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 그런 거 아니야
저   자 : 이인석(그림:이어송)
출판사 : 도서출판 쉼
출판일 : 2016년 06월

도서정보

■ 책 소개

 

인간관계에 대한 새로운 접근으로 수많은 독자들의 ‘라이크 잇’을 받은
브런치 작가 Myste. lee의 공감과 위로의 에세이

 

누구보다 진지하게, 누구보다 치열하게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해온 작가는 사람 사이의 미묘한 감정과 의미를 짚어내는 뛰어난 관찰력으로 브런치에 인간관계에 대한 글을 연재하며 수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받아왔다.

 

작가는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입히는 상처, 사람 간에 알게 모르게 주고받는 관계에서의 상처를 아무렇지 않은 듯 이겨내라고, 별거 아니라며 넘기라고 하지 않는다. 누구나 열등감이 있고, 잘난 사람을 시기 질투하고, 부당한 상처에 좌절하지만, 혼자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모두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독자 모두가 삶의 곳곳에서 평생 동안 계속될 인간관계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충분히 괜찮고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일깨워주고자 이 책을 펴냈다.

 

■ 저자 이인석
서강대 언론대학원에서 광고홍보를 전공하고 칼럼니스트 및 로드포토그래퍼로 활동해 왔으며,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 멘토링을 꾸준히 해왔다.

 

월트디즈니 월드에서 일을 했으며, 현재는 교원그룹에서 교육 컨설팅 일을 하고 있다. 이어송의 형이다.

 

■ 그림 이어송
미국 CalArts에서 애니메이션을 공부했다. 2012년 학생 오스카 아카데미에서 은메달을 시상한 뒤, 디즈니 TV, 드림웍스, 워너브라더스, MTV, cartoon Networ에서 컨셉트 디자인 및 미술감독을 역임했다. 현재는 Cartoon Network에서 PowerPuff Girls 미술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이인석의 동생이다.

 

■ 차례
1
원래 그런 것은 없다
만남은 늘 대가를 요구한다
잊지 마세요, 당신이 누군지
‘나를 바라봐 주세요’는 늘 우리의 본능이다
항상 솔직할 수 없어 매력적이다
한 사람만 생각하는 순간
서로를 향한 새로 고침이 필요하다
서툴러서 더 아름다워진다
지나간 시간이 보이면 친구가 된다
“내가 너라도”라는 말이면 충분하다
한 마디로도 감동은 가능하다
사랑하면, 변화라는 마법이 일어난다
그래서 참 예쁘다, 너는
이모티콘은 소중하다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
멈추는 것도 용기다
기억에 남는 사랑은 평생 가슴속에 새겨진다
“밥 먹을래요?”라는 말이 고맙다
우리의 내일은 당연하지 않다
들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은 사랑스럽다

 

2
서로의 가치를 확인하는 말 “도와줘”
리액션이 사람을 살린다
‘두근두근’ 좋아하면 답이 없다
목적이 같으면 우리는 뜨거워진다
부러워야 이길 수 있다
그 사람을 알아야 그 사람을 상상할 수 있다
너로 충분하다
좋은 아빠가 아니어도 된다
뒤로 넘어져도 안심할 수 있어, 덕분에
엄마보다 위대한 교과서는 없다
상대방의 오늘만 보면 멀미한다
우리 사이에 ‘정답’은 없다.
모두 빚을 지고 살아간다
남겨진 사람들을 위하여
‘가르치는’ 사람보다 ‘가리키는’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는 충분한 값을 치르며 살고 있다
나를 만드는 건 결국 너였다
“보고 싶다”는 말은 듣기에도 하기에도 참 좋다
믿어주는 것도 힘이다
너는 나의 홈런이다

도서요약

너만 그런 거 아니야


원래 그런 것은 없다

어릴 때 나는 줄곧 "원래 그랬어"라는 말을 자주 했다. 오랜 시간 동안 내 부족함을 감추기 위한, 나 스스로에게 위안을 주고 변명거리를 만드는 가장 좋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딱 한마디로 모든 상황에서 방패막이가 되어 주는 아주 좋은 말이었다. 예를 들면, 공부할 때 수학을 특히 못했던 나는 시험이 끝나고 나면 엄마에게 늘 이야기했다.


