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 2주차

BOOK SUMMARY
 인문 

어쩌면 ADHD 때문일지도 몰라

저자 안주연 (지은이)
출판 EBS BOOKS
출간 2024.01
산만한 마음들을 위한 성인 ADHD 탐구서
도서요약 보기



어쩌면 ADHD 때문일지도 몰라


ADHD, 이해와 오해

ADHD, 왜 이렇게 핫하죠?

정신과 질환에 ‘유행’이라는 말을 붙이는 게 어색하지만, 정말 유행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요즘 성인 ADHD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실제로 환자가 많아졌나요?


제가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을 연 것이 2016년도였어요. 오피스 지역에 자리한 병원이라 주로 20~40대 환자들이 많기 때문에 소아에게서 주로 진단되는 ADHD 환자를 만날 일이 그리 많지 않았죠. 그런데 2018년 경부터 성인 ADHD에 대해 언급하거나 진단을 받고 싶어 하는 분들이 부쩍 늘어났어요.


통계를 살펴보면 더욱 명확해집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ADHD로 진단받은 30대 환자가 2018년 2,325명에서 2022년에는 16,376명으로 무려 7배나 급증했다고 해요. 20대의 경우도 7,610명에서 33,672명으로 4배나 증가했다고 하고요. 실로 엄청난 증가세지요. 그러니까 ‘성인 ADHD 환자가 늘었다’는 것은 느낌이 아니라 사실인 것입니다.


ADHD, 정확히 뭔가요?

사실 저도 ADHD가 뭔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ADHD라고 하면 덤벙대고 뭘 잘 잃어버리고 가만히 있지 못하며 산만하고 부산스러운 사람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이미지만 갖고 있더라고요.


환자분들이 정말 많이 답답해하세요. 왜 어떤 일에는 과할 정도로 머리가 팽팽 돌아가고 몰입이 되는데, 또 어떤 일은 아주 기초적인 것도 수행이 안되는지 말예요. 제가 이러한 ADHD의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고심을 많이 해보았어요. ADHD가 있는 뇌의 상황을 한번 그려볼게요.


초등학교 교실이 하나 있어요. 1반이라고 합시다. 1반에는 의욕이 넘치는 친구, 똘똘한 친구, 개구쟁이 친구들이 다양하게 모여있습니다. 그런데 1반 담임 선생님이 교탁 앞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거예요. 수학 시간이라 아이들이 “구구단이 뭐예요?” 하고 묻는데 “어, 얘들아 잠깐만. 선생님이 피곤해서, 정신 좀 차리고” 이러면서 계속 헤매고 있는 거죠. 이런 시간이 길어지면 어떤 아이는 다른 과목 교과서를 펼쳐 읽고, 어떤 아이는 공책에 낙서를 하고, 어떤 아이는 짝꿍이랑 장난을 치고, 다른 아이는 말없이 화장실에 가겠죠. 아이들을 적절히 통제하고 수업을 진행하지 못하고 텐션이 떨어진 선생님, 이것이 ADHD가 있는 뇌의 상태라고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수업 시간은 흘러가는데, 대체 구구단은 언제 배울 수 있을까요? 오늘 진도를 완수할 수 있는 걸까요? 뇌의 맨 앞쪽에 위치하는 전전두엽은 계획, 판단, 자기 조절 등의 실행 기능을 담당하는 부위로, 우리의 행동과 수행을 통제합니다. 저는 전전두엽을 어느 학급의 선생님이라고 많이 비유하는데요, 그 외에도 공항의 관제탑, 기업의 CEO,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큰 레스토랑의 총괄 매니저도 자주 전전두엽에 비유되죠. 뇌의 각각의 파트는 잘 기능하는데 그들 간의 연결성이 떨어지고, 이를 총괄하고 외부 상황과 조율하고 무언가를 계획하고 실행하게 만드는 실행 기능이 저하된 상태라면 많은 것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리겠죠. 어떤 욕구나 생각이 동시에 여러 개가 생겨난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런데 여기서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하는 겁니다. 교실에서 아이들이 친구랑 놀고 싶고 화장실도 가고 싶고 그림도 그리고 싶다고 하면 선생님이 “화장실 갔다 와서 그림 그린 뒤에 친구랑 놀아”라고 얘기해줘야 하는데 그걸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어떤 일을 순서대로, 체계적으로 처리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 일 처리가 지연되고, 충동적인 말과 행동을 하게 됩니다. 남들이 봤을 때 ‘쟤는 정말 종잡을 수가 없다, 산만하다, 일을 못한다, 눈치가 없다, 실수를 너무 많이 한다, 시간 약속을 못 지킨다’는 식의 평가를 하게 될 수밖에 없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보통 ADHD라고 생각하는 특성들은 선생님이 일을 제대로 못 해서 아이들은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지휘자가 멍때리고 있어서 오케스트라는 불협화음을 내고, 관제탑의 관제사가 무전을 제대로 안 보내줘서 비행기들이 이착륙을 못 하고 있는 ‘결과들’이었군요!


