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어봐줘서 고마워요
 
지은이 : 요한 하리(역:김문주)
출판사 : 쌤앤파커스
출판일 : 2018년 12월




  • 탐사보도 전문기자이자 영국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이 뽑은 ‘올해의 저널리스트’에 2번이나 이름을 올린 이 책의 저자 요한 하리는, 수억 명의 사람들이 자신과 같이 우울하고 불안해하는 이유를 추적하기 위해 이후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6만 5,000km가 넘는 여정을 소화하며 전 세계 200명 이상의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했다. 그의 놀라운 여정을 기록한 ≪물어봐줘서 고마워요≫는 우리가 지금껏 진실이라 믿어왔던 우울과 불안의 모든 것에 대해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물어봐줘서 고마워요


    아무도 물어봐주지 않은 슬픔, 불안, 우울

    기적의 약

    존 헤이가스 박사는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영국의 작은 도시 바스 전역과 서구 세계 곳곳에서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오랫동안 통증 때문에 반신불수로 지내오던 사람들이 병상에서 벌떡 일어나 다시 걷기 시작했다.


    존은 코네티컷에서 온 엘리샤 퍼킨스라는 미국인이 세운 회사가 몇 년 전, 자신들이 모든 종류의 통증을 사라지게 해주는 해결책을 발견했다고 발표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들이 특허를 낸 ‘트랙터’라는 두꺼운 철제 침이 그 해결책이었다. 이 사람들은 트랙터가 몸에 닿지 않도록 간격을 유지하며 환자의 온몸을 훑었다. 그리고 일단 치료가 끝나고 나면 효과가 나타났다. 분명 절망적이던 환자들의 상당수가 침대에서 벗어나게 됐다. 처음에는 말이다.


    존은 실험을 실시해 보기로 했다. 바스 종합병원에서 그는 평범한 나무막대기 하나를 가져와 오래된 쇠막대기처럼 보이도록 칠했다. 그는 가짜 ‘트랙터’, 즉 진짜 트랙터가 지녔다는 특별한 효능이 하나도 없는 침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1799년 1월 7일, 실력 있는 의사 5명이 증인으로 참석한 가운데 존은 그 막대기로 환자들의 몸을 훑었다, 5명의 환자 중 4명은 가짜 트랙터 덕에 즉각적으로,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회복됐다고 믿었다. 이들은 나무 대신 오래된 뼈다귀로 똑같은 실험을 진행했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일부 환자들에게 그 효과는 그다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잠깐 기적이 일어난 후, 이들은 다시 불구가 됐다.


    가짜 약의 놀라운 효과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 책을 쓰기 위해, 20년 이상 의학저널에서 논의되고 있는 항우울제에 대한 과학적인 논쟁을 읽었다. 놀랍게도 이러한 약물이 우리에게 어떤 작용을 하는지, 왜 그런 작용을 하는지 잘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였다. 그런데 이 논의에서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이름 하나가 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어빙 커시 교수였다. 내가 매사추세츠에서 그를 만났던 당시, 그는 하버드 의학대학원에서 가장 중요한 프로그램의 부책임자를 맡고 있었다.


    1990년대에 어빙 커시는 자신의 저서가 빼곡히 꼽힌 집무실에 앉아 환자들에게 항우울제를 반드시 복용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약이 때로는 효험을 발휘하고 때로는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을 눈여겨봤다. 그러나 그는 약물요법이 성공을 거두는 이유에 대해서는 확신하고 있었다. 우울증은 낮은 세로토닌 농도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고, 이 약물들이 세로토닌 농도를 높여준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빙 역시 존 헤이가스가 처음 가짜 마법의 막대기를 휘두르던 바로 그 시절, 바스에서 시작된 과학 분야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권위자였다. 당시 영국의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의학적 처방을 내릴 때, 그 치료가 환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한 설명을 제공했다. 그리고 헤이가스는 의사가 환자에게 하는 설명이 놀랍게도 약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는 후에 ‘플레세보 효과’라 알려지게 됐다. 플라세보 효과는 염증이 생긴 턱을 정상으로 돌려놓거나 위궤양을 치료할 수 있다. 플라세보 효과는 대부분의 의학적 문제를, 적어도 어느 정도는 완화시킬 수 있다.


