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권의 미래
 
지은이 : 이승주 외
출판사 : 21세기북스
출판일 : 2022년 07월




  • ‘다차원적 복합 게임’으로 변모한 미중 전략 경쟁, 하나의 쟁점이 다른 쟁점과 연계하여 경제-안보 연계의 패권 전쟁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전략 수립을 위해, 이러한 변화의 진면목을 파악해봅니다.


    패권의 미래


    미중 전략 경쟁과 지경학의 국제 정치

    미중 전략 경쟁: 이슈의 결합

    미중 전략 경쟁에는 권력 이동(Power shift)의 진행과 같은 구조적 요인,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상호작용, 제3국들의 대응 전략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중 전략 경쟁은 패권적 질서가 약화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패권적 질서의 약화는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쇠퇴라는 하드파워 차원의 변화와 세계 질서를 선도하는 리더십의 약화라는 소프트파워 차원의 변화가 동시에 진행된 결과이다. 권력 이동을 중심으로 한 전통 국제 정치의 틀이 완전히 해체되지 않은 가운데, 새로운 쟁점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질서가 부상하는 것이 미중 전략 경쟁의 양상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권력 변동의 국제 정치는 탈냉전 시대 미국의 단극 전략과 기존 세계 질서에 대한 변화를 추구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단극 체제하에서 미국이 압도적인 국력을 보유했음에도 지구적 차원의 공공재 제공을 소홀히 하고 일방주의적 행태를 보인 결과 규범적 리더십을 상실하게 되었다. 단극 체제하의 미국 패권의 쇠퇴를 세력 분포상의 권력과 규범적 권력 사이의 불일치 결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는 미국이 주도한 세계화와 자유 무역의 한계가 극명하게 노출된 사건이었다.


    한편, 중국은 2001년 WTO가입과 함께 세계 경제에 본격적으로 편입되면서 경제적 부상의 기회를 포착했다. 글로벌 금융 위기는 미국의 대내외적 위기와 대비되어 중국이 국제무대에서 존재감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 위기의 당사자였던 미국은 문제의 원인을 대외로 돌리는 과정에서 중국을 조준했다. 글로벌 금융 위기의 근본 원인은 지구적 불균형(Global imbalance)에서 찾을 수 있고, 지구적 불균형의 한가운데 중국이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특히 관세 및 비관세 장벽, 보조금, 산업 정책 등 다양한 수단을 활용하여 불공정 무역을 지속한 결과 특히 미국을 상대로 대규모 무역 흑자를 갖게 되었고, 지구적 차원에서는 지구적 불균형을 초래했다. 더 나아가 이러한 방식에 힘입은 중국의 경제적 부상은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의 근간을 약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글로벌 금융 위기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적 관계를 표출시킨 요인이 된 동시에 갈등의 원인이 구조적인 것임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구조적 문제에 대한 미국과 중국의 이견이 비단 무역 분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 드러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미중 전략 경쟁은 구조 변동 과정에 전통적 이슈와 새로운 이슈가 혼재하며, 다양한 장을 활용하여 새로운 질서의 수립을 경쟁적으로 추진한다는 점에서 패권 경쟁의 성격을 띤다. 이는 ‘다차원적 복합 게임’으로 미국과 중국은 무역과 같은 단일 쟁점을 둘러싼 갈등을 전개하는 가운데, 기술·공급망·투자 등 다양한 이슈와 연계하며, 궁극적으로 경제-안보 연계 전략을 추구한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은 표면적으로는 개별 이슈에 대하여 양자 차원에서 접근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더 심층적으로는 이슈의 연계와 장의 연계를 동시에 추구하는 입체적 접근을 하고 있다.