"엄마, 나는 수학은 원래 잘 못해."


이 말로 스스로를 포장했고, 스스로를 수학 못하는 아이로 만들었다. 성격도 마찬가지였다. 뭘 하나 하면 끝까지 마무리를 못 했고 그럴 때마다 늘 "나는 원래 그렇잖아"라는 말로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러면서 점점 스스로 끝맺음을 못하는 아이로 만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생각해 보면 단 하나도 원래 그런 건 없었다. 어느 순간 내 스스로 선택하고 그런 나로 만들어왔다. 원래 그랬던 것이 아니라, 원래 그런 것처럼 나를 속여 왔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 앞에서 나의 모습을 감추어야 할 때, 방어해야 할 때, 꾸며야 할 때 나는 원래 그렇다는 말 뒤에 숨었고, 나를 돌아보면서 이 말을 썼던 기억보다, 누군가 함께할 때 이 말을 참 많이 남용했다. 덕분에 사람을 잃기도 하고, 심지어 나 자신을 잃기도 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나는 원래 그러니까 네가 변해야 해'라는 무언의 의미를 상대방에게 던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 인생에 단 하나뿐인 사람을 선택해 놓고도 쉽게 그런 말을 던지곤 했다.


결혼식을 앞두고 주례사를 해주시는 분을 미리 만나 뵈었다. 서울 어느 식당에 예약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꼭 붙잡고 그 자리에 나갔다. 만남을 갖기 전 주례사를 해주실 분은 우리에게 숙제를 내주셨다. 각자 라이프 사이클을 그려 오라는 것이었다. 5년 정도 텀을 두고 한 살부터 다섯 살까지, 다섯 살부터 열 살까지, 열 살부터 열다섯 살까지… 그렇게 지금의 각자 나이까지 직선상에 놓고 점을 찍어가며 그때 우리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혹은 슬펐는지, 괴로웠는지 등을 적어보라고 하셨다.


나는 어릴 때 동생을 잃은 기억부터 처음으로 반장이 되어 기분 좋았던 날, 시험에 실패해서 울었던 날들을 떠올렸다. 나와 결혼할 사람도 그렇게 5년의 텀을 두고 행복했던 일, 힘들었던 일을 끄적였다. 그날 그분 앞에 서로의 라이프 사이클을 꺼내 들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분은 우리의 이야기를 한참 동안이나 들으셨다. 그리고 나는 그 수많은 이야기에서 "저는 원래 이랬었습니다", 아내가 될 사람도 "저는 원래 이랬습니다"라는 말을 참 많이 했다. 주례사를 해주실 분은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의 이야기를 한참 동안 들으시고는 말씀하셨다.


"부부란 이토록 다른 30년을 살아왔다는 것을 두 사람이 깨달았으면 한다. 서로가 이야기하면서 상대방의 아픔을, 상대방의 기쁨을 직접 듣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세상을 반 백 년 살다 보니 원래 그런 것은 없더라. 어쩌면 과거에 내 선택에 따라 자신의 색깔이 정해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원래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씩 하나씩 선택해온 것들일 뿐이다."


그러시고는 우리 손을 꼭 붙잡으시며 말씀하셨다.

