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바꾼 화학 이야기 2
 
지은이 : 오미야 오사무(역:김정환)
출판사 : 사람과나무사이
출판일 : 2023년 06월




  • 건축 패러다임을 바꾼 ‘철근 콘크리트’ 개발, 자동차 사회의 주춧돌이 된 ‘공기를 넣은 고무 타이어’ 발명에 이르기까지 최첨단 문명을 꽃피운 물질의 중심, ‘화학’을 이야기합니다.


    세계사를 바꾼 화학 이야기2


    HISTORY OF CHEMISTRY _ 자본주의에서 제국주의로

    1804년 _ 식품 보존 기술 발명 - 식품 살균과 보존을 위해 지혜를 짜내온 인류

    세균ㆍ곰팡이를 공격해 파괴함으로써 생물을 보호하는 물질, 포름알데히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자기가 원하는 신선 식품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고, 그것을 보관하는 데서도 어려움을 겪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나 인류 역사의 대부분 기간은 신선 식품을 구하고 보관하는 방법을 터득하기 위해 분투해온 녹록지 않은 여정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말하자면 인류는 기나긴 세월 동안 시행착오를 하나하나 겪으며 경험을 쌓는 과정에서 식품을 좀 더 효과적으로 보존하기 위한 지혜로운 방법을 터득해왔다.


    대표적인 식품 보존 방법을 몇 가지 살펴보자. 먼저 염장은 어류, 육류, 채소 등에 소금을 뿌려서 저장하는 방법이다. 소금이 뿌려지면 어류나 채소 표피에서 물이 흘러나와 바깥쪽 진한 소금을 옅게 만들려고 한다. 이것이 ‘삼투 현상’이다. 식품 내부에서 자유롭게 이동하는 물이 삼투 현상에 의해 농도가 높은 바깥쪽으로 흘러 나가 내부의 물이 일정 비율 이하로 줄어들면 곰팡이 등이 생기지 않는다.


    훈제는 나무를 태운 연기로 그슬려서 살균하는 기술이다. 나무를 태운 연기가 뛰어난 살균력을 갖는 이유는 그 속에 반응성이 높은 포름알데히드나 페놀류(페놀이라는 분자 구조를 공통 부분으로 포함한다) 같은 살균 작용이 강한 분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포름알데히드는 학교 과학실에 있는 생물 표본을 담그는 액체인 포르말린 성분이다. 이는 반응성이 높은 분자로, 세균·곰팡이 등을 즉시 공격해 파괴한다. 그런 까닭에 포름알데히드는 생물 표본을 보존하는 데 안성맞춤이다.


    페놀류도 살균 효과가 뛰어나다. 페놀류로는 훈제한 음식의 표면을 주로 살균한다. 동시에 독특한 냄새와 함께 페놀류 등 여러 분자가 ‘스모키한(훈제한 맛이 나는)’ 풍미를 지니게 한다. 와인이나 증류주 등을 숙성시키는 데 주로 사용되는 나무통에서도 페놀류가 배어 나와 독특한 풍미를 더해준다. 영국 아일라섬의 위스키는 ‘소독약 냄새’, ‘병원 냄새’를 연상시키는 강렬한 풍미로 유명한데, 이는 피트(이탄)를 태워 맥아를 건조할 때 스며든 피트향이다.


    1839년 _ 아편전쟁 - 영국의 압도적인 해군력 앞에 몰락한 중화제국

    중국 상인의 차 독점 상황이 만든 두 가지 역사적 흐름, ‘아편전쟁’과 인도산 차 ‘아삼 홍차와 다르질링 홍차의 탄생’

    18세기 중반 이후 홍차 문화가 전 계층으로 전파된 영국에서 중국산 차의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그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급기야 수입 초과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 상인이 차를 독점 판매하고 있던 데다 그들은 오로지 금과 은만을 차 대금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매년 오늘날의 가치로 환산할 때 무려 1조 원 이상의 막대한 금액을 은으로 지급해야 했던 셈이다.


    이런 상황은 아무도 예기치 못한 두 가지 굵직한 역사적 흐름을 만들어냈다. 그중 하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추악한 전쟁으로 불리는 ‘아편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인도에서의 차 재배, 즉 ‘아삼 홍차와 다르질링 홍차의 탄생’이다.


