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의 기술
저   자 : 도널드 트럼프(역:이재호)
출판사 : 살림
출판일 : 2016년 05월

도서정보

■ 책 소개

 

가장 뜨겁지만 가장 미스터리한 인물, 도널드 트럼프

 

『거래의 기술』은 천재적인 사업가이자 거래의 달인인 저자의 전례 없는 성공 습관을 포착한 책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이 책은 세상물정에 가장 해박한 경영학 서적이자, 성공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적나라한 인생학 서적이다. 그렇지만 이제 이 책은 미국 정계와 국제사회의 핵으로 떠오른 정치인 도널드 트럼프를 이해하기 위한 최적의 수단으로 더욱 가치 있다. 『거래의 기술』은 부정과 긍정을 넘어 ‘트럼프 신드롬’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열쇠를 우리에게 제공해줄 것이다.

 

■ 저자 도널드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Donald Trump는 미국의 기업인·방송인·정치인. 트럼프 오거니제이션(The Trump Organization)의 회장 겸 사장이자 트럼프 엔터테인먼트 리조트의 설립자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부동산 투자자로 미국에서 가장 비싼 건물과 지역은 대부분 트럼프의 손을 통해 개발되었다고 할 정도로 부동산을 보는 그의 안목은 탁월하다.

 

2015년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구호를 내걸고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해 돌풍을 일으키고 있으며, 많은 이들의 예상과 달리 ‘트럼프 현상’이라고 할 만한 상황이 빚어지자 미국 정계와 국제사회는 큰 충격에 휩싸여 있다. 그는 인종차별, 고립주의, 보호무역 관련 발언으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오히려 화제의 중심에 서며 많은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다. 이러한 불가사의한 인기의 비밀을 두고 「월스트리트 저널」은 트럼프를 이해할 수 있는 한 가지 길이 바로 이 책 『거래의 기술』에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는 1946년 뉴욕에서 태어났으며, 뉴욕 사관학교를 거쳐 펜실베이니아 와튼 스쿨을 졸업한 뒤 아버지가 운영하던 부동산 개발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70년대에는 뉴욕 맨해튼에서 독자적으로 사업을 시작했고, 34세 때 뉴욕 시 한복판의 코모도어 호텔을 개발해 그랜드 하얏트 호텔로 개조하면서 돈방석에 앉았으며, 2년 뒤 세운 68층의 트럼프 타워는 뉴욕의 명소가 되었다. 이어서 애틀랜틱시티로 진출하여 카지노 호텔업계의 대부로 자리하면서 41세에 이미 수십억 달러의 자산을 지닌 부동산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1980년대 말 부동산 시장이 붕괴하면서 100억 달러에 육박하는 채무에 허덕이기도 했지만, 1990년대 찾아온 호경기와 함께 재기에 성공하여 미국 경제의 성공 신화가 되었다.

 

트럼프는 NBC TV의 비즈니스 리얼리티 프로그램 「어프렌티스」의 진행을 맡으면서 미국 전역에 트럼프 배우기 열풍을 몰고 왔다. 그의 엄청난 카리스마는 쟁쟁한 출연자들을 얼어붙게 만들었고, 그가 가차 없이 내뱉은 “너는 해고야!(You’re fired!)”라는 말은 유행어가 되었다. 『거래의 기술』을 비롯한 7권의 저서가 있다.

 

■ 역자 이재호
역자 이재호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동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1년 동아일보사에 입사하여 정치부장, 워싱턴특파원, 논설위원실장을 거쳐 출판편집인을 지냈다. 1989년 한국기자협회의 한국기자상을 받았다. 미국 조지타운 대학 객원연구원(공공정책)을 지냈으며, 제1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을 역임했다.

