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의 탄생
 
지은이 : 이경혁
출판사 : 이상북스
출판일 : 2022년 11월




  • 게임 변천사를 되짚어보며, 지금 게임을 하는 이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현질’이라는 행위를 살핌으로써, 게임 결제양식 변화를 통해 현대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하나의 창을 가져보세요.


    현질의 탄생


    게임의 결제사(史)

    동전투입식 결제

    한국의 오락실과 동전투입

    197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디지털게임의 대중화는 한국에도 그리 길지 않은 시간차를 두고 유입되었다. 상세한 기록이 정리된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전자오락 중심의 아케이드 오락실이 태동한 시기를 유추하기 가장 좋은 자료는 “유기장법”이다. 1961년 12월에 제정된 이 법은 제정 시기상 디지털게임을 대상으로 한 법은 아니고 당구장과 같은 기존의 오락 및 유흥 시설에 대한 제도를 담은 법이었다. 중요한 것은 1973년에 제정된 “유기장법 시행규칙”인데, 여기서 전자유기시설에 대한 규정으로 “반도체를 이용한 게임”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즈음 한국에도 디지털게임이 유통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1970년대에서 1980년대에 태어난 이들의 경험은 당시의 디지털게임에 대한 증언을 담고 있다. 흑백 화면이었지만 색 셀로판지를 화면에 붙여 색깔을 냈던 게임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플레이했던 유년기의 게임에 대한 증언들 가운데 흥미로운 부분은, 한국에서 게임기를 본 적지 않은 이들이 북미의 초창기와 마찬가지로 오락실이 아닌 공간에서 게임기를 보았다는 점이다. 나 또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벽돌 깨기 게임으로 유명한 ‘브레이크아웃’을 처음 본 곳이 대중목욕탕의 탈의실이었다. 다 벗은 사람들이 오가는 목욕탕 탈의실에 ‘브레이크아웃은 화면이 마치 탁자처럼 수평으로 누워 있는 기기로 설치되어 있었고, 플레이하는 법은 동전을 넣고 다이얼 형태의 노브를 돌려가면서 공을 튕겨내는 막대를 좌우로 조정하는 방식이었다. 사람들은 게임을 하기보다는 기계 위에 종이컵을 올려놓거나 하는 식으로 마치 테이블처럼 게임기를 사용했다. 한국에서도 디지털게임 도입 초반에는 별도의 오락실이 없었기 때문에 다방과 같은 공간이 게임기들의 설치 장소로 선정되었다.


    적어도 1980년대에 이르면 상당수의 오락실이 번화가뿐 아니라 주거지역의 상가에도 등장하기 시작한다. ‘지능계발’이라는 문구를 쓴 선팅으로 창문을 가린, 일반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한국형 오락실의 프로토타입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시기다. 오락실은 디지털게임이 다른 놀이의 부가적인 여흥으로서만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구축된 놀이공간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결제와 소비 측면에서 오락실이라는 공간은 1980-1990년대의 유년 세대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노는 일에 돈을 쓰는 행위를 처음으로 경험하는 전문 공간으로서의 의미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락실이 등장하기 이전에 어린이들의 놀이는 대체로 무료 놀이에 가까웠다. 동네마다 공용 놀이터인 공터가 있었고, 대부분 놀이에 딱히 돈을 쓸 일이 없었다. 축구나 고무줄놀이처럼 도구가 필요한 놀이도 꼭 공이나 고무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기보다는 가지고 있는 사람 하나만 있으면 되는 수준이었고, 가격도 그리 비싼 편은 아니었다. 딱지나 구슬 같은 오늘날의 수집형 카드 게임의 원형으로 볼 수 있는 놀이는 일부 지출을 요구했지만, 반드시 돈을 주고 사지 않아도 플레이가 가능했다.


    하지만 오락실은 소비양식의 측면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어린이들에게 처음으로 돈을 내야 플레이할 수 있는 놀이의 대표 격으로 오락실의 경험이 들어온 것이다. 물론 학교 앞 문방구에서 돈을 내고 하는 ‘뽑기’같은 놀잇거리들도 있었다. 하지만 ‘뽑기’가 문방구라는 공간에서 부차적 형태로 기능하던 놀이였던 반면 오락실은 아예 동전을 넣고 게임을 하는 일이 메인인 놀이공간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여주었다.


