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
 
지은이 : 김종원
출판사 : 서사원
출판일 : 2023년 09월




  • 쓰는 만큼 우리는 더 나은 인간이 되고, 글쓰기는 자신의 영감에 ‘쓸모’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인생을 잘 살고 싶고 내면의 힘을 기르는데 필요한 글쓰기 방법을 소개합니다.


    글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


    괴테의 글쓰기를 당신의 삶에 적용하면 일어나는 변화

    마음을 다해 글을 쓰는 사람에게 좋은 소식만 생기는 이유

    괴테가 평생 쓴 글을 하나하나 섬세하게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이런 느낌을 만나게 된다.


    마치 내게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힘든 마음에 위로가 되는 글이다.

    다시 일어나 힘을 낼 수 있게 해준다.


    괴테가 쓴 거의 모든 책에서 유독 이런 느낌이 드는 이유가 뭘까? 글을 쓰는 괴테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면, 저절로 그 이유를 깨닫게 된다. 바로 이 마음이다.


    “나는 사랑하는 연인에게 속삭이듯이 글을 쓴다. 사랑과 좋은 마음이 담긴 연애편지를 쓰듯 글을 쓰는 셈이다. 쓰는 일이 곧 사랑하는 일이다.”


    그 결과 어떤 일이 생길까? 괴테의 삶에서 볼 수 있듯, 그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20대 중반의 나이에 썼고, 이를 통해서 자신이 사는 독일의 문화 수준을 높였으며, 20대 후반의 나이에 귀족이라는 신분을 스스로 쟁취하여 바이마르 공국을 책임지는 재상이 되었다. 이후에도 좋은 소식은 끊이지 않는다. 철학자 니체, 황제 나폴레옹, 음악가 리스트와 베토벤 등 수많은 분야의 최정상에 있는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평생 성장하는 현역으로 살았다.


    괴테라서 가능한 게 아니라, 마음을 다해 글을 쓴다면 누구나 가능한 일이다. 나는 지난 2년 동안 코로나 사태로 인해 강연 대부분을 온라인으로 진행하면서 내 질문에 멋진 답을 주신 분들께 내 사인이 담긴 책을 100권 이상 보냈다. 물론 모두 내가 직접 서점에서 산 책이고, 조금 비싸더라도 모두 빠른 등기로 보냈다. ‘더 빠르고 안전하게’ 내 마음과도 같은 책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람과 함께 있거나 따로 있을 때도, 늘 나는 내 글의 독자가 되어줄 그들의 마음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운전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우측 차선에 있는 자동차가 차선을 바꾸려는 기미가 보이면 나는 그가 내 앞에 설 수 있게 자연스럽게 속도를 조절한다. 그와 동시에 내 앞에 있는 자동차와 좌측 차선에 있는 자동차 그리고 뒤에 있는 자동차의 경로까지 함께 생각하며 움직인다. 모두가 놀라거나 급하지 않게 최대한 방향과 속도를 조절한다. 초행길에 차선을 잘못 타서 끼어들어야 할 때도 끼어들지 않고 다시 돌아와 제대로 된 차선에 선다. 막히는 차선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서 있는 수많은 자동차에 탄 운전자와 동승자의 힘든 마음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꼭 이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쓰는 일은 곧 사랑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일상에서 시작해야 한다. 잘 사는 사람이 잘 쓸 수 있다. 모든 일상에서 주변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안고 힘낼 수 있게 손을 잡는 일, 그리고 다치지 않고 예쁘게 살 수 있게 진실로 애쓰는 일, 그게 바로 글을 쓰는 사람이 보내면 좋은 일상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기저기에 있는 수많은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다만 조용히 다가가 귀를 기울여, 소리를 글로 바꿔서 쓰면 된다. 그게 바로 글이 ‘마음을 쓰는 일’인 이유다.


