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와, 사회적경제는 처음이지?
 
지은이 : 주수원
출판사 : 이상북스
출판일 : 2021년 09월




  • 승자독식 자본주의는 오늘날 극심한 빈부격차를 만들었습니다. 그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사회적경제입니다. 실업, 빈곤 등 경제사회 문제까지 극복할 수 있는 포용적 성장을 이야기합니다.


    어서 와, 사회적경제는 처음이지?


    대중문화를 통해 스며들기

    ‘사회적경제’라는 말에서 언뜻 사회주의 경제를 떠올리며 경계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적경제는 자유시장 경제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자유시장 경제의 단점을 ‘사회’를 통해 보완하고자 할 뿐이죠.


    그런데 이렇게 얘기하면 또 경제와 사회는 전혀 다른 속성을 갖는데 어떻게 연결되느냐는 물음이 돌아오곤 합니다. 경제는 돈을 많이 버는 데 목적을 두지만, ‘사회’라고 하면 한 개인의 이익만이 아닌 전체의 이익, 즉 공익을 목적으로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또 경제활동은 기본적으로 개개인이 중심이 된다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기도 합니다.


    이 책은 그런 오해를 풀기 위해 ‘사회적경제’가 무엇인지 최대한 쉽게 잘 와 닿을 수 있도록 영화와 TV 드라마, 소설 등 대중문화와 엮어 이야기를 풀어보았습니다.


    주요 특성

    이 책에서는 2017년 10월, 일자리위원회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보고서 <사회적경제 활성화 방안>에 나와 있는 다음 정의를 토대로 설명해나가려고 합니다.


    ‘구성원 참여’를 바탕으로 ‘국가‧시장 경계’에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경제활동’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사회적경제’라고 했을 때 사회주의 경제로 오해받기도 하고 사회와 경제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 의문을 품는 이들에게 정부 문서가 설득력을 가지기 때문이죠. 또한 여러 차례 ‘사회적경제’ 관련 강의를 진행하며 살펴보니 많은 이들이 가장 명확하게 이해하는 정의였고요.


    이 책의 목적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생소한 ‘사회적경제’에 대해 영화와 TV 드라마를 끌어와 조금 더 쉽고 친근하게 설명하는 데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성인뿐만 아니라 청소년들도 함께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사회적경제를 접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또 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사회적경제의 저변이 넓어질 것입니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사회적경제에 대해 알려주는 일은 중요하고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성원의 참여를 바탕으로

    사회적경제의 기반이 되는 마을 공동체: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사회적경제의 기반은 지역이며, 지역의 공동체적 속성을 강조하기 위해 ‘마을’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마을을 기반으로 하여 공동체 방식으로 경제활동을 하기에 마을경제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마을을 기반으로 공동체 방식으로 교육활동을 한다면? 마을교육공동체가 된다.


    기존의 재개발(젠트리피케이션을 유발하는 기본의 재개발을 ‘둥지 내몰림 현상’이라고도 하는데, 도심 인근의 낙후지역이 활성화되면서 외부인과 돈이 유입되고 임대료 상승 등으로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이다)과 다르게 마을 기반으로 낙후된 주택을 수리해 원래 살던 주민이 계속 머무를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도시재생이라고 한다. 마을을 기반으로 주민들이 하는 정치활동은 주민자치. 이렇듯 바야흐로 마을의 시대다.


    세계화의 흐름 속에 잊혀졌던 마을이 2000년대 들어서 다시금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스페인의 몬드라곤, 캐나다 퀘백주의 크고 작은 여러 협동조합과 같은 지역 단위 경제 공동체의 회복력에 주목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역 기반 공동체 운동의 흐름을 바탕으로 2010년부터 당시 행정안전부의 ‘자립형 지역 공동체 사업’ ‘지역 공동체 일자리 사업’ ‘마을기업’ 정책이 시행되었다. 지역의 다양한 자원을 활용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복지를 제공하는 등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지역 공동체를 회복하자는 움직임이었다.