    영국은 중국에 강매할 상품으로 인도 벵갈산 아편을 들여와 밀매를 시작했다. 이는 차로 인해 발생하는 무역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한 자구책의 하나였다. 아편은 양귀비의 덜 익은 꼬투리에서 나오는 분비물을 추출해 건조시킨 고무 모양의 흑갈색 물질이다. 아편에 들어 있는 성분의 하나인 모르핀은 진통·마취 효과가 뛰어나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지만 의존성이 매우 강하다는 심각한 문제점도 있다.


    양귀비는 지중해 동부 지역이 원산지인 식물로 이미 고대 문명 시대부터 약초로 사용되어왔다. 그러다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원정을 통해 양귀비가 인도에 전래되었으며(여기에는 다양한 설이 있다), 이후 중국에도 전파되었다. 20세기 초 무렵까지만 해도 시럽이나 리큐어 등의 형태로 알코올보다 저렴하게 아편을 구할 수 있었다. 충격적이게도 과거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칭얼대는 아이를 얌전하게 만들기 위한 용도로 아편을 사용하기도 했다.


    아편전쟁의 영향으로 일어난 태평천국의 난으로 2,000만 명이 사망하는 대참사가 벌어지다

    1776년 이전까지 200상자 정도에 불과하던 수입 아편이 1838년에 이르러서는 4만 상자 이상으로 크게 증가했다. 그러자 중국 은이 대량으로 유출되어 나라 재정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치달았다. 여기에 아편 중독으로 인한 폐해가 갈수록 심각해지자 청왕조는 흠차대신 임칙서를 광저우로 파견해 영국이 들여온 대량의 아편을 전부 몰수해버렸다. 이에 영국은 자유무역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우며 전쟁을 선포했다. 최초의 교전에서는 영국 군함 2척이 청의 군함 29척과 맞붙었다. 1839년 11월의 일이다. 그리고 이내 영국 함대가 파견되어 대규모 전투를 벌인 끝에 청의 구식 군함을 괴멸시켰다. 이는 이듬해인 1840년의 일이다. 이후 1842년 난징조약이 체결되어 청의 도시 홍콩이 영국에 할양되었다.


    아편전쟁을 계기로 ‘중화’ 제국은 본격적으로 서구 열강의 간섭을 받기 시작했다. 또 그 연장선에서 곤궁에 빠진 민중이 태평천국의 난에 참여해 2,000만 명 가까이 사망하는 대참사가 벌어진다.


    1860년 무렵 _ 발효 원리를 해명하다 - ‘미생물학의 아버지’ 파스퇴르가 이룬 업적

    ‘백신’이라는 용어를 만든 역사적 인물이 파스퇴르라고?

    프랑스 생화학자 루이 파스퇴르(1822~1895)는 인류가 오랫동안 이용해온 맥주·빵·와인 등의 발효 원리를 밝혀내고 미생물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과학계의 거인 중 한 명이다. 그는 ‘생명이 저절로 생겨난다’는 기존 과학계의 상식을 부정하고 그 오류를 지적했다. 또한 그는 분자의 입체 구조를 밝혀내 화학 분야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루이 파스퇴르는 백신 연구에 온 열정과 노력을 쏟았다. 그에 앞서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1749~1823)가 우두(소가 걸리는 바이러스성 전염병)에서 유래한 성분을 주사하는 방법으로 천연두를 예방하고 퇴치하는 위대한 업적을 세웠다. 이는 1795년의 일이다. 파스퇴르는 제너의 접종법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며, 그러한 방법을 ‘백시네이션’이라고 명명했다. 이는 라틴어로 ‘암소’를 의미하는 ‘와카’에서 유래한 용어다. 그는 또 이러한 예방 제제를 ‘백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이후 파스퇴르는 광견병 백신을 개발해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


    1885년 _ 자동차 발명 - 자동차가 20세기 사회를 송두리째 바꿔놓다

    벤츠가 ‘자동차의 아버지’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까닭은?

