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만세
 
지은이 : 리베카 리 (지은이), 한지원 (옮긴이)
출판사 : 윌북
출판일 : 2023년 10월




  • 백 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펭귄 출판사 편집장인 리베카 리, 책 한 권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까지 편집자의 손길을 거치는 출판 과정의 면면을 꼼꼼하고도 유쾌하게 소개합니다. "한 권의 세계"를 만드는 일과 만나보세요.


    편집 만세


    글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에이전트의 비밀

    투고 더미의 제왕

    구글 검색창에 ‘투고 더미’를 치면 ‘투고 더미를 피하는 법’ ‘투고 더미에서 벗어나는 법’, 가장 극적으로는 ‘투고 더미 탈출 방법’ 같은 관련 검색어가 뜬다. 자기 작품이 투고 더미에 영원히 갇히는 건 작가 지망생이 할 수 있는 최악의 상상이다. 투고 더미란 출판사가 청탁한 적 없는 작가들에게 받은 각종 문의 편지와 원고를 통칭하는 집합명사다.


    오랫동안 출판사는 전문 독자를 고용해 이 투고 더미 중에서 편집자에게 전달할 만한 원고가 있는지 평가하도록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출판사는 돈 받고 원고를 읽는 독자 역할을 없애고 에이전트에게 초기 심사를 맡기는 게 더 경제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요즘 대형 출판사들은 직접 청탁한 원고가 아니라면 받지 않는 경우도 꽤 많다. 투고 더미에서 탈출한 셈이다. 하지만 새로운 재능을 발견하는 데 시간과 자원을 투자할 의향이 있는 작은 독립 출판사와 에이전트는 여전히 투고 더미를 활용한다.


    여전히 문의한다

    크리스 웰비러브는 에이킨알렉산더라는 에이전시의 중역이다. 크리스가 대리하는 저자 중에는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데이지 존슨과 필명 시크릿 배리스터(비밀 변호사-옮긴이)로 알려진 작가도 있다. 나는 그에게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물어보았다.


    “에이전트의 좋은 점은 일이 다양하다는 거예요. 저는 제가 대리하는 작가들과 편집 관련 정보부터 마케팅, 홍보 계획, 판매 수치에 이르기까지 출판과 프로젝트의 다양한 면면을 이야기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쓰는 편이죠. 또 편집자와 주기적으로 소통하고요. 출판 과정의 어디쯤 있느냐에 따라 연락 빈도가 달라지긴 하지만요. 주로 마감이 임박했을 때 훨씬 더 집중적으로 소통이 이루어지죠. 내부 동료들과 곧 나올 신간이나 판매 중인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기도 해요. 또 새 클라이언트를 만나거나 거래 상대인 편집자와 미팅을 하기도 하죠. 저는 영국과 미국 출판사와 거래하고 있어서 각 지역에서 어떤 책이 잘나가는지, 특정 편집자가 찾는 책은 어떤 건지 계속 업데이트하려 노력 중이에요.”

     

    “소설은 창작 수업이나 추천을 통해 작품을 맡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요즘은 확실히 인터넷 덕에 기회가 더 다양하게 열린 것 같아요. 투고 원고를 검토할 때도 저널이나 온라인에 글을 실은 경력이 있으면 편집자가 더 눈여겨보는 편이죠. 소설 투고 원고를 볼 때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글에서 에너지가 느껴지는지, 저자의 독자적인 목소리가 있는지, 야망이 느껴지는지 같은 거예요. 책을 대하는 가장 순수한 태도라 할 수 있죠. 맨 처음에는 상업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소설 자체에만 집중하는 편이에요. 논픽션 분야에서는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그의 아이디어와 전문성이 무엇인지에 좀 더 관심을 갖는 편이고요. 논픽션 작가들은 책에 대한 아이디어가 제대로 잡혀 있지 않으면 글을 쓰는 데 애를 먹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처음부터 기획안을 철저하게 작성하는 걸 좋아해요. 일반 독자가 복잡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 내용을 차근차근 풀어낼 수 있도록 말이죠. 이 일의 가장 이상한 점을 하나 또 꼽아보자면, 출간되려면 몇 년은 기다려야 하는 책을 준비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는 겁니다.”


