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속성
저   자 : 레이 피스먼 외(역:김흥식)
출판사 : 부키
출판일 : 2020년 12월

도서정보

■ 책 소개


아마존, 우버, 애플은 왜 그토록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을까 

1989년 월드 와이드 웹이 발명되고, 1992년 최초의 온라인 소매 서점이 생겨났다. 그리고 전자상거래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최근 수십 년 사이 경제는 혁명적 변화를 겪어 왔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번창하던 동네 식료품점은 시장의 상호작용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대신에 이제 우리는 와이파이 무선망과 연결된 인터넷 쇼핑으로 식료품을 산다. 또 우버를 이용해 호출한 차를 타고 레스토랑에 가고, 케어닷컴으로 아이 돌봐 줄 사람을 구하고, 넷플릭스로 집에서 영화를 본다.

전자상거래에서 플랫폼, 공유경제까지 현대 경제의 이 혁명적 변화는 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보통은 기술(테크놀로지)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들은 기술결정론은 한 동인일 뿐 그 이상의 것이 있다고 말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 희소한 재화가 배분되는(우리가 원하는 물건을 얻는) 방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착상(아이디어), 즉 경제 이론이 바로 이런 변화를 주도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일군의 경제학자들에게 의견을 구해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가장 중요한 경제학 논문들을 엄선한다. 그럼으로써 경제 이론들이 현실 세계를 어떻게 설명해 왔는지, 그리고 역으로 그 이론들이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형성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해 왔는지 설명하고자 한다. 저자들은 위대한 현대 경제학자들의 획기적 착상들이 단순히 현실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떻게 현실에 적극 개입하고 시장을 설계해 실험하고 우리 삶과 세상을 변혁하기까지 이르렀는지 설득력 있게 입증한다. 또한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페이스북, 이베이, 우버, 에어비앤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등 기업들이 이런 창조적 아이디어들을 길잡이 삼아 어떻게 시장을 선도하는지 생생한 사례를 통해 보여 준다. 
 
■ 저자  
레이 피스먼
보스턴대학교 경제학과 행동경제학 교수다. 하버드대학교에서 경영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컬럼비아대학교 경영대학원의 사회적 기업 교수 및 사회적 기업 프로그램 공동 책임자를 역임했다. 다른 저서로 《부패: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할 것》(공저), 《조직: 사무실의 근본 논리》(공저), 《경제 깡패들: 부패, 폭력 그리고 국가의 빈곤》(공저) 등이 있다.

티머시 설리번
캘리포니아대학교 출판부의 상임 이사다. 버몬트대학교에서 역사학 석사 학위, 하와이대학교에서 세계사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미디어 경영진 전략을 공부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출판부의 편집장을 역임했고, 베이직북스와 포트폴리오 출판사, 프린스턴대학교 출판부에서 일했다.

■ 역자 김홍식
경제ㆍ금융ㆍ투자 분야 전문 번역가.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거쳐 파리 10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교과 과정을 수학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국제경제팀과 삼성전자 국제본부에서 10여 년간 일했다. 이후 주로 경제 분야를 번역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자본주의의 미래》《슈퍼 스톡스》《금융의 모험》《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GDP 사용설명서》《전문가의 독재》《케인스 하이에크》《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성장숭배》《장인》《골드만삭스》등 다수가 있다.

■ 차례
들어가며 
머리말_ 시장 이용 약관 

1_ 우리가 시장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시장의 힘과 원리 
2_ 경제학은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을까: 수학 혁명과 게임 이론, 일반 균형 이론 
3_ 빛 좋은 개살구 하나가 시장을 망쳐 놓는다: 정보 비대칭과 역선택 
4_ 범죄 조직 문신과 하버드 학위의 공통점: 신호 보내기 
5_ 모든 것을 거래할 수 있는 시장 설계하기: 경매 이론 
6_ 존재하는 것만으로 큰돈을 벌 수 있다: 플랫폼 경제학 
7_ 댄스 파트너 짝짓기를 위한 간편하고 유용한 방법: 시장 설계와 자원 배분 
8_ 골수 사회주의자가 시장 지지자로 변신한 까닭: 공정성과 시장 마찰 
9_ 거기에 대왕쥐가 산다: 경쟁과 시장 윤리 

주요 논문과 책 

 

도서요약
시장의 속성


우리가 시장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시장의 힘과 원리

포로수용소에서 목격한 세계 경제의 축소판

1939년 리처드 래드퍼드(Richard A. Radford)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다가 학업을 중단하고 군에 입대했다. 1942년 리비아에서 포로로 붙잡힌 그는 이탈리아에 있는 임시 포로수용소로 실려 갔다가, 다시 독일의 7A 포로수용소로 이송되었다. 이 수용소는 1939년 독일군이 폴란드 침공으로 사로잡은 폴란드인 포로 1만 명을 수용하려고 지었던 곳인데, 래드퍼드가 도착했을 때는 미국인부터 유고슬라비아인까지 수많은 국적의 병사들로 넘쳐났다.