    동전을 투입하는 행위는 동일해도 투입된 동전의 가치는 오락실에서 조금 다른 의미로 작동했다. 이 작은 차이는 이후 게임산업의 발전과 다변화를 거치며 오늘날 여러 게임을 분류하는 하나의 기준이 될 정도로 커졌다.


    불법복제 시대와 정품 유통

    무료 게임 시대의 영향

    불법복제가 만연했던 초기 PC게임 문화가 오늘날의 중장년층 게이머에게 별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그 영향이라는 것은 단순히 특정 세대가 ‘게임은 공짜’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식으로 뭉뚱그릴 수 없는 문제다. 조금 더 세심하게 불법복제 시기의 게임 소비와 결제 문화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앞선 장에서 우리는 게임의 결제방식에 나름의 구분이 있음을 확인했다. 오락실 시절의 게임은 플레이 기회 자체에 돈을 내는 공용공간의 대여 방식이었다. 그리고 경제가 발전하고 사회가 변화하면서 가정에서 개인용 콘솔 기기와 PC를 활용할 수 있게 되자 기기와 소프트웨어의 구매라는 형식으로 게임 결제가 새로운 양상을 얻게 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이 두 개념은 시간 순서대로 상호 배타적이지 않으면서 게임 결제의 여러 양상을 보여주는 형태로 나타났다. 그리고 둘 모두로부터 벗어난, 불법적 방식을 활용한 무료 게임의 도전이 있어 왔다. 오락실에서는 ‘딱딱이’나 가짜 동전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콘솔에서는 불법으로 복제된 카트리지와 카트리지 교환과 같은 방식으로 무료 게임은 게임플레이의 전제였던 결제라는 테두리 밖에서 알음알음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는 PC게임의 영역에 들어서면서 쉬운 복제가 가능한 기술적 기반에 힘입어 복사집이라는 새로운 유통 형태를 만들었고 네트워크의 발전을 타고 더욱 가속화되었다.


    PC게임의 대두와 그로부터 시작된 불법복제의 일상화는 음지에서 암암리에 행해지던 결제 바깥을 통한 게임플레이를 보편적인 무언가로 게이머 대중 전체에게 인식시키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정식 유통 경로가 부재했던 1980년대부터 이루어진 복제를 통한 게임 유통은 사회 전반에 소프트웨어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부재했던 시기에 매우 자연스럽게 뿌리내렸고, 이는 단순히 ‘저작권을 지켜야 게임산업이 산다!’는 캠페인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저렴함과 편리함으로 오랫동안 한국의 게임플레이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했다. ‘게임을 왜 돈 주고 사요?’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개인의 도덕성 부재가 아니라 그것이 자연스러웠던 시절의 맥락이 계속 살아남아 있기 때문이다.


    무료로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 대한 강조는 1980-1990년대 불법복제 시대를 거치면서 정착된, 게임은 무료로 하는 무언가라는 인식으로부터 동떨어져 있지 않다. 현질이라고 불리는 게임들은 대체로 게임을 시작하는 것 자체는 무료인 ‘프리투플레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런 형태는 월정액, 구매, 대여와 같은 다른 형식보다 모바일이나 PC게임 영역에서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을 보인다. 그리고 그 무료 게임을 통해 낮아진 진입장벽 뒤에서 게임회사는 보다 본격적인 매출 확보를 위해 인게임 결제를 제시한다. 이는 기존과는 또 다른 수익 기반을 찾아낸 것인데, 무료입장이라는 진입 시점이 제공한 공평함이라는 토대 덕분에 진입 이후의 인게임 결제는 그 문제점이 더 도드라져 보였다. 불법이었던 무료 플레이는 초창기에는 보편적이고 대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암암리에 그리고 전반적으로 이루어졌고, 오늘날에 이르면 무료 플레이는 역으로 무료라는 점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아 상업 게임 제작사들이 자사의 게임을 홍보하는 합법적 수단으로 변모했다.


    불법복제 시대를 지나 이제 무료 플레이는 합법의 영역으로 새롭게 구성되었지만, 이는 기존의 유료 게임이 무료화되는 형태의 변화는 아니다. 이를테면 싱글플레이 중심의 게임이나 아케이드 오락실에서의 게임, 콘솔 기기에서의 게임은 여전히 개별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형식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온라인 게임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에서 무료 플레이가 다른 방식으로 합법의 영역에 들어왔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그렇기에 여전히 불법복제라는 방식은 PC와 같이 복제가 쉬운 영역에서는 없어지지 않았다. 다만 명백한 것은 불법 복제가 보편적이라는 태도에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변화를 이끈 것은 도덕성에 호소한 캠페인도 아니고 게임 가격의 변화도 아닌, 새로운 유통방식의 도래였다.