    모든 것이 화학적 불균형 때문인가?

    죄책감을 느낀 의사들

    “우울하거나 불안한 사람들의 뇌 속에 화학적 불균형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없어요.” 뛰어난 전문가 가운데 한 명인 조앤나 몬크리프 교수는 런던 대학교에 있는 자신의 연구실에게 내게 확실하게 말했다. “그 용어는 전혀 말이 안돼요. 우리는 ‘화학적으로 균형을 이룬’ 뇌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니까요. 약물은 인공적인 상태를 만드는 거죠.” 단순히 화학적 불균형 때문에 정신장애가 생긴다는 개념 자체는 제약회사들이 우리에게 약을 팔기 위해 만든 ‘미신’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과학자 중 한 명인 존 이오아니디스와 이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그는 제약회사들이 간단하게 증거를 무시하고 약들을 시장에 내놓았다 해도 전혀 놀라울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것이 항상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항우울제들의 개발단계에서부터 그들이 내 입속에 도달하는 과정까지를 설명해주었다. “제약회사들은 가끔 자체적인 실험들을 실시해요. 그들은 그 어디에서도 연구 지원금을 받을 수 없는 가난한 연구자들을 끌어들여요. 그들은 실험결과를 어떻게 기록하고 보여줄지에 대한 통제력이 거의 없어요.” “일반적으로 (발표된 과학적) 보고서를 쓰는 사람은 회사 직원들이에요.”


    이러한 결과는 그 후 규제 담당자들에게 전달된다. 그러나 미국에서 규제 담당자들의 40%는 제약회사로부터 임금을 받는다. 이들이 세운 규칙은 약품이 놀라울 정도로 쉽게 승인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다. 전 세계 어느 곳에서든, 아무 때나 약품이 어떤 긍정적인 효과를 가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2번의 실험만 실시하면 되는 것이다. 요컨대 1,000번의 실험에서 약이 전혀 효과가 없다는 결과가 998번 나와도, 2번만 미약한 효과를 발견하면 이 약은 우리 동네 약국에 진열될 수 있는 것이다.


    혹자들은 어빙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래, 그러니까 플라세보 효과라고 치자. 그 이유가 뭐든 사람들은 기분이 나아진 거잖아. 왜 그 마법을 깨려고 해?”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임상시험은 항우울제의 효과가 대부분 플라세보라는 것을 보여주지만, 부작용은 그 화학물질들 자체가 발생시키는 것이고 매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요. 당연히 몸무게가 늘어나요.” 그리고 일단 항우울제의 효과를 보기 시작하면 이를 중단하기 어려워진다. 약 20%의 사람들이 심각한 금단증상을 경험한다. “플라세보 효과를 얻고 싶다면, 적어도 안전한 약을 쓰도록 하세요. 세인트존스워트(항우울 작용을 한다고 알려진 여러해살이 풀) 같은 약초를 처방할 수도 있어요.” 어빙은 자신이 오랜 세월 동안 그런 약들을 환자들에게 권유했던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고 내게 나지막이 고백했다.



    스스로를 독방에 가두고서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 의미 있는 일로부터의 단절

    조 필립스는 하루가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필라델피아의 페인트 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그의 하루는 언제나 똑같다. 손님이 페인트를 한 통 달라고 하면, 그는 손님에게 차트를 보여주며 정확한 색을 고르라고 한 후 그 색의 페인트를 준비한다. 그 누구도 조가 그 일을 잘하는지 형편없게 하는지 눈여겨보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능력과 성장할 수 있는 힘, 내가 일하는 이 회사에 진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을 어떻게 쌓아야 할지에 대해 고민했다.


