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랜드
저   자 : 스티븐 존슨(역:홍지수)
출판사 : 프런티어
출판일 : 2017년 02월

도서정보

■ 책 소개

 

“인간이 순수하게 재미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찬란한, 혹은 참혹한 결과에 대하여”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를 통해, 혁신과 아이디어의 역사를 과학기술과 접목해 독창적이고 흥미롭게 풀어낸 스티븐 존슨. 그가 이번에는 인류 문명을 발전시켜온 놀이와 경이, 그 희열의 역사에 주목한다.

 

합리적 이성으로 무장된 역사관과 문명관에 익숙한 우리는, 놀이와 쾌락이 삶과 문명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를 간과한다. 첨단 과학기술 발명가나 정치 혁명가들을 존경하듯, 놀이공간과 장난감과 쾌락의 도구를 만든 이들도 칭송받아야 마땅하다고 스티븐 존슨은 강조한다.

 

■ 저자 스티븐 존슨
<뉴스위크>가 선정한 ‘인터넷상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50인’에 포함된 과학 저술가. 브라운대학교에서 기호학을 전공하고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영문학 석사 과정을 밟았다. 활발한 저술 활동을 바탕으로 저널리즘스쿨계의 명문 컬럼비아대학교와 뉴욕대학교에서 객원교수로 활동했으며 그의 저서는 모두 온·오프라인 매체에서 다양한 상을 수상했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가 ‘올해 최고의 책’으로 선정한 세계적 베스트셀러 《이머전스》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대표작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는 아마존 ‘최고의 비즈니스 도서’, 800-CEO-Read가 선정한 ‘최고의 비즈니스 도서’, <이코노미스트>가 선정한 ‘올해의 책’으로 뽑히기도 했다. 또한 위대한 아이디어의 힘과 유산을 새로운 관점에서 분석한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는 동일한 주제로 공동제작하고 출연한 PBS 시리즈로 에미(Emmy) 상을 수상했다.

 

《원더랜드》에서 스티븐 존슨은 놀이와 유희의 위력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통해 대중오락에 숨은 놀라운 역사를 밝혀낸다. 인간이 자기 자신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혼신을 다하는 사례마다 우리는 한계를 뛰어넘는 혁신을 발견할 수 있다. 미래에 기술이 어떻게 발전하고 사회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알고 싶은 사람은 인간이 노는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 사람들이 가장 신바람 나게 노는 곳에서 미래는 탄생한다. 놀이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해왔는지 사람들은 잘 깨닫지 못하지만, 놀이가 지닌 혁신의 힘은 이토록 대단한 것이다.

 

온라인 매거진 〈피드〉를 창간하고 편집장을 지냈으며 인터넷 포럼 사이트 플라스틱닷컴(Plastic.com)을 개설했다. <와이어드>의 편집자로 활동하면서 온라인 도시지리정보 포털사이트 아웃사이드인(outside.in)을 운영하기도 했다. 과학전문잡지 〈디스커버〉에 ‘최신 기술’이라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으며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 〈가디언〉 〈랑구 아프랑카〉 〈하퍼스〉 등을 통해 과학 대중화에 공헌하는 글을 기고하고 있다. 저서로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 《공기의 발명》 《바보상자의 역습》 《바이러스 도시》 《감염지도》 등이 있다.

 

■ 역자 홍지수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KBS에서 뉴스 앵커로 일하면서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을 마쳤다. 컬럼비아 대학 국제학대학원과 하버드 대학 케네디행정대학원에서 각각 국제무역과 환경정책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 정부의 정보통신부 차장, 리인터내셔널 무역투자연구원 이사로 일했다. 옮긴 책으로 《오리지널스》 《코빈 동지》 《거대한 신,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뇌를 훔치는 사람들》 《월든》 《방황하는 개인들의 사회》 등이 있다.

 

■ 차례
추천사
이 책을 읽기 전에 _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
들어가는 말 발명가 멀린의 집에서 마주친 기쁨

 

1 패션과 쇼핑_ 옥양목에 매료된 귀부인들 
신비한 바다달팽이의 유혹
실용에서 아름다움으로, 자주색의 패션혁명
사고파는 상점에서 보고 즐기는 화려한 공간으로
산업혁명의 숨은 주역, 목화
취향의 발견과 유행의 시작
노예제도, 목화가 남긴 상처
계층을 무너뜨린 패션혁명
소비를 부르는 환상의 섬, 백화점
서비스 산업의 시작 그리고 절도
사우스데일, 쇼핑몰의 탄생과 부작용
월트 디즈니가 꿈꾸었던 도시계획
경이롭고 새로운 미래 도시를 꿈꾸며

 

2 음악_ 저절로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
뼈로 만든 피리의 수수께끼
생존에 필요없는 음악이 탄생한 이유
새롭고 색다른 것을 향한 쾌락
저절로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
자크 드 보캉송의 피리 부는 목동
소리 내는 도구에서 천을 짜는 방직기로
프로그래밍 가능한 기계의 의미
악기는 기술혁신을 예고한다
건반악기에서 이어진 키보드와 디지털 혁명
암호화와 해독, 자동연주 피아노
〈기계적 발레〉가 보여준 혁신
영화배우가 발명한 주파수 변조 기술
전자악기 오라믹스 머신의 탄생
다양한 기술혁신을 불러온 음악

 

