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3월 1주차

BOOK SUMMARY
 인문 

당신의 분노에는 이유가 있다

저자 충페이충 (지은이), 권소현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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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2024.03
툭하면 화가 나는 당신을 위한 분노 처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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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분노에는 이유가 있다


분노를 이해하다

걷잡을 수 없는 분노, 이렇게 대처하라

당신은 분노한 경험이 있는가? 분명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최근에 언제 분노했는지, 누구에게 분노했는지 기억하는가? 살아오면서 가장 크게 분노한 건 언제이고, 그때 어떻게 대처했는가?


답을 생각하다 보면 누구나 분노를 경험하지만 계속 분노한 상태로 있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결국 분노는 지나간다.


그런데 분노는 어떻게 지나갈까? 분노의 감정이 끓어오를 때마다 어떻게 대처하는가? 분노를 환영하고 이용하는가? 아니면 배척하고 대항하는가?


우리는 알게 모르게 분노에 대처하기 위해 보통 4가지의 방식을 선택한다. 사람들은 분노를 대하는 태도가 단순한 편이다. 대다수가 분노를 억누르거나 아니면 표출한다. 심리적으로 성숙한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분노를 탐구하고 그 배후에 숨겨진 의미를 알고자 한다. 나아가 분노를 통해 자신에게 모종의 가치를 선사하기도 한다.


분노는 비바람이나 번개처럼 세상에 당연히 존재하는 자연의 일부다. 이를 이용하는 방법을 익히면 거대한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종종 재난이 된다.


분노를 탐구하는 첫걸음은 바로 ‘자신이 분노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내 안의 분노를 어떻게 다스리는가?

분노를 느꼈을 때 이를 혐오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분노가 바람직하지 않고 잘못된 감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자신의 분노를 억누른다. 분노를 억누른다는 것은 그 순간 자신의 분노를 허락하지 않고 분노가 외부로 드러나지 않도록 이성으로 통제하여 자신 안에 가둔다는 뜻이다.


자기 강요를 통해 분노를 억누른다

‘자기 강요’는 세상의 이치를 토대로 화내지 말 것, 감정 관리법과 수용하는 법을 배워 성숙한 사람이 될 것 등을 자신에게 설득하고 요구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가족에게 최고의 사랑을 주는 것이 선이다’, ‘사랑한다면 수용해야 한다’, ‘화내지 마라’ 등의 관념을 따른다. 이들은 분노를 참으면 분노가 없어진다고 여긴다.


자기 위안을 통해 분노를 억누른다

우리가 분노하는 이유는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별로 상처 입지 않았어. 그건 내게 별일 아니야.’라며 자신을 위로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심지어 ‘그만두자’, ‘화낼 가치도 없어’, ‘참아’, ‘그럴 필요 없잖아’, ‘난 상관없어’ 같은 말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자신을 다독인다. 일종의 정신 승리법인 이 방식 또한 본질적으로 분노를 억누른다.


분노 자체를 부인한다

자신의 억울한 감정을 소홀히 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사람 때문에 생긴 억울함을 참고 견디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인생이 원래 그렇지 뭐’라고 자조하는 말버릇이 이를 대변한다. 이들은 흔히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분노를 차단한다. 따라서 자신의 분노를 자각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분노의 감정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이들에게 “그 일이 정말 조금도 억울하지 않았어?”라고 물어보면 어떻게 답할까. 이들은 그런 일로 억울해하면 안 된다고 여긴다. 이들은 분노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일은 평범하고 정상적이라고 생각해서 분노할 필요가 없고, 이미 익숙해진 일을 겪었기 때문에 분노를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린다

분노를 느낄 때 이를 잊기 위해 다른 일을 강행하는 행동으로 분노에 대한 주의를 전환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일 때문에 분노가 일어나면 바쁘게 집안일을 하거나 술을 마신다. 화가 나는 순간에 다른 일을 이용해 분노를 강하게 끊어 내는 것이다.


나는 부모들이 이런 방식으로 자녀의 분노에 대처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아이가 화를 내면 부모가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은 아이의 상태에 관심을 보이며 무엇 때문에 억울한지 살피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주의를 전환하기 위해 “우리 맛있는 것 먹으러 갈까?”라고 아이의 분노를 모른 척한다. 또는 아이의 화난 모습을 촬영해서 보여주며 얼마나 보기 안 좋은지 알려 주기도 한다. 하지만 주의를 전환하면 분노를 잠재의식 안에 가둘 뿐, 분노는 사라지지 않는다.



