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아더존스
 
지은이 : 염운옥, 조영태, 장대익, 민영, 김학철, 이수정 (지은이)
출판사 : 사람과나무사이
출판일 : 2023년 11월




  • 개인과 공동체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절체절명의 과제로 떠오른 ‘다양성’ 담론에 관한 진화학, 사회학, 인구학, 미디어학, 종교학, 범죄심리학 분야 국내 최고 권위자이자 존경받는 여섯 석학들의 심도 깊은 연구와 치열한 사고, 생산적인 논쟁을 집대성했습니다.


    인디아더존스


    인종, 그리고 인종차별 / 염운옥

    그러나 여전한 인종주의

    오늘날에도 맹위를 떨치는 인종주의의 문제점을 짚어보자. 현 대에 들어서면서 ‘호모 사피엔스는 모두 같은 종이며, 같은 인종 안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라는 관념이 자리를 잡아갔다. 사실 여기에는 유네스코 선언이 커다란 기폭제가 되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많은 이들이 전 세계적으로 인종이라는 개념 대신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우리에게 다른 것이란 문화뿐이다’라는 기치 아래 문화라는 잣대로 인간의 서로 다름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에서 일어난 ‘Black Lives Matter(BLM)’를 통해 확인되듯 여전히 생물학적 인종주의는 살아 있다.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라는 BLM 운동은 미국이라는 나라 안에 구조적인 인종주의, 제도적 인종주의가 얼마나 뿌리 깊이 박혀 있는지 드러내 보여 주었다. 여전히 미국에서는 매년 경찰의 폭력으로 사망하는 흑인이 수십 명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인종주의를 없애려면?

    인종주의를 없애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안타깝게도 인종주의는 사라지기 어렵다. 왜냐하면 ‘과학적으로 인종 개념이 근거가 없다’라고 아무리 열변을 토해도 ‘인종이 실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이 좀처럼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들 눈에 각 개인과 집단의 신체 조건 차이가 명확히 존재하며, 그 차이를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또 반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인종주의 문제는 구조적인 측면과 긴밀히 연결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인종에 대한 우리 인식을 바꾸고 바로잡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식민주의’를 진지하게 성찰하고 극복해야 한다.


    인종차별이 사라지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복합적인 차별과 구조적인 차별이 우리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이 인종차별적인 행위를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딱히 가해자가 없는 것 같은데도 여전히 피해자가 존재하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이야기다. 어떤 측면에서 인종차별이 구조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성차별, 계급차별과 결합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마음의 식민화’에서 벗어나기가 인종차별을 종식하기 위한 근본적인 처방이 될 것이다. ‘마음의 식민화’란 무엇일까? ‘다른 사람을 차별하는 사람은 차별당하는 사람보다 비인간 상태에 놓이게 된다’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리고 차별이란 근본적으로 ‘타자화’의 산물이다. 타자화란 글자 의미 그대로 다른 사람을 자신과 다른 사람으로 규정하고 차별 대우하는 행위다. 말하자면, 나는 고귀하며 존중받아야 할 인간이지만 나에 의해 타자화된 다른 사람은 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인간, 즉 고귀하지도 않고 존중받을 가치도 없는 인간이라는 의미다. 다른 사람을 나와 다른 인종으로 대하는 것이 타자화의 대표적인 사례다. ‘어떤 사람이 비닐하우스 집에 살아도 된다’라고 생각하는 이유도 바로 그가 타자화의 대상이 되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다양성의 시대에 어떻게 살아남을까 / 조영태

    잘파세대의 국경을 초월한 이동은 운명이다

    그렇다면 잘파세대가 성장하고 있는 오늘날의 달라진 대한민국의 환경을 생각해보자. 말하자면 이는 베이비붐 세대, X세대 등 기성세대에게 주어졌던 환경과는 백팔십도 다른데, 양자 사이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을까? 우선, 잘파세대는 기성세대보다 일반적으로 해외여행을 떠날 기회가 훨씬 많아졌다. 과거에 비해 해외여행이 일반화되고 활발해지면서 부모나 친지를 따라, 혹은 친구들과 함께 해외여행을 떠나는 일이 한결 쉬워지고 많아지고 자유로워졌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주목할 만한 점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전 세계 잘파세대를 하나로 연결해주는 신통방통한 소통 도구 ‘스마트폰’이다.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이 기적의 소통 도구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인터넷 콘텐츠 서비스를 통해 같은 영화/드라마를 시청하고, SNS/유튜브를 통해 재미있게 소통하며 문화적 동질감을 키워간다.