    편견/폐쇄/온정/오지랖 복합적 마을

    그런데 마을이 참 잘 와닿지 않는다. 아파트뿐만 아니라 다세대주택에 살면서도 옆집에 누가 사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고독사를 한 달이 지나고서야 발견하게 되는 이유다. 각각의 집들이 고립된 섬처럼 존재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공효진과 강하늘 주연의 TV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2019)은 마을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값진 교재라고 할 수 있다. 이 드라마는 미혼모 오동백(공효진 분)이 어촌 옹산으로 이사 와 파출소 순경 황용식(강하늘 분)과 만나 로맨스를 키우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두고 연쇄살인범 까불이를 동네 사람들이 함께 잡는 스릴러를 혼합하고 있다.


    재미난 점은 옹산이 마냥 아름답게만 그려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드라마 초반에는 미혼모 오동백에 대한 편견과 차별, 배제가 가득한 폐쇄된 그들만의 공동체로 나온다. 하지만 동백이는 서서히 옹산에 스며들고, 마지막 회에 이르러서는 동백의 어머니 신장수술을 위해 모두가 나서서 도와줄 정도가 된다. 앞서 마을 주민들이 동백이에 대해 시시콜콜 트집 잡는 오지랖을 부렸다면 나중에는 마음을 열고서 도움을 주는 오지랖을 부린다. 이 변화의 과정은 동백이의 마지막 내레이션에 잘 나와 있다.


    내 인생은 모래밭 위 사과나무 같았다.

    파도는 쉬지 않고 덤벼드는데,

    발밑에 움켜쥘 흙도,

    팔을 뻗어 기댈 나무 한 그루가 없었다.


    이제 내 옆에 사람들이 돋아나고,

    그들과 뿌리를 섞었을 뿐인데,

    이토록 발밑이 단단해지다니.


    이제야 곁에서 항상 꿈틀댔을

    바닷바람, 모래알,

    그리고 눈물 나게 예쁜 하늘이 보였다.

    사람이 사람에게 기적이 될 수 있을까.


    마을 공통체를 통한 경제 효과

    이처럼 마을 공동체는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현재의 흐름 역시 정부가 모든 것을 다 하기보다는 다양한 사회문제를 지역 주민들이 공동의 마을 자원을 바탕으로 풀어가는 쪽으로 가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지방자치단체마다 다양한 마을공동체사업을 펼쳤다.


    이러한 마을활동은 어떤 경제적 효과를 낳을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의 강세진 박사는 1천만 원을 지원하면 약 5600만 원의 사회‧경제적 효과가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강 박사에 따르면, 마을 공동체를 이루는 요소(주민, 커뮤니티 공간, 마을 협력체, 내부‧외부 업체)가 상호 연결되면서 마을 관계망이 형성된다. 이 관계망 속에서 주민들은 마을살이의 제공자 겸 참여자가 되고, 이들 사이에 우호적이거나 비경제적인 거래가 이루어진다. 마을 내부‧외부 업체의 매출 증대, 주민소득 증대, 주민들이 마을활동에 참여하는 시간 등을 포함할 때, 처음 투입된 자원 대비 5.6배의 효과를 거두게 된다는 것이다.


    마을 공동체는 이처럼 다양한 측면의 경제 효과를 거둘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기업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마을 공동체 활동이 규모 있고 체계화되면서 각종 경제 행위와 결합되기 때문이다. 또한 마을공동사업비는 초기 활동을 촉진하는 마중물 차원의 금액이므로, 시간이 지나면서 자립경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일과시간 이후의 만남이나 자원봉사만으로는 꾸려가기 어려운 규모가 되어 사업을 기획하고 관리할 상근자가 필요하게 된다. 이렇듯 관계를 기반으로 시작한 마을활동은 마을의 소비 및 생산과 결합되며, 지역사회가 운영하는 경제 공동체로서 사회적경제와 연결된다. 마을카페, 마을식당 등이다.