분노는 기대다

한계를 넘어선 기대가 분노를 부른다

분노는 기대를 만족시키기 못했을 때 일어난다. 화난 사람이 있다면 그의 분노에 착안하여 그가 어떤 현실을 바라는지, 어떤 염원이 있는지 알 수 있다. 분노는 상대방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전달하는 매개가 되기 때문이다.


기대가 크면 분노도 크다

기대가 실현되지 않으면 우리는 분노한다. 그런데 기대가 실현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의 기대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제 기대는 높지 않아요. 모두 정상적이고 기본적인 기대잖아요. 설마 이 정도 기대도 안 하고 사는 건 아니죠?”


기대의 높고 낮음은 입장에 따라 달라진다. 분노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기대가 전혀 높지 않다. 하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분노한 사람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이유는 기대치에 도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분노하는 사람은 입장을 바꿔 생각하기 어렵다. 그저 자신의 관점에서만 볼 뿐 상대방의 관점을 헤아리지 못한다.


상대방도 나의 기대를 충족시키고 싶어 하지만 능력의 한계로 그러지 못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원래의 기대를 유지하면 분노하게 된다.


능력의 한계

상대방이 나의 기대를 실현할 능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3가지다.


첫째,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능력이므로 상대방도 마땅히 해내야 한다’고 여긴다.


기대의 높고 낮음을 판가름할 때 ‘모두’, ‘평범한 사람들’, ‘사람이라면’과 같은 말은 기준이 될 수 없다. 상대는 ‘모두’가 아닌 개인적인 주체와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정상적이고 평범하더라도 당사자인 그 사람에게는 어려울 수 있다.


둘째, ‘과거에 해낸 일이라면 지금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결혼한 사람들은 ‘이 사람이 예전만큼 잘해 주지 않아’, ‘예전에는 …이었는데 지금은…’이라며 원망한다. 그러고는 ‘나의 요구치는 높지 않으니 예전처럼만 대해 주면 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환경이 변하면서 우리의 몸과 마음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상대방이 나의 기대를 충족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지만, 정말 예전처럼 해내지 못할 때도 있다.


셋째, ‘다른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라면 나에게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다른 사람에게 잘해 주는데 나에게는 잘해 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분노한다. 상대방이 다른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을 나에게만 소홀하다면 별일 아닌 일에도 상처를 받고,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경우 상대의 사정이나 피치 못할 상황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저 나의 좁은 관점에서 주관적으로 관찰된 상대의 행동을 평가하고 분노하는 것이다.


의지의 한계

상대방의 능력을 넘어선 기대는 과잉이다. 그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나의 요구를 들어주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면 나의 기대는 상대방의 의지를 넘어선 것이니 상대방 입장에서 이것 역시 ‘기대 과잉’이다.


상대방은 왜 나의 요구를 들어주고 싶어 하지 않는 걸까? 상대방은 나의 요구가 가치가 없고, 자신에게 거는 기대가 불편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 불편함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자녀에게 순종하라고 요구하지만,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자녀는 부모의 통제를 원하지 않지만 부모는 통제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답답하다.


상대방이 중요한 사람이라면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고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여자친구가 퇴근길에 데리러 오라고 한다면, 그녀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가 그 길을 갈지 말지를 결정한다. 하지만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거나 불편함을 감수하고 싶지 않다면 ‘그 사람이 나에게 그럴 만한 가치가 없다’는 의미다.


상대방이 나의 요구를 들어주고 싶지 않은지, 아니면 능력이 부족한지 어떻게 판단할까? 이는 상황에 따라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우리는 이보다 분노할 때 생각해야 할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적은 것일까, 아니면 나의 요구가 많은 것일까?


상대방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화도 나지만 동시에 마음이 편해지기도 한다. 상대의 잘못이라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나의 요구가 많다면 나의 책임이고 나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


타인에게 너무 많은 것을 원한다고 자책하면 타인에 대한 분노가 나 자신에 대한 분노로 바뀐다. 너무 많은 것을 원한다고 탓하면 안 된다. 이때는 또 다른 고민을 해야 한다.


나의 요구가 상대방의 능력과 의지를 넘어섰을 때, 나의 기대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기대는 옳고 그름이 없다

여기까지 읽은 사람 중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기대를 품으면 안 되나요? 배우자나 아이에게도요? 기대가 없는 관계가 무슨 의미가 있죠? 기대하는 것이 잘못된 행동인가요?”


