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의 심리학1
 
지은이 : 로버트 치알디니(역:황혜숙 외)
출판사 : 21세기북스
출판일 : 2023년 04월




  • 상대에게 긍정적 대답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사람은 낙오될 수밖에 없습니다. 7가지 설득의 원칙을 중심으로, 상대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설득의 심리학


    상호성 원칙

    몇 년 전 한 대학 교수가 간단한 실험을 실시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무작위로 선택한 다음 그들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발송한 것이다. 모종의 반응을 예상하긴 했지만, 실제로 벌어진 결과는 깜짝 놀랄 정도였다. 교수를 만나본 적이 없음은 물론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는 사람들로부터 엄청난 양의 답장이 쏟아진 것이다. 그러나 답장을 보내온 사람들 중 정체불명인 교수에게 신원을 묻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저 그들은 카드를 받으면 무조건 답장을 보내야 한다는 자동화된 반응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다.


    비록 실험 규모는 작았지만 이 연구는 가장 강력한 설득의 무기 중 하나인 ‘상호성 원칙’이 작동하는 방식을 훌륭하게 보여준다. 상호성 원칙에 따르면,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받으면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누군가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면 우리도 호의로 갚아야 한다. 누군가에게 생일 선물을 받으면 우리도 상대의 생일을 기억했다가 선물을 해야 하며, 누군가 우리를 파티에 초대하면 우리도 파티를 열어 상대를 초대해야 한다. 카드와 생일 선물을 주고 받고 서로를 파티에 초대하는 것이 이 원칙의 힘을 보여주는 대단치 않은 증거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힘을 만만하게 보아서는 안 된다. 이 원칙은 커다란 행동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상호성의 작동 방식

    분명한 사실은 인간 사회는 상호성 원칙을 통해 상당한 경쟁적 우위를 차지할 수 있고, 그 결과 사회구성원들은 상호성 원칙을 신뢰하고 따르도록 훈련받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어린 시절부터 상호성 원칙을 지키도록 교육받았으며, 이를 어길 경우 사회적 제재와 비난을 받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받기만 하고 내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은 대체로 혐오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파렴치하고 배은망덕한 인간, 무임승차자 등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항상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다 보면 우리의 부채의식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려는 이들에게 걸려들 때도 많다.


    상호성 원칙이 설득의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 사람들이 그 원칙을 얼마나 능수능란하게 이용하는지 알고 싶다면 심리학자 데니스 레건이 실시한 실험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연구진은 피험자를 다른 피험자 한 사람과 함께 미술 작품 몇 점을 평가하도록 하는 ‘미술 감상’ 실험에 참가시켰다. 다른 한 피험자(‘조’라고 하자)는 동료 피험자인 척했지만 사실 레건 박사의 조수였다.


    실험은 두 가지 서로 다른 조건에서 진행됐다. 첫 번째 실험에서 조는 요청하지도 않은 작은 호의를 진짜 피험자에게 베풀었다. 실험 도중 휴식 시간에 조는 몇 분 동안 실험실을 나갔다가 콜라 두 병을 들고 들어와 한 병은 자신이 마시고 나머지 한 병은 피험자에게 건네주며 “실험자에게 콜라 좀 마셔도 되냐고 물어보니 괜찮다고 해서 같이 마시려고 한 병 더 사왔어요”라고 말했다. 두 번째 실험에서 조는 피험자에게 아무런 호의도 베풀지 않고 휴식 시간에 잠깐 밖으로 나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밖에 조의 모든 행동은 첫 번째 실험과 동일했다.


