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스러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건강과 부 이상이 필요하다. 발전을 토대로 빈곤에서 탈출하는 과정에서 더 나은 교육을 받고 사회 활동에 참여하는 기회를 더 많이 얻어야 한다. 이 책에서 내가 주로 초점을 맞추는 부분은 소득과 건강이지만 전반적인 그림은 거의 같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았지만 최근 몇 십 년 동안 세계가 엄청나게 발전했다. 더 많은 아이들이 일상적으로 학교에 다니고 더 많은 사람들이 글을 읽는다. 비록 아직도 수많은 독재자가 존재하고 수억 명이 사회 참여에 제한을 받으며 살고 있다 해도 반세기 전에 비하면 오늘날 사람들은 더 많은 정치적 자유를 누리고 있다. 이런 면을 고려해본다면 전 세계 거의 모든 지역에서 삶의 질이 나아지는 중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통계 자료를 기준으로 자신의 삶을 살펴보지 않고 직접 경험한 사람의 말보다는 개발 전문가나 학자들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일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 또는 사람들이 우리가 사용하는 목록에 포함되지 않은 다른 요인에 더 가치를 둘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스스로 물어보라 많이 이야기한다.

최근 경제학자와 심리학자, 철학자들이 웰빙에 대한 자기 평가 결과에 대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몇몇 국가의 통계청은 한 발 더 나아가 이 같은 자료를 주기적으로 수집한다. 막연히 행복에 대한 평가로 자주 언급되는 자기 평가 결과는 대단히 매력적이다. 웰빙에 대해 우리가 알아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서 직접 나온 자료이자 실제로 거둔 성과에 대한 평가이기 때문이다. 또 어쩌면 웰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거나 또는 알기는 해도 측정하지 못하는 요인이 미치는 결과를 포함하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학자든 철학자든 많은 사람들이 웰빙에 대한 자기 평가 결과의 유효성과 사용 가능성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다. 우리는 웰빙에 관한 질문에 대답할 때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늘 알지 못한다. 또한 서로 다른 국가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에 질문할 때 사람들이 똑같은 방식으로 질문을 이해했는지 의문이 든다. 원문을 그대로 옮긴다 하더라도 질문을 번역하기가 때로는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미국인은 프랑스인에 비해 더 자주, 더 자유롭게 'happy'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동아시아 사람들은 특히 자신이 행복하다고 말할 때 주저하는 듯 보인다.

더 큰 걱정거리는 적응이다. 절망적인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이 자신이 처한 상황이 살면서 누릴 수 있는 최선의 환경이라고 생각하고 행복하다고 대답하게 될 수 있다. 사치스럽고 편하게 사는 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누리는 부에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사소한 사치품 하나만 없어도 불만족스러워할 가능성이 있다.

사람들이 언제나 환경에 적응해 현재 누리는 생활에 대해 만족한다면 어느 나라에서 조사하더라도 대답이 평균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부유 국가는 대부분 오랫동안 부유했으며 빈곤 국가는 대부분 오랫동안 가난했다. 따라서 사람들이 자신의 환경에 적응할 시간은 충분히 있었다.

그렇지만 대체로 더 부유한 국가에 사는 사람들이 더 가난한 국가에 사는 사람들보다 자신의 삶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린다는 사실로 미뤄볼 때 성장이 삶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나는 강하게 확신한다. 덴마크와 미국을 하나로 묶고 시에라리온과 토고, 짐바브웨를 다른 하나로 묶은 뒤 두 집단을 비교했을 때 드러나는 가장 확실한 차이는 한쪽은 부유하고 다른 한쪽은 가난하다는 점이다. 그 차이는 부유한 국가가 지난 250년 동안 성장한 반면 가난한 국가는 전혀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겼다. 또한 기대 수명에서도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전반적으로 잘살고 있다고 생각할 때조차 가끔씩 불행하거나 걱정스럽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 위해 반드시 거치는 경험 중에서 몇 가지는 당연히 슬픔과 고통, 스트레스를 수반할 것이다. 신병 훈련소에 입소하거나, 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거나,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슬픔을 이겨 내는 시간 등은 사는 동안 필수적으로 겪는 일이라고 해도 유쾌하지 못한 경험이다. 데이트 하러 나가는 젊은이들은 가끔씩 끔찍한 일을 겪는다. 그러나 감정을 배우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이다. 이런 감정적인 경험이나 사건들은 그 자체만으로 현재의 만족스러운 삶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어쨌든 행복이 슬픔보다 낫고, 언젠가 보탬이 된다 하더라도 스트레스와 걱정, 분노는 사람들이 그러한 감정을 느끼는 순간 웰빙지수를 낮추도록 유도하기 마련이다.