기대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 ‘기대를 하면 안 된다’의 도덕적 문제로 볼 것이 아니다. 문제는 기대가 크면 슬픔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기대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은 마음과 같은 바람이자 소망이다. 먹고 싶었던 기대감이 무너지고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없다면 괴로워진다. 즉,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과연 기대를 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기대가 바람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가’이다. 기대한다는 것은 이미 발생한 사실이므로 왜 기대했는지와 같은 생각은 불필요하다. 그저 지금의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만 생각하면 된다.


기대는 좋은 일이다. 미래를 동경하고 다른 사람에게 기대한다는 것은 세상을 살아갈 활력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분노가 아름다운 이유이기도 하다. ‘분노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분노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과 추구하는 바를 알려 준다.


분노는 기대가 너무 높다는 뜻일 수도 있다. 높은 기대를 해결하는 방식 중 하나는 포기다. 포기는 이 세상의 모든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만능 열쇠다. 어떤 일이든 포기만 하면 어려울 것이 없다.


기대 자체는 분노를 일으키지 않는다. 기대에 대한 집착이야말로 분노를 초래한다. 상대방이 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받아들일 수 없고, 그 현실을 거부할 때 분노 감정이 형성된다.


그렇다면 타인이 나에게 분노할 때는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 이 역시 상대방이 나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다는 의미다. 이때 상대를 위해 명확히 표현하자.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어?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는 거야?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상대방의 기대를 어느 정도 만족시켜 줄 수 있는지, 상대방은 자신의 기대를 어느 정도까지 포기할 수 있을지 함께 모색해 보자.



분노는 감정의 연결이다

분노 안의 수많은 감정을 보듬어라

분노는 언짢음이지만 언짢음이라는 하나의 감정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분노는 사실 좌절감, 억울함, 무력감, 두려움, 고독감, 불안 등 여러 감정으로 덮여 있다.


예를 들어 유난히 울적한 기분으로 퇴근한 어느 날, 아이는 큰 소리로 웃으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이 상황을 접했을 때 첫 번째 반응은 분노다.


“왜 또 텔레비전을 보는 거야!”


하지만 이 상황에서 느낄 감정을 곰곰이 생각해 보자. 분노 속에 또 어떤 감정이 있을까?


분노에 숨겨진 수만 가지 감정

분노의 배후에는 여러 감정이 숨겨져 있다. 위 사연의 경우 부모는 아마 좌절감을 느꼈을 것이다. 회사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고 퇴근 후 집에 오니 아이도 내 마음 같지 않다. 순간 ‘나는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 인생이 실패한 것 같고 스트레스가 밀려오며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좌절감을 삭일 수 없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심한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럴 때면 분노라는 방식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처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회사에서 사람들은 냉랭하고 경쟁이 치열하다. 아무도 나의 감정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집에 오니 남편은 나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아이는 텔레비전만 본다. 이 집에서 붙박이 가구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듯하다. 이럴 때 처량함이 엄습해 오지만 소화해 낼 수 없어서 분노로 표출한다.


억울함도 몰려든다. 회사에서 정신없이 일한 것에 비하면 월급이 너무 적다. 무엇을 위해 일하는 걸까? 아이에게 더 좋은 미래를 선물해 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를 이해해 주는 가족이 있을까? 말 안 듣는 아이는 공부할 생각은 없고 매일 텔레비전만 볼 뿐 엄마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모른다. 이때 억울함을 하소연할 곳이 없으면 분노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분노의 배후에 막막함도 있다. 가족들이 육아에 참여하지 않으면 집안일을 오로지 혼자 다 부담하는 것 같다. 이런 막막함을 견딜 수 없으면 폭발하고 싶다.


두렵기도 하다. 회사 동료가 업무에 성실히 임하지 않으면 화가 난다. 그 동료 때문에 팀의 실적이 나빠지고 연봉에 영향을 미칠까 봐 두렵다.


분노의 배후에는 수치심도 있다. 사람들이 내가 뚱뚱하다고 비웃고, 가난하다고 비웃고, 못생겼다고 비웃으면 화가 난다. 그들의 말이 맞고 그것이 정말 나의 단점이기 때문에 화가 나고 수치스럽다.


분노는 공격적인 감정이다. 분노의 감정에 놓인 사람은 매우 강해 보인다. 분노하는 사람 역시 자신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의 행동이 너무 지나쳤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줬을까 봐 걱정하고 자책한다. 나의 분노를 감당하는 사람은 더욱이 나의 분노는 잘못됐고 기분을 상하게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분노를 표현하는 사람과 상대방의 분노를 감당하는 사람 모두 분노를 통해 감정 외의 다른 것에 관심을 보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실 분노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상처이다.