"너는 파란색 물이 담긴 잔이고, 너는 빨간색 물이 담긴 잔이다. 그런데 내가 파란색이니까 네가 나에게 무조건 맞추라고 해서는 안 된다. 또 마찬가지로 내가 빨간색이니까 나에게 맞추라고 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너무 오랜 시간 다른 삶을 통해 만들어진 서로의 색깔이 쉽게 바뀔 수 없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살면서 꼭 상대방과 같은 색깔의 천 하나는 가져라. 그리고 상대방의 앞에서 그 천을 뒤집어써라. 그것이 살아가는 지혜다. 나를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상대방을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원래 그런 것은 없다. 다만 오랜 시간 동안 선택해온 상대방의 삶을 존중해 주어라. 그러면 어느 순간 내가 상대방의 색깔과 같음을 받아들이는 시기가 온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묵묵히 쳐다보았다. 상대방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가 조금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이 사람은 원래 그래'라고 믿으며 미워했던 것이 밉지 않아졌다. 상대의 삶이 보이자 이 사람이 조금은 이해되기 시작했다. 원래 그런 것이 아니었다면, 지금부터 선택이 바뀐다면, 우리는 이제 너와 내가 아니라 우리라는 단어를 더 당당하게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살면서 흔히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한다. 불과 몇 번 본 것만으로 '저 사람은 원래 저렇다'고 말한다. 혹은 '나는 원래 그렇다'며 스스로를 속이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세상에 원래 그런 것은 없다. 순간의 선택들을 거치면서 그렇게 변화해 지금의 모습이 되어 있는 것뿐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낯익은 사람이 누워있다. 원래라면 일어나 음악을 틀고 세수를 하고 방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부산을 떨겠지만, 이제는 다르다. 옆 사람이 깰까 조심스럽게 일어나 살며시 문을 열고 나와 숨죽이고 세수를 한다. 이 방 저 방 옮겨 다니면서 잠들어 있는 아내를 틈틈이 훔쳐본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30년 넘게 가지고 있던 습관들이 점점 사라졌다. 이제는 한 사람이 옆에 있을 때의 내가 만들어진다. 더 많은 부분에서 더 특별하게.


당신은 원래 그렇지 않다. 그래서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 상대방도 그렇다.



기억에 남는 사랑은 평생 가슴속에 새겨진다

강의 때 사람들과 함께하는 '정서놀이'라는 게 있다. 이 게임은 가슴에 새겨진 사랑을 찾아 떠나는 간단한 여정이다. 진행은 간단하다. 잔잔한 음악을 깔아놓고, 사람들에게 총 8개의 종이를 나눠준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에게 부탁한다.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8장의 종이에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여덟 가지를 적어주세요. 단, 조건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자신의 이름,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 자녀가 있다면 자녀의 이름, 부모님의 이름을 꼭 적어주세요. 그리고 나머지는 친구나 혹은 물건 등 소중한 것을 적으시면 됩니다."


그리고는 사람들이 종이를 채워갈 때쯤 큰 유람선의 사진을 보여주며 나지막이 읊조린다.


"여러분은 지금 멀리 배를 타고 바다를 여행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커다란 폭풍우가 몰려와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들이 타고 있던 배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배는 크게 흔들리다 결국 바다로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여러분들은 다행히 운이 좋아 여러분들이 종이에 쓴 소중한 사람 혹은 물건과 함께 구명보트로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타고 있던 구명보트가 인원 초과로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들은 힘들겠지만 점점 가라앉는 구명보트에서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선택해야 할 시간입니다. 차례대로 한 장씩 소중한 사람이나 물건이 적힌 종이 3장을 책상 위로 내려놔 주세요. 바다로 보내야 합니다."


사람들은 3장의 종이는 의외로 쉽게 버린다. 웅성웅성 대고 웃기도 하면서, 서로 무엇을 버릴 거냐며 농담조로 대화를 건네기도 하면서 다소 가볍게 3장을 바다로 보낸다. 나는 잠시 후에 집중을 요구하며 다시 사람들을 향해 나지막이 읊조린다.


"비바람은 그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사방은 칠흑같이 어둡고 비바람 소리와 사람들의 아우성이 들려옵니다. 사람들은 겁에 질린 채로 언제 뒤집힐지 모르는 구명보트에 바싹 엎드린 채 추위에 떨고 있습니다. 하지만 파도는 오히려 구명보트를 집어삼킬 듯이 더욱 거세집니다. 다시 가라앉는 구명보트에서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선택해야 할 시간입니다. 다시 한 번 보트에서 버릴 물건이나 보내야 할 사람을 선택해 주세요."


