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흑역사
 
지은이 : 니컬러스 색슨(역:김진원)
출판사 : 부키
출판일 : 2021년 09월




  • 금융이 사회에 이바지하고 부를 일군다는 전통적인 역할을 외면하고 수익을 더 보장하는 활동에 치중한다는 것은 다른 경제 부문에서 부를 약탈하고 있다는 뜻이다. 금융이 실물 투자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실제로는 어떤 가치도 만들어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 약탈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여 주기 위해 저자는 파생상품, 신탁, 특수목적회사, 사모투자 등 온갖 첨단 금융 기법들의 작동 원리를 속속들이 해부한다. 


    부의 흑역사


    신자유주의, 무엇을 위한 자유인가

    브레턴우즈 체제의 강력한 규제와 자본주의 황금시대

    역사가 보여주듯 불평등은 대개 폭력적이고 충격적인 커다란 사건이 일어난 뒤 바로잡힌다. 티부의 세대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 그런 충격을 안겼다. 1930년대 금융위기와 대공황은 자유무역과 금융규제 완화에 대한, 그리고 록펠러나 베스티 형제 같은 시장파괴자가 활개칠 수 있는 자유를 준 자유방임주의 경제학에 대한 오랜 믿음을 무너뜨렸다. 프랑스 전쟁터에서 피를 흘린 노동자는 더 이상 돈 많은 지배층에 영합할 마음이 나지 않았다. 국가가 자신들에게 보상하기를 바랐다. 1945년 전쟁이 막을 내리자 독특한 정치 시대가 개막을 알리며 박식한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주창한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이론을 실행에 옮겼다.


    케인스는 금융이 나름 유용하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위험하다는 점도 파악했다. 민주적인 통제로 견제 받지 않은 채 세상을 제멋대로 휘젓도록 풀어 놓을 때 특히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경제 체제가 세계 단기 부동자금(핫머니), 다시 말해 어느 특정한 실재 사업이나 국가에 묶여 있지 않은 뿌리 없는 돈의 흐름에 개방되어 있으면 완전고용 같은 바람직한 정책을 추구하기가 더욱 힘들다.


    금융자본의 흐름에 개방되어 있는 나라에서 이자율을 낮춰 산업을 부양하려 하면, 이자율이 더 높은 다른 곳을 찾아 돈이 썰물 빠지듯 흘러나가고, 그렇게 되면 자본이 더욱 희소해져 통화가치가 떨어지기 십상이고 이자율이 다시 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케인스가 알기로는 정부가 국민을 위해 행동하고 싶다면 거친 투기의 흐름을 억제하는 일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


    케인스가 한 유명한 말이 있다. “합당하고 편리하게 할 수 있으면 재화는 소박하게 생산하고 무엇보다 재정은 주로 국가에서 운영하자.” 케인스는, 이익을 안겨줄 때가 많은 국가간 ‘거래’와, 훨씬 위험하다고 알고 있는 국가 간 투기 ‘금융’을 신중하게 구분했다. 그래야 정부가 위험에 빠지지 않았다.


    1929년 뉴욕 증권시장 대폭락으로 국가간 투기 흐름이 민간 부문에 얼마나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지 똑똑히 보았다. 케인스가 말하길 “경험은 쌓이는 법이다. 소유와 경영 사이에 놓인 먼 거리는 인간관계에 재앙이나 다름없다. 결국 긴장과 증오를 낳거나 낳을 수 있으며 재정상 계산을 무로 돌린다.” 이는 곧 머나먼 외국에 있는 금융전문가가 여러분의 사업을 관리한다면 어떤 형태로 수익을 내든 손해가 더 크다고 말하는 것이다.


    국가간 금융이 위험하다는 케인스의 이론은 이념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미쳤고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즈음 주류 통념이 되었다. 정부와 일반 여론은 최근에 일어난 경제적, 군사적 공포를 더이상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세계 금융 체제를 바꿔야 한다고 인정했다. 그래서 1944년 케인스의 이념적인 지도 아래 미국측 대표 해리 덱스터 화이트가 우세한 지위를 뽐내는 가운데 세계 여러 선진국이 뉴햄프셔주 브레턴우즈에 모여 협의에 기반한 세계적인 협력 체계를 세우고 국가간 금융자본 흐름을 억제하고 단기 부동자금이 야기하는 불안정한 조류에서 국가를 보호하자는 협정을 체결했다.


