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인자의 마음을 읽는 이유
 
지은이 : 권일용
출판사 : 21세기북스
출판일 : 2002년 06월




  •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범죄의 현장이 될까요? 나를 지키고,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  우리 시대에 반드시 알아야 할 범죄심리 수업을 시작합니다. 프로파일러 권일용이 오늘날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범죄를 심리학과 사회학의 여러 연구와 이론을 바탕으로 분석합니다.


    내가 살인자의 마음을 읽는 이유


    범죄, 남의 일이 나의 일이 되는 순간 - 우리 시대에 반드시 알아야 할 범죄심리 지식

    일상은 어떻게 범죄 현장이 되었나

    조폭과의 전쟁 그리고 프로파일러의 등장

    잔혹하고 끔찍한 사건들을 되짚어보는 것은 마음이 무겁고 힘든 일이다. 그러나 범죄심리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범죄 사건을 낱낱이 살펴볼 수밖에 없으며, 누군가는 반드시 그 역할을 해야만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범죄 행위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프로파일러의 역할과 본질적 존재 이유도 바로 거기 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각종 매체를 통해 보고 듣는 많은 범죄들은 이제 더 이상 남의 일만이 아니다. 범죄는 이미 우리 삶 가까이에 다가와 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러한 범죄 상황에 노출될 수 있다는 두려움은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위축시킨다. 실제 사건 현장에서 내가 직접 경험한 이야기들을 여러 독자들과 공유하려는 것 또한 그런 이유에서다. 범죄 상황과 범죄심리를 이해하면 우리의 일상을 위축시키는 두려운 범죄를 어떻게 예방하고 대처할 수 있을지에 대해 좀 더 현실적으로 고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파일러의 한국 경찰 공식 명칭은 ‘범죄행동분석관’이다. 용의자의 범죄 행동을 분석해 범행의 동기와 목적을 밝히고, 용의자 군(群)을 압축해 수사 대상자를 선정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용의자가 체포되면 전략적인 신문을 할 수 있도록 심리 분석을 지원한다. 주로 증거가 불충분해서 일반적인 수사 기법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연쇄살인과 같은 특정 범죄 사건에 투입된다.


    사실 프로파일러의 등장은 곧 그 사회에 단순한 범죄를 넘어서는 유형의 범죄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달가운 변화라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프로파일러에게 대중의 관심이 쏟아지고, 그들의 수사 방식과 분석 내용에도 많은 관심이 집중된다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또 다른 측면에서는 기존의 범죄 유형과는 전혀 다른 범죄의 대대적인 확산을 어느 정도 차단할 수 있다는 순기능도 존재하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악의 마음을 읽으면 범죄를 억제할 수 있다 - 범죄자들의 심리를 간파하고 범죄를 예방하는 눈 기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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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리스틱, 단순한 의사결정의 함정

    휴리스틱은 행동경제학에서 제시된 이론 중 하나로 내가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을 말한다. 휴리스틱은 의사결정 과정을 단순화해 만든 지침으로 완벽한 의사결정이 아니라 이용할 수 있는 정보를 활용해 실현 가능한 결정을 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수많은 변수들을 일일이 검토해 결정을 내리기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이 정도면 이렇게 결정해도 될 것 같아’라고 생각하게 된다. 대표적으로는 이용가능성 휴리스틱과 대표성 휴리스틱, 기준점과 조정 휴리스틱이 있다.


    첫째, 이용가능성 휴리스틱은 머릿속에 즉각 떠오르는 정보나 사례를 바탕으로 해당 사건이나 사례가 일어날 확률이 더 높다고 여기는 인지적 경향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안이 발생하면 얼마 전에 내가 뉴스에서 봤는데, 혹은 누구 SNS에서 봤는데 하면서 최근에 일어났던 일들을 그와 연결시켜 판단해버리는 것이다.


    둘째, 대표성 휴리스틱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어떤 사건이 전체를 대표한다고 간주해 이를 통해 빈도와 확률을 판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기준점과 조정 휴리스틱은 휴리스틱 이론 중 가장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임의의 기준을 설정한 후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맞게 의사결정을 내리는 방식이다. 마치 정박 효과처럼 한 지점에 닻을 내린 배가 일정한 범위 내에서만 움직이는 것과 같다. 사건 초기에 수사를 진행하면서 수사관들이 많이 하는 실수 중 하나이기도 하다.


