들이고 또 살아나가라. 피하거나 욕하지 말라. 그 삶은 당신만큼 그리 나쁜 게 아니다. 당신이 가장 부유할 때 삶은 가장 가난하게 보인다. 험담하는 사람은 심지어 천국에서도 험담 거리를 찾아낸다. 가난할망정 당신의 삶을 사랑하라.


    현인들이 행동한 대로, 가난을 마당의 화초처럼 가꾸어라. 옷이든 친구든 새것을 얻으려고 너무 애쓰지 마라. 옛것에 시선을 돌리고 그것으로 돌아가라. 사물은 바뀌지 않고 우리만 바뀌는 것이다. 옷을 팔지언정 사상은 간직하라.


    빨리 발전하려고 너무 애쓰지 말라. 너무 많은 영향력이 당신을 간섭하도록 두지 마라. 그것은 모두 힘 낭비다.


    우리 두 눈을 어둡게 하는 빛은 우리에게 어둠이다. 우리가 깨어나는 날이야말로 비로소 새벽이 동트는 날이다. 앞으로 동터야 할 많은 날이 있다. 태양은 아침에 떠오르는 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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