    미중 전략 경쟁은 두 당사자국은 물론 세계 질서의 향방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점에서 한국에도 당면한 이슈이다. 한국의 전략적 대응은 미중 전략 경쟁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엄밀한 분석의 토대 위에서 가능하다는 점에서 희망적 사고와 낙관적 전망은 경계의 대상이다. 문제는 미중 전략 경쟁의 양상이 다면적이고 그 영향이 지구적인 만큼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데 있다. 미중 전략 경쟁에 대한 백가쟁명은 이론적인 차원에서는 논의를 풍성하게 하는 효과가 있으나, 실천적인 차원에서는 객관적이면서도 엄밀한 분석을 토대로 한 전략의 도출에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미중 전략 경쟁으로 인해 촉발된 세계 질서의 재편 과정은 대다수 국가가 직면할 중대한 도전이다. 대부분의 국가가 미국과 중국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상황을 최대한 회피하려고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헤징(Hedging)은 미중 전략 경쟁에 대응하는 국가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다. 헤징이 원칙적으로 선택의 딜레마를 완화할 수 있는 유력한 전략이기는 하지만, 개별 이슈 차원에서 헤징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헤징을 구체화하고 보완하는 전략의 필요성이 더욱 커진다. 미중 전략 경쟁에 대하여 유사한 우려를 공유하는 국가들 사이의 협력, 21세기 현실에 부합하도록 20세기 규칙을 개정하기 위한 모범적 리더십, 지구적 차원의 지속 가능성을 제고하는 데 실질적으로 기여하고 규범의 형성을 선도하는 규범적 리더십 등과 같은 중견국 외교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신세계 질서와 세계 안보: 미국의 전략

    바이든 시대의 세계 전략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정부의 미국 우선주의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트럼프 정부가 약화시킨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내세웠다. 자유주의 질서의 축인 다자주의 국제 제도의 수호, 규칙 기반 질서의 강화, 자유롭고 공정한 국제 경제 질서의 유지, 동맹 및 전략 파트너와의 협력에 기초한 세계 안보의 유지 등을 중요한 정책 목표로 제시했다. 이러한 정책이 지향하는 목표는 미국 패권의 재건이지만 동시에 패권 전략을 뒷받침할 수 있는 국내적 기초 특히 중산층의 재건이다. 바이든 정부는 중산층의 재건, 국내 경제의 재활성화를 위한 외교 정책이라는 목적 하에 산적한 국내 문제의 해결과 지구적 영향력 확보를 위한 대외 정책 간의 연계를 강조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중국과 러시아를 강력한 전략적 경쟁자, 이란과 북한을 국제 질서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보고, 테러리즘과 같은 비국가 행위자의 위협을 막는 것을 가장 중요한 외교 정책의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동시에 코로나 사태나 기후·환경 위기처럼 초국가적 위기가 팽배하므로 이에 대처할 수 있는 다자주의 국제 제도의 강화를 또한 강조하고 있다.


    동맹과 전략적 파트너는 이러한 중요한 문제를 해결할 중요한 협력자들이다. 미국은 혼자의 힘으로 급증하는 국제적 공공재 수요를 충당하기에 부족하다는 점을 충분히 깨닫고 있으며 국제 사회와 동맹의 도움을 강조하고 있다.


    탈냉전 30년 동안 미국이 일방주의를 앞세우고 군사력에 의존한 문제 해결에 치중한 것을 비판하면서 2021년 8월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단행했고 이후에도 직접적인 군사력 사용에 의한 문제 해결에는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우크라이나의 안보는 물론 유럽의 안보 질서, 나토 회원국들의 안전, 그리고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뒤흔든 커다란 사건이었지만 바이든 정부는 군사 개입의 대안을 선택하지 않고, 나토 회원국들과 공조하여 우크라이나에 대한 물자 지원,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경제 제재로 문제에 맞선 바 있다. 비군사적·외교적 방법에 의한 해결이 쉽지 않고 국제 사회와 동맹의 힘을 빌려 리더십을 행사하는 것도 어렵지만,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정부와는 다른 정책 수단을 사용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미국의 번영과 안보에 가장 위협이 되는 것은 중국의 도전이라고 본다. 다른 위협도 무시하기 어렵지만, 중국은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에 걸쳐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질서를 위협하고 다른 국가들을 강압으로 굴복시키는 수정주의 세력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트럼프 정부가 시작한 ‘인도·태평양 전략’을 계승하고 쿼드와 같은 4개국 협의체를 이어받아 중국에 대한 강한 견제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극단적인 미국 내 정치 양극화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대한 견제 전략에서는 국내적 합의가 비교적 공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미국은 권위주의 국가들에 맞서는 자유주의 국가들의 연대를 이루어 가치와 규범의 측면에서 중국을 견제하고 중국과 첨단 기술의 격차를 유지하여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며 굳건한 공급망 구축을 통해 중국과 선택적 탈동조화를 추구하고 있다. 중국에 비해 월등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중국의 도전을 막고 미국의 패권을 유지한다는 것이 바이든 정부의 외교 전략의 핵심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미중 충돌 위험의 상존