    확증편향,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확증편향은 자신의 가치관이나 신념, 판단에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두드러진 현상 중 매우 염려스러운 부분이 알고리즘에 의한 확증편향이다. 무작위적인 정보 속에서 어떤 패턴을 찾아내 그것에 국한된 정보만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알고리즘이 제시하는 정보 내에서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내가 관심이 있는 것만 보게 된다.


    오늘날 우리는 내가 갖고 있는 편향된 생각들을 계속 유지해나갈 수밖에 없는 환경에 살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환경을 잘 극복하며 살아간다. 문제는 확증편향이 시작되면 역화 효과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워진다. 역화 효과는 내가 믿고 있는 신념에 반하는 증거를 알게 되었을 때 그 신념을 바꾸기보다는 신념을 더욱 강화하는 심리다. 이러한 심리는 사이비 종교나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귀인 이론, 내 탓인가 남의 탓인가

    귀인 이론은 자신이나 타인의 행동, 대화 등의 원인을 찾아내 특정한 것으로 귀속시키는 과정을 말한다. 그럼으로써 사람이나 사물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지속성, 속성, 경향성을 추측하는 과정이다. 어떤 사건의 원인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에 따라 개인의 감정과 미래 수행 기대, 동기 등이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 나를 바라보면 그가 나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거나 혹은 혐오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다.


    귀인 이론은 크게 내적 통제형과 외적 통제형으로 나눌 수 있다. 내적 통제형은 인간을 통제하는 사회적 사상의 원인을 그 사람 자신의 행위나 내적 통제(능력, 노력)에 의한 것으로 인지한다. 반면 외적 통제형은 그것을 눈에 보이지 않는 우연이나 운, 기회와 같이 타자의 힘에 의한 외적인 조건으로 인지한다. 쉽게 말해 사건의 원인을 내적 통제형은 ‘내 탓’으로, 외적 통제형은 ‘남의 탓’으로 인지하는 경향이다. 


    자기효능감, 바닥일 때 드러나는 범죄 성향

    자기효능감은 자신이 무엇인가를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다고 믿는 기대와 신념이다. 자기효능감이 높으면 새로운 시도를 주저하지 않고 현실적이고 이상적인 목표를 설정해 꾸준히 노력해 성취를 달성한다. 반면 자기효능감이 낮으면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거나 실패를 경험했을 때 자신의 능력에 귀인하는 경향이 커서 포기와 실패를 반복한다.


    실제 범죄가 동기화되어 가는 초기 과정에는 이 자기효능감이 매우 낮은 상태다. 문제는 ‘내 능력은 여기까지야. 이게 나의 한계야’라고 생각하며 거기에 머무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마음 한구석 깊은 바닥까지 추락해 있던 자존감을 회복하고 효능감을 높이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것이다. 가스라이팅이나 그루밍, 성착취 등이 그 대표적인 범죄라고 할 수 있다.


    이상심리, 나도 어쩌지 못하는 내 마음

    이상심리는 한마디로 말해 그렇게 바라보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바라봤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분노하게 되고 그 부정적인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기 위해 사람들을 공격하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을 갖게 된다. 이러한 이상심리를 드러내는 정신병이나 신경증, 성격장애, 적응장애 등이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는 흔하게 일어난다.


    마음을 읽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착각

    부정적인 심리가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를 살펴보자.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공감 능력이 높을까?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공감 능력이 높게 나타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건강하지 못한 관계에 대해서는 재빠른 단절이 필요하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


    여기서 분명히 해둘 것은 가스라이팅을 당하면서도 거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가해자가 교묘하고 교활하기 때문이지 결코 피해자에게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가스라이팅은 그 어떤 사건보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절실하다.


    예를 들어 친하게 자주 어울리던 친구가 갑자기 연락이 줄어든다거나 끊길 경우가 있다. 이렇다 할 이유 없이 주변 사람들의 만남이나 대화를 차단했다면 위험한 상황이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가스라이팅 가해자들은 정보를 차단하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기 때문에 피해자가 무슨 일을 당하고 있고 누구와 접촉하고 있는지 등이 절대 주변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데에 집중한다. 자신이 타깃으로 삼은 상대방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조언을 듣거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철저하게 차단하는 것이 그들이 노리는 첫 번째 전략이다. 피해자의 인간관계를 야금야금 소멸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주변 사람 중에 갑자기 이 같은 상황이 의심되는 징후가 보인다면 그 사람 스스로 어떤 상태와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본인은 이미 가스라이팅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가스라이팅이 아니고 그 사람이 나를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나를 지키고 보호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자신이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 상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상태라고 판단할 수 있다.