종전까지 고초를 이겨 낸 래드퍼드는 학위를 마치려고 다시 케임브리지로 돌아갔다. 그는 7A 포로수용소 경험을 그의 첫 번째이자 우리가 알기로는 마지막인 학술 논문의 재료로 사용했다. 그 논문은 경제학 학술지 <에코노미카(Economica)> 1945년 11월호에 실렸다.


<포로수용소의 경제적 조직(The Economic Organisation of a P.O.W. Camp)> 이라는 제목의 이 논문에서 래드퍼스가 묘사하는 세계는 우리가 짐작하는 것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 이 논문은 7A 포로수용소를 하나의 시장으로 묘사한다. 이 수용소로는 적십자가 보내 주는 생필품 꾸러미들이 들어왔다. 캔에 든 우유, 당근 통조림, 잼, 버터, 비스킷, 소금에 절인 소고기 통조림, 초콜릿, 설탕, 당밀, 담배 같은 품목이었다. 그런데 당연히 모든 포로가 비스킷과 소고기를 똑같은 정도로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배급받은 생필품을 서로 교환하는 거래를 하기 시작했다.


독일군은 포로 병사들을 국적별로 분리해 수용했기 때문에 그 경계선이 수용소 내의 무역 장벽이었다. 그래서 특권을 누리는 소수의 포로만이 다른 나라 병사들과 접촉할 수 있었고, 그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는 포로들이 전문 트레이더가 되었다.


프랑스인들은 정말 커피를 좋아했다. 그래서 프랑스인들과 처음으로 수출입 비즈니스를 시작할 수 있었던 소수의 영국 병사들은 영국인 동료들과 거래해 커피 배급품을 확보했다. 마찬가지로 인도 부대 소속의 네팔 출신 용병들은 소고기를 먹지 않았는데,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운 좋은 병사들은 거의 쓸모가 없는 당근 통조림을 그들에게 넘기는 대가로 유럽인들 사이에 거래가 활발한 소고기를 받았다. 이와 같은 개별적 선호와 유인이 작용하면서 수용소 담장 안에 세계경제의 축소판이 생겨났다.


포로들은 금세 석기 시대 물물교환을 뛰어넘는 교환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파운드화나 달러화 같은 경화가 없는 상황이라서 그들은 모든 물품의 가격을 기존의 통화가 아니라 담배로 표시했다. 마가린 1회분 배급량으로 담배 일곱 개비를 살 수 있고, 이 담배 일곱 개비로는 예컨대 초콜릿 한 토막 반을 살 수 있는 식이었다.


다른 여느 경제와 마찬가지로 7A 포로수용소의 경제 역시 불안정했다. 적십자의 담배 배급품이 수용소로 들어오면 갑자기 물가가 올라갔다. 그럴 때면 바지 하나의 세탁과 다림질을 맡길 때 담배로 지불해야 할 가격(즉 담배의 양)이 거의 하룻밤 새 두 배로 올랐다. 반면에 포로들이 차츰 담배를 피워 없애 남아 있는 담배가 줄어들면 가격은 다시 내려갔다. 또한 적십자의 담배 공급이 뚝 끊기면 수용소 경제에 극심한 물가하락이 일어났다.


래드퍼드가 수용소가 들어온 지 3년이 흘러 1945년에 이르자 새로운 포로들이 유입되어 무스부르크의 인구가 급격히 늘어났다. 몇몇 추정에 따르면 무스부르크 지역에 수감된 전쟁 포로들은 무려 11만 명가량에 달했다. 7A 수용소는 포로들로 빽빽하게 들어찼고 무질서해졌다. 새로운 포로들이 시장의 가격과 규약에 익숙하지 않은 데다 적십자 물품의 보급마저 들쑥날쑥해진 탓에, 수용소 경제는 불확실성과 혼란, 지독한 물품품귀 속에 거의 해체되었다.