    미중 간 전략 경쟁은 트럼프 정부와 바이든 정부를 거치면서 점차 근본적인 변화를 맞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중국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미국의 보건 위기를 경험하는 가운데 중국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양상이 더욱 강화된 것이다. 미국은 점차 현재의 중국과 평화로운 공존이 어렵다고 보고 이념적·전략적 대결 양상을 부각시키고 있다. 특히 중국의 주권과 관련된 핵심 이익 사안들인 대만·홍콩·신장 등에 관련된 조치를 취하고 있고 남중국해에 대한 입장도 더욱 강화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을 마르크스-레닌주의 공산주의 국가로 규정하고 세계 질서를 권위주의적으로 재편하고 있는 세력으로 이념적 공격도 가한 바 있다. 바이든 정부 역시 중국의 권위주의 정권의 성격을 비판하면서 자유주의 정상 회의를 개최하는 등 가치의 진영화가 두드러진 현상이 되고 있다. 세계의 진영을 미중이 중심이 된 배타적 양 진영 체제로 보게 하는 이러한 논의는 정책의 차원에서 미중 간 다차원적인 탈동조화(Decoupling) 위험으로 다가오고 있다.


    경제·기술·정치·문화·금융·에너지 등 각 분야에서 가중되는 경쟁과 대결 양상은 근본적으로 군사 안보 문제로 번질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핵심적인 지역은 대만과 남중국해이다. 미국은 홍콩에 대한 중국의 강압적 조치를 보고 대만이 독립 선언을 하지 않았을 때도 중국이 강압적 병합을 시도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강화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TSMC와 같은 첨단 반도체 기업을 가지고 있는 대만이 중국의 영향력에 들어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며 외교적·군사적 지원을 강화하는 추세이다.


    남중국해 역시 동남아 세력 균형의 핵심 지역이다. 미국은 남중국해가 매년 거의 4조 달러의 무역이 통과하는 지역으로 그중 1조 달러 이상이 미국 시장과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또한, 그 해양에는 약 2조 6,000억 달러에 달하는 해양 석유와 가스가 있다. 동남아시아 연안의 약 370만 명을 고용하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어장이 존재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남중국해는 미국이 중국과 군사 충돌을 단기·고강도 분쟁으로 봉쇄하면서 승기를 잡을 수 있는 전장이기 때문에 향후 이 지역에서의 미중 간 군사 충돌 가능성은 점증하고 있다. 만약 이러한 충돌이 현실화된다면 미중을 축으로 한 아시아 국가들의 양대 진영화는 더욱 촉진될 것이고 미중 관계 역시 화해가 어려운 탈동조화를 향해 한걸음 더 나아갈 것이다. 미국의 안보 전략이 중국을 주된 대상으로 하면서 현상 유지를 추구할 것으로 보는 견해가 여전히 많기는 하지만, 향후 양국의 국제 정치 및 현안 등 다양한 변수를 통해 미중 간 군사 안보 관계가 더욱 악화될 수 있다. 그렇다면 기존의 미국 패권 전약 변화로 야기된 세계 질서의 흐름과 맞물려 미중 간 안보 경쟁은 새로운 세계(무)질서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미국 외교 전략의 흐름은 단극 체제의 구조적 모순이나 미국 사회 전체의 변화와 같은 구조적 변수가 결정하는 부분이 있지만, 미국의 전략적 선택이 구조를 형성하는 부분도 크기 때문에 향후 미국의 안보 전략은 매우 중요한 변수이다. 바이든 정부가 국내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고 미국 경제의 새로운 활로를 찾을지, 그리고 국제 사회와 동맹국들의 도움에 힘입어 주요 외교 문제들을 해결해나갈지, 무엇보다 중국과 인류 공통의 문제에 직면하여 경쟁과 공존·협력의 새로운 길을 찾아 나갈지가 향후 지켜보아야 할 관건이 될 것이다.



