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
저   자 : 마이클 바스카(역:최윤영)
출판사 : 예문아카이브
출판일 : 2016년 11월

도서정보

■ 책 소개

 

“대신 선택하고 미리 보여줘라!”
시장이 원하는 것만 가려내는 기술

 

이미 수많은 정보·콘텐츠·상품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어느 것 하나 주목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선택을 대신할 수 있는 큐레이션(Curation)의 개념을 살펴보고 이를 적용할 수 있는 방법과 분야를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제시하는 책이 나왔다.

 

큐레이션은 ‘불필요한 것들을 과감히 덜어내는’ 힘이자, ‘선별과 배치를 통해 시장이 원하는 것만 가려내는’ 기술이다. 큐레이션은 이제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사용되는 의미를 넘어서서, 패션과 인터넷을 비롯해 금융·유통·여행·음악 등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트렌드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 많은 ‘선택’에 지쳐 있다. 이른바 ‘과잉 사회’에 진입한 지금, ‘더 많게’를 외쳤던 기존의 성공 전략은 무용지물이 됐다. 이 책의 저자이자 옥스퍼드대학교 브룩스 국제 센터 연구원인 마이클 바스카는 큐레이션을 통해 “덜어냄으로써 ‘더 적게’ 하고도 ‘더 좋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제4차 산업혁명까지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시장의 포화 상태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모든 것이 차고 넘치는 현대 사회에서 “양질의 콘텐츠만을 선별·조합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재창출하는 큐레이션이 미래를 준비하는 최선의 전략”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과잉 사회에서도 계속 성장할 수 있는 전략을 제시하면서 개인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또한 페이스북, 구글,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등 글로벌 비즈니스를 주도하는 기업들의 전략적 큐레이션 활용 사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빠르게 변화하는 경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 저자 마이클 바스카
저자 마이클 바스카(Michael Bhaskar)는 경제학 연구자, 작가, 저널리스트이자 디지털 퍼블리싱 콘텐츠 기업 카넬로(Canelo)의 발행인. 옥스퍼드대학교 출판부의 ‘옥스퍼드 핸드북(Oxford Handbook)’ 시리즈 프로젝트 진행을 주도하고있으며, 옥스퍼드 브룩스 국제 센터(Oxford Brookes International Centre) 연구원으로서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특별 연사로도 초빙된 바 있다. 영국문화원 ‘미래를 이끄는 젊은 창조 기업가’로 선정됐고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수여하는 ‘깁스상(Gibbs Prize)’을 받기도 했다. 테드엑스 토크(TEDx Talk)에 초청돼 ‘창의성과 정보(Creativity and Information)’라는 주제로 미디어·콘텐츠 산업의 미래에 관해 연설한 이후 글로벌 컨퍼런스 및 해외 유수 대학 심포지엄에서도 강연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inancial Times)〉〈가디언(Guardian)〉〈와이어드(Wired)〉〈데일리텔레그래프(Daily Telegraph)〉 고정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이코노미스트(Economist)〉〈뉴사이언티스트(New Scientist)〉〈내셔널트러스트(National Trust)〉〈웰컴트러스트(Wellcome Trust)〉 등의 미디어 기업을 컨설팅하고 있다. 또한〈BBC 2〉〈BBC 라디오 4〉〈NPR〉〈블룸버그TV(Bloomberg TV)〉 패널로도 참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디지털 시대 콘텐츠 산업의 미래와 해법을 다룬 《콘텐츠 머신(The Content Machine)》 이 있다.

 

■ 역자 최윤영
역자 최윤영은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영과를 졸업한 뒤 미국 〈보이스 오브아메리카(Voice of America)〉 방송국과 여러 기업체에서 번역 업무를 담당했다. 옮긴 책으로는 《역사를 바꾼 50가지 전략》 등이 있다.