3 맛_ 후추 난파선 
도리토스 칩의 맛은 어디에서 왔을까?
정향과 육두구, 향신료 교역의 시작
로마를 멸망시킨 후추의 비밀
향신료 전쟁의 근원, 후추
후추를 퍼뜨린 산업스파이
바닐라향은 어떻게 널리 퍼졌나
향신료의 효능과 존재 가치
향신료를 향한 욕망과 환상
신비로운 이국을 담은 향신료
향신료 무역과 맛에 대한 탐닉  인류 역사와 함께 진화한 향신료

 

4 환영(幻影)_ 유령 제조사
유령과 기술의 만남
팬태즈머고리아의 탄생
뇌와 시각을 속이는 마술
카니자 삼각형과 네커 정육면체의 비밀
원근법과 파노라마, 체험과 세계의 확장
다양한 착시 공연의 효과와 발전
영화의 탄생, 근접촬영 기법의 힘
시각의 결함을 활용한 예술
월트 디즈니, 가속도가 붙은‘환영’의 역사
화면과 교감하는 대중의 등장
가깝고도 먼 유명인사의 탄생
인공지능과 로봇과 교감하는 미래

 

5 게임_ 지주 게임 
체스 게임, 사회 규칙을 반영하다
체스를 통해 시작된 인공지능
사회정신과 결합된 게임, 〈지주 게임〉
게임은 협업이다
주사위, 우연의 요소가 개입된 게임
게임의 무작위성과 확률 이론의 등장
게임의 도구, 공
재료과학으로 이어진 고무공
컴퓨터 낭인들이 만든 〈우주전쟁!〉
게임 산업과 놀이하는 컴퓨터의 탄생
도박과 확률이 낳은 헤지펀드
퀴즈쇼에 나간 컴퓨터
인간과 함께 노는 기계를 꿈꾸다

 

6 공공장소_ 놀이터 
계급을 허문 선술집의 비극
선술집, 순수한 여흥과 민주주의의 공간
독립운동과 성적 해방 운동의 장
신비한 카페인의 유혹
계몽주의를 꽃피운 커피 하우스
신기한 소장품들, 박물관을 예고하다
평등한 민주 공간 커피 하우스
자연, 혐오와 정복의 대상에서 경이로
환상을 현실로, 최고의 놀이동산 동물원
세계 최초의 놀이공원 하겐베크 동물원
도심 공원의 평화로운 일상

 

맺음말_ 놀라움을 추구하는 우리의 본능은 옳았다

 

감사의 말씀
미주
참고문헌
이미지 출처

도서요약

원더랜드


패션과 쇼핑_ 옥양목에 매료된 귀부인들

월트 디즈니가 꿈꾸었던 도시계획

쇼핑센터 개발업자들이 도시를 재창조하려는 그루엔의 계획을 무시하고 멋대로 개발을 추진하고 있을 때, 그루엔의 비전에 흠뻑 매료되었고 그 비전을 실현할 재력도 지닌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월트 디즈니(Walt Disney)다. 1955년 개장된 디즈니랜드는 월트 디즈니에게 거대한 성공을 안겨주었다. 놀이공원을 그토록 정교하게 지은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방문객을 완전한 경이와 기쁨으로 휩싸이게 만드는 환상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놀이공원 내부는 설계에 따라 잘 짜인 환경인데 반해, 공원 바깥은 전혀 딴판이었다. 오렌지나무 숲이 잘려 나가고 싸구려 모텔, 주유소, 옥외 광고판이 속속 들어섰다. 디즈니는 자신이 만든 보석 같은 놀이공원 주변에 흉측한 고속도로가 마구 들어서자 경악했다. 그래서 주변 환경, 즉 놀이공원뿐만 아니라 공원을 둘러싼 주변 지역 전체를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제2세대 개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디즈니는 현대 도시에서 체험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요소들을 재창조한, 완벽하게 기능하는 도시를 설계했다. 상상공학(imagineering)이 낳을 수 있는 궁극의 결과물이었다. 디즈니는 이 시설을 에프코트(EPCOT, Experimental Prototype Community of Tomorrow, 미래 공동체의 실험작)라 이름 지었다. 디즈니사는 결국 올랜도에 미래를 주제로 해 에프코트 놀이공원을 건설하지만, 이는 애초 디즈니가 에프코트에 대해 품었던 비전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디즈니의 비전을 충실히 반영했다면, 또 다른 관광지가 아니라 실제로 사람이 사는 진정한 공동체가 건설되었어야 한다. 디즈니는 평생 만화영화에서부터 놀이동산에 이르기까지, 파격적이고 다양한 형태의 오락을 재창조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사업은 보다 야심찼다. 도시의 삶 자체를 재창조하는 작업이었다.


디즈니가 에프코트를 통해 실현하려 한 원대한 꿈을 둘러싸고 그동안 축적되어온 전설은, 역사적 사실과 거의 일치한다. 1966년 디즈니월드를 소개하기 위해 제작한 영화에서 디즈니는 놀이공원〔훗날 마법의 왕국(Magic Kingdom)으로 불리게 된다〕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꿈꾸는 '내일의 도시'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면서, 50년 전 르 코르뷔지에가 상상했던 미래의 도시 풍경과 놀라울 정도로 닮은 실험작과 스케치들을 보여준다.