 

■ 차례
이 책에 도움을 주신 분들께
맨얼굴의 트럼프

 

제1장 거래는 예술이다 : 나의 일주일
제2장 나의 사업 스타일 : 11가지 원칙
제3장 성장
제4장 신시내티 촌놈 : 부동산 사업에 눈뜨다
제5장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제6장 그랜드 하얏트 호텔 : 뉴욕 중심가를 부활시키다
제7장 트럼프 타워 : 우리는 환상을 팔고 있다
제8장 카지노 사업을 시작하다 : 트럼프 플라자 
제9장 힐튼 카지노 쟁탈전
제10장 트럼프 파크 : 세계가 주목한 초호화 콘도미니엄
제11장 USFL의 봄과 가을
제12장 아이스링크의 재건
제13장 ‘텔레비전 시티’ 프로젝트
제14장 다음엔 무엇을?

 

옮긴이의 말

 

도서요약
거래의 기술


거래는 예술이다 : 나의 일주일

나는 돈 때문에 거래를 하는 것은 아니다. 돈은 얼마든지 있다. 내게 필요한 양보다 훨씬 많다. 나는 거래 자체를 위해서 거래를 한다. 거래는 나에게 일종의 예술이다. 어떤 사람들은 캔버스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또 훌륭한 시를 쓴다. 그러나 나는 뭔가 거래를 하는 것이 좋다. 그것도 큰 거래일수록 좋다. 나는 거래를 통해서 인생의 재미를 느낀다. 거래는 내게 하나의 예술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일하는 방식을 보고 놀란다. 아주 느슨하게 사업을 하는 편이라고나 할까. 물론 서류가방 따위를 들고 다니지도 않는다. 사람을 만나거나 회의에 참석하는 일이 많다고 해서 일일이 스케줄을 잡아두려고 애쓰는 편도 아니다. 내 사무실의 문은 항상 열려 있다. 기업가라는 사람이 너무 많은 조직을 가지고 있어 거기에 얽매이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진정한 기업가라고 할 수도 없다. 나는 그저 매일 출근해서 일이 어떻게 잘되어가는지 살펴볼 뿐이다.


나의 생활은 하루하루가 다 다르며 일정한 공식이란 게 없다. 그러나 대략 매일 아침 6시쯤에 일어나서 한 시간가량 조간신문들을 본다. 사무실 도착은 대개 9시, 사무실에 오면 전화를 건다. 전화는 하루 평균 50회쯤. 최고 100회 이상 할 때도 있다. 전화를 거는 사이사이에 적어도 10여 차례 이상 사람을 만난다. 대부분의 만남은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이루어지며 미리 약속돼 있거나 짜여 있지 않다. 한 번의 만남에 소요되는 시간은 15분을 넘기지 않는다. 점심 식사를 위해서 따로 시간을 내어 쉬지도 않는다. 퇴근 시간은 오후 6시 반. 그러나 대부분 집에 와서도 계속 전화를 걸며 자정까지는 일을 한다. 그리고 주말에는 푹 쉰다.


이런 매일매일의 생활이 쉼 없이 계속된다. 다른 식으로 하루를 보내본 적이 없다. 나는 과거로부터 무언가를 배우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현재에 모든 초점을 맞춤으로써 미래를 계획한다. 내가 재미를 느끼는 것은 현재다. 현재가 재미없다면 미래나 과거가 무슨 소용 있겠는가?



나의 사업 스타일 : 11가지 원칙

내가 거래를 완성시키는 방식은 아주 간단하고 분명하다. 목표를 높게 잡은 뒤 목표 달성을 위해 전진에 전진을 거듭할 뿐이다. 때때로 목표에 미달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나는 원한 만큼의 목표를 달성한다.


나는 거래를 달성시키는 능력은 천부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유전인 셈이다. 그렇다고 똑똑해야만 거래를 잘 성사시키는 것은 아니다. 물론 좀 똑똑하기도 해야겠지만 대부분은 브로커로서의 본능에 좌우된다. 와튼 스쿨에서 전 과목 A학점을 받고, IQ 170인 수재라 하더라도 브로커로서의 본능이 없으면 결코 성공적인 사업가가 될 수 없다.


크게 생각하라

나는 크게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사람들은 대개 무언가 결정을 내려야 할 경우 일을 성사시킨다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기 때문에 규모를 작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점이 나 같은 사람에게는 굉장히 유리하게 작용하지만.