    크리스의 말이 맞다. 출판 과정에서 알고 있어야 하는 사실 중 하나는 모든 과정이 빙하가 움직이는 속도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거기에 저자가 원고를 쓰는 시간까지 더해보자. 구상, 기획안 작성, 출판사와 계약 진행, 책 쓰기, 다시 쓰기, 또 다시 쓰기, 편집, 교열, 조판, 교정, 최종본 완성, 인쇄, 제본, 그리고 마침내 소매상으로 배송되는 사이클을 한 번 거치는 데 적게는 수개월부터 보통은 몇 년이 걸린다. 이렇게만 들어도 출판이 얼마나 장기적인 일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마거릿 미첼은 무려 10년을 들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썼다. 미첼에게 에이전트가 있었다면 그 에이전트는 아마 대단한 인내심의 소유였을 것이다.


    생生과 진眞 ─ 편집자

    맥스웰 퍼킨스

    맥스웰 퍼킨스는 미국의 스크리브너 출판사에서 36년간 편집자로 일했다. 생애 첫 책을 쓰는 사람으로서 나는 퍼킨스의 조언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다. 다른 작가들도 같은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다만, 나는 이 책을 쓰면서 어떻게든 진도를 나가려면 그저 쓰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배웠다. 일단은 단어들을 종이에 적어봐야 그다음에 무엇을 할지가 보이는 법이다. 가령 어떻게 해야 글이 더 나아질 수 있고, 독자에게 잘 전달할 수 있는지를 말이다.


    좋다. 일단 단어들을 적었다면, 그 뒤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 바로 편집이다. 편집을 뜻하는 edit은 ‘끌어내다’ ‘내놓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edere에서 유래했다. 편집자가 하는 일을 두세 개의 단어만으로 요약해야 한다면, 핵심을 표현하는 데 이 단어가 선택될 가능성이 높다. 서글프기는 하지만 퍼킨스는 이렇게 말했다.


    “편집자가 책에 보태는 것은 없다. 기껏해야 저자의 하인 역할을 할 뿐이다. 자기 자신이 뭔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말라. 편집자는 기껏해야 에너지를 방출하는 존재일 뿐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는다.”


    ‘에너지를 방출한다’는 말은 편집자가 일련의 단어들을 끌어 내 하나로 엮는 것을 돕고, 그 결과물을 가장 중요한 사람인 독자에게 제공한다는 점에서 잘 들어맞는다. 편집자는 편집하는 사람이라는 단순한 뜻 외에도 여러 가지 일 자체를 뜻하는 출판 용어 중 하나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편집이란 선집을 편찬하는 것에서부터 글의 구조를 해체해 완전히 새롭게 만드는 일, 오탈자나 의미가 불분명한 곳이 있는지 문장을 하나하나 점검하는 교열에 이르는 모든 것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문학계의 수렵 채집인으로 불리는 기획 편집자도 있다. 이들은 최신 트렌드와 판매 경향을 파악하고 시장을 이해해 독자의 수요가 높은 목소리를 찾아내는 일을 한다.


    기획 편집자는 저자와 독자 사이에서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한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잠재력이 보이는 기획안을 찾아내 계약을 성사시키고 출판 과정을 감독하는 것이다. 더블데이 출판사의 편집장 케네스 매코믹의 설명에 따르면, 기획 편집자는 “무엇을 출판할지, 그것을 어떻게 구할지, 최대한 많은 독자를 확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다. 



    글은 어떻게 더 좋아지는가

    작가는 나의 천적 ─ 교열

    일단 글이 탄생했다면 어떻게 더 좋은 글로 만들 수 있을까?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글이 존재하고, 그 수는 구텐베르크 은하계가 존재하는 매 순간마다 더 늘어나고 있다. 글은 작가에게서 나온 후 에이전트와 편집자에게 발견되고 추진되고 성장한다. 단어들이 모여 문법의 기본 단위인 문장을 이루고, 단락과 장, 종국에는 한 권의 책을 이룬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시작은 문장이다. 문장이 되려면 의미가 통해야 하므로 거기에 하나의 온전한 생각을 담아야 한다. 의미가 통하지 않는다면 그건 문장이 아니다.


    문장을 넘어 그 자체에서 의미가 통하려면 정확하고(Correct), 명확하고(Clear), 응집성 있고(Coherent), 일관되어야(Consistent) 한다. 이른바 교열의 ‘4C’는 좋은 글을 더 좋게 만드는 기본 중의 기본이며, 작가와 작가 곁에서 작업하는 모든 이가 추구하는 바다.