    신흥 기술 안보와 미중 패권 경쟁

    다차원적 국력 경쟁 양상

    미래 글로벌 패권을 둘러싼 미중 경쟁의 파고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특히 최근 4차 산업혁명 분야의 기술을 둘러싼 양국의 갈등이 더욱 거세지는 양상이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인공지능, 무인로봇, 빅데이터, 모바일, 클라우드 컴퓨팅, 사물인터넷, 가상현실, 3D프린팅 등과 같은 이른바 ‘신흥 기술(Emerging technology)’의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경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신흥 기술 경쟁은 민간 기업이 벌이는 경쟁의 차원을 넘어서 양국의 정부, 어떤 경우에는 양국의 국민까지도 참여하는 다차원적인 국력 경쟁의 양상을 띠고 있다. 다시 말해, 좁은 의미의 기술과 산업의 경쟁을 넘어서 무역과 금융, 그리고 정책과 제도 등을 포괄하는 복합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미중 기술 경쟁의 외연이 넓어지고 내용이 다양화되는 가운데, 최근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은 기술과 안보의 만남이다. 신흥 기술 분야의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양국의 경쟁이 안보라는 구도에서 이해되고 있다. 다시 말해, 신흥 기술 변수가 미래 국력경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는 것만큼 기술 경쟁력이 국가 안보의 프레임에 투영되어 해석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의 미중 경쟁을 보면 기술변수가 경제와 산업의 경제를 넘어서 안보와 외교의 문제로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안보적 함의를 지니는 기술 분야의 기업 간 경쟁과 갈등이 국가 간의 지정학적 위기마저도 초래하는 이른바 ‘디지털 지정학’의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최근 기술 변수가 안보 문제와 만나 디지털 지정학의 이슈를 제기한 대표적인 사례는 사이버 안보였다. 2010년대 들어 해킹 공격과 이에 대한 방어의 문제는 단순한 기술과 공학의 문제를 넘어서 급속히 군사와 외교, 그리고 국가 안보의 쟁점이 되었다. 완벽한 방어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공격자를 밝히기조차 쉽지 않은 특성상 사이버 안보는 일찌감치 국가 안보 이슈로 ‘안보화’되었다. 이러한 연속선상에서 2010년대 후반을 장식한 것은 중국 기업 화웨이가 제공하는 5G 인프라의 신뢰성 문제였다. 화웨이 5G 장비에 심어진 백도어를 통해서 국가 안보를 위협할 데이터와 정보가 빠져 나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화웨이 장비에 대한 수입 제재 조치와 더불어 화웨이의 공급망을 옥죄는 수출 통제 조치도 취해졌다. 안보를 빌미로 한 양국 간의 기술 갈등은 반도체, CCTV, 드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등으로 확장되었다. 이는 지구화 과정에서 구축된 글로벌 공급망의 와해를 우려하게 했다. 게다가 미국은 전통적인 정보 동맹인 파이브 아이즈(Five Eyes)국가들까지 동원해서 중국의 기술적 약진에 맞불을 놓으려 했다. 최근에는 미국이 대중국 견제의 전선에 민주주의 가치와 인권 규범의 변수까지 동원하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더 나아가 군사적 함의를 갖는 우주 경쟁과 인공지능(AI)을 장착한 자율 무기 체계 경쟁도 기술 안보의 이슈로 가세하고 있다. 이렇듯 신흥 기술과 관련된 안보 문제는 해킹 공격, 인프라 및 공급망 보안, 데이터 안보, 사이버 동맹과 디지털 규범, 우주 경쟁과 AI무기 군비 경쟁 등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의미를 지닌다.


    국가 신흥 기술 안보 전략 수립이 절실

    최근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벌어지는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기술 그 자체도 관심사이지만, 그 기술의 안보적 함의도 독자적 쟁점이 되었다. 5G 이동통신장비의 사이버·데이터 안보가 논란이 되더니, 그 갈등의 전선은 반도체 공급망의 안보 논란으로 번졌다.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는 사이버 안보 위협도 국가 안보와 국가 간 전쟁을 거론케 하는 국제 안보의 이슈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신흥 기술 안보 분야에서 한국은 어떠한 대응전략을 펼쳐야 할까? 무엇보다도 신흥 기술 안보의 각 분야 및 전체적 ‘구조적 상황’에 대한 포괄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국이 차지하는 ‘구조적 위치’를 고려하는 대응 전략의 수립이 필요하다. 분야마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력과 생산력이 상이하고 미중 양국이 모색하는 경쟁 및 협력 전략의 내용이 상이함을 이해하는 것이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분야별로 연루된 한국의 구조적 위치 또는 국가 이익 및 기술·생산 역량도 상이하다는 사실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분야별 ‘개별 전략’의 개발뿐만 아니라 이들을 아우르는 ‘메타 전략’의 개발이 필요하다. 그러한 전략의 방향을 중견국 외교의 시각에서 짚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중견국 한국의 신흥 기술 안보 전략은 미중 사이의 ‘구조적 공백’을 공략하는 ‘중개 전략’의 발상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 과정에서 기술 질서의 변동과 생산 질서의 변동 사이에서 발생하는 ‘불일치’ 또는 ‘균열’, 즉 구조적 공백을 활용하는 대응 전략을 상정해볼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대중 상호 의존의 비대칭성을 완화하고, 좀 더 포용적인 한중 관계를 구축해가는 유연한 대응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한미 협력을 업그레이드하면서도 상업화와 이중 용도의 성격을 지닌 분야에서의 한중 협력의 가능성도 열어놓아야 할 것이다.