그러나 월트 디즈니가 품은, 시대를 앞선 도시계획을 둘러싼 전설에는 묘한 반전이 있는데, 이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에프코트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디즈니는 자신이 꿈꾸는 파격적인 신도시, 미래지향적인 첨단 도시를 건설하는 데 도움이 될 영감을 얻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디즈니가 순례의 길을 떠나 가장 먼저 찾은 성지는 어디였을까? 동부 연안에 있는 쇼핑몰 두 곳과 텍사스 주에 새로 생긴 니먼 마커스(Neiman Marcus) 백화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디즈니가 품은 야심은, 그가 만든 놀이공원의 성격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어 당혹스러울 정도다. 마치 니컬러스 스파크스(Nicholas Sparks)의 대중소설을 연구함으로써 문학소설을 재창조하겠다고 나서는 셈이었다. 그런데 사실 디즈니의 전국 순례는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다. 1960년대 초 쇼핑몰은 인간이 설계한 새로운 환경이었고, 향후 수십 년 동안 사회를 조직화하는 데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좋든 싫든 그게 미래의 모습이었다. 2000년에 인간이 어떻게 살고 있을지를 이해할 중요한 단서를 찾고자 한다면, 아마 1960년대 초에는 쇼핑몰만큼 믿을 만한 단서는 없었을지 모른다.


정보 탐색에 나선 디즈니는 그루엔에게 푹 빠졌다. 그루엔은 《우리가 사는 도시의 심장부》에서 디즈니랜드의 계획된 환경을 언급하며 긍정적으로 다루었고, 애너하임(Anaheim)에 있는 놀이공원 주변에 무분별하게 확산되던 '끔찍한 대로'에 대해 역겨움을 금치 못했다. 그런 점에서 디즈니와 생각이 같았다. 게다가 디즈니가 플로리다 주 중부 지역에 방대한 크기의 늪지를 사들여 '진보적인 도시(Progress City)'를(디즈니는 처음에 이런 이름을 붙였다) 건설하기로 했을 때, 그루엔은 그 도시의 수호성인으로 안성맞춤이었다.


1966년 디즈니는 버뱅크(Burbank)에 있는 월트디즈니 스튜디오 부지에 비밀 작전을 수행할 사무실을 차렸다. 이 널찍한 공간에는 곧 '일광욕실'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이 사무실에서는 도시계획 전문가인 상상공학자들이 새로 건설할 도시의 모형을 밤낮으로 만들었다. 디즈니는《우리가 사는 도시의 심장부》한 권을 책상 위에 두었다. 몇 달 동안 이 사무실의 존재는 디즈니사 직원들에게도 극비에 부쳐졌다(플로리다 주에서 부지를 사들일 때 낮은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디즈니가 익명으로 부지를 매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플로리다 주 올랜도 부지에 대한 소문이 유출되자, 디즈니는 '일광욕실'과 함께 거기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도 공개하기로 했다.


1966년 늦여름 디즈니는 디즈니월드를 소개하는 30분짜리 영화를 만들었고, 이 영화에서 일광욕실의 거대한 벽면을 뒤덮은 20피트 크기의 지도를 공개했다. (영화에서는 설계사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놀라울 만큼 생생한 세부사항을 지도에 그려 넣는 모습이 등장한다.) 디즈니를 연구하는 전문가 사이에서 그 영화는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월트 디즈니는 그 영화를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디즈니는 이 영화를 제작할 때 이미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상태였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에게 그 영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디즈니가 그때 사망하지 않고 비전을 실현했더라면 결과물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일별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에프코트 프로젝트가 디즈니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분명히 보여준다. 디즈니는 프로젝트 전체 모습이 담긴 거대한 지도 앞에 서서, 자신이 품고 있는 야심을 특유의 자상한 말투로 다음과 같이 펼쳐 보인다.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플로리다 구상에서 가장 멋지고 가장 중요한 부분(사실상 디즈니 월드에서 우리가 하게 될 모든 일들의 핵심)은, 미래의 도시가 어떤 모습일지 그 시안을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 에프코트는 창의적인 미국 산업의 심장부에서 개발되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에 바탕을 두었다. 결코 완성되지 않고 끊임없이 신소재와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고 시험하고 소개하는, 미래의 공동체가 될 것이다. 그리고 에프코트는 미국의 자유로운 기업가정신에서 나오는 창의성과 상상력을 전 세계에 선보이게 될 것이다. 지금 도시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일보다 훨씬 더 어렵고 중요한 문제는 이 세상에 없다고 믿는다.


에프코트와 관련해 가장 먼저 언급되어야 할 점은, 그루엔이 설계한 노스데일 원안과 마찬가지로, 쇼핑몰을 둘러싼 완전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었다. "도로와 건물이 들어선 50에이커 넓이의 이 도시가 지닌 가장 중요한 핵심은, 모든 게 갖추어진 완벽한 도시라는 점이다." 1966년에 만든 영화에서 해설가는 이렇게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기후가 조절되는 환경에서 쇼핑객, 영화 관람객, 그저 산책 나온 사람들 모두, 뜨거운 열기와 추위와 습기로부터 늘 자유로운 이상적인 날씨를 즐기게 된다."


쇼핑몰이 갖춰진 이 파격적인 새로운 도시 구상을 접한 요즘 도시인들이 키득거리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에프코트 구상에 매우 복잡한 요소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두말할 필요 없이 그루엔의 철학에 담긴 모순에서 비롯된 복잡함이다.