네, 그렇다고 볼 수 있어요. 앞에서 뭔가를 끌어주고 관리하고 통제하는 컨트롤 타워가 먹통일 때 모든 것이 뒤죽박죽되는 것. 그것이 ADHD에게 주의력 저하, 과잉행동, 충동성 등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ADHD의 특성이 이것만으로 설명되는 것은 아니에요. 최근에는 여기에 더해서 과집중(hyperfocus), 감정 조절의 어려움, 그리고 과도한 잡념 (또는 과도한 방황하는 마음-excessive mind wandering)도 중요한 특성으로 보고되고 있어요. 과집중은 우리가 흔히 ‘과몰입’이라고 부르는 상태, 자신이 흥미를 가진 것에만 지나치게 몰입하는 것을 말합니다.


‘중요한 일’보다 ‘흥미로운 일’에만 시간을 쏟으니 꼭 해야 하는 일들이 뒷전으로 밀리는 경우가 자주 생기겠지요. 감정 조절이 어려워 화를 참지 못하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바닥으로 가라앉기도 해서 일상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머릿속에서 끝도 없는 생각들이 마구잡이로 뒤엉켜서 주어진 업무(공부)나 지시를 수행하고, 정보를 기억하고, 적절하게 집중력을 발휘해 일을 기한 내에 끝내는 것이 너무나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 마음이 딴 곳에 있는 것처럼 경청하지 않는 듯이 보일 때도 있습니다.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고 예측해서 약속 시간을 지키거나 마감을 해내는 것도 ADHD를 가진 사람에게는 정말 힘든 일입니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충동성이 이 질환을 설명하는 이름에 드러나 있다 보니 이런 증상이 없다면 ADHD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 ADHD는 생각보다 아주 다양한 모습으로 환자들의 삶에 나타납니다. 내 안의 ‘리더’이자 ‘매니저’가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나’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지요.



ADHD, 구원과 절망

너 자신의 스트레스를 알라

실제로 ADHD 진단을 받으면 정말 혼란스러울 것 같아요. 자신의 진단에 대한 반응도 제각각일 것 같은데요, 어떻게 하면 이런 혼란의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까요?


에고신토닉(ego-syntonic)과 에고디스토닉(ego-dystonic)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에고신토닉은 ‘자아동조적’이라는 의미고, 에고디스토닉은 ‘자아이질적’이라는 의미입니다. 좀 어려우실 테니 예를 들어 설명해볼게요.


자기 자신을 외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남다르고 안드로메다에서 신호를 받고 있다고 믿고 있지요. 남들이 보면 저 사람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그 자신은 스스로가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불편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경우가 바로 에고신토닉, 즉 자아동조적인 상태입니다.


반대로 나 자신이 외계인이라고 느껴지는데 이런 생각이 이상하다는 걸 스스로도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도 그러고 싶지 않은데 자꾸만 기이한 방향으로 생각이 흘러가거나 뜻밖의 행동을 하게 됩니다. 이런 내가 너무 싫고 괴롭습니다. 이런 경우가 에고디스토닉, 즉 자아이질적인 상태입니다.


보통 강박증을 가진 경우 에고디스토닉 경향이 강합니다. 이렇게까지 손을 자주 씻고 샤워를 자주 할 필요는 없다는 걸 알지만 씻고 싶은 마음과 행위를 제어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이건 너무 지나치다는 걸 알고 주변에서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으니 이보다 괴로울 수가 없지요. 이렇게 자기비판적인 성향이 강하면 본인의 스트레스 역시 커집니다. 하지만 에고신토닉 경향을 가진 사람들은 남들이 뭐라 하든 나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스스로 문제가 있다고 느끼지 않으니 스트레스를 받을 이유가 없지요.


환자들이 ADHD를 받아들이는 태도에서도 이렇게 상반된 경향이 보이곤 합니다.


▶ 내가 덤벙대고 실수를 좀 하고 산만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 뭐.

▶ 내가 덤벙대고 실수가 많고 산만해서 나 자신이 너무 싫은데 이게 병이었다니 큰일 났다!