    현대 사회에 펼쳐지는 기묘한 악인전 - 오늘날 업데이트 되는 범죄의 형태

    악의 마음은 어떻게 자라나는가

    아동 학대,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폭력의 대물림

    아동 학대의 이유는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자신의 분노를 아이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표출하는 유형은 자신의 삶이 힘든 원인이 아이에게 있다는 왜곡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저항할 수 없는 유약한 아이들에게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는 잔인한 범죄다. 그리고 이러한 경우 대부분 자신 스스로 누군가로부터 학대받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많은 학대 피해자들은 성인이 된 후 자신의 비극적인 삶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한다. 그리고 타인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려는 노력을 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일부 피해자들은 그 폭력을 마치 삶의 방식 중 하나인 양 인식하며 폭력 자체를 자신의 삶 속에 일상화 시킨다.


    아동 학대가 대를 이어 반복되는 현상의 근본적인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핵심은 성장기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잘못된 방식의 폭력이다. 폭력적인 방식으로 훈육을 했을 때 아이들의 교정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많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교정이 아니다. 폭력 상황을 피하기 위한 순간적인 행동일 뿐이다. 그 어떤 폭력도 잘못된 행동이나 사고를 교정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훈육이라는 이름 아래 폭력을 행사하는 부모들은 그것이 빠른 시간 안에 자기의 말을 잘 듣는 아이로 바꿔놓을 수 있는 꼭 필요한 양육 방법이라고 착각한다.


    더 큰 문제는 피해를 당하고 있는 아이들조차도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데 있다. 최대한 빨리 폭력을 피하기 위해서는 부모들이 원하는 행동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을 반복적인 상황을 경험하면서 터득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패턴은 하나의 사고로 굳어져 성장한 후에도 폭력이 문제 해결의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훈육이라는 그럴 듯한 이름의 폭력 상황에 노출된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하고 자녀를 두었을 때 그 아이가 자신의 삶에 걸림돌이 된다거나 아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심지어 아이가 밤에 운다는 이유만으로) 무참히 아이를 살해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어려서부터 그런 가정환경에서 성장하다 보니 그것만이 유일한 갈등관계 해소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동물 학대, 갈등관계를 해소하는 비뚤어진 선택

    아동들이 저지르는 동물 학대도 아동 학대와 마찬가지로 성인이 되었을 때 또 다른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연쇄살인범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 중 하나가 아동기나 성장기에 동물을 학대한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연쇄살인범들은 반드시 동물 학대가 있었을 것이다, 동물 학대를 해야만 연쇄살인범이 된다’는 식의 인과관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연쇄살인범들에게서 동물 학대 전적이 많이 나타나는 것은 삶의 방식이 그렇게 자리잡아왔기 때문이다. 성장기에 학대를 당하거나 비난을 받거나 부모로부터 비교를 당하는 식의 외부 자극에 노출된 아이들은 그 아이들 나름의 심리적 갈등과 고뇌, 고통을 겪게 된다.


    이러한 일이 벌어졌을 때 적절한 방법들을 적용해 심리적 고통들을 해결하지 못한 아이들은 결국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는 연약한 대상, 즉 곤충이나 새, 동물들을 상대로 화를 분출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방어기제를 대상이 전치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동물을 학대하는 잔혹한 행위를 통해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고 만족감을 느꼈던 경험들이 쌓이다 보면 성인이 되어 누군가와 갈등관계가 생겼을 때 그 상황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갈등관계 자체를 제거해버리는 방식으로 상황을 해결한다. 이것이 아동들이 저지르는 동물 학대가 위험한 이유다.


    그들은 어떻게 상황을 이용하는가

    사이버 범죄자를 잡아라

    연쇄살인범들의 대다수가 체포되었을 때 하는 말이 ‘억울하다’는 것이다. 잡히지 않고 계속해서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해 억울하다는 이야기다. 이 말은 곧 자기가 실수를 해서 잡힌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더 많은 살인을 저지를 수 있었다는 일종의 자기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프로파일러로 일을 시작한 초기에 범죄자들과의 면담을 통해 알게 된 것 중 하나가 그들은 자신의 범죄를 지속적으로 복기한다는 것이다. 수감 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저지른 범행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범행을 되짚어보면서 자신이 어떤 실수를 했고 또 무엇 때문에 그런 실수를 했는지, 그리고 자신이 왜 잡혔고 또 어떻게 하면 안 잡힐 수 있는지 등을 분석하고 연구한다. 한마디로 범죄의 진화를 꿈꾸는 것이다.