    인류 역사상 자동차를 맨 처음 발명한 사람은 누구일까? 프랑스 발명가 니콜라 조제프 퀴뇨(1725~1804)다. 흥미롭게도 그가 자동차를 만든 계기는 자동차 그 자체가 아닌 ‘대포’에 있었다. 말하자면, 그는 스스로 달리는 기동성 있는 대포를 만들기 위해 연구에 연구를, 실험에 실험을 거듭한 끝에 증기기관을 장착한 자동차를 발명하게 된 것이었다. 1769년의 일이다. 참고로, 이 자동차에는 브레이크가 없었던 탓에 운전 중 벽으로 돌진해 인류 최초의 자동차 교통사고를 일으키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독일 기술자 니콜라우스 오토(1832~1891)는 석탄가스를 사용하는 소형 4사이클 엔진을 발명했다. 이 엔진은 오늘날의 자동차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휘발유 엔진(4사이클 엔진)의 원형으로 인정받고 있다. 4사이클 엔진(4행정기관)은 엔진 실린더 안에서 흡기 → 압축 → 폭발 → 배기를 반복함으로써 회전을 지속한다. 사실 그 이전에도 석탄가스로 만든 점화용 불씨를 이용해 연소시켜 피스톤을 움직이는 거대한 엔진은 이미 발명되어 실생활에 사용되고 있었다. 문제는 석탄가스를 사용할 경우 소형화가 어렵다는 점이었다.


    독일의 카를 벤츠(1844~1929)는 세계 최초로 삼륜 자동차를 만들었다. 이는 1885년의 일이다. 이 자동차는 최고 회전수가 분당 250회전에 0.75마력인 1기통 4사이클 엔진을 탑재해 시속 12~15킬로미터로 달릴 수 있었다. 또한 이 자동차는 전기점화장치, 냉각수를 식히는 라디에이터, 커브를 돌 때 안쪽 바퀴와 바깥쪽 바퀴가 달리는 거리 차이를 해소하기 위한 차동기어등을 장착했다. 벤츠는 흔히 ‘자동차의 아버지’ 또는 ‘자동차 산업의 아버지’라는 영광스러운 애칭으로 불린다. 이는 그가 오늘날의 자동차와 동일한 구조의 자동차를 발명해 선보였기 때문이다.


    이는 여담이지만, 차동기어는 자동차에서 가장 중요한 장치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만약 이것이 없다면 운행 중 커브를 매끄럽게 도는 일조차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그런데 놀랍게도 벤츠보다 400여 년 앞서 이미 차동기어를 설계한 대단한 인물이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1452~1519)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는 다빈치가 얼마나 대단한 천재인지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1886년 _ ‘코카콜라’ 탄생 - 세계사를 바꾼 20세기 대표 음료수

    코카콜라 발명자 존 펨버턴 vs. 펩시콜라 발명자 케일럽 브래덤

    발포성 천연 광수(메네랄 워터)가 건강에 좋다는 소문이 퍼져 나가면서 큰 유행이 시작되었다. 18세기 말엽의 상황이다. 그 즈음 소다(탄산수소나트륨)와 구연산을 녹여서 인공적인 발포성 음료를 만드는 업자가 등장했는데, 그렇게 탄생한 음료수를 ‘소다수’라고 불렀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발포성 레모네이드 등이 탄산음료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와 더불어 이 시대 미국에서는 알코올, 카페인, 모르핀 등이 함유된 수상쩍은 매약이 암암리에 확산되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두 가지 열풍, 즉 ‘탄산음료 열풍’과 ‘매약 열풍’이 하나로 융합한 결과 오늘날 세계적인 음료수의 대명사격인 ‘코카콜라’가 탄생했다. 코카콜라는 전 세계를 제패한 음료수이자 20세기를 대표하는 음료수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새로운 음료수 코카콜라를 맨 처음 개발해 대중에게 선보인 이는 조지아주 애틀란타에 사는 약제사 존 펨버턴(1831~1888)이다. 1886년, 그는 서아프리카에서 자생하는 콜라나무 열매(kola nut)와 남아프리카에서 자생하는 코카나무 잎(coca), 텍사스에서 자생하는 다미아나(damiana) 추출물을 섞은 다음 쓴맛을 갖추기 위해 설탕을 첨가하고 탄산수에 타서 강장수를 만들었다. 이는 오늘날로 치면 에너지 드링크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시절 페루와 볼리비아 등지의 민중은 정복자들이 강요하는 중노동에 시달리며 코카나무 잎을 각성제로 사용하곤 했다. 페루의 해발 고도가 높은 지대에서 자라는 코카나무 잎에는 코카인이 들어 있다. 이로 인해 코카나무 잎 수출이 활발해짐에 따라 당시 페루 경제 자체가 크게 융성했다.


