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으로 읽는 미생물 세계사
 
지은이 : 이시 히로유키(역:서수지)
출판사 : 사람과나무사이
출판일 : 2023년 03월




  • 가장 진화한 인간과 가장 원시적인 미생물, 오늘도 생존을 건 끊임없는 사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이 관계를 적대적인 대결 관점으로 보지 않고, 타협과 공존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한 권으로 읽는 미생물 세계사


    에볼라 출혈열과 뎅기열, 갑작스런 유행의 충격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흉악한 바이러스, 에볼라 출혈열과의 새로운 싸움

    강력한 감염력과 90퍼센트에 이르는 사망률

    2014년 서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에볼라 출혈열 대유행은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겨 주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어난 원전 사고 당시 뉴스를 틀 때마다 등장한 방호복 차림의 의료진 모습에 가슴 졸여야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흉악한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상황에 대해 전문가들은 다양한 경고의 목소리를 냈다. 그럼에도 원전 사고와 마찬가지로 ‘안전 불감증’에 걸려 대책 마련에 소홀하다 허를 찔렸다. 급기야 유행이 시작된 서아프리카 봉쇄에 실패하고 대륙을 넘어 뉴욕에까지 불똥이 튀었다. 에볼라 출혈열의 감염력은 강력했다. 장기가 녹아 온몸에서 피를 쏟아내며 사망할 정도로 비참한 증상을 보이는 이 감염병의 사망률은 무려 90퍼센트에 달했다.


    운 좋게 회복되어도 시력이나 청력을 상실하거나 뇌에 장애가 남는 등 후유증이 심각했다. 다양한 감염병과 싸워온 인류와 최강의 감염병이 새로운 싸움을 시작했다.


    뾰족한 치료법이 없어 감염자와 발병 지역을 격리하고 잦아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2002년 말 중국 남부에서 난데없이 출현한 사스(SARS)가 삽시간에 세계 30개국과 지역으로 퍼져나갔을 때와 같은 길을 걷게 될까. 14세기에 유럽에서 인구를 격감시킨 페스트의 재림일까. 지난 세기 초에 제2차 세계대전마저 중단하게 만든 스페인 독감의 비극이 되풀이될까. 유행은 잦아들었으나 언제든 재발할 소지가 남아 있다.


    전문가 사이에서는 개연성이 충분한 상황으로 발생한 감염 폭발이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최근 갑자기 등장한 ‘신종 감염병’은 동물이 보유한 바이러스와 세균에서 비롯한 ‘동물 유래 감염병’이 압도적으로 많다. 전문가들은 에볼라 출혈열 바이러스도 본래 열대림 깊은 곳에서 박쥐와 공생했다고 추정했다.


    그러나 열대림의 대규모 파괴와 주거지의 급속한 팽창으로 보금자리를 잃은 야생동물이 사람의 생활권에 출몰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열대림 안의 마을과 개척지에서 시작되었다가 차츰 대도시에까지 바이러스가 마수를 뻗쳤다. 게다가 교통기관의 발달로 지구가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이며 바이러스는 단기간에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돌연변이로 인한 공기 감염, 대참사 예고

    2014년에 일어난 대유행은 자이르 바이러스가 원인으로, 1970년대에 유행한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켰다. 예전에는 잠복 기간이 7일가량이었는데 지금(2014년)은 최장 21일로 길어졌고, 사망률은 90퍼센트에서 60퍼센트 전후로 내려갔다.


    에볼라바이러스는 쉽게 변이를 일으킨다. 미국 텍사스대학교 연구팀은 이번 바이러스는 10년 전에 시에라리온에서 채취한 바이러스와 비교하면 이미 유전자의 395개 지점에서 변이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변이 속도는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보다 100배나 빠르다.


    에볼라바이러스는 인체에 침입하면 교묘하게 변이를 일으켜 몸속에 자리 잡는다는 사실이 에볼라 출혈열 환자를 치료한 미국 에모리대학병원 등의 유전자 해석으로 밝혀졌다.