    정확하게

    해리슨 스미스에 따르면 팩트 체커가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다. 정확성 판단하기, 무엇을 확인할지 결정하기, 사실 조사하기, 출처 평가하기, 인용문 확인하기, 법적 책임 이해하기, 표절 가능성 주의하기. 이렇게 놓고 보니 어쩌면 이들은 단순히 철자가 틀린 지명을 바로잡는 것보다 한층 복잡하고 중요한 차원에서 더 좋은 글을 만드는 데 이바지하는 듯하다.


    아무리 교열자라 하더라도 모든 사실과 수치와 진술이 옳고 그른지를 바로 파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확인해야 하는지는 안다. 좋은 교열자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알거나 알아내기 위해 확인하는 사람이다. 이때 필요한 사람이 바로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기술이다.


    사실상 교열자에게 정확성은 의식 향상과도 같다고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을 알아채서 그것의 옳고 그름을 확인해야 하기도 하지만, 사소한 것도 알아채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83쪽에 적용된 스타일이 623쪽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있는지, 5장에서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라고 표기한 것이 12장에서는 ‘주의력 결핍 과다행동 장애’로 표기되어 있지는 않은지 같은 것이 있겠다.


    명확하게

    저자와 편집자가 구조 편집을 몇 차례 거치고 나면 텍스트에 너무 익숙해져서 문장이 어설프거나, 반복되거나, 이상하거나, 불명확한 부분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최초의 공정한 독자이자 검토자인 교열자가 저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당연히 독자도 그럴 것이다. 교열자가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교열자는 텍스트가 잘 흘러갈 수 있도록 미세하게 글을 바로잡는다. 이때 명확성이란 불필요한 부분, 잘못된 어순이 초래한 모호성과 잘못 사용된 단어를 제거한다는 의미다.


    명확성은 좋은 글을 만드는 핵심 요소다. 조지 오웰의 말을 빌리자면 “좋은 산문은 창유리와 같다.” 좋은 글은 명확한 글이다. 자기가 생각해낸 어떤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하는 것이다. 여기서 교열자는 문장이 전체를 잘 지탱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역할을 한다.


    응집성 있게

    응집성이 있다는 건 독자 입장에서 단어와 단어 사이의 관계가 이해된다는 뜻이다. 응집성은 페이지에 적힌 단어, 아이디어, 주장을 저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연결되게끔 돕는다. 쉽게 말해 ‘명확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독자가 빠져 허우적거릴 만한 틈을 제거하는 것이다.


    일관성 있게

    교열은 단순히 원고를 읽으면서 오탈자를 발견하는 일보다 훨씬 광범위하다. 교열자는 원고를 쭉 살펴보며 어떤 기준을 일관되게 적용할지 결정해야 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열자는 워드 프로그램을 사용하므로(한국에서는 주로 한글을 사용한다–편집자) 작업이 좀 더 간소화되었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작업 초반에는 변경 내용 추적 기능을 사용하니 무엇을 고쳤는지 일일이 말하지 않는 편이다.


    많은 교열자가 편집을 하면서 교정 교열 표를 만든다. 이 표는 자기가 사용한 단어를 적은 목록일 수도 있고, 나중에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정해야 하는 단어들을 모아 철자순으로 정리한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양식도 제각각이다. 이렇게 만들어둔 표는 교열자가 작업을 마칠 때까지 참고하는 자료가 된다. 교열 작업은 원고 특성에 따라 몇 주가 걸릴 수도 있고 몇 달이 걸릴 수도 있다. 어떨 때는 두 권 이상을 동시에 작업할 수도 있기 때문에 아무리 미리 만들어두었다 해도, 몇 주 전에 내린 결정이라면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상기시켜주는 게 좋다. 교정 교열 표는 원고의 일관성을 보장하는 방법 중 하나다. 그 어떤 교열자도 원고에 나오는 모든 단어를 어떻게 표기하기로 했는지 전부 기억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글 속의 작은 점들 ─ 문법과 문장부호

    커트 보니것은 “품위 있게 글 쓰는 법”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썼다.


    “만약 내가 구두법을 하나도 지키지 않고 내 마음대로 단어에 의미를 부여해서 문장을 뒤죽박죽으로 쓴다면 아무도 내 글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 독자는 지금 읽는 페이지가 방금 본 페이지와 아주 비슷하기를 바란다. 왜냐고? 그들도 그들 나름 힘든 노력을 해야 하기 때문에 될 수 있는 한 도움을 많이 받고 싶기 때문이다.”