삶에 대한 평가 지수와 행복(또는 다른 감정) 지수는 각국에 대해 서로 다른 그림을 그린다. 어느 쪽이 옳을까? 그러나 웰빙에 대해 생각할 때 이런 질문은 부적합하다. 행복하면 기분이 좋고, 걱정스럽거나 화가 나면 즐겁지 않고, 잘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만족스럽다. 하지만 이때 느끼는 감정의 정도나 빛깔은 사람마다 다르다. 웰빙의 수준을 평가하는 기준을 제시하는 마법 같은 질문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날까지도 삶에 대한 만족도는 가난한 사람들이 훨씬 낮지만 살면서 느끼는 감정들은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부자라 하더라도 분노와 두려움, 슬픔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며 매일같이 행복과 즐거움을 경험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지난 250년 동안 세상이 바뀌었다. 오늘날 부는 질병과 죽음을 막을 강력한 보호 장치를 제공한다. 특히 지난 60년 동안 세계가 전반적으로 더 부유해지고 교육 수준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보호 장치가 더 많은 사람들 사이로 확산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거의 모든 지역에서 사람들이 돈을 더 많이 벌고 더 건강해졌다. 오늘날 영유아 사망률이 1950년에 비해 낮은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 나라만이 아니다. 경제성장은 특히 중국과 인도에서 수백만 명이 지독한 가난으로부터 탈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끔찍한 반전도 있었다. 중국의 대기근 사태와 에이즈의 대유행,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 출신 국가들의 수명 감소, 수많은 전쟁, 잘못된 정책이라는 저주가 역사 속에서만 등장하는 괴물이 아님을 일깨운다. 영화에서 보듯 대탈출은 영원히 지속되는 자유를 선사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 주변에서 어둠과 악, 무질서가 일시적으로 사라지도록 만들 뿐이다.

빈곤 국가의 주요 사망 원인은 하기도 감염과 설사병, 결핵, 그리고 세계보건기구에서 '영유아기 질병'이라 부르는 백일해, 디프테리아, 소아마비, 홍역, 파상풍, 등 현재 부유 국가의 과거 아이들의 목숨을 빼앗았던 질병과 대체로 같다. 네 가지 군으로 분류되는 이 질병들로 인해 아직도 한 해 800만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사망한다. 또 다른 주요 사망 원인으로 말라리아와 에이즈, 출생 직전, 또는 출생 당시 사망(주산기 사망), 출산에 따른 산모 사망, 영양실조로 인한 사망이 있다.

영양실조로 생기는 사망 중 가장 중요하게 다뤄야 할 문제는 충분히 먹지 못해 생기는 단백질 또는 에너지원 공급 부족으로 인한 사망과 철분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하는 식단 때문에 발생하며 대개 채식이 주로 문제를 일으키는 빈혈로 인한 사망이다. 한 해 부유 국가에 사는 노인 35만 명의 목숨을 빼앗는 폐렴을 제외하면 부유 국가에서는 기본적으로 앞에서 말한 질병으로 죽는 사람이 없다. 부유 국가의 더 나은 공중위생 정책 덕분에 아이들이 설사병과 폐렴, 결핵으로 사망할 위험이 크게 줄어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까지도 몇몇 나라에서는 위험한 존재였다고 하나 현재 부유 국가에서는 말라리아가 위험한 병이 아니다. 이에 반해 빈곤 국가에서는 말라리아가 영유아 사망의 주요 원인이다. 항레트로 바이러스 치료제 개발과 성행위 유형의 변화가 에이즈로 사망하는 사람들의 수를 엄청나게 줄였다. 거의 전 세계에서 전개된 아동 예방 접종 운동은 '영유아기 질병'으로 분류되는 질병 대부분을 사라지게 했으며 출산 전후 관리는 주산기 사망과 산모 사망 비율을 엄청나게 낮췄다. 빈혈에 대해 잘 알려지면서 부유 국가에서 철분 같은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한 미량 영양소 부족에 시달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긴다. 어째서 부유 국가에서 태어났더라면 죽지 않았을 아이들이 빈곤 국가에서 태어났다고 죽는 것일까? 부유 국가에서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고 효과를 발휘하는 지식을, 빈곤 국가에서 사망하는 수백만 명의 목숨을 구하는 데 사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존재는 무엇인가? 가장 확실한 용의자는 빈곤이다.