    3가지를 기억하며 글을 쓰면 1년 안에 모든 게 달라진다

    글은 자신을 활용하려는 자에게 매우 관대해서, 당신이 지금까지 얼마나 인생을 낭비하며 살았거나, 또는 공부를 하지 않았거나 환경이 풍족하지 않든 상관없이 같은 선에서 출발할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1년 정도만 글을 써보면 이런 사실을 쉽게 체감할 수 있다. 누구든 쓰기 시작하면 삶이 공평해지고, 오랫동안 쓰면 앞서 나아갈 수 있다. 그래서 처음 쓰는 게 어렵지만, 1년 이상 쓴 사람은 대부분 죽는 날까지 쓰는 삶을 멈추지 않는다. 쓰는 나날이 곧 쓰지 않는 다수의 사람들을 앞서가는 나날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으니, 굳이 그 좋은 것을 멈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음 3가지를 기억하며 1년만 글을 써보라. 당신의 삶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① 아무것도 우습게 생각하지 말라

    우리가 바라보는 모든 대상에는 무게가 없다. 무게를 결정하는 건 그걸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이다. 가벼운 시선은 대상까지 가볍게 만든다. 어리석을 사람은 모든 것을 우습게 생각하지만, 분별 있는 사람은 아무것도 우습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안에 무언가 있다. 내가 천천히 하나하나 발견할 생각이다”라는 생각으로 하루를 살면 어제와 다른 일상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렇게 나온 것을 글로 쓰면 저절로 무게가 다른 글이 완성된다.


    ② 안다고 생각한다는 건 모른다는 증거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말 중 하나가 ‘안다’라는 표현이다. 진정으로 아는 사람은 ‘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걸 실천하기 위해 몰입하느라 말할 시간조차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는 아는 것이 거의 없을 때 정확하게 안다고 착각한다. 남과 다르게 또 깊이 있는 글을 쓰려면 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서 의심의 대지에 올라서야 한다. 앎과 함께 의심이 늘어나는 이유는, 실천해서 경험했기 때문에 다른 곳이 보여서이다. 의심은 해본 사람만 발견할 수 있는 실천의 부스러기다.

     

    ③ 말하기 전에 먼저 치열하게 써보라

    인간이란 입으로는 재빨리 말하지만, 글로 쓰는 건 가장 뒤로 미루는 어리석은 동물이다. 말하기 전에 먼저 치열하게 쓰는 시간을 갖는 게 좋다. 생각을 글로 먼저 쓰면서, 당신의 말수는 줄겠지만 글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깊어진다. 더 많이 쓰고, 덜 말하라. 삶을 구성하는 모든 분야에 대해 깊이를 갖게 될 것이다. 



    대상, 누구를 위해 쓸 것인가?

    삶을 그대로 글로 옮기면 일어나는 변화

    다음 문장을 읽어보라. 어떤 생각이 드는가?


    “이건 남들이 싫어하니까, 굳이 말하지 말자.”

    “그냥 다들 하는 대로 따라가자.”

    “하던 대로 하는 게 가장 편하지.”


    일상에서 자주 반복하게 되는 생각들이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우리 내면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 세상이 원하는 대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시간이 지나 어느 순간 돌아보면 이런 끔찍한 사실을 목격하게 된다.


    “나만의 고유한 색이 다 지워졌네.”


    하지만 지금 본 것과 그것에 대한 생각을 글로 매일 쓰는 사람은 매일 새로워지며 자신의 고유한 색도 잃지 않고 간직할 수 있다. 그 사람이 대단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숨기지 않고 생생한 언어로 표현해서 그런 수준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그럼 나를 잃지 않고 간직하며 자신 있게 글로 표현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대상이 필요하다. “누구를 위해 글을 쓸 것인가?” 하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10가지 분야의 글을 쓴다. 다시 말해서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10명을 위해 글을 쓰는 것이다. 대상을 분명하게 정하는 게 왜 중요할까? 만약 당신이 자녀교육으로 분투하는 부모님을 위해서 글을 쓴다면,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것을 그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글을 쓸 수 있다. 어떤 장소에서도 자녀교육의 메시지를 발견해서 글로 가공하는 능력을 순식간에 갖게 되는 셈이다. 우리 주변에 아무리 영감이 넘쳐도 “누구를 위해 글을 쓸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하지 못한 상태라면, 그 넘치는 영감을 하나도 낚아채지 못하게 된다. ‘대상’은 영감을 잡는 ‘그물’이다.