    1860년, 코카나무 잎에서 코카인을 분리·정제하는 방법이 어느 독일인에 의해 고안되었다. 이후 코카인은 대중적 각성제의 일종이라는 지위를 확고히 한 채 인기를 얻어 나갔다. 참고로, 영국 작가 아서 코넌 도일(1859~1930)이 쓴 『셜록 홈스』시리즈에서는 홈스가 코카인을 각성제로 애용하는 상황이 묘사된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오늘날의 콜라에는 코카인이 들어 있지 않다.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약제사 케일럽 브래덤(1867~1934)은 펩시콜라의 기원이 되는 음료수를 팔았다. 이는 1894년의 일이다. ‘펩시콜라’라는 이름은 어떻게 붙여졌을까? 발매 당시 브래덤은 이 음료가 위액에 들어 있는 소화 효소 펩신처럼 소화를 돕는다고 믿었다. 그래서 ‘펩신’과 ‘콜라’를 결합해 음료 이름을 ‘펩시콜라’라고 지었다. 펩신은 ‘소화’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펩시스(pepsis)’에서 유래했다



    HISTORY OF CHEMISTRY _ 20세기의 시작

    1907년 _ 인공 합성 플라스틱 탄생 - 대량 소비 사회로 물줄기를 바꾸다

    컵라면부터 전투기까지 현대생활의 모든 곳에 사용되는 소재, 플라스틱

    플라스틱이라는 이름은 ‘변형시킬 수 있는’, ‘형성 가능한’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플라스티코스(plastikos)’에서 유래했다. 참고로, ‘성형외과’는 영어로 plastic surgery다. 본래 플라스틱은 ‘가열하면 부드러워지는 성질’, 즉 ‘열가소성’ 물질을 의미한다. 그러다가 오늘날에는 ‘가열하면 딱딱해지는 열경화성 물질’을 모두 플라스틱으로 부르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플라스틱의 개념이 변화되고 확장된 것이다.


    화학으로 일확천금의 꿈을 이룬 벨기에 화학자, 베이클랜드

    인류 최초의 완전 합성 플라스틱을 발명한 이는 누구일까? 19세기 말에 등장한 화학자 리오 헨드릭 베이클랜드다. 그는 벨기에 출신으로 이십 대 중반인 1889년부터 미국에 영주하며 미국인으로 활약했다. 그는 페놀 수지 발명자로도 유명한데, 페놀 수지는 오늘날 인류의 생활을 뒷받침하는 가전제품·컴퓨터 등의 전자회로를 구성하는 인쇄 회로 기판 소재 등으로 주로 사용된다. 베이클랜드는 벨기에에서 화학을 공부한 뒤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화학으로 큰돈을 벌겠다는 야심을 품고서였다. 그러나 처음에는 모든 일이 그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실패를 거듭하는 바람에 급기야 그는 파산 직전 상황에 몰려 있었다. 1893년 무렵의 상황이다. 궁지에 몰린 베이클랜드는 자신의 발명을 사줄 만한 거물을 만나서 자금을 조달함으로써 위기를 타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만난 거물은 사진 보급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조지 이스트먼이었다.


    인생이 걸린 일생 일대의 비즈니스에서 베이클랜드가 팔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염화은(AgCl)을 도포한 사진용 인화지 ‘벨록스(Velox)’였다. 카메라로 기록해서 현상한 필름을 통해 인화지에 빛을 쪼여서 종이를 감광시키면 화상이 떠올라 사진이 만들어진다. 약한 인공조명에도 반응하는 벨록스를 본 조지 이스트먼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 다음 그는 베이클랜드가 부른 값인 5만 달러의 무려 20배나 되는 100만 달러라는 거금을 들여 특허권을 사들였다.


