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8월 1주차
 인문 

여성이 말한다

저자 이베트 쿠퍼(역:홍정인)
출판 교유서가
출간 2022.09
부디카에서 그레타 툰베리에 이르기까지 세계를 바꾼 여성의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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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말한다


부디카 ‘한 여자의 결단’

2000년 전 고대 영국의 전사 여왕은 이 놀라운 연설을 남겼다. 여성이 공개 석상에서 한 연설 중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손꼽히는 이 연설은 외세의 침략에 맞서는 맹렬한 포효이다.


서기 60년 부디카의 남편이 세상을 떠났을 때 로마인들은 이케니족의 영토 및 통치 계승권이 부디카와 그녀의 딸들에게 있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디카는 채찍을 맞고 딸들은 강간을 당했으며 다른 부족 원로들은 살해되었다. 켈트족들은 로마인의 잔혹함에 분개해 봉기를 일으켰다. 켈트족 연합군은 부디카의 지휘 아래 건물을 불태우고 수천 명의 적군을 죽이며 콜체스터와 런던을 장악했지만 결국에는 미들랜드 어딘가에서 치른 워틀링가 전투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에 따르면 부디카는 최후의 전투에 출정하기 전 부족들을 상대로 이 연설을 했다.


이 연설의 미사여구는 상당 부분 타키투스에게 빚을 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딸들과 영토를 수호하기 위해 인민의 사기를 고취하는 여성 장수의 전설은 영국 민담의 역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부디카가 호전적인 주전론자였고, 두려움을 모르는 어머니이자 군주였기에 그녀의 이야기와 이미지는 수세기 동안 반복적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엘리자베스 여왕과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부디카를 기념하는 상징물이 많이 세워졌다.


“그러나 지금, 나는 귀족 혈통을 물려받은 여자로서가 아닌 인민의 한 사람으로서 잃어버린 자유와 매질당한 나의 육신과 정조를 유린당한 내 딸들을 위해 복수하리라. 로마인의 탐욕은 그 정도가 극심해 우리의 인격과 우리의 시대와 우리의 순결까지 모조리 더럽혔다. 하지만 하늘은 우리의 정당한 복수 편에 있다. 감히 우리와 맞서겠다고 나섰던 로마군단은 이미 괴멸되었다. 나머지는 주둔지에 숨었거나 초조해하며 꽁무니 뺄 궁리나 하고 있다. 놈들은 우리의 진격과 공격은 물론이요, 수천 군사의 소음과 함성조차 견디지 못하리라. 그대들이 우리 군의 힘을, 그리고 이 전쟁의 대의를 잘 가늠하고 있다면 이 전투에서 그대들은 정복이 아니면 죽음뿐임을 알리라. 이것은 한 여자의 결단이다. 남자들은 살아남아도 노예가 되리라.”



엘리자베스 1세 여왕 ‘군주의 심장과 뱃심’

1588년 엘리자베스 1세가 이 연설을 했을 당시 그는 왕위에 오른 지 벌써 30년이 되는 해였지만 영국은 여전히 분열 상태였고 어려움이 많았으며, 막강한 스페인 무적함대의 침략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여왕이 틸버리에 도착했을 때는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영국 해군과 전투를 치르고 물러난 상태였으므로 침략의 위협은 점차 사그라든 뒤였다. 그렇지만 몸소 말을 타고 와 그 자리에 집결한 수천 명의 군사 앞에서 연설하겠다는 엘리자베스의 결정은 영리하고도 탁월했다.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무찌른 사건은 영국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어 이때부터 영국은 떠오르는 군사 강국으로서의 자긍심과 자아상을 갖게 되었다. 시기의 적절함, 행사의 화려함, 사용된 문구가 조합되어 나오는 이 연설의 힘은 이후 줄곧 엘리자베스와 영국의 승리를 하나로 묶고, 엘리자베스와 영국의 막강함을 하나로 엮었다.


부디카와 마찬가지로 엘리자베스도 자신이 군사를 위해, 군사와 함께 대화하고 있다고 설득하기 위해 애썼다. 부디카는 자신을 “인민의 한 사람”으로 칭하고, 엘리자베스는 “그대들 모두와 더불어 살고 죽으리라”라고 맹세하고 있다. 부디카와 마찬가지로 엘리자베스는 침해와 불명예의 이미지를 환기시킨다. 부디카는 “매질당한 나의 육신, 정조를 유린당한 내 딸들”에 대한 복수를, 엘리자베스는 “불명예”와 “감히 내 영토의 경계를 침범할 생각”으로 여왕을 조롱하는 모든 군주에 대한 복수를 촉구한다.