항상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라

나는 긍정적인 사고의 힘을 믿는다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오히려 부정적 사고의 능력을 믿고 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거래를 할 때는 보수적 입장을 가지게 되었다. 즉 항상 최악의 경우를 고려하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고 있으면 막상 일이 닥치더라도 견뎌낼 수가 있다.


선택의 폭을 최대한 넓혀라

나는 또한 유연한 자세를 유지한다. 한 가지 거래에만 몰두하지도 않고 한 가지 방식만을 고집하지도 않는다. 많은 공을 한꺼번에 공중으로 던지면 멋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일부는 땅에 떨어지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초심자 여러분에게 상기시키고 싶다.


발로 뛰면서 시장을 조사하라

나는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그럴듯한 시장조사는 믿지 않는다. 언제나 스스로 조사를 해서 결론을 낼 뿐이다. 땅을 살 생각이 있으면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게 학교는 어떤지, 도둑은 없는지, 장보러 다니기는 편리한지 물어본다. 택시를 잡아탄 뒤 운전사들에게 질문을 하기도 한다. 묻고 묻고 또 물어서 의문을 해결한 뒤에야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지렛대를 사용하라

남이 갖고 있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해야 이긴다. 그렇지 않고서는 당신이 남보다 다소 유능하더라도 부족하다. 겨우 남과 비등해서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때로는 상상력과 세일즈맨으로서 자질이 필요할 경우가 있다. 다시 말해서 거래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상대방을 설득시켜야 한다.


입지보다 전략에 주력하라

중요한 것은 좋은 입지가 아니라 최선의 거래이다. 좋은 거래를 위한 계기를 마련할 수 있듯이, 부동산의 위치도 선전이나 심리적 효과에 따라 얼마든지 좋다고 판단하도록 만들 수 있다. 요점은 꼭 좋은 곳의 땅에 많은 돈을 투자한다고 해서 항상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렇게 하면 입지 조건이 낮은 땅을 사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쫄딱 망할 수도 있다. 문제는 제일 좋은 입지의 땅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과도한 투자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을 이용하라

나는 아주 젊어서부터 꽤 사업 수완을 보였다. 신문이 나를 주목하게 되어 내 기사를 쓰지 못해 안달을 하게 됐다. 언론이 항상 나를 좋아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어떤 때는 긍정적인 기사를 쓰지만 어떤 경우에 헐뜯는 기사가 나올 때도 있다. 그러나 순전히 사업적인 관점에서 보면, 기사가 나가면 항상 손해보다는 이익이 많기 마련이다.


신념을 위해 저항하라

대부분의 경우 나는 남들과 잘 지내왔고 내게 호의를 보이는 사람에게는 특별히 잘해준다. 그러나 나를 이용하거나 부당하게 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치열하게 대항한다. 내가 공격적이 아니더라도 나를 목표로 삼는 사람들은 많다. 당신이 성공하면 직면하는 문제 중의 하나가 시샘과 질투다. 상대방을 저지함으로써 성취감을 느끼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그들을 인생의 실패자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들이 만약 진짜 재능을 갖고 있다면 싸우는 대신 무언가 건설적인 일을 할 것이다.


최고의 물건을 만들어라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을 오랫동안 좌지우지할 수 없다. 잠깐 동안은 흥분시킬 수도 있고, 그럴듯한 선전을 할 수도 있고, 온갖 언론을 이용할 수도 있다. 또 좀 떠벌릴 수도 있다. 그러나 좋은 상품을 내놓지 않으면 사람들은 끝내 허실을 알아차리기 마련이다.


희망은 크게, 비용은 적당히

쓸 만한 가치가 있으면 돈을 써야 한다. 그러나 적정 규모 이상으로 낭비해서는 안 된다. 나는 아버지로부터 동전 한 푼이라도 일일이 챙겨야 한다고 배웠다. 동전은 곧 지폐가 되기 때문이다. 요즘에도 나는 청부업자가 부당하게 액수를 늘렸다고 생각되면 5,000달러나 1만 달러짜리라 할지라도 전화를 걸어 불평을 하곤 한다. 얘기의 핵심은 희망을 크게 가지되 적당한 비용을 들여 실현시키라는 것이다.


