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견만리: 불평등, 병리, 금융, 지역 편
저   자 : KBS <명견만리> 제작팀
출판사 : 인플루엔셜
출판일 : 2019년 02월

도서정보

■ 책 소개

강연과 다큐를 결합한 KBS의 렉처멘터리 《명견만리》는 김난도, 김영란, 최재천 등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부터 서태지, 성석제 등 문화계 인사까지 출연하여 우리 사회의 아젠다를 효과적으로 공론화하며 콘텐츠의 진화를 이끌어냈다는 평을 받았다. 이번 『명견만리』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다룬 미래 사회의 주요 키워드들 중 ‘불평등, 병리, 금융, 지역 편’을 엮은 것으로, 기울어진 사회 풍경을 조명하고 인류가 지속 가능하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선택지가 된 공존과 공생의 길에 주목한다.

 

각 주제마다 저인망식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한 탄탄한 취재와 풍부한 국내외 분석 사례, 세계적 기관과 연구소, 전문가들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해당 이슈에 접근하는 균형 잡힌 길을 안내한다. 글의 말미에는 방송에서 미처 풀어내지 못했던 취재과정의 결정적 에피소드와 인터뷰, 제작 의도를 풀어낸 취재노트를 담았고, 책의 뒷부분에는 ‘더 볼거리’를 제공하여 책에서 다룬 주제들을 한 발 더 확장시킬 수 있도록 도와준다.

 

■ 저자 KBS <명견만리> 제작팀
★ KBCSD 언론상 TV 영상 부문 대상
★ KBS 우수 프로그램상 다수 수상
★ 가톨릭매스컴상 방송 부문 수상
★ 정문술과학저널리즘대상 TV부문상

 

한국사회와 지구촌이 직면한 변화의 흐름을 읽어내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렉처멘터리(Lecture+Documentary) 프로그램. 강연+다큐, 지식+공감, 전문가+대중이 융합된 새로운 방식으로 ‘콘텐츠의 진화’를 이끌어냈다는 평을 받는다.

 

2015년 첫 방송을 시작한 이래 김난도, 김영란, 서태지, 성석제, 장진, 최재천 등 우리 사회 주요 인사들이 출연하여 제작진과 함께 진정성 있는 강론을 펼쳐왔으며, 여기에 일반인 청중으로 구성된 ‘미래참여단’의 역할이 더해져 집단지성의 힘으로 인류 공동의 미래를 모색해왔다.

한국은 물론 북유럽의 작은 마을까지 샅샅이 파헤치는 취재, 저인망식 자료조사 등이 바탕이 된 탄탄한 콘텐츠로 매회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 차례
프롤로그 | 희망을 놓지 않을 때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1부_불평등(Inequality)
1장. 세습의 시대, 공존을 위한 새로운 상상 _부의 편중이 없는 사회
2장. ‘교육 사다리’는 필요한가 _올라가지 않아도 되는 사회
3장. 같은 시간 같은 일을 하면 같은 돈을 받자_노동만으로 살 수 있는 사회
4장. 재벌 시대를 넘어서려면 _공정하게 경쟁하는 사회

 

2부_병리(Psychopathy)
5장. 불행한 사회에 행복한 개인은 있는가 _정신적 문제는 정말 개인의 몫인가
6장. 연결, 외로움을 푸는 열쇠 _외로움은 왜 사회적 문제인가

 

3부_금융 (FinTech)
7장. 현금 없는 ‘쩐’의 전쟁 _현금 없는 사회는 오는가
8장. 가상화폐와 블록체인, 거품인가 혁명인가 _블록체인의 시대는 오는가

 

4부_지역(Region)
9장. 도시는 어떻게 사람을 바꾸는가 _단절된 도시의 연결성을 회복하라
10장. 지방 소멸은 피할 수 없는 미래인가 _살고 싶은 지방의 조건

 

더 볼거리
<명견만리>를 만든 사람들
사진 출처

 

도서요약
명견만리: 불평등, 병리, 금융, 지역 편


불평등(Inequality)