    에볼라바이러스는 ‘당단백질’을 열쇠로 삼아, 인체 세포 표면에 있는 열쇠 구멍의 수용체에 달라붙어 세포 안으로 침입한다. 외부 침입을 받은 세포도 가만있지는 않는다. 면역 시스템을 총동원해 침입자 방어에 나선다. 일반적으로는 이 단계에서 병원체를 격퇴한다.


    그런데 에볼라바이러스는 ‘미끼’가 되는 당단백질을 혈액 속으로 내보내 면역세포를 유도하는 연막작전을 펼치고 그 틈에 바이러스를 세포 안으로 침투시키는 수법을 쓴다. 이 수법이 바이러스 유행이 급격히 확대된 이유라고 연구자들은 보고 있다.


    기존의 바이러스는 잠복 기간이 짧고 증상이 급격하게 나타나 사망률이 높았다. 그런 이유로 감염이 확대될 시간적 여유가 없어 국지적 유행에 그쳤다. 그러나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켜 잠복 기간이 길어지고 사망률이 낮아지며 감염자의 체내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은 탓에 장거리를 이동해 대도시로도 감염이 확대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에볼라 출혈열은 감염된 사람과 동물의 혈액과 체액 등에 직접 접촉하지 않는 한 감염되지 않는다. 서아프리카에서 일어난 유행도 사망자를 매장하기 전에 조문객들이 망자와 인사를 나누는 관습에서 시신과 접촉하며 유행을 부추겼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는 돌연변이로 공기 감염이 일어날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미국 댈러스의 한 병원에서 라이베리아인 남성을 치료한 간호사 두 명이 환자와 직접 접촉을 막기 위해 엄중하게 방호복을 갖춰 입었는데도 발병했다. 그밖에도 방호복으로 전신을 감싼 의료 종사자가 감염된 사례가 적지 않다.


    감염병 권위자인 미국 미네소타대학교의 감염병 정책연구소의 마이클 T. 오스터홈 (Micheal T. Osterholm) 소장은 “40년의 연구 인생에서 처음 만난 강력한 바이러스”로 공기 감염이 가능하도록 변이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1989년에 미국에서 발생한 에볼라바이러스는 돼지에서 원숭이에게로 공기 감염된 선례가 있기 때문이다.


    14세기에 창궐한 페스트는 그때까지 벼룩의 흡혈로만 일어나는 ‘선(腺)페스트’였는데 변이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공기로 감염되는 ‘폐(肺)페스트‘가 출현했다. 인플루엔자와 홍역 등 공기로 감염되는 병원체는 매우 효율적으로 감염이 확대되어 팬데믹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특히 아프리카에서는 과거 40년 동안 인구가 세 배나 늘었고 인구 이동도 급격하게 일어나 만약 공기 감염이 시작된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대참사로 발전할 수 있다.



    20만 년 지구 환경사와 감염병의 끈질긴 도전

    인류와 질병의 끝없는 군비 경쟁사


    인류 진화에 맞춰 변화를 거듭한 병원성 미생물

    약 20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탄생한 현생 인류의 조상은 아라비아반도에서 근래 출토된 최신 유골 연구를 통해 기존의 추정보다 수만 년 이른 12만 5,000년 전 무렵 아프리카 대륙을 떠나 아라비아반도로 건너갔다는 설이 유력해졌다. 이후 5만~6만 년 전에 아라비아반도에서 유라시아대륙, 다시 호주 대륙과 북미·남미 대륙으로 세력을 확장했다.


    인류는 험난한 이동 여정을 거쳤을 것이다. 작열하는 사막과 극한의 설원을 가로지르고 육지가 보이지 않는 바다에서 노를 젓고 험난한 산악지대를 넘어 깊은 숲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이 고생스러운 여정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무엇일까?


