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슈왑 투자 불변의 법칙
저   자 : 찰스 슈왑(역:김인정)
출판사 : 비즈니스북스
출판일 : 2021년 02월

도서정보

■ 책 소개


‘개인투자자들의 영웅’ 찰스 슈왑이 경제적 자유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투자 불변의 법칙’!

전통적 산업인 금융업에서 혁신을 찾기는 쉽지 않다. 또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주식투자를 투기라고 생각하거나 노후대비를 위한 주식투자에 소극적이며, 최근 라임 사태와 같이 고객을 울리는 불완전판매 금융사고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우리의 현재와 그리 다르지 않았던 1970년대 미국, 저자는 월스트리트의 관행에서 벗어나 고객 이익을 최우선으로 둔 증권사를 설립하였다.

이 책은 저자가 50년간 마켓 사이클을 타고 넘으며 얻은 49가지 통찰들을 따라간다. ‘성장은 이익을 이끌고 이익은 주가 상승을 이끈다’라는 기업가적 교훈, ‘개인의 재정적 운명은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라는 삶의 원칙, ‘투자자로 성공하려면 항상 낙관적인 태도가 필요하다’라는 마인드까지 경제적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할, 변하지 않는 진실들을 알려준다.

■ 저자 찰스 슈왑
저자 찰스 슈왑은 미국의 가장 큰 금융서비스 회사 중 하나인 ‘찰스슈왑 코퍼레이션(Charles Schwab Corporation)’의 창립자이자 CEO를 지냈고 현재 회장을 맡고 있다. 

찰스 슈왑은 1970년대 월스트리트의 잘못된 관행을 깨고 고객 이익을 최우선으로 둔 할인증권사를 설립했다.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주식투자를 투기라고 생각하고 노후대비를 위한 투자에도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찰스 슈왑은 개인투자자가 보다 저렴하고 손쉽게 투자할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함으로써 급여소득자 등 보통 사람이 투자를 통해 기업의 주인이 되고 주식으로 경제적 자유를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었다. 이에 미국인들은 그를 투자의 대중화와 민주화에 이바지한 ‘개인투자자들의 영웅’, ‘미국 금융계의 거인’이라 부른다.

열정적인 개인투자자로서 브로커의 자문 없이 직접 주식 분석을 하던 찰스 슈왑은 1971년 ‘찰스슈왑’의 전신인 ‘퍼스트커맨더(First Commander0’를 샌프란시스코에 설립, 이후 1973년 ‘찰스슈왑 앤드 컴퍼니(Charles Schwab & Co., Inc.)’로 회사명을 바꾸며 저렴한 수수료를 무기로 한 할인증권사 시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이내 신생기업의 한계에 부딪혔다. 고객은 몰려들었지만 갑자기 늘어난 거래 수요를 감당할 자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저가 수수료 주식 매매라는 야심 차고 무모한 도전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수십만 달러의 부채를 안고 만다.

슈왑은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회사를 매각하며 전환점을 마련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합병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영리하고 시의적절한 차입매수를 통해 BOA로부터 독립해 ‘찰스슈왑’의 이름을 지켰다. 또한 기업공개 직후에 맞게 된 1987년 주식시장 대폭락(블랙먼데이)과 닷컴버블 붕괴에 따른 경기침체, 원치 않은 대규모 구조조정 등 여러 부침을 겪었지만, 그 과정을 통해 위험관리 솔루션을 수립하고 인터넷전문은행 찰스슈왑뱅크(Charles Schwab Bank)를 열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도 회사와 고객의 자산을 지켜냈다.
찰스 슈왑은 다양한 비영리 활동에 활발히 참여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있다. 아내 헬렌과 함께 교육, 빈곤 방지, 보건 관련 기관을 지원하고 있으며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의 회장직을 10여 년간 맡아 현대미술 후원에 열정을 쏟기도 했다.

■ 역자 김인정
역자 김인정은 전북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번역대학원에서 문학(번역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증권투자권유자문인력, 펀드투자권유자문인력 자격을 보유하고 있으며 씨티은행, 삼성증권, 대우증권을 거쳐 현재 국내 증권사에서 전문 번역가로 일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타이밍의 마법사들』 『아빠와 딸의 주식 투자 레슨』 『나는 어떻게 시장을 이겼나』 『투자 대가들의 위대한 오답 노트』 『투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 『주식시장의 마법사들』등이 있다.
  