세습의 시대, 공존을 위한 새로운 상상 _부의 편중이 없는 사회

2018년 여름, 임대아파트에서 사망한 50대 남성이 일주일 만에 발견되는 사건이 있었다. 집 안을 가득 채운 쓰레기와 술병이 홀로 지냈던 그의 외로움을 짐작케 했다. 언제 사용했는지 모를 식기구들은 방치된 채로 남겨져 있었다. 수백 건의 고독사 현장을 정리했다는 한 유품정리사는 고인의 흔적을 지우며 망자가 느꼈을 경제적 어려움과 고통에 가슴 아프다고 말한다. “유품정리 일을 하다 보면 어렵게 생활하면서 연명했던 분들이 많습니다. 지병이 있거나 술에 의존해서 세월을 보낸 흔적이 자주 보입니다.”


고인이 살던 임대아파트 주민들은 이웃의 죽음에도 담담하다. 비극적인 죽음을 워낙 일상적으로 마주하기 때문이다. “생활고에 찌들고, 특히 죽을병에 걸린 사람들은 술 먹고 그냥 뛰어내려버려. 그렇게 죽는 사람을 하도 많이 봐서 이제 별 생각도 안 들어. 일상사니까.”


이와 비슷한 시기에 또 하나의 안타까운 사연이 세상에 알려졌다. 지병을 앓던 아버지와 아들이 동반 자살한 것이다. 한 달 기초생활수급비 85만 원으로 살아가던 부자는 낡은 시골집 월세방에서 사망한 지 한 달 만에 발견됐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긴 것은 집주인에게 미안하다는 말과 재산 121만 원이 전부였다.


누구의 배웅도 받지 못한 채 쓸쓸한 죽음을 맞는 사람들. 경제적 불평등은 생의 가장 마지막 순간ㄴ에도 차별을 낳는다. 한 이웃 주민은 이렇게 말한다. “아이고, 저 양반은 이제 탈출했네. 이 지옥에서 탈출했어. 복 받았네. 그런 생각밖에 안 들어요.”


누군가는 하루에 120만 원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데, 다른 누군가는 전 재산 120만 원을 자신의 장례비용으로 남기고 떠나는 현실. 이웃의 죽음을 마음껏 애도하지 못하고 ‘지옥을 탈출했으니 복 받았다’고 자조하는 사회가 과연 지속할 수 있을까.


소득 수준에 비례해 범칙금을 부과하는 핀란드

핀란드는 전 세계에서 세금 부담률이 높기로 유명하다.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손꼽힌다. 핀란드에서 아들 하나를 키우는 할라마 씨 부부는 아내가 에너지 회사 직원으로, 남편이 국영방송 기자로 일한다. 두 사람이 적지 않은 돈을 벌지만 소득의 4분의 1가량을 세금으로 낸다. 하지만 아내는 세금 정책을 반대하지 않는다. “물론 세금을 덜 내면 좋죠. 하지만 제가 낸 세금이 이 사회를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이란 걸 알기 때문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남편 역시 큰 불만이 없다. “저는 무상으로 고등교육을 받았어요. 애를 키우는 데 드는 비용도 지원받았죠. 도서관도 잘돼 있고 핀란드에는 다른 복지제도들이 잘 갖춰져 있습니다.”


그뿐 아니다. 이들은 가난하게 사는 사람이 줄어들고 이 사회가 정말 크고 좋은 영향을 미친다면 세금을 몇 퍼센트 더 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세금을 내면 그것이 자신과 이웃에게 공정하게 돌아갈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함께 살아간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핀란드는 범칙금도 소득수준에 비례해 부과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모두 똑같은 범칙금을 낸다면 고소득자에게는 처벌 효과가 미미하기 때문이다. 하루 수입을 기준으로 벌금을 매기는 일수벌금제는 1921년부터 생겨난 사회적 합의이자 규칙이다. 경찰차 안에 있는 컴퓨터로 국세청에서 최신 과세 정보를 받아 소득수준에 따라 벌금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핀란드의 백만장자인 핀리틸라 그룹의 야리 바르 회장은 지난 2009년 과속으로 엄청난 벌금을 냈다. 제한속도보다 1킬로미터를 초과한 탓에 그가 낸 벌금은 우리 돈으로 자그마치 2억 원이다. 백만장자인 그에게도 적지 않은 돈이지만 야리 바르 회장은 벌금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이게 핀란드 법이니 인정할 수밖에요.”