    모바일 게임의 대두와 부분유료결제의 보편화

    모바일 게임 시대에 가장 보편적인 결제방식으로 자리 잡은 방식에는 두 가지의 이름이 붙는데 하나는 부분유료화, 다른 하나는 프리투플레이다. 프리투플레이라니, 게임 만드는 비용이 공짜도 아니고 무슨 소리인가 싶을 수 있겠지만 가벼운 맛보기로 게임을 무료로 제공하는 방식에는 꽤 유서 깊은 역사가 있다.


    온라인 시대 이후까지도 지속되는 유서 깊은 흐름의 선구자 격 모델로 데모 버전이 있다. 단순히 게임의 스크린샷이나 플레이 영상 일부만으로는 실질적으로 어떤 게임인지 정확히 전달하기 어려운 면이 있는데, 데모 버전은 새로 나온 게임 중 일부분을 직접 플레이 할 수 있는 소규모 버전으로 떼어 무상으로 배포하는 형태를 가리킨다. 해당 게임의 핵심을 담은 부분을 제공받아 플레이해 본 뒤 구매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본편을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데모 버전은 그래서 무료 배포라기보다는 홍보 차원의 맥락으로 작동했다. 가볍게 게임을 한번 플레이해 보고 괜찮으면 풀 버전을 구매하도록 이끄는 방식으로, 데모 버전은 널리 배포될수록 효과가 좋을 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방식으로 셰어웨어가 있었다. 한국에서는 ‘둠’같은 게임이 셰어웨어 방식으로 많이 풀렸는데, 마찬가지로 무료 플레이가 가능하지만 일부 기능만 열리고 본편 대부분이 제한된 버전이 배포되었다. 이를 해제하기 위해서는 게임사가 안내하는 특정 방식을 따라 결제한 뒤 해제 코드를 받아 프로그램에 적용해야 했다. 적용이 끝나면 비로소 셰어웨어는 정식 버전이 되며 게임의 모든 기능을 허용하는 방식이었다. 사실 데모 버전과 셰어웨어를 엄밀하게 구분하는 것도 쉽지 않다. 둘 다 상품 판매 목적보다는 판매 촉진을 위해 무상으로 제한된 버전의 게임을 널리 배포하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PC통신과 인터넷 시대를 맞아 소프트웨어의 배포 자체가 손쉬워진 시절부터는 프리투플레이의 의미도 달라졌다. 먼저 소프트웨어를 복제하는 일 자체가 간단해졌고 두 번째로는 배포된 소프트웨어의 사용권을 통제하기가 쉬워졌다. 앞서 온라인 게임 이야기에서도 다뤘듯, 게임의 핵심 연산을 서버에서 처리하는 방식이면 배포된 소프트웨어가 데모 버전이냐 본 버전이냐 같은 구분이 애초에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온라인 시대의 프리투플레이는 기존 오프라인 시대의 셰어웨어나 데모 버전의 연장선으로서 갖는 홍보와 판촉의 성격을 따로 분리하지 않고 서버 접속 권한 부여를 통해 구분하는 방식으로 등장했다.


    이 방식은 곧 오늘날 우리가 ‘부분유료결제’라고 부르는 형태로 안착하기 시작했다. 게임 자체는 무료로 얼마든지 즐길 수 있지만 그 안에서 별도의 아이템이나 기능을 이용하기 위해 추가 결제가 가능한 형태를 일컫는다. 둘은 엇비슷한 것 같지만 사실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제한되었던 게임 속 세계가 결제를 통해 온전히 열리는 데모 버전이나 셰어웨어 방식에 반해 부분유료결제는 세계는 온전히 열려 있으면서 플레이 기능이나 아이템을 계속 추가로 결제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온라인 시대를 맞아 등장한 부분유료결제 방식은 스마트폰 기반의 모바일 게임 시대에 이르러 더욱 대중적이고 다채로운 양상으로 발전을 거듭하며 게임 결제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온라인 시절에도 이미 부분유료결제는 존재했지만 모바일에 이르러 본격화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게임 내적 요소뿐 아니라 결제의 편의성 측면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한국에서 21세기 초반 결제와 인증을 오랫동안 복잡하게 만들어온 주범인 액티브X 기반의 결제 시스템이 갖는 난삽함이 스마트폰 시대에 들어서며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는 ‘인앱결제’라는, 게임 안에서 제공하는 원클릭 버튼 한 번으로 빠르고 편하게 결제를 처리하는 기능과 결합하며 손쉬운 결제를 이루는 인프라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고, 더욱 늘어난 사용자 기반과 맞물리며 사실상 모바일 게임을 당대 한국 게임의 중심으로 자리하게끔 만드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그리고 이런 배경은 모바일 게임에서 손쉬운 결제 환경을 통해 현질이라는 개념이 본격 이슈로 떠오르게 만든 원인으로 작용했다.