 

■ 차례
들어가며_큐레이션의 시대가 온다

 

제1부_왜 덜어내야 하는가

제1장_큐레이션이 왜 필요한가
사소한 불평|너무 많은 것이 문제다|보다 큰 가치를 찾아서
제2장_오늘날의 문제는 어디서 시작됐는가
긴 호황의 시대|과잉 사회로의 진입|기술 발전과 인구 증가|200년 동안의 호황|제4차 산업혁명의 징후
제3장_과잉 사회에서 무엇이 중요한가
많이 가졌는데 왜 행복하지 않을까|덜어내는 연습이 필요한 시대|역할 과잉에 빠진 사람들|가치의 중심이 이동한다
제4장_우리는 왜 창조적인 것을 선망하는가
우리가 창조성을 바라보는 관점|창조성에 대한 신화적 믿음|재정의되는 창조성의 개념|크리에이터에서 큐레이터로

 

제2부_어떻게 덜어낼 것인가

제5장_큐레이션은 어디에서 탄생했는가
점점 영향력이 커지는 큐레이터|큐레이션의 기원|작품의 위상을 정하는 사람|디지털 시대의 큐레이션|로마 정치에서부터 뉴욕 소변기까지
제6장_큐레이션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숨겨진 가치를 드러내는 ‘선별’|애플은 큐레이션 작업 중|블록버스터의 붕괴, 넷플릭스의 등장|큐레이션 선택 모델 |선택 과잉|자동 큐레이션 방식을 선택한 아마존|알고리즘의 선택과 인간의 판단|차이를 만들어내는 ‘배치’|배치가 효과적으로 작용하는 슈퍼마켓|배치의 기술
 제7장_큐레이션은 무엇을 만드는가
큐레이션 효과|적은 것을 나은 것으로 바꾸는 ‘축소’와 ‘정제’|더 쉽게 해주는 ‘단순화’|단순함을 부여하는 ‘범주화’|그 밖의 큐레이션 효과들|큐레이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

 

제3부_어디에 적용할 것인가

제8장_세상을 큐레이션하라
큐레이션 경제 건설|명시적 큐레이션과 암시적 큐레이션|이탈리, 미래형 슈퍼마켓|와인을 큐레이션하다|커피를 큐레이션하다|큐레이션을 선호하는 소비자 트렌드
 제9장_문화를 큐레이션하라
믹싱 음악의 유행|음악을 추천하는 스포티파이와 앰비|창조의 주체는 사라지지 않는다|새로운 형태의 뉴스
제10장_인터넷을 큐레이션하라
콘텐츠 큐레이션|고강도 큐레이션과 저강도 큐레이션|페이스북 vs. 트위터|야후가 텀블러를 인수한 이유|불평등의 문제

제11장_비즈니스를 큐레이션하라
업계 최고 기업의 큐레이션 활동|벤처 투자의 큐레이션|유통과 의류 산업의 큐레이션|인도 상인들의 큐레이션|과학 분야의 큐레이션|제조와 금융 산업의 큐레이션|무엇을 원하는지 모를 때
 제12장_나 자신을 큐레이션하라
나, 큐레이터|삶을 선택하는 세대|여행을 큐레이션하다|큐레이션의 계층적 의미

 

나오며_수많은 기회가 생기고 있다

 


참고문헌
찾아보기 

도서요약

큐레이션


왜 덜어내야 하는가

과잉 사회에서 무엇이 중요한가

덜어내는 연습이 필요한 시대

미래학자 제임스 월먼(James Wallman)은 정보뿐만 아니라 소유의 과잉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언급한다. 그는 이를 두고 '과소유 증후군(suffocation)'이라고 명명한다. 과거에는 더 많이 가질수록 좋다고 생각했다. 더 많은 것에 대한 수요는 긴 호황을 촉발시킨 동인이기도 했다. 그 결과 이제 우리는 정말 많은 것을 갖게 됐다. 미국인의 소비량은 50년 전과 비교해 세 배나 늘었다. 예를 들어 1991년에는 1년에 34벌의 새 옷을 구입했다면 2007년 구입량은 67벌로 늘어났다. 영국 여성의 경우 2007년 평균적으로 58벌의 새 옷을 구입했다. 1990년부터 2004년 사이 14년 동안 전세계의 의류비 지출은 거의 두 배로 뛰었다.