한국에서는 2018년 여름, 정부가 종합부동산세를 10년 만에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온갖 매체들은 ‘세금폭탄’이라며 대서특필했다. 종합부동산세를 낼 일이 없는 사람들마저 마치 자신이 세금을 더 내야 할 것 같은 부담을 느껴 반발했다. 종합부동산세 인상은 정말 ‘세금 폭탄’일까?


어떤 사람이 서울 강남권의 재건축 아파트 세 채를 소유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아파트 세 채의 시세 총합은 56억 5000만 원이고, 공시가격은 약 35억 8000만 원이다. 이 경우 2018년에 종부세로 1746만 원을 납부했을 것이다. 그런데 변경되는 정부안을 적용하면 2019년에는 특별세를 포함해 종부세를 3412만 원 내야 한다. 1666만 원 늘어난 금액이다. 언뜻 보기에는 많은 부담이 될 거 같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아파트들의 가격은 2017년 한 해 동안 7억 원 가량 올랐다.


조세 정의는 많이 벌고 많이 가진 사람을 무조건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다. 정당한 세금을 부과해서 사회의 공적인 가치를 함께 누리자는 것이다. 부의 편중을 바로잡는 데 세금이 합당하게 쓰인다면 지속 가능한 사회와 경제발전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한 공동체로 살아가는 부자들에게도 유리한 일이다.


공존은 결국 상생이다

페루에는 장벽이 하나 있다. 리마시 남동쪽에 세워진 높이 3미터, 길이 10킬로미터의 긴 장벽이 빈민촌과 부촌을 가르고 있는 것이다. 수영장 딸린 고급 주택가에 사는 주민들이 안전을 이유로 세운 것이다. 이 장벽을 보면서 빈민촌 주민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페루 사람들도 어떻게 이런 장벽이 세워질 수 있는지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부촌과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이 장벽을 ‘수치의 장벽’이라고 불러요.”


어쩌면 한국 사회도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수치의 장벽’에 가로막혀 있는지도 모른다. 부의 편중과 대물림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에는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사회/경제적 이동성이 낮은 사회는 미래가 밝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을 나타내는 지표들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


요즘 아이들에게 꿈을 물으면 대부분 공무원 아니면 건물주라고 답한다고 한다. 어른들은 이런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이 꿈이 없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왜 아이들이 그런 획일적인 꿈을 갖게 되었는지 이제 전 사회 구성원이 고민해야 한다. 국회의장이 본회의장에서 두드리는 망치와 목수가 못을 박으면서 두드리는 망치의 가치가 동등하게 인정받아야, 아이들도 꿈을 다양하게 가질 수 있다.



병리(Psychopathy)

연결, 외로움을 푸는 열쇠 _외로움은 왜 사회적 문제인가

지금 우리는 고독하고 외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 나홀로족이 늘어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효율성을 따지는 지금의 한국 사회는 외로움이라는 전염병을 빠르게 퍼뜨리고 있다. 그리고 외로움은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세대별로 느끼는 외로움을 조사한 결과, 예상외로 20~30대 청년들이 다른 세대에 비해 외로움을 가장 많이 느낀다고 답했다. 은퇴를 하고 사회적으로 고립에 빠지기 쉬운 50~60대보다도 훨씬 높은 수치가 나왔다. 사회활동이 가장 활발한 시기이자,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많을 것 같은 20~30대 청년들이 왜 이렇게 외로움을 느낄까?


