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에서 걸려온 전화
 
지은이 : 스테파노 산드로네(역:최경은)
출판사 : 서울경제신문
출판일 : 2022년 11월




  • 세상을 바꾼 위대한 발견과 노벨상 수상 이면의 이야기! 24명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위대한 발견의 순간과 그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을 회상하고, 미래 세대에게 영감을 줄 조언을 건네며, 앞으로 무엇이 더 발견되어야 할지 이야기합니다!


    스톡홀름에서 걸려온 전화


    화학은 쉽다, 인간답게 사는 것이 어렵다 _로알드 호프만

    - 과학과 예술의 경계는 어디일까요?


    그 경계는 결코 명확하지 않습니다. 과학과 예술은 창조의 본질을 공유합니다. 그럼요, 과학도 단지 발견이 아니라 창조에 관한 학문입니다. 과학과 예술은 둘 다 정교한 솜씨를 가치 있게 여기고 서술이나 강도의 경제성을 중시합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비슷한 미학적 원칙을 공유합니다. 또한 둘 다 대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됩니다. 하지만 둘의 차이점도 있는데, 예술은 특정 대상에서 보편성을 발견합니다. 시인은 바로 ‘그’ 풀잎 한 가닥의 ‘그’ 이슬 한 방울에서 우주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술은 모호함을 활용하는 법을 알려주는 반면, 과학은 모호하지 않은 문제들의 우주를 스스로 정의하며 여기에는 해결책이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중요할까요? 한번 말해 보세요! 사랑의 종말에 대한 해결책이 있나요? 과연 그런 게 있기나 할까요?


    - 교수님은 미래 세대의 과학자들에게 어떤 조언을 건네고 싶으신가요?


    젊은 과학자들에게는 과학에만 지나치게 몰두하지는 말라는 조언을 하고 싶습니다. 과학에 마음이 이끌리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절제하지 않는다면 과학에 매몰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인문학과 예술, 그리고 외국어 강의를 최대한 많이 들어두길 바랍니다. 인문학이 인생의 여러 문제에 딱 들어맞는 명확한 해답을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질문을 던지며 인간 존재에 관한 가장 중요한 질문들은 과학으로는 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줍니다. 그런 겸손함과 공감하는 마음, 인간적인 호의가 나름의 역할을 합니다.


    아, 한 가지 덧붙이자면 여건이 다소 여의치 않더라도 글을 쓰고 목소리를 낼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길 바랍니다. 오로지 두뇌에만 의존해서 잘해나갈 수 있는 사람들은 0.5퍼센트에 불과합니다. 그 외의 사람들은 가르치고 설명하고 글을 쓰고 목소리를 내서 자신의 주장이 타당하다는 것을 다른 이들에게 설득해야 합니다.


    - 이 책에서는 앞으로 과학과 관련된 여러 가지 주제를 다룰 예정입니다. ‘무엇’뿐만이 아니라 ‘어떻게’에 관해서도 논의할 생각입니다.


    차기의 돌파구는 전 세계의 젊은 사람들에게서 비롯될 것입니다. 국가와 지역을 막론하고 자신의 분야에서 세밀하고 치열하게 연구하며, 동시에 다른 모든 것을 최대한 접하려 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물리학과 마찬가지로 윤리학도 인간이 발명해낸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젊은이들이 돌파구를 찾아낼 것입니다. 나는 그런 젊은이들의 눈을 반짝이게 만드는 게 좋아요.


    - 그 말씀은 어떤 의미일까요? 미래 세대가 주기율표의 화학뿐만 아니라 사람들 간의 화학작용도 잘해낼 거라고 확신하신다는 뜻인가요?


    미래의 화학자들은 화학 그 너머를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당연히 미래의 화학은 지금 우리의 화학보다 더 낫겠지요. 여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화학반응을 더욱 정밀하게 제어하고, 순식간에 분자의 미시적 구조를 파악하는 능력도 훨씬 더 향상되겠지요. 하지만... 그들이 더욱 노력해야 할 부분은 인생의 도덕적, 사회적, 예술적 측면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교육만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화학은 쉬워요. 인간답게 사는 것이 어렵죠.