    “이 일이 하고 싶어 죽겠다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리고 저도 그걸 잘 알아요. 감사해야 할 일이죠.” 그는 적당한 돈을 받았고, 꽤 괜찮은 집에서 살았다. 때문에 자신이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는 것에 죄책감이 든다고 했다. “그러니까 계속해서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그 일이 단조롭기 때문이에요. 기쁨은 어디 있을까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 공허함을 채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러한 공허함이 뭔지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요.” 그는 말했다.


    하루는 조가 내게 연락을 해왔다. 인터넷에서 나의 강연을 듣다가, 내가 최근 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인 경증의 중독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싶어졌다는 것이다. 그때 그는 내게 이야기를 들려줬다.

    조는 어느 날 친구와 카지노에 갔다. 그곳에서 누군가가 그에게 작은 파란색 알약을 건넸다. 아편성 진통제인 옥시콘틴 30mg이었다. 조는 그 약을 먹었다. 기분 좋은 나른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며칠 후, 그는 일할 때에도 그 약을 먹었다.


    영혼을 갉아먹는 직장

    옥시콘틴이 그를 공허하고 무기력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처음에 나는 그가 중독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대학 시절에도 술을 진탕 처마시고 대마초나 코카인을 했던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때는 가끔 열리는 파티 외에 이런 것들을 복용하고 싶은 충동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고 했다. 그가 약에 취하기 시작한 것은 영혼 없는 직장에 들어가 스스로를 막장이라고 생각하게 된 후였다. 옥시콘틴을 끊고 몇 달이 지나자, 조는 견디기 어려웠던 과거의 감정을 다시 느끼기 시작했다.


    2011~2012년 사이에 여론조사기관 갤럽은 전 세계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역사상 가장 구체적인 조사를 실시했다. 142개국의 노동자 수백만 명을 연구했고, 우리 가운데 13%가 직업에 ‘몰입’하고 있음을 밝혀냈다. 이와 대조적으로 63%는 ‘대충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23%는 ‘업무를 방해’하고 있었다. 갤럽 연구에 따르면 87%의 사람들이 조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적어도 자기 자신과 그가 어느 정도 비슷하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나는 조와 식사를 마친 후, 이 모든 것이 우울증이나 불안증의 증가추세에 기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흔한 우울증 증상 가운데 ‘비현실감’이 있다. 당신이 하는 일은 전혀 현실적이거나 진정하지 않다고 느끼는 증상이다. 조가 하고 있는 일을 한평생 해야 한다면, 누구나 그렇게 반응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이 사람들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에 대한 과학적 증거를 찾기 시작했다.


    중요한 건 지위가 아니라 주도권

    1960년대 말의 어느 날, 한 그리스계 여성이 호주 시드니 교외의 작은 외래병동에 끌려왔다. 그녀는 자신이 하루 종일 울기만 한다고 설명했다. 그녀 앞에는 2명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강한 유럽식 발음의 정신과의사 1명과 키가 크고 젊은 수련의 1명이었다. 알고 보니 이 수련의는 마이클 마멋이라는 이름을 가진 호주 사람이었다. “선생님, 우리 남편은 항상 술을 마시고 저를 때려요. 아들은 감옥에 가 있고, 10대 딸내미는 임신을 했어요. 잠도 못자고요.” 그녀는 대답했다.


    마이클은 이런 환자들을 많이 봐왔다. 호주 이민자들은 심한 인종차별을 겪었고, 특히나 이민 1세대들은 힘들고 모멸적인 삶을 살아야 했다. 그녀의 우울증은 생활환경이 원인이라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뻔한데, 사람들이 문제를 들고 찾아오면 그들은 하얀색 알약 한 병으로 그들을 치료했다.


