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 정글
 
지은이 : 벤 윌슨 (지은이), 박선령 (옮긴이)
출판사 : 매일경제신문사
출판일 : 2023년 09월




  • 문명의 껍질 뒤에 숨겨진 도시 속 야생의 세계를 탐험해보세요. 왜 도시 속에서 숲보다 다양한 종의 생물이 발견될까요? 도시 속에 존재하는 자연의 풍부함, 도시 생태계의 순수한 역동성을 만나봅니다.


    어반 정글


    도시의 경계

    에코톤

    생물학자들은 두 개의 생물군계가 만나 생태계가 충돌하고 뒤섞이는 전이 영역을 설명할 때 ‘에코톤(ecotone)’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숲과 초원이 만나는 곳일 수도 있고 강이 습지와 만나는 곳일 수도 있다. 이 단어는 그리스어 oikos(집)와 tonus(긴장)에서 파생된 것이다. 끊임없이 재창조되는 역동적인 환경이고 투쟁과 상호의존의 영역이다. 에코톤은 놀라운 생물 다양성과 풍부한 종이 존재하고 그 결과 뛰어난 적응력을 발휘하게 되는 장소다.


    생물 다양성이 번성할 수 있는 인간 서식지와 자연 서식지 사이의 반(半)야생적인 경계면인 도시 변두리를 에코톤으로 여기기 시작해야 한다. 1978년 W.G. ‘버니’ 티글(W. G. ‘Bunny’ Teagle)이 ‘끝없는 마을(The Endless illage)’라는 짧지만 매우 영향력있는 소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영국 웨스트 미들랜즈에 있는 버밍엄과 블랙 컨트리 광역 도시권의 탈공업화된 변두리 지역을 버스와 도보로 2,100킬로미터 가량 여행한 뒤 나온 결과물이다.


    전 세계를 집어삼킨 산업혁명의 토대가 된 상처투성이 지역에는 채석장, 광산, 광재 더미, 공장, 용광로, 철도선, 운하, 발전소, 주택단지, 고속도로 등 인간이 변화시킨 풍경으로 가득하다. 티글이 “난잡한 모자이크”라고 부른 이곳은 인간 활동과 자연이 서로 얽혀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티글은 이 남용되고 버려진 땅에 생명이 가득한 것을 보고 놀랐다 인간이 방치한 덕에 자연이 번성할 수 있었다. 자연은 이 버려진 변두리 땅의 관목과 황야, 늪지, 습지, 숲에서 재생을 위한 틈새를 발견했다. 이건 새로운 양생이다. 혹은 오래된 야생, 그러니까 한때 도시를 에워싸고 도시 거주자들에게 도피처를 제공했던 거칠고 험준한 변두리 땅으로 돌아간 것일지도 모른다.


    티글이 발견한 것은 블랙 컨트리에만 해당되는 모습이지만, 거의 모든 도시에 그와 비슷한 수준의 남은 땅이 있다. 그것이 인공과 자연이 깊게 어우러진 야생의 풍경, 즉 에코톤이다. 버니 티글이 블랙 컨트리의 변두리 땅을 획기적인 방법으로 조사한 지 불과 20년 만에 영국에서 또 다른 발견이 이루어졌는데 이번에는 에식스의 산업 지대에서다. 그곳에는 240에이커 크기의 원유 하역장이 울타리로 둘러싸인 채 정유소, 신규 주택, 원형 교차로, 캔비섬의 대형 슈퍼 사이에 30년 동안 버려져 방치되고 있었다. 여기는 모닥불, 트레일 자전거, 불법 쓰레기 투기 등에 사용된 전형적인 야생 변두리 땅이다. 하지만 이런 거친 모습 속에 마법이 잠재되어 있었다. “캔비의 열대 우림”이라는 별명답게 제곱미터 당 서식하는 생물종 수가 자연 보호 구역보다 많았고 희귀하고 멸종 위기에 처한 종도 여럿 있었다.