    타인을 돕는 열정이 나를 돕는다 _프랑수아즈 바레시누시

    - 교수님은 아프리카 및 아시아 각국을 수차례 방문하신 바 있습니다. 1985년에 처음 아프리카 국가에 다녀오셨는데, 그때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수도인 방기(Bangui)에서 열린 세계보건기구 워크숍에 참석하셨지요. 그리고 캄보디아에 가셨을 때는 노벨상 수상 소식을 알리는 전화를 받으셨습니다. 이들 국가를 방문하셨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습니까? 지난 30여 년간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드나드셨는데 특히 오래도록 마음에 남고 눈에 아른거리는 순간들이 있었나요?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군요. 1985년에 처음으로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방기에 갔을 때 회의 참가자들과 함께 병원에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심각하고 끔찍한 상태에 처한 환자들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당시에는 HIV 치료법이 없었고 환자들이 평온하게 숨을 거둘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약조차 없었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수련과 지식 전달 등 다양한 개입을 통해서 이런 국가들의 임상 상황을 개선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자원이 부족한 환경에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파리에 있는 파스퇴르 연구소에서 수련을 받았습니다. 루이 파스퇴르가 어떤 생각에서 전 세계 각국에 파스퇴르 연구소를 설립했는지 그때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을 전달하고, 단지 일방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협력하는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자원이 제한된 환경에 처한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고 존엄을 지켜주기 위해 연구와 개입을 실시했습니다. 비록 당면 과제가 산적해 있지만 자원이 제한된 환경에서도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의 동료들이 현장에서 직접 연구를 진행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체계를 만들어나가고 역량을 강화하는 노력 덕분에 HIV 및 다른 질병과 관련해서 현지의 사람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 여전히 수많은 의약품과 의료기술이 전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널리 쓰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건의료 서비스의 보편성을 실현하고 글로벌 보건의료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소위 HIV의 1차 치료는 어디에서나 받을 수 있습니다. 원칙적으로는 개발도상국의 모든 환자가 1차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 그런 치료를 받지 못한다면 그들이 검사를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자원이 제한된 환경에서는 대개 환자들이 진단을 받을 때쯤에는 이미 병이 말기까지 진행된 경우가 많습니다. 감염된 이후에 병원에 도착한다면 효율적으로 치료하기가 어렵습니다. 자원이 제한된 환경에 처한 사람들이 검사를 받도록 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양한 난관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자금 지원의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문제는 그뿐만이 아닙니다. 작은 마을에는 HIV 검사를 실시할 수 있는 전문 의료진이 없습니다. 따라서 공동체 기반의 활동을 조직해서 해당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훈련을 받고 직접 검사를 실시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작은 마을에 서는 신속 검사나 1차 검사처럼 사용법이 간편한 도구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공동체의 참여를 이끌어낸다면 상황을 개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정치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습니다. 몇몇 국가에서는 HIV 감염자들이 치료 또는 의료 혜택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정치인들 때문에, 환자들이 의약품과 의료기술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핵심 영향 인구’라고 부르는 동성애자나 마약 사용자들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그런 정치인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돈을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동성애자, 마약 사용자, 성 노동자, 트랜스젠더 등에 대한 탄압 조치를 시행하는 나라가 전 세계적으로 70개국이 넘습니다. 이러한 탄압 조치 때문에 예방, 돌봄, 치료에 대한 접근이 거부되고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장애물과 난관이 상당히 많습니다.


    또한 낙인과 차별 등 정치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낙인찍힐 우려가 있을 때 사람들은 검사를 받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거부당하거나 감옥에 수감되거나 친구와 가족들에게 외면당할까 봐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HIV 같은 질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에볼라의 경우에도 그런 상황이 발생했었지요. 잠재적 에볼라 보균자로 간주될까 봐 두려워서 숲속으로 탈출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교육과 보건 시스템 구축, 정치적 의지가 모두 필요합니다.