부디카에게 여왕에 대한 모독은 곧 이케니족에 대한 침략행위이고, 엘리자베스에게 영국에 대한 침략 행위는 ‘처녀 여왕’에 대한 모독이다. 부디카는 ‘이것은 한 여자의 결단’이라며 여성성을 곧장 강점으로 이용했지만,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여성성을 부인하는 능력을 보이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을 강점으로 바꿀 수 있었다. 엘리자베스 연설의 가장 유명한 문구가 이를 잘 보여준다. “나는 그저 약하고 가냘픈 여자의 육체를 가졌지만, 나에게는 군주의 심장과 뱃심이 있다.”


“나의 사랑하는 백성들이여, 우리의 안전을 염려하는 일부 사람들은 배신을 두려워하며, 무장한 군중에게 우리 자신을 내맡기는 것을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고 우리를 설득해왔다. 그러나 나는 사랑하는 충직한 나의 백성을 불신하고 살 마음이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폭군들은 두려워하라. 나는 언제나 바르게 처신해왔기에 하느님 다음으로 내 백성의 충직한 마음과 선의에 내 최고의 힘과 호위를 맡겨왔노라. 그리하여 나는 지금 이렇게 그대들에게 왔다. 유흥이나 오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장의 심장부에서 그대들 모두와 더불어 살고 죽으리라 결심했기에, 비록 죽어서라도 나의 하느님을 위해, 나의 왕국을 위해, 나의 백성을 위해, 나의 명예와 나의 혈통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으리라 결심했기에. 나는 그저 약하고 가냘픈 여자의 육체를 가졌지만, 나에게는 군주의, 더욱이 잉글랜드 군주의 심장과 뱃심이 있다.


파르마든 스페인이든 유럽의 어느 군주든 감히 내 영토의 경계를 침범할 생각을 품는다는 것은 나에 대한 치명적인 조롱이다. 나의 불명예가 크기를 더해가도록 내버려두느니, 내 몸소 무기를 집어들고, 내 몸소 지휘관이, 판관이, 전장에서 미덕을 발휘하는 모든 이를 포상하는 이가 되리라. 나는 그대들이 지금까지 보여준 진취성만으로도 이미 보상과 화관을 받을 자격이 있음을 안다. 우리는 그대들이 군주의 명령 아래 적절한 상을 받을 것임을 분명히 하노라. 그동안 내 부지휘관이 나를 대신할 것이다. 그대들은 군주의 명령을 받드는 그 어떤 백성보다 고귀하고 훌륭하다. 나에게는 한 치의 의심도 없다. 내 지휘관에 대한 그대들의 복종이 있으니, 병영에서 그대들의 조화가 있으니, 전장에서 그대들의 용맹함이 있으니, 조만간 우리는 나의 하느님의, 나의 왕국의, 나의 백성의 적을 물리치고 이름 높은 승리를 거두리라.”



오드리 로드 ‘깨져야 할 침묵은 너무나 많습니다’

1977년 오드리 로드(Audre Lorde)의 연설은 내가 이 책을 쓴 목적을 다른 어떤 연설보다 잘 요약하고 있다. 이 연설에서 로드는 침묵의 무력함과 말의 힘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우리는 남의 눈에 띄고 취약해지는 것이 두려워 자주 침묵해버리지만 언어에 강력한 힘이 있음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흑인이고 레즈비언이며, 어머니이고 투사이자 시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로드는 페미니즘과 시민권운동의 열렬한 옹호자였다. 로드는 1934년 뉴욕에서 태어나 사서, 작가, 교수로 일했으며, 1968년 첫 시집을 출간했다. 로드의 글은 상당 부분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하고 있으며, 그녀는 주로 흑인 여성의 정체성과 그들이 삶에서 맞닥뜨리는 경험에 관해 강렬한 글을 써왔다. 로드는 ‘시스터 아웃사이더(Sister Outsider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이 사회가 여성으로 받아들이는 경계선 밖에 있는 우리, 다름의 도가니에서 벼려진 우리-가난한 우리, 레즈비언인 우리, 흑인인 우리, 나이든 우리-는 생존이 학문적 기술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생존은 우리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이 다름을 우리의 힘으로 만드는 법을 배우는 일입니다. 주인의 도구는 결코 주인의 집을 허물지 않습니다.”