그런데 더할 나위 없는 구호품이 도착했다. 레드퍼드에 따르면 “4월 12일, 미 제30 보병 사단의 일부 부대들이 도착하자 풍요의 시대가 도래했고, 자원이 무한정해지면 경제적 조직과 활동은 불필요해진다는 가설이 입증되었다. 아쉬운 것들이 모두 아무런 수고 없이 충족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모든 사람이 아쉬워하는 것을 모두 얻을 수 있으면 사람들은 딱히 시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 대부분이 처한 상황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경제학은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을까: 수학 혁명과 게임 이론, 일반 균형 이론

수학으로 군더더기 걷어 내기

7A 포로수용소의 경제에 관한 소론을 쓸 무렵, 래드퍼드는 수백 년 묵은 전통을 토대로 자신의 논지를 펼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즈음에 극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경제학이 수학적인 학문으로 변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이 작동하는 방식에 관한 근본적인 진실은 그것과는 무관한 잡동사니에 가려 있기 마련인데, 경제학자들은 그 잡동사니를 걷어 내는 데 필요한 도구로 수학을 사용했다. 달리 말해 그들은 수학 덕분에 문제의 핵심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나아가 그처럼 ‘군살을 걷어 내는’ 수학적 접근 덕분에 경제학자들은 어떻게 하면 세상이 훨씬 더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가를 제시할 수 있었고, 이후 여러 세대의 기업가들은 이론의 뼈대에 근육을 붙이는 식으로 비즈니스를 구축하는 도구를 확보했다. 수학을 도입하는 이 변화 덕분에 경제학은 결국 세상을 장악할 수 있었다.


경제학에 수학 혁명이 일어나던 초창기에는 그것이 결국 현실 세계에 어떻게 관련되며 어떤 여향을 미치게 될지를 빼곡한 기호화 수식 속에서 포착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 수학적 토대가 구축되지 않았더라면, 경제학은 세상을 해석하는 방법으로서든 세상을 형성하는 수단으로서든 지금과 같은 강력한 힘을 결코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수학 혁명이 일어나기 이전 시기의 고전파와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이 수학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들도 수학을 사용했다. 수천 쪽에 달하는 카를 마르크스의 열정적인 논증에는 세세한 기술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 있었다. 마르크스와 동시대를 살았던 프랑스인 레옹 발라스(Leon Walras)는 경제학을 근본적으로 수학적인 학문이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이탈리아 인 엔지니어이자 경제학자로 활동했던 빌프레오 파레토(Vilfredo Pareto) 역시 자신의 수학적인 배경을 활용해 경제학을 발전시켰다.


1960년대의 반혁명, 시장은 완벽하지 않다

1950년대에 절정에 달한 수학 혁명은 바로 몇 해 뒤 일종의 반혁명이 일어날 조건을 형성해 주었다. 이 새로운 혁명을 불러온 다음 세대의 경제학자들은 수학적인 모형 만들기를 내버리지는 않았지만, 구체적인 경제 현상에 좀 더 직결되는 추상화 작업에 주력했다. 그들은 세속의 철학자들이 추구한 정신에 따라 경제학의 장을 다시 경제학이 묘사하고자 하는 세계로 이끌었다.


예를 들어 기업의 실적과 전망이 무너지면서 갑자기 실업자들의 숫자가 급증하는 상황에서도 표준적 이론에서는 불황이 끼어들 틈이 별로 없다. 그러한 경기의 상승과 하강을 초창기 모형들은 수용할 수 없었다. 완벽한 정보의 세계에서는 충격을 유발해 경제를 침체로 몰아넣는 예상 밖의 사건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이 제 기능을 못 하는 불편한 현실과 대적하려면 다른 접근과 다른 스타일의 경제학이 필요했다. 그것은 각 유형의 시장을 대체로 독립적인 연구 대상으로 취급하는 접근이었다. 예를 들어 카이로와 멕시코시티, 암스테르담, 뉴욕의 도시 경관을 이해하려고 할 때, 우리는 결코 ‘일반적인 도시’의 축척 모형(scale model)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이 새로운 세대의 경제학자들은 모형을 완전히 내버릴 생각은 아니었다. 무슨 문제든 간에 그것을 일반적인 개념으로 이해하려면 모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암스테르담의 교통 유형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당연히 암스테르담과 똑같은 크기의 실물 모형을 만들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에서 요점은 우리가 일반 균형 이론의 세세한 내용을 다 알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경제학이 일반적인 주제는 그대로 유지한 채 커다란 이행을 겪었다는 것이다. 경제학은 950년대 말 확고하게 수학적인 것이 되었다. 그 후로 수학적 도구들은 세계를 더 정확하고 더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일뿐만 아니라,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취지에서도 유익한 것으로 드러났다.