    야생동물처럼 가까이에서 구할 수 있는 식량이 떨어졌기 때문일까? 기후와 환경 변화로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떠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일까? 다른 영장류와의 세력 다툼에서 패해 밀려났기 때문일까? 아프리카에는 유전학적으로 가까운 영장류가 많아 그들에게서 옮는 ‘동물 유래 감염병’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추정하는 연구자도 있다.


    약간의 도구와 무기, 생활용품을 이고 짊어진 채 언어, 기술, 신화, 음악, 신앙 모든 것이 새로운 고장으로 이동했으리라. 의도하지 않은 길동무도 있었다. 쥐, 바퀴벌레, 진드기, 이, 벼룩, 기생충 등의 작은 동물. 또 눈에 보이지 않는 어마어마한 수의 세균, 바이러스, 원충, 곰팡이 등의 미생물도 사람과 동물에 기생해 함께 이동했다.


    미생물 대부분은 해를 끼치지 않았으나 병을 옮기는 ‘병원성’을 지닌 종류도 있었다. 예를 들어 바이러스는 생물과 무생물 양쪽의 성질을 아울러 가지고 있어 인플루엔자와 풍진과 헤르페스 등 수많은 질병을 유발한다.


    세균은 박테리아라고도 부르는데 세포 분열로 증식하는 단세포 생물이다. 헬리코박터파이로리균(Helicobacter pylori)이나 결핵균 등 다채로운 얼굴을 가지고 있다. 또 말라리아와 아메바성 이질 등을 일으키는 원충, 그 밖에도 무좀의 원인이 되는 진균, 폐렴과 쓰쓰가무시병을 일으키는 리케차(Rickettsia) 등의 병원성 미생물이 알려져 있다.


    이러한 미생물 중에는 수렵 시대에는 야생동물에서 사람으로, 정착 농경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가축에서 사람으로 숙주를 넓힌 종도 많다. 새로운 지역으로 진출한 인류는 기후와 풍토와 새로 일군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육체를 진화시켰다. 야생동물과 가축에게서 사람의 몸으로 보금자리를 이동한 미생물도 마찬가지로 숙주의 진화에 맞추어 변화했다.


    아무리 방어수단을 세워도 병원체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붉은 여왕 가설’

    숙주와 미생물의 힘겨루기는 군비 경쟁에 자주 비유되는데, 군비 경쟁보다 테러와의 전쟁에 가까울 수 있다. 인류는 질병을 제압하기 위해 잇달아 새로운 수단을 개발했다. 백신과 항생제 등의 약제를 개발해 수많은 감염병을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영유아의 감염병이 줄어들어 사망률이 급감하며 세계 인구가 급증했고 평균수명이 연장되었다.


    그런데도 일상적으로 감기와 설사에 시달리고 신종 인플루엔자와 풍진이 돌발적으로 유행해 방어의 빗장을 늦출 수 없다. 미생물은 내성을 획득해 사람이 내놓는 새로운 무기를 교묘하게 공략한다. 숙주는 다시 대항 수단을 강화해야 한다.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미생물과 인간의 끊임없는 싸움을 ‘붉은 여왕 가설(Red Queen’s Hypothesis)‘이라 부른다. 루이스 캐럴의 소설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붉은 여왕이 앨리스에게 충고한다.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으려면 계속 달릴 수밖에 없단다.”


    주위의 풍경도 같은 속도로 움직이기에 끊임없이 발을 놀려야 겨우 제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


    숙주가 아무리 뛰어난 방어 태세를 구축해도 감염병의 마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 ‘붉은 여왕’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병원체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숙주가 되는 생물은 방어수단을 진화시킨다. 그러면 병원체는 방어수단을 무너뜨리고 감염시킬 방법을 찾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숙주는 한층 새로운 방어수단을 진화시키고, 생명이 존속되는 한, 이 술래잡기는 끝나지 않는다. 야구에서 투수와 타자의 관계와 비슷하다. 투수(병원체)는 타자(숙주)의 약점을 찾아내 다양한 방법으로 공을 던져 타자가 공을 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목표다. 한편 타자는 약점을 극복해 새로운 투구법에 대응함으로써 투수가 던지는 공을 치려고 노력한다.