전자의 경우 아무래도 본인이 느끼는 스트레스는 덜하겠지요. 하지만 후자의 경우 자주 비관적인 상태가 되거나 지나치게 자신을 몰아붙이고 자책하며 괴로워할 수 있습니다. 에고디스토닉 경향이 적당히 있으면 개선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만, 지나치면 자기비판에 에너지를 다 써버려서 정작 개선에 필요한 에너지를 끌어 쓸 수가 없습니다. ADHD는 치료를 통해 개선할 수 있고 관리할 수 있는 질환입니다. 또한 모든 사람의 치료 목표가 절대적으로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완벽하게 개선하고 교정해야겠다, 나도 저 사람만큼의 상태에 도달해야겠다는 절대적인 종착지를 향해 갈 필요는 없습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의 상태를 받아들이고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지세요.


현대사회에서는 틀에서 벗어난 것을 정신질환으로 정의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사회가 정한 어떤 틀 안에 제대로 안착해있지 않으면 비정상으로 규정하고 고쳐야 한다는 압박이 너무 강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특히나 ADHD가 그런 틀에서 가장 많은 핍박을 받는 질환인 것 같아요. 기분장애인 우울증은 500년 전에도, 1000년 전에도 존재했거든요. 상실을 겪어서 우울하기도 하고 기질적으로 우울한 사람도 있고 사는 게 힘들어서 우울하기도 하니까요. 조울병이나 조현병 역시 오래전부터 있었고 진단되었습니다. ADHD도 물론 존재했겠지만 이전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가 사회가 규격화되면서 점점 더 두드러지기 시작한 측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의 사회를 가내수공업장이라고 가정한다면, 누가 어쩌다 물건을 하나 못 만들어도 “얘가 좀 서툴구나, 조금 비뚤지만 나름 개성이 있는 물건이네” 하고 넘어갔겠지요. 그런데 대형 공장이라는 환경이 되어버리면 물건을 제대로 못 만든다는 건 불량률이 높아진다는 의미가 됩니다. 공장의 목표는 품질이 균일한 상품을 효율적으로 만들어내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 정해진 공정대로, 정해진 규격대로 만들어지지 않으면 생산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공장이 추구하는 목표를 이루지 못하게 됩니다. 불량품은 가차 없이 제외되어야 하지요. 가내수공업장에서의 실수와 공장에서의 실수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되는 겁니다.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저는 한국이 ADHD인이 어울려 살아가기에 가혹하고 척박한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대체로 타인에게 엄격하고 손해 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며, 어디서나 높은 기준을 적용해 서로를 질책하고 조금만 권력 차이를 느껴도 갑질부터 하려 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자주 실수하고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산만하고 덤벙대는 ADHD인은 불량률을 높이는 고장 난 부품이 될 수밖에 없지요. 서열 문화가 강해 신입 구성원이나 직책이 낮은 팀원에게는 특히 겸손하고 성실한 자세, 빈틈없는 일 처리가 강요되기도 합니다.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고객 응대 직업에서라면, 가혹한 평점 문화 속에서 이제 막 사회에 나와 업무를 익히고 자리를 잡으려 하는 ADHD인의 입지가 더욱 위태로워지겠지요. 불량품 취급을 받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립하고 기여하며 살아가려면 어떻게든 이 문화에 적응하고 경력도 쌓아가야 하잖아요. 그러니 ADHD에 대해 알고 싶어 하고, 고치고 싶어 하고, 붐이 일어날 정도로 각광을 받는 게 아닌가 싶어요.



ADHD, 환자와 사회

ADHD라서 그랬네 vs. 내가 ADHD라니

사람은 누구나 못난 부분이 있고 완벽하지 않은 존재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구멍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잖아요. 근데 이 구멍을 도저히 들키지 않을 수가 없단 말이죠. 이런 나의 상태를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언어가 ADHD라면 그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아주 자연스러운 고민입니다. 우리는 모두 개인으로서도 존재하지만 사회 안에서 나의 위치와 역할이라는 게 있지요. ADHD가 있다는 것을 몰랐을 때, 누군가 나를 ‘게으른 사람’으로 평가하면 어떤 면에서 조금 억울하고 답답한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게으르다고 평가할 만한 근거가 없지는 않지만 나는 그냥 단순히 게을러서 이러는 게 아닌데, 뭔가 설명을 하고 싶은데 그게 뭔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으니까요. 어떻게든 해명을 해보려 할수록 남들에겐 핑계처럼 비춰질 것 같고 그러다가 결국 “아, 역시 내가 문제구나, 더 열심히 노력하고 열심히 살아야지, 하면 잘할 수 있는데 안 해서 그래, 더 잘하자” 하면서 스스로를 더 다그치게 됩니다.


