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건너는 생각
 
지은이 : 김누리, 조병영, 문영훈, 박태순, 조천호, 정현경, 김길홍, 나성섭, 함돈균, 김보람 (인터뷰어)
출판사 : 이상북스
출판일 : 2023년 02월




  • ‘사회공론장 프로젝트’에서 2020년부터 2022년에 이루어진,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첨예한 문제의식을 갖고 삶과 사유, 생각과 실천, 비판과 대안을 통합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온 이들의 여덟 편의 대화를 수록했습니다.


    생각을 건너는 생각


    정상의 병리성: 사회를 구해야 한다

    코로나 펜데믹은 ‘재난혁명’

    함돈균: 오늘은 한국 사회 전반, 특히 교육 문제와 관련해 큰 반향을 일으키는 이야기를 하고 계신 김누리 교수님과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뵙고 싶었습니다. 오늘은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에리히 프롬의 ‘건전한 사회’에 나온 정상성의 병리성, 그러니까 ‘병리적 상황이 정상적인 것으로 계속 유지된다’는 관점으로 한국 사회를 진단해 오셨습니다. 이후 코로나 사태를 지나오면서 한국 사회를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는 새로운 프레임 같은 걸 공유해 주실 수 있을지요?


    김누리: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는 사실 한국 사회에 대해서 많은 것이 변해야 한다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기 때문에 한국 사회를 볼 때마다 희망보다 절망이 더 컸습니다. 제 정서를 지배하고 있던 것은 무력감이었어요. 그러나 냉소주의는 아닙니다.


    그런데 한국이 코로나 팬데믹을 만나 이것을 이겨나가는 과정을 보면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 우리 안에 대단한 것이 성장했구나, 이런 걸 느꼈어요. 가장 위급한 시기에도 한국은 국경 봉쇄도 하지 않고 이동 통제도 하지 않았죠. 유럽의 전통적 국가들이 하지 못하는 새로운 방식의 자율성을 개인들이 어떤 공동체성을 위해 수용한 거죠. 위기 시에도 패닉이 일어나지 않는 사회가 지금 한국 사회입니다. 그것을 처음 느낀 것은 2016년 11월 26일이었어요. 이날이 광화문에 최대 인파가 모인 날이지요. 200만 명 이상. 아마 세계 민주주의 역사상 단일 집회로는 최대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집회였죠. 그날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을 때 제가 충격을 좀 받았어요. 아, 우리에게 저런 기품 있는 얼굴이 있었구나, 우리 안에 저런 표정이 숨어 있었구나.


    저도 문학을 하는 사람이니까 그때 발터 벤야민이라는 독일 철학자가 떠올랐어요. 발터 벤야민은 복잡한 사안을 굉장히 함축적인 언어로 잘 포착하는 사상가인데, 그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유토피아는 위기의 순간 섬광처럼 번쩍하는 기억 속에 있다. 멋있는 말이긴 한데 이해도 쉽지 않은 말입니다. 그런데 그날 11월 26일에 그 말을 좀 이해하게 됐어요. 그러니까 그 위기의 순간에 거기에 모인 사람 하나하나가 한 조각 기억을 들고 나온 거예요. 혹은 한 조각 기억이 그리로 나오게 한 거예요. 그래서 한국은 앞으로 그런 유토피아가 소멸되진 않겠구나, 했죠. 왜? 부모들이 어린아이들의 손을 잡고 다 나왔으니까요. 부모들이 아이들 기억 속에 그 유토피아를 심어준 거죠. 그것이 또 한 조각 기억으로 남아서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켜주겠구나, 이런 느낌을 받았거든요.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도 아, 우리에게 이런 성숙함이 숨어 있었구나, 그런 위로를 받은 것 같아요.


    함돈균: 그런 민주주의 혁명이 있었지만 한국 사회는 사실상 반복적인 정치적 내전 상태에 빠져 있고, 촛불정신을 이어받은 정부라고 하기에는 문재인 정부 역시 많은 허약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고 보시는지요?