    둘째, 신흥 기술 안보 분야의 중개 전략의 모색이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진영에 대한 선택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여태까지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소극적인 유보론의 입장을 취했다면, 이제는 좀 더 명시적으로 입장을 표명해야 할 수도 있다. 이러한 구도는 단순히 미국 편승론이나 한중 협력론과 같은 단순 선택지가 아닐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여태까지 한국이 만지작거렸던 카드가 미국이 주도하는 네트워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미국달래기’였다면, 앞으로는 미국이 주도하는 사이버 동맹 외교의 전선에 적극 가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중국 달래기’를 모색하는 비대칭적인 관계 조율의 복합적인 카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셋째,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구조적 위치 잡기를 모색하는 동시에 ‘내 편 모으기’차원에서 동지 국가들(Like-minded countries)과의 연대 외교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신흥 기술 안보 분야에서 중견국 연대 외교를 추진할 경우 대상이 되는 그룹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대표적 중견국 정부 간협의체인 믹타(MIKTA)부터 ITU나 OECD 등과 국제 외교의 장에서 한국과 유사한 입장을 취했던 국가들이 연대 외교의 후보들이다.


    넷째, 규범 외교의 관점에서 신흥 기술 안보 분야가 모색 중인 국제 규범의 형성과정에 적극 참여해야 할 것이다. 특히 미국과 중국 또는 서방과 비서방 진영 사이에서 다양하게 제기되는 쟁점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전략적으로 포지셔닝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유엔 GGE나 OEWG차원에서 논의되는 사이버 안보, 우주 안보, 인공지능(AI)기반 자율 무지 체계 등과 관련된 국제 규범의 형성 과정에 한국의 관심사와 국익을 반영하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펼쳐야 할 것이다. 여러 쟁점을 둘러싸고 한국이 취할 입장에 대한 지지를 확대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끝으로, 신흥 기술의 세계 정치에 대응하는 국내적 차원의 추진 체계를 정비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신흥 기술 안보의 국가 전략을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의 위상을 다시 세워야 한다. 신흥 기술 안보 분야의 외교를 담당할 외교부 차원의 조직 정비도 시급한 사안이다.



    미중 희토류·희소 금속 패권 경쟁

    첨단 기술 시대의 자원 쟁탈전

    최근 탈석유화와 디지털 전환으로 인해 전 세계 국가 간 희토류, 희소 금속(Rare metal)과 같은 전략 광물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20세기의 냉전과 미·러 강대국 대립은 전통 제조업과 그 원료인 석유와 가스를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21세기 미중 간의 경쟁은 재생 에너지, 전기차, 드론, 양자컴퓨터, 3D프린팅, 인공지능과 로봇, 첨단 무기를 대상으로 일어나고 있는 만큼 핵심 원료인 희토류와 희소 금속 등을 두고 소리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희토류와 희소 금속은 아주 소량으로 첨단 기능을 가능케 한다. 보통의 철과 금속에 소량의 희토류와 희소 금속을 추가로 합금해 고효율의 기능을 얻는 만큼 희토류는 ‘산업의 조미료(MSG)’, “향료 금속(Spice metal)’, ‘첨단 산업의 비타민’으로 불린다. 이것들은 원재료의 형태로 다량의 채굴이 어렵다. 대체재를 찾기도 쉽지 않다. 이 같은 희소 금속에 대한 수요는 컴퓨터와 전자통신 기술 등이 급속히 발전하기 시작한 1970년대부터 늘어나기 시작했다. 새로운 전자통신 기술에서 전기 전자의 흐름을 배가하는 초전도체·반도체적인 특징을 갖게 해주는 희소 금속들이 없어서는 안 될 원료로 부상한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패권 경쟁의 시각에서 반도체, 전기차와 배터리 시장을 지배하는 국가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고 말하고 반도체와 배터리 제조 공장 증설과 기술 개발을 21세기형 ‘군비 경쟁’으로 표현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라는 이름 아래 미국 바이든 정부의 첨단 산업 제조 능력 따라잡기가 진행되고 있다. 반도체 산업에서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미국 정부는 다양한 경제 안보 수단들을 활용하고 이으며 중국이 월등하게 앞서가고 있는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미국의 행보가 더욱 두드러진다.