청년들이 고독감을 느끼는 이유를 조사한 결과, 가장 큰 이유로 꼽힌 것이 ‘더욱 치열해진 무한경쟁 시대’였다. 무한경쟁 사회는 청년들을 친구 등 가까운 관계로부터 고립시킨다. 친한 친구와 취업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치르는 경쟁자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것조차 가로막는다. 고민을 털어놓으면 약점을 잡힐 수 있다는 불안감이 청년들을 더욱 외롭게 만들고 있다. ‘N포 세대’라 불리는 우리 사회의 청년들은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미래를 준비하고, 친구들과 얼굴을 직접 맞대기보다 SNS로 소통한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 정신적으로 고립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이 시대 청년들의 현주소다.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인간관계가 줄어들고 가족과도 소원해지는 50~60대는 어떨까? 여가시간을 친구와 얼마나 함께하는지를 살핀 통계청 조사 결과, 연령이 높아질수록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20대 응답자 중 반 이상은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냈지만, 30대부터 이 수치가 18.7퍼센트로 급격히 떨어져 40대에서 9퍼센트로 가장 낮은 비율을 보였다. 사회에서 부담이 가장 큰 세대이다 보니, 지인과 시간을 보낼 여유도 줄어드는 것이다.


특히 중장년층은 은퇴, 이혼, 또는 건강상의 문제로 삶의 변화를 경험하기도 한다. 퇴직할 때가 되면 직장 내 인간관계를, 직업적인 정체성을 잃게 된다. 이때는 자녀들이 독립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인 소외, 우울증을 겪기 쉽다. 이렇게 하나둘 사회적 연결망이 끊기다 보면 결국 개인은 고립되고, 사회적으로는 고독사가 증가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외로움을 단순히 개인의 감정 문제로 바라보기에는 외로움이 야기하는 사회적 문제가 점점 커지고 있다. 우리보다 앞서 외로움을 사회적 문제로 인식한 나라들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사람 사이에서 길을 찾은 영국

영국에서는 지역에서 여러 사람들이 함께 모여 목공작업을 하며 각자의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는 ‘맨스 셰드’라는 비영리조직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참가자들은 셰드(헛간)에서 손녀를 위해 인형의 집을 만들기도 하고, 지역사회를 위해 계단을, 모임을 위해 화분을 만들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그냥 이야기를 나누고 차를 마시다 가기도 한다. 맨스 셰드의 평균 참가자 수는 20~30명이다. 참가자들은 이곳에서 친구를 사귀고, 동료애를 느끼며, 작업을 통해 자기만족을 얻는다. 2013년 영국 30개 지역에서 시작한 맨스 셰드는 현재 500개로 늘어났다.


맨스 셰드는 호주에서 처음 시작되어 호주에서만 약 1000여 곳이 운영되고 있다. 2007년의 한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맨스 셰드를 통해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 소속감,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기쁨, 자신이 즐기는 일을 한다는 만족감 등을 크게 느낀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각각의 맨스 셰드가 1년에 세 명의 자살을 막을 만큼 자살 예방에도 도움이 되었다. 실제로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을지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호주에서의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영국, 미국, 캐나다, 핀란드, 뉴질랜드, 그리스에서도 맨스 셰드가 운영되고 있다.


맨스 셰드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데 서툰 남성들을 위해 시작됐지만, 여성에게도 이러한 공간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이어지며 현재 일부 지역의 셰드는 여성의 입회를 허용하고 있다.


한편 영국에 흔한 프랜차이즈 커피숍 코스타에는 ‘수다석’이라는 것이 있다. 젖먹이 엄마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수다석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수다석에 앉는 손님들끼리는 처음 보는 사이라도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러니까 수다석에 앉는다는 것은 ‘누군가와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일종의 사인인 셈이다. 수다석을 이용해본 손님들은 잠시 외로움을 잊고 서로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며 호평 일색이다. 2018년 4월부터 25개 매장에서 시작된 수다석은 영국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매년 6월 영국 전역에서는 이웃들과 음식을 나누는 빅 런치 행사가 성대하게 진행된다. 사회적 고립을 막고 지역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2009년부터 시작된 이 행사는 매년 1000만 명이 참여할 정도로 성장했다. 같은 동네에 살지만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도 이 행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동네 주민들이 함께 모여 서로를 알아가면서 지역이 살기에 더 안전해지는 효과도 있다. 조사에 따르면 빅런치 참가자 중 절반이 이 행사를 통해 외로움을 극복했다고 한다.