    지난 세기 내내 생물 다양성 보존 전략은 깨끗한 자연 환경에만 초점을 맞추고, 도시 서식지나 지저분한 변두리 땅은 무시했다. 또 그린벨트를 유지한 것은 농업을 보호하고 무질서한 도시 확장을 제한하기 위해서일 뿐 그것이 생물 다양성과 야생 생물과 어떤 가치가 있는지는 무시했다. 하지만 이제 도시-전원 지대의 에코톤이 자연 보호의 우선순위가 될 때가 왔다. 그곳은 놀랍도록 생산적인 서식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린벨트는 잘못된 조치다. 지구에 필요한 건 도시 가장자리에 설치된 야생 벨트 또는 생태 완충 지대다. 이런 야생 생물 보호 구역은 자연 생태계를 보존하는 동시에 심각한 홍수, 공기 오염, 물 부족, 사막화에 대한 방어벽 역할도 할 수 있다. 이런 반(半)야생 상태의 외벽은 단순히 보기 좋은 장식지대 정도가 아니라 경제적이고 실존적인 필수품이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뉴욕의 조수 습지와 델리를 둘러싸고 있던 숲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은 후회해야 마땅한 일이다. 식량, 연료, 건축 자재, 물 같은 필수품을 먼 곳에서 조달할 수 있게 되면 도시가 배후지와 어떤 식으로 연관돼 있는지 잊을 수도 있지만, 기후 변화 때문에 도시의 인접 환경 내에서 도시의 위치를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우리는 도시의 그늘진 곳이 전형적인 황무지처럼 보이지 않더라도 자연계에는 매우 좋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야생 생물은 이곳에서 인간과 가까운 거리에 사는 방법에 적응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탐욕과 폐기물이 모든 생태계를 위해서는 인류세에 꼭 필요한 지역을 만들 수 있다. 도시 변두리 지역은 미래의 야생 생물 보호구역이 될 수 있다. 이곳을 보존하면 밀집된 도시와 산업화된 농업 지대로부터 수많은 종을 보호하는 피난처가 될 것이다.



    공원과 레크리에이션

    도시의 공원

    뉴욕의 센트럴 파크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무자비한 인간의 도시 풍경 속에 보존된 맨해튼의 원시적인 풍경의 잔해, 현대 사회의 철의 논리 안에 남겨진 자연의 조재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실은 샤 자한의 샬리마르 정원이나 오늘날의 프레시 킬스 공원처럼 공학적이고 인공적인 주변 환경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1857년 전까지 그곳은 키가 작은 관목으로 뒤덮인 늪지대와 바위투성이 땅이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군대 야영지, 채석장, 쓰레기 더미, 돼지 사육장, 농장, 육수 공장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1850년대에는 이곳에 대규모 불법 거주자 캠프가 있었다. 여기는 자연 그대로의 지역이 아니다.


    시간, 노동력, 비용은 자연을 뉴욕의 의지에 맞게 굴복시키기 위한 핵심 요소였다. 센트럴 파크의 공동 설계자인 프레드릭 로 옴스테드(Fredrick Law Olmsted)와 그의 사업 파트너인 칼베르보(Calert aux)는 1858년에 공원 디자인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몇 년 동안 이 부지를 말끔히 고르기 위해 게티스버그 전투에서 사용한 것보다 더 많은 화약을 사용했다. 약 14만 세제곱미터의 토양과 암석을 제거하고 뉴저지주와 롱아일랜드주에서 실어온 더 적합한 표토로 교체했다. 언덕과 경사면 모양을 바꾸고 인공 절벽을 설치했다. 개울은 지하에 설치된 거대한 격자 모양 파이프 속으로 사라졌다. 이 파이프는 가장 경치 좋은 연못과 폭포 쪽으로 초원 습지의 물이 흘러가도록 방향을 바꾸었다. 영국, 스코틀랜드, 프랑스의 종묘장에서 수십만 종의 식물과 관목을 수입했다. 옴스테드와 보는 그 지역 전체를 재정렬했다. 그리고 건설 공사 기간 동안 토착 동식물들은 현장이 완성된 이후의 시기와 마찬가지로 파괴적인 영향을 받았다.