    마이클은 병동을 돌아다니며, 이 모든 질병과 고통이 우리 사회에 뭔가를 경고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의사들은 의심쩍어하며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헐뜯었다. 마이클은 이들이 틀렸다고 생각했지만 심증뿐이었다. 그에겐 반박할 증거가 없었고, 아무도 그에 대해 연구할 것 같지 않았다. 동료 의사 1명이 마이클에게 연구를 조심스레 제안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후, 1970년대의 혼돈 속에서 마이클은 런던으로 오게 됐다. 마이클과 그의 연구팀은 신체적ㆍ정신적 건강에 대한 데이터를 모으기 위해 공무원들을 인터뷰했다. 수년간 집중적으로 인터뷰를 실시한 후, 마이클과 연구팀은 그 결과를 종합했다. 화이트홀 위계질서 상에서 고위 공무원들은 하급 공무원들보다 심장마비에 걸릴 가능성이 4분의 1로 낮았다. 그러나 연구결과에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래프 상으로 관료조직에서 지위가 올라갈수록 우울증에 걸릴 확률은 점차 떨어졌다. 일과 관련해 무엇인가가 사람들을 우울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 정체가 뭘까?


    연구팀은 자신들이 본 것을 바탕으로 초기 가설을 하나 세웠다. 이들이 궁금한 것은 고위 공무원들은 하급 공무원들보다 업무를 더 많이 주도하기 때문에 덜 우울한가였다. 이번에는 고위급, 중간급, 하급을 비교하는 대신 같은 서열이지만 업무에 있어서 재량권에 차이가 있는 사람들을 비교했다. 이를 통해 마이클이 발견한 결과는 처음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일에 대한 재량권을 더 많이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 같은 직위에서 같은 수준의 급여를 받고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다른 사람들보다 우울해지거나 심각한 정서장애를 일으킬 가능성이 훨씬 낮았다.


    그는 관료조직에서 직위가 높을수록 업무가 끝난 후 더 많은 친구들과 사교활동을 즐긴다는 것을 발견했다. 직위가 낮을수록 그 정도는 점차 줄어들었다. 지위가 낮고, 지루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집에 가서 그저 TV 앞에 눌러앉아 있고 싶어 했다. 왜일까? “가치 있는 일을 할 때 삶은 더 풍요로워져요. 그리고 이것은 업무 이외에 당신의 모든 것들로 퍼져나가죠. 그러나 일에 활기가 없을 때는 하루일과가 끝나면 그저 기진맥진할 뿐이에요.”


    이 연구 결과 덕분에 일에서의 스트레스를 구성하는 개념에 혁명이 일어나게 되었다고 마이클은 설명했다. 단조롭고, 지루하고, 영혼을 파괴하는 일을 견뎌야만 하는 것이 최악의 스트레스였다. “사람들은 매일 출근하고 그곳에서 조금씩 죽어가요. 왜냐하면 그 일은 사람들의 내면에서 사람다운 그 어떤 것도 건드리지 않기 때문이죠.” 따라서 페인트 가게에서 일하는 조는 이 기준에 따른다면 가장 스트레스가 높은 직업에 종사하는 셈이다. 신체적ㆍ정신적ㆍ정서적 건강악화의 핵심에는 권한의 박탈이 존재한다고 마이클은 말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면 : 삶의 의미로부터의 단절

    20대 후반에 나는 정말 뚱뚱해졌다. 항우울제의 부작용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프라이드치킨의 부작용이었다. 나는 아직도 런던 동부에 있는 모든 치킨집의 특징과 장점을 읊을 수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식습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음식을 섭취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건강이 악화된다. 우울과 불안에 대해 연구하면서 나는 유사한 상황이 우리의 ‘가치’에도 벌어지고 있으며, 이 때문에 우리가 정서적으로 병들어가고 있음을 알았다. 팀 캐서라는 이름의 미국 심리학자가 이를 발견했다. 나는 설명을 듣기 위해 그를 찾아갔다.


    물질은 행복을 주는가?