    미술 작품 평가가 끝나고 실험자가 잠깐 실험실을 비운 사이 조는 피험자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당첨되면 신차를 받을 수 있는 복권을 자신이 지금 판매 중인데, 복권 최다 판매자는 상금으로 50달러를 받게 되어 있으니 한 장에 25센트짜리 복권을 구매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한 장만 사주셔도 됩니다. 물론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만요.” 이 연구의 주 목적은 두 가지 조건에서 피험자가 구입하는 복권의 매수가 얼마나 달라지는지 보는 것이었다. 조는 당연히 처음에 콜라를 건네며 호의를 베풀었던 피험자에게 더 많은 복권을 팔았다. 조에게 뭔가 신세를 졌다고 생각을 한 첫 번째 피험자들은 아무런 호의도 제공받지 못한 두 번째 피험자들보다 두 배나 많은 복권을 구매했다.


    레건의 연구는 상호성 원칙의 작동 방식을 매우 간략하게 보여주고 있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상호성 원칙을 이용해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상호성 원칙에 대응하는 자기방어 전략

    호의와 설득 전략을 구분하라

    상호성과 같은 사회적 원칙의 영향력을 무력화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런 원칙들은 일단 활성화되면 매우 광범위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에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상호성 원칙이 활성화되기 전에 방지하는 방법뿐이다. 아예 상호성 원칙과 직접 대결하는 것을 피하는 것이다. 상대가 어떤 호의나 양보를 먼저 베풀려 할 때 무조건 거절하면 되지 않을까? 가능할 수도 있고, 불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가 먼저 제공하는 호의나 양보를 무조건 거부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무엇보다 상대의 호의나 양보를 처음 접할 때 그것이 상호성 원칙을 이용하려는 첫 단계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힘들다는 점이 문제다. 항상 최악의 경우만 가정하고 무조건 거절한다면, 상호성 원칙을 이용할 의도가 전혀 없는 순진한 사람들이 제공하는 선의의 호의나 양보의 혜택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보다 바람직한 해결 방법이 있다. 누군가의 호의를 받아들일 때 무조건 선의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을 파악하는 방법이다. 누군가 호의를 베풀면 우선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언젠가 보답을 하겠다고 다짐한다. 이런 식의 관계는 상호성 원칙에 따라 상대에게 이용당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만약 상대의 호의가 그에 보답하는 더 큰 호의를 누리고 특별히 계획한 수단이자 술책이며 계략으로 밝혀진다면 상황은 전혀 달라진다. 이런 상대는 호의를 베풀려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를 이용하려는 사람이다. 이 경우에는 우리도 정확히 동일한 반응을 보여야 한다. 우선 상대의 제안이 호의가 아니라 설득 전략이라고 판단했다면 그에 알맞은 대응으로 상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야 한다. 상대의 행동이 호의가 아니라 설득의 기술이라고 우리가 인식하는 한 상대는 더 이상 상호성 원칙을 동맹군으로 활용할 수 없다. 상호성 원칙이란 호의를 호의로 갚는 것이지 속임수를 호의로 갚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희소성 원칙

    부족은 최선, 손실은 최악

    모든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희소성 원칙에 취약하다. 야구 카드부터 골동품까지 수집 품목의 가치를 결정할 때 수집가들은 바로 이런 희소성 원칙을 확실히 활용한다. 일반적으로 희귀하거나 희귀해질수록 그 품목의 가치는 높아진다. 실제로 원하는 물건이 희귀해서 구하기 힘들 때, 품질보다는 희소성이 그 물건의 가격 기준이 된다. 자동차 제조업자가 새 모델의 생산을 제한할 때, 잠재적 구매자들 사이에서 그 새 모델의 가치는 올라간다. 수집 시장에서 희소성의 중요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귀중한 실수’라는 현상이다. 인쇄가 번진 우표나 무늬가 겹쳐 찍힌 동전처럼 잘못 만들어진 품목들이 가장 가치 있는 수집품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조지 워싱턴의 눈이 세 개처럼 보이는 우표는 해부학적으로 부정확하고 미학적으로도 매력이 없지만, 많은 수집가들이 열렬히 원하는 품목이다. 여기서 아이러니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다른 경우라면 쓰레기로 취급받았을 잘못 만든 물건들이 희소성과 결합하면 자랑스러운 수집품이 된다.