이 책에 수록된 연설은 로드가 현대언어협회에서 발표한 소논문이다. 로드는 유방암에 대한 두려움에서 이제 막 벗어난 상태였다. 로드는 자신이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고찰하며 “당신의 침묵은 당신을 보호해주지 않는다”고 경고하면서 우리를 분리하는 다름 사이에 다리를 놓아 ‘침묵의 폭압’에 함께 맞서 싸우는 여성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 연설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이 때로는 얼마나 어려운가에 대해, 그리고 타인의 검열이나 냉소를 무릅쓰고라도 자신의 생각과 언어를 드러내는 것에서 오는 불안감에 대해 로드가 보여주는 이해와 솔직함이다. 로드는 연설을 하거나 글을 쓰거나 심지어 트위터에 짧은 글을 남길 때조차 우리가 느끼곤 하는 취약함, 또 자기 언어를 세상에 내놓을 때 느끼는 불안감을 생생히 포착하고 있다. 하지만 로드는 이 취약함이야말로 우리의 인간성을 이루는 일부라고, 우리는 “상처 입고 오해받을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공유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저는 상처 입고 오해받을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반드시 이야기해야 한다고, 반드시 언어화하고 공유해야 한다고 거듭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


당신이 아직 갖지 못한 말은 무엇입니까? 당신이 해야 할 말은 무엇입니까? 날마다 속으로 집어삼키며 당신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그 폭압은 무엇입니까? 아파서 죽을 지경이 되도록 여전히 침묵하면서요. 어쩌면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어떤 분들에게 저는 그분들 마음속에 자리한 두려움의 얼굴일 것입니다. 저는 여성이기에, 흑인이기에, 제 자신이기에 그러니까 내 할일을 하는 흑인 여성 시인 전사이기에 이렇게 여러분에게 와서 묻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할일을 하고 있습니까?


물론 제 목소리에서 이미 느끼셨겠지만 저도 두렵습니다. 침묵을 말과 행동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이고, 이러한 행위는 늘 위험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 딸아이에게 우리가 오늘 다룰 주제와 여기에 따르는 어려움에 관해 이야기하니 그 아이는 이렇게 대꾸하더군요. “침묵을 지키면 결코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없다고 그분들에게 말해주세요. 누구나 마음속에 꼭 하고 싶은 말이 한가지쯤은 있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그것을 계속 무시하면 그 말은 미친 듯이 뜨겁게 달아오를 것이고 어느 날 갑자기 위로 치밀어 입을 세게 때리고 말 것이라고요.”


우리는 침묵하는 이유를 이야기할 때 각자 가진 두려움에 의지합니다. 경멸을 받을까 두렵고, 검열이나 비판의 대상이 될까 또는 인정받지 못할까 두렵고, 이의제기가 있을까 두렵고,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까 두렵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가시화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가시화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마거릿 대처 ‘이 여자에게 유턴은 안 됩니다’

1980년 가을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가 이 연설을 할 때는 영국의 첫 여성 총리로 취임한 지 겨우 18개월째였다. 대처는 이미 그동안의 경제정책과 매정한 태도 때문에 맹비난을 받고 있었고, 200만 명이 넘은 실업자 수는 여전히 증가 추세였다.


어쩌면 연설에서 대처는 보상하려고 했을 수도 있고, 방어적이었을 수도 있고, 그저 당의 평소 입장에 의존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제는 명언이 된 “유턴하고 싶으면 당신이나 하십시오. 이 여자에게 유턴은 안 됩니다(You turn if you want to, the lady's not for turning)”라는 선언과 함께 대처는 자신의 경제 및 도덕 철학을 마치 전도하는 듯한 완강한 태도로 광범위하게 설명했다. 바로 ‘대처리즘’이다.


전당대회의 연설치고 내용이 상당히 진지하며 주장이 명료하고 단순하다. 이 부분은 이 책에 수록되지 않았지만 대처는 장관들에게 의례적인 헌사를 바친 뒤 실직자가 발생하더라도 통화공급을 억제하고 인플레이션을 막는 통화주의가 필요하다는 자신의 신념을 약술한다.