ADHD 환자가 자신에게 특히 불리한 환경에 놓인 경우라면, 이러한 자기 비난과 자괴감은 더 커집니다. 극도의 꼼꼼함이 필요한 사무직이라거나, 약관이 복잡한 보험 상품에 대한 문의에 응답해야 하는 상담원이라거나, 그럭저럭 수행할 수 있는 난이도지만 반복적이고 지루한 일을 하고 있는 ADHD인이라면 정말 힘들겠지요. 이렇게 외부 조건과 자신의 상태가 불화하면 평소 느끼던 부적절감과 무력감은 몇 배가 됩니다.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는 분명 알겠는데, 꾸준히 노력하여 이를 실행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남들에게는 그렇게 어렵지 않은 일이 나는 왜 안 되는지, “나는 왜 이럴까?”라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으니 답답하고 억울하고 때론 자학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마땅히 자신을 변호하고 해명할 근거를 찾지 못한 분들이 ADHD 진단을 받으면 자신의 문제가 설명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와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자신의 질병에 대한 일종의 ‘설명 모델’을 갖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적절한 치료로 이 증상들이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과 위안을 느끼고 치료에 전념해야겠다고 결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치료가 ‘만병통치약’은 아닙니다. 약물 치료로 증상이 완화된다고 해도 그동안 형성된 조직화, 시간 관리의 어려움과 지연 행동(미루기), 낮은 자존감과 관련된 문제들은 지속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ADHD인들은 지구력이 떨어지다 보니 초반에 모든 것을 바꾸려 하거나 단시간 내에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하기도 합니다. 얼른 생활에 변화가 일어났으면 하는 마음으로 약도 빨리 증량하길 바라며 모든 것을 다 고쳐버리려고 치료 초반에 과열되기도 하지요. 생각만큼 빠른 호전이 없으면 초조해하고 금방 좌절해버리기 때문에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생활의 루틴을 만들고 나쁜 습관을 보완할 대안들을 조금씩 연습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것 자체가 ADHD인들에게 쉬운 일이 아니지요.


성인 ADHD의 경우 평생을 이렇게 살아왔는데 몇 주, 몇 개월 만에 나아지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최소 몇 년 이상의 기간을 잡고, 약물 복용과 생활 습관 관리 등의 치료 계획을 세워 일상을 관리하며 치료를 이어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오히려 진단을 받고 나서 절망에 빠지기도 하잖아요. 저는 그 절망이 어떤 의미의 절망인지 궁금했어요.


맞아요, 모든 ADHD 환자들이 진단을 환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상태가 사회와 불화하고 있긴 하지만 지금껏 이렇게 살아왔고 이게 바로 자신의 삶이고 정체성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질병’이라고 하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살아온 삶이 나의 의지와 선택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질병으로 인한 증상들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해보세요. 너무나 갑자기 모든 것을 부정당한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마치 자신의 본령을 훼손당한 것 같은 불쾌함을 느낄 수도 있지요.


‘나는 주의력이 조금 떨어지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에 ’덕질‘을 하며 과몰입을 하는 걸 더 선호하기 때문에 그걸 선택했을 뿐인데, 내일까지 써야 하는 자기소개서보다는 지금 이 영상을 보는 게 더 즐겁기 때문에 그렇게 했을 뿐인데, 사실 내 주의력에 문제가 있는 병이 있으니 이 사회랑 싱크를 맞추고 살아야 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좌절을 느끼지 않겠어요? 나의 가치 체계나 운영체제를 바꾸라는 것 같고, 내가 설령 조금 모자란 구석이 있다 해도 나는 이런 내가 마음에 드는데 앞으로는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메시지가 되니까요.


정신질환의 규정은 사회적 프로파간다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러니 병에 대해 개인이 느끼는 감정과 사회가 말하는 ‘치료적 필요’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치료적 필요를 크게 느끼지 못하는 경우라면 주치의나 상담사와 상의하면서 자신이 동의할 수 있는 치료 방향과 목표를 정해도 좋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환자들이 환영하기만 하거나 절망하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 진단을 받으면 마음이 착잡하고 복합적인 감정에 휩싸이기 마련입니다. 이런 감정들은 지극히 자연스러우며 시간이 지나면서 안정을 찾아가게 되니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감정을 주치의와 자세히 다루어 보면 좋겠어요.



ADHD, 고립과 공존

ADHD인, 내 동료가 돼라!

ADHD는 본인이 물론 제일 힘들겠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도 어려운 질병 같아요. 제 주변에도 ADHD 진단을 받은 이틀이 있는데요, 이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해야 할까요?