우선, 이 도시는 본질적으로 자동차에 매우 불친절하다. 도시 중심부에는 그루엔이 보통시민이 '걸어 다닐 만한 거리'라고 규정한 페드셰드(pedshad,' ped'는 발, 보행자를 뜻하고,' shed'는 벽 없이 지붕만으로 된 시설이다-옮긴이)가 있고, 자동차는 페드셰드 전역에 진입이 금지된다. 중심부에서 벗어나면 다양한 새로운 교통수단이 나타나는데, 거리에 따라 달리 제작된 이 탈것을 이용해 에프코트 주민들은 도심에 진입한다. 디즈니 월드에 있는 '미래 세계(Tomorrow Land)'를 둘러볼 때 관광객들이 타는 전동 '피플 무버(people mover)'는, 주민들을 고밀도 아파트에서 상업 지역으로 실어 나른다. 도시 주변부에 있는 산업공단과 저밀도 주거지역 사이처럼 이동거리가 긴 구간에는 모노레일이 운영된다. 디즈니의 놀이공원과 마찬가지로 이 도시에서는 모든 교통수단이 도시의 지하 터널망을 이용해 오간다. 이 영화에서 해설자는 에프코트 주민들이 '주말여행'을 갈 때만 자가용을 이용한다고 자랑스럽게 설명한다.


그루언의 삶에 나타난 비극적인 모순이 에프코트 구상에도 여실히 드러난다. 디즈니 월드를 소개하는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근래에 등장한 도시 대안이 얼핏 스친다. '실제 도심 번화가보다 더 도심 번화가 같은' 보행자 친화적 쇼핑몰에서 영감을 받은 새로운 형태의 도시에서의 삶. 넘치는 자동차의 물결로부터 자유로운 혁신적인 대중교통 수단의 새 시대를 연다는 구상 말이다. (지난 30년 동안 주말여행에만 자동차를 이용했다면 기후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상상해보라.)


그러나 그러한 도시 대안은 실현되지 않았다. 대신 쇼핑몰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교외 지역을 확산했다. 월트디즈니사는 에프코트를 미국 건축가 버크민스터 풀러(Buckminster Fuller)가 구상한 미래상과, 디즈니 월드 안 환상의 세계(Fantasy Land)에 있는 물위를 미끄러지는 탈것을 한 데 뒤섞어놓은 또 하나의 기괴한 놀이공원으로 변질시켰다.



음악_ 저절로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

소리 내는 도구에서 천을 짜는 방직기로

보캉송이 만든 피리 부는 목동은 인류에게 돌파구가 되었다. 기술이 지닌 기능을 활용하는 면에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인류에게 말이다. 보캉송은 피리 부는 목동에 생명을 불어넣은, 프로그래밍 가능한 원통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호텔 로비에 전시한 로봇보다 더 상업적인 가치가 있는 발명에 그 기술을 응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핀이 돌출된 원통을 이용해 복잡한 소리 파장을 만들 수 있다면, 똑같은 원리를 이용해 복잡한 색 파장을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보캉송은 그렇게 생각했다. 피리를 불 만큼 정교한 기계를 만들 수 있다면, 비슷한 원리로 견직물에 문양을 짜넣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1741년 무렵, '모이먹는 오리'로 대단한 성공을 거둔 보캉송은 프랑스에서 유명인사가 되었다. 공학에서의 재능뿐만 아니라 흥행사로서의 자질도 입증했다. 이러한 성공을 발판으로 루이 15세의 자문관이 되어, 프랑스 직물산업을 부흥시켰다. 당시 프랑스 직물 산업은 해협 건너편에서 기술을 개발하는 더 야심만만한 경쟁자들보다 뒤처져 있다는 게 통념이었다. 보캉송은 직물을 짜는 구식 베틀을 전국을 돌며 살펴보고, 바누 무사가 음악에 적용한 기술을 직물 제조에 응용한 기계를 만들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오르간에 공기구멍을 뚫거나 로봇의 손가락을 움직이게 하는 대신, 그가 만든 직물제조기는 핀이 돌출된 원통에 지시사항을 입력하고, 그 지시사항에 따라 갈고리와 바늘들이 움직이며 갖가지 색상의 실들을 교차해 문양을 짜 넣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이 기계에 지시사항을 입력하면 견직물에 수없이 다양한 문양을 짜 넣을 수 있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프로그래밍이 음악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게 되었다.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그랬다.


그런데 실제로 보캉송이 만든 기계는 문양을 핀이 돌출된 원통에 커팅'할 때 난관에 부딪혔다. '커팅'에는 돈이 많이 들었다. 원통이 한 바퀴 돌 때마다 문양이 한 줄씩 생겨났기 때문에, 반복적인 문양만 짜 넣을 수 있었다. 몇 가지 시제품이 제작되었지만, 이 기계는 프랑스 섬유산업에 쓰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때 만들어진 시제품 중 하나가 국립 공예 학교(Conservatoire des Arts et Metiers) 소장품 가운데 발견된다. 보캉송이 세상을 떠나고 십여 년도 더 지난 뒤 일어난 프랑스혁명 초기에 설립된 학교다. 1803년, 리용(Lyon) 출신의 조제프-마리 자카르(`Joseph-Marie Jacquard)라는 야심만만한 발명가가 이 학교를 찾아가, 보캉송이 만든 자동 직물기계를 살펴보게 된다. 이 핀이 돌출된 원통이 지닌 장단점을 알아차린 자카르는, 기계를 프로그래밍 할 때 구멍이 뚫린 일련의 카드를 사용하는 방법을 떠올렸다. 작은 막대기들을 각각 실과 연결해 구멍 뚫린 카드에 대고 누르는 방식이었다. 막대기가 카드 표면과 닿으면 실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막대기가 카드에 뚫린 구멍을 통과하면 막대기와 연결된 실이 문양을 짜 넣었다. 컴퓨터에 적용되는 2진법이 사용된 셈이었다. 카드에 뚫린 구멍들로 실이 들락날락하면서 문양을 짜는 구조였다.