    이런 흐름 속에서 앞으로 우리나라는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될까? 간단하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잘파세대가 다른 나라로 거침없이 이동하고 이주하며 살아가듯 다른 나라 잘파세대도 우리 사회로 자유롭게 밀고 들어올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잘파세대가 주역이 된 대한민국은 비록 인구는 현재에 비해 많이 줄어들겠지만 오히려 작지도 위축되지도 않는 짱짱한 대한민국을 만들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여러 통계 자료를 면밀히 분석하다 보면 2025년부터 2040년까지 15년 동안 전 세계 노동시장을 좌우할 가장 큰 인구 집단으로 잘파세대를 꼽을 수밖에 없다. 그때가 되면 잘파세대는 어떤 방식으로 활동하게 될까? 당연하게도 이들은 폭넓게, 글로벌하게 활동할 것이다. 여기에 더해 끊임없이 발전하는 최첨단 과학 기술은 이들이 가진 글로벌 속성을 더욱 증폭시킬 것이다. Z세대가 30대에 진입하는 2030년대가 되면 그들의 물질적, 정신적, 문화적 동질성은 점점 더 확장될 것이며, 전 세계적으로 자유롭게 이동하고 이주하며 사는 사람의 수가 훨씬 늘어날 것이다. 아니, 그냥 늘어나는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전 세계 잘파세대가 우리 대한민국 사회를 하나의 플레이그라운드로 여기며 활동할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나라에 한번 들어와서 평생 뿌리내리고 사는 게 아니라 들어왔다가 나가고, 또 들어왔다가 나가고 하면서 자유롭고도 역동적으로 살아갈 것이다.


    필자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향후 인구 절벽 때문이 아니라 미래의 주역이 될 잘파세대가 가진 속성, 즉 글로벌한 특징으로 인해 장차 이동과 이주가 더욱더 활발하게 일어나리라고 예측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과정에 대한민국 사회의 다양성은 비약적으로 커지고 역동적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과거에는 대륙 간, 국가 간, 인종 간 문화가 매우 이질적이었다. 그리고 그 만만치 않은 이질성이 한 사회, 한 국가 안의 다양성을 제한했다. 그러나 우리 앞에 펼쳐질 미래에는 국가 간 문화의 ‘동질성’과 ‘동시간성’이 비약적으로 커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바로 ‘동질성’과 ‘동시간성’이 역설적으로 한 나라 안에서의 다양성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킴으로써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패러다임의 사회로 진입하게 할 것이다.



    다양성과 공감, 그리고 행복 / 장대익

    우리 사회의 다양성 지수는 왜 낮을까?

    동아시아 국가, 특히 대한민국은 왜 이렇듯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사회를 형성하게 되었을까?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연구를 찾기는 어려우나 전 세계 여러 문화권을 연구한 결과가 제법 있다. 이에 따르면 밀 농사를 짓는 집단에 비해 벼농사를 짓는 집단일수록 훨씬 획일적이다. 이는 밀 농사와 벼농사 특성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즉, 밀 농사의 경우 밀 씨앗을 땅에 뿌리는 일 외에 별다른 노력이 필요 없는 데 반해 벼농사를 짓는 데에는 관개시설 정비를 비롯해 밀 농사의 최소 두세 배 정도 되는 집단 노동이 필요하다고 한다. 벼농사는 밀 농사와 달리 ‘협업’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농업이다. 그러므로 벼농사 과정에 자연스럽게 집단주의 성향이 길러지고 자리 잡게 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대한민국 사회의 경우에는 위에 언급한 밀 농사와 벼농사 차이에서 기인하는 일반적인 원인만으로 온전히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왜냐하면 중국, 일본 등 주로 벼농사를 짓는 동아시아의 어떤 나라와도 차별화되는 한국인만의 독특한 특성이 충분히 설명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한국인만이 가진 그 독특한 특성이란 뭘까? 필자는 한국인의 강렬한 ‘학습 열망’에서 그것을 찾고자 한다.