    유영철은 연쇄살인범 정두영의 범행을 학습하면서 그가 족적을 남긴 실수 때문에 잡혔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다. 체포되었을 당시 유영철은 정두영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자기의 신발 밑창을 뜯어냈다고 자백했다. 그들은 자신이 실수만 하지 않았다면 얼마든지 살인을 지속할 수 있었다는 공통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적 성향의 사람들이 신종 디지털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는 거의 대부분이다. 얼마 전에 아동 성착취물을 다수 만들고 보관했던 사람이 체포되었는데 사이코패스적 성향이 아주 높다는 특징을 보였다. 그들은 범죄의 경계선을 교묘하게 오가면서 그 접점에서 상황을 모호하게 만드는 것으로부터 범행을 시작한다. ‘풋 인더 도어’라고 해서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문지방 넘어가기’ 기법이 있다.


    먼저 사소한 부탁을 통해 상대방으로 하여금 거절을 못하게 만든 다음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요청함으로써 상대방이 좀 더 쉽게 승낙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열린 문 사이로 한 발 쓱 집어넣고 나면 상대방이 매몰차게 문을 닫지 못할거라는 심리를 악용하는 것이다. 아주 자연스럽게 사회적 활동을 하는 것처럼 한 발 들여놓음으로써 자기가 상대방을 지배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인데, 이런 수법이 디지털 성착취 범죄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그런 수법으로 피해자를 옥죄고, 수많은 사람들을 자신이 만든 사이트에 가입하게 만들어 공범화시키고, 그리고 이를 통해 자신들은 돈을 벌어들인다.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가지 범죄들을 넘나들면서 교묘하게 사회를 통제하고 있다는 왜곡된 우월감과 자기 만족감을 느끼는 교묘하게 진화된 범죄다.


    사이버 범죄가 이렇게 다양해지고 극악무도해지면서 사이버 수사도 단기간에 많은 변화와 발전을 이루어왔다. 또한 최근 들어 여러 법적인 변화도 이루어지고 있다. 22년 만에 스토킹 법안이 통과되어 2021년 10월 21일부터 ‘스토킹 법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었다. 스토킹 범죄의 처벌과 그 절차에 대한 특례, 그리고 스토킹 범죄 피해자에 대한 보호 절차가 새롭게 규정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2021년 9월 24일부터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어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이제는 경찰이 신분을 비공개하거나 위장 수사를 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빅데이터와 AI, 프로파일링의 미래 -혼란의 시대, 범죄 대처법도 바뀌어야 한다

    AI와 인간의 프로파일링 대결

    빅데이터는 지금 우리의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다. 하지만 빅테이터만으로 모든 범죄를 완벽하게 예방할 수는 없다. 빅데이터는 거의 대부분이 정상적인 사람들의 데이터이기 때문이다.


    정상적이지 않은 범죄자들, 케이스가 제 각각인 수많은 유형의 범죄 데이터는 산발적이다. 물론 그룹별로 유형화할 수는 있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더욱 필요한 것이 융합이다. 빅데이터 전문가들과의 융합을 통해 범죄자들의 자료에 어떻게 접근하고 분류하고 데이터화할 것인지 등등 그 방법을 찾아가야 한다.


    작년에 한 방송사에서 AI와 인간과의 대결을 콘셉트로 한 프로그램을 만든 적이 있다. 그 프로그램에 나도 출연을 했는데, 다섯 명의 일반인들을 랜덤으로 선발해 그중에서 범인을 찾아내는 AI와 대결을 펼치는 것이다.


    선발된 다섯 명에게는 ‘폭탄이 든 가방을 공항까지 싣고 가라’는 지시가 떨어졌는데, 다섯 명 중 한 명의 가방에만 진짜 폭탄이 들어 있고 나머지는 아니었다. 공항에 도착하기까지는 여러 번의 검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다섯 명 중 한 명의 범인은 그 순간 긴장할 수밖에 없다. 그때 차 안에 미리 설치해둔 AI가 범인의 얼굴 표정을 분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한테는 다른 미션이 주어졌다. 공항에 도착한 다섯 명의 차에 각각 함께 탄 뒤 5분 동안 공항을 돌면서 프로파일링을 통해 범인을 찾아내는 미션이다.