■ 차례
감수의 글
들어가며

제1부 시작
제1장 메이데이
제2장 인생 초반에 배운 교훈은 평생을 간다
제3장 경제적 독립을 준비하다
제4장 세상에 ‘쉬운 일’은 원래 없다
제5장 투자란 성장의 한 조각을 갖는 것이다
제6장 투자와 인생은 불확실성과의 싸움이다
제7장 찰스슈왑이라는 실험을 시작하다

제2부 급상승
제8장 금융계의 아웃사이더
제9장 우리는 상품을 권유하지 않습니다
제10장 첫 지점을 열다
제11장 혁신을 위한 무기를 준비하라
제12장 실패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제13장 자본과 신뢰는 성장의 필수 요소다
제14장 행동하라 그리고 설득하라
제15장 위기의 조짐
제16장 반란을 꾀하다
제17장 새로운 찰스슈왑의 탄생
제18장 행운을 과신하지 마라
제19장 쓰나미의 한가운데에서

제3부 호황과 붕괴
제20장 지속적인 혁신만이 해결책이다
제21장 변화와 도약의 길
제22장 온라인 트레이딩의 시대를 열다
제23장 숫자 너머 미래를 보라

제4부 반등
제24장 재기하려면 대담하게 도전하라
제25장 우리는 해낸다
제26장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다 하라
제27장 척과 이야기하세요
제28장 전략적 인수로 규모를 키워라

제5부 결국 시간이 증명한다
제29장 장기투자에는 낙관적 태도가 필요하다
제30장 준비는 되어 있다
제31장 재도약
제32장 척의 성공 비결

마치며
감사의 말

 

도서요약
찰스 슈왑 투자 불변의 법칙


제1부 시작

투자란 성장의 한 조각을 갖는 것이다

성장은 이익을 이끌고 이익은 주가 상승을 이끈다

나는 투자자로서 그리고 기업가로서 언제나 성장의 힘을 믿는다.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이익의 크기보다는 매출액의 성장이 중요하다. 언젠가 한 동료가 이익은 평범한 수준이지만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과 이익은 크지만 성장이 더딘 기업 중 어느 쪽을 선호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을 택하겠다고 주저 없이 답했다. 경험상 성장은 이익을 이끌고 이익은 주가 상승을 이끈다. 성장이 있다면 모두가 승자라는 것이 나의 철학이다. 고객은 더 나은 서비스를 받고 투자자들은 더 높은 수익을 얻는다. 일자리가 생기고 급여가 오르며 지역사회는 지원을 받고 정부의 세수도 늘어난다. 나는 성장은 부를 창출하는 열쇠라고 생각한다.


투자에 관한 단순한 교훈

누구도 주식시장의 단기적인 움직임을 예측할 수는 없지만 내가 그랬듯 다음을 믿는다면 단기적인 불확실성을 견뎌낼 수 있다.


1. 기업의 존재 이유는 성장이다. (성장은 경영진의 의무이며 의무를 수행하지 못하면 교체된다.)


2. 미국과 세계 경제는 이따금 일시적인 부침을 겪겠지만 성장을 ‘무한히’ 지속할 것이다.


3. 투자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면 분산, 시간 그리고 비용이 가장 중요하다.

• 분산: 특정한 투자 대상이나 자산군으로 인한 손실 위험을 줄일 수 있고 이익이 발생한 투자 대상의 성장을 일부 공유하는 효과가 있다.

• 시간: 경제가 성장을 위해 발돋움할 때를 포착한다. 정기적으로 돌아오는 경기 침체와 불황을 극복하는 데 유용하다.

• 비용 : 투자에 드는 비용이 적을수록 고객이 맡긴 돈의 더 많은 부분이 고객을 위해 운용된다는 뜻이다.


4. 투자가 복잡할 필요는 없다. 특히 간단한 방법으로 지수 투자가 있다. 지금은 저비용으로 고객의 투자 결정 전반에 도움을 주는 저비용 자산관리 계좌도 있다.