사업을 재미있는 게임으로 만들어라

나는 나 자신을 속이지는 않는다. 인생이란 쉽게 변하기 마련이며, 성공한다고 해서 이 원칙이 바뀌지는 않는다. 무엇이든 아무런 예고 없이 변하기 마련이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일단 발생한 현상을 심각하게 보지 않는다. 내게 돈은 큰 자극이 되지 않는다. 다만 성공하기 위한 수단이 될 뿐이다. 진정한 재미는 게임을 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내가 좀 더 다르게 일을 처리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또는 다음에 어떤 일이 생길까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을 하지 않는다.



트럼프 타워 : 우리는 환상을 팔고 있다

건축을 시작하기 전부터 나는 아트리움이 트럼프 타워의 가장 황홀한 부분의 하나가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 가능성을 실현시키기 위해 모든 것을 투자하기로 결심했다. 우리는 바닥 전부와 6층이나 되는 벽에 대리석을 사용했다. 그것은 매우 사치스럽고 사람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물론 대리석은 그 일부분일 뿐이었다. 아트리움 전체가 매우 인상적이고 특이했다. 난간을 값싸고 실용적인 알루미늄으로 만들지 않고 금빛 찬란한 황동을 사용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많은 반사거울을 사용했는데 반사거울은 작은 중심 공간을 훨씬 크고 더욱 인상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결정적으로 중요했다. 널찍하다는 느낌은 우리가 전체 아트리움에 단지 2개의 기둥만을 사용함으로써 더욱 배가됐다. 그 결과 사람들은 어디에 있든지 시야를 방해받지 않고 볼 수 있었고 개방됐다는 느낌을 갖게 됐다.


아트리움에서 마지막으로 중요한 요소는 동쪽 벽을 타고 흐르는 폭포였다. 높이가 8피트인 그 폭포는 만드는 데서 거의 100만 달러가 들었다. 폭포는 그것 자체로 예술품, 거의 조각벽이 되었다. 또한 그것은 매우 뛰어난 미술품을 걸었을 경우보다 훨씬 더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우리가 아파트 값을 전례 없이 높게 부를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제공한 어떤 사치스런 내장재 때문은 아니었다. 그것은 디자인, 재료, 위치, 선전, 행운, 타이밍 등을 통해 트럼프 타워가 신비한 향기를 지니게 됐다는 사실에 있다. 많은 빌딩들이 성공을 거둘 수 있으나 나는 오직 하나의 빌딩만이 일정한 때에 최상의 구매자를 만나 최고값을 부를 수 있는 데 필요한 특성을 가질 수 있다고 확신한다.


트럼프 타워 이전에 그러한 신비를 가진 마지막 빌딩은 1970년대에 세워진 5번로 51번가의 올림픽 타워였다. 그 주요 원인은 오나시스가 그것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때 오나시스는 굉장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는 재키 케네디와 결혼했고 전 세계에 대저택, 거대한 요트, 그리고 스코피오스라는 자신의 섬까지 가진 마지막 제트족(제트기로 세계를 돌아다니는 상류계급)이었다. 올림픽 타워는 특별히 흥미롭거나 매력 있는 빌딩은 아니었으나 그것은 적기에 적임자에 의해 만들어진 적절한 생산물이었다. 그것은 그즈음 이스트 57번가에 세워진 또 다른 고급 빌딩 갤러리아로부터 시장의 정상을 완전히 가로챘다.