    또한 마을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사회적경제가 등장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인구가 적어 키즈카페가 들어오지 않은 마을에서 부모들이 돈을 모아 공동으로 운영하는 키즈카페를 만들어 함께 돌봄을 하는 방식이다.


    대부분의 사회적경제도 마을 주민들이 ‘우리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경제적 해법을 찾는 과정에서 시작되었기에 마을 공동체와 사회적경제의 흐름은 자연스럽다. 나와 같은 필요를 느끼는 이들을 멀리서가 아니라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주변, 즉 마을에서 찾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회적경제를 통해 마을 안의 부족한 사회서비스나 복지사각지대 문제를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풀어갈 수 있다.



    국가와 시장의 경계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빈부 격차의 고착: 영화 〈기생충〉과 〈나, 다니엘 블레이크〉

    승승장구할 것 같았던 신자유주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위기를 맞았다. 1929년의 세계 대공황처럼 시작은 미국이었다. 금융위기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론(subprime mortgage)을 중심으로 한 부실채권 급증 및 금융 경색, 금융 시스템 붕괴의 위기였다.


    모기지론은 주택을 담보로 금융회사에서 대출을 받은 이후 일정 기간 정기적으로 원금과 이자를 나누어 상환하는 주택담보 대출 상품이다. ‘서브프라임’은 ‘최고 아래 등급’이라는 뜻이다. 두 개의 단어를 합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은 금융시장 담보 대출에서 심사에 통과하지 못하거나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을 위한 대출을 뜻한다.


    2003년까지만 해도 은행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을 잘 취급하지 않았다. 회수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택가격이 지속 상승하여 주택을 장만하는 것이 재테크 수단으로 부각되면서 저소득층의 주택담보대출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 이에 따라 예금은행들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을 늘리기 시작했다. 2000년 560억 달러에 불과하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은 2005년 5080억 달러로 늘었고 2006년 말 전체 주택담보대출 중 13%에 이르렀다.


    예금은행들이 서브프라임 대출을 크게 늘릴 수 있었던 이유는 저소득층의 주택담보대출 수요뿐만 아니라 새로운 금융 수단의 개발도 있었다. 바로 자산담보부증권(Collareralized Debt Obli-gation)이다. 먼저 차입자의 채무불이행 위험을 은행이 부담하지 않고 이 채권을 주택저당 전문회사들에게 판매한다. 이 회사들은 이를 담보로 주택저당증권(RMBS)을 발행하고, 다시 투자은행이 이를 사들여 그 속에 편입되어 있는 저당채권들을 합치고 재분류해 자산담보부증권이라는 또 다른 파생 금융상품을 만든다. 그리고 신용등급을 매겨 외국은행 등 기관투자가 등에게 판매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은 75%가 주택저당증권에 편입되었고, 투자은행 자산담보부증권 편입자산의 45%를 차지했다. 구조가 복잡하지만 간단히 말해 저소득층이 주택을 사기 위해 은행에서 빌린 돈에 대한 은행의 채권이 이리저리 변형되어 여러 금융기관에 물리게 되었다는 말이다. 게다가 고위험 상품이지만 고수익 상품이기도 해서 해외의 기관투자가들이 앞다퉈 이를 사들였다.


    문제는 2006년 이후 미국의 주택가격 상승세가 둔화되는 한편 금리까지 치솟으며 저소득층들이 빚 갚기를 포기하며 시작되었다. 2005년 9월 연체율 10.8%였던 것이 2007년 9월 16.3%로 치솟았다. 당연히 관련된 파생상품에 투자한 금융기관들은 대규모 손실을 입게 되었다. 금융시장 시스템의 안정성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면 투자는 줄어들고 이는 전 세계 금융시장에 타격을 준다.