    미국 주도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가장 큰 장애물은 희토류와 리튬, 코발트, 니켈 등 희소 금속 원자재 확보이다. 미국은 현재로서는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풍력 등의 재생 에너지를 비롯한 21세기 첨단 산업 체계와 희토류, 리튬, 코발트, 니켈, 망간, 흑연 등 핵심 광물 원자재 공급 기반을 갖고 있지 못하다. 반면 중국은 희토류와 배터리 핵심 재료인 니켈, 리튬, 코발트 등의 생산과 가공을 장악하고 있다.


    미국은 어쩌다 21세기 첨단 산업의 제조와 원자재 기반을 결여하고 자원 빈국으로 전락했나? 중국은 어떻게 전기차와 배터리, 재생에너지, 희토류(Rare earth elements), 희소 금속(Rare metal)강국으로 등장했나? 미국과 중국의 향후 세력 경쟁의 결과는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재생 에너지 산업을 누가 지배하느냐’에 달려있다. 첨단 산업 공급망은 희토류와 희소 금속과 같은 원재료 채굴과 가공·소재화, 영구자석과 같은 최종 부품 제조로 구성되어 있는데 현재 미국과 유럽의 어려움은 특히 가치 사슬의 첫 단계인 원재료 채굴과 가공에 있다는 것이다.


    20세기와는 판세가 완전히 바뀌어서 희토류·희소 금속의 생산·가격·정제와 공급망 모두 중국이 장악하고 있다. 중국은 단순히 희토류 원재료 생산에 그치지 않고 기능성 소재를 개발하고 부품을 개발하여 첨단 제조업으로 가는 중요한 기반을 희토류 산업 개발을 통해 마련했다. 2000년대 21세기 석유로 불리는 희토류와 희소 금속 원료 생산과 소재 부품화 산업 생태계가 중국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은 1980년대 이후 희소 금속 생산과 소재 부품화 기술이 지속적으로 미국·유럽·일본에서 중국으로 건너간 결과이다. 단순히 중국의 저렴한 노동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중국 내 저렴한 희토류를 사용하기 위하여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했던 것이다. 이렇게 미국의 러스트 벨트에서 중국으로 이전된 경제적 가치가 약4조 달러에 달한다. 독일의 총 GDP와 맞먹는 규모이다.


    2010년 이후 중국은 첨단 제조업과 인공위성·반도체 등 디지털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전략 산업을 지속 발전시키기 위해 중국이 가장 우선순위를 두고 추진한 정책은 희토류와 희소 금속의 확보였다. 중국은 국내 생산 금속에 그치지 않고 아프리카·호주·중남미 등 해외에서 생산되는 금속들까지 독점적으로 차지하는 전략을 세웠다. 20세기 자동차 산업의 원료인 석유를 장악했던 미국으로서는 전기차의 원료인 희소 금속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큰 패착이었다. 21세기 미국의 위상 유지에 경고등이 켜진 셈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여전히 세계 경제를 억누르고 있는 가운데, 희소 금속 원재료와 소재·부품 확보를 위한 국가 간의 치열한 쟁탈전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2021년 2월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배터리, 반도체, 희토류, 의약품의 4대 업종에 대한 공급망 리스크 검토를 지시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각 국가가 배터리 금속과 희토류 등 공급망 취약성에 대응한 투자 확대 등 즉각적인 조치와 더불어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산업 기반 구축, 공급망의 회복력 강화를 위한 장기 전략 등을 마련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국가 안보 차원에서 배터리 금속과 희토류 공급망 리스크에 대비하는 정책들을 신속히 마련하고 있다. 미국과 EU가 배터리 공급망 재편 계획을 가동하고 있어, 이러한 변화가 가져올 기회와 도전 과제에 우리나라도 적절히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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