물질적 과소비 풍도는 '어플루엔자(asffluenza, affluent와 influenza의 합성어로 풍요로워질수록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소비 중독 현상-옮긴이)'라는 용어로 명명되기도 했으며 '풍요에 대한 도전'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기도 했다. 또 "돈과 물질은 많을수록 좋다"는 기본 명제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접근 방식에 대해 점점 더 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Richard Easterlin)을 꼽을 수 있다. 그가 주장한 내용은 그의 이름을 본따 '이스털린의 역설'로 명명됐다. 그는 돈이 많으면 더 행복하겠지만 가진 것에 비례해서 행복이 늘어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특정 지점을 넘어서면 돈은 더 이상 행복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스털린 역설의 숨은 메커니즘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 중 한 예로 '쾌락의 쳇바퀴'라는 개념을 들 수 있다. 새로운 물건이나 환경에 너무 빠른 속도로 적응해버리기 때문에 처음 그것을 대할 때의 설렘과 환희가 금세 사그라진다는 것이다. 또 우리는 긍정적이거나 부정적 요인에 관계없이 본래의 감정 상태로 돌아오는 일종의 감정적 기저 상태를 갖고 있다. 물질의 새로움, 과잉의 소유 역시 이제는 일상 속 개념으로 더 이상 새롭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런데 물질적으로 풍부해질수록 주변 사람들 수준에 맞춰야 한다는 부담감이 증대한다. 예를 들어 작년까지만 해도 멋진 위용을 뽐냈던 폭스바겐 자동차가 이웃 주민이 벤츠를 구입하는 순간 더 이상 이전만큼 멋지게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것이 바로 경제 기배를 가속화시키고 있는 '위치재(positional goods)'의 속성이다. 위치재란 실용적 목적보다는 지위 과시용으로 구입하는 재화를 말한다. 이러한 재화는 특정 디자이너의 코트일 수도 있고, 또 교육 분야일 수도 있다.


오늘날 우리는 삶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선택의 과잉 문제에 직면해 있다. 그리고 이 같은 상황은 우리를 짓누르고 불안하게 만든다. 생존과 최저 생계가 문제인 시대는 이미 지났다. 끊임없이 새로운 욕구가 생겨나며 이를 충족하고자 한다. 보다 전문적인 용어로는 소비에 대한 '한계효용'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소비를 하면 할수록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더 많은 소비를 계속해서 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개 과잉의 문제는 기존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새로운 문제라는 점에서 '좋은 문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좋은 문제라고 해서 문제가 아니라고는 볼 수 없다. 어느 커피숍을 갈지, 어떤 앱을 다운로드 받을지 등을 결정하는 것은 보통 사소한 문제다. 극한의 어려움이 계속해서 생겨나는 시대를 살면서 사실 이런 것까지 문제라고 부르는 것은 어쩌면 비윤리적인 행위일 수도 있다. 과잉 문제가 닥친 모든 영역을 아울러 생각해보면 이제는 뭔가 새로운 방식이 필요한 상황임을 깨닫게 된다. 우선 삶과 일에 대한 접근 방식부터 변화가 필요하다. '더하는' 것이 아닌 '덜어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



어떻게 덜어낼 것인가

큐레이션은 어디에서 탄생했는가

큐레이션의 기원

큐레이션이라는 단어는 '보살피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큐라레(curare)에서 유래했다. '보살피다', '돌보다'라는 뜻 외에도 이 단어에는 정치적인 의미가 함축돼 있었다. 역사적으로 사회 기반 시설을 책임지고 있는 관리를 두고 큐레이터(curator)라 칭했다. 예를 들어 베네치아공화국의 고위 관료는 프로큐레이터(procurator)라고 불렸다. 보다 친숙한 용례를 살펴보면 교회에서 사용된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목사가 신도를 "영적으로 큐레이션한다"는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이는 기독교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여기서는 라틴어 본래 뜻인 '보살피다'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어느 쪽이든 큐레이터는 많은 지식을 갖춘, 어려운 분야에 통달한 인물을 의미했다.


'보살피다'는 의미는 박물관 및 미술관 큐레이터의 기원을 살펴보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16세기와 17세기 당시 아주 부유한 수집가들은 이른바 '호기심의 방' 또는 '분더카머(Wunderkammer)'라고 불리는 방을 만들어 과학기기에서부터 고대 유물 조각에 이르기까지 온갖 진귀한 것들을 한데 모아두곤 했다. 그리고 그 수집품이 훼손되거나 도난당하지 않도록 돌보는 것은 하나의 직업이 됐다.