    어린 소년이었던 팀은 길게 뻗은 습지대와 탁 트인 해변 한가운데에 도착했다. 그의 아버지는 한 보험회사 매니저였는데, 1970년대 초에 플로리다 서부해안에 있는 피넬러스 카운티로 발령받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은 미국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지역이 됐고 순식간에 변해갔다. 팀은 해변과 습지 대신 쇼핑몰로 끌려들어갔다.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였다. 거기서 그는 ‘애스트로이즈’와 ‘스페이스 인베이더’같은 게임을 몇 시간이고 했다. 그는 곧 뭔가를 갈망하게 됐다. 광고에서 본 장난감들이었다.


    팀은 레이건 시절에 남부에 있는 매우 보수적인 대학교 밴어빌트 대학교에 입학했고, 그에게는 좀 더 깊이 생각할 기회가 생겼다. 대학원에 진학한 그는 심리학에 관한 모든 것을 읽었다. 수천 년의 시간 동안 철학자들은 당신이 돈과 소유에 지나친 가치를 매기거나, 주로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의 관점에서 인생을 생각할 때 불행해질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이러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그는 그 후 25년 동안 이끌어갈 프로젝트에 착수하게 됐다.


    팀은 사람들이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거나 세상을 더욱 발전시키는 것과 같은 다른 가치들과 비교해 돈과 물질의 소유에 얼마나 많은 가치를 두는지 측정하는 방식을 고안해냈다. 사람들에게 ‘비싼 물건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다.’ 같은 문장에 얼마나 동의하는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세상을 발전시키는 것은 중요하다.’와 같은 완전히 다른 문장에는 얼마나 동의하는지 묻는 것이다.


    팀은 연구를 위해 시험 삼아 316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물질주의적인 사람들, 즉 행복은 소유와 우월한 지위의 축적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우울과 불안에 시달리는 정도가 훨씬 더 높았다. 팀은 이 결과가 그저 어둠을 비추기 위한 원시적인 첫발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따라서 팀은 다음으로 18살 청소년 140명을 대상으로 심층조사를 해줄 임상심리학자들을 구했다. 그 결과는 청소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물질을 소유하고, 소유를 추구할수록 아이들은 우울과 불안에서 고통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결과들을 종합했을 때 그는 다시 한 번 물질주의적인 학생들이 더 많은 우울감을 경험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결과가 있었다. 실제로 물질주의적인 사람들은 모든 영역에서 내내 더 나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들은 더 아팠고 더 화가 나 있었다. 이들은 덜 즐겁고 더 절망적이었다.



    물어봐줘서 고마워요

    “고향을 두 번 잃을 수는 없어요.”

    2011년 여름, 베를린의 콘크리트 주택에서 머리에 히잡을 두른 63살 여성이 창문에 벽보 한 장을 붙이기 위해 억지로 휠체어에서 일어났다. 집세가 밀려서 집에서 쫓겨나게 된 그녀는 일주일의 기한을 준 집행관이 찾아오기 전에 자살을 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살고 있는 주택탄지는 베를린의 브롱크스라 할 수 있는 코티 지역에 있었다. 사람들이 집에 오면 서둘러 문을 걸어 잠그는, 그런 익명의 커다란 동네였다. 이 구역은 불안과 항우울제로 점철된 곳이었다. 오래지 않아 일부 주민들이 누리예의 집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머뭇거리며 다가왔다. “괜찮나요? 도움이 필요하지는 않나요?” 이들은 누리예가 어디서 왔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베를린 전역에서 집세가 오르고 있었지만 이 구역은 특히나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이 도시를 반으로 가르는 베를린 장벽이 1961년 서둘러 세워질 때 그 장벽은 제멋대로 이상한 갈지자를 그렸다. 소련이 침공해오면 가장 먼저 빼앗기게 될 지역이었다. 따라서 이 근방은 반쯤 철거된 상태였고 다른 동네 사람들이 기피하는 사람들만이 이곳에 살고 싶어 했다. 누리예 같은 터키 출신 육체노동자나 좌파 무단거주자, 그리고 동성애자들이었다. 반쯤 버려진 이곳으로 이사오면서 터키계 노동자들은 물리적으로 코티를 재건했다. 그리고 좌파 무단거주자와 동성애자들은 이곳 전체를 고속도로로 만들려던 베를린시의 계획을 저지했다. 결국 이들은 동네를 구해냈다.