금융 (FinTech)

현금 없는 ‘쩐’의 전쟁 _현금 없는 사회는 오는가

화폐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

2013년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은행에 강도가 침입했다. 그러나 강도는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 채 황급히 그곳을 떠나야 했다. 은행에 단 한 푼의 현금도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스웨덴에서는 주요 은행지점 1600곳 중 900여 곳이 현금취급 업무를 하지 않는다. 현금인출기 역시 빠르게 사라지고 있으며, 그마저도 현금을 입금할 수 있는 기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스웨덴은 1661년 세계 최초로 중앙은행이 지폐를 발행했을 정도로 화폐금융이 일찍부터 발달한 나라다. 그런 스웨덴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현금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카드와 현금거래 애플리케이션이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식당이나 상점에서 이런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지만 스웨덴은 이것이 훨씬 진척된 모습이다.


스웨덴 상점들은 약국 등을 제외하고는 공개적으로 현금을 거부할 수 있다. 가게에 ‘현금 안 받는 곳’이라고 써 붙인 경우도 있다. 스웨덴 중앙은행인 릭스은행에 따르면, 현금을 받는 상점은 2010년 전체의 40퍼센트에서 2016년 15퍼센트로 줄었다. 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아예 신용카드나 스마트폰 앱으로만 요금을 결제할 수 있다. 현금은 사용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했다.


스웨덴은 세계에서 ‘현금 없는 사회’에 가장 가깝게 다가간 나라다. 스웨덴의 현금 사용률은 2016년 이미 1.4퍼센트로 떨어졌고, “2020년이면 0.5퍼센트까지 떨어질 것”으로 스웨덴 왕립공과대학은 전망했다. 이에 따라 지난 10년간 현금 통화량 역시 약 410억 크로나(약 5조 원) 감소했다.


현금 없는 사회는 스웨덴뿐 아니라 세계적인 트렌드다. 덴마크는 2017년 1월부터 화폐의 제작을 중단했고, 현금 결제를 거부할 수 있는 상점 주인의 권리를 법적으로 인정했다. 유로존 역시 2018년 1월부터 고액권인 500유로화로의 발행을 전면 중단했다. 고액의 현금 거래를 금지하는 추세도 확산되고 있다. 프랑스와 포르투갈은 1000유로, 그리스는 1500유로, 스페인은 2500유로, 벨기에는 3000유로 이상의 현금 거래를 금지하고, 위반 시 수십 배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한국도 현금 사용이 급감하는 추세다. 2016년 한국은행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내에서 현금이 아닌 다른 수단으로 지급하는 비율이 86.7퍼센트에 이른다. 그중 신용카드와 직불카드 이용률이 71퍼센트로, 13.6퍼센트인 현금 이용률보다 네 배 가까이 높다.


그렇다면 세계 주요 선진국들은 왜 현금 없는 사회로의 이행을 서두르고 있을까? 스톡홀름대학의 로번 테이그먼 경영학과 교수는 그 이유로 편리함과 효율성, 소비효과 등을 꼽았다. “현금 없는 사회로 이행하는 가장 큰 이유는 효율성이에요. 지폐와 동전을 발행, 유통, 관리, 회수하는 비용을 절감하는 직접적인 효과가 있습니다. 위조지폐 등의 범죄를 막을 수도 있어요. 또한 돈을 저축하기보다는 소비하게 하는 방법이기도 해요. 정부로서는 현금순환을 조절하고, 금융사기, 위조지폐, 탈세 등을 막는 수단일 수 있어요.” 실제로 스웨덴에서는 은행지점의 현금 보유를 줄인 뒤 2008년 110건이나 발생했던 은행강도 건수가 2016년에는 두 건에 그쳤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7년에 금융기관과 한국은행 창구를 통해 회수된 손상화폐 규모가 3조 8000억 원이고, 이를 새 화폐로 대체하는 비용만 617억 원이었다. 현금이 사라지면 이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이렇듯 인류 역사와 함께 다양한 형태로 변화를 거듭해온 실물화폐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21세기 금융과 IT기술의 만남인 ‘핀테크’의 등장으로 가능해진 일이다. 핀테크는 스마트폰을 새로운 지갑으로 만들며 기존의 금융시장을 빠르게 대체해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핀테크를 페이팔이나 카카오페이와 같은 지급결제 수단 정도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신용카드와 체크카드만으로도 충분히 빠르고 편리한데 굳이 핀테크가 필요한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현금 없는 사회로의 이행이 중국이나 미국, 영국 등 핀테크 주요 선진국에 비해 늦어지고 있다.