개인의 수집 규모가 커지면서 보관이 어려워지자 이들을 한데 모아놓기 시작한 것이 영국 박물관 설립의 기초가 됐다. 설립 초기에는 출입 절차도 명확하지 않았다. 직원들은 아무 때고 방문객의 입장을 허락했다. 전문적인 운영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수집품의 규모와 다양성 덕분에 영국 박물관은 점차 새로운 형태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19세기로 넘어오면서 미술품 전문가는 중간 계층으로 그 신분이 상승했고, 영국 박물관이나 루브르 박물관 등은 문화의 발상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두 곳 모두 대규모의 수집품을 일반 대중에게 어떤 식으로 보여줄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동시에 각국은 마치 경쟁을 벌이듯 박물관의 규모를 늘리기 위해 노력했다. 박물관은 국가의 힘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상징적인 곳이기 때문이었다.


20세기에 진입할 무렵, 독일 역시 이 경쟁 구도에 합류했다. 독일 박물관계의 대표적인 인물이자 베를린의 '박물관 섬(Museum Insel)' 건립을 주도한 빌헬름 폰 보데(Wilhelm von Bode)는 새로운 개념의 조직적 정리를 추구함으로써 큐레이션의 개념에 획기적인 변화를 몰고 왔다. 또 미국에서도 몇몇 개인의 수집품이 바탕이 되어 다수의 박물관 탄생으로 이어졌다. 미국의 다수 박물관의 수집품 규모는 설립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구세계 즉 유럽 및 아시아, 아프리카를 필적하다 못해 능가할 정도로 커졌다.


이 가운데 큐레이션은 또 다른 개념으로 파생됐다. 수집품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이에 대한 보관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방대한 양의 의약품을 수집한 헨리 웰컴(Henry Welcome)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제약 관련 물품 수집에 천착한 그의 창고는 계속해서 넘쳐나기만 했고, 결국 능력 있는 큐레이터의 역할이 시급해졌다. 이후 박물관에서 주로 사용되던 큐레이션의 개념은 미술관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큐레이션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선택 과잉

컬럼비아대학교의 쉬나 아이옌거(Sheena Iyenger) 교수와 스탠퍼드대학교의 마크 레퍼(Mark Lepper) 교수는 빵에 발라먹는 잼을 선택하는 실험을 했다. 아이옌거 교수는 부유층 밀집 지역 멘로파크의 대형 슈퍼마켓 드레가(Draeger's)를 방문했다. 프로이센 혈통의 이민자가 설립한 드레가는 다양한 제품을 구비해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혔다는 데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250종의 머스터드, 75가지 유형의 올리브유, 300여 가지 종류의 잼, 3,000권이 넘는 요리책, 2만여 종류의 와인을 모두 갖춰놓고 있었다.


아이옌거는 매장 중심부에 테이블 2개를 설치하고, 과연 선택권이 많아지면 고객의 의욕이 저하되는지에 대한 실험을 진행했다. 한 테이블에는 6개의 잼을, 또 다른 테이블에는 24개를 시식해볼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24종류의 잼 모두 매장에서 구입 가능하도록 했다. 실험 결과 더 많은 종류의 잼을 시식할 수 있는 테이블에 더 많은 사람이 몰렸다. 24종류의 시식 테이블에는 지나가던 사람의 60%가 멈춰선 반면 6종류의 시식 테이블에는 40%가 발길을 멈췄다. 하지만 시식 후 구매 행동은 완전히 달랐다. 6종류의 테이블에서는 시식 고객의 30%가 잼을 구매했지만 24종류의 테이블에서는 그 수치가 3%로 급감했다.


더 많은 종류의 잼이 진열된 테이블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렸지만, 왜 판매량은 오히려 적었던 것일까? 광범위한 선택 범위는 우리를 압도해 버린다. 올바른 선택에 대한 책임은 쉽사리 짐으로 느껴지곤 한다. 선택의 순간에 갈등하고 망설이는 것은 물론이다. 선택의 종류가 너무 많으면 결국 하나의 선택으로 이어진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감정 뒤에 작동하는 한 가지 원리가 바로 '손실회피'다. 우리는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을 더욱 강하게 느낀다. 무엇이든 선택하고 나면, 곧바른 손실의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더 나은 선택을 하지 않음으로 인해 생기는 손실의 가능성이다. 그래서 우리는 잘못된 선택보다는 차라리 아무런 선택도 하지 않는 편을 택한다.