    1929년 세계 대공황이 공장에서 활발한 생산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임금은 그만큼 상승하지 않아 소비가 이뤄지지 않고 한순간 생산과 소비의 선순환이 무너진 것이라면, 2008년 금융위기는 실제 재화와 서비스는 활발히 교환되고 있었지만 앞서 언급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에서 파생된 금융상품으로부터 시작된 금융경제의 위기가 실물경제에도 영향을 미친 결과였다. 이 과정에서 취약한 금융기관과 기업, 가계뿐만 아니라 국가마저 위기에 빠져 세계 경제는 침체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전 세계 경제학자들은 다시금 고민에 빠졌다. 1980년대 시장지상주의 경제학자 하이에크의 경제사상을 바탕으로 해 대처와 레이건이 시작한 신자유주의정책이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에는 주택 투자를 통해 부자가 되고 싶었던 저소득층의 욕망과 이를 부추기며 무리한 대출을 해준 은행, 이를 다시 복잡다단한 상품으로 변형해 고위험 고수익을 노린 투자자들의 욕망이 맞물려 있었다. 또한 이 욕망의 고리들에는 고삐 풀린 시장이 있었다.


    이 지점에서 영화 <기생충>을 언급하고 싶다. <기생충>은 모두가 알다시피 세계 3대 영화제인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뿐만 아니라 일본 아카데미상 외국작품상, 영국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과 각본상, 크리틱스 초이스 외국어영화상과 감독상, 그리고 미국 아카데미에서 작품·감독·국제장편영화·각본의 네 개 부분에서 상을 받을 만큼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작품이다.


    영화는 전원 백수로 살길 막막하지만 사이는 좋은 기택(송강호 분), 충숙(장혜진 분), 기우(최우식 분), 기정(박소담 분) 가족과 글로벌 IT기업 CEO인 박 사장(이선균 분), 연교(조여정 분) 가족, 그리고 숨겨진 또 다른 가족, 이렇게 세 가족의 이야기다. 기우는 명문대생 친구가 연결해주어 박 사장의 집에 고액 과외 자리를 얻게 된다. 졸업증명서를 위조하고, 어수룩하고 순진한 부자를 속여 가족들이 한 명씩 사기 취업을 하는 전반부는 경쾌한 리듬으로 도둑질을 모의하고 진행해가는 케이퍼 무비(caper movie)와도 같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집 안에 숨겨진 또 하나의 가족과 만나게 되는 지하실로 내려가며 영화는 끝없이 추락한다. 캐릭터 쇼가 펼쳐지며 웃음 가득했던 전반부가 끝나고 봉준호 감독의 그 어떤 영화보다 우울한 결말을 향해 침잠해간다. 특히나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면 한없이 마음이 무거워진다.


    기택의 가족은 박 사장의 가족과 ‘냄새’로 구분된다. 처음에는 기정의 대사처럼 반지하 방의 눅눅한 냄새로 생각되지만 곧이어 이선균이 선을 확장해버린다. “왜 지하철 타면 나는 냄새 있잖아”라고. 그 대사를 들으며 슬그머니 내 옷의 냄새를 맡아보았다. 고백하건대 지인과 서울 지하철 1호선의 냄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었다. 이 냄새란 물리적인 것만이 아니라 오랜 시간 형성된 타고난 분위기일 수도 있다. 일찍이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그의 저서《구별짓기》(La distinction: Critique sociale du jugement, 새물결)를 통해 사회적 위치, 교육환경, 계급 위상에 따라 후천적으로 길러진 성향으로서 ‘아비투스’(Habitus)를 통해 계급이 나뉜다고 했다.


    더 무서운 건 4:4 부자와 빈자의 대결 구도로 보였던 영화가 점차 빈자들 간의 대결로 이어지고, 부자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빈자들의 사연을 알 길도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 <기생충>에서 부자는 질문을 하지 않을뿐더러 “부인을 사랑하십니까?”라는 조금이라도 사적인 질문이 들어오면 ‘선을 넘지 말라’고 말한다. 박 사장은 죽어가는 순간까지 기택이 왜 자신을 칼로 찔렀는지 알 도리가 없다. 그가 한 잘못이라곤 냄새로 뒷담화를 한 것뿐이기 때문이다. <기생충>에서 박 사장과 연교는 기택 가족에게 표정과 뒷담화로 모멸감을 줬을지언정 직접적 해를 가하지 않는다.


