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이의 곁에 있다는 것
 
지은이 : 김형숙, 윤수진 (지은이)
출판사 : 팜파스
출판일 : 2022년 25월




  • 아픔은 우리를 언젠가 찾아옵니다.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느닷없이... 하지만 아픈 이의 곁을 지키는 사람은 지금까지 뒤에 가려진 존재였습니다. 간병 가족과 보호자의 삶을 살피며, 아픔을 감추어야 할 특별한 일처럼 여기는 사회와 우리들의 시선을 되짚어 줍니다.


    아픈 이의 곁에 있다는 것


    아픈 이만큼이나 보호자도 아프다

    어쩌면 삼대의 삶이 걸린 시간

    다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우리 생애 대부분은 서로 돌보고 돌봄 받는 경험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경험의 질에 따라 여러 사람의 인생이 바뀐다. 간병은 돌봄을 받는 조부모 세대, 조부모를 돌보는 부모 세대, 부모 세대의 돌봄에 의존하는 자녀 세대, 최소한 3대의 인생이 엉켜 있는 경험이다. 이 중요한 시기, 이 위기를 기회로 경험할 수 있으려면 온전히 아픈 이와 가족들이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그러자면 아픈 이뿐 아니라 가족 구성원들 모두 각기 다른 경험을 하면서 위기를 겪고 있고, 각자 특별한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의 경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소통하는 것은 물론이고, 제각기 힘든 가족들을 위해 이웃들이 자신들의 지혜와 시간을 나누고 사회적으로 지원 방안도 모색하게 되지 않을까 한다.


    아픈 이의 스트레스는 보호자에게, 그럼 보호자의 스트레스는?

    내 이야기는 누가 들어 주나?

    가정에서 만난 가족들에게 간병은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이었다. 아픈 이에게 오늘내일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고, 아픈 이의 질병이 악화와 호전을 반복하면서 간병 기간이 10년 넘게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 긴 시간을 응급 상황에서 살고 있는 돌보는 이들의 고통은 중병을 앓는 환자의 요구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간병하는 가족은 아픈 이와 함께 위기를 겪는 사람들이고, 가장 많은 돌봄이 필요한 이들이기도 하다. 직접 간병 노동을 하지 않고 있더라도 중병으로 배우자나 사랑하는 이를 잃을 수 있는 상황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이고 삶의 위기인 것이다.


    그래서 호스피스, 노인 돌봄 영역에서는 돌봄의 대상이 가족까지 확대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여러 가지 가족 지원 프로그램을 제도적으로 마련하고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간병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그 마음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다. 많은 간병 가족들이 같은 처지에 있는 ‘다른 간병 가족’과 만나 이야기를 나눈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전문가들이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끼리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자조 그룹을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고려할 점은 그런 모임이 있어도 주변의 특별한 관심과 도움이 없으면 고령의 간병 가족이 혼자 모임에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설사 홀로 찾아갈 수 있는 젊은 사람이라도 해도 혼자 노력으로는 참여할 틈을 만들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간병 가족이 상담이나 자조 모임에 참여할 수 있도록 주변의 지지와 관심이 필요하다.


    가능하다면 가까이에 있는 간병 가족 모임을 소개하거나 등록을 도와주고, 그렇기 어렵다면 내가 그 이야기를 들어 주고 마음을 헤아려 주는 이웃, 친구가 되어 보면 어떨까.



    우리 사회가 간병, 간병 가족을 대하는 방식

    긴 병에 효자 없다?

    간병 기간이 길어질수록 가족을 간병하는 것이 삶의 한 부분으로 크게 자리하게 된다. 가족들의 삶도 간병 이전과는 영 딴판이 된다. 간병을 중심으로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돌아가는 일과 속에서 가족을 돌보는 의미도 빛바랜 지 오래, 그냥 노동이 되어 간다. 자신의 삶이 사라져 가는 것을 눈 뜨고 바라볼 뿐 어찌할 도리가 없다. 아픈 이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 속상함을 육체적, 심리적, 사회적 어려움 등으로 서서히 희석되고 자기 마음속에 생겨나는, 숨기고 싶은 이기심도 어쩔 수 없이 보게 된다.


    나의 간병을 통해 아픈 이가 점차 나아지면 보람도 있고 서로 고마움도 느끼는 경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아픈 이의 병세가 점차 깊어지고 시간이 갈수록 식사며 대소변이며 모든 것을 나에게 의존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픈 이는 가장 가까이에서 간병을 하는 이에게 온갖 불편을 쏟아 놓고, 고마워하기보다 짜증과 투사, 우울을 더 많이 표출하게 된다. 가족들은 서운함을 느끼면서도 ‘아픈 이니까 이해해야 한다’며 참을 인을 새기는 순간이 많아질 것이다.