부자는 다른 사람을 희생하여 더 부자가 되는가, 아니면 새롭고 보다 나은 방법을 만들어내 더 생산적이 되는 것뿐일까. 모든 사람이 잘살지만 일부가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잘사는 세상에서 불평등에 대한 불만은 타당한 것일까, 아니면 그저 질투심의 표현에 불과한 것일까. 우리는 왜 불평등에 신경을 쓰는 것일까. 당연한 말이지만 모두가 동등한 기회를 갖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면 불평등한 결과가 아니라 불평등한 기회에 대해 염려해야 할 것이다.

동등한 기회와 열심히 일해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일에 관해 이야기할 것이 많다. 하지만 다른 부유한 국가들과 비교해서, 그리고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을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지만 사실 미국이 특별히 동등한 기회를 실제로 잘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경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성장하면서 최고 성장률에 다다르지는 못했지만 성장 속도는 역사적 기준에 비춰볼 때 훌륭한 것 이상이다. 이러한 팽창 속에 생산된 재화와 용역으로 많은 사람의 생활이 향상됐다. 그래도 빈곤과 퇴보로부터 거의 탈출하지는 못했지만 웰빙에 미치는 성장의 영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더 안전하고 좋은 집에서 살며 그들의 조부모에게는 불가능했던 방법으로 여행할 수 있고 상당한 세상 정보와 엔터테인먼트에 접근할 수 있으며 상상도 못했던 방법으로 서로 연락할 수 있다. 하지만 종종 그렇듯 성장은 분열을 낳았고 특히 성장이 둔화되고 훨씬 덜 포괄적이었던 1970년대 중반 이후 몇몇 사람이 다른 사람들보다 잘살게 되었다. 이 같은 분열은 생산적일 수 있으며 많은 경우에서 봤듯이 더 부유한 사람을 따라잡고 소수의 이익을 많은 사람에게 퍼뜨릴 수 있는 기회와 유인급부를 만들어낸다.

성장에서 불평등 그리고 따라잡기로 이어지는 과정은 동전의 양면 중 밝은 면이다. 어두운 면은 이 과정이 중간에 사라져 따라잡기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 생겨난다. 역사학자 에릭 존스는 장기간의 역사를 봤을 때 서구 국가는 1750년 이후 발전하고 아시아와 남쪽의 국가들은 그렇지 않은 이유에 대해 유려한 글을 썼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서구 이외의 국가에서 성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계속 반복해서 일어났다. 하지만 늘 강력한 통치자나 지도자가 혁신을 독점하거나 자신의 지위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활동을 모두 금지하여 성장의 불씨가 꺼지곤 했다. 어느 쪽이든 지속적인 성장은 한 번도 자리를 잡지 못했고 황금알을 낳을 수도 있었던 거위는 태어나자마자 목이 졸려버렸다. 이런 사회의 극심한 힘의 불평등은 성장이 확고히 자리 잡을 수 없고 영구적인 탈출 경로가 차단된 환경으로 이끌었다.