    사람들은 뭔가를 얻는다는 생각보다는 비록 가치가 같다 해도 뭔가를 잃어버린다는 생각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듯하다. 예를 들어 대학생들은 멋진 데이트 상대를 얻었을 때보다는 그 상대를 잃는다고 상상했을 때 훨씬 더 강렬한 감정을 느꼈다. 성적도 마찬가지였다. 영국의 한 실험에서 주민들은 에너지 절약보다 관리비 손실 예방을 위해서라면,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기꺼이 전환하겠다는 사람들의 비율이 45퍼센트 더 많았다.


    사람들은 이익을 얻기보다는 손실을 피하려고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경우가 더 많다. 금전적인 사례에 한정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한 팀의 성원들은 자신의 팀 지위가 올라가는 것보다는 하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기꺼이 다른 사람들을 속이려 들었다.


    한정판매

    사람들이 어떤 사물의 가치를 결정할 때 희소성 원칙에 그토록 큰 영향을 받는다면, 설득의 달인들은 당연히 그런 현상을 이용할 것이다. 희소성 원칙을 가장 노골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고객들에게 어떤 제품이 수량 부족으로 금방 매진될 것 같다고 홍보하는 ‘한정 판매’ 전략이다.


    나는 다양한 조직에 잠입해 설득 전략을 연구하면서 한정 판매 전략이 여러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목격했다. “우리 주 전체에 이 엔진이 탑재된 컨버터블은 다섯 대뿐입니다. 그 다섯 대가 다 팔리고 나면 그걸로 끝이죠. 조만간 단종될 예정이거든요.” “신축 단지 안에 남아 있는 모퉁이 상가는 이곳을 포함해서 단 구 곳뿐인데요. 나머지 하나는 전망이 형편없어서 마음에 안 드실 겁니다.” “오늘 한 상자만 구매하시면 틀림없이 후회하실 겁니다. 재고가 너무 부족해서 언제 또 입고될지 모르거든요.”


    희소성 원칙에 대응하는 자기방어 전략

    희소성 원칙의 영향력을 깨닫기는 어렵지 않지만, 실제로 대비책을 세우는 일은 만만치 않다. 희소성 원칙이 작동하면 무엇보다 우리의 이성적인 사고 능력이 마비되기 때문이다. 원하는 대상을 손에 넣지 못하면 사람에게는 신체적인 반응이 나타난다. 특히 누군가와 직접적인 경쟁 상황에 돌입하면 혈압이 올라가고 시야가 좁아지고 감정이 격해진다. 이런 식으로 격한 감정들이 폭발할 때는 인지적이고 합리적인 면이 위축되므로 차분하게 심사숙고하기가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희소성 원칙이 위력을 발휘하는 원인과 작동 방식을 아는 것만으로는 자신을 방어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안다’는 것은 인지적인 행동인데 희귀한 대상에 대해 감정적인 반응이 일어나는 순간 인지작용 자체가 억제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희소성 원칙을 이용한 전략들이 그토록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희소성 원칙을 알고 있는데도 격렬한 감정 때문에 이성이 마비돼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없다면 과연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할까? 그런 경우에는 격렬한 감정 자체를 경고 신호로 삼아 주짓수 고수처럼 상대의 힘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용하면 된다. 상황 전체를 지적이고 논리적으로 분석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내면에서 일어나는 강렬한 감정의 흐름을 경고 신호로 인식하는 것이다. 누군가 우리를 설득하려는 상황에서 갑자기 강렬한 감정이 느껴지면, 상대가 희소성 원칙을 전략으로 사용한다고 직감하고 적절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런 식으로 감정이 격해지는 것을 신호로 삼아 마음을 진정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희소한 대상 앞에서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정보는 없을까?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해서 다음에 취할 행동까지 알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신중한 결정을 내리기 위한 바탕이 마련됐을 뿐이다.