    목표를 세우지 말고 인생을 즐겨라 _아론 치에하노베르, 에드먼드 피셔

    - 노벨상 수상 10년 후에 스톡홀름의 노벨 주간에 교수님을 뵈었을 때 제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과학자는 노벨상 수상이 아니라 커다란 발견을 해내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요.


    나는 인생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 삶의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질적으로 높은 수준의 성과를 이뤄낼 때 진정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통찰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으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당연히 주변을 둘러보고 비교하고 판단해서 어떤 것이 훌륭한 과학인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독창성이 필요하지요. 자신이 수행하고 있는 연구에 대한 내적 판단과 통찰력의 문제입니다. 상을 타고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휘둘린다면 부정적인 동기의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열심히 연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상을 받게 됩니다. 상이라는 건 이 사회가 누군가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수단인데 사실 과학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가 평생을 연구에 바치더라도 과학적 문제를 전부 다 풀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일부를 풀고 나중에 누군가가 다른 부분을 더 풀어낼 것입니다. 물론 모든 것의 밑바탕이 되는 초석과도 같은 위대한 발견도 있습니다. 나는 물리학에 관해서는 잘 몰라서 아인슈타인의 업적을 설명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지만....


    - 교수님께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무엇입니까?


    어떤 목표를 세우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대신에 즐거운 경험들이 모여서 인생을 이룬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즐거운 일을 한 가지 해보고 그다음에는 또 다른 일을 경험해보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100만 불을 벌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그 목표를 달성하자마자 200만 불, 300만 불, 400만 불을 벌고 싶어질 것입니다. 그냥 인생을 즐겨야 해요. 모든 경험을 통해 어떤 것을 배웠는지,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 수 있을지 생각하면 인생을 즐길 수 있습니다. 나에게 인생은 신나는 모험으로 가득한 즐거운 여정입니다. 내 주변에는 괜찮은 커리어를 갖고도 지루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매일 직장에 출근해서 시계만 쳐다보고, 퇴근해서 집에 가거나 펍이나 다른 곳에 갈 생각만 하지요. 과학을 연구하면서 인생을 살아가면 한계가 없습니다. 과학은 항상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나는 과학자로 살아온 지 4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인생이 정말 즐겁습니다!



    학술지는 어떻게 과학을 망치는가? _랜디 셰크먼

    - 교수님께서는 노벨 강연 이틀 뒤에 ‘가디언(Guardian)’에 ‘‘네이처(Nature)’, ‘셀(Cell)’, ‘사이언스(Science)’를 비롯한 학술지는 어떻게 과학을 망치는가’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하셨습니다. 언제 그런 기고문을 작성하기로 결심하셨나요? 그리고 교수님은 그동안 ‘사이언스’, ‘네이처’, ‘셀’에 40차례 이상 논문을 발표하셨는데요. 교수님께서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의 편집인으로 활동하셨던 시기나 좀 더 일찍 이런 기고문을 발표하지 않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얼마든지 그런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가디언’에 실린 글을 발표하기까지는 수년에 걸친 긴 여정이 있었습니다. 내가 커리어를 쌓아나가던 시절에 이들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한 것은 사실입니다. 당시에 젊은 학자였던 내가 느꼈던 부담감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과학자들은 더욱 폭넓은 학계에서 인정받고 커리어를 쌓으려면 이처럼 저명한 학술지에 자신의 연구 성과를 발표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고 있습 니다. 하지만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의 편집인으로 활동하면서 ‘셀’, ‘네이처’, ‘사이언스’를 비롯한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겠다는 결정이 해당 학술지의 논문 피인용 지수인 ‘임팩트 팩터(impact factor)’를 기반으로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점점 강하게 들었습니다.