    지난 500년의 출세지상주의 문화 유산을 물려받은 우리는 여전히 초경쟁 사회에 살고 있다. 며칠 동안만 외국에 나가봐도 대한민국 사회가 얼마나 숨 막히는 경쟁 사회인지 실감하게 된다. 경쟁 사회란 한두 가지 목표와 가치를 향해 모든 구성원이 경주마처럼 질주하는 공동체를 뜻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는 초저출산 현상의 원인도 여기에 있다. 우리가 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본질을 통찰하기 위해서는 ‘진화적 관점’이 필요하다. 우리는 누구나 태어나서 성장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양육하다가, 늙어서 죽는다. 물론 개인에 따라 결혼하지 않거나 결혼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을 수 있지만 인간의 기본적인 생애사(life history)는 바로 성장과 번식과 양육, 그리고 죽음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생애사는 종마다 독특한 특성을 띤다. 가령, 개구리는 알을 한꺼번에 많이 낳은 후 알을 거의 돌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아이를 한 번에 한 명 정도 낳고 양육에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들인다. 이러한 생애사의 차이에 관한 이론이 ‘생애사 이론(life history theory)’이다.


    그런데 같은 종이라도 생애사에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예컨대 같은 인간이지만 빠른 생애사 전략가 유형은 아이를 출산하는 일에 관심이 많고 또 실제로 많이 낳아 기르는 데 반해, 느린 생애사 전략가 유형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같은 사회, 같은 공동체 안에 거주하면서도 서로 다른 가치관을 따른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느린 생애사 전략가는 출산은 하되 되도록 적은 수의 아이를 낳으려 한다. 대신 이들은 다른 유형의 사람들보다 자녀 양육에 훨씬 더 신경을 쓰고 상대적으로 많은 자원을 투입한다.


    아이를 출산하는 문제에서 같은 사회, 같은 공동체 안의 사람들 사이에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할까? 이는 각자에게 주어지는 ‘예산’이 한정돼 있고 제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개별 인간, 혹은 가족에게 생을 영위하는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이 한정돼 있다고 전제할 때 각자는 언제 번식할 것이고, 얼마나 많이 낳을 것이며, 또 언제까지 낳을 것인지 등을 결정해야 한다. 이 과정에 적용되는 것이 ‘트레이드 오프(trade off)’, 즉 ‘뭔가를 얻고자 한다면 반드시 다른 뭔가를 희생해야 한다’라는 경제 원리다. 말하자면 트레이드 오프 원리에 따라 지금 더 ‘성장할 것인가’, ‘번식할 것인가’를 결정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 맥락에서 좀 더 부연하자면 다음과 같은 식이다. 만약 당신 주위에 이미 개체 수가 너무 많아서 ‘내가 지금 아이를 출산하면 그 아이가 자칫 경쟁에서 밀려 도태되거나 성공할 확률이 낮다’라고 판단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까? 아이를 낳는 일을 포기하고 대신 당신 자신의 성공과 경쟁력을 높이는 일에 매진할 가능성이 크다. 그 반대의 경우, 즉 인구 밀도가 낮으면 경쟁이 덜 치열하니 아이를 낳는 것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출산율은 높아진다.


    다양성 지수를 높이는 방법은?