선택은 곧 거래다. 모든 선택에는 기회비용이 따른다. 예를 들어 내가 휴대폰 X를 선택했는데 자꾸 고장이 난다고 가정해보자. 곧바로 나는 선택 당시를 떠올리며 '만약 다른 휴대폰을 선택했더라면 이 정도로 실망하지는 않았을 텐데'하는 생각을 할 것이다. 이 같은 후회의 감정은 선택 후에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선택하기도 전에 우리는 다른 선택을 했을 때 생겨날 수도 있을 후회의 감정을 예상하며 미리 후회한다. 이러한 앞선 후회는 선택을 방해하며 선택하고자 하는 우리의 욕구를 저해한다.


이 같은 상황은 우리의 업무나 일상까지 파고든다. 하나하나 살펴보며 정리해야 할 수십, 수백, 수천 통의 이메일, 실천 가능성이 전혀 없는 해야 할 일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비단 잼을 선택하는 것뿐만 아니라 보험, 전기, 인터넷 업체, 아이들 교육에 이르기까지 엄청나게 많은 선택의 폭은 매일같이 우리를 압도하고 있다.


이제 큐레이션의 역할은 더욱 명확해질 것이다. 서구 시장은 이미 선택의 포화 상태에 직면해 있다. 데이트 종류에서부터 휴대폰, 잼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를 가리지 않는다. 기존의 경제학에서는 이처럼 풍부한 상태를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것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특정 수준을 넘어서게 되면 다양한 선택의 범위는 긍정적인 기능보다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특정 제품에 대해 중요한 정보를 미리 선택한 경우 보다 효과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요컨대 오늘날 잼을 구입한다는 것은 큐레이션이 완료된 잼을 구입한다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보통 제약은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하지만 오늘날처럼 선택의 범위가 넓은 사회에서는 이 제약이 상당한 도움이 되고 심지어 우리를 해방시켜주기까지 한다. 이 같은 제약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큐레이션이다. 큐레이션은 우리를 아주 생산적인 방식으로 제약한다. 크고 작은 선택의 독재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준다. 또 우리로 하여금 중요한 문제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준다. 중요하지 않고 하찮은 것은 모두 덜어낸 뒤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선택만을 남겨둔다. 선택 범위가 큐레이션 과정을 거치고 나면 우리는 훨씬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시간이 부족한 현대인에게 큐레이션은 시간을 절약해주는 역할을 한다.


어디에 적용할 것인가

인터넷을 큐레이션하라

콘텐츠 큐레이션

큐레이션이 왜 인터넷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됐는지 파악하는 것은 아주 쉽다. 오늘날 우리는 다양한 과잉 현상에 마주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인터넷은 폭발적인 데이터와 정보의 양, 연결성, 속도 등의 측면에서 단연 압도적이다.


단지 양의 문제가 아니다. 보다 큰 문제는 이른바 '정보의 평준화'다. 미국 대통령이 트윗을 남기면 그 형태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남기는 트윗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이것이 온라인 트윗이 아닌 오프라인 연설일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미국 대통령이 하는 연설은 일반 사람들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큰 무게와 영향력을 지닌다. 물론 트윗 역시 그 효과는 다를 수 있지만 대통령의 것이든 일반인의 것이든 트윗이라는 본질 자체는 같다. 따라서 온라인 큐레이션은 단지 정보의 양을 줄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양질의 정보를 발굴하는 것이 목적이 돼야 한다.


큐레이터로서 인터넷의 역할은 매우 다면적이다. 이때 각 개인과 서비스, 관련 프로토콜은 모두 각자의 역할이 있다. 한 단계 위에서 생각해보면 큐레이션과 관련된 새로운 방식을 고안해낼 경우 이는 곧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며 하나의 기업으로 발전한다.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스가 산업적인 규모로 큐레이션 영역을 장악하는 것이다. 각종 이미지와 동영상을 공유함으로써 일반 시민이 뉴 미디어를 지배하게 된 것과 같은 이치다.


대표적인 업체로 스위스 취리히연방공과대학교에서 작은 스타트업으로 출발한 페이퍼리(Paper. li)를 들 수 있다. 하루에 이들이 처리하는 웹사이트는 무려 1억 4,400만 개에 이른다. 페이퍼리는 자체적으로 개발한 정교한 선별 기술을 이용해 사용자들이 관심 있는 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요컨대 페이퍼리는 이른바 '콘텐츠 큐레이션'에 집중하고 있는 셈이다. 전반적인 작동 원리는 다음과 같다.