    막대한 자금을 손에 거머쥔 베이클랜드는 지체없이 화학연구소를 설립했다. 그러고는 절연체가 될 새로운 물질을 합성하는 연구에 몰두했다. 그는 왜 이 연구에 집착하고 매진했을까? 당시 에디슨의 발명으로 전기를 사용하는 가전제품이 급속히 보급되면서 전기 절연체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을 영리하게 간파했기 때문이다.


    인류가 천연 물질에 의존하지 않고 완전히 합성된 수지를 손에 넣는 역사상 최초의 순간

    당시만 해도 절연체 제조를 동남아시아 원산의 랙깍지진디(나무에 집단으로 서식하는 둥근깍지진딧과 곤충, ‘랙 벌레’라고도 한다)가 분비하는 ‘셸락(shellac)’이라는 수지에 의존했다. 그런데 문제는 셀락 450그램을 만드는 데 랙깍지진디 1만 5,000마리와 반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셸락은 랙깍지진디 수만 마리가 나무에 밀집한 상태를 나타낸다. 셸락은 SP 레코드 등에도 사용되었기에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미국은 연간 수천 톤의 셸락을 수입하고 있었다. 이는 인공으로 절연체 합성·제조에 성공하기만 한다면 돈방석에 앉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의미였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베이클랜드는 이들 원료를 용기에 넣고 가열하면 반응 용기를 거푸집 삼아 투명하고 딱딱한 수지상 물질이 생겨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말하자면 페놀 분자를 포름알데히드가 반응해 연결함으로써 정글짐 같은 3차원의 거대한 분자가 생겨난 것이다. 그는 이 새로운 물질에 ‘베이클라이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고는 효율적으로 반응시킬 수 있는 ‘베이클라이저(Bakelizer)’라는 반응 용기를 개발해 대량 생산에도 성공했다. 인류가 천연 물질에 의존하지 않고 완전히 합성된 수지를 손에 넣는 역사상 최초의 순간이었다. 베이클랜드가 베이클라이트 발명에 성공한 것은 1907년, 이 기술의 특허를 획득한 것은 1909년의 일이다.


    베이클라이트는 출시되자마자 대히트를 기록했다. 이것을 소재로 전화기와 만년필, 라디오 케이스, 전구소켓 등 다양한 물건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화학의 힘으로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철학이 정립되어 세상을 바꿔 나갔다.


    베이클랜드는 엄청난 부를 손에 넣은 뒤에도 무의미한 소비를 경시하고 소박한 생활을 즐겼다. 그러나 그가 만든 플라스틱으로 인해 20세기의 세상은 대량 생산, 대량 소비 사회로 완전히 방향을 전환했다.



    HISTORY OF CHEMISTRY _ 제2차 세계대전

    1941년 _ 태평양 전쟁 발발 - 일본은 왜 미국 진주만 기지를 기습해야 했나

    미국 국민의 전의를 단숨에 끌어올린, 선전 포고조차 없는 일본의 기습 공격

    일본 해군의 항공모함에서 출발한 항공기 부대가 하와이 진주만에 있는 미군 기지를 습격했다. 1941년 12월 8일(하와이 시각으로는 12월 7일)의 일이다. 일본 입장에서는 팔렘방 유전을 하루 바삐 점령하고 석유 운송에 필요한 제해권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 태평양 함대와 영국 동양 함대를 격퇴하거나 몰아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애초 타깃으로 삼은 미군의 신예 항공모함은 진주만에 없었다. 일본군이 격침시킨 것은 대부분 미군의 구식 전함이었다.