    암울한 건 비단 이 결론이 영화적 상상력만이 아니라 현재의 현실이라는 점이다.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가 《21세기 자본》(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 글항아리)에서 여러 통계 자료를 통해 밝혔듯이, 지난 200년 동안 부와 소득의 불평등은 점점 시화되어 ‘세습’ 자본주의가 되어가고 있다. 이 영화가 세계적으로 찬사를 받은 것도 전 인류의 이런 공통 문제를 잘 건드렸기 때문이다.


    기택네 가족은 모두 백수지만 결코 무능하지 않았다. 비록 경력을 위조해 취업을 하지만 그들은 그 자리에서 척척 유능하게 일을 해낸다. 하지만 학위가 없고, 자격이 없으며, 부자들과의 연계고리가 없었기에 능력이 있어도 그 자리에 들어올 수가 없었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경제활동

    농업의 치유력을 증명하는 사회적 농업: 영화 〈리틀 포레스트〉

    <리틀 포레스트>는 2018년에 개봉한 잔잔한 감성의 영하로 자극적 소재의 영화들 사이에서도 150만 명의 선택을 받았고, 영화 평가 기준 10점 만점에서 9.04를 받았다. 이 영화는 일본의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동명의 만화가 원작이며, 일본에서도 1,2편으로 나뉘어 영화화되었다.


    혜원(김태리 분)은 쫓기듯 고향으로 내려온다. 임용고시를 준비했지만 떨어지고 남자친구만 합격한다. 시험과 연애, 취업 그 무엇 하나 쉽지 않아 지쳐가던 어느 날 차갑게 식은 편의점 도시락에 마음이 무너진다. 그렇게 따뜻한 밥 한 끼가 그리워 어릴 적 살던 시골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이어지는 영화의 이야기는 무척 단순하다. 고향 집 친구들과 함께 직접 키운 농작물로 한 끼 한 끼를 만들어 먹으며 겨울에서 시작해 치유의 사계절을 보낸다. 제철 음식으로 나오는 배추전, 꽃 파스타, 아카시아꽃 튀김, 막걸리, 떡볶이, 양배추 빈대떡(오코노미야키), 감자빵 등은 요리를 잘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한 번쯤 시도해보고픈 욕구를 불러일으킬 만큼 눈에도 예쁘고 맛있어도 보였다.


    농촌에 대한 도시인들의 판타지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각박한 도시생활에 힘들고 지쳤을 때 떠나온 고향 집을 떠올리는 건 자연스럽다. 나 역시 전남 장흥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광주로 이사한 다음에도 방학이면 형과 함께 장흥의 외가에 가곤 했다. 엄한 부모님과 달리 외할머니는 손주들에게 한없이 너그럽고 자상했다. 그래서 더욱 어릴 적 추억이 있는 그곳에서 며칠을 보내고 나면 집에 가기 싫어질 정도였다. 지금도 힘들고 지칠 때면 그 시절의 기억을 되새겨본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기에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비롯해 농촌에서의 생활을 다룬 여러 TV예능 프로그램이 한동안 인기를 끌었다고 본다. 게다가 직접 귀농·귀촌을 하는 인구도 늘고 있다. 하지만 농촌 정착이 생각만큼 녹록하지는 않다. 농사를 지어본 적 없는 도시인으로서는 농사를 지으며 시행착오가 많을 수밖에 없고, 농업이 아닌 다른 일로 생계를 꾸리더라도 그 지역 원주민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여들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귀농‧귀촌 청년들을 위한 협동조합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는 ‘협동조합 젊은협업농장’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충청남도 홍성군 홍동면에 위치한 풀무학교의 전공부 교사였던 정민철 이사는 제자들과 의기투합해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2011년 장곡면에 있는 비닐하우스 한 동을 빌려 채소를 키우고 ‘세 남자가 사랑한 쌈채소’라는 이름을 붙여 판매했다. 그리고 2013년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자 ‘젊은협업농장’이라는 이름의 협동조합으로 진화했다. 현재 젊은협업농장의 조합원은 50여명이며 하우스는 총 여덟 동이다.