    임팩트 팩터는 수십 년 전부터 존재했지만 내가 그런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던 시절에는 임팩트 팩터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학술지를 홍보하는 데 눈에 띄게 많이 쓰이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미국 과학정보연구소(Institute for Science Information)의 유진 가필드가 도서관 사서들이 어떤 학술지를 구독할지 결정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 이 수치를 고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그런 목적으로 쓰인다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임팩트 팩터가 학문 연구를 평가하는 수치로 변질되었습니다. 당초에는 이런 의도가 전혀 없었습니다. 이처럼 상황이 점차 어려워지자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처럼 임팩트 팩터가 낮았던 학술지들은 ‘셀’, ‘네이처’, ‘사이언스’와의 경쟁에서 밀리게 되었습니다.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를 운영하는 과학자들은 좋은 수치를 얻기 위해 게재할 논문의 종류를 바꿀 생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이언스’는 그나마 조금 나은 수준이었지만 특히 ‘셀’과 ‘네이처’는 어떤 논문을 검토할지, 그리고 어떤 논문을 게재할지 결정할 때 이 수치에 지나치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실태에 분개한 나는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의 운영진과 편집위원회에 ‘우리가 게재하는 연구를 평가할 때 임팩트 팩터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숫자로 학문 연구를 평가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 양적인 지표를 활용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논문의 영향력을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혹은 어떤 지표를 활용해야 할까요?


    나는 어떤 숫자 하나로 논문의 가치를 측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일종의 대리인을 원한다는 점은 이해합니다. 아마 다른 측정 방법도 있겠지요. 학술지의 임팩트 팩터가 나쁜 이유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과학자들이 본인의 연구 성과를 서술하는 방식이 가장 좋습니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이렇게 답변하곤 합니다. ‘과학자들은 한 문단으로 된 글로 본인의 주요 발견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발견이 본인의 연구 분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명해야 합니다. 약 250단어 분량으로 작성하고 이 글을 이력서에 수록할 필요가 있습니다. 펠로십에 지원하거나 채용에 응시한 사람을 처음으로 평가하는 데 이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 이와 관련해 실질적인 관점에서 살펴본다면 대학 및 지원기관의 채용과 승진, 지원금 배분에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모두가 ‘셀’, ‘네이처’, ‘사이언스’에 논문을 발표하려고 집착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결국 논문의 가치를 판단할 권한을 전문 편집인들에게 넘겨준 셈입니다. 물론 편집인들 역시 명석하고 박식하겠지만 그중 대다수는 수년간 실험실에서 직접 연구에 참여한 적이 없습니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그들은 논문의 구체적인 내용을 판단할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과학자들이 제공하는 평론에 의존하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논문 심사 과정과 최종 결정에 권한을 행사합니다. 어떤 논문이 게재되는지를 결정하는 권한이 그들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이라이프’는 검토위원들과 심사위원들에게 힘을 실어줌으로써 이런 결정과 관련된 권한을 분산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이라이프’에서는 논문을 검토할 때 검토위원들이 다른 검토위원들의 의견에 대해 논평하는 온라인 협의 과정을 거칩니다. 심사위원을 포함해서 두세 명의 검토위원이 참여하는 온라인 논의를 바탕으로 결정을 내립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즉시 발표 가능할 만큼 잘 준비된 논문인지, 저자가 보완해야 할 부분은 없는지를 판단합니다.


    - 과학에 관한 경이로운 이야기가 담겨 있는 논문이 되려면 어떤 핵심 요소들을 갖춰야 할까요?


    일단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새로운 기법이나 어떤 문제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 또는 지금껏 미처 생각해내지 못한 새로운 문제 같은 것들 말입니다. 정형화된 공식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정말 뛰어난 논문은 읽었을 때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훌륭한 논문을 쓰려면 명확한 문장으로 작성해야 합니다. 지나치게 윤색하거나 과장해서는 안 됩니다. 연구 데이터가 스스로 말하도록 해야 합니다. 가장 위대한 논문들을 살펴보면 데이터가 확연하게 눈에 들어옵니다.