사람들은 갑자기 조용해진다. 이제는 남아있는 5장의 종이에 자신에게 너무나 소중한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기 때문이다. 누구를 보내야 할지 갈등한다. 쉽게 손에서 놓아지지도 않고, 놓을 수도 없다. 나는 고민하는 사람들 앞에서 세 장의 종이를 더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종이를 내려놓을 때까지, 단 두 장의 종이만이 손에 들려있을 때까지 강요하고 또 강요한다. 비바람이 치고 죽음이 눈앞에 와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빠진 사람들은 당황하고 힘들어한다. 못 내려놓고 종이를 한참 동안 내려다보다 힘겹게 한 장씩 내려놓는다. 마치 소중한 사람들을 정말 바다로 떠나보내는 것처럼. 그때 나는 다시 사람들에게 말한다.


"보트에 남겨진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파도소리에 묻힙니다. 이제 여러분들에게 정말 소중한 두 가지만 남아있습니다. 심장에 두 장의 쪽지를 대고 눈을 감아보세요. 그리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남은 한 장의 가장 소중한 것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는지 그만큼 중요한 것인지. 결국 구명보트가 뒤집혀 버렸습니다. 이제 한 손으로는 물에 떠오른 물체를 붙잡고 힘겹게 버티고 있고, 다른 하 손에는 자신에게 있어서 소중한 두 가지를 쥐고 있지만 힘이 빠집니다. 이제 둘 중 하나를 버려야 합니다. 자, 이제 한 장의 종이만 손에 잡고 나머지 한 장은 버리세요."


두 장을 붙잡고 사람들은 울기 시작한다. 누구도 놓고 싶지 않고, 내 손에 붙들려 있는 그 사람들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다. 어느 한쪽이 더 소중하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줘도 될 만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들은 내려놓지 못한다. 그리고 힘겹게 한 장을 가지고 한 장을 내려놓을 때 사람들은 더욱 흐느낀다. 소리 내어 엉엉 우는 사람도 있고, 숨죽여 꺽꺽 우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그때 나는 또 말한다.


"자, 이제 마지막 남은 한 장의 종이를 보세요. 그 사람이 아마 여러분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일 것입니다. 어제 그 사람에게 어떻게 행동하셨나요? 오늘 아침에는 어떤 말을 했고, 또 무엇을 강요했습니까? 그 사람을 위해 해준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이 그 사람이 진정 원하던 것이었나요? 우리가 소중한 사람에게 주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소중한 사람은 존재만으로 의미 있습니다. 우리 기억에 새겨져 우리가 죽는 그 순간까지 함께할 것이기 때문이니까요. 우리 모두에게 그런 사람이 있는 겁니다. 저에게도 여러분에게도."


사람들이 조용해진다. 마지막까지 손에 쥔 한 장의 종이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지금까지 마치 내가 이 사람을 이렇게 사랑했는지 몰랐던 것처럼 놀란다. 사실 이 게임은 요즘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정서놀이다. 아이들은 마지막에 엄마와 형제자매를 붙잡고 목 놓아 운다. 꼭 버려야 하냐며 선생님에게 매달려 운다. 아이들은 결국 그 고사리 같은 손에 엄마를 꼭 붙잡고 운다. 아무것도 모를 것 같은 아이들에게도 가슴속에 새겨진 소중한 사람이 있는 것이다.


지금 내 옆에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렇게 소중한 사람은 물리적인 한계를 뛰어넘는다. 기억 속에, 생각 속에 우리와 늘 함께 살아간다. 물론 언젠가 내 곁을 떠날 소중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눈물부터 나지만, 그래도 나는 그런 기억 속에 남는 사랑이 나를 일으키고 나를 웃게 하고, 나를 살아가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내게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포함한 더 많은 사람이 있듯이, 모두에게 있는 그 한 사람이 아니, 꽤 많은 사람이 우리에게 있다.


말하지 않아도,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지 나는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기억에 남는 사랑은 평생 가슴속에 새겨져 함께하기 때문에 당신이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이에 '정답'은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우리'라는 말을 많이 쓴다. 우리 집, 우리 학교, 우리 동생, 우리 엄마, 우리 회사, 명사 앞에 늘 우리라는 단어를 붙여 '너와 내가 함께'라는 의미를 습관처럼 붙여 쓴다. 우리라는 것은 나를 포함한 여러 사람을 의미한다. 어디든지 속하고 싶은 너와 나의 마음이 그 자리에 누워 있다. 그런데 그 자리에 꼭 불편한 마음이 끼어든다. 내가 중심인 우리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정답을 서로 정하고 그것에 맞는 울타리를 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울타리를 뚝딱뚝딱 만들어가는 즈음에 문득, 한쪽의 힘만으로는 힘들다는 것을 느끼고 너와 함께한 우리였다가 순식간에 남이 된다. 너무나 쉽게…