“이 나라가 회복의 길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선결조건이 따릅니다. 비단 경제 회복만이 아니라 새로운 자립정신과 성취를 향한 열정까지 아울러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따금 우리 영국 국민은 우리의 과거 때문에 지나치게 기대가 크고 목표를 높이 잡는다는 말을 듣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가 정치계에 몸담았던 동안 우리의 포부는 줄곧 쪼그라든 것 같습니다. 실망스러운 현실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보폭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갈 길을 단축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자신과 우리 미래에 대한 신뢰가 있다면 우리는 얼마나 위대한 나라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우리 정부는 첫 17개월 동안 회복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우리는 과중한 입법 과제를 떠맡아 수행했는데, 그 일을 다시 반복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통과된 법안의 개수로 성과가 측정된다고 믿는 사회주의적 환상에 공감하지 않으니까요. [......]


위대한 국가는 국민이 자발적으로 창출한 것입니다. 국가를 구성하는 국민은 스스로 자긍심을 느끼는 어떤 것을 공동체에 줄 수 있다는 사실에서 자긍심을 느낍니다. 우리 국민이 자신이 위대한 국가의 일부라고 느끼고, 이 국가를 계속 위대하게 만들 의지가 있다면 우리는 위대한 국가일 것이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성취를 방해하는 장애물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우리를 가로막습니까? 또다시 불만의 겨울이 우리를 기다린다는 전망일까요?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가 지난 경험에서 교훈을 얻었을 것이라고 믿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느리고 고통스럽더라도 이해의 가을이 올 것이라고 믿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가을이 지나 상식의 겨울이 도래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지금의 경로에서 벗어나지 못할 테니까요.


언론에서 좋아하는 그 ‘유턴’이라는 구호를 숨죽여 기다리는 자들에게 제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것뿐입니다. “유턴하고 싶으면 당신이나 하십시오. 이 여자에게 유턴은 안 됩니다.””



앙겔라 메르켈 ‘갑자기 문이 열렸습니다’

“무지와 편협의 벽을 무너뜨립시다. 그 무엇도 이대로 유지될 이유가 없으니까요.”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이 한 말이다. 다만 이 책에 실린 2009년 미국 의회에서 한 연설이 아닌 10년 뒤인 2019년 하버드대학의 졸업 축사에서였다.


메르켈은 하버드대학에서의 연설 대부분을 통역을 거쳐 독일어로 했지만 이 문구에서는 갑자기 청중에게 영어로 이야기했다. 이 간단한 문장을 통해 청중들이 도널드 트럼프가 세우려는 벽과 독일이 무너뜨린 벽을 떠올리며 마음속에 자리한 편견의 벽을 돌아보게 했다. 메르켈은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유명한 1987년 연설을 신중히 상기시켰다. “미스터 고르바초프, 이 벽을 허무십시오.”


메르켈의 하버드대학 연설은 미국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대한 신중하고 단호한 반대 의사 표명으로 널리 해석되었다. 하지만 메르켈은 단지 트럼프에게만 반발한 것이 아니었다. 2019년 하버드대학 연설에 담긴 수많은 생각과 이미지와 비유는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훨씬 전인 2009년 미국 의회 연설에서도 이미 표현한 바 있었다. 2009년 베를린장벽 붕괴 20주년 기념행사에서 메르켈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서로 다른 삶의 개념 사이에 세워진 벽들을 허물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습니다...... 사람들 마음속에 자리한 이 벽은 서로에 대한 이해를 자꾸만 방해합니다.”


2009년의 연설은 메르켈이 훗날 내리게 될 중요한 결정들에 관한 많은 것을 설명한다. 메르켈은 이 연설에서 세 가지, 즉 ‘우리 마음속의 벽, 근시안과 이기심의 벽, 현재와 미래 사이에 놓인 벽’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메르켈이 의미한 것은 바로 편견, 보호무역주의, 기후변화 대처의 실패였다.


안타깝게도 메르켈이 언급한 벽들은 미국 의회 연설과 하버드대학 연설 사이 10년 동안 더욱 높아진 것 같다. 유럽과 미국 전역에서 극우 극단주의와 증오범죄가 증가했고, 무역장벽이 늘고 있으며 정치적 분열이 심화되고 유엔기후변화협약은 위협받고 있다.