트럼프 타워 또한 잠재적인 주요 경쟁자로부터 시장을 가로챘다. 내가 본위트 부지에 대한 거래를 하기 오래 전에 또 다른 택지개발업자가 현대미술관 위로 거대한 콘도미니엄 고층 건물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당연히 그 일은 굉장한 성공이었을 것이다. 그 미술관과의 연관성은 세상에 잘 알려지게 할 것이고 위치는 알맞았으며 건축가 세자르 펠리는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개발업자는 최상의 건물을 짓는 데 비용을 아끼지 않겠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러나 트럼프 타워는 뮤지엄 타워보다 훨씬 값이 비싸게 나갔다. 게다가 뮤지엄 타워는 사람들에게 생기를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여러 빛깔의 유리로 된 정면은 별로 특이하지 않았으며 로비도 다른 로비들과 똑같았다. 결국 뮤지엄 타워는 형편없이 팔렸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리는 우리만의 강점을 가지고 그것을 최대한 촉진시켰다. 언제부턴가 트럼프 타워를 단지 좋은 장소에 있는 아름다운 빌딩으로서만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으로 팔기 시작했다. 우리는 갑부층이 사는 유일한 장소, 즉 도시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는 환상을 팔고 있었다.



트럼프 파크 : 세계가 주목한 초호화 콘도미니엄

나는 주택 임대료 규제 조치의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은 아니다. 다만 임대료 규제를 받고 있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연간 수입을 조사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정 수준 이하의 소득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은 현재의 임대료 규제 하에 정해지는 집세만 지불하고 계속 거주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나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을 얻고 있는 사람들은 그 소득에 비례해서 집세를 올려 내거나 아니면 다른 곳으로 이주해 나가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센트럴파크 사우스 100번가에도 똑같은 논리가 적용될 수 있었다. 그 빌딩을 매입한 직후 나는 곧바로 아파트 입주자들의 재산 상태를 조사해보았다. 나의 당초 계획은 빌딩 내 입주자들에게 우리가 곧 그 빌딩을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새로이 더 큰 빌딩을 지을 계획임을 설명하고자 했다. 그런 다음에는 입주자들이 새로운 거처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며 이주 비용도 지불해주겠다고 유인할 생각이었다.


다른 건물주처럼 악하게 굴면 건물 하나쯤 비우게 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악덕 건물주들은 어떤 건물을 매입하고 그 건물 내의 입주자들을 퇴거시키고자 할 경우 대개 가명 회사 이름을 빌려 건물을 구입한다. 그런 다음 폭력배들을 고용하여 쇠망치로 건물의 보일러나 계단 등을 때려 부수거나 때로는 수도 파이프를 터뜨려 건물을 물바다로 만든다. 가끔은 거리의 불량배, 창녀, 강도 따위들을 몽땅 실어다 건물에 입주시킨 다음 기존 입주자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수법도 쓴다.


나는 그런 협박에 의해 일을 처리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일이 도덕적으로 부당해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문제 해결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내 이름으로 건물을 매입했고 또한 내 명성을 더럽히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센트럴파크 사우스 100번가 입주자들은 계속해서 충분한 난방과 온수를 공급받았다. 나는 센트럴파크 사우스 빌딩을 파크 애버뉴 거리에 있는 호화스럽고 우아한 빌딩들처럼 운영하지는 않았다. 집세로 얻어지는 수입으론 도저히 비용을 충당할 수 없어 그와 같은 호화스러운 치장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정도로 낮은 임대료를 내고 있는 입주자들도 그런 호사를 바랄 처지는 못 되었다.


빌딩 정문의 수위들이 입고 있던 화려한 유니폼도 회수했다. 그것은 순전히 유니폼 세탁비를 절약하기 위해서였다. 복도에 켜놓은 밝은 전구들도 모두 전력 소비가 낮은 것들로 바꿔버렸다. 그런 조치만으로 연간 몇 천 달러를 절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빌딩을 경제적으로 운영하려는 우리의 노력이 그들의 퇴거를 강요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입주자들이 주장하고 나설 줄은 예측하지 못했다.


입주자들은 우리의 이주 권고를 협박이라고 우겨댈 수 있는 방도를 열심히 연구하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자신들을 부당하게 내쫓기 위해 끈질기고 심한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 우리는 입주자들을 개별적으로 접촉하여 이주를 권유했고 또 도움을 주겠다고 설득했다. 그러나 우리의 권유는 대체로 거절당했다. 왜냐하면 입주자들끼리 우리의 어떠한 제의도 거절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입주자회를 구성한 다음 그들의 입장을 대변해줄 법률회사를 위촉했다. 거의 50명에 가까운 입주자들이 모두 고발장을 제출하여 각자 나름대로의 불만을 나열했다. 심지어 그들 모두 고발장 끝마무리를 일제히 ‘도널드 트럼프는 현대판 스크루지다’라고 기술할 정도였다.