    김누리: 그 당시 촛불에 담긴 시대정신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는 세월호로 상징되었던 인간 존엄의 문제였고, 두 번째는 최순실-박근혜가 상징하는 부패와 국정농단, 즉 사회정의에 관한 문제였죠. 촛불정신이라고 했을 때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자는 구호도 있었지만 그 내용은 국민을 존중하는 것, 그리고 이 사회가 정의로울 것, 이 두 가지였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문재인 정부 이후의 사회에서도 이 가치가 크게 발전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사회적 정의라고 하는 것이 어느 정도 구현되었는지 살펴보면, 별로 한 게 없어 보이죠. 특히 교육 문제와 관련해 이 사회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논쟁 중에 ‘공정’이라는 이슈를 보면, 실제로 한국 사회가 나아간 면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소위 ‘조국 사태’ 이후 분출된 교육에서의 ‘공정’이라는 이슈를 예로 들어 볼까요? 공정이라는 게 사실 양날의 칼이에요. 우선은 불공정과 특권 같은 것을 비판하는 긍정적 칼임은 분명하죠. 그런데 또 다른 측면에서 차별과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개념이기도 합니다. 나는 열심히 노력해서 이 대학에 들어왔는데 왜 저들은 사회적 약자라는 이름으로 배려받아 이 학교에 들어오지? 이런 식인 겁니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이런 제목의 책도 있잖아요. 이런 것들이 바로 공정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놓은 어두운 양날의 칼이며, 이런 지점에서 오히려 차별이나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영속화하는 부정적인 칼로 작용하죠.


    그런데 과연 지금 한국에서는 공정이 긍정적인 칼로 쓰일까요, 부정적인 칼로 쓰일까요? 제가 보기엔 긍정적인 칼로 더 많이 쓰인다고 하기는 어렵다는 거죠. 그리고 이런 현상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실제적인 개선책을 내놓은 게 별로 없다는 겁니다. 특히 교육정책 관련해서는요. 문재인 정부가 공정이라는 것을 내세우면서도 대학입시에서는 정시 모집인원을 확대하면서 살인적 입시 경쟁을 더 부추기는 일들을 하거든요. 그러니까 경쟁을 통해 ‘공정’을 강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공정이 사회적 정의의 하위개념이라는 거죠. 그런데 이 공정이라는 것도 상당히 낮은 수준에서 이야기됨으로써 한국 사회의 기득권 구조를 타파하지 못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리터러시: 우리 삶과 세상을 바꾸는 공동체적 인지능력

    리터러시를 경험하라!

    함돈균: 귀국하시자마자 EBS 등의 방송에서 ‘리터러시’ 기획 관련 자문과 출연 등을 통해 문해력 열풍을 일으키셨습니다. 사실상 한국 대학에서 리터러시 전공 1호 교수라고도 알고 있습니다. ‘리터러시’란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요? 문해력이라는 말과 동의어라고 볼 수 있나요?


    조병영: 두 번째 질문부터 답을 드릴게요. 먼저 문해력과 리터러시는 동의어라고 볼 수 있지만 그 의미가 상당히 다르게 쓰이는 것 같습니다. 문해력은 리터러시의 번역어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해하는 문해력은 리터러시 초기 연구의 의미에 가깝습니다. 최근 저희 연구실에서 지난 10년간의 언론 자료를 텍스트 마이닝(text mining) 기법으로 조사했는데, 문해력이라는 말은 주로 기초학력, 학교 성적, 책 읽기라는 말과 함께 쓰였습니다. 대조적으로 리터러시라는 말은 미디어 리터러시, 디지털 리터러시, 미래 역량 등의 말과 함께 사용되었고요. 재미있는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같은 말이 이렇게 완전히 다른 맥락에서 다른 의미로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사용되고 있으니 말이죠.


    좀 우습긴 하지만 저는 그래서 요즘 문해력을 리터러시의 관점에서 설명하려고 합니다. 문해력이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 정도의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 훨씬 넓은 의미역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니까 한글을 깨치고 문자를 아는 등의 기호를 이해하고 풀어쓰는 것에서부터 그것으로 정보와 지식, 관점을 취하고 형성하는 과정, 종국에 다양한 세상사에 참여하면서 중요한 일들을 결정하고 첨예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사회적 참여까지 봅니다. 그래서 문해력, 그러니까 리터러시는 텍스트를 매개로 하여 생각하고, 배우고, 표현하고, 참여하는 과정이며, 이것은 ‘실천적 의미 구성 과정’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많은 학부모가 문해력을 어떤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글자 깨치기, 어휘력, 독해력 등이요. 그래서 그런 것을 잘 익히면 문해력이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것들은 문해력의 기본이 되는 중요하고 핵심적인 요소이자 기술이지 그것들을 숙달한다고 해서 그것의 총체적 역량인 리터러시가 숙달되는 것은 아닙니다. 리터러시는 능력이라기보다는 실제 또는 실천, 즉 ‘그렇게 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다시 말해, 여러 가지 하위 기술들뿐만 아니라 그런 기술들을 사용하고 싶은 동기와 정서가 뒷받침되어야 하며, 그런 기술을 책임감 있게 사용할 수 있는 정체성도 필요합니다. 그러니 문제집 두 권 풀고 단행본 다섯 권을 읽어도 문해력을 섭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죠. 오히려 텍스트를 꾸준히 읽고 쓰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정리하고 생산하는 것 자체가 리터러시고, 그런 리터러시 경험을 통해서 더 좋은 리터러시를 실천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잘 훈련된 기술과 지식이 어떤 특정한 문제 상황에서 매우 유기적인 방식으로 선택, 조합되어 맥락적으로 수행될 때, 그것을 일종의 리터러시 능력 또는 역량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합니다.