    리더십은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_로저 마이어슨

    - 로저 마이어슨 교수님의 노벨 전기를 보면 마지막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사회 제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사회 제도를 설계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 여전히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이 상당히 많다.” 이 글은 2007년에 작성하셨는데요, 지역적 차원 및 전 세계적 차원에서 어떻게 하면 오늘날의 사회와 미래의 사회를 더욱 잘 설계할 수 있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로 나는 우리가 연방정부의 권력을 여러 층위의 정부에 분배하는 것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개발에 실패한 나라들, 그리고 근본적인 정치적, 사회적 문제가 있는 나라들은 헌법에 따른 국가 지도자와 지방 지도자 간의 권력 공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나라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계에는 과도하게 중앙집권화된 국가들이 있습니다.


    가장 간단하게 말하자면 경제학의 산업조직론을 통해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불완전 경쟁 시장’ 이론인데, 소수의 공급자가 경쟁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물건을 구입하는 시장을 의미합니다. 소비자가 대안을 택할 수 있으므로 독점은 아니지만, 이상적인 완전 경쟁도 아닙니다. 소수의 대기업이 우리에게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서 경쟁합니다. 어쩌면 경쟁 시장을 만드는 데 중요한 것은 시장에 참여하는 기업의 수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시장에 있는 기업들이 담합을 통해서 독점에 해당하는 행동을 취할 경우 새로운 기업이 쉽게 시장에 진입해서 낮은 가격으로 제품을 판매하고, 기존의 기업들이 가격을 낮추기 전에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고 수익을 얻을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낮은 진입 장벽’, 즉 새로운 기업이 얼마나 쉽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결정 요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개념을 정치에 적용해봅시다. 미국과 영국의 선거제도는 양당제를 장려합니다. 마치 독점과 아주 유사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다수의 당이 존재하는 비례대표제에 비해서 경쟁이 부족해 보입니다. 두 개의 정당은 경쟁의 혜택을 달성하고 경쟁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대다수의 이점을 확보하기에 충분할까요? 다시 말하지만 ‘진입장벽’의 문제입니다. 언론의 자유는 진입장벽을 낮춰서 현재 집권 중인 정치 지도자가 부패할 경우 새로운 정치 운동을 쉽게 조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국가 아래의 지방정부 역시 국제 정치의 진입장벽을 상당히 낮추는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미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렇습니다. 지방에서 선출된 주지사나 시장에게 중요한 책임을 부여하고 공직을 수행하도록 함으로써, 본인의 능력을 증명하고 더 높은 직위에 올라가기 위해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 그렇다면 앞으로 선거 규정이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승자독식 선거에서 한 명 이상의 후보자에게 투표하는 것을 허용한다면 여러 측면에서 선거의 경쟁력이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이런 방식을 ‘승인 투표제(approval voting)’라고 하는데, 상당히 간단한 개혁입니다. 특히 대통령 예비선거 등을 고려하면 이런 방식으로 선거를 실시하는 편이 확실히 더 낫습니다.


    게임이론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나는 게임의 법칙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의 여러 층위에 걸쳐서 권력을 분산하는 것의 중요성에 관해서는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어떤 선거 시스템하에서든 연방 권력의 분산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문제도 살펴봐야 합니다. 미국 연방정부는 양원제 대통령 민주주의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내 생각에는 영국의 의회제도가 훨씬 나은 것 같습니다. 영국에서는 규모가 큰 지역 차원보다는 카운티 차원의 지자체로 권한을 양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규모가 큰 지역의 경우 영연방에서 탈퇴해 자체적으로 ‘국가’를 수립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덜 친숙한 제도를 선호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의회 민주주의제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통령 민주주의제의 장점과 미덕을 나보다 더 잘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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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