    우리가 이런 관점을 좀 더 명확히 이해한다면 ‘다양성 지수’ 혹은 ‘공감 지수’를 높이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구체적인 방법과 아이디어를 궁리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네 가지 방법을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우리의 모든 정책이 사람들로 하여금 주위 환경을 ‘경쟁적’이라고 느끼지 않게 만드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다양성을 증대시키고 가치를 다원화하는 지름길이다. 자, 이제 네 가지 방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째, 공간 축에서 밀도를 낮추는 일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서울/수도권에 거주하는 젊은이들의 출산율이 현저히 낮고 초혼 연령이 높은 이유도 ‘인구 밀도’ 때문이다. 특정 지역의 인구 밀도가 높다는 것은 자원이 그곳에 집중돼 있어 사람들이 부나비처럼 몰려든다는 말이다. 오늘날 우리는 많은 이들이 ‘지방 소멸’을 우려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 까닭에 서울/수도권 이외의 지역에 거점 지역을 정해 그곳을 좀 더 ‘자족적인’ 도시로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최근 많은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지방 혁신도시’를 만든다며 열을 올리는데. 필자는 여기에 굳이 ‘혁신’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붙일 필요가 없다고 본다. 그보다는 자족 도시를 만들어 ‘그곳에 거주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느끼도록 유도하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고 본다. 다시 말하자면 이는 도시를 좀 덜 경쟁적으로 만드는 것이며, 공간 축에서 밀도를 낮추는 일이자 다양성을 증대시키는 방법이다.


    둘째, 시간 축에서 경쟁 밀도를 낮추는 일이다.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자. 우리 MZ세대는 왜 예전보다 대한민국 사회가 경제적으로 훨씬 좋아졌는데 ‘헬조선’을 계속 외칠까? 잠시 베이비붐 세대와 X세대 학창 시절로 돌아가자. 당시에는 고등학교 3학년생이 되어도 요즘처럼 모든 사람이 대학에 가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지는 않았다. 반면 요즘 고등학교 3학년생은 대다수가 대학에 가고 싶어 한다. 이것이 바로 지금의 대한민국이 시간 축에서 동시에 경쟁하는 사회라는 징표다. 이러한 현상을 막고 시간 축에서의 밀도를 낮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갭이어(gap year)’를 생각해볼 수 있다. 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갈 때 갭 없이 곧바로 입학하지 않고, 직장에 취직해서 돈을 벌거나 아르바이트 등 다양한 세상 경험을 먼저 하게 한 다음 입학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이다. 이는 좀 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1~2년 더 공부하는 재수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이는 시간 축의 밀도와 경쟁률을 분산시키는 일로, 우리 사회를 좀 더 다양성이 큰 사회로 바꾸는 좋은 방법이라고 본다.


    셋째, 역량 측면에서 밀도를 낮추는 일이다. 사실 우리는 사회 구성원이 저마다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여기서 ‘서로 다르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저마다 역량이 다르다는 뜻인데, 이 점을 먼저 사회 구성원에게 명확히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 그런 다음 대학 입시나 직장의 입사 시험에 다양한 선발 기준을 만들어 공정하게 평가하고 각자의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이것이 역량 축에서 밀도를 낮추고 경쟁을 완화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인종이 혼합되어 한데 어우러져 살아가는 방향으로 인식을 바꾸도록 유도하는 일이다. 잘 알다시피 우리는 단일민족이 아니다. 한반도는 광대한 유라시아대륙의 일부이자 태평양이라는 드넓은 바다로 이어져 있기에 이곳에 터를 잡고 사는 한민족은 단일민족으로 유지될 수 없다. 오랜 역사를 거치며 대륙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용광로 안의 광물처럼 한데 섞여서 만들어낸, 태생적으로 다양성이 살아 있는 공동체다. 그러니 한민족 역시 다른 민족과 마찬가지로 유전적으로 다양한 민족인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한민족은 단일민족이다’라는 잘못 알려진 신화를 바로잡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차대한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어렸을 때부터 다인종 문화를 자연스럽게 경험하게 함으로써 다양성을 전혀 이상하거나 불편한 것이 아닌, 오히려 익숙하고 편안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유도하고 교육함으로써 인종 측면에서의 밀도를 낮추고 편견을 없애는 일이다.



    미디어는 어떻게 다양성을 저해하는가 / 민영

    새로운 디지털 미디어의 작동 방식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개인은 더 많은 선택권과 능동성을 발휘한다. 온라인에서 개인은 자유롭게 항해하면서 자신에게 필요한 곳을 능동적으로 찾아다니고 무한 연결이 가능한 플랫폼을 통해 타인과 직접 상호작용하며 소통할 수 있다. 시공간 경계를 넘어 무제한으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개인은 다채로운 정보와 관점을 만나고 오프라인에서보다 좀 더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개인은 수용자나 소비자에 머무르지 않고 생산자와 유통자로서 정보 생태계에 참여하기에 정보 환경의 다양성이 더욱 확대될 수 있다. 그러나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이용자의 ‘선택성’이 자유롭게 발현됨에 따라 자신의 기존 신념이나 선호도에 일치하는 정보만 추구할 가능성도 커졌다. 즉 자신이 원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 정보는 무시하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 강하게 작동하게 된 것이다.