    함돈균: 책의 부제가 ‘리터러시를 경험하라’입니다. 리터러시를 ‘경험’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조병영: 역시 질문이 날카로우시네요. 배움은 경험에 기인합니다. 경험하지 않으면 배울 수 없습니다. 옛날 심리학에서 행동주의자들은 여러 가지 하위 기능이나 기술에 대한 분절적 훈련으로 배움이 가능하다고 봤습니다. 인지심리학이 대두되면서 그런 기능들을 배울 때 학습자가 어떤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하고 지식을 구성하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했지요.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그렇게 좋은 기술, 기능, 지식, 사고를 가르쳐도 그것을 학습자 스스로 경험하지 않으면 배움이 일어나지 않아요. 자신이 직접 그렇게 생각하고 읽고 쓰고 판단하는 것을 몸으로 체험할 때 학습이 일어나죠. 우리는 이것을 체화된 학습(embodied learning) 또는 맥락화된 학습(situated learning)이라고 부릅니다. 알게 된 기술과 지식을 실제의 문제 상황에서 지적, 정서적, 사회적 역량을 동원해 직접 적용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실제적 학습입니다.


    이런 면에서 ‘산 경험(lived experience)’은 최고의 배움입니다. 직접 살아 있는 경험을 함으로써 매우 구체적으로 배우는 것이죠. 그런데 학교에서는 이런 산 경험을 하는 일 자체가 어렵습니다. 제도로서의 학교가 원래 그렇게 만들어진 곳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두 가지가 중요합니다.


    하나는 어떻게 아이들이 ‘좋은 경험’을 하게 도와줄 것인가? 좋은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좋은 배움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반지성적 사건들에 연루된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이 의식적으로 그런 일을 저질렀다기보다는 많은 경우 자신이 여태 경험했던 것들에 근거해 그렇게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 어ᄄᅠᆫ 사건이 터진 것은 그만한 역사와 경험의 축적에 근거한 것이지 단지 일회성으로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좋은 경험을 한 사람들은 좋은 방식으로 살기 마련입니다. 안 좋은 경험을 한 사람들은 안 좋은 경험들을 통해 배운 것들로 살아가는 것이죠.


    다른 하나는 얼마나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실제적 상황을 만들어줄 수 있는가입니다. 이것은 시뮬레이션(simulation)의 문제입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학교는 실제의 삶과는 동떨어진 문화적 공간입니다. 그렇다면 학교가 삶과 연계되는 진정한 배움의 공간이 되기 위해서 삶의 문제들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어야 해요. 이런 점에서 디지털 기술의 역할이 기대됩니다. 가령 국회의원을 만나서 대화하고 지역 문제에 관해 토론할 기회가 아이들에게 주어지기란 거의 불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메타버스의 공간이라면 어떨까요? 그 안에서 지역 국회의원을 만나 이야기하고 토론하거나 적어도 그의 아바타를 만나서 쪽지를 전달할 수 있겠지요. 아이들은 그 쪽지를 만들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지적, 정서적, 사회적 역량을 동원할 겁니다. 왜냐하면 직접 사이버상에서 만나서 쪽지를 전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덧붙이자면, 학습과학 분야의 중요한 연구 주제 중 하나가 이렇게 실제적인 문제 상황을 어떻게 학습자에게 시뮬레이션으로 제공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지금: 미래가 존재할 마지막 시간

    미래 의제가 아닌 지금 당장의 문제

    조천호: 왜 기후위기에 지금 당장 절박하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볼게요. 5억 4천만 년 전에 캄브리아기 대폭발이 일어나서 제대로 형태를 갖춘 생명들이 지구에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환경이 변화하면 멸종하게 되는데, 보통 하나의 종이 탄생하면 500만 년에서 길게는 1000만 년 동안 생존해요. 호모사피엔스, 현생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한 건 약 20만 년 정도 되었잖아요. 그런데 기후위기와 환경 파괴로 멸종할 상황이에요. 그것도 자연환경이 변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환경을 변화시켜서 스스로 멸종을 향해 가는 겁니다. ‘슬기로운 인간’인 호모사피엔스가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만든 거예요. 지금 우리 인류는 스스로 자기 목에 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기려는 상황이에요.