물질적 웰빙 측정은 전혀 쉬운 일이 아니며 일상적 용어인 소득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빈곤과 불평등의 측정치는 소득 측정치만큼만 양호하다. 나라들을 서로 비교하려고 하면 더 힘들어진다.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사회에서 가난해지지 않으려면 어떤 종류의 소득이 필요한지 상당히 잘 파악하고 있다. 국민 대부분과 정책 입안자들은 국가 빈곤선을 그럭저럭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나누는 타당한 수치로 여길 만하다. 그러나 전 세계의 가난한 사람을 세야 한다면 키토, 카라치, 팀북투 뿐 아니라 런던과 캔버라에서도 타당한 단일 빈곤선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여느 소득의 국제적인 비교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통화를 다른 통화로 환산할 수 있어야 하는데 환율은 이런 용도에 쓸모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하나의 통화를 다른 통화로, 이를테면 달러를 루피로 환산하는 방법을 묻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시장에서 달러로 살 수 있는 루피의 수를 나타내는, 매일 바뀌는 환율이 있다. 따라서 뉴욕에서 델리로 날아가 환전소를 찾으면 1달러에 약 50루피를 받거나 은행의 수수료에 따라 이보다 덜 받게 된다. 하지만 시내로 들어가면 가장 비싼 호텔에서조차 뉴욕에서 1달러로 살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50루피로 살 수 있다. 델리 경제대학의 구내식당에 가거나 길거리 음식을 살 경우 이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물가 수준은 가난한 나라에서 낮고 가난할수록 물가수준이 더 내려간다. 가난한 나라에 저렴한 땅과 저렴한 노동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가난한 나라의 물가수준이 부유한 나라보다 훨씬 낮은 이유를 설명해준다. 시장은 강철과 휘발유, 자동차, 컴퓨터와 같이 국제적으로 거래가 가능하고 또 거래되는 모든 물건의 가격이 동등해지도록 환율을 정하지만 물가수준은 거래할 수 없는 재화와 서비스에 달려 있다. 이런 재화와 용역은 가난한 곳에서 더 저렴하므로 가난한 나라일수록 평균 물가가 낮다.

가난한 나라일수록 물가가 낮으므로 시장 환율을 사용해 생계비를 환산하면 잘못된 답이 나온다. 신문 기사에서는 거의 언제나 이 값을 잘못 계산하고 있으며 경제학자들조차 가끔 이 사실을 잊는다. 2011년 봄, 인도 정부는 인도 대법원에서 하루에 26루피만 있으면 적어도 도시 바깥에 사는 사람들의 빈곤은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른 엄청난 논란 속에 인도를 비롯한 국제 언론은, 인도인 대부분이 자비로운 기관으로 보지 않는 세계은행조차 1.25달러의 빈곤선을 사용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1달러당 53루피의 환율로 계산하면 정부가 정한 선보다 두 배나 후한 금액이다. 하지만 1달러당 20루피의 PPP비율로 계산하면 세계은행의 빈곤선이 25루피가 되어 정부가 제안한 선에 가깝다. 「파이낸셜타임스」조차 시장 환율을 사용해 루피를 달러로 환산하고 정부의 빈곤선이 세계은행의 1.25달러 선이 아닌 1.52달러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더 정확한 숫자는 1.3달러였을 것이다. 정말 보잘것없는 금액이지만 틀린 숫자의 세 배에 달한다.

유엔개발계획도 여러 해 동안 이런 실수를 해 가난한 나라의 빈곤을 의도적으로 과장했다는 비난을 초래했다. 가난한 나라의 생활수준에 대해 읽고 시장 환율을 사용해 빤한 환산을 할 때마다 두세 가지 요인으로 인해 그 결과가 너무 작게 나올 것이다. 임금은 분명 가난한 나라에서 낮지만 부유한 나라에 비해 얼마나 가난한지 과장해서 득이 될 일은 없다.