그러나 입주자들은 나를 잘 모르고 있었다. 나는 여론의 비난 따위가 두려워 계획을 중단하거나 돈 몇 푼을 쓰는 데 인색한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특히 상대방의 공격이 부당하다고 느낄 때는 더욱 그러했다. 그들과 맞서 싸움을 계속한다면 변호사 비용이 엄청나게 들어갈 것이며 또한 내 계획을 한 번쯤 재고할 수도 있을 터였다. 그러나 나는 결코 그들의 부당한 주장에 쉽게 굴복할 수 없었다.


몇 가지 내게 유리한 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뉴욕의 부동산 가격이었다. 요약해 말하면 입주자들이 나의 계획을 지연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는 동안, 뉴욕의 부동산 가격은 거의 2배 이상 상승했던 것이다.


센트럴파크 사우스의 빌딩 내 많은 아파트들이 비워졌다. 결국 법적으로 우리는 비워진 아파트들을 시세대로 다시 임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야말로 나는 돈방석에 앉게 된 셈이었다. 또 하나 유리한 상황은 그 기간 중에 건축 양식과 기술이 변화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1984년부터 건축 양식에 복고풍의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뉴욕 시내에서 고급 아파트를 구입하는 사람들은 유행에 무척 민감하다. 건축 양식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실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사람들의 기호가 복고풍을 선호해가고 있다면 당연히 그들의 기호에 맞는 상품을 공급할 수밖에 없다. 지어놓고 팔리지 않는 건물 따위에는 관심도 없었다.


바비존을 쓰러뜨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건물을 짓는 데 드는 비용을 우리는 당초 2억 5,000달러로 계산했었다. 그런데 건물 외벽과 골조를 그대로 놔두고 내부를 개축하고 창문의 크기를 더 크게 하는 데 드는 비용은 1억 달러 정도면 충분했다. 그리고 거대한 석재 왕관을 꼭대기에 쓰고 있는 바비존의 모습을 그대로 존속시키는 데 드는 비용이란 고작 1,000만 달러에 불과했다. 그렇게 적은 비용을 들이고서도 개축된 건물 모습은 훨씬 돋보였다.


마지막으로 내게 유리했던 상황의 변화는 나의 모든 거래를 완전히 호전시켜놓았다. 나는 수 년 동안 센트럴파크 사우스 100번지 바로 건너편에 있는 세인트모리츠 호텔을 매입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었다. 내게는 숨겨진 깊은 뜻이 있었다. 방이 1,400개나 되는 바비존플라자는 길거리에 바로 면해 있었다. 나는 세인트모리츠 호텔을 매입하기만 하면 그 즉시 바비존을 헐기 시작할 작정이었다.


나는 1895년 9월 세인트모리츠를 인수받았고 그 즉시 바비존의 문을 닫았다. 그해 한 해 동안 세인트모리츠의 수입은 내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약간 더 많은 31%의 증가를 보였다. 순이익은 거의 4배에 달했다.