현금 없는 사회, 빅브라더의 출현인가

간편결제 서비스로 성장한 핀테크산업은 예금, 대출, 자산관리운용투자, 크라우드 펀딩, 보험 등으로 진화하며 금융을 혁신하고 있다. 그리고 금융 플랫폼은 연결성과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그 영역을 무한히 확장할 것이다. 이제 핀테크는 단순한 미래 기술을 넘어 국가경제의 새로운 먹거리로 자리매김했다.


그렇다고 현금 없는 사회가 장밋빛 미래만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스웨덴에서는 은행강도가 줄어든 대신 ‘멸종 위기 동물’ 밀매시장이 갑자기 커지고, 각종 강도 사건과 사기 사건이 늘어나고 있다.


2016년에는 전체 인구(990만 명)의 15.6퍼센트가 이런 범죄를 당했다고 한다. 컴퓨터 관련 사기 사건도 1년 새 무려 56퍼센트나 급증했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스웨덴은 보안산업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등 현금 없는 사회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유럽 연합에서는 급증하는 결제 사기를 줄이기 위해 2019년 9월부터 30유로(4만 원) 이상의 온라인 결제에 대한 다단계 인증을 요구할 예정이다. 즉 패스워드, 자신임을 확인해줄 디지털 식별 장치나 생체인식 데이터 등 세 가지 인증 방식 가운데 두 가지를 사용해야 한다.


핀테크산업의 확장은 금융제도의 개혁을 동반한다. 따라서 규제가 완화되면 안전성에 대한 요구 수준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간편결제 서비스가 지문, 홍채, 손바닥 정맥, 안면 인식 등 생체인증 방식으로 발전하면서 생체정보까지 포함된 개인정보의 보안에 대한 요구가 한층 강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보안산업이 빠르고 강력하게 성장하고 있지만, 과연 해킹에서 얼마나 안전할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현금 없는 사회가 초래할 가장 두려운 문제는 ‘감시사회’로의 진입이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현금 없는 사회의 시작은 “모든 돈을 국가의 통제 아래에 있는 계좌에 넣어놓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빅브라더의 출현을 경고했다. 전자결제는 모든 금융거래가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우리가 돈을 어디에 쓰는지 감시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러한 감시사회로의 진입과 해킹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출현한 것이 바로 디지털화폐, 즉 가상화폐다. 가상화폐의 대표 격인 비트코인은 중앙 집중화된 금융에 반기를 들고 탄생했다. 그러나 법정화폐의 대안화폐로 등장한 가상화폐는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려던 ‘탈 중앙화’의 가치를 잃고 투자와 투기의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 해킹과 감시사회의 위험을 피하면서 기술의 편리함을 누릴 방법은 무엇인가. 인류 역사에서 기술은 양면성을 가진 경우가 많았다. 건설을 도와주는 다이너마이트가 전쟁에서 많은 사람을 죽였으며, 최근 인공지능을 둘러싸고도 오히려 인류를 위협하는 기술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러한 논란들 속에서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기술이 우리 삶에서 어떤 모습을 띨 것인지는 기술을 사용하는 우리가 결정한다는 점이다. 현금 없는 사회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인가 속박할 것인가. 이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지역(Region)

지방 소멸은 피할 수 없는 미래인가 _살고 싶은 지방의 조건

인구가 줄어들수록 도시를 압축해야 한다

쇠퇴한 도시들을 살펴보면 십중팔구는 도시 재생사업으로 외곽을 개발하면서 달걀 프라이의 노른자 부분인 원도심이 비어 있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인구가 팽창할 때는 도시 외곽에 신도심을 개발하는 것이 인프라 부족을 해결하고 집값 상승을 방지하는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인구가 정체되거나 감소할 경우 도시 외곽을 개발하면 원도심은 인구가 빠져나가 유령도시로 변한다.