    매일 새로워지며 자기만의 고유한 색을 갖고 싶다면 “누구를 위해 글을 쓸 것인가?”라는 질문에 좀 더 치열해져야 한다. 그 대상이 분명히 정해지면 당신은 살아가는 모든 나날을 그대로 글로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당신의 하루는 글쓰기에 최적화된 상태를 원한다

    자신의 일상을 글쓰기에 최적화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괴테는 언제나 ‘개인의 소중함’을 강조하며 마지막까지 지키려고 분투했다. 그가 세운 원칙은 크게 다음 2가지다.


    ① 모든 선택은 자신의 의지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② 우선적으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마침내 전체의 행복이 생겨난다고 생각하며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이 각자 자기의 의무를 다하고, 모두가 자신이 맡은 일의 테두리 내에서 정직하고 유능하게 행동한다면, 전체의 평화와 성장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그는 글을 쓰면서 사는 작가로서의 직업에 충실하기 위해, 평생 다음 2가지를 자신에게 묻지 않았다.


    “대중이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어떻게 전체를 이롭게 할까?”


    그가 글쓰기로 최적화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평생을 지킨 원칙의 핵심은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자신의 ‘통찰력’을 키우고 자신의 ‘인격’의 질을 높이면서, 스스로 ‘위대한 가치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 것만’을 표현했다.


    “내가 작가로서 대중이 원하는 바를 목표로 삼고 그것을 충족시키려 했다면, 잡다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 그들을 조롱했을 것이다.”


    자신에게 집중하지 않고 자꾸만 다른 사람을 바라보게 되면 그의 단점과 비난할 부분만 보인다. 동시에 상대를 비난하기 위해 자신에게 집중할 시간을 소비하게 된다. 하지만 각자 자기에게 주어진 원칙에 충실한 삶을 살면 모든 게 해결된다. 괴테는 그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삶의 주인공은 세상이 아니라, 내가 정하는 거다. ‘나는 세상의 주인공이다’라고 생각하면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글쓰기의 중심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타인을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은 없다. 글쓰기를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주인공의 삶을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보는 힘, 남과 다른 것을 어떻게 발견할 것인가?

    당신이 일상의 글쓰기를 시작하면 달라지는 것들

    글쓰기에 대한 조언은 매우 다양하다. 생각에 따라 첫 문장에 대한 조언도 이처럼 가지각색으로 나타난다.


    “첫 문장은 대충 써라.”

    “첫 문장에 모든 것을 담아 써라.”

    “첫 문장은 신중하게 써라.”


    틀린 말은 하나도 없다. 모두 맞는 말이고 참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중요한 건 ‘공통점이 무엇인지’를 찾는 일이다. 여러분은 뭐라고 생각하는가? 3가지 조언에서 나타나는 단 하나의 공통점은 ‘쓴다’라는 행위에 있다. 목적지로 향하는 길은 모두 다르지만, 반드시 써야 도착한다는 사실은 일치한다. 쓰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나의 글쓰기 멘토인 괴테와 이어령 선생은 생전에 어디를 가든 펜과 노트를 가지고 다녔다. 그것도 늘 가장 부드럽게 써지는 펜만 고집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방금 떠오른 영감이 달아나기 전에 노트에 적기 위해 거칠게 글을 써도 종이가 찢어지지 않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배운 나도 마찬가지다. 글은 책상에서만 쓰는 게 아니다. 아니, 오히려 일상의 글쓰기를 실천하는 사람들은 책상에 앉아 글을 쓰지 않는다. 책상은 그들에게 문서를 정리할 때나 필요한 인테리어의 일종이다. 나는 늘 밖으로 나가 영감 하나를 발견하면, 늘 내가 생각한 것들 중 가장 잘 맞는 주제와 연결해서 생각한다. 그런 방식으로 생각하면, 현재의 영감이 과거 사색했던 주제에 대한 해결책을 줄 때가 많다. 그것은 마치 집을 짓기 위해 벽돌과 벽돌을 서로 이어 붙이는 행위와도 같다. 그렇게 당장 서로 이어 붙이지 않으면, 다음 걸음을 걷는 순간 방금 잡은 영감을 잃게 될 것이다.