    자연재해로서의 감염병 유행은 언제 일어날지 알 수 없는 대지진과 닮은 꼴

    감염병 유행도 ‘자연재해’다.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재해 통계인 재난통계자료(EM-DAT)는 1988년에 재난역학연구센터(CRED)가 UN과 벨기에 정부의 지원을 받아 창설했다. CRED에 따르면 재해를 ‘기상 재해’·‘지질 재해’·‘생물 재해’라는 세 가지로 분류했는데 감염병은 병충해 등과 함께 생물 재해에 포함된다.


    EM-DAT는 ‘Emergency Events Database’의 줄임말로 데이터는 UN과 산하 국제기관, 비정부 조직, 보험회사, 연구기관, 보도기관 등에서 수집되며 이 자료를 바탕으로 지역, 국내, 국제 수준의 재해 지원, 방재 정책 기반 수립을 목적으로 한다.


    자연 재해로 취급하는 재해는 각각의 재해 규모가 다음의 네 가지 조건 중 한 가지 이상을 충족할 때로 규정되어 있다. 조건을 충족해야 비로소 재해로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될 자격을 얻는 셈이다.


    ① 사망자가 10만 명 이상

    ② 이재민(발병자)이 100만 명 이상

    ③ 피해국이 국가 비상사태 선언을 발령한 경우

    ④ 피해국이 국제 지원을 요청한 경우


    즉, 이들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자연재해로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지 않는다. 국제 데이터베이스의 자연재해 발생 건수는 1900년부터 2005년까지 10년 단위로, 2005년부터는 5년간으로 정리되어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이 기간에 기상 재해(홍수, 가뭄, 폭풍우 등)는 약 76배, 지질 재해(지진, 산사태 등)는 약 6배, 생물 재해(질병, 병충해)는 84배나 증가했다.


    감염병 유행과 대지진은 닮은꼴이다. 주기적으로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아도 언제 닥칠지 알 수 없다. 대지진에 호되게 당하고 나면 한동안은 조심하다가 차츰 공포가 옅어지고 지진과 쓰나미에 대한 방비도 소홀해진다. 그동안에도 땅속에서는 암반(플레이트)끼리 힘겨루기를 계속해 각지에서 지각에 스트레스가 쌓인다. 더는 견딜 수 없게 된 암반이 어느 날 튕겨 오르면 지진이 발생한다. 병원체는 바로 이 순간에도 우리 몸속으로 침입하려고 유전자를 변이시키고 있다. 만약 성공하면 자손을 폭발적으로 늘릴 수 있다. 때로는 몇 천만 명의 인명을 앗아갈 때도 있다.


    인류와 감염병의 관계도 사람이 화경을 조작하며 크게 변화했다. 인구 급증과 과밀화도 감염증 증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인플루엔자, 홍역, 수두, 결핵 등의 병원체처럼 기침과 재채기로 비말 감염을 일으키는 질병은 과밀한 도시가 최적의 번식 환경이다. 콩나물시루처럼 발 디딜 틈도 없는 복작이는 출퇴근 전철 안에서 마스크도 쓰지 않은 인플루엔자 환자가 재채기하는 상황을 상상하면 온몸에 소름이 돋고 등줄기가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는다.