카드는 금속 원통보다 훨씬 만들기 쉬웠고, 카드를 어떤 순서로 정렬하느냐에 따라 문양들을 끝없이 만들어낼 수 있었다. 자카르가 만든 방직기는 자동기계이므로 직물을 전통 방직기보다 20배는 더 빨리 짰다. "자카르의 방직기를 사용하면, 숙련된 직조공은 날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문양이 수놓인 견직물 2피트를 생산할 수 있었다. 전통적인 베틀은 기껏해야 하루에 1인치밖에 짜지 못했다." 여러 편의 경영서적을 쓴 저자 제임스 에싱어(`James Essinger)는 말한다.


1804년에 특허 출원된 자카르 방직기는 오늘날 직물 생산 역사상, 가장 중요한 혁신기술로 손꼽힌다. 그러나 그의 방직기가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은 컴퓨터 분야에서 찾을 수 있다. 1839년, 찰스 배비지는 파리에 사는 친구인 천문학자에게 편지를 보내 런던에서 본 초상화에 대해 묻는다. 멀리서 보면 유화처럼 보이는 초상화인데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면 견직물이었다. 초상화의 주인공은 조제프-마리 자카르 본인이었다. 이 편지에서 배비지는 이 전설적인 방직기 발명가에 대해 관심을 보이며 다음과 같이 적었다.


당신도 알다시피 자카르가 발명한 카드 체계를 아주 평범한 방직기에 적용하면 어떤 문양도 짜 넣을 수 있소이다. 나도 이 멋진 발명품의 원리를 응용하면 아무리 어려운 수식이라도 내 계산 기계로 계산할 수 있었소. 하지만 나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카드를 일일이 만들지 않고도 내 계산기계가 이 카드들을 사용하는 데 적용되는 특정한 법칙들을 따르게 만들었소. 그렇게 해서 어떤 등식이든 풀고 변수를 제거하고, 최고 수준의 분석을 실행하게 만든 것이오.



맛_ 후추 난파선

로마를 멸망시킨 후추의 비밀

1606년 9월, 포르투갈 국적의 화물선 노사 세노라 도스 마르티레스(Nossa Senhora dos Martires)가 리스본에서 그리 멀지 않은 타구스(Tagus)강 입구에 다다랐다. 아홉 달에 걸친 대장정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배에는 인도에서 구한 값진 물건들이 가득 실려 있다. 그러나 타구스 강에서 지형이 험난한 북쪽 수로를 통해 리스본 항으로 들어가려던 배는, 정박지에 닿기도 전에 돌풍에 떠밀리면서 상 줄리앙 다바라(São Julião da Barra) 곶의 암초에 부딪혔다. 강풍에 떠밀려 암초에 세게 부딪힌 선체는 산산조각 났고, 새로 구축된 상 줄리앙 다 바라 요새 근처 강바닥에 가라앉은 채 4세기 동안 잠들게 된다.


세월이 흘러 상 줄리앙 다 바라 곶에 보물이 가라앉았다는 소문이 퍼졌다. 1950년대에 그 지역을 탐색하기 시작한 스쿠버 다이버들은, 진흙 바닥에 묻힌 채 어렴풋이 보이는 선체를 발견했다. 1996년 포르투갈 고고학 박물관 측은 선체 대부분이 가라앉은 위치라고 알려진 100제곱미터에 달하는 지역에서 인양 작업을 지원한다. 그러나 엄청난 보물이 묻혀 있으리라는 희망은 무산되었다. 고고학자들이 인양한 물건은 버마산 석기, 도자기, 금전과 은전 몇 냥이 전부였다. 그런데 노사 세노라 도스 마르티레스의 진짜 보물은 뻔히 보이는 곳에 있었다. 금은 동전과 장신구와 도자기를 검은 담요처럼 뒤덮고 있던 통후추였다.


오늘날 보물 사냥꾼에게는 무용지물이겠지만, 당시 배가 리스본 항구에 안전하게 정박했다면 선주는 통후추로 족히 수백만 달러는 벌어들였을지도 모른다. 1606년 배가 가라앉았을 당시 타구스 강둑에는 통후추가 강물에 대거 밀려왔고, 지역 주민들은 강으로 몰려가 허겁지겁 통후추를 건져 올렸다. 오늘날 '후추 난파선'으로 불리게 된 이 배는, 지금은 흔해빠진 이 향신료가 당시에는 얼마나 값진 물건이었는지 절실히 깨닫게 만든다. 중세에 후추 1파운드는 금 1파운드보다 몇 배 더 값어치가 높았다. (오늘날 금 1파운드는 2만 달러나 하지만, 후추 1파운드는 겨우 5달러면 산다.)


당시 통후추는 화폐로 흔히 쓰였는데, 터너는 후추가 일종의 '세계 통화(universal currency)'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임대료를 후추 몇 파운드로 지불하는(또는 임대료 일부를 후추로 지불하는) 관행은 유럽 일부 지역에서 1900년대까지도 계속되었다. 1526년 포르투갈의 이사벨라 여왕이 결혼할 당시 지참금의 상당 부분을 통후추로 지불했다.


인류 역사상 로마제국만큼 향신료에 열광한 문명은 없었다. 로마 특권층의 연회에 제공되는 음식에는 보통 온갖 종류의 향신료가 쓰였다. 1세기에 마르쿠스 가비우스 아피키우스(Marcus GaviusApicius)가 썼다고 알려진 요리책《아피키우스》에 수록된 조리법 중 80퍼센트가 후추를 재료로 사용한다. 예컨대 "후추를 섞은 밀가루 튀김에 꿀이나 대추절임, 아몬드, 꿀과 후추를 약간 넣어 구운 잣을 곁들인, 향신료가 첨가된 각종 후식"이 수록되어 있다.