    지구 평균기온 상승은 체온 상승과 비슷해요. 화석연료를 태워서 온실가스를 증가시켜 지구 평균기온이 100년 동안 1도가 올랐어요. 정상 체온에서 1도 정도 올라가면 컨디션이 안 좋아 자기 몸의 이상 상태를 감지하죠. 그것처럼 지금은 전 지구적으로 기후위기가 일어난 게 아니라 기후위기의 전조 현상들이 나타나서 기후위기를 감지하는 수준이에요. 2도 이상 올라가게 되면 지구가 탄성력을 잃어버려요. 볼펜 심 앞에 있는 스프링을 조금 당겼다가 놓으면 제자리로 돌아오지만 확 당기면 다시 제자리로 안 돌아오잖아요. 지구 평균기온이 2도 이상 상승하면 탄성력을 잃어버려 회복 불가능한 위험에 빠지게 돼요. 예를 들어 2020년 6월 시베리아에서 38도까지 기온이 올라간 지역이 있었어요. 그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한 가지는 눈이 녹아버렸기 때문이에요. 원래 그 지역은 항상 눈이 덮여 있어야 하는데 기온이 올라 그 지역 눈이 녹아버린 거죠. 눈이 없어 토양이 드러났어요. 눈이 덮였을 때는 햇빛이 반사되어 우주로 되돌아갔는데 눈이 없어지니까 햇빛, 즉 태양에너지가 지상에 흡수된 거예요. 기온이 더 높아져 눈을 더 많이 녹일 테고, 그러면 더 많은 태양에너지를 흡수하잖아요. 인간이 배출하는 온실가스와 상관없이 스스로 계속 기온이 올라가는 거죠.


    이렇게 자기증폭적으로 기온이 상승할 수 있는 요소가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가 있어요. 5억 4천만 년 동안 다섯 번의 대멸종 사건이 있었는데, 자기증폭적으로 기후가 변해 일어났죠. 우리가 지구 평균기온을 상승시킨다는 건 지구가 대멸종을 일으키도록 우리 스스로 방아쇠를 당긴다는 의미예요. 결국 지구 조절 시스템이 다 붕괴돼요. 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한 이래 수많은 위험을 거쳐오면서 오늘날의 찬란한 문명을 만들었어요. 그동안 전쟁, 감염병, 자연재난, 그리고 최근 들어 금융위기 등이 있었어요. 이때 인류는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지만 그런 것을 극복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냈죠. 즉 지금까지 모든 위험은 회복할 수 있는 위험들이었어요. 그런데 기후위기는 회복 불가능해요. 그래서 기후위기는 지금까지 인류가 경험했던 위험과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위험인 거예요. 남은 시간이 얼마 없어요. 바로 지금 당장 대응하지 않으면 안 돼요. 다음 세대가 대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말이지요. 바로 지금이 최후 기회이자 최선 기회이므로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합니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위기

    함돈균: 크린에너지, 대체 에너지에 대한 엇갈린 관점이 있지 않습니까? 원자력발전소를 다른 발전소로 대체하고 화석연료 대신 상용 전기자동차로 바꾸면 된다고 하거나, 어떤 사람은 배터리를 사용하는 데에도 에너지가 소비되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이야기하기도 하고요. 대체 에너지를 만드는 어떤 결사적 노력이 있는 한편 그에 대해 서로 엇갈리는 이데올로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진보적 관점의 사람들 사고 안에도 기술 이데올로기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조천호: 오늘날 위기는 대량 생산, 대량 소비, 대량 폐기에서 비롯됩니다. 대량 생산을 하기 위해 착취적으로 에너지와 자원을 빼다 쓰고 거의 공짜에 가깝게 온실가스와 오염먼지를 배출하고 쓰레기를 버린단 말이죠. 이 과정은 순환이 안 돼요. 에너지는 재생되어야 하고 자원은 순환되어야 하는데 말이죠. 산업혁명 이후 이 세상은 재생할 수 없는 화석연료에 기반하여 구축되었죠. 인류는 이 조건에 탁월하게 적응해서 거대한 가속으로 성장해 왔지만, 그 같은 조건은 항구적이 아니라 일시적일 수밖에 없어요. 오늘날 산업은 기후위기를 일으키도록 구축되었지 기후위기에 대처하도록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에너지 시스템을 완전히 바꿔야 할 상황에 직면했어요. 전 세계적으로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죠. 이러한 전 세계적 흐름과 달리 유독 한국 사회는 재생에너지로 해결이 불가능하니 핵발전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요. 우리나라 핵발전 찬성론자는 우리나라 자연 환경에서는 재생에너지로 전력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고 재생에너지 폐기물 문제가 심각할 것이라고 비판해요. 결국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이 불가능하니 그 대안으로 핵발전 확대를 주장하는 거죠. 핵재앙, 핵폐기물, 핵확산의 위험을 뒤로 감춘다면 핵발전도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모든 걸 다하자(do everything)’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잡한 문제에 대한 간단한 대답은 틀릴 가능성이 크죠.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핵발전 확대라는 간단한 해법도 마찬가지예요. 기후위기 대응이 그처럼 간단하다면 이 세상이 이 문제로 골머리를 썩일 이유가 없겠죠?