찰스슈왑이라는 실험을 시작하다

금융서비스업의 관건은 마케팅이다

오랫동안 월스트리트를 지배한 회사들과는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가? 우선 완전히 새로운 고객 기반을 계획했다. 개인투자자들이 그 대상으로, 즉 시장에 열정이 있는 사람, 자신의 재정적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려는 사람, 투자할 주식을 직접 조사하고 선택하는 사람, 브로커의 조언이 필요하지 않거나 원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정확한 통계는 모르지만 1970년대 초반에는 이런 사람들의 비중이 전체 투자 인구의 10퍼센트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로서는 15퍼센트 비율을 예상한 SRI의 보고서가 유일한 시장 조사 자료였다. 나는 거의 본능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머리와 직감으로는 그런 사람들의 수가 늘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어째서냐고? 나 역시 그랬기 때문이다. 나는 주식 차트를 공부하는 것이 좋았다. 기업을 조사하는 것이 좋았고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이 많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 중 일부는 내 소식지를 오랫동안 구독했다. 우리는 브로커의 조언을 원하지 않았는데, 그것이 오염된 조언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수수료 창출에 생계가 달린 브로커가 내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진심으로 집중할 수 있을까? 필요하지 않은 서비스에 대가를 지불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분개하는 이유였다.


사람들은 브로커에게 휘둘려 주식과 뮤추얼펀드를 사들였다. 브로커들 중 상당수는 늘 그렇듯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상품을 팔았다. 내가 보기에는 보험이나 내화성 단열재를 파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영업이 전부였고, 목소리를 높여 그럴듯한 이야기를 화려하게 꾸며내면 상당한 수수료를 벌었다. 포트폴리오 관리, 분산, 자산 배분에 관한 이야기나 맞춤형 고객 관리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투자가 아니라 경마나 도박, 복권과 같은 투기에 가까웠다. 물론 이런 표현이 지나친 단순화라는 것은 인정한다. 브로커들 중에도 좋은 사람부터 나쁜 사람까지 다양한 부류가 있다. 그러나 수수료 중심의 보상 구조로는 고객의 이익을 추구하기 어렵다.


내 생각처럼 이 방정식에서 브로커를 제거할 경우 주식 영업은 어떻게 되는 걸까? 영업이 아니라 마케팅의 문제였다. 어차피 영업에는 소질이 없었지만 몇 년 동안 소식지를 발간하면서 직접적인 마케팅 방법을 배웠다. 영업을 할 필요 자체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깨달음의 순간이 찾아왔다. 할인증권회사의 서비스를 마케팅하고 가능한 한 최고의 고객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었다.


그 후 오랫동안 내가 내린 무수히 많은 결정의 배경에는 이 단순한 깨달음이 있었다. 신문 광고에 내 사진을 싣는 것에서부터 지점 출점, 콜센터 개설, 24시간 수신자 부담 전화 주문에 이르기까지 신생 할인증권회사들과 차별화를 이룰 수 있었던 많은 결정이 있었다. 내 방식이 성공한다면 이는 영업사원이 아니라 마케팅 담당자로서의 성공이다. 단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는 방식이지만 가능하다고 확신했다.


다가오는 변화를 감지한 사람들은 꽤 많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회를 인식하는 건 성공하는 기업가들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사업적 통찰로 행동에 나서고 끝까지 추진하는 것이다. ‘나는 왜 그런 생각을 못 했을까?’ 하며 자책한 적이 얼마나 많은가? 성공한 기업가는 분명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아이디어보다 더 중요한 건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행동하지 않으면 생각에 그칠 뿐이다.



급상승

우리는 상품을 권유하지 않습니다

회사를 광고하는 데 입소문보다 좋은 것은 없다

우리 회사의 모든 인쇄물 광고 중앙에 내 사진을 활용하자는 생각을 해낸 사람이 바로 크로이처와 화이트였다. 화이트는 이렇게 말했다.


“비용을 얼마나 절약할 수 있는지 설명하는 문구보다 광고에 훨씬 더 생동감을 불어넣을 겁니다.”