    옴스테드의 공원은 녹색의 시처럼 설계되었다. 산책자들이 계속 바뀌는 풍경 속을 걸으면서 다양한 감각적 경험을 할 수 있는 곡선형 길이 특징인 목가적인 풍경이다. 그는 자기가 만든 공원에 “즐거운 불확실성과 섬세하고 신비로운 분위기”가 생기기를 원했다. 센트럴 파크에 간 사람들은 다양한 경치를 제공하는 완만하게 경사진 풍경에 감싸이게 된다. 옴스테드는 근처 도시풍경을 나무로 가려서 자기 공원이 “전원 지대처럼 널찍하다”고 착각하게 만들었다. 딱딱한 경계 없이 나무, 관목, 잔디, 계곡, 연못이 서로 어우러진 자연적인 공원의 느낌이 제작자의 손길 흔적을 가려줘야 한다. 옴스테드가 센트럴 파크에 조성한 분위기는 “이 도시에서 가장 불행하고 가장 법을 지키지 않는 계층을 조화시키고 개선시킬 수 있는 영향, 즉 예의와 자제력, 절제심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그는 믿었다.


    음주와 나쁜 행동을 멈추게 하는 공원이 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정신을 고양시키기 위해 의도적인 설계를 해야 했다. 옴스테드는 영국식 목가적인 조경에 담긴 “아름답고 고요한 풍경”이 이렇게 조화를 이루는 효과를 발휘한다고 생각했다. 잡초와 덤불은 불온한 쾌락을 위한 장소다. 런던 변두리에 있는 무성한 무어필트는 오랫동안 사회 통념에 어긋나는 성적 접촉을 하는 장소로 이용되었는데 주로 동성애자들이 많이 찾았다. 그와 대조되는 덤불 없는 공원은 식물학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통제의 장소였다. 노동자 계급이 많이 사는 런던 동부의 베스날 그린에 있는 빅토리아 공원은 상류층이 많이 찾는 리젠츠 공원과 거의 똑같이 지었다.


    지저분한 공유지나 황무지와 다르게 많은 노동력을 쏟아서 만든 화단, 구불구불한 길, 위풍당당한 나무, 드넓은 풍경이 있는 세심하게 조성된 조경 공원은 잘 정돈되고 규율을 지키는 사회를 상징한다. 자연의 힘만으로는 사람들을 개선할 수 없다면, 빅토리아 공원은 울타리와 조례, 경찰들을 동원해서 예의범절을 지키도록 강요했다. 몇몇 예외가 있긴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휴양지로 방치되어 온 거칠고 정동되지 않은 도시 공유지는 주변에 울타리를 두르고 집중적인 보살핌을 받는 새로운 종류의 깔끔하고 도시적이며 부르주아적인 장소로 전환되었다. 빅토리아 공원은 과거 노동자 계급이 거친 스포츠 경기나 정치 모임을 열곤 했던 일종의 야생 황무지인 보너스 필즈 위에 건설되었다.


    ‘타임즈(The Times)’ 기사에 따르면 장미 덤불과 화단이 있는 새롭게 조성된 야외 공간은 사람들의 행동을 개선한다.


    “씻지도 않고 면도도 하지 않은 채 셔츠 바람으로 문 앞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일요일을 완전히 게으르게 보내는 데 익숙했던 많은 남자들이 이제 최대한 깔끔하게 옷을 차려입고 일요일 저녁에 아내나 아이들과 함께 공원을 산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엄청난 비용을 들여 배터시 필드를 조경해서 배터시 공원을 만들자, 중산층 언론은 공원의 아름다움과 방문객들의 행동 면에서 이 지역의 “존경할 만한 부분”을 새롭게 찾은 것을 축하했다. 공원은 인간과 자연의 바람직하지 않은 부분을 차단했다. 도시 녹지는 “적절한” 꽃과 관목, 나무, 풀을 포함시키고 잡초로 간주되는 것들은 체계적으로 제거하라고 요구했다.