    함께 모인 베를린의 밤

    이들은 가난하다는 점에서 하나였지만 다른 모든 방면에서 달랐다. 그러다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갑자기 코티는 위험지대에서 벗어나게 됐다. 그리고 그곳은 가장 각광받는 부동산이 됐다. 힘겨운 일이었다. 2년 동안 아파트의 집세는 600유로에서 800유로로 뛰었다. 많은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이사를 가야 했다.


    누리예가 창문에 벽보를 붙이기로 마음먹은 후 몇 달 동안 이웃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분노를 표현할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이웃 중 한 명이 의견을 냈다. 만약 우리가 의자와 가구들로 도로를 막아버리고, 누리예를 비롯해 동네에서 밀려나게 된 주민들이 아파트에서 나와 그곳에 가면 어떨까? 커다란 전동 휠체어에 앉은 누리예가 가운데에 있고 우리가 그 옆에서, 그녀가 계속 그 집에서 살게 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겠다고 하면 어떨까? 우리는 주목받게 될 거야. 언론들이 찾아오겠지. 그리고 누리예는 자살을 하지 않게 될 거야.


    소수의 무리가 누리예에게, 도로를 점거한 자신들의 임시시위캠프에 와서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그녀는 처음에 사람들이 미쳤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날 아침, 바깥으로 나와 그곳에 앉았다. 다양한 이웃들이 카메라에 대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30년 전 가난 때문에 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한 터키 여인은 나중에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미 고향을 한 번 잃었어요. 고향을 두 번 잃을 수는 없어요.”


    추위가 매서운 베를린의 밤이었다. 누리예는 타이나와 함께 했다. 타이나는 46살의 싱글맘이었다. 밤이 깊어가면서 이 둘은 자신들의 삶에 대해 머뭇거리며 털어놓기 시작했다. 누리예는 바깥에서 불을 피우고 요리를 하며 컸다. 그녀가 자란 가난한 동네에는 전기도, 수도도 없었기 때문이다. 17살이 되자 그녀는 결혼은 했고 아이를 가졌다. 그녀는 자신의 아이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나이를 속이고 코티로 와서 부품조립 공장에 취직했다. 그녀는 치열하게 일해야만 했다.


    타이나는 14살에 처음 코티에 왔다고 말했다. 타이나의 어머니는 그녀를 버렸다. 그녀는 언제나 코티에 가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녀의 어머니가 그곳에 가면 등에 칼을 맞는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 말에 이상하게도 흥미가 생겼다. “모든 집들이 2차 세계대전 직후처럼 보였어요. 모두 비어 있거나 망가져 있었어요. 다 부서진 집에 들어설 때, 가끔은 정말 으스스했어요.”


    누리예와 타이나가 밤 당번을 끝내자, 다음은 배기청바지를 입은 17살의 터키계 독일인 메메트 카브라크의 차례였다. 메메트는 늘 힙합 음악을 들었고 학교에서 퇴학당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메메트의 짝은 은퇴한 백인 교사 데트레브였다. 그는 고리타분한 공산주의자였고 메메트에게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여러 밤이 지나고 메메트는 자신이 학교에서 겪는 문제들에 대해 털어놨다. 한참 후 데트레브는 메메트에게 학교 숙제를 가져오면 함께 봐주겠다고 제안했다. 몇 주, 그리고 몇 달이 흘렀다. “데트레브는 제게 할아버지 같은 존재가 됐어요.” 메메트의 숙제는 점차 발전했고 학교는 더 이상 메메트를 내쫓겠다고 협박하지 않았다.