    확증편향에 의존할 경우 개인이 경험하는 정보와 사회 연결망의 다양성은 오히려 축소된다.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서로 비슷한 사람들끼리 쉽게 교류할 수 있게 되면서 생각과 신념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더 단단한 벽을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선택성과 능동성이 높아진 디지털 공간에서 경험의 개방성과 다양성이 확대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폐쇄성이 높아지고 기존의 태도가 강화되는 결과가 초래될 위험성이 있다. 내 의견을 확고히 하는 것을 넘어서서 타인을 공격하고 적대시하는 감정적 극화 현상까지 발생한다.


    미디어 이용자는 무엇을 해야 할까-다양성의 유용성과 가치 이해하기

    다양성의 유용성을 이해하고 다양성의 가치에 공감하는 것을 전제로 할 때 미디어 이용자는 어떤 실천을 할 수 있을까? 첫째, 이용자는 ‘차이’를 이유로 사람들 사이에 위계를 만들거나 차별을 정당화하는 미디어 메시지를 분별하고 비판할 수 있는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를 키워야 한다. 특히 뉴스, 드라마, 예능, 노래 가사, SNS 게시글, 댓글 등 다양한 형태의 미디어가 매개하는 혐오 표현을 발견하고 비판할 수 있는 감수성과 역량을 갖출 필요가 있다. 혐오 표현은 고정관념이나 왜곡된 정보에 기반하여 특정 집단에 모욕, 비하, 멸시, 위협 등을 가하는 언어다. 특히 사회적 약자를 낙인찍으며 차별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혐오 표현은 표현의 자유로 보호될 수 없으며 때로는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된다. 혐오 표현은 혐오감을 표출하는 개인의 감정적이고 극단적인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과 차별을 반영하고 재생산하는 도구다.


    둘째, 미디어 이용자는 확증편향의 오류와 부작용을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는 내 목소리만이 반사되어 들리는 반향실(echo chamber)에 갇히기 쉬우므로 타인의 감정과 상황에 자칫 무관심해지거나 냉담해질 수 있다. 상대를 자세히 알거나 직접 소통하기도 전에 고정관념이나 편견으로 잘못된 인식을 굳히고, 온라인에서 파급되는 허위 조작 정보를 받아들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러한 오류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어떤 대상, 특히 낯선 대상에 최대한 다면적인 접근을 할 필요가 있다. 정보의 균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다양한 출처에서 정보를 확인해야 한다. 내가 얼마나 자주 ‘나를 불편하게 하는 내용’을 접하고 있는지를 점검하며 자기 자신에게 다양하고 균형 있는 정보 환경을 선물해야 한다.


    셋째, 디지털 플랫폼 알고리즘의 작동 원리를 묻고 ‘설명 들을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디지털 플랫폼 이용이 일상화하면서 알고리즘 의존도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알고리즘은 각종 디지털 미디어를 매개로 우리 의사 결정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지만, 그 작동 원리는 대부분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다. 선행연구(Epstein & Robertson, 2015)에 따르면, 포털의 검색 알고리즘이 선거 후보자를 어떤 순서로 보여주느냐는 중립적 유권자의 후보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친다. 즉 어떤 후보가 첫 페이지에 노출되느냐에 따라 부동층의 투표 방향이 바뀔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검색 알고리즘의 편향 가능성을 인지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효과가 큰 폭으로 줄어든다. ‘기계가 분류한 것이니 중립적이고 공정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알고리즘의 편향 가능성을 의심해볼 때 알고리즘이 내 생각에 경계를 만들고, 내 결정에 경향을 미치고, 내 행동의 경로를 만드는 효과를 큰 폭으로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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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