    이 상황이 되면 주변에서는 “긴 병에 효자 없다” 또는 “긴 병에 장사 없다”는 말들을 한다. 오랜 간병을 해본 사람의 말이라면 ‘나도 해봤지만 처음 같지 않게 흘러가더라’ 하는 위로와 공감의 뜻으로 들린다. 그러나 간병을 해보지도 않은 사람이 이런 말을 한다면 비난의 말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 같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긴 병에 장사 없다’라는 말. ‘나는 안 그럴 줄 알았는데, 나는 안 그러려고 했는데’ 결국은 그렇게 되어 가는 현실에 가족들은 자책감과 좌절감에 시달린다. 긴 병의 과정은 그렇게 아픈 이와 가족 모두를 피폐하게 만든다. 그래서 “긴 병에 장사 없다”라는 말이야말로 참으로 조심해야 하는 말이다.


    가족을 위한 호스피스 보조 활동 서비스와 가족돌봄 휴직제도

    현대 사회는 의료 기술의 눈부신 발전뿐만 아니라 삶의 방식과 가치관도 크게 변했다. 가족의 형태는 핵가족을 넘어 1인 가구가 급증한다. 기혼이건 미혼이건 자녀들이 노부모를 모시고 사는 경우는 드물다. 지방으로 갈수록 자녀들은 수도권에 거주하고 나이 든 부모는 단둘이 또는 홀로 지방에서 지내는 경우가 흔하다. 자녀들은 대부분 맞벌이로 직장 생활을 해 가족 중 누군가 간병이 필요하면 쉽게 시간을 내기 어렵다.


    부모 부양에 관한 생각도 크게 변화되었다. 통계청에서 실시한 사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모 부양이 가족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 비율이 89.9%(1998년)에서 33.2%(2012년)로 감소한데 비해, 사회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답한 비율은 2%(1998년)에서 52.9%(2012년)로 크게 증가했다.


    이러한 가족 형태와 사회 인식의 변화에 따라 가족들의 돌봄을 지원하는 사회적 제도가 미비하나마 생기고 있다. 말기암 환자에 국한되어 있지만 입원형 호스피스를 이용하는 경우, 간병에 대한 의료 보험 혜택이 가능해져 기존에 내던 금액의 10% 정도만 내면 24시간 간병을 받을 수 있다. ‘호스피스 보조 활동 제도’인데 이는 호스피스 교육을 받은 요양보호사가 위생, 식사, 이동 등 기본적인 일상 생활을 보조하는 서비스다.


    또 최근 많이 알려진 제도 중 하나가 ‘가족돌봄 휴직제도’다. 이 제도는 조부모, 부모, 배우자, 자녀, 손자녀, 또는 배우자의 부모가 질병, 사고, 노령 등으로 장기적으로 돌봄이 필요한 경우 근로자가 사업주에게 최장 90일까지 휴직을 신청할 수 있는 제도다. 대개 무급 휴직이며 휴직을 신청하면 최소 30일 이상을 사용해야 한다. 단기간을 돌보려면 1년에 최대 10일까지 1일 단위로 쓸 수 있는 ‘가족 돌봄 휴가제도’를 이용하면 된다. 아직 가족돌봄 휴직에 대해 생소하다는 분위기가 있으나 이러한 제도들이 더 많이 만들어지고 사용된다면 현재 육아 휴직제도가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가족돌봄을 위한 휴직 역시 당연하게 인식되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는 인구의 노령화, 의료 기술의 최첨단화, 질병의 만성화로 가족들의 간병 부담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될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간병하는 돌봄의 아름다운 가치가 가슴 아프게 훼손되지 않으려면 이러한 제도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돌봄에 대한 노고를 인정하고 격려해 주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이토록 아픈 이들이 많은데… 보이지 않는 사람들

    암 등 중병을 앓는 가족을 돌보는 이들이 주변에 그런 사실을 알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픈 이가 있다는 것, 죽음이 우리 주변에 있다는 사실을 말하기를 꺼리고 터부시하는 이런 분위기가 아픈 이와 함께 간병 가족들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킨다. 간병을 드러내는 것이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가 된다고 인식해 감추게 되고, 결과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에 고충을 토로할 곳이 없어지는 것이다.


    가까운 이들과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서로 지지하고 의지하는 일상에서 분리되면서 간병 가족의 삶은 정지된다. 아픈 이가 돌아가실 때까지 혹은 간병이 끝날 때까지.


    고립은 이들의 선택이 아니었다

    간병하는 이들이 고립되는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흔하게는 아픈 이가 병으로 변해 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기 싫어해 사람을 꺼리는 것이다. 간병하는 사람이 간병 사실을 감추거나 자신만의 간병 방식을 고집하며 타인의 도움을 거부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 주변 사람들은 간병하는 이의 유난스런 성격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이는 주변 사람들이 간병 가족을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도 크다.