    현질의 의미

    현질의 등장

    현질이란 무엇일까?

    현질이란 무엇일까? 그 비하적 의미를 떼고 생각해 보면 현질의 본질은 부분유료결제에 가깝다. 앞선 장에서 언급했던, 프리투플레이를 통해 소프트웨어는 무료로 제공되지만 게임 안에서 사용하는 여러 편의 기능이나 성능 향상 등을 별도의 결제로 구입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이는 서버 안에서 핵심 기능의 연산과 처리가 이루어지는 온라인 기반 게임임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부분유료결제라고 해서 모두 현질이라는 이름 안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리그 오브 레전드’에 적용된 결제방식을 우리는 현질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플레이어는 크게 두 가지 의미의 결제를 진행할 수 있는데 하나는 챔피언이라고 불리는 게임 안의 캐릭터를 구매해 플레이에 활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해당 캐릭터의 외형에 스킨을 구매해 적용하는 것이다. 이 중 스킨 구매는 챔피언의 외형만 바꿀 뿐이기 때문에 부분유료결제임에도 현질이라는 이름이 붙지 않는다.


    그러면 게임에 직접 활용되는 챔피언을 구매하는 것은 현질에 들어갈까? 이 부분도 대중적인 시각에서는 현질로 치부되지 않는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리그 오브 레전드’의 챔피언은 현금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임플레이를 통해 쌓는 인게임 화폐들을 활용해서도 신규 챔피언을 구매할 수 있으며, 여기에 별도로 매주 일정 개수의 무료 챔피언을 돌려가며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챔피언을 현금결제로 구매하는 것이 필수가 아닌 상황이다. 두 번째 이유가 더 중요한데 ‘리그 오브 레전드’는 PC방에서 플레이할 경우 전 챔피언을 모두 무료로 제공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PC방에서 플레이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게임 특성상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리그 오브 레전드’의 결제방식을 현질로 여기지 않는다.


    이런 사례를 보면, 이용자들이 특정한 결제방식을 현질이라고 부를 때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소는 ‘이 결제가 실제 게임플레이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와 ‘그러한 결제가 사실상 강제되는가’의 여부라고 생각할 수 있다.


    현질이라는 용어의 성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여러 사람이 어울려 경쟁하는 온라인 게임 안에서 부분유료결제를 통해 게임 내적인 승패나 우열의 관계에서 확실한 우위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한다면, 그리고 그 결제가 만드는 우위가 매우 확고하고 넘어서기 어려워서 게임을 플레이할 때 그 영향력이 크다면, 우리는 이 게임을 현질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납금플레이 vs 현질

    현질로서의 납금플레이: 숙련도의 주체 변화

    납금플레이라는 개념을 현질이라는 말이 가진 비하적 의미를 피할 수 있는 개념으로 제시했지만, 앞의 사례들을 살펴보면 현질이라는 말을 구성하는 데 추가적 조건들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부분유료결제>납금플레이>현질’이라는 구조 속에서 현질을 구성하는 추가적 조건들은 대략 다음과 같이 추정해 볼 수 있다.


    가장 기본 출발점은 플레이의 대상이 상대적이라는 점이다. 타인과의 경쟁이 제한적인 싱글프레이에서는 현질이 쉽게 성립하지 않는다. 오락실 싱글플레이에서 소위 ‘끝판’에 가보기 위해 계속 동전을 넣어가며 하는 플레이는 현질이라 불리지 않는다. 현질은 대개 멀티플레이 상황에서 타인과의 경쟁이 촉발될 때의 납금플레이를 말한다. 다만 공용공간에서의 공간 점유가 타인의 게임 기회를 빼앗는 것으로 여겨질 때는 이러한 컨티뉴 플레이가 ‘졸렬한 행위’로 여겨지는 부분은 흥미롭다.