하지만 어쩌면 두 연설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변화에 대한 메르켈의 믿음일 것이다. 메르켈의 꾸준한 낙관주의. 메르켈은 그 벽들이 아무리 어둡다고 해도 우리는 문을 찾을 수 있다고 여전히 믿는다. 메르켈은 이것을 2009년의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우리가 20세기에 철조망이 쳐진 콘크리트 벽을 무너뜨릴 힘을 찾아냈듯이 오늘날 우리에게는 21세기의 벽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미셸 오바마 ‘저들이 낮아질수록 우리는 높아집시다’

미셸의 연설은 언제나 대단히 개인적이고 자연스러웠다. 기품과 온정과 권위가 경이로운 조화를 이루는데 마치 사적인 담소를 나누거나 친구나 가족과 대화하듯이 편안하다. 독특하게도 미셸은 매우 다정한 인상을 주면서도 동시에 늘 놀라울 정도로 냉철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미셸의 연설에서도 드러난다.


인용한 글에서 미셸은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유세 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된 때를 회상한다. 오바마 부부의 딸들에 관한 이야기는 이내 만인의 딸과 아들에 관한 이야기가 된다. 미셸은 이렇게 개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사이를 자연스레 오간다. 서사의 중간에 ‘자기’와 가족의 이야기가 ‘우리’와 국가의 이야기로 바뀌는 순간이 있는데 이 순간은 놀라우리만치 강렬하다.


“이것이 이 나라의 이야기입니다. 오늘밤 저를 이 단상으로 이끈 이야기. 속박의 채찍을, 노예의 수치를, 분리정책의 독침을 체감했으나 계속 분투하고, 소망하고, 할일을 한 세대들의 이야기. 그리하여 오늘날 저는 노예의 손으로 지은 집에서 매일 아침 눈을 뜹니다. 그리고 아름답고 지적인 흑인 아가씨가 된 저의 두 딸이 백악관 잔디밭에서 개와 함께 뛰어노는 것을 바라봅니다.”


미셸 오바마는 연설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확실하고 강력하게 지지했다. 그녀는 트럼프의 이름을 한 번도 직접 거명하지 않으면서 트럼프의 대통령직에 관해 명료하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 시기 트럼프 선거운동 유세장에 모인 군중은 힐러리 클린턴을 감옥에 가두라거나 교사시키라고 외쳤고, 충격적인 여성 혐오 행태를 보였다.


이 연설은 천박한 정치계에 대한 강력한 도덕적 대응이자 민주주의의 품위에 대한 폭넓은 요청이었다. 그리고 이 요청은 2016년 대통령 선거운동이 끝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여러 국가와 온라인에서 정치가 양극화되고 독설과 폭언이 난무하는 이 시기에 미셸 오바마가 한 말들은 우리가 어떻게 우리 정치에서 품위와 기품을 되찾을지에 관한 교훈을 준다.


“저들이 낮아질수록 우리는 높아집시다.


우리의 좌우명은 이렇습니다. 저들이 낮아질수록 우리는 높아지자.


우리가 하는 말, 우리가 하는 행동을 우리 아이들이 보고 있습니다. 부모로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롤모델입니다.


버락과 저는 대통령과 퍼스트레이디라는 역할에서도 똑같은 접근방식을 취했습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은 우리 딸들뿐만 아니라 전국의 모든 어린이에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힐러리 클린턴 같은 지도자들은 계속해서 다시 돌아와 가장 높고 단단한 유리천장에 금을 내고 마침내 구멍을 뚫어 우리 모두를 함께 데리고 올라갈 뚝심과 품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 나라의 이야기입니다. 오늘밤 저를 이 단상으로 이끈 이야기. 속박의 채찍을, 노예의 수치를, 분리정책의 독침을 체감했으나 계속 분투하고, 소망하고, 할일을 한 세대들의 이야기. 그리하여 오늘날 저는 노예의 손으로 지은 집에서 매일 아침 눈을 뜹니다. 그리고 아름답고 지적인 흑인 아가씨가 된 저의 두 딸이 백악관 잔디밭에서 개와 함께 뛰어노는 것을 바라봅니다.


힐러리 클린턴 덕분에 저의 딸들과 우리의 모든 아들딸은 이제 여성이 미합중국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누구라도 이 나라가 위대하지 않다고 말하게 내버려두지 맙시다. 이 나라가 다시 위대해져야 한다고 말하게 내버려두지 맙시다. 왜냐하면 이 나라는 바로 이 순간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 * *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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