    정신적 공해로부터 벗어나는 법

    우울함을 덜기 위해 내가 배운 모든 것들을 실천하고 변화하려 노력했지만, 묵직하고도 끈질긴 무언가가 나를 짓누른다고 느꼈다. 흔히들 행복해지기 위한 단순한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물건을 사라. 자랑하라. 당신의 지위를 과시하라. 많은 것을 차지하라.’ 그러나 나는 이런 것들이 싸구려 가치라는 것을 팀 캐서에게서 배웠다. 이는 더 큰 불안과 우울을 부르는 함정일 뿐이다.


    돈의 가치

    팀은 광고가 일종의 정신적 공해라고 말한다. 브라질의 상파울루는 길거리 간판들로 질식당하고 있었다. 도시의 미관은 추악해졌고, 돈을 쓰라고 말하는 광고들에 쉴 새 없이 노출된 탓에 사람들의 마음 역시 추악해졌다. 따라서 2007년 상파울루시 정부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모든 옥외광고를 전면금지한 것이다. 간판이 하나씩 철거되면서 오랫동안 숨겨져 있던 아름다운 구식 건물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소비를 권유하며 끊임없이 자아를 흔들어놓던 존재들이 사라졌고 그 자리는 공공예술작품으로 채워졌다. 광고는 우리가 결핍을 느끼도록 만들고, 그 해결책이 ‘끊임없이 소비하는 것’이라고 말해줌으로써 운영되는 경제체제를 위한 홍보수단일 뿐이다. 이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서, 하나의 실험을 계획했다.


    네이선은 펜실베이니아주에서 금융업에 종사하던 중년의 남성이었다. 언젠가 그는 한 중학교 교사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녀는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부유하지 않은 중산층 아이들은 만족과 의미가 물건을 사는 것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이 교사는 네이선이 아이들에게 경제관념과 용돈 관리법에 대해 이야기 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조심스레 승낙했다.


    네이선은 벽에 부딪혔다. 물건을 향한 아이들의 엄청난 욕망에 그는 당황스러웠다. 왜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가? 그는 예산을 짜는 방법을 가르치는 대신 10대 청소년들이 왜 이런 것들을 원하게 됐는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결국 팀 캐서와 한 팀을 이뤄 충격적인 과학 실험을 하게 됐다. 얼마 후 미니애폴리스의 한 회의실에서 네이선은 그 실험의 중심이 되어줄 가족들을 만났다.


    네이선은 개방형 질문들로 구성된 문제지를 모두에게 나눠주면서 대화를 시작했다. 질문은 이런 식이었다. ‘내게 돈은 __ 이다.’ 처음에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했다. 토론이 진행되며, 소비가 물건 그 자체와 관련이 없다는 점이 빠르게 분명해진다. 소비는 당신의 기분을 나아지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이들은 이런 생각들이 표면 아래 묻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그 잠재된 감정을 정확히 말로 표현해보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 후 네이선은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정말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대상들을 목록으로 작성해보라고 요청했다. 14살짜리 소년은 간단하게 ‘사랑’이라고 썼다. 그리고 소년이 그 답을 읽었을 때 실험실 안은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해졌다.


    이들은 마음속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들을 위해 돈을 모으고, 썼다. 왜일까? 네이선은 우리가 어떻게 이 모든 것을 갈망하기 시작했는지 알고 있었다. 평균적으로 미국인은 하루에 5,000개의 광고에 노출된다. 제품을 사기만 하면 기분이 더 좋아질 것이라고 말하는 메시지에 끊임없이 노출되고, 계속해서 소비하며 드디어 고난을 사게 될 때까지 이 과정을 반복한다

    * * *


    도서 정보는 우수 도서 홍보를 위해 저작권자로부터 정식인가를 얻어 도서의 내용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으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저작권자의 정식인가 없이 무단전재, 무단복제 및 전송을 할 수 없으며, 원본 도서의 모든 출판권과 전송권은 저작권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