    캐노피

    숲의 권리와 투쟁

    베를린 사람들은 숲에 대한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길고 힘든 싸움을 벌였다. 독일 황실 수도는 유럽에서 가장 밀도가 높고 녹지가 적은 도시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 가장자리에는 숲이 있었는데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1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7,400에이커 규모의 그루네발트도 그중 하나다. 이곳은 왕실 사냥터로 보호받았기 때문에 도시 개발로 인한 영향을 받지 않았다. 보통 크기의 도시였던 베를린이 1890년대에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대도시로 성장하게 되자, 도시에서 온 수천 명의 소풍객과 주말 방문객들이 그루네발트에 무단 침입해 나무 주위를 어슬렁거리거나 호수에서 수영을 하면서 왕실 사냥터의 장관과 화려함을 해치게 되었다. 그들은 1879년부터 걷거나 기차를 타고 그루네발트로 왔다. 제멋대로인 베를린 사람들은 자기들 것이라고 생각되는 숲에서 레크리에이션에 열중했고 결국 카이저는 이 숲을 버리고 도시의 지저분한 손에 더럽혀지지 않은 더 먼 보호구역으로 가야 했다. 베를린 사람들은 자신의 발, 피크닉 담요, 맥주통으로 투표권을 행사한 것이다. 카이저가 갑자기 자리를 옮긴 뒤 그루네발트는 놀고, 마시고, 먹고, 수영하고, 노래를 부르는 주말여행 장소가 되었다. 그러나 사냥에 쓰이지 않는 그루네발트는 국가 자산이 되었고 값비싼 교외 빌라 건축용으로 조금씩 매각되면서 수입을 창출할 수 있었다.


    20세기 첫 10년 동안 베를린 노동자 계급, 자유주의 언론, 도시 정치인들은 그루네발트에 임박한 파괴를 지속적으로 반대했다. 그들은 그 숲이 도시민들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빅토리아 양조장에서 열린 대규모 모임에 참석한 노동자들은 그루네발트를 훼손할 경우 항의 시위를 벌이겠다고 다짐했다. 베를린 노동자 계급이 생각할 때 그루네발트는 자신들의 것이었다. 그 숲은 그들의 가족생활과 도시생활의 모든 경험과 관련이 있다. 그들은 ‘삼림 학살’에 맞서 싸울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숲을 구하고 자연에 대한 권리를 유지하기 위한 캠페인은 감정적인 격전이었다. 그건 역사상 최초로 진행된 대규모 환경 캠페인이자 후대 베를린 시민들이 보여준 생태 행동주의의 전조였다.


    프로이센주와 10년간 싸움을 벌인 끝에 베를린은 마침내 1911년에 그 숲을 매입했다. 과거 중세시대에 숲에 많은 투자를 했던 프랑크푸르트나 뉘른베르크 같은 도시들의 발자취를 따르게 된 것이다. 오늘날 베를린 산림청은 대도시 경계 내에 있는 290제곱킬로미터의 도시림을 관리한다. 다른 도시와 비교해보면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될 것이다.