408년 고트족이 로마를 포위했을 때, 고트족을 이끌던 알라리크 1세는 금, 은, 비단과 후추 3천 파운드를 바치면 봉쇄를 해제하겠다고 제안했다. 어처구니없는 요구(요즘으로 치면 플라스틱 포크와 종이 냅킨을 요구하는 셈이다)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향신료에 열광한 로마인의 입맛은 중대한 결과를 초래했다. 로마와 인도 간의 무역적자, 대부분 후추 수입에서 생긴 이 적자는 로마제국의 멸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믿는 역사학자들도 있다.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두스(Gaius Plinius Secundus)는《자연의 역사(Naturalis Historia)》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해마다 인도가 로마제국으로부터 5천만 세스테르체(sesterce,고대 로마의 화폐단위-옮긴이)를 빼내간다."


로마제국이 타락으로 멸망했다고들 하는데, 이는 단순히 도덕적인 타락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향신료가 듬뿍 들어간 산해진미로 향연을 벌이느라 경제를 탕진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환영(幻影)_ 유령 제조사

유령과 기술의 만남

때는 1771년, 장소는 라이프치히(Leipzig). 클로슈터가세(Klostergasse) 거리와 바푸스가셴(Barfussgasschen) 거리 모퉁이에 있는 커피 하우스 2층 방문 앞에 젊은이 몇 명이 모여 있다. 불안해 보이기도 하고 배짱이 두둑해 보이기도 한다. 밤나들이 나온 그들은 북유럽의 팸플리티어(Pamphleteer, 정치평론 등을 담은 소책자를 작성 배포하는 사람들-옮긴이)와 상류층 지식인 사이에서 떠들썩하게 화제가 된 볼거리를 기다리고 있다. 조금 기다리니 어둑한 방에서 후드를 쓴 집 주인이 나와,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벽에는 데스마스크(death mask)가 즐비하다. 맞은편에는 검은 천을 덮은 재단이 서 있다. 촛불 몇 대만 밝힌 방 안은 유황 냄새로 가득하다. 주인은 방 가운데에 분필로 그린 동그라미 안에 서서, 혼을 부르는 주문을 크게 읽기 시작한다.


갑자기 방 안에 소음이 일더니 촛불이 꺼진다. 어둠 속에서 혼령이 나타나 어두운 재단 쪽으로 비틀거리며 다가간다. 손님들은 유령을 보고 전류가 몸을 통과하는 듯한 충격을 받는다. 주인은 자신이 불러낸 유령이 형체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유령을 칼로 찌른다. 유령이 입을 열더니 말을 하기 시작한다. "거칠고 무시무시한 음성으로."


이 야릇한 광경은 요한 게오르크 슈뢰퍼라는 독일 청년이 만들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이 흥행사는 한동안 유럽 전역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로 손꼽히게 된다.


1760년대 중반, 슈뢰퍼는 라이프치히에 있는 한 숙박업소에서 웨이터로 일했다. 그 숙박업소는 그 지역 프리메이슨(freemason)이 모여 의식을 치르는 장소로 자주 사용되었다. 슈뢰퍼는 곧 프리메이슨의 교리에 동화되었고, 자신을 영혼의 세계와 소통하는 영매로 칭하기 시작했다. 프리메이슨에 소속되었던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과학과 은비학〔隱秘學, occultism, '감추어진 것, 비밀'이라는 뜻의 라틴어 '오쿨투스(occultus)'에서 온 단어로, 마술, 점성술, 연금술 등 과학이나 이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현상을 연구하는 비학을 총칭한다-옮긴이〕을 넘나들며 살았다. 그는 그림 등을 확대해 비추는 환등기(幻燈機, magiclantern) 같은 신기술에도 능통했고, 화학에도 손댔다. 그는 또한 유령을 부르는 강령회(降靈會)에도 매료되어, 유령이 등장하는 환영을 연출하는 기술을 이용하면 실제로 영적 세계와 접촉하게 된다고 믿었던 듯하다.


흥행사적인 기질과 영적인 신비를 믿는 경향을 겸비한 그에게 이런 성향은 치명적이었다. 1769년, 슈뢰퍼는 웨이터로 일하던 라이프치히 커피 하우스를 사들여, 당구실을 멀티미디어 공포 체험 극장으로 개조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자기를 추종하는 고객들을 모아놓고 강령회를 열었다. 환등기를 이용해 자욱한 연막(煙幕)을 배경으로 유령의 모습을 투사하는 한편 음향효과를 이용, 그 작은 공간에 굉음이 울리게 해 섬뜩한 느낌을 더했다.


빈센트 프라이스(Vincent Price)가 주연한 공포영화의 고전 팅글러(The Tingler)에서처럼, 1950년대 할리우드에 '센서라운드(Sensurround, 사람 귀에 들리지 않는 저주파 소리를 통해 몸으로 진동을 느끼게 하는 음향효과 기술의 명칭. 1970년대에 등장했다-옮긴이)'와 같은 특수효과 기법이 등장하리라고 예견이라도 한 듯했다. 그는 정전기 기계를 이용해 고객에게 전기충격을 느끼게 했고, 이 기법은 당시 상류층의 오락거리로 인기를 끌었다.