    가까운 지방으로 강의를 가든, 먼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든, 근처 동네를 산책하든, 나는 순간적으로 매일 나만 지을 수 있는 ‘언어의 집’을 짓는다. 영감과 영감을 벽돌처럼 연결해서 지은 ‘언어의 집’을 통해, 나는 내가 돌아갈 또 하나의 공간을 얻는다. 그래서 내게는 힘든 감정을 치유할 공간이 여기저기에 참 많다.


    그렇게 일상에서 매일 ‘언어의 집’을 짓는 사람은 어떤 곳으로 여행을 떠나든, 떠날 때보다 귀국할 때 더욱 행복하다. 이유가 뭘까? 그냥 떠난 사람은 귀국할 때 그저 아쉽기만 하다. 자신이 돌아온 곳으로 가려면 다시 휴가를 내고 비행기 티켓을 구매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이 머물렀던 곳에 ‘언어의 집’을 짓고 온 사람은, 언제든 생각만으로 돌아갈 집이 있어 평온한 나날을 살아갈 수 있다. 동시에 순간적으로 잡은 수많은 영감을 그 안에서 언제든 꺼내볼 수 있기 때문에 귀국 후에 일적으로 필요할 때 언제든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더욱 귀국을 기대하게 된다.


    나는 전 세계에 내가 늘 편안하게 돌아가 쉴 수 있는 집을 갖고 있다. 글쓰기는 그 장소에 나를 붙잡아두는 일이다. 나는 그곳에 붙잡혀 평생 머물 집을 짓는다. 나는 여기에도 있지만 거기에도 있다. 생각만으로 돌아가 편안히 쉴 수 있는, 게다가 평생 월세나 재산세도 내지 않는, 오히려 영감이라는 근사한 글감을 마구마구 주는, 그런 멋진 집을 짓고 살고 있다. 이게 바로 내가 여러분께 일상의 글쓰기를 권유하는 이유다. 이 좋은 걸 굳이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변주, 발견한 것을 그에게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시야를 확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스스로 생각한 내용을 상대방에게 적절하게 전달하려면, 넓고도 깊은 시야가 필요하다. 그리고 지금보다 좀 더 자신의 시야를 확장하려면, 세상에 존재하는 이것과 저것을 자유롭게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사물과 사건의 양면성을 알아차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누군가 지금 당신 앞에서 과학에 대해서 말하고 있어도, 글쓰기에 대한 문제를 가슴에 담고 있는 사람은 과학 안에서 수학과 예술을 발견해야 한다. 과학의 양면을 보면 수학과 예술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내가 여기에서 강조하는 모든 것의 양면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의 자세이자 태도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하루는 샐러드를 만들기 위해 오이를 자르다 나는 이런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리 세심한 손길로 얇게 오이를 잘라도, 반드시 2개의 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세상에 양면이 아닌 존재는 없다. 당신의 시선이 섬세하면 섬세할수록 볼 수 있는 양면의 질과 방향도 섬세해진다. 잘린 오이의 한 면은 푸른 하늘을 바라볼 것이고, 다른 한 면은 고소한 마요네즈를 바라볼 것이다. 그렇게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보이는 세상도 다르다는 사실을 오이를 자르다가 깨달았다. 양면에서 바라본 하늘과 마요네즈까지 짐작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시야를 확장하면 좀 더 자신의 생각을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다.


    그런 일상을 보내려면 ‘틀린 것이다’라는 표현을 지울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이런 방식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의 생각이 틀린 것이 아니라 나와 입장이 다른 것이고, 그가 찾아낸 답이 틀린 게 아니라 나와 바라보는 시선이 다른 것이다. 세상에 완벽한 정답은 없다. 자기만의 길을 걸어야, 자기만의 눈을 가질 수 있고, 양면을 바라보며 시야를 확장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런 의문에서 당장 벗어나야 한다.


    ‘이게 옳은 길인가요?’

    ‘내가 잘 걷고 있나요?’