    세계의 다른 국가들도 독일을 따라잡고 있다는 징후가 있다. 2020년 마드리드는 도시 주변에 있는 76킬로미터 길이의 삼림지대인 보스케 메트로폴리타노의 열악한 대기질을 개선하기 위한 계획을 발표했다. 베이징은 주변 지역에서 기념비적인 조림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녹색 목걸이’라는 걸 만들고 있다. 이 도시는 2012년부터 2016년까지 17만 3,000에이커의 땅에 5,4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는데, 이는 겨울에 몽골고원을 휩쓰는 시베리아 바람을 막기 위한 장벽이다. 이 바람이 고비 사막의 모래를 쓸어와서 거대 도시를 사막화의 위험에 빠뜨린다. 해마다 모래 언덕이 베이징과 가까워지고 있고 모래 폭풍과 오염 물질이 결합되면 대기질이 더 위험해진다. 산사태 위험에 직면한 리마는 주변 언덕 일부를 숲 공원으로 바꾸고 있다. 이런 계획은 모두 너무 급진적인 얘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건 도시가 생존하려면 주변에 나무가 있어야 했던 역사적 시대로 회귀한 것이다. 그린벨트는 잊어버리자. 도시에는 삼림지대가 필요하다. 숲은 인간이 아무리 원해도 건설이 불가능한 바다처럼 여긴다면 도시는 숲 주변에서 성장하거나 가장자리에서 멈출 것이다.



    생명력

    허드슨 강

    뉴욕과 그 주변의 대도시권에 사는 1,300만 주민들의 복지는 허드슨 강 하구의 활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뉴욕은 “기후 변화와 관련된 홍수나 강한 폭풍에 잘 견디는 보다 회복력 있는 해안선과 하천 제방, 습지를 조성해서 자연 수문학과 수력학”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이런 요구는 유토피아적인 환경론자들에게서 나온 게 아니다. 이건 미 육군 공병대가 수십 년간 진행해 2020년에 발표한 조사 내용의 정점이었다. 이 보고서는 점진적인 도시 확장으로 시작된 일이 하구의 전체적인 “과잉 개발, 착취, 황폐화”로 확대되어 지역 환경이 훼손되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 거주자들의 미래 전망까지 위태로워졌다는 사실을 감추지 않았다. 도시화가 진행 중인 나머지 세계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분명하다. 뉴욕은 끝없는 성장을 추구하다가 자연적인 한계를 훨씬 뛰어넘었고, 금세기 말에 수몰될 위기에 직면해 있다.


    1609년에 네덜란드인들이 허드슨만 지역에 오기 전까지 뉴 암스테르담, 그러니까 훗날의 뉴욕 변두리에는 물이 가득했다. 삼면은 바다고 북쪽은 습지였다. 이 도시는 비할 데 없이 다양한 생물이 사는 하구 생태계에 둘러싸여 있었다. 허드슨 강 하구의 습지는 북미 지역 철새들의 대규모 이동 경로인 대서양 철새 이동 경로의 주요 기착지였다. 이곳의 지형은 농업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러나 생물 다양성이 매력적인 음식 메뉴를 제공했고 덕분에 이 만의 토착 주민인 레나페족은 이를 통해 오랫동안 생계를 꾸릴 수 있었다. 이곳의 축축한 진흙투성이 환경은 인간에게 귀중한 서비스를 제공했다. 바다에 대한 완충 역할을 하고, 파도 에너지를 분산시키고 홍수를 흡수하는 첫 번째 방어선이다.


    물, 사방에 물이 있지만 마실 물은 한 방울도 없다. 습지와 갯벌은 생계 수단이 아니라 성장의 장벽이었다. 뉴욕 사람들이 의지했던 물은 맨해튼섬의 끄트머리에 파놓은 우물에서 나왔다. 이 지하수만으로는 도시 전체가 마시기에 부족했기 때문에 수조에 모은 빗물로 보충했다. 18세기 중반쯤에는 오수 구덩이, 화장실, 거리의 지표수 등으로 물이 오염되어 말들도 마시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18세기 말이 되자 도시의 유일하게 남은 생명의 원천인 콜렉트라 연못도  오염이 되어 연못을 메워버렸고 그 위에 쓰레기 매립지를 지었지만 습기 많은 근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뉴욕의 하구 생태계가 인공적인 생태계로 변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를 보여준다. 20세기에 전 세계 도시 인구가 급증하면서 지구 습지의 60퍼센트가 파괴되었다. 이 소중한 생물군계는 지구상에서 가장 빨리 사라지고 있는 생태계로, 숲보다 3배나 속도가 빠르다.