    인류와 공존해온 바이러스와 세균

    헬리코박터 파이로리균은 적인가, 아군인가

    강한 위산 속에서도 생존하는 헬리코박터균의 정체

    숙취든 배달이든 위장 장애든 누구나 메슥메슥 신물이 올라오는 경험을 한두 번쯤은 겪은 적이 있으리라. 신물은 일본어로 ‘무시즈(虫酸)’라 쓴다. 옛날 사람들은 뱃속에 ‘벌레’가 산다고 믿었다. 그래서 어떤 음식이나 일을 앞두었을 때 입맛이 당기거나 즐거운 호기심이 일어나는 상태를 ‘회가 동하다’와 같이 표현하기도 했다. 맛난 음식을 보고 뱃속에 사는 회충이 어서 먹으라고 요동을 친다는 뜻이다. 신물이란 숙취가 가시지 않아 입안에 위액이 역류할 때 느껴지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불쾌하고 찝찝한 액채로 시금털털한 맛이 난다.


    위액의 주성분은 염산이다. 염산은 시큼하다. 공복 상태에서는 pH1~2라는 자동차 배터리 수준의 강력한 산성을 띠는데 식사 후에는 pH4~5로 내려간다. 위액은 단백질·지방·탄수화물의 소화와 흡수를 돕고 동시에 질병의 원인이 되는 세균과 바이러스를 죽여 감염을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


    그 누구도 이렇게 강산성 환경에서 살 수 있는 세균은 없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 혹독한 환경에서 생존하는 세균이 있다. 바로 헬리코박터 파일로리(Helicobacter pylori)균이다. 줄여서 ‘헬리코박터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본에서 이 균은 최대 감염병으로 ‘국민병’ 지위를 획득했다.


    ‘헬리코(Helico)’는 우리가 아는 헬리콥터와 같은 어원으로 ‘나선’이라는 뜻이다. ‘박터(bacter)’는 세균, ‘파일로리(pylori)’는 위출구인 유문을 뜻한다. 두세 번 꼬인 모양으로 4~5줄의 편모를 가지고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었다.


    19세기 이후, 위 속에 나선 모양 꼬리가 달린 세균이 발견되었는데 당시에는 우연히 위에 들어와 자리를 잡은 세균이라고 여겨졌다. 이 상식은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대학교 교수였던 로빈 워렌과 배리 마셜 두 연구자에 의해 깨졌다. 연구자들은 위 속에서 헬리코박터균을 찾아내 불철주야 연구한 끝에 1982년 배양에 성공했다.


    마셜 교수는 배양액을 마시면 위염이 발생하고 항균제를 사용해 균을 제거하면 위염이 낫는다는 사실을 자신의 위장으로 실험해 증명했다. 당시 위염과 위궤양은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라 이 균의 발견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이후 위암·위궤양·십이지장궤양·만성 위염의 원인이라는 사실이 속속 밝혀졌다. 두 연구자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2005년 노벨생리학·의학상을 받았다.


    독일과 미국 연구자에 따르면 지구는 미생물로 가득 차 있고 연간 200만 톤이 넘는 세균과 바이러스, 5,500만 톤의 균류 포자가 안개비처럼 내리고 있다. 미생물은 지표 40 킬로미터 상공에서 해수면 아리 10킬로미터 심해저까지 서식하지 않는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지구 곳곳에 살고 있다.


    사실 우리 몸에도 ‘상재균’이라 부르는 미생물이 공존하고 있다. 상재균 대다수는 인류보다 훨씬 오랜 진화 역사를 자랑한다. 상재균은 이름 그대로 일상적으로 우리 몸에 서식하는 세균이다. 우리 몸 거의 모든 곳에 산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피부, 입, 눈, 코, 기도, 요도, 항문, 여성 생식기 등 외부 환경과 접촉하기 쉬운 부분은 항상 세균이 번식하고 있다. 어머니 태중에 있을 때는 무균 상태이나 출산과 동시에 균에 노출되어 그때부터 균이 몸속에서 증식한다. 헬리코박터균은 그 상재균 중 하나다.


    미래 감염병의 예상 격전 지역은?