    스스로 판단한 길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 굳이 타인의 동의를 구할 필요는 없다. 믿을 수 있는 건, 내가 어제까지 걸어온 길 위에 남은 흔적뿐이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을 품에 담으려는 표현을 써야 한다. 주변을 살펴보면 이런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내 글을 읽는 한 사람을 위해’

    ‘내 강연을 듣는 한 사람을 위해’

    ‘한 사람이라도 변할 수 있다면’


    물론 귀하고 귀한 표현이다. 사람은 참 소중한 존재니까. 나도 처음에는 ‘한 사람’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게 정말 내 마음에서 나온 말인가?’

    ‘더 많은 사람을 품을 수는 없는 걸까?’


    그런 질문 끝에서 나는 조금 더 근사하면서 솔직한 표현을 만났다.


    ‘내 글을 읽는 수만 명을 위해’

    ‘내 강연을 듣는 수만 명을 위해’

    ‘100만 명을 변하게 할 수 있다면’


    시야를 확장하려면 당연히 더 많은 사람을 품에 안고 살아야 한다. 수많은 사람을 위해 쓰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을 가져라. 다만 사랑받기 위해서 그런 마음을 갖는다면, 아마 실패할 것이다. 사랑은 주는 거니까. 이렇게 생각하라.


    “살아 있는 동안,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전하고 싶다.

    한 사람도 좋지만,

    수만 명이라면 더 좋을 것 같다.”



    쓰기, 가장 쉽고 생생한 언어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나의 브랜드가 되는 글은 이것이 다르다

    글을 쓰는 이유는 사람에 따라 매우 다양해서 읽히는 글을 쓰거나 책을 내는 것이 반드시 당신의 목적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글로 알리고 공감하는 사람을 모으는 일은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무언가를 통해 공감을 받는다는 것은 앞으로 다가올 인공지능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삶에 큰 경쟁력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물론 상업적인 이들도 생기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나와 생각을 공유하는 근사한 인연을 맺을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브랜딩이다.


    글을 써서 당신의 이름을 알리려면, 꼭 거쳐야 할 4단계 과정이 있다.


    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면 ‘일기’가 된다.

    ② 남도 읽고 싶은 이야기를 쓰면 ‘좋아요’가 붙는다.

    ③ 세상에 필요한 이야기를 쓰면 ‘공유’가 된다.

    ④ 도움을 주려는 마음을 담으면 ‘브랜드’가 생긴다.


    이 단계를 차분하게 읽고 마음에 새겨라. 4단계가 가장 멋져 보이지만 누구나 1단계인 일기 쓰기 먼저 시작해야 한다. ‘일기’를 쓰기 익숙해져야 ‘좋아요’가 붙는 남도 읽고 싶은 이야기를 쓸 수 있고, 그 단계를 혹독하게 지나야 ‘공유’할 가치가 있는 글을 완성할 수 있다. 브랜딩은 그 이후에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일이다. 하나의 단계에 ‘수많은 시간’과 ‘사람’, 그리고 ‘사랑한 공간’과 ‘그 안에서의 경험’이 필요하다. 또한 단계 하나를 넘을 때마다 “아, 이렇게 힘들면 차라리 글쓰기를 포기해야겠다”라는 두려움에 직면해서 이겨내야 한다. 언제나 다음 단계는 그 막연한 고통과의 전쟁에서 이긴 자에게만 주어지는 값진 선물이다.


    가장 좋은 글은 화려하거나 유려한 문체가 돋보이는 글이 아니다. 어떤 과장이나 아쉬움 하나 없이 머릿속에 있는 자기 생각을 100퍼센트 가깝게 복사해서 종이에 붙여넣기할 수 있다면, 당신은 자신의 브랜드를 가진 4단계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 브랜드란 결국 자신의 내면을 밖으로 끄집어내는 거니까. 그런 단계에 도달하면 이제 여러분의 삶은 걱정이 사라지게 된다. 글의 주인이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읽어도, 단 한 줄만 읽은 경험만으로도 “아, 이건 그 사람이 쓴 글인 것 같은데!”라는 확신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브랜드를 가진 사람의 가치이자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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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