    경쟁 상황에서의 현금 개입이 현질로 불리게 된다는 점은 현질이라는 낮잡아 부르는 말이 공정성 개념과 맞닿고 있음을 드러낸다. 현금을 통한 외부 개입을 거부하는 것은 다른 각도에서 이야기하면 매직서클이라는 분리 장벽으로 구성된 가상세계는 모두에게 공정한 규칙을 보장한다는 개념을 전제한다. 그런 상황에서 등장한 납금플레이는 매직서클로 분리된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뚫고 공정한 경쟁이라는 개념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1코인이라는 동등한 조건만 맞추면 그 다음부터 실력이라는 숙련도의 승부가 이뤄졌던 시대는 독특하게 변형되기 시작했는데, 바로 숙련도의 주체가 바뀐다는 점에서다.


    플레이어의 고유의 것이었던 숙련도의 주체 문제가 납금플레이에 이르러 변하면서 발생한 것이 현질이라는 비하하는 듯한 이름이다. 납금플레이 시대에 숙련도는 더 이상 플레이어의 몸에 쌓이지 않기 때문이다. 난이도에 대응하는 숙련도는 이제 필수요소가 아닌 여러 요소 중 하나가 되었다. 오랜 세월 갈고닦은 게임 실력과 비법 대신 훨씬 쉽고 빠르게 난이도를 넘어설 수 있는 수단으로 현금 지불을 통한 아이템과 골드, 경험치 부스팅이 빠르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숙련도의 배제는 그래서 현실적 의미에서 게임플레이의 관계를 ‘게임사-플레이어’에서 ‘게임사-게임회사’로 옮겨놓은 형국을 만들었다. 자동사냥과 부분유료결제 및 현질이 동떨어져 있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은 바로 이 숙련도의 축적 위치 변경이 만들어낸 효과라는 점에서 비롯된다. 게임플레이에서 오랫동안 나름의 긴장관계를 이어왔던 생산자로서의 게임사와 소비자로서의 이용자라는 관계가 이제 힘의 균형을 놓친 채 전적으로 게임사가 주도할 수 있는 환경으로 변화한 것이다. 난이도와 숙련도라는 플레이의 지렛대 양쪽을 모두 게임사가 쥐게 된 이 상황은 고전적 플레이에 익숙한 게이머들 입장에서 곱게 보일 수 없었고, 그 변화에 대한 플레이어들의 시각이 납금플레이라는 개념에 영향을 미친 결과가 오늘날의 현질이다.


    현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사회관계로서의 게임 이해하기

    오늘날의 디지털미디어들이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자리 잡은 모습을 우리는 플랫폼(platform)이라고 표현한다. “외부생산자와 소비자가 상호작용하며 가치를 창출할 수 있게 해주는 것에 기반을 두는 비즈니스”로서의 플랫폼과 이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플랫폼자본주의는 특히 디지털 미디어 상에 펼쳐진 수많은 정보자원을 취합하여 공급하고 이를 원하는 소비자를 묶어 수요화시킨 뒤 그 사이의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것을 골자로 한다.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우리가 디지털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사용하는 거의 모든 뉴미디어가 플랫폼 비즈니스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은 다시 반복할 필요가 없을 만큼 이미 많이 이야기된 주제다.


    디지털 게임에서의 현질이라는 주제를 훑어온 입장에서 플랫폼 자본주의 논의를 되돌아보면 둘 사이의 접점에 대한 고민을 만나게 된다. 서버-클라이언트 체계를 기반으로 납금플레이를 구성하는 오늘날의 온라인/모바일 게임들은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생산하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유희와 여가의 시간을 소비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의 제안을 게이머들에게 던진다. 오프라인 시대의 게임과 달리 온라인 게임에서 플랫폼의 측면은 더욱 두드러지는데, 서버에 접속한 이용자의 로그가 수집되고, 행동과 결제의 패턴이 분석되며, 플레이어의 상호작용이 다른 플레이어들과 비교·경쟁을 통해 순위라는 이름으로 군집화되면서 새로운 경쟁요소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랜 세월 게이머의 것으로 여겨졌던 플레이어의 숙련도 자체가 게이머의 손을 떠나 게임회사의 서버, 다시 말해 플랫폼으로 소유권이 넘어가게 되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살펴본 납금플레이 형식이 플랫자본주의라는 흐름과 결코 분리된 결과가 아님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다.