    미국은 지체없이 대응에 나섰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즉각 일본에 선전포고를 했다. 선전 포고조차 없는 일본의 기습 공격은 미국 국민의 전의를 단숨에 끌어올렸다. 일본 해군 항공기는 말레이반도 앞바다에서 영국 동양 함대가 자랑하는 신예 전함과 순양함을 공격해 침몰시켰다. 1941년 12월 10일의 일이다. 이는 항해 중인 전함을 항공기만으로 격침시킨 역사상 최초 사례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일본군은 미국과 영국의 위협적인 해상 전력을 일시적으로 제거했다. 이후 일본군은 네덜란드군과 교전을 벌였다. 그리고 결국 낙하산 부대의 기습으로 팔렘방 유전과 제유소(製油所)를 점령했다. 1942년 2월의 상황이다.


    1942년 _ 원자폭탄 개발 계획 - 궁극의 파괴 병기 개발에 몰두하는 인류

    아주 미세한 질량이 에너지로 바뀌어도막대한 에너지가 열이나 빛으로 방출되는 무시무시한 핵분열

    우라늄 원자는 거대한 원자다. 이 원자의 경우 중심에 있는 원자핵이 중성자의 충격을 받아 쉽게 찢어진다. 공동 연구자 중 한 명인 물리학자 리제 마이트너(1878~1968)가 이것을 ‘핵분열’로 명명했다. 마치 세포 분열처럼 원자핵이 둘로 나뉜다는 의미에서였다.


    또한 핵분열이 일어나면 연쇄 반응을 일으켜 일순간에 기하급수적으로 핵분열이 진행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일단 핵분열이 시작되면 이내 중성자가 2~3개 튀어나와서 주위 원자핵과 충돌해 분열시키는 식으로 말이다.


    우라늄에서든 우라늄이 아닌 원자에서든 원자핵의 핵분열 전후 원자핵이 아주 약간 질량을 잃는다. 이때 원자핵이 잃어버린 질량은 에너지로 변환된다. 놀랍게도 그 과정에 아주 미세한 질량이 에너지로 바뀌더라도 막대한 에너지가 열이나 빛으로 방출된다. 그 이유는 질량에 빛의 속도(초속 30만 킬로미터)의 제곱을 곱한 값이 방출되는 에너지 값(아인슈타인이 이끌어낸 E=mc2)이기 때문이다. 양성자와 중성자가 엄청나게 강력한 힘으로 연결되어 있던 원자핵이 찢어지면서 그 강한 힘에 해당하는 에너지가 사라지는 순간 방출되는 것이다. 이 거대한 에너지를 일순간에 해방시키는 것이 원자폭탄이다. 그리고 천천히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해방시켜서 열원으로 이용하는 것이 원자력 발전이다.


    원자폭탄의 두 가지 유형, ‘우라늄형’과 ‘플루토늄형’

    원자폭탄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2개의 우라늄 덩어리를 나눠 놓고 한쪽을 권총 총알처럼 발사해서 다른 쪽에 충돌시켜 대폭발을 일으키는 ‘우라늄형(히로시마형)’이다. 다른 하나는 원자로에서 우라늄으로부터 플루토늄이라는 원소를 제조하고 이 플루토늄 주위에서 폭약으로 충격파를 가함으로써 플루토늄을 압축시켜 대폭발을 일으키는 ‘플루토늄형(나가사키형)’이다. 덧붙여서 간략히 설명하자면, 구조는 간단하지만 원료 제조가 어려운 것이 ‘우라늄형’, 원료 제조는 간단하지만 구조가 복잡한 것이 ‘플루토늄형’이다.


    플루토늄은 원자로에서 우라늄을 가지고 만들어야 한다. 우라늄 광석을 채굴할 수 있는 최적지는 콩고와 체코의 요아힘스탈 광산이었다. 그런데 당시 체코는 독일에 점령되어 있었다. 그래서 미국은 콩고의 광산에서 산화 우라늄을 채굴하고 정제해 수입하기로 했다. 문제는 당시 콩고가 벨기에 영토였고, 벨기에 또한 독일에 점령돼 있었다는 점이다.


    고민 끝에 미국은 첩보 부대를 파견하여 독일 몰래 콩고산 우라늄 화합물을 대량으로 미국까지 운송하는 극비 작전을 진행하기로 했다. 역사의 이면에 영화 <007> 시리즈를 방불케 하는 실화가 존재한 것이다. 그리고 이 우라늄 원소는 마침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로 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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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