슈뢰퍼가 우연히 생각해낸 오락 형태는 결국 엄청난 수익을 창출하는 공포영화 장르로 발전한다. 곧 그는 유럽 전역에서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고, 라이프치히의 '게슈펜슈터마허(Gespenstermacher, 유령 제조사-옮긴이)'라고 불렸다. 팸플리티어들 사이에 그가 불러낸 유령이 가짜인지 진짜인지 의견이 분분했지만, 슈뢰퍼는 스스로 만든 마법에 걸렸다. 슈뢰퍼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죽은 사람의 영혼과 교류한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을 완전한 가공의 인물로 재창조했다. 사연은 분명치 않지만, 프랑크푸르트에 보물 형태로 재산을 숨기고 있으며 이를 현지 은행가들에게 맡겨 관리하고 있는 막대한 자산가 행세를 했다. 자연이나 인간의 숨겨진 신비로운 힘을 연구하는 은비학에 심취해 끊임없이 사람들을 속이며, 이미 정신적으로 불안정했던 슈뢰퍼는 결국 미쳐버렸다.


1774년, 그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을 보여주겠다"며 친구들 몇 명을 데리고 라이프치히에 있는 한 공원에 산책을 나갔다. 공원에서 잠시 산책을 중단하고 쉬던 중 그는 모퉁이를 돌아 친구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순간 커다란 폭발음이 들렸다. 친구들이 슈뢰더가 사라진 방향으로 달려가 보니, 그는 땅바닥에 쓰러진 채 피를 흘리고 있었다. 자기 머리에 총을 쏜 것이다. 정신이상인 슈뢰더는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이미 사람들에게, 자신이 앞으로 열릴 강령회에 환생해서 돌아오겠다고 공언해왔다.


이 유령 제조사는 충격적인 죽음 덕분에 오히려 더 유명해졌다. "죽음으로써 슈뢰퍼는 당대의 로트레아몽(Lautréamont), 제임스 딘, 지미 헨드릭스(차례대로 프랑스 시인, 미국 영화배우, 미국 기타리스트 겸 가수 겸 작곡가. 모두 20대에 요절했다-옮긴이)가 되었다."


영화가 등장하기 이전 시대와 초기 영화를 연구하는 딕 로셀(Deac Rossell)은 말한다. 슈뢰퍼의 마술이 합법인지 여부를 두고 열띤 논쟁이 계속되는 동안, 유럽 전역에서는 수십 명의 흥행사들이 슈뢰퍼가 고안해낸 특수 효과를 재현하는 공연을 무대에 올렸다.


이들 슈뢰퍼의 후예 가운데 가장 성공한 인물은, 베일에 가려진 또한 사람의 독일인 폴 필리도(Paul Philidor)였다. 그는 1780년대 말 비엔나에서 공포 쇼를 무대에 올리기 시작했다. 필리도는 슈뢰퍼와는 달리 자신이 실제로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낸다고 속이지 않았다.〔그는 자신을 '물리학자(The Physicist)'라고 지칭했는데, 아마도 유령 제조사로 알려진 슈뢰퍼와 차별화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1790년에 한 신문기사는 그의 쇼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쇼가 막바지에 다다르자, 천둥소리가 점점 또렷해지면서 바람이 휘몰아치고 우박과 비가 쏟아졌다. 격렬한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마침내 유령이 땅속에서 솟아나오더니, 다시 서서히 심연으로 가라앉았다."


필리도는 이 장르에 세 가지 중요한 공헌을 했다. 첫째, 관객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얇은 반투명 커튼 뒤쪽에서 유령 이미지를 커튼에 투사했다. (연막에 투사하는 슈뢰더의 기법은 두말할 필요 없이 섬뜩한 효과를 냈지만, 이미지를 투사하는 캔버스로는 적당하지 않았다. 게다가 작은 공간이 짙은 연기로 가득 차면, 강령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신체적으로 불쾌감을 느꼈다.)


또한 필리도는 환등기에 바퀴를 다는 기법도 개발했다. 영사기를 서서히 스크린 가까이 이동시켜 유령이 점점 커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관객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그로부터 한 세기가 조금 지나 이 기법은 영화의 경로추적촬영기법(tracking shot, 트랙이 있는 탈것이나 이동 수단에 촬영기를 장착하고 연기자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 움직이며 촬영하는 기법-옮긴이)으로 재탄생한다.〕마지막으로 필리도가 기여한 바는 언어적인 측면이다. 그는 공포 쇼에 이름을 붙였고, 그 이름은 그로부터 수십 년 동안 유럽인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바로 팬태즈 머고리아(Phantasmagoria)다.



공공장소_ 놀이터

세계 최초의 놀이공원 하겐베크 동물원

그렇게 세계를 누비며 돌아다녔지만, 정작 하겐베크가 남긴 가장 중요한 업적은 그가 한곳에 정착하고 나서야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1897년, 그는 함부르크 외곽에 있는 슈텔링겐(Stellingen)에 35에이커에 달하는 토지를 매입해, 새로운 형태의 공원을 조성하는 일에 착수했다. "앞으로 할 일이 막중하다. 황무지를 화려한 공원으로 둔갑시켜야 한다. 폭포가 흐르고 산이 치솟고 동물의 안식처가 있고, 순전히 놀이용 건물이 들어선 놀이공원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그는 훗날 기록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공원이 세계 최초의 놀이공원으로 손꼽히는 하겐베크 동물원(Tierpark Hagenbeck)이다.


물론 축제와 이동식 순회 유원지는 수세기 전부터 존재했다. 1893년 개최된 시카고 컬럼비아 박람회에서는 기계 놀이기구가 관람객들을 즐겁게 했다. 1903년 코니아일랜드에 루나 파크(Luna Park)가 개장할 때는, 하겐베크가 직접 가장 인기 있는 놀이기구를 증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누구도 감히 가상 세계를 영구적인 공원으로 만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실제로 세계를 탐험한다면 감수해야 할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도, 세계를 탐험하고 모험을 감행한다는 느낌에 관람객들이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그런 환경 말이다.