1776년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으로부터 19세기 세속의 철학자들에 이르는 동안, 경제학자들은 세계의 사태에 대해 추론할 때 처음에는 말(언어)을 사용했다. 그다음에는 말과 수학을 같이 사용하면서 명료하게 추론할 때도 있었고 논점을 모호하게 흐릴 때도 있었다. 이어서 그들은 20세기 중엽에 수학 혁명에 돌입했다. 이것이 경제학을 바꿔 놓았고, 그로 말미암아 경제학이 우리 삶을 바꿔 놓을 조건들이 갖추어졌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큰돈을 벌 수 있다: 플랫폼 경제학

플랫폼의 경제학

사람들이 중세 박람회, 신용카드, 인터넷 서비스와 같은 경제 현상들을 언제부터 그리고 왜 ‘플랫폼 시장(platform market)’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는지는 딱히 분명하지 않다. ‘플랫폼’을 정의할 수 있는 방식이 대단히 많다는 점에서 ‘플랫폼 시장’이라는 용어가 쓸데없이 혼동을 유발한다고 생각하는 경제학자들도 있다. 우리 저자들의 생각도 그렇다. 플랫폼 시장에 아주 모호하게 관련되는 플랫폼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플랫폼들도 있다.


경제학자들은 플랫폼이란 말 대신에 ‘양면 시장(two-sided market)’이라든가, 때로는 ‘다면 시장 (multi-sided marke)t’이라는 말을 쓴다. 우리는 슈퍼마켓에 가고, 일자리를 구하러 다니며, 부엌을 수리하려고 도급업자를 구한다. 이런 행위들은 구매자와 판매자로 이루어지는 시장 거래다. 구매자와 판매자, 두 측면이 존재하며 그들이 만나서 갖가지 시장 가격이 형성된다. 경제 이론은 이러한 시장가격이 세상을 더 나은 곳, 적어도 좀 더 효율적인 곳을 만들어 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슈퍼마켓(사실상 모든 상점)은 어느 정도까지는 한 번에 한 부류의 고객들만 상대하면 된다는 점에서 실제로는 ‘일면 시장(one-sided marke)t’이다. 슈퍼마켓에서는 선반에 비치된 식료품을 구매하며, 이때 손님들이 찾는 물건들을 골고루 충분하게 갖추는 것이 구매 관리자가 챙기는 일이다.


하지만 시장 참여자들끼리 좀 더 직접적으로 접촉해야 하는 시장들이 많다. 이처럼 정말로 다면성을 갖춘 시장들은 시장이 출발하도록 시동을 걸려면 공을 더 들여야 하며, 시장이 잠재력을 발휘하는 단계에 도달하려면 지속적인 보살핌이 필요하다. 이처럼 공을 더 들이는 사람, 즉 시장 조성자는 둘 또는 그 이상의 고객들이 만나는 플랫폼을 창조한다.


시장 조성자는 각 측면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들을 만족시키는 일에서 어느 편도 들지 않고 균형을 잡는 섬세한 일처리를 해야 한다. 사실 모든 측면이 참여하기로 동의하지 않으면 플랫폼을 별 효과를 보지 못한다. 상품으로 콘플레이크 몇 종류밖에 들여놓지 않은 슈퍼마켓에 갈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시장을 구성하는 각 측면에 참여자들은 서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식의 관계에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잠정적인 정의로 플랫폼을 두 집단(보통 구매자와 판매자)이 중개자를 통해 상호작용을 하는 시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중개자의 역할은 참여자들이 ‘보이지 않는 손’ 만을 길잡이로 삼을 때보다 더 행복하도록(그리고 시장의 효율이 더 높아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댄스 파트너 짝짓기를 위한 간편하고 유용한 방법: 시장 설계와 자원 배분

가격 없는 시장과 메커니즘 설계

자유시장이 효율을 가져올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가격을 매기고 싶어하지 않는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투석 환자는 장기 이식 대기자 목록의 가장 높은 순위를 돈으로 살 수 없다. 공립학교들은 부설 유치원의 원생 자리를 최고가 응찰자에게 매각할 수 없다. 연애 시장을 가격이 지배하는 것은 신의 섭리에 어긋난다.