우선 질문을 다시 생각해볼게요. 우리는 왜 그들로 인해 불편하고 피해를 본다고 생각할까요? 왜 ADHD 환자의 행동이 우리에게 불편을 느끼게 할까요? 이것 역시 앞서 이야기했던 우리 사회 환경과 관련이 있습니다. 최적의 효율과 정확성, 최고의 생산성을 강조하는 요즘에는 이에 반하는 것을 마치 ‘악’처럼 치부합니다. 사회가 정한 기준과 상식에 위배되거나 미달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쉽게 배제하죠. 모든 것이 톱니바퀴처럼 착착 맞물려 돌아가야 하는 세상에서 규격이 맞지 않는 나사 하나는 골칫거리가 되어버립니다.


ADHD 환자는 업무 실행 능력이나 업무 처리의 일관성이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사회를 살아가기에 커리어 면에서 불리한 점이 많습니다. 주변에 운동신경이 좀 떨어지는 사람, 소화 능력이 약한 사람, 관절이 좀 안 좋은 사람, 그런 사람들 있죠? 살면서 다소 불편한 점들이 있고 가끔은 주변에서 배려해줘야 하기도 하지만 그럭저럭, 자기 일을 하면서 일상을 잘 살아갑니다. ADHD인도 그런 사람을 보듯이 대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내가 불편을 느낀다면 그만큼 ADHD인도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들의 어려움을 공감해주되 동정하거나 특별한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습니다. ADHD 진단을 받았더라도 사람마다 그 특성이나 정도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필요한 부분에 대해 구체적으로 조율해가면서 불편을 줄여나가면 됩니다.


그런데 이런 환경을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해요. 우선 협업 시에 발생하는 업무의 어려움에 대해서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되, 인신공격이나 감정적 비난은 자제하는 분위기가 중요합니다. 개선을 위한 이야기가 감정적 화풀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이런 피드백을 받는 당사자도 본인의 모습에 대해 타인의 관점에서 이해해보려는 노력이 필요하고요. 집단 문화가 강한 한국에서는 전체적 틀을 깨는 실수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죄악시하고, 실수해서 피해를 주었으니 그 어떤 비난이라도 해도 된다는 분위기로 가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이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아요. 이럴 때 동료들이 비난 일변도의 분위기가 과열되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주면 좋겠습니다. 당사자도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면서 비판을 수용하되, 본인이 잘 수용할 수 있는 방향의 피드백을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감정을 쏟아내기보다는 문제를 해결하는 건설적인 소통 방식을 찾아가는 것이지요.


물론 ADHD인들은 그동안 질타를 받아온 경우가 많아 이런 상황에 처하면 쉽게 우울해지거나 방어적이 되기 쉽습니다. 이때가 바로 동료들의 격려와 이해, 그리고 유연한 도움이 필요한 때입니다! 중요한 마감은 함께 알람을 설정한다든가, 팀에서 전날 한 번 더 챙겨주는 식으로 구체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 함께 잘해보고픈 ADHD인들에게 정말 큰 힘이 됩니다. ADHD인과 대화를 하다가 흐름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면 맥락 유지에 더 능숙한 분들이 흐름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주세요. 협의할 부분이 있다면 구체적인 숫자와 말로 바꾸어 제시해주세요. 하지만 너무 완벽하게 교정하려고 시도하지는 마세요. 그러면 ADHD인은 오히려 쉽게 지치고 따라오기 힘들어집니다. 목표를 단순하게 설정하고 여러 번에 걸쳐 개선한다는 생각으로 임해야 합니다. 단번에 개선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시면 안 돼요. 조율하는 과정 자체가 모두에게 좋은 배움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ADHD인들은 솔직하고 창의적이며 틀에 얽매이지 않는 개성을 갖고 있습니다. 때로는 이런 면모가 업무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나 개선점을 제시하고, 지루한 직장생활에 활력소를 가져다줄 수도 있습니다. 어떤 단점이든 뒤집으면 강점이 될 수 있어요. 이런 점을 잘 찾고 지지해주면 좋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생산성이 좋은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은 일종의 우생학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모두가 높은 기준을 향해 나아가며 생산성이 높아지면 개인에게는 어떤 이득이 돌아올까요? 자본만 살찌우고 개인은 지쳐서 나가떨어지지 않을까요? 모두에게 좀 더 다정한 동료가 되어주세요. ADHD인들도 생활에서 느끼는 불편을 어느 정도 개선하고 필요한 만큼의 치료를 통해 도움을 받겠다는 자세를 잃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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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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