처음에는 그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나 자신에게 관심이 쏠리는 게 불편했다. 하지만 그 개념이 마케팅 측면에서 합리적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우리는 고객과 회사의 관계를 개인화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의 존재는 그저 전화번호와 우편물 주소에 불과했다. 자신을 담당하는 브로커라고 여길 수 있는 사람, 살아 숨 쉬는 찰스 슈왑이라는 사람이 회사 뒤에 있다는 사실을 잠재 고객들에게 실물로 보여줘야 했다.


사진을 넣은 단순한 광고는 우리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이 광고는 수년 동안 거의 그대로 <저널>에 실렸다. 처음에는 태평양판에 한정해 공개했다가 나중에는 화요일과 목요일, 주 2회 전국판에 내보냈다. 나를 포함한 투자자들 대부분은 월요일과 금요일에는 <저널>에 관심을 갖지 않았고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은 주 2회가 전부였다. 광고 위치는 늘 마지막 면의 바로 앞 장으로(당시 <저널>은 요즘 신문과 달리 지면을 따로 분류하지 않았다) ‘시장 최신 동향’과 마주 보는 자리였다. 내가 항상 처음 펼치는 지면이 바로 거기였기 때문이다. 수신자 부담 전화번호도 함께 소개했는데, 독자들이 우리에게 전화를 걸어 계좌를 열고 투자를 시작하게 하고 싶었다. 광고에 실린 사진에서 나는 단정하게 가르마를 탄 머리를 하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본과 신뢰는 성장의 필수 요소다

가장 필요한 것을 가진 자의 손을 잡아라

토니 프랭크가 주도한 내셔널스틸의 투자로 굉장한 도움을 받았지만 한시름 놓은 것도 잠시였다. 현금 압박은 계속 가중됐다. 성장은 성공의 징후이고 사람들이 바라는 굉장한 뭔가를 달성할 것 같지만 우리처럼 젊은 회사는 성장의 속도가 자금원을 확보하는 속도를 앞지른다. 마지막 이익 한 푼까지 재투자해도 충분하지 않다.


신사업을 해온 지 5년째였고 우리는 스스로 충분한 자본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배부른 고민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런 식의 성공에 몹시 불안했다. 우리는 미래를 염려하며 늘 자본을 구했다. 그리고 캘리포니아에 있다는 지리적 조건은 우리를 자연스럽게 BOA로 이끌었다.


BOA는 특히 중요한 시점에 슈왑에 관심을 보였다. 우리는 그때까지의 빠른 성장세를 그대로 이어가며 지점망을 급속히 확장하는 폭발적인 성장기를 시작하려는 참이었다. 물론 앞날을 보여주는 수정 구슬은 없었다. 1980년대의 강력한 상승장이 역사적인 출발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 운동은 예의 주시했다. 규제 완화와 세금 인하를 공약으로 내세운 로널드 레이건이 11월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시장은 열렬히 환호할 것이었다. 1980년 선거 당일, 주식 시장은 열리지 않았지만 나는 어쨌든 앞서 말한 것처럼 하루 종일 밤새도록 전화선을 열어두기로 결정했다. 레이건의 승리가 확실해지면서 주문이 쏟아져 들어왔다. 이 경험을 통해 고객이 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거래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확신했고 1982년 3월 업계 최초로 실행에 옮겼다.


행운을 과신하지 마라

IPO를 다시 추진하다

처음 상장을 시도한 지 7년 그리고 BOA를 상대로 차입매수를 마무리한지 불과 며칠 만에 나는 슈왑 주식의 상장을 다시 추진하려 했다. 1980년에는 슈왑의 성장에 절실히 필요했던 400만 달러를 상장으로 조달하려고 했다. 그러나 투자은행들은 300만 달러도 조달할 수 없는 주당 2.75달러를 슈왑의 가치로 책정했고 나는 손을 뗐다. 다행히 토니 프랭크가 퍼스트 네이션와이드 세이빙즈(First Nationwide Savings)와 내셔널스틸을 대리해 훨씬 합리적인 가격에 20퍼센트 지분을 인수하겠다고 나셨다. 현금을 손에 쥔 나는 IPO의 꿈을 보류하고 다시 사업에 집중했다.


돌이켜보면 첫 번째 IPO 시도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분명했다. 대부분의 관찰자들이 우려한 것처럼 우리가 종사하는 신생 산업에는 아직 사람들에게 확신을 줄 만큼 충분히 쌓인 실적이 없었다. 물론 나는 할인증권업 전반, 특히 슈왑의 미래가 밝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런 비전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지 못했고 그 이유도 이제는 알 수 있다. 그때는 너무 일렀다.