    매직서클, 납금플레이, 가상화폐, 그리고 메타버스와 P2E, NFT

    현실과 분리된 가상의 시공간이 소멸하는 문제가 게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이 흐름은 거부할 방법도 드러나지 않은 채 다른 여러 흐름과 함께 움직이고 있다. 납금플레이와 동일한 맥락이 마치 완전히 다른 무언가인 것처럼 2021년의 트렌드 키워드를 점령한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메타버스(metaverse)다.


    2020년대 들어 붐을 이루기 시작한 메타버스는 갑자기 등장한 개념은 아니다. 원류를 따지자면 닐 스티븐스의 ‘스노 크래시(Snow Crash)’라는 SF소설까지도 거슬러 올라가지만, 가상 현실과 현실의 연결 자체를 현실 차원의 단어로 사용하기 시작한 기점은 2003년 출시된 온라인 게임 ‘세컨드 라이프’부터라고 볼 수 있다.


    메타버스를 명확하게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여러 분야에서 거론되는 이 개념의 용례들을 통해 공통점을 묶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매체에 의해 구성된 가상공간을 가상으로 두지 않고 현실과 연계되는 혹은 현실의 대안이 되는 공간으로 설정한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기존의 사이버스페이스라 불렸던 서비스들과 달리 비목적적인 커뮤니케이션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사이버스페이스를 통한사람 간의 교류는 이미 PC통신이나 인터넷을 기반으로 이뤄지고 있었지만, 이들은 방문 목적에 최적화된 인터페이스와 경로를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기존에는 가상공간을 굳이 만들어놓고 그 안에서 걸어 이동해야 하는 것을 불필요한 무언가로 여겼다면, 메타버스라는 말이 유행한 이후부터는 사이버스페이스가 현실의 불필요한 움직임을 배제하려 했던 것과 반대로 일부러 사이버스페이스 안에서 걸어서 이동하는 ‘불편함’을 구현하는 형태로 서비스의 구현 방향이 바뀌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그렇게 구성되는 메타버스 공간이 이윤의 측면에서도 현실의 확장으로 연계될 수 있는 공간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를 넘어 이윤과 가치의 교환이 인정된다는 전제를 포함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어스2’의 사례는 메타버스가 가상이 아닌 현실을 추구한다는 주장에서 현실의 배경에 이윤이 존재한다는 점을 잘 드러내는 사례다. 메타버스를 표방하는 많은 서비스가 지향하는 바가 사실상 납금플레이, 현질의 다른 말이 됨을 알 수 있다.


    또한 메타버스와 함께 논의되어온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다루는 또 다른 기술인 가상화폐와 NFT(Non-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 토큰)같은 개념도 같은 맥락의 선상에 있다. 가상과 놀이가 엮이고 현실과 노동이 엮이던 매직서클을 통해 구분되었던 다차원의 이분법적 세계에 균열이 나고 있는 것이다. 매직서클의 경계가 희미해진다는 말은 그래서 단순히 놀이와 노동의 문제를 넘어 가상과 현실의 중첩이라는 흐름으로도 이야기 할 수 있다. 이른바 P2E, ‘Play to Earn’이라는 개념에 이르면 잊 놀이와 노동은 경계 짓기를 넘어서 아예 융합되는 상황을 맞이한다. 말 그대로 놀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개념으로 게임플레이를 통해 서버에 축적되는 어떤 잔여물들이 놀이의 흔적이 아니라 현실의 화폐와 통용될 수 있는 무언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발견되었고, 이를 본격적으로 전면에 내세우는 개념이 P2E다. 게임을 하면서 돈이 생긴다니 이처럼 매력적인 말도 없어보인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산업과 경제 규모의 성장은 언제나 새로운 영역을 향한 개척과 연관되었다. 메타버스의 프로토타입이 되는 온라인 게임의 상황은 우리의 미래가 밝고 아름다운 세계임을 증명하고 있을까? 플랫폼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시대를 만들고 있는 변화한 결제 환경과 달라진 플레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국 좀 더 거시적 입장에서 게임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플랫폼자본주의라는 물적 토대를 기반으로 한 플레이 탐색이 필요하다. 본격적으로 현실의 이윤이 그 가상공간에 개입하기 시작한 시대에 이르면 이제 그 말에는 조금의 공포가 따르기 시작한다. 현질이라는, 다소 가벼워 보일 수 있는 게임 안의 이야기가 단지 게임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가까운 미래를 예견하는 이야기인 이유다.


    * * *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