    도시 성장을 위한 길을 닦기 위해 맹그로브 숲을 파괴하는 일이 전 세계적으로 만연하고 있는데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첫째, 맹그로브는 놀랍도록 다양한 야생 생물의 서식지다. 또 중금속과 의약품 폐기물을 가둬서 수생 환경을 정화한다. 가장 도움이 되는 건, 맹그로브 숲은 다른 숲보다 4배나 효율적으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눅눅한 토양에 수천 년 동안 탄소를 저장한다는 것이다. 맹그로브는 밀려오는 파도, 해안 침식, 해수면 상승에 대한 최전선 방어선이다.


    미리 계획되지 않은 비공식 정착지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은 최근 매립되어 맹그로브 숲 같은 자연적인 보호 장치가 없는 땅의 습하고 비위생적인 환경에 처해 있다. 빠른 성장과 빠른 수익에 현혹되어 있을 때는 습지, 강, 전체적인 수문 시스템을 재설계하는 데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인류 역사 내내 그런 일을 해왔는데 지금은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도박이 너무 오래 지속될 수도 있다. 영웅적인 공학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지금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면서 다가오는 물 위기에 대한 자연적인 해결책을 찾고 있다.



    주트로폴리스

    도시의 동물들

    엘사라는 별명을 가진 멧돼지 한 마리가 국제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자기 새끼들과 함께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수영하는 사람의 노트북 가방을 들고 달아난 것이다. 최근 몇 년 새에 멧돼지가 베를린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고 인간들 주변에서 하는 행동이 점점 대담해지고 있다. 멧돼지는 지난 몇 년 동안 도시로 엄청나게 유입된 동물의 일부다.


    브리즈번에는 코알라가 살고, 퍼스에는 멸종 위기에 처한 카너비앵무새가 거주하고 있다. 같은 시기에 송골매가 도시화되고 도시에 꿀벌이 급증했으며 중부 유럽 교외 지역에는 늑대가 어슬렁거리고 있다. 그리고 현재 미네소타주에서 흰꼬리사슴이 가장 많이 서식하는 지역은 트윈 시티 메트로 지역이다. 황금사자 타마린은 브라질 도시에 정착했다. 깨끗해진 물과 도시 수로의 재자연화 덕분에 2000년 이후 싱가포르, 시카고, 그리고 100개 이상의 영국 마을과 도시에서 수달이 발견되었다.


    고층 빌딩의 좋은 위치에서 도시를 관찰하는 송골매는 손상된 환경을 인식하지 못한다. 자연 사냥터의 절벽과 협곡을 연상시키는 풍경이지만 먹잇감이 풍부한 만큼 실제 협곡보다 낫다. 1983년에 송골매 한 쌍이 뉴욕으로 이주한 뒤 40년이 지난 지금, 이 도시는 세계에서 송골매 밀도가 가장 높은 곳이다. 한편 델리에서는 비둘기 수가 증가하자 2010년대 후반에 송골매, 벵갈수리부엉이, 시크라, 황조롱이, 보넬리 독수리가 대도시에서 운을 시험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송골매가 군림하는 건 아마도 건강한 도시의 증거일 것이다. 그들은 미생물, 곤충, 작은 포유류 및 새의 먹이 사슬에 의존하는 최상위 포식자다. 송골매가 도시에 사는 이유는 이곳이 그 어느 때보다 생물 다양성이 높기 때문이다.