그러나 첫 번째 시도 이후 7년이 지나는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영역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고 성장한 할인증권업은 전통적인 증권회사들로부터 꾸준히 시장 점유율을 빼앗았다. BOA와의 연합이 상당히 도움이 됐고 슈왑은 할인증권업 분야에서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독보적인 선두 기업으로 자리를 잡았다. 1986년 매출은 50퍼센트 증가해 3억 달러를 넘어섰고 순이익은 세 배 가까이 늘어 3,000만 달러 이상을 기록했다. 오랫동안 공격적으로 광고한 덕분에 어디에 있는 투자자든 우리가 누구이고 무슨 일을 하는지 알게 됐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슈왑은 이제 금융서비스 분야에서 인정받는 존재였고 놀랍게도 나는 누구나 아는 이름이 돼 있었다.


마지막으로 위에 언급한 것 못지않게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1987년 초여름 월스트리트는 커다란 행복을 만끽하고 있었다. 1982년 8월에 시작된 강세장이 5년 가까이 이어졌고 하락 징후는 전혀 없었다. 다우지수가 2,500선을 돌파하며 급등했고 많은 기업들에게 높은 밸류에이션이 부여되면서 유례없이 많은 기업이 상장했다. 그러나 우리만큼 뛰어난 평판과 높은 수익성, 빠른 성장세를 갖춘 회사는 드물었다. 그 모든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나를 IPO로 강하게 이끌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신속하게 행동할 자유, 비록 단기적으로 이익을 얻지 못한다고 해도 신제품과 새로운 시장에 투자할 자유였다. 그것이 결국에는 사업을 발전시키고 그 과정에서 고객들을 위해 더 나은 경험을 쌓을 수 있다. 내 앞에는 수많은 기회가 있었고 나는 그 기회를 재빨리 잡아 실현시키고 싶었다. 그리고 공격적인 행보를 뒷받침할 막강한 현금 흐름이 있었다. 어느 모로 보나 빚을 청산하고 구속에서 벗어나는 것은 빠를수록 좋았다.


행운이 전부는 아니다

운이 좋았던 것일까? 물론이다. 나는 일과 관련해 운이 꽤 따르는 편이다. 나의 사업에 대한 열망을 젊은 시절에 알게 된 건 행운이었다. 어려울 때 내 회사에 투자할 빌 삼촌이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미국 중산층이 주식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여력을 갖게 된 시기, 규제 완화가 투자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사고방식을 열어준 시기에 증권업에 종사한 것도 행운이었다. 내 부족한 능력을 보완할 역량을 갖춘 사람들이 주위에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그리고 몇 달간 IPO 주식에 대한 수요가 아예 사라지다시피 한 1987년의 주식시장 붕괴를 한 달도 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IPO를 완성한 것 역시 행운이었다.


그러나 결코 행운이 전부는 아니다. 통찰력과 합리적 기대, 경험이 행운을 기회로 바꾼다. 행운이 왔을 때 이를 이용할 준비가 돼 있는 것,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행운을 직접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쓰나미의 한가운데에서

인간의 본성을 극복할 때 비로소 투자자가 된다

1987년 10월 19일 샌프란시스코의 새벽. 시원한 공기와 눈부신 햇살을 기억한다. 여름 안개가 걷힌 가을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언제나 가장 좋은 계절이다. 그러나 그날 아침 우리는 엄청나게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내 방 옆 작은 회의실에서 임원들을 만났다. 커뮤니케이션, 홍보, 광고, 컴퓨터 시스템, 직원들의 사기, 시간 외 근무, 음식, 지원 업무에 이르기까지 논의할 것이 많았다. 주말에 결혼식을 올린 데이비드 포트럭은 신혼여행 계획을 취소했다. 모두 현장에 집합했다. 1층 대표 지점은 이미 방문했는데, 내가 동요하지 않는다는 걸 직원들에게 알리기 위함이었다. 나는 경영진에게 최대한 말을 아껴 지시했다. “돌파할 방법을 찾아요.”