오늘날의 원조가 세계 빈곤을 퇴치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퇴치 노력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은행은 빈곤 퇴치라는 깃발을 내걸고 있지만 원조 대부분은 세계은행 같은 다국적 조직을 통해 흘러 들어오지 않고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양자'간 원조를 통해 이뤄지며, 서로 다른 나라는 서로 다른 목적으로 원조를 사용한다. 최근 몇몇 기부국이 빈곤 경감을 위한 원조를 강조해왔고 영국 국제개발부(DFID)가 그 대표 중 하나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원조는 받는 사람의 필요보다 기부 국가의 국내 및 국제적 관심사에 따라 이뤄진다. 기부국 정부가 민주주의 정부이고 납세자들의 돈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많은 나라에 세계 빈곤 감소에 찬성하는 강력한 국내 지지층이 있지만 기부자는 정치적 동맹이나, 종종 중요한 이해관계가 있는 이전 식민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일을 비롯해 여러 가지 고려사항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국내 기부자 이해관계에는 인도주의적인 관심을 가진 국민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해외 원조에서 기회(자국의 재화 판매)와 위협(개발도상국과의 경쟁)을 모두 고려한 상업적 이해관계도 있다. 그렇다 해도 일본과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는 풍요롭고 민주적인 세상을 만드는 일 같은 보편적인 목표를 이유로 대고 있으며 이런 목표는 분명 세계 빈곤 감소와 일치한다.

원조의 공식적인 목적은 보이는 것보다 덜 중요할 수 있다. 원조는 대개 사용처가 대체 가능하기 때문에 국사 원조조차 정부가 탱크와 비행기를 구입하지 않고 학교와 병원에 기금을 사용하게 할 수 있다. 다른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더 염려스러운 일이다. 경제 개발 분야의 선구자 중 한 명인 폴 로젠슈타인-로단은 1940년대에 발전소를 짓는 데 돈을 줬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매음굴에 자금을 댄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정치적 지원 관계를 단단히 다지기 위해 동맹국에 기부하는 경우 해당 동맹국이 자금을 빈곤 감소에 사용하든 의료, 교육에 사용하든 이를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원조 목적에 따라 원조를 분류하는 것은 그다지 타당하지 않을 수 있다.

한 가지 예만 들자면 2010년 로버트 무가베가 통치한 짐바브웨는 국민소득의 10퍼센트 이상 또는 1인당 거의 60달러에 해당하는 ODA를 받았다. 이런 경우 기부하는 측에선 심각한 보전의 바우어 딜레마에 직면한다. 원조 목표가 심각한 결핍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면 토고 또는 짐바브웨 같은 나라가 좋은 후보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들 국가의 운영 방식 때문에 원조가 도움이 될 가능성이 낮고 실제로는 독재 정부의 권력 유지나 축재 또는 이 둘 모두를 돕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정부에 대해 독립적인 NGO를 통해 원조를 제공할 수도 있지만 이는 불완전한 해결책일 뿐이다.

원조는 대체 가능하므로 NGO가 운영하는 학교와 병원이 정부가 사용할 기금을 사용할 수 있고 정부는 NGO의 자원에 세금을 부과할 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 정부는 NGO가 수입하는 재화와 기기에 세금을 부과하거나 비싼 운영 허가를 받도록 요구할 수 있다. 똑같은 일이 인도주의적 긴급 지원에서도 발생하며 특히 전쟁 시 그 나라 국민에 대한 인도주의적 접근을 허용하도록 군부 지도자를 매수해야 하는 경우 그렇다.

원조 흐름에 대한 이런 간략한 서술은 좋게든 나쁘게든 부유한 나라가 가난한 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많은 방식은 고려하지 않는다. 실제로 원조는 이런 관계에서 가장 덜 중요한 것들 중 하나다. 부유한 나라는 종종 세계은행보다 선뜻, 관료주의적인 번잡한 절차를 덜 거치고 민간 투자의 형태로 자본을 제공한다. 그 결과 예전보다, 특히 중간 소득 국가에서 세계은행의 원조를 요청하는 일이 적어졌다. 이민자가 고향의 가족에게 보내는 송금과 같이 부유한 나라에서 가난한 나라로 이뤄지는 개인 송금이 ODA 금액의 두 배에 달한다. 새로운 약품, 백신, 질병을 약화시키는 메커니즘의 발견과 같은 기초 과학은 거의 언제나 부유한 나라에서 시작됐지만 가난한 나라에도 혜택을 가져왔다.

휴대폰이나 인터넷과 같은 발명도 마찬가지였다. 이와 동시에 무역 제한이나 특허 적용은 가난한 나라가 부유한 시장 또는 중요한 치료법에 접근하는 것을 제한할 수 있다. 이 같은 비원조 관계는 좋든 나쁘든 종종 해외 원조보다 훨씬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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