    문법과 문장부호 규칙은 성가시고 불편할 때가 많지만, 독자에게 글을 이해시키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다. 우리는 독자들이 글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페이지에 작게 표시되어 눈에 잘 띄지 않는 문장부호와, 문장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문법은 독서 경험의 질을 한층 높여주는 요소다. 글의 세계에서는 구조나 의미같이 굵직굵직한 큰 그림도 중요하지만, 자잘한 세부 사항도 매우 중요한 법이다. 사실 글 속의 작은 점들과 문장을 구성하는 방식은 크기에 비해 의미하는 바가 엄청나게 많다. 물론 글 자체가 감정과 느낌과 의미를 전달하기는 하지만, 이것도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익숙한 방식으로 문장을 구성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보니것의 말처럼 “방금 본 페이지와 아주 비슷”하게 말이다.


    문법이 없으면 글은 의미가 없고, 뉘앙스를 좀 더 살리려면 문장부호의 은근한 도움이 필요하다. 문장부호는 단어와 단어 사이의 관계뿐만 아니라 문장이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을 드러내고, 독자가 글을 읽으면서 접하는 여러 생각 사이에 숨 쉴 틈을 마련한다. 궁극적으로 모든 글은 문법과 문장부호가 뒷받침되어야만 더 좋은 글로 나아갈 수 있다.


    샬럿 브론테의 격투 편지 ─ 철자

    교정자가 해야 하는 가장 지루한 일 중 하나는 주석, 출처, 참고 문헌 같은 부록을 확인하는 것이다. 전혀 새롭거나 독창적이지 않은 내용이 몇 페이지씩 이어져 졸음을 참는 데 애를 먹지만, 제대로 확인하려면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그래서인지 주석 작업을 하던 어느 페이지에서 발랄한 느낌표가 들어간 교정자의 메모를 발견했을 때, 그가 졸음과 싸우던 중 이 격한 문장부호의 힘을 빌려야겠다고 생각할 만한 무언가를 발견한 게 아닐까 직감했다.


    교정자의 메모를 촉발한 건 「샬럿 브론테가 조지 헨리 루이스에게 쓴 격투 편지」라는 자료였다. 샬럿 브론테의 격투 편지라니! 편지 너머의 이야기를 상상해보자. 샬럿 브론테가 조지 헨리 루이스(조지 엘리엇으로 더 잘 알려진 메리 앤 에번스의 동거인)에게 편지를 쓴다. 편지에서 브론테는 제인 오스틴과 헨리 필딩이 영어로 글을 쓰는 가장 위대한 작가라는 루이스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며, 뒤뜰에서 맨주먹으로 겨룰 것을 요청한다. 브론테는 오스틴이 그리 대단한 작가라서가 아니라 단지 “영민하고 관찰력이 좋았을” 뿐이라고 말하며, 『오만과 편견』은 “울타리를 잘 가꾼 우아하고 정돈된 정원을 생생한 인상 묘사 없이 담은 사진 같다”고 평한다. 장갑을 벗고 싸움질을 시작하려면 이 정도 비판은 해야 할 것 같지 않은가?


    사실 이 전개는 겨우 오탈자 하나가 불러일으킨 나의 상상이다. E를 넣어야 할 곳에 F를 넣은 식자공(요즘의 조판자 역할)의 실수가 풍성한 대안 세계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원래 올바른 책 제못은 『샬럿 브론테가 조지 헨리 루이스에게 쓴 여덟(Eight) 통의 편지』인데 교정자가 여백에 쓴 말처럼 “한결 흥미가 떨어지는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오탈자는 ‘무지로 인한 오류’로 정의되는 철자 오류와는 다르다.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 중에 생긴 오류가 오탈자라면, 철자 오류는 작성자가 해당 단어의 철자를 정확히 알지 못해 생긴 오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오류들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그리고 그게 과연 정말 중요할까?