뉴욕증권거래소에서 개장 15분 전을 앞두고 벌써부터 5억 달러 매도 주문이 쌓였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거래소 전화는 이미 불통이었다.


동부 시간으로 오전 9시 30분, 장이 열리고 전 세계를 휩쓴 매도의 물결이 뉴욕을 강타했다. 뉴욕증권거래소는 개장과 동시에 10퍼센트 하락했다. 마구잡이로 뒤엉킨 주문을 정리하고 쏟아지는 매도 물량을 기꺼이 받아줄 매수자를 찾기 위해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들이 매달렸지만 몇 시간 동안 주요 기업들의 주식은 거래가 시작되지도 못했다.


당시 고통을 겪은 사람들 중에는 우리 직원들뿐만 아니라 불과 몇 주 전 슈왑의 IPO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오랜 고객들도 많았다. 몇 주 전 16.50달러에 거래된 슈왑 주식은 블랙먼데이에 12.25달러까지 떨어졌고 하락세를 지속해 연말에는 주가가 6달러까지 내려갔다. 나를 위해 일한 사람들, 특히 BOA 시대를 살아남은 사람들이 공모를 통해 슈왑 주식으로 보상받을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다 했다. 그런데 이제 나를 포함해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이후 주가가 회복되기까지는 2년이 걸렸고 그러고도 2년이 더 지나서야 주가는 의미 있는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주식을 팔아 결국 돌아온 반등 기회를 잡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었다.


투자에는 인내와 두둑한 배짱이 필요하지만 이는 인간의 본성에 가깝지 않은 듯하다. 우리의 본성은 싸우거나 달아나는 쪽이다. S&P500 지수의 과거 40년 추이를 보면 높고 낮은 봉우리와 골짜기가 끝없이 펼쳐진다. 그 봉우리와 골짜기 하나하나가 공황과 희열의 순간이다. 하지만 뒤로 물러나 시야를 넓히면 시장의 방향은 필연적으로 위를 향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언젠가 다시 상승하리라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인간의 본성을 극복할 때 비로소 투자자가 된다.



호황과 붕괴

지속적인 혁신만이 해결책이다

패닉에 굴복하지 마라

투자자의 경계심은 슈왑에게는 텅 빈 지점, 조용한 전화기, 대폭 감소한 거래 건수를 의미한다. 수수료가 매출의 거의 대부분인 우리로서는 힘든 시기였다. 일평균 거래 건수, 순이익, 신규 계좌 개설 등 주요 지표가 다시 긍정적인 움직임을 시작했지만 1987년 여름의 고점과 비교하면 훨씬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렇다면 다음 할 일은 무엇일까? 우리의 오래된 성장 모델은 완전히 망가지진 않았지만 개편이 필요했다.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안다는 것이 근거로 활용할 만한 자료들이 있다는 뜻이라면 몰랐다고 해야 옳다. 경쟁자들이 무엇을 하는지 크게 신경 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그들의 약점을 어떻게 이용할지 생각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으며 대신 언제나 고객들을 파악했다. 투자자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상품과 서비스를 누구보다 먼저 제시하는 것이 내 비결이었다. 앞서나가면 모두가 따라잡으려고 나선다. 선제적 대응에 성공하면 안전하게 경쟁자들을 따돌릴 수 있었다.


선제적 대응은 직접 경험으로 얻은 탄탄한 지식이 있을 때만 효과를 발휘한다. 나는 지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직접 경험을 쌓았다. 고객들과 대화했고 그들이 무엇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지켜보며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슈왑을 설립할 때 나 자신이 고객으로 거래하고 싶은 회사를 만들고 싶었던 만큼 투자자로서 내 요구와 습관의 변화에도 늘 면밀히 주의를 기울였다. 과거에 내 판단이 옳았던 적이 많다면 아마도 나 자신이 내 최고의 고객이었던 덕분일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고객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고객이 원할 만한 것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 새로운 발상을 하는 기업가라면 누구나 공감하리라. 혁신은 위대한 발상과 다음 시대를 주도할 ‘넥스트 빅 씽(next big thing)’을 간파하는 내면의 목소리에서 비롯되며 사람들은 그것을 좋아한다. 시장 조사와 검증은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만드는 데 도움이 돼도 결코 좋은 직감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온라인 트레이딩의 시대를 열다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마라