    수많은 감염병의 고향 중국과 아프리카, 공중위생 문제 심각

    앞으로 인류와 감염병의 예상 격전지로 떠오르는 곳은 가까운 이웃 나라 중국과 인류 발상지이자 수많은 감염병의 고향인 아프리카다. 두 지역 모두 공중위생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중국은 지금까지 몇 번이나 전 세계를 공포와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어들인 팬데믹의 진원지 역할을 했다. 과거 세차례 발생한 페스트의 세계적 유행도,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신종 인플루엔자도 그리고 코로나바이러스의 하나인 사스도 최근 눈부시게 발전한 유전자 분석을 통해 중국이 진원지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3억 4,0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경제력 향상과 더불어 국내외로 활발하게 이동하게 되었다. 음력 설이 춘절 전후로 약 3억 명 이상이 중국 국내를 여행하고, 연간 1억 명 이상이 해외 나들이를 한다. 최근 12년 동안 10배로 늘어난 대이동이 중국 국내외로 감염을 확대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만성적 대기 오염과 수질 오염으로 호흡기가 손상되어 병원체가 체내에 침입하기 쉬워지고 물을 매개로 한 감염 위험성도 높다.


    새로운 숙주로 갈아탈 기회를 노리는 숨은 병원체들

    자연계에는 아직 무수한 병원체가 숨어 있고, 새로운 숙주를 찾아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다. 수소폭탄 실험이 ‘고질라’를 낳았듯 약물 남용이 괴물 같은 병원체를 만들어내는 날이 언젠가 올 수도 있다. 2013년 UN의 미래 인구 예측에 따르면 세계 인구는 2050년에 96억 명을 돌파한다. 20세기 초에 세계 도시 거주자는 인구의 15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는데, 2008년 전후로는 도시 인구가 농촌 인구를 웃돌았다. UN은 2030에 도시 인구는 50억 명을 넘어서고, 전체 인구의 70퍼센트가 넘을 것으로 국제 연합이 추정한다.


    인간이 세력권을 확장함에 따라 삼림과 저지대 습지가 파괴되고 야생동물 서식지가 좁아졌다. 이에 바이러스는 새로운 숙주를 찾아 야생동물에서 사람에게로 기생 장소를 갈아타고 있다.


    앞으로 세계 인구 증가와 고령화를 감안하면 감염병은 점점 더 큰 위협이 될 전망이다. 20세기 초반 감염병의 집단 발생은 학교와 군대가 그 온상이었는데, 21세기 후반은 고령화 시설이 자리를 대신할 예정이다.


    여러 국제기구의 예측으로는 세계적인 고령화로 ‘비위생적인 환경에 살 수밖에 없고’,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며’,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하고’, ‘제대로 된 돌봄도 받지 못하는’ 등 가난한 고령자가 늘어나고 있다. 고령자는 외출이 힘들어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쉽고 다른 사람과 접촉해 면역을 얻을 기회도 줄어든다. 자연스럽게 감염병에 취약해지고 발병하면 응급실에서 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야 할 정도로 병세가 빠르게 심각해질 수 있다.


    사람과 크기를 비교하면 바이러스는 10억분의 1, 세균은 100만분의 1정도다. 사람의 유전자는 3만 몇천 개나 있는 데 비해 바이러스는 많아야 300개, 세균은 1,000~7,500개 수준이다.


    지상에서 가장 진화한 인간과 가장 원시적인 미생물이 종의 생존을 걸고 사투를 벌이고 있다. 때로 엄청난 수의 희생자가 나오고 대가를 치르며 사람 쪽에서 면역력을 획득하거나 거액의 연구비를 들여 개발한 신약으로 대항한다. 그러면 미생물은 인간의 노력을 비웃듯 너무나 쉽고 빠르게 치고 나가는 상황이 반복된다. 미생물과의 싸움은 아직 앞이 보이지 않는다. ‘붉은 여왕’과의 술래잡기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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