1907년 개장한 하겐베크 동물원은 80에이커에 달했다. 훗날 디즈니가 어떤 구상을 할지 예견하듯, 그는 가짜 산을 만들어 곳곳에 동물의 안식처를 숨겨놓았고, 직원들이 드나드는 통로를 따로 만들었으며, 온열 파이프와 전동기로 폭포를 만들었다. 또, 인공 자연 곳곳에 동물과 원주민을 배치하고 마을을 만들었다. 어찌 보면 실제 생물이 등장하는, 움직이는 거대한 파노라마인 셈이다. 관람객이 동물원에 들어서면 물새가 노니는 연못이 보이고, 그 너머로 사슴이 뛰어 노는 벌판이 펼쳐지며, 그 벌판은 사자가 어슬렁거리는 협곡까지 뻗어 있다. 배경에 펼쳐진 산마루 너머에서는 야생염소와 산양이 풀을 뜯고 있다. 산마루가 보이는 이 가짜 지형에 구불구불 나 있는 보도와 터널과 오솔길을 따라가면서 관광객은, 몽블랑 정상에서 장관을 내려다보는 드 소쉬르가 된 기분이 들었다.


하겐베크는 포식자와 피식자를 분리하는 데 철창이나 유리를 쓰지 않고 지형을 이용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깊은 참호를 파서 관람객과 원주민을 안전하게 분리했다. (토머스 에디슨이 이 동물원을 찾았을 때 나무 몇 그루가 서 있는 주위를 걷다가 사자를 맞닥뜨리고는 아연실색하기도 했다.) 자연경관과 동물 전시와 놀이기구를 한데 섞은 곳도 있었다. 관람객은 '북쪽 고원의 정상'에 서서 북극곰과 바다표범이 사는 북극해를 본떠 만든 동토를 둘러본 뒤, '캐나다식 터보건(toboggan) 썰매'를 타고 험준한 크레바스(crevasse)를 통과하며 북극곰과 순록 무리 곁을 지나쳐 갈 수 있었다.


하겐베트 동물원은 개장하자마자 대성공을 거두었다. 개장하는 날 1만 명 이상이 몰렸다. 1914년 무렵 동물원 정문을 통과한 사람의 수는 750만 명에 달했다. "웅장한 절벽으로 둘러싸인 사자의 계곡에 가까워지면, 마치 사막을 걷다가 갑자기 사자 무리와 마주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안전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 전율을 순수한 심미적 감각으로 즐길 수 있다."


바로 그 '순수한 심미적 감각'을 가능케 한 일련의 혁신은, 20세기의 산업에 부인할 수 없는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놀이공원 산업은 세계에서 가장 수익성이 높은 오락 사업으로 손꼽힌다. (미국에서만도 놀이공원은 경제활동으로 환산할 때 해마다 500억 달러 이상을 창출한다.)


그런데 이러한 놀이공원은 철학적인 의미도 지닌다. 1970년대에 등장한 대륙 철학(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유럽을 중심으로 형성된 철학으로, 분석철학(analytical philosophy)에 속하지 않은 전통과 사상을 뭉뚱그린 용어다. 독일 관념론, 현상학, 실존주의(그리고 실존주의의 선구자라 할 키르케고르와 니체), 해석학, 구조주의, 후기 구조주의, 프랑스 페미니즘, 정신분석이론,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 이론, 이와 연관된 서구마르크스주의 등이다-옮긴이), 가장 유명하게는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의《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세계를 여행하다(Travels in Hyperreality)》에서 장 보드리야르(JeanBaudrillard)의《시뮐라크르와 시뮐라시옹(Simulacres et Simulation)》이르는 대륙 철학은, 테마 레스토랑과 거대한 쇼핑몰의 등장, 옛 시가지가 볼거리로 전락하는 현상 등 현실을 모방한 현대 문화의 인공 구조물들을 비판했다. 보드리야르는《시뮐라크르와 시뮐라시옹》에서, "디즈니랜드는 상상으로 제시된다. 우리로 하여금 디즈니랜드를 뺀 나머지는 실제라고 믿게 만들기 위해서다"라는 유명한 말을 하면서 덧붙였다."


"로스앤젤레스와 그 도시를 둘러싼 미국 전체는 더는 실제가 아니라 극사실의 법칙, 모조의 법칙을 따른다."


구대륙의 철학적인 전통을 대표하는 동시에, 대중문화의 기호학에 관심을 보인 유럽인인 에코와 보드리야르가 쓴 여행기들은, 미국에 대해 점잖고 준엄하게 비판하고 있다. 마치 디즈니가 만든 환상의 공원이 제공하는 현실도피주의가 미국이 전 세계에 퍼뜨린 이념적 바이러스인 양 말이다. 그러나 카를 하겐베크의 동물원은 그들의 주장에 담긴 오류를 바로잡는 역할을 한다. 놀이공원이 2차 대전 후 미국에서 성숙기에 달한 것은 맞지만, 청년기의 대부분은 유령 제조사, 마술사, 야생동물 무역상 틈바구니에 끼어 유럽에서 보냈다.


하겐베크가 모조 산맥과 가짜 사바나를 만들어, 에코가 말하는 극사실적인 미래로 우리를 던져 넣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그의 창조물은 지나치게 사실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1914년 세상을 떠났는데, 그가 아프리카에서 들여 온 독사에게 물려 사망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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