몇 해 전 우리는 기술이 우리 사업에 혁명적인 역할을 할 것을 인지하고 직원들뿐만 아니라 고객들에게도 우리가 기술에 전념하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 슈왑 테크놀로지(Schwab Technology)라는 독립적인 조직을 출범시켰다. 그리고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을 초청해 미래 트렌드에 대한 강연을 듣는 특별한 행사로 그 시작을 알렸다.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할 기회도 보였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인터넷 거래 서비스를 제공하는 최초의 할인증권회사가 되지는 못했다. 그 영광은 1984년 아우프하우저(K. Aufhauser & Co.)에게 돌아갔다. 아우프하우저는 훗날 아메리트레이드에 인수됐다. 우리는 주식거래 수수료를 할인한 최초의 브로커도 아니었다. 그것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우리는 단지 그 사업으로 경쟁자들보다 빠르게 성장했고 신속하게 투자함으로써 가장 커다란 위험을 감수했을 뿐이다.


또한 인터넷이 시장에도, 투자자에게도, 슈왑에도 엄청난 가능성을 열어줄 것을 알았다. 모든 힘을 동원해서 가장 최고의 것을 준비해 너무 늦게 내놓는 것보다는 아직 이르더라도 우리가 제시할 수 있는 최선의 형태로 경쟁자들보다 앞서 시장에 내놓는 편이 나았다. 약 85퍼센트 수준으로 준비가 됐다면 충분했다. 나머지는 일을 해나가면서 조율하면 됐다. 가능한 한 빨리 슈왑을 게임에 뛰어들게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사무실로 돌아와 버클리에 있는 클레어몬트 호텔(Claremont Hotel)에서 인터넷 팀과 실무회의를 하고 있던 베스 사위를 찾았다.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베스, 속도를 내야겠어요.”


실패를 두려워 말고 실험을 독려하라

사위의 팀은 이를 ‘큐피드 프로젝트’라고 불렀다. 물론 이 프로젝트로 도약하기에 앞서 도움닫기 구간이 있었다. 자기주도형 투자자와 얼리어답터를 만족시키는 것은 아웃사이더 기질을 지닌 우리의 전통적 유산이다. 우리 외에도 월스트리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회사들, 즉 오마하의 아메리트레이드, 팰로앨토의 이트레이드가 온라인 트레이딩 혁명을 주도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실 성공하지 못한 시도가 많았다. 한동안은 실패만 연달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혁신가는 실패를 예상해야 한다. 실패는 과정의 일부이며 조직의 수장으로서 나는 실패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실험을 독려하는 것이 임무다.


우리는 실패할 때마다 뭔가를 배웠고 다음에는 더 높은 곳에서 출발했다. 고객이 슈왑 지점 아무 곳에나 들어가서, 슈왑의 아무 브로커에게나 전화를 걸어 주문을 내면 회사 전체의 통신망에 주문이 직통으로 입력되도록 하는 시스템을 업계 최초로 구축했다. 우리 소프트웨어가 실행되는 컴퓨터로 우리의 전용회선 가운데 하나에 접속하기만 하면 집에서도 이퀄라이저를 이용할 수 있었다. 컴퓨서브가 제공하는 사설 통신망으로 가능해진 서비스였다 윈도우 체제에서 운영된 스트리트스마트는 이퀄라이저의 확장판으로 한창 때는 사용자가 20만 명에 이를 만큼 인기가 대단했다.


인터넷의 역할이 확대되면서 나는 금융서비스가 이 새로운 매체에 꼭 들어맞는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이 거래 실행과 데이터 전달에서 갖는 장점은 다른 모든 도구를 능가한다.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이보다 더 나은 건 없다. 지금은 이동통신 단말기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어디서든 주머니 속 금융 생활을 누릴 수 있다. 인터넷은 우리 업계와 꼭 맞았다. 우리에게는 기술적 소양이 있었고 고객들도 기술에 거부감이 없었다. 우리는 개인투자자와 시장 사이에 놓인 장벽을 허무는 일에 헌신했고 마케팅 능력도 있었다. 이런 슈왑의 역사를 생각할 때 인터넷 주식거래 시장의 지배자는 우리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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