-콘텐츠 검색 : 신문, 트위터, 이메일, 뉴스레터, 피드리더(뉴스피드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수집해 모아주는 소프트웨어-옮긴이), 키워드 모니터링, 전문 매체, 유명 소설 미디어 등

-콘텐츠 선별 및 정렬 : 이 과정에는 대개 콘텐츠 평가 및 발췌, 맥락화, 범주화 등이 포함된다.

-콘텐츠 공유 :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눈다.


콘텐츠 큐레이션에서 논의의 중심은 결국 큐레이션을 마케팅 활동에 얼마나 잘 이용할 수 있느냐다. 마케터는 콘텐츠 큐레이션을 통해 새로운 고객 확보 및 신뢰 구축이 가능하며 기존 고객과의 보다 친밀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뿐만 아니라 검색 엔진을 최적화할 수 있고 재방문 메트릭스 기능 또한 향상된다고 여긴다.


마케팅 영역의 큐레이션은 구매자의 행동 패턴이 변했음을 인정한다. 이들은 더 이상 모든 고객에 대한 천편일률적인 메시지 전송을 마케팅 활동이라 역지 않는다. 이전에는 제품에 대한 정보도 거의 없었고 제품의 종류 역시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구매자의 안목은 점점 높아졌고 더 이상 대충 만든 광고 문구를 원하지 않는다. 높은 가치를 지닌 콘텐츠를 원한다.


마케팅 방식의 또 한 가지 변화는 판매 방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전에는 쉽고 간단한 판매 방식을 취했다면 이제는 브랜드 전문성을 구축하고 고객 보유율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단순히 고객을 선도하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사고 리더십(though leadership)을 확립하는 것이다. 하나의 서비스로서의 마케팅은 매우 유용하고 흥미로운 분야다. 이는 큐레이션 전문성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나 자신을 큐레이션하라

나, 큐레이터

대부분의 인류 역사에서 개인의 정체성은 원한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저 강제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었다. 성장 환경, 성, 인종, 계층 등의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범위, 나의 모습,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인식까지 결정해버렸다. 소작농, 기사, 귀부인, 말끔한 은행원, 광부 심지어는 폐결핵에 걸린 시인까지 이들 모두는 겉모습만으로도 쉽게 그 정체성이 드러나는 인물에 속했다.


하지만 지난 50년 동안 이 같은 정체성의 대물림 시스템은 급속도로 약화됐다.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접근 방식에는 엄청난 질적 변화가 있었다. 과거 우리의 정체성이 강제적으로 주어진 것이었다면 이제는 내 취향대로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우리 스스로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에 대해 소설가 닐 스티븐슨(Neil Stephenson)은 이렇게 말했다.


"과거 우리의 문화는 거의 유전적으로 대물림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푸드코트나 쇼핑몰에서 대상을 고르듯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


다소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제는 정체성을 큐레이션하는 시대인 것이다. 정체성의 큐레이션은 두 단계로 이뤄진다.


첫째, 우리는 외부에 보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큐레이션한다. 단순히 옷차림이나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한 부분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각 영역의 풍요롭고 다채로운 요소 가운데 자신이 원하는 부분만 도려내 만든, 하나의 미묘하고 암묵적인 신호를 의미한다.


둘째, 우리는 경험을 큐레이션한다. 늘 직선 형태의 예측 가능한 삶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대신 미술 전시회, 이전에는 결코 경험해보지 못한 신나고 놀라운 일들,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각종 경험을 즐기고자 한다. 이 같은 특별한 경험을 지속하면 자연히 우리의 정체성도 영향을 받는다.


정체성의 큐레이션, 다소 허세 섞인 말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이미 이 과정을 경험했다. 다양성, 참신함, 차별적인 새로움을 향한 열망으로 많은 사람들은 다양한 경험을 즐겼다. 미술 관람이든, 주말 모험이든 그 경험의 수준이 높고 낮은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요컨대 외부 및 내부 정체성의 큐레이션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이는 이용자의 의지 없이는 결코 실현될 수 없다. 즉, 이용자가 직접 자신의 음악, 사진 등을 공유하거나 큐레이션하고자 하는 자발적인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모델이 작동하려면 수요가 있어야 한다. 그 수요가 때로 지나치게 자신만의 취향을 강조한 것이라 해도 이제 이들의 큐레이션 활동은 점차 그 영향력이 증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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