    다행히 희소한 대상 앞에서 신중한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정보가 있다. 과자 연구에서 연구진은 희소성 원칙이 가진 특징을 잘 보여주는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했다. 피험자들은 과자가 희소해지면 그 가치는 더 높이 평가했지만 맛을 더 높이 평가하지는 않았다. 결국 희소성은 과자에 대한 욕망을 키울 수는 있어도(피험자들은 희소한 과자를 더 손에 넣고 싶고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 과자의 맛에 대한 평가는 조금도 높이지 못했다.


    여기서 중요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희소한 대상을 사용하는 데서가 아니라 소유하는 데서 기쁨을 느낀다. 두 가지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대상에 대해 희소성의 압박을 느낄 때마다 자신이 그 대상에서 원하는 것이 소유 가치인지, 사용 가치인지 자문해야 한다. 만약 희소한 대상을 갈망하는 이유가 그것을 소유하는 데서 오는 사회적‧경제적‧심리적 만족을 위한 것이라면 그때는 희소성의 압력에 굴복해도 된다. 희소성의 압력을 통해 자신이 그 대상을 소유하기 위해 얼마까지 지불할 수 있는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순수하게 소유하는 즐거움을 위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사용하기 위해 뭔가를 원하는 경우도 많다. 그것을 먹고, 마시고, 만지고, 듣고, 운전하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사용하는 경우다. 이런 때에는 어떤 대상이 희귀하다는 이유만으로 더 맛있고 더 느낌이 좋고 더 운전이 잘 되고 더 잘 작동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일관성 원칙

    일관성에 대한 욕구

    심리학자들은 인간 행동을 지배하는 일관성 원칙의 위력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초창기 이론가들은 일관성에 대한 욕구를 인간 행동의 중요한 동기 중 하나로 여겼다.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성향은 정말 우리가 평소에 하기 싫어하던 일까지 하게 만들 정도로 강력한가? 여기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일관성을 유지하려 하고 그렇게 보이려는 욕구는 매우 강력한 설득의 무기 중 하나로, 경우에 따라 우리 자신의 이익과 정반대되는 행동까지 하게 한다.


    한 연구진이 뉴욕 시의 해변에서 절도 장면을 연출하며 개인적인 위험을 무릅쓰고 범죄를 막으려는 목격자가 얼마나 되는지 살펴봤다. 먼저 해변에 누워 있는 일반인들 중에서 무작위로 피험자를 선택한 후, 연구자의 공모자 한 사람이 피험자의 1.5미터 근방에 나란히 타월을 깔고 누웠다. 공모자는 몇 분 정도 비치타월 위에 누워 휴식을 취하며 휴대용 라디오를 듣다가 조용히 일어나 소지품을 그대로 둔 채 해변 산책을 나섰다. 잠시 후 연구자가 도둑 행세를 하며 등장해 공모자가 두고 간 라디오를 집어들고 도주를 시도했다. 예상대로 일반적인 상황에서 위험을 감수하며 도둑을 저지하려는 피험자는 많지 않았다. 전체 20명 중 4명뿐이었다.


    그러나 똑같은 실험에 약간의 변화를 줘 다시 20회 실시하자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공모자가 소지품을 두고 산책을 나서기 전 피험자에게 ‘제 짐 좀 봐주세요’라고 간단한 부탁을 했고 대부분의 피험자들이 이를 승낙했다. 그러고 나자 일관성 원칙의 영향으로 20명 중 19명의 피험자가 거의 자경단원 수준의 의협심을 발휘해 도둑을 쫓아가 멈춰 세우고 해명을 요구했으며, 육탄전을 벌여 라디오를 빼앗아 오기도 했다.


    일관성이 이토록 강력한 동기로 작용하는 이유는 일관성이 대부분의 상황에 적합한 가치 있는 특성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일관성이 없는 성격을 바람직하지 못한 특성으로 여긴다. 신념과 행동, 말 등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은 엉뚱하거나 표리부동한 사람, 심지어 정신적 장애가 있는 사람으로 여긴다. 반면에 수준 높은 일관성에서는 대개 뛰어난 인격과 지성이 연상된다. 일관성은 논리와 합리성, 견실함과 정직함의 핵심이다.