우리는 때때로 어떤 것에는 ‘가격이 없다’고 결정한다. 즉 그것에 가격을 매기는 거래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 세상이 정말 조그만 소비에트공화국들을 모아 놓은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재화와 서비스를 할당하는 문제를 해당 위원회가 결정하고, 그 결정에 따라 필요한 자원들이 제공된다. 때로는 위원회가 현명하고 정보를 잘 파악하고 있어서 좋은 결정이 내려진다.


그런데 가격 시스템이 존재한다고 해서 좋은 결과가 보장되지 않듯이(가격 시스템의 효과에 대해서는 가령 리먼 브러더스에 투자한 사람들에게 비우량 대출 시장의 가격 신호가 그들에게 얼마나 효과적인 역할을 했는지 물어보라), 가격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결과가 반드시 비효율적이라는 보장 또한 없다.


시장은 아니지만 ‘시장과 비슷한 방식’들이 많이 존재한다. 즉 참여자들(이를테면 댄스 시간의 중학생들이나 데이트 희망자들, 학교 입학 지원자들, 장기 기증자들)에게 자신의 선호를 표출하도록 하고, 거기서 드러나는 욕구와 욕망을 투입 정보로 활용해 누가 무엇을 얻을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시장 가격은 그러한 방식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만일 중앙계획자들의 지혜나 시장의 마법을 활용하지 않는다면, 과연 어떻게 사람들의 선호로부터 자원을 할당하는 결정을 도출할 수 있을까?


어떤 의미에서 ‘시장 설계(market design)’ 또는 ‘메커니즘 설계(mechanism design)’ 분야는 백지에다 새로 그림을 그리는 경제학 분야다. 이 분야에서는 특정한 과업을 성취하는 데 가격과 시장이 얼마나 효과적이거나 비효과적일지(또한 전통적인 시장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어떻게 개입할 것인지)를 따지지 않는다. 그 대신 처음부터 어떤 과업 자체만을 놓고 그것을 달성하는 최선의 방식을 찾는다.


이것을 기술적인 용어로는 ‘제약 조건하의 최적화 또는 조건부 최적화(constrained optimization)’라고 부르는데, 비크리가 컬럼비아대학교로 출근하기 위한 최선책이 롤러스케이트라고 결정할 때 사용했던 그 기법이다. 이러한 메커니즘 설계자들은 여러 가지 제약 조건을 고려한다. 그리고 그러한 제약 조건 내에서 사회의 필요와 욕구를 가장 잘 충족시키기 위한 메커니즘을 설계한다. 이러한 분석은 물리학에 비유할 수 있는 경제학이 아니라 공학이나 배관 작업에 비유할 수 있는 경제학이다.



골수 사회주의자가 시장 지지자로 변신한 까닭: 공정성과 시장 마찰

시장을 사용할 것인가, 시장에 사용당할 것인가

2012년 스웨덴의 경제학자 요나스 블라쇼스(Jonas Vlachos)는 여름 방학이 끝나고 아이들이 다시 학교에 나갈 때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했다. 그의 가족은 초등학생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살고 있었다.


개학 첫날 아들은 학교 종이 울리는 9시 정각까지 등교하려고 8시 45분 직전에 집에서 출발했다. 이튿날에는 그보다 조금 일찍 출발했고, 그다음 날에는 더 일찍 출발했다. 그러더니 1~2주가 지날 즈음에는 1시간이나 이른 8시에 출발했다. 알고 보니 외투를 걸어 둘 교실 뒤쪽의 고리가 별로 충분하지 않았던 탓에 늦게 도착한 아이들은 겉옷을 벤치 위에 구겨서 놓아야 했다. 그러니까 외투 고리 ‘시장’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backward)’ 붕괴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다른 문제로, 외투 고리를 학생들에게 배정해 주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그것은 시장이 해결할 수 있는 단순한 일이었다. 아들이 외투 고리로 인한 불안감으로 자꾸 더 일찍 출발하는 사태를 보다 못해 블라쇼스는 어느 날 저녁 아내에게 이렇게 주장했다. 외투 고리를 최고가 입찰자에게 경매로 처분하면 좋지 않겠는가?