    도시 토착종인 동물은 없다. 우리 인간이나 송골매, 쥐처럼 모든 도시 종은 새로운 생태계에서 운을 시험해 보려고 하는 이주자들이다. 도시화되는 법을 배운 야생 동물은 ‘신어바니제이션(synurbanization)’이라는 과정을 거친다. 송골매는 인간의 대도시를 풍요로운 환경으로 재인식하기 때문에 신어바니제이션의 상징이다. 도시화된 동물은 가소성이 뛰어나다. 그건 새롭고 당황스러운 환경, 특히 인간이 가까이 있는 환경에 맞게 다양한 행동을 적응시키는 능력이다. 쥐, 바퀴벌레, 비둘기, 원숭이는 수천 년 동안 이 일을 해왔다. 이제 엄청나게 다양한 동물이 여기에 합류하고 있다. 그리고 전임자들처럼 그들도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도시는 기후 비상사태에 적응하고 자연에 대한 요구에 대응하면서 상당한 변화를 겪고 있다. 그 결과 정돈되지 않은 공원, 늘어난 캐노피, 재야생화된 습지와 강 등을 갖추게 된 도시는 많은 종들에게 훨씬 매력적인 환경이 되었다. 하지만 도시 밖에서도 상황은 변하고 있다. 도시 확장, 농업 강화, 삼림 벌채, 폭염, 가뭄과 산불은 많은 종들이 도시에서 피난처를 찾으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도록 만든다. 인간이 저지른 행동의 해로운 결과를 피해 탈출한 이 생명체들을 위해 도시 중심부를 우호적인 환경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동물과 인간이 한데 섞이다 보면 항상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엘사와 베를린 멧돼지 문제로 돌아가 보자. 탐욕스러운 엘사처럼,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동물들이 금세 쓰레기통을 뒤집고 정원과 공원, 묘지를 파헤치는 성가신 존재로 변했다. 베를린에서는 1년에 동물 2,000마리를 도살한다. 2020년 봉쇄 기간에 수달이 싱가포르 연못을 습격해서 값비싼 양식 물고기를 잡아먹자 수달을 죽여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싱가포르인들은 수달을 격렬하게 옹호했고 총리도 개인적인지지 트윗을 올렸다. 세인트 폴과 미니애폴리스의 쌍둥이 도시는 유해조수 구제 전문가에게 사슴 한 마리당 250달러를 지불하고 피임약을 주사하면 마리당 700달러를 준다. 도시 변두리는 사슴과 멧돼지가 살기에 매우 좋은 환경이기 때문에 그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들은 라임병을 비롯해 여러 가지 골칫거리를 가져온다.


    교외 주택 뒷마당은 합법적으로 권장되는 개체수 통제 방법인 보라인(bowline)사냥터가 됐다. 영국에서는 도시에 사는 오소리에 대한 불만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런던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종들이 증가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생태학적 불모지이자 황폐한 장소라고 여겼던 도시에 야생동물이 너무 많다면 불평하기까지 한 세기도 채 걸리지 않았다. 우리가 동물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두려워하든 간에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비인간 생물들과 공존하는 데 익숙해져야 하는 게 현실이다. 당면한 과제는 이 관계가 어떻게 작용할지 이해하는 것이다.


    도시 경관에서 야생동물이 번성하는 건 확실히 건강한 도시의 신호다. 회색머리날여우박쥐가 멜버른으로 몰려든 것은 최근 수십 년 동안 토착 식물들이 꽃을 피웠기 때문이다. 대형 박쥐가 살기에 적합한 공간이 된 도시는 사람들에게도 이롭다. 하지만 대량 별종을 생각하면 현대 도시를 녹화하는 건 매우 시급한 문제다 그것은 미적인 기호나 기후 변화에 대한 적응보다 시급하다. 어떤 종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걸 막고 싶다면, 자연을 멋진 부가물이 아닌 생존에 중요한 것으로 여기면서 도시를 더 야생적인 환경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의 운명은 도시로 들어오는 동물들과 연결되어 있다. 도시 환경을 동물에게 더 우호적으로 만들면 인간에게도 더 건강하고 행복한 환경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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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