    젊은협업농장 법인은 규모를 계속 키우기보다는 인큐베이팅 역할을 하면서 새로운 협동조합의 탄생을 돕는다. 현재까지 세 개의 협동조합이 새로 만들어졌으며, 그 중 협동조합 행복농장은 정신장애인들이 주체가 되어 농사를 짓는 협동조합이다. 하나의 거대한 조직으로 만들기보다는 독립시키고 분화시켜 여러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농장을 독립해 나가도 네트워크를 형성해 지속적 협력을 꾀한다.


    무엇보다 젊은협업농장은 귀농·귀촌을 하려는 청년들을 위해 농업학교 기능을 하고 있다. 농업은 물론 농촌생활이 자신에게 잘 맞는지 알아보는 숙려기간과 인턴기간을 제공한다. 지자체나 농림부에서도 귀농·귀촌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나 정보 전달이나 이론 강의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반해 젊은협업농장에서는 청년들이 직접 1년 정도 농사를 지으며 귀농·귀촌을 결정하도록 안내한다.


    이렇게 충분한 시간을 들여 농촌과 농업을 경험하고 나면 훨씬 더 실질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 또 농촌에 남고 싶지만 농업이 맞지 않는 이들에게는 마을에서 살아갈 수 있는 다른 일을 모색하도록 이끈다. 마을학교 강사 자리를 만들어주고, 각 협동조합에서 사진 촬영할 일이 생기면 사진 찍는 일을 하고 싶어하던 청년에게 맡긴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경험을 기반으로 함께 배우고, 가르치고, 독립하고, 연대해간다.


    최근에는 청년만이 아니라 청소년을 대상으로 농업학교를 열고 있다. 경기도 성남에 있는 이우학교와 연결해 2박 3일 동안 농업학교를 진행한다. 젊은협업농장만이 아니라 지역의 여덟 개 농장을 연결해 학생들 열 명씩을 보낸다. 짧은 기간이지만 농업에 대한 의미 있는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사전에 농가에서 교육을 진행하고, 지금 청소년들에게 부족한 공동노동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협동심을 교과서에서 배울 뿐 직접 경험할 기회가 별로 없었던 청소년들에게 협동심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열 명이 한 동의 하우스 작업을 끝내고 나면 서로에 대한 연대심도 커지고 만족감도 높아진다. 교실에서는 조용했던 친구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며 자부심이 커지기도 한다. 3년 동안 이렇게 농업학교를 경험하고 나면 애착도 커져 마지막에는 더 이상 올 수 없다고 우는 학생도 있다고 한다.


    젊은 협업농장의 정민철 대표는 청소년과 청년을 위한 농촌과 농업의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도시에서 살다보면 한 번은 낙오되는 순간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서울역 앞에 섰는데, 주머니에 달랑 2만 원만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이곳을 떠올려볼 수 있을 거예요. 70-80년대 농촌 인구가 50%였다면 지금은 8% 정도죠. 지금 자라나는 청소년과 청년에게는 고향으로서 농촌이 없는 셈입니다. 좌절에 빠졌을 때 여기 오면 함께 농사짓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며칠, 몇 개월 그렇게 지내다 보면 몸과 마음이 조금씩 회복됩니다. 그렇게 이곳을 거쳐 간 친구들에게 위험 사회에서 안전지대, 완충지대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봐요.


    <리틀 포레스트>에서 혜원의 엄마가 쓴 편지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혜원이가 힘들 때마다 이곳의 흙냄새와 바람과 햇볕을 기억한다면, 언제든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거라는 걸 엄마는 믿어.


    사회적경제 방식의 농장은 단순히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만이 아니라 청소년과 청년을 위한 농업 교육과 쉼터의 역할까지 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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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