    결국 이 대결은 무승부로 끝이 났다. AI는 표정만 읽고 범인을 지목했고, 나는 프로파일링을 통해 범인을 찾아냈다. 나의 경우 운전석의 옆자리에 앉아서 5분 동안 대화를 이어가는 형식이어서 범인의 얼굴 표정을 분석하기는 힘들었고, 그 대신 몇 가지 선정한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한 범인의 진술을 분석해 용의자를 찾아냈다. 그런데 표정만 읽고 위험한 징후를 감지해 범인을 찾아낸 AI의 능력에 꽤나 놀랐던 게 사실이다. AI의 기술이 그렇게까지 발전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물론 AI를 활용하는 데에는 아직까지 한계가 있다. AI가 특정 인물을 지목했다 하더라도 이후의 수사 과정에는 여전히 인간이 직접 개입할 수밖에 없다. AI가 범인을 지목했다고 해서 당연히 그것으로 수사를 종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정황을 수사해 단서와 증거들을 찾아내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그렇더라도 AI 기술이 나날이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첨단 기술을 우리의 삶과 특히 범죄를 예방하는 데에 유익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혼란의 시대에 개인과 사회는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가

    혼란한 시대의 범죄 대처법

    혼란한 시대의 범죄 대처법으로는 우선 문단속을 잘해야 한다. 다시 말해 범죄 환경을 없애는 것이다. 셉테드(CPTES, 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는 도시 환경을 개선해 범죄를 예방하는 기법이다. 범죄가 물리적 환경에 따라 더 자주 발생할 수 있다는 입장에서 만들어진 기법이다. 예를 들어 인적이 드문 공공장소에 CCTV를 설치한다거나 범죄자들이 쉽게 침입하는 구조의 집들을 새롭게 설계하고, 공원의 조명을 좀 더 밝게 설치하는 방법 등이 있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범죄는 그 환경을 없애는 것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내 마음의 단속이다. 내 마음의 범죄 환경을 없애는 것도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반드시 필요하다.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하려 노력하고, 항상 가짜 정보에 대한 검증과 확인을 거치고, 사회 구성원에 대한 서로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그래서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은 반드시 잘된다는 믿음을 지켜내는 것이 우리에게 더 필요한 가치이지 않을까 한다.


    각종 신종 범죄가 날로 늘어나고 있는 혼란의 시대에 우리의 아이들이 보다 더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범죄 대처법은 없을까? 사실 범죄는 어느 순간 어떻게 나에게 닥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각각의 범죄 유형에 따른 대처법을 마련하거나 어떤 지침을 규정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사건의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아, 지금 내가 공격을 당하고 있는 상황이야. 그러니까 빨리 반격을 해야 돼’라는 생각을 할 수 없다. 범죄의 대부분이 순간적으로 벌어지는 일이고, 더군다나 몹시 당황하고 긴장한 상태에서는 상황을 파악하는 것조차 어렵다.


    미국에는 범죄 대처법에 대한 전문가 교육 시스템이 있다. 범죄 상황을 구성해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것이다. 실제로 화재 사건 현장에서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긴박하고 당혹스러운 순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112에 전화를 걸어 신고를 해야 하는데 손에 휴대전화를 들고 계속해서 “112가 몇 번이야? 112가 몇 번이냐고?”를 외쳤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만으로도 사건 현장에서의 당혹스럽고 긴박한 상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집에서 가족들과 한두 번 시뮬레이션을 직접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예를 들어 우리 집에 불이 났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불이야!’라고 소리치면서 아들에게는 112에 신고를, 딸에게는 창문을 열고 도움 요청, 아내에게는 소화기를 들고 오라고 지시한다. 이렇게 두어 번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놀랍게도 실제 상황에서 그 효과가 정말 나타난다. 실제로 불이 났을 때 시뮬레이션을 했던 것처럼 움직인다는 것이다. 오토파일럿, 즉 자동 조정 장치처럼 몸이 알아서 반응하는 것이다. 0.1초도 안심할 수 없는 위기의 현장에서는 상황을 파악하고 판단할 수 있는 인간의 지각이 전개되는 상황보다 훨씬 늦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몸이 기억한 대로 움직이는 것이 위급한 상황에 더 빨리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오랫동안 운전을 해보면 머리가 아니라 몸이 반응하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앞차의 미묘한 움직임에도 자동으로 발이 브레이크를 밟는 식으로 방어 운전 모드에 돌입한다. 그 짧은 순간에 머리로 생각하고 상황을 판단해 운전을 한다면 이미 앞차를 들이받을 수도 있다. 이것이 오토파일럿이다. 화재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쉽게 노출될 수 있는 범죄 역시 몇 가지 유형을 설정해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것도 범죄에 대처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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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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