    마크 트웨인은 “영어 알파벳은 미친 문자다. 영어 알파벳으로 확실하게 철자를 표기할 수 있는 단어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고 했지만, 독자는 우선적이고 암묵적으로 책 속 단어의 맞춤법이 올바르게 표기되어 있을 거라 기대한다. 독서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 인쇄되고 판매되는 책은 당연히 면밀한 사전 검토를 거쳐 잘못된 맞춤법을 모두 바로잡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다 처음 오탈자를 발견하면 반가운 마음이 들 수도 있겠지만, 뒤에서도 계속 눈에 띈다면 책에 대한 신뢰를 잃을 가능성이 크다. 작가와 출판사가 맞춤법 같은 기본조차 제대로 신경 쓰지 않는다면 그 책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독자에게 맞춤법은 시금석 같은 것이다. 이것만 맞아도 다른 많은 걸 용서할 수 있다. 틀린 맞춤법이 많으면 독자는 저자가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이 배신은 웬만해서는 극복하기 힘들다. 책 속에 푹 빠질 수 있어야 하는데, 오류가 계속 보이면 자꾸 이야기에서 빠져나와 현실로 돌아오게 되기 때문이다.



    글은 어떻게 자유로워지는가

    그리고 모두 노란색이었다 ─ 표지와 커버

    이탈리아에서 노란색을 뜻하는 ‘지알로(giallow)’는 범죄와 미스터리 문학 장르를 설명할 때 사용한다. 이탈리아의 몬다도리 출판사는 1929년부터 ‘지알로 몬다도리’라는 범죄 소설 시리즈를 출간했다. 이 값싼 노란 문고판이 얼마나 인기가 많았는지, 이제 지알로는 미스터리 소설이나 불가사의한 미결 사건의 동의어라 해도 될 정도다. 그러니 표지만 보고 책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은 더 이상 하지 말자.


    천상의 눈

    1924년 8월, F. 스콧 피츠제럴드는 프랑스에서 자신의 담당 편집자 맥스웰 퍼킨스에게 편지를 썼다. “나를 위해 아껴두고 있는 그 표지 그림을 절대 다른 사람에게 주면 안 됩니다. 그 이미지를 책에 썼단 말입니다.” 피츠제럴드가 말하는 책은 『위대한 개츠비』였고, 스페인 예술가 프랜시스 쿠가트가 디자인한 이 커버는 초판본에 사용되었다.


    보통 표지 삽화는 책이 다 쓰인 다음, 예술가나 디자이너가 작가의 글을 읽고 해석하며 만든다. 하지만 피츠제럴드는 쿠가트의 삽화에 먼저 반응했고, 본인 말에 따르면 『위대한 개츠비』에 관련 내용을 넣기까지 했다. 2003년 찰스 스크리브너 3세는 「천상의 눈: 변형에서 걸작으로」에서 이 책의 커버 그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20세기 문학 역사상, 아니 어쩌면 시대를 불문하고 가장 유명하고 널리 보급된 표지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이 그림은 1925년 초판에 등장한 후, 대략 반세기 후인 1979년 ‘스크리브너 라이브러리’ 문고판 출간과 함께 부활했다. … 소설과 마찬가지로 이 아르데코 양식의 역작도 고전으로 확고히 자리를 잡은 셈이다. 또 이 그림은 작가와 삽화가 간의 독특한 ‘협업’ 방식을 보여주었다.


    이 표지가 역대 가장 유명한 표지라는 말에 동의하는 사람도,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표지 디자인은 출간된 책 종수만큼 다양하며, 독자들이 꼽는 최고의 표지는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위대한 개츠비』 커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파리는 날마다 축제』에 이렇게 썼다.


    “여행을 시작하고 하루 이틀이 지난 뒤, 스콧이 자기 책을 가져왔다. 번쩍거리는 커버가 씌워져 있었는데, 그 거칠고 저급하고 번지르르한 이미지에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수준 미달의 SF 소설에나 어울릴 만한 커버였다. 스콧은 내게 너무 그러지 말라며 이 그림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롱아일랜드섬의 고속도로 광고판과 관련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이 일화가 시사하듯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표지에 저마다의 의견을 가지고 있다. 『위대한 개츠비』처럼 저자의 생각이 반영된 표지라면, 저자가 가진 책에 대한 통찰을 직접적으로 전해줄 수도 있다. 사랑하는 책을 생각할 때면 특정 판본의 표지가 떠오르고는 한다. 성장할 때 책장에 꽂혀 있던 책이나 학창 시절에 읽어야 했던 책의 표지가 생생히 기억나는 것처럼 말이다. 그 이미지를 잠깐 보는 것만으로도 내용이나 당시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표지 디자인은 책 속으로 들어가는 지름길이자 세련된 마케팅 도구 역할을 한다(혹은 할 수 있어야 한다). 표지는 책의 분위기를 즉각 설정하므로 무엇이 효과적인 표지인지, 시대를 대표하는 표지는 어떤 것인지를 논하는 책, 블로그 글, 기사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영구적인 글 ─ 인쇄