내가 결혼을 했을 때, 선배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초반에 기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는 말이었다. 마치 오래오래 전해져 내려오는 말인 것처럼, 꼭 지켜야 하는 원칙처럼 '지면 안 된다. 꼭 초반에 이겨야 평생 고생 안 한다'는 말을 흥분하며 내게 전하려 했다. 다만, 이 이야기를 해준 선배들 중에 이기고 사는 선배들은 단 한 명도 없는 것 같다는 게 함정이지만. 패잔병들의 아픔을 후배는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일까, 피가 튀도록 이야기들을 하지만 정작 본인은 사실 이미 '졌다'고 시인한다. 정말 이기고 지는 게 문제일까?


남자와 여자가 만나 부부가 되기까지 오랜 연애 기간을 거쳐, 서로 간의 정보 탐색을 마치고 이 사람과 함께 살아야겠다고 결정하는 일은 단순히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라, 이제부터 함께할 긴 여행의 과정에서 시작에 불과할 것이다.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경기도 아니고, 그렇다 하더라도 이기고 지는 분명한 기준점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더욱 그렇다.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이 만나, 서로의 인생을 이해받고 인지하고 양보하고, 또 어떤 것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것들을 맞춰가는 일. 청사진도 없이 너무나 거대한 퍼즐을 하나씩 진행하다 보면 짜증도 나고 화고 나고 그저 그 순간이 즐겁기도 하다가 '아, 이런 그림이었구나!' 하고 깨닫는 시간들이다. 단지 같은 동그라미 안에 들어온 너와 내가 우리가 되는 과정에서 내가 중심인 동그라미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우리를 싸우게 만든다.


우리는 상대방에게 기대감을 가진다. '너는 최소한 나한테 이래야 해'라는 정답을 가지고서. 함께 정한 정답이 아닌 내가 정해놓은 정답을 가지고서 실망하고 아파한다. "진짜 너 나한테 이러면 안되는 거 아니야? 우리 사이에 어떻게 이럴 수 있어?"라는 말은 내 기준에서 우리가 될 때 나오기 쉽다. 정해놓고 우리를 만들면 너와 내가 힘들어진다. 진짜 우리가 되어가는 과정에 하나씩 서로가 가지고 있던 것을 풀어내고 해답을 만들어가야 한다.


길은 어디로든지 이어져 있지만 어떤 길을 갈 것인지는 우리가 결정해야 한다. 어떤 길이든 걸어가면 목적지야 나오지만 때로는 목적지보다 그 여정이 더 중요하기에, 그 길을 선택하는 데 있어 우리는 많은 고민과 장벽을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함께하는 인생에서도 길을 걸어가는 여행에서도 정해진 정답은 없다. 때로는 서로가 함께 풀어가는 정답이 없기에 모든 것이 더 다채로워진다.


여행을 가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일정을 짜고 가는 투어가 생각보다 재미없는 이유는, 예상외의 일들이 잘 벌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거 다음엔 이거, 이거 다음엔 이거, 도무지 다른 것이 끼어들 일이 없다.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늘 찾아야 했던 깃발과 핫 플레이스에서 찍어온 사진뿐이다. 반면 자유여행에서의 즐거움은 '어디에서 무엇을 본다, 무엇을 먹는다'는 것보다 무엇을 보러 가는 길에, 무엇을 먹는 시간에 벌어지는 다양한 해프닝에서 얻어지는 게 아닐까? 여기서 더 머물고 싶으면 좀 더 머물렀다가 우연히 찾은 식당의 음식이 맛있었다면 어느 날엔가 한 번 더 찾으면서 그때 그 자리에 있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해답이 추억이 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해답으로 만들어진 과정이 둘이 하나가 되는 결혼이 아닐까. 결혼은 '내가 이미 짝을 선택했으니 이제 이런 삶을 살아갈 것이다'라고 정해진 게 아니다. 결혼은 좋은 짝을 만나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좋은 짝이 되어주는 일이니까.