이제 남은 일이란 센트럴파크 사우스 100번지에서 발생한 나에 대한 협박 고발 건이었다. 나는 그 건물을 비우고 무너뜨릴 당초 계획을 더 이상 진척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협박이라는 고발 건은 나의 모든 계획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의 고문 변호사들은 불편한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적절한 타결책을 모색해볼 것을 권유했었다. 특히 그들은 나에게 건물을 아예 입주자들에게 1,000만 달러 정도로 팔아버리고 그 대신 그들의 고소를 취하하는 조건을 제시해보라고 했다. 표면상으로는 그러한 거래는 나에게 나쁜 것은 아니었다. 당초 그 건물을 구입한 가격과 비교하면 꽤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제의를 거절했다. 부당한 고소를 통해 그 건물을 시세보다 싸게 사려는 입주자들의 의도를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협박 고소 건은 법원에 계류 중이었다. 1985년 8월 뉴욕 주 지방법원은 협박을 입증할 만한 뚜렷한 증거가 없다고 최종 판결을 내렸다. 1986년 결국 입주자들 대부분은 나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고 더는 문제를 거론하지 않기에 이르렀다. 나는 더 이상 그 건물을 헐어버릴 계획이 아니었기 때문에 입주자들에 대한 퇴거 절차를 중단하고 그들과 새로운 입주 계약을 맺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바비존플라자를 트럼프 파크로 개명하고 개축공사를 개시했다. 바비존의 외부 장식과 겉모습 그리고 꼭대기의 탑 장식은 그대로 놔둔 채였다. 12피트 높이의 천장도 그대로 놔두었다. 그 정도의 천장 높이를 유지하려면 비용이 엄청나서 웬만한 건축업자는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그리고 건물의 개축은 다른 오래된 건물에 비해 또 다른 이점, 즉 새로운 배관 시설, 매끄러운 벽면, 새로운 전기 시설, 더욱 빠른 엘리베이터 그리고 넓은 창문 등 그 이점이 상당했다.


바비존의 개축은 1987년 가을까지 끝내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1986년 11월까지 공사가 완공되어 그때부터 아파트의 입주가 시작될 수 있었다. 그로부터 8개월 내에 전체 아파트 수의 80퍼센트인 270채의 아파트에 입주가 완료되었다. 어떤 사람은 아파트 몇 채를 한꺼번에 2,000만 달러를 주고 구입하기도 했다. 모든 아파트들이 입주가 끝났을 때 우리는 모두 2억 4,0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모든 일은 성공적으로 결말이 났다. 센트럴파크 사우스 100번지 입주자들은 그들의 아파트를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었고, 센트럴파크 사우스 지역은 그 유명한 2개의 빌딩을 그대로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시 정부에서는 재산세 수입을 더 많이 거두어들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최종적으로 1억 달러 이상의 순이익을 얻었다. 모든 사람들이 실패할 것이라고 예견했던 사업에서 그처럼 이득을 본 것이다. 그것은 순전히 입주자들이 나의 계획을 지연시켰기 때문이었다.



다음엔 무엇을?

다행스럽게도 나는 이 질문의 대답을 알지 못한다. 대답을 안다면 흥미가 오히려 반감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큼은 알고 있다. 즉 장래가 과거와 같지는 않을 것이란 점이다. 나는 일할 수 있는 나이의 처음 20년간을 건축을 하고, 재산을 모으고, 많은 일을 이루어내는 데 보냈다. 사람들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지만……. 내가 앞으로 20년 동안 해보려고 가장 야심차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 내가 갖게 된 것의 일부를 되돌려주기 위한 무엇인가 창조적인 방법들을 찾아내는 일이다.


비록 돈이라는 것이 어떤 가치를 지닐 수는 있지만 나는 그것이 전부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이 관대해지기란 쉬운 법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 그러나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스스로 어떤 방침을 정하고 그것을 고수해나가는 사람이다. 나는 사람들이 자선을 베푸는 이유에 대해 대단히 무관심했다. 그것은 그들의 동기가 밖으로 드러난 것과 거의 같지 않으며 또 순수한 애타주의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나의 관심사는 어떤 일이든지 행하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일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 단순히 돈을 주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이다.


나와 내 인생에서 자랑거리라고는 두 가지밖에 없다. 난관을 잘 극복한다는 점과 좋은 사람들로 하여금 최선을 다해 일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준다는 점이다. 앞으로 남은 한 가지 과제는 지금까지 나 자신만을 위해 써온 이 같은 재능들을 이제부터는 남을 위해 훌륭히 발휘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내는 일이다.


그렇다고 오해하진 말라. 나는 다시 큰 거래, 큰 거래를 할 계획을 세울 것이다. 그것도 불철주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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