    일관성의 열쇠는 ‘입장 정립’

    일관성 원칙이 인간의 행동에 놀라운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을 알면 매우 중요하고 실질적인 의문이 등장한다. 그 힘은 어디서 시작되는 것일까? 과연 무엇이 강력한 일관성 장치를 ‘눌러, 작동하는’ 것일까? 사회심리학자들은 그 답을 ‘입장 정립’에서 찾아냈다. 일단 상대에게 어떤 입장이나 행동을 취하게 한다면, 이후로는 일관성 원칙을 이용해 상대에게 자동적이고 무분별한 행동을 유도해내기 쉽다는 것이다. 사람은 입장을 정하면 그 입장과 일관성 있게 행동하려는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매우 자연스럽다.


    사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활동하는 설득의 달인들은 입장 정립 전략을 이용해 우리를 공략한다. 이런 전략들의 공통적인 목적은 일단 우리로 하여금 어떤 발언이나 행동을 하게 한 다음 이와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요구를 승낙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입장 정립을 유도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한다.


    일관성 원칙에 대응하는 자기방어 전략

    중요한 것은 ‘일관성’과 ‘바보 같은 일관성’을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차이야말로 일관성이라는 설득의 무기에 대해 맞서 싸울 수 있는 유일하게 효과적인 방어책이기 때문이다. 또한 일관성이 일반적으로는 좋은 것이고 필수적인 것이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피해야 하는 완고하고 어리석은 변종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그런 일관성이야말로 기계적인 입장 정립과 일관성을 이용하여 우리에게서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들의 먹잇감이 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동적 일관성은 대체로 경제적이고 적절한 반응을 가능하게 하는 유용한 측면도 있어 우리 삶에서 완전히 제거해버릴 수는 없다. 그랬다가는 끔찍한 결과가 벌어질 것이다. 만약 이전의 결정이나 행동을 자동적으로 반복하지 않고 일일이 모든 것을 심사숙고해서 행동해야 한다면 중요한 일을 수행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것이다. 따라서 어떤 면에서는 위험하고 기계적인 일관성이 ‘필요’하기도 하다. 이런 일관성의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일관성이 어리석은 선택을 유도하는 순간을 알아차리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배 속이 불편한 느낌에 반응하라

    첫 번째 신호는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하고 싶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일관성의 덫에 걸려 어떤 일을 승낙해야 할 때는 배 속이 불편한 느낌이 든다. 상대의 계략에 넘어가 내가 앞서 했던 말이나 행동과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어리석게도 상대의 요구를 승낙하려는 순간 배 속이 불편한 느낌이 들면 나는 즉시 상대가 벌이는 짓을 정확히 이야기한다. 일관성 유지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불합리한 일관성은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마음속 깊은 곳의 느낌을 포착하라

    위장은 그다지 예민하고 섬세한 기관이 아니다. 따라서 남의 계략에 넘어가는 것이 ‘분명한’ 순간에만 알아차리고 신호를 보내온다. 속임수에 걸려든 것이 분명하지 않을 때는 위장이 전혀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럴 때는 다른 단서를 찾아야 한다. 흔히들 ‘마음속 깊은 곳’이라고 표현하는 바로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없는 유일한 장소다. 어떤 정당화도, 어떤 합리화도 통하지 않는 곳이랄까.