선배들은 진 게 아니라 져주고 사는 거라고 빡빡 우긴다. 어떤들 무슨 상관일까. 이기고 지는 경기도 아니고, 그 이야기를 하는 선배들의 모습에 웃음이 가득 담겨 있는데, 그것도 선배들이 만들어간 해답이다. 져주고 살든 지고 살든 그게 또 우리가 되는 과정이다. 우리 사이에 정답은 없다, 해답만 있을 뿐이다.



"보고 싶다"는 말은 듣기에도 하기에도 참 좋다

괜스레 아침부터 기분이 꿀꿀했다. 비는 축축하게 내렸고, 날은 어두웠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늘은 월요일이다.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도 못한 채 부어오른 몸뚱이를 이끌고 집을 나섰다. 출근길에는 멍한 상태로 그 어떤 것도 또렷하게 보이지 않았고, 늘 가던 길을 기계적으로 걸어서 회사에 도착했다. 또각또각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고, 사람들의 말소리가 귓속을 어지럽혔고, 주말 동안 쌓아놓기만 했던 일들이 숨 막히게 나를 덮쳐오고 있었다. 하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오전을 어떻게 보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부르면 자동으로 대답했을 뿐이고,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는 일들은 머릿속에서만 날아다녔다.


비가 오기 때문일까? 아니면 월요병이 도진 걸까? 문득문득 처져 있는 나를 발견하면서 이유를 찾아 헤매어 보지만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퇴근하는 순간까지 난 온종일 희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사람처럼 터벅터벅 겨우 걸으며 집으로 향했다. 시대가 지난 노래들이 이어폰에서 흘러나오고 나도 흘러가버린 사람처럼 느껴지다가 시간을 확인하려 휴대폰을 꺼내 들었는데, 갑자기 친구들이 떠올랐다. 너무나 친했던 친구들, 아무 이야기나 떠들어도 밤을 지새울 수 있었던 나의 사람들, 바쁘고 지치고 해야 할 일들만 하고 살다가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멀어져 버린 나의 친구들. 너무나 뜬금없이, 술 한잔 마시지도 않았는데 미친 듯이 그리웠다. 그리고 그 그리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화면을 밀어올리고 보고 싶은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울릴 때 받으면 뭐라고 이야기할까, 어색하진 않을까 온갖 상상이 순식간에 몰아치다가 딸깍 소리와 함께 어릴 때와는 달리 조금 굵어진 목소리, 아니면 나처럼 지쳐있는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나는 대뜸 이야기했다.


"보고 싶었어."


힘들고 지친 날은 더 그렇다. 사람들이 그리워지는 날, 서로간에 어떤 요구도 없이 이런저런 이야길 떠들고 싶은 날, 마음껏 상사 욕을 하면 나보다 더 심하게 그 상사를 욕해주는 내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고 싶은 날이 있다. 그럴 때면 걸음을 멈추고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보고 싶었던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고 싶다. 내 휴대폰 연락처에는 400명이 넘게 등록되어 있음에도 그 순간 전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무리 연락처를 뒤적거려도 쉽게 떠오르지 않고, 있다고 해도 선뜻 통화 버튼이 눌러지지 않는다.


'지금은 너무 늦었나? 요즘 안 좋은 일이 있다던데… 지금은 밥 하고 있으려나?'