분노는 상처를 포장하고 있다. 분노한 사람은 자신의 ‘상처’를 표현할 방법이 없고, 심지어 ‘상처’를 의식하지 못하며, 다른 사람이 알게 하고 싶지도 않기에 분노를 이용해 자신을 보호하고 계속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자극의 원인을 막아내고자 한다.


이처럼 우리가 분노하는 이유는 우리의 나약함이 활성화됐기 때문이다.


나약함을 드러낼 수 없는 이유

분노한 사람은 온몸에 뾰족한 가시가 가득한 고슴도치와 같다. 고슴도치의 가시를 젖혀 보면 부드러운 가죽과 살이 보이듯이, 분노는 연약한 마음과 상처받은 자신을 보호하고자 한다.


분노는 보호를 위한 감정이다. 분노의 배후에는 다양한 형태로 상처받은 수많은 내가 있다. 분노한 사람의 경험은 나약한 모습을 숨기라고 거듭 경고한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어. 지금 내가 어떤 기분인지, 내가 지금 어떤 감정을 겪고 있는지 아무도 상관하지 않아.’ 분노한 사람은 왜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숨길까? 나약함을 드러내기에 어려운 이유가 있다.


어렸을 때부터 나약함을 표현해도 된다고 가르쳐 준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나 자신조차도 자신이 상처받았는지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결국 자신의 나약함을 깨달을수록 그 나약함은 관심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럴수록 괴로워진다. 그렇게 괴로워하느니 자신도 더 이상 살펴보지 않기로 한다.


내 안의 나약함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라

분노한 나의 나약함을 보려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나 자신은 나의 나약함을 봐야 하며,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더 좋아질지’ 생각하고 결심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누가 옳고 그른지보다 나의 기분과 감정, 그리고 내가 더 편안해지는 방법이 더 중요하다.


분노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식은 나약함을 해결하는 것이다. 나약함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소연과 경청이다. 다른 사람에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감정을 배출할 수 있고, 그 감정은 위로를 받으며 역으로 발전할 수 있다. “사실 나는 억울해.”라고 말하면 억울함이 반으로 줄어든다. 또 “에너지를 계속 소모해서 너무 지쳤어.”라고 말하면 피로감이 줄어든다. 또는 “나는 너무 형편없는 것 같아. 자신감이 떨어져.”라고 말하면 자존감이 다시 올라간다. 이처럼 나약함을 직접 드러내면 다른 사람의 이해를 구하기가 쉽다.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몇 가지 방법만 알면 충분히 안전하게 표현할 수 있다.


첫째,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환경을 만든다. 예를 들어 적절한 시기에 상대방에게 “지금 나의 기분을 말해도 될까?”라고 물어본다. 상대방이 나의 마음을 살펴볼 여유가 있다면 그때 나의 마음을 표현한다. 나약함을 드러낼 때 상대방의 공격을 받는 이유는 자신의 세계에 빠진 상대방이 나의 상처받은 마음을 돌볼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도 모르고 하소연을 시작하면 거부당하기 십상이다.


둘째, 흉금을 털어놓듯이 한 번에 다 말하지 않는다. 나의 나약함을 순차적으로 조금씩 드러내자. 먼저 작고 가벼운 나약함에 대해 말해 보고 상대방이 관심을 기울이면 깊은 속마음을 차분히 이야기하면 된다.


셋째, 나약함의 원인을 알려 준다. 두려움이나 막막함을 느낄 때 상대방에게 왜 그런 기분인지 알려 줘야 한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이해할 거야’, ‘이런 상태는 누구나 겪지’와 같은 환상은 접어 두자. 나약함의 원인을 상대방에게 자세히 들려주면 이해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넷째, 상대방의 나약함에 먼저 관심을 갖는다. 상대방이 위로를 거부하는 것은 그 역시 똑같이 나약하기 때문이다. 그에게도 ‘나약해지면 안 돼’와 같은 내재적인 규칙이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나약함을 보지 못하고, 나의 나약함을 살필 능력도 없다. 자신의 나약함을 허용하지 못하는 그는 당연히 나의 나약함을 허락하지 않는다.


먼저 상대방의 나약함에 관심을 기울이고 자신의 나약함을 드러내면 두 사람 사이의 나약함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약함이 서로를 향해 이동해야 진정한 감정이 유발된다. 서로의 나약함을 느끼면 분노를 일으킨 그 일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고 서로를 향한 진심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다른 사람이 분노할 때 황급히 반응하지 말고 상대방이 어떤 나약함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상대방을 대신해 나약함의 일부를 드러낼 수 있다면 훌륭한 감정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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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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