    연대감 원칙

    ‘우리’라는 관계

    모든 사람은 끊임없이 ‘우리’라고 불러도 좋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무의식적으로 구분한다. ‘우리’라는 집단 안에서는 설득과 관련된 모든 과정이 훨씬 수월하게 이루어진다. ‘우리’라는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집단 내부에서 합의, 신뢰, 도움, 호감, 협조, 정서적지지, 용서를 더 많이 얻을 수 있으며, 더 창조적이고 도덕적이며 인도주의적이라는 평가까지 받는다. 내부 집단에 대한 선호가 인간의 행동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른 영장류나 인간의 유아에서도 나타나는 것으로 볼 때, 이런 경향은 좀 더 근본적인 것으로 보인다. 즉, ‘누르면, 작동하는’ 방식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설득의 달인들은 대부분 ‘우리’라는 관계 속에서 단단한 기반을 형성하고 있다. 여기서 핵심적인 문제가 제기된다. ‘우리’라는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중요하면서도 미묘한 구분이 먼저 필요하다. ‘우리’라는 관계는 ‘저 사람은 우리와 같은 점이 있지’라고 말할 수 있는 관계라기보다 ‘저 사람은 우리 중 하나야’라고 말할 수 있는 관계다. 따라서 연대감이라는 설득의 원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사람들은 같은 집단에 속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예스’라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 이와 같은 연대감은 단순히 누군가와 유사점을 가지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연대감이란 정체성의 문제이며, 정체성을 공유하는 사람에게 우리는 연대감을 느낀다. 또한 연대감은 부족처럼 개인이 자신과 자신의 집단을 정의하기 위해 사용하는 개념으로, 인종, 민족, 국가, 가족, 정치 및 종교 집단이 여기에 포함된다. 예를 들어보자. 나는 형제자매가 아니라 직장 동료와 취향이 같을 수 있다. 하지만 둘 중 나와 비슷한 사람과 나와 같은 사람을 구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연대감의 중요한 특징은 그 성원들이 서로 ‘하나로’ 통합되어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런 집단에서는 한 성원의 행동이 다른 성원의 자존감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란 자신을 공유하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우리’라는 집단 안에서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특징과 동료의 특징을 정확하게 구분하지 못한다. 그런 까닭에 자기와 타자 사이에 혼란이 일어나기도 한다.


    연대감이 사업에 미치는 영향

    ‘우리’ 집단을 이용한 폰지 사기

    우리 시대의 가장 대규모 투자 사기를 꼽자면, 월스트리트 내부자 버나드 메이도프가 꾸민 폰지 사기를 들 수 있다. 경제 분석가들은 (150억 달러 이상의 손실이라는) 엄청난 규모와 (수십 년 동안 발각되지 않고 계속된) 기간에 주목하고 있지만, 나는 다른 부분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일단 사기 피해자들이 거의 경제 전문가 수준이었다는 사실이다. 피해자 리스트를 훑어보면, 냉정한 경제학자, 노련한 자금 관리자, 대단히 성공한 비즈니스 리더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아무리 대단한 수익률로 유혹하더라도, 경제 전문가 수준의 고객들은 쉽게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메이도프는 닭을 속이는 여우를 뛰어넘어 다른 여우들마저 속이는 여우가 되어야만 했다. 그는 어떤 방법을 사용한 걸까?


    커다란 사건이 어떤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일어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며, 보통은 여러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메이도프의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메이도프가 오랫동안 월스트리트의 유명인사였다는 사실, 그가 운용한 파생상품 기반 금융 메커니즘의 복잡성, 메이도프의 허가를 받아야 가입할 수 있었던 제한적인 투자자 그룹 모두가 그 사건의 부분적인 원인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그들이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메이도프는 유대인이었고, 대부분의 피해자 역시 유대인들이었다. 희생자를 점찍은 메이도프의 보좌관 역시 유대인이었다. 게다가 메이도프 무리에 합류한 신규 투자자들은 역시 자신과 같은 민족이었던 기존 투자자들을 잘 알고 있었고, 기존 투자자들은 메이도프의 투자는 현명한 선택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로, 스스로 일종의 사회적 증거 역할을 했다.