전혀 알 수 없는 상대방의 상황을 상상하면서 결국 전화기를 내려놓는 일도 많다. 그리고 어떻게 찾아 전화를 걸면 반갑게 음성사서함이 맞아주는 날도 허다하다. 그러다 딸깍 하고 보고 싶었던 사람이 전화를 받으면, 막상 하고 싶은 말은 못하고 헛소리만 잔뜩 하다가 끊는다. 하지만 왜일까, 헛소리만 잔뜩 했는데 마음이 편안해진다. 집까지 남은 발걸음에 그 사람과의 추억을 떠올린다. 그냥 내게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과 또 보고 싶은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받는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어릴 적 우리는 만남에 자유로웠다. 모두와 친구가 될 수 있었고, 아무하고도 친구가 되지 않을 수 있었다. 오늘 처음 본 친구와 즐거운 게임도 가능했고, 전학으로 친구가 떠나면 엉엉 울며 슬퍼했다. 매일 도시락을 같이 먹으며 서로의 반찬을 탐닉했고 "숙제 했냐?"라는 말 한마디에 우월감을 느낄 수 있는 때였다. 집으로 오가는 길도 스펙터클했다. 방향이 같은 친구들끼리 가방 들어주기라도 하는 날이면, 목청껏 가위바위보를 외쳐가며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안에 깔깔거리는 우리의 웃음소리는 온 동네를 시끄럽게 했다. 헤어질 때 "안녕"이라는 말 안에는 진짜 안녕하라는 말이 담겨 있었고, 만날 때 "안녕"에서 '오늘 우리 안녕하자'는 마음을 담을 수 있었다. "갈래?" 이 한마디로 함께할 수 있었던 그 시간에,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사귀었고, 많은 인연들도 만들었다. 지금과는 조금 다르게.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아니, 휩쓸린다. 지하철 안에서 지옥을 경험하고, 도로 위에서 주차장을 경험한다. 수백 명이 몰려있는 회사에서 고개만을 움직이는 소박한 인사로 눈빛을 교환하고, 끝없는 회의에 회의를 거치며 일을 한다. 같은 프로젝트를 5개월씩 같이 하고, 같은 부서에서 5년 넘게 같이 일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는 그 안에서 보고 싶은 사람들이 별로 없다. 오늘 보고 내일도 봤으니 보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영영 떠나도 보고 싶은 사람보단 보지 않아도 괜찮을 사람들이 더 많다. 앞에 두고도 메신저를 쓰고, 다른 부서의 사람들과는 서류로 만나는 게 전부다. 각자의 삶에서 시간에 쫓겨 좁아지는 관계라 오히려 더 많이 만나고 더 많은 시간을 공유함에도 만남이 자유롭지 않다. 보이지 않는 예의를 지켜야 하고, 선후배 사이에 엄연한 선과 격식이 있다. 해서는 안 되는 말, 해도 되는 말이 나누어져 있고 친해질 수 있는 한계도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 서로 다가서기 힘들다. 그리고 그 안에서 두려워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이 잦아들었을 때 누군가와 만난다는 사실이 조금 아니, 많이 귀찮아졌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서인지, 우리는 혼자인 게 조금씩 익숙해져 간다. 간단하게 편리하게 스마트하게 관리한다. 만나지 않아도 상대방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고, 목소리 듣지 않아도 대화할 수 있는 세상에 살면서 만남도 편해져 버렸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바쁜 세상에 떠밀려 얼굴 한번 진득하게 보지 못하고 지나간 이야기를 신나게 나누지 못하고, 오늘 아팠던 마음을 진심으로 나누지 못한 우리들의 마음은 조금씩 고장이 난다. 그리고 그럴 때 우리는 이유 없이 누군가 보고 싶어지고 그리워진다. 한 번도 궁금해 하지 않았던 친구들의 소식이 궁금해진다. 그 순간 '나는 외롭지 않아, 혼자가 아니야'를 확인받고 싶어진다. 나는 그럴 때마다 전화기를 꺼내 든다. '예전엔 참 여기저기 전화할 데가 많았는데…'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대뜸 전화를 건다. 전화를 받든 받지 않든 상관없다. 그렇게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다. 그리고 그 작은 행동 하나가 나를 따뜻하게 만든다.


"보고 싶었어."


그럼 상대방은 내게 물어온다.


"무슨 일 있어?"


물어와 주는 그 말이 고맙다. 아무 일도 없지만, 내게 물어오는 "무슨 일 있어?"라는 말이 나를 위로한다. 아직 내가 보고 싶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웃음 짓게 만든다.


"사랑해 보고 싶어"라는 말은 "사랑해, 보고 싶어"가 되기도 하고 "사랑, 해보고 싶어"가 되기도 한다. 어디서 띄어 쓸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보고 싶다"는 말은 듣기에도 하기에도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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