    이제 핵발전은 ‘위험과 혜택’ 수준뿐만이 아니라 ‘비용과 효과’ 측면에서도 더 가능하지 않아요. 핵발전이 시장에서 무너지고 있어요. 재생에너지 가격이 급격히 내려가고 있기 때문이에요. 지난 10년 동안 태양열 패널 가격이 85퍼센트 떨어졌어요. 풍력은 55퍼센트까지 가격이 내렸고요. IPCC 6차 보고서에서 현 수준 기술로 2030년까지 핵발전은 태양광, 풍력 발전에 비해 이산화탄소 감축 규모가 9분의 1 정도이며 비용도 훨씬 비싸다고 분석했어요. 지난 10년간 가장 빠른 기술혁신과 대량 생산이 있었던 분야는 원자로가 아니라 태양광, 풍력과 전력 저장에 필요한 배터리 등 재생에너지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대한민국이 OECD 국가 중 재생 비율이 가장 밑바닥 수준이에요. 태양광은 위도가 낮을수록 유리한데 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 나라인 독일보다 위도가 무려 15도나 낮아요. 우리나라는 풍력이 북유럽처럼 풍부하지는 않지만, 상공에 제트기류가 흐르기 때문에 적다고만 볼 수는 없어요. 골프장을 서울 면적만큼이나 사용하는 나라예요. 건물 및 도로와 철도 주변, 방음벽, 주차장, 댐, 저수지와 대륙붕 등 태양광과 풍력 발전을 할 곳이 우리 국토에 널려 있어요.


    김보람: IMF 때처럼, 전시 상황 때처럼 시민사회와 국가와 기업, 특히 기업들이 총동원해 이걸 함께해야 할 것 같은데요. 저는 일본과 소통을 많이 하는데, 일본에서는 대한민국이 최근 ‘그린뉴딜정책’을 대대적으로 내세워 시행한다면서 한국의 국가 주도 전환 정책에 관심을 많이 가지더라고요. 그런데 이런 국가 정책도 여러 가지 모순이나 한계점 같은 게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조선호: 우리나라는 2010년 첫 번째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수립한 이후 지금까지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어요. 줄여야 한다는 소리만 요란할 뿐 중국 및 인도와 더불어 배출량을 증가시키는 대표적인 나라죠.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감축 목표만 바꾸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애쓰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한때는 ‘녹색성장’을 외치며 전 국토를 파괴했죠.


    ‘그린뉴딜’은 탄소 배출 감축과 경제 문제 해결을 동시에 추구하면서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 보건과 교육, 돌봄 등을 해결하기 위한 국가 프로젝트죠. 문제는 실제 그린뉴딜정책이 정의로운 정책을 피한 채 고용에 방점을 찍었다는 것이죠. 그러면 녹색성장식 그린뉴딜이 될 거예요. 이제 세계적인 경제 전문 기관들은 석탄산업이 좌초 산업이 될 것이라고 전망해요.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2022년에 새 석탄발전소를 운영하기 시작했고 앞으로 석탄발전소를 여섯 개 짓겠다고 해요. 비행장도 새로 만들겠다고 하고요. 항공은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산업이에요. 우리나라엔 엄청난 세금을 들여 지었지만텅 빈 상태로 운영하는 비행장이 여러 개 있어요. 다 국익을 위한 사업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그 국익이 누구의 이익인지 저는 궁금해요. 지금 대한민국은 기후위기보다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는 정치가 더 큰 위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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