    이상한 나라의 인쇄

    인쇄와 제본은 글에 대한 반응을 바꾸기도 하고 결정하기도 한다. 또 인쇄는 글에 의미와 삶과 권위를 부여하고, 수많은 사람에게 아이디어를 전달할 수 있게 해준다. 좋든 싫든 인쇄는 글에 영속성과 정당성을 부여하고, 세월의 풍상으로부터 글을 보호해준다. 초기에 인쇄된 것은 오직 가장 귀한 글인 성서, 즉 문자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뿐이었고, 우리는 어딘가에 기록되거나 새겨진 글을 바탕으로 고대 문명을 배울 수 있었다.


    인쇄는 다른 방법으로는 대대로 물려주기 힘든 복잡한 아이디어, 생각, 감정을 가장 효율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인쇄가 없었다면 가장 심오한 생각을 기록할 방법도, 인간으로 산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언어로 기록해 공유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인쇄는 수 세기에 걸쳐 재출판을 가능하게 하면서도 글의 고유하고 일관된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무척 놀랍다. 오늘날 인쇄된 『천로역정』도 형태로 보나 매체로 보나 번연히 상상한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책을 제작하는 방식은 그때에 비해 훨씬 진화했지만 말이다.


    세 가지 인쇄 유형

    대부분의 인쇄소에서는 주문형 인쇄, 디지털 인쇄, 전통적 인쇄, 이렇게 총 세 가지 유형의 인쇄를 진행한다. 주문형 인쇄는 이름 그대로다. 20년 전에 경제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최저 인쇄 부수가 750부 정도였다면, 이제는 필요할 때마다 ‘한 권’씩 주문할 수 있다.


    주문형 인쇄는 출판사가 절판될 가능성이 있는 책을 계속 인쇄할 수 있게 해준다. 모든 것이 담긴 보편적 색인이나 모든 책을 모아놓은 보편적 도서 목록처럼 주문형 인쇄는 이론적으로 그 어떤 글도 절판되지 않게 하므로, 책들은 구텐베르크 은하계 어느 한 구석에서 우리를 기다리며 늘 그곳에 있을 것이다.


    주문형 인쇄의 또 다른 놀라운 점은 기계가 다양한 판형과 분량의 책을 멈춤 없이 생산한다는 것이다. 책을 새로 인쇄할 때마다 설정을 변경하기 위해 멈추었다 다시 시작할 필요가 없다. 데이터는 서버에서 제공되니 책을 인쇄하고 표지의 바코드를 스캔하기만 하면, 기계 내부에서 작동하는 칼이 어떤 크기로 잘라야 하는지 결정한다.


    디지털 인쇄는 일반적으로 2부 이상에서 5000부 미만의 문고판 책을 인쇄할 때 사용한다. 이 방식은 인쇄판을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에 준비 비용이 들지 않아 책을 빠르고 저렴하게 인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재판을 찍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기 때문에 출판사가 인쇄 부수를 낮춰 주문할 수 있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재고 압박을 덜 받고 책을 더 오래 판매할 수 있으니 좋은 셈이다.


    전통적 인쇄 방식은 책을 5000부 이상 인쇄할 때 주로 사용한다. 이 방식은 수천 부에 걸쳐 일관되게 고품질을 유지한다는 큰 장점이 있다. 전통적 인쇄는 아마 우리가 인쇄기를 상상할 때 흔히 떠올리는 모습일 것이다. 거대한 종이 두루마리, 엄청나게 크고 시끄러운 기계, 반대쪽 끝에서 책이 나오고 있는 생산 라인 같은 것 말이다. 이 모습은 정말 장관이다. 기계에 공급되는 용지는 한 장에 16페이지를 배치할 수 있을 만큼 거대하지만, 공정이 진행되면서 글은 접히고 접히고 또 접혀서 결국에는 16페이지가 접지된 표준 크기의 종이 묶음이 나온다. 거대한 한 장의 용지에서 시작한 글 덩어리가 점차 줄어들어 간수하기 쉽고 읽기 편한 책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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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