블라쇼스의 아내는 외투 고리를 경매에 부치자는 생각은 입 밖에 꺼내지 말라고 남편에게 당부를 했다. 그녀는 남편의 제안이 좋은 의도에서 나온 것이지만 동료 학부모들의 반응이 좋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블라쇼스를 사회적으로 부적절하다든가 역겹다든가 어리석다든가. 아니면 그 종합판이라고까지 여길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자유시장은 오래도록 이미지 문제를 가지고 있었고, 더욱이 충분히 그럴 만한 문제였다. 시장은 어떤 일들에는 적합하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바우처를 활용하는 스웨덴의 사립학교가 그러한 경우라고 주장할 것이다. 반면에 학교의 외투 고리를 할당해 주는 것처럼 시장이 적합한 일들도 있다. 불행하게도 외투 고리와 같은 상황을 잘못 적용된 바우처 프로그램과 같은 상황으로 오인하기가 쉽다.


이것이 어째서 문제가 되는 것일까? 시장을 활용하면 사회에 무언가 유익한 일을 할 수 있는데 이 이미지 문제가 그러한 시도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적어도 공학적인 설계와 소소한 수정과 보완이 많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시장은 좋지 못하다. 이 이야기는 자유시장 옹호자들이든 시장을 완전히 역겨운 것으로 취급하는 사람들이든 모두 경청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 시장을 도입해야 할지, 또 어떤 상황에서는 그러지 말아야 할지를 아는 지혜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장이 무엇을 성취할 수 있고 무엇을 성취할 수 없는지에 대한 이해를 심화해야 하고, 시장의 장단점을 열린 마음으로 음미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시장이 GDP를 증가시킬 뿐 아니라 그것을 더 평등하게 분배할 수 있을지라도, 시장과는 다르게 일을 처리하는 방법을 찾는 쪽으로 결정하는 편이 합리적인 상황들 또한 존재한다. 이것은 우리가 모든 것에 가격을 매기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시장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우리가 좋아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는 그러한 결정을 우리 스스로 내릴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경제학자들과 기업계의 변덕에 휘둘리는 식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시장이 작동하며, 왜 그리고 어떻게, 어떤 형태로 작동하는지에 대해 더 잘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우리가 시장에 의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어떠한 상황에서 우리가 시장을 사용하기를 원하는지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대왕쥐가 산다: 경쟁과 시장 윤리

경쟁은 우리를 비윤리적으로 만들 수 있다

2004년 하버드대학교 경제학자 안드레이 슐라이퍼(Andrei Shleifer)는 한 소론에서 (자유시장론자들이 그리스도의 성배처럼 신성시하는) 경쟁 시장은 우리를 단순히 이기적으로 만드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비윤리적인 존재로 만드는 잠재력이 있다고 추정했다.


이익률이 아주 높고 시장에서 난공불락의 고지를 확보한 회사(예를 들어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소유주들은 정직하게 행동하고 기부금을 내놓을 처지가 된다. 반면에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서 경쟁하는 방글라데시 섬유 산업의 업주들은 이런 호사를 누리지 못하기 쉽다. 계약을 따내기 위한 경쟁이 가격을 하염없이 떨어뜨리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단지 생존하기 위해 노동자나 제품의 안전을 무시하고 손쉬운 길로 가려는 유혹이 생긴다.


슐라이퍼는 어떤 관행이 심각한 윤리적 문제로 인해 아주 못마땅하게 여겨지기는 하지만, 최소한 일부 상황에서는 그것이 공동체의 경제적 후생에 더 이로울 여지가 있는 여러 사례를 거론하기도 한다. 하지만 슐라이퍼의 주된 논점은 일정한 상황에서 “경쟁은 비난받을 행동을 증가시킨다”라는 것이다.


시장 경쟁으로 인해 우리는 뇌물을 건네거나, 노동자들을 질병이나 사망으로부터 보호해 줄 지출을 기피하거나, 소비자들에게 해로운 문제를 유발하게 될 제품 품질에 대해 간편한 지름길을 택할 수 있다. 경쟁 시장은 우리를 나쁜 사람들로 만든다. 시장이 갈수록 더 우리 삶의 구석구석으로 파고드는 상황에서 이러한 문제는 모두 좋은 소식이 못 된다. 시장이 우리 행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보여 주는 증거와, 시장이 우리 삶에 파고드는 새로운 양상을 같이 고려해 보면 우리의 미래에 대해 적어도 조금은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정부 규제의 최적화에 대해 제안하지 않을 것이며, 시장 윤리에 대한 설교를 결론으로 제시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시장에 대해, 또 시장 논리가 우리 삶에서 수행하는 역할에 대해 사려 깊게 논의하려고 하면, 정부 규제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인지, 즉 시장이 잘하는 것은 무엇이고 잘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더 깊이 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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