    아픈 이나 그 가족들이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시선 중에는 무조건 불쌍하게 여기는 시선이 있다. 불쌍히 여기는 데 머물지 않고 ‘섣부른 위로’나 간병에 대한 충고‘로 이어진다. 많은 경우 그런 위로와 조언은 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 간병하는 당사자는 그 누구보다 많은 정보를 찾아보고 좋은 간병 방식을 모색하며 실천해 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언해 주는 이는 간병하는 이가 그 말을 기꺼워하지 않으면 서운해하고 관계가 불편해진다. 그렇게 간병하는 이는 대화할 사람조차 없는 고립 상태에 빠져든다. 따라서 간병하는 이들의 고립은 그들의 선택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태도 등 사회적 압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이어지는 삶과 간병 마침에 대하여

    우리가 고립되지 않고 연결된다면

    건강하고 병들지 않은 사람만이 사는 세상이 아니다. 어디를 가든 아픈 이가 있고 병든 사람이 있다. 죽음을 앞둔 말기 환자가 아니면서 평생 동안 의료적 도움이 필요한 이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간병하는 이들을 지원하는 제도와 문화가 충분하지 않으면 그만큼 간병이나 돌봄 부담 때문에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사람들도 늘 것이다.


    중병을 앓거나 혹은 간병하는 가족들의 삶의 질에 가장 중요한 것은 ‘돈’과 ‘관계’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중병을 앓거나 가족을 간병하는 데에 돈이 많이 필요한 이유는 사회복지제도나 인간관계가 해줄 부분을 개인들이 돈을 들여 구매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달리 말하면 아픈 이와 이들을 지원하는 사회 시스템에 잘 구축되어 있고, 다양한 인간관계가 아픈 이와 돌보는 이들을 지원할 때 자연스런 삶의 과정인 질병과 죽음도 인간적일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고립되지 않고 연결된다면

    농촌에 가면 언제 모시고 가서 요양병원에 입원시켜도 환자로 손색이 없을 어르신들이 수두룩하다. 마을을 이루는 주민 다수는 고령의 독거노인이고, 사고나 질병 후유증 혹은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하여 지팡이나 워커에 의지한다. 하지만 그분들은 독립적으로 생활하며 스스로와 이웃을 돌본다. 모두들 ‘오도바이’라 부르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농사를 지어 도시에 있는 자녀들의 생활을 지원하기도 한다.


    삼십 가구 남짓 사는 마을에서 몇 년째 요양보호사의 방문을 받는 가구만 일곱 가구이고, 치매 노인의 수는 더 많다. 그중 몇 분은 독거 상태인데, 한 분은 매일 읍내에 있는 주간보호센터에 다닌다. 부모님의 앞집에 살고 계신 할머니다. 혼자 살고 계시지만 매일 센터 차량이 태우러 오고 요양보호사가 모시고 간다.


    치매가 있는 할머니가 시골집에 홀로 지내는 것은 자녀들의 무관심 때문이 아니다. 요양병원에 모시는 것보다 시골집에서 사시는 편이 자녀들에게는 심적, 물적으로 더 부담이 될 것이다. 평일에는 주간보호센터를 가도 밤이나 휴일이면 홀로 계시니 신경 쓰이는 일이 한둘이 아닐 것이고, 아마도 수시로 방문해 살펴 드려야 할 것이다. 나는 오히려 그런 불편을 감수하며 어머니를 살던 대로, 뜻대로 지내시게 배려하는 자녀분들이 존경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둘러싼 촘촘한 관계망과 다양한 공적 지원 체계가 없었다면 치매 노인이 시골집에서 홀로 살아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분의 처지가 당신의 처지가 될 수 있다고 믿으며 그래도 요양원보다는 집에서 지내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해 주는 이웃들, 고스톱은 더 나이 든 분들이 못하시니 “밥숟가락 들 힘만 있으면 함께할 수 있는 윷놀이만 한다”는 경로당 친구들, 주기적으로 마을을 방문해 주민들을 살피고 전화를 받아 주는 보건진료소장, 수시로 들러 장을 보고 대청소하며 집안일을 챙기는 자녀들, 한 번 시작하면 몇 년씩 관계를 맺으며 주민들 모두와 친숙한 요양보호사들, 그리고 필요한 서비스를 연결해 주고 급할 때 달려와 주는 이장과 젊은 이웃들 등.


    시간이 더 흘러 우리 부모님께서 방문 요양 서비스를 받으실 상황이 될 때에도 그 오래된 관계들이 남아 있기를 소망한다. 의존이 심해지고 더 많은 돌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부모님을 그 친밀한 세계에서 모시고 나온다면 너무 가슴 아픈 일이 될 것이다.


    그곳은 치매 노인들의 집 밖 세계, 마을 전체가 개방형 주간보호센터 같다. 시골이니까 가능한 일이라고 하지만, 많은 이들이 생각을 바꾼다면 사람들이 더 많이, 가까이 모여 있고 이용할 자원도 많은 도시가 변화를 만들기 더 쉬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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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