    물론 이런 대규모의 사기가 하나의 민족 혹은 종교 집단에만 국한될 리 없다. ‘친화 사기’라고 불리는 이런 형태의 투자 사기는 한 집단이 같은 집단의 다른 성원을 착취하는 형태이다. 메이도프의 사기를 규정하는 폰지 사기라는 말은 찰스 폰지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그는 이탈리아 이민자로 미국에 도착한 후 1919년에서 1920년 사이에 같은 이탈리아 이민자들로부터 수백억 달러를 빼앗는 사기 행각을 벌였다. ‘누르면, 자동으로 망하는’ 것이었다.


    연대감 원칙에 대응하는 자기방어 전략

    대부분의 기업은 직원이 처음 입사하면 읽어야 하고, 조직에 있는 동안은 지켜야 하는 ‘행동 수칙’을 가지고 있다. 많은 경우 이 수칙은 직원들이 받는 윤리 교육의 기반이 된다. 한 연구에서 S&P 500에 포함된 제조업체들을 두 종류로 분류하여 연구했다. 하나는 직원을 ‘우리’라고 지칭하는 행동 수칙을 가지고 있는 기업이고, 다른 하나는 ‘회원’ 혹은 ‘피고용인’과 같은 용어로 직원을 칭하는 행동 수칙을 가지고 있는 기업이었다. 놀랍게도 ‘우리’라는 언어로 윤리적 책임을 전달하는 기업에서 직원들이 재직 중 불법 행위에 연루될 가능성이 훨씬 더 컸다.


    그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여덟 번에 걸쳐 몇 가지 실험을 진행했다. 일단 참가자들을 고용하여 윤리적인 행동 수칙을 교육한 후 과제를 부여했다. 행동 수칙은 (노동자들을 ‘우리’라고 부르는) 통일성 언어와 (노동자들을 ‘회원’이라 부르는) 비개인적 언어로 각각 작성했다. 그러자 몇 가지 눈에 띄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라는 언어로 된 행동 수칙을 읽은 참가자들은 보너스를 얻기 위해, 다시 말해서 조직을 희생하며 자신이 금전적 이익을 얻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속임수를 쓰는 비율이 높았다. 두 가지 추가적인 발견이 그 이유를 설명해준다. 첫 번째, ‘우리’에 기반을 둔 언어는 참가자에게 조직은 윤리 정책을 위반하는 사람을 잡기 위해 열심히 감시하지 않는다고 믿도록 만들었다. 둘째, 그러한 이야기를 들은 참가자들은 윤리 정책을 위반하다 잡히더라도 회사가 관용적인 태도로 용서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앞에서 계속 살펴보았던 것처럼, 우리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설득의 원칙이 가진 힘을 이용한다. 작고 의미 없는 선물을 주어 더 커다란 호의로 보답하게 만들고, 사회적 증거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통계를 왜곡하며, 어떤 화제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자격증을 위조하는 등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연대감의 원칙 또한 다르지 않다. 우리를 이용하려는 사람은 자신이 ‘우리’ 집단에 속한다는 것을 파악하는 순간, 동료의 잘못을 최소화하고, 변명하고, 심지어 잘못이 아니라고 여기는 우리의 원시적인 경향을 이용해 이익을 취하려 한다. 기업도 이런 면에서는 다르지 않다.


    모든 기업은 행동 수칙에 명확한 태도를 밝히는 ‘창가의 표어’를 붙여놓아야 한다. 주요 위반 사항이 입증되거나, 여러 번에 걸쳐 사소한 위반이 벌어질 때 불관용 정책에 따라 해고하겠다고 명시해야 한다. 불관용 정책의 근거는 작업장 만족도 및 윤리적 문화와 관련된 자부심 측면에서,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직장에서의 연대감을 보존하려는 솔직한 욕구의 측면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직장에서의 연대감을 보존하려는 욕망이 중요한 이유는 기업이 ‘우리’라는 집단이 가진 결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라는 집단의 필요성에 호소하는 것은 너무나 현명한 일이기 때문이다.


    * * *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