《지방도시 살생부》를 쓴 도시계획학자 마강래 교수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구가 줄어들수록 도시를 압축해서 ‘압축도시’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구가 10만 명 이하인 도시에서는 도심 하나, 인구가 10만 명 이상인 도시에서는 도심 하나와 부도심 한두 개로 집중한다면 인구 유출의 속도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빽빽하게 모여 있어야 일자리든 교육이든 문화든 여가 생활이든 기회가 싹튼다. 일본에서는 도시 내의 가장 노른자 땅인 원도심에 편의점, 슈퍼, 은행, 병원, 유치원, 주민센터 등을 모으고 그 주변에 주민들이 거주하게 하는 스마트 축소 전략을 도입한 지자체가 20퍼센트에 달한다.


광주광역시의 원도심에 위치한 발산마을은 죽어가던 원도심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은 좋은 예다. 이곳은 1970~1980년대만 해도 여공들의 주거지로 많은 사람들이 살았다. 그러나 방직공장이 쇠락의 길을 걸으면서 젊은이들이 떠나고 노인들만 남은 낙후 지역이 되었다. 도시가스도 들어오지 않는 열악한 주거환경에 빈집과 쓰레기가 넘쳐났다. 쓰러져가던 ‘달동네’였던 발산마을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2015년부터다. 빈집을 고쳐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들에게 공급한 것이다.


버려진 단독주택을 보수해 카페를 창업한 오유연 씨는 광주광역시로부터 주택 보수비용과 1년치 월세를 지원받았다. 발산마을의 할머니들과도 힘을 합쳤다. 할머니들이 자두청, 매실청 등을 만들어 유연씨의 카페에 ‘할매스 음료’라는 메뉴로 공급하면서 마을 주민과 협업하는 상생 모델을 만든 것이다. 그밖에도 공방, 아트 스튜디오, 소품 가게, 게스트하우스 등 매력적인 공간이 하나둘 들어서면서 발산마을에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마을의 변화는 할머니들의 삶도 바꿨다. 마을에서 일하는 청년들을 위해 시작한 할매 밥집은 유명세를 타고 관광객들에게도 인기를 얻고 있다. 광주광역시는 발산마을의 낙후된 도시가스 시설, 전기시설 등을 개선하는 데 힘쓰고 있다.


무분별하게 도시를 확장하는 대신 기존 자원을 활용한 발산마을은 할머니와 젊은이들이 함께하는 마을이라는 지역 특색도 얻게 되었다. 마강래 교수는 위기를 겪고 있는 다른 지방 중소도시에도 발산마을의 사례를 접목해볼 만하다고 이야기한다.


“흩어져 있는 인구를 모아 인구를 빽빽하게 만들면 스스로 치유할 힘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인구밀도가 높아진 곳에 해당 도시만의 특색을 가꿔나가야 하죠. 도시를 빽빽한 체질로 전환하고 지역만의 특색을 갖추게 한다면 지방 중소도시도 얼마든지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지방을 살려야 우리 모두 살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 영국의 한 지리학자가 조선을 여행하고 기행문을 남겼다. 거기에 인상 깊은 문구가 있다. “조선에서는 한양이 상업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모든 사업은 한양에서 이루어지고, 모든 상품은 한양으로부터 공급된다. 지방에 파견된 관리들도 부임한 그 다음날 바로 한양으로 돌아와, 더 좋은 부임지로 가기 위해 한양에 머문다. 조선의 모든 길은 한양으로만 나 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120년 전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러나 서울로만 향하는 행렬은 누구에게도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지 못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이른바 ‘감소의 시대’다. 인구는 물론이고 투자와 생산, 노동의 기회, 발전 가능성 등 모든 것이 감소하고 있다. 더불어 지방도 소멸의 길을 걷고 있다. 지방 중소도시의 소멸은 해당 도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구가 나가는 곳과 들어오는 곳 모두에 큰 부담을 주고, 사회적 비용도 커질 수밖에 없다.


문제가 눈덩이처럼 커지기 전에 바로잡지 않으면 파국이 닥칠지 모른다. 이제 모두 지방의 문제에 눈을 뜨고, 함께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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