    그런데 이 체제는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1945년에서 1947년까지 월스트리트 일파는 단순한 금융자유화를 밀고 나가 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된 유럽에서 거대한 자본도피의 물결을 일으켰다. 이때 부유한 유럽인은 부를 해외로 빼돌려 마땅히 재건에 치러야 할 책임을 회피했다. 하지만 공산주의자가 유럽을 장악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곧 정책입안자 태세를 갖추고 브레턴우즈 체제가 드디어 궤도에 올랐다.


    브레턴우즈 체제는 무척 놀라우며 오늘날에는 거의 상상도 못 할 체제다. 국가간 금융은 엄격히 제한한 반면 무역은 꽤 자유로웠다. 그래서 국가간 금융 흐름은 무역이나 실질 투자나 여타 명시된 우선사항에 자금을 지원하는 경우에만 이루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국가간 투기는 허용하지 않았다. 환율은 대체로 달러에 고정했으며 달러는 다시 금에 기반을 두었다. 따라서 예컨대 농기계를 수입하거나 프랑스에서 휴가를 보내고 싶으면 파운드와 함께 관련 수입 서류나 여행 서류를 거래하는 지역 은행이나 중앙은행에 제출했다. 은행이 진짜 구매이며 진짜 여행이라고 받아들이면 파운드를 그에 상응하는 달러나 프랑스 프랑으로 바꿔 원하는 해외 계좌로 보내거나 현금으로 주었다.


    하지만 100만 파운드를 영국 중앙은행으로 들고 가서 독일 은행의 이자율이 더 높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만큼의 마르크로 바꿔 달라고 요구하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거대한 국제 행정기구가 추구하는 전반적인 목적은 헨리 모건소 미 재무장관이 공표한 대로 “국제금융이라는 신전에서 고리대금업자를 몰아내는” 것이었다.


    브레턴우즈 체제는 여기저기 틈새가 벌어진 골칫덩어리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거의 25년을 유지했다. 금융을 꽁꽁 묶어 두자 각 정부는 자유롭게 자신의 국가에 가장 유리한 이자율을 정할 수 있다고 여겼다. 돈이 해외로 빠져나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유층에 부과하는 세금이 높았다. 때때로 아주 높았다. 평균 최고 소득세율이 미국에서는 195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약 70~80퍼센트 사이를 오르내렸고, 영국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는 동안 99.25퍼센트까지 올랐다. 그리고 1950년대 내내 97.5퍼센트에 머무르다가 1959년에 80퍼센트로 떨어졌다.


    국내 금융규제 또한 놀라우리만치 강력했다. 미국의 뉴딜 정책은 막강한 반독점법과 결합하여 초대형 은행을 분할하고 온갖 규제로 은행가를 구속했다. 전쟁을 치르며 정부 주도 기술 발전이 비약적으로 이루어져 산업화 물결이 드세지고 정부는 민간 부문이 담당하기엔 매우 위험한 연구에 계속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국가가 기업처럼 될 수 있다는 허튼소리

    이 장에서는 정책 입안자에게 커다란 질문을 세 가지 던진다. 첫번째 질문. 감세를 비롯한 여러 혜택이 외지의 사업 투자를 우리 지역에 끌어들이는가? 대답은 꽤 자명하다. 때에 따라서는 그렇다는 것이다. 1969년 오츠가 논문을 발표한 뒤로 이 문제를 되풀이해서 측정하고 확인했다. 그런데 미국 주정부 차원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국가 차원에서나 일어난다.


    두번째 질문, 주정부나 국가가 사업과 사람을 끌어들이려고 경쟁을 벌일 때 대체로 세상에 이로운가? 아니면 경쟁에 뛰어든 주끼리 제 살이나 깎아먹는 해만 끼치는가? 앞서 설명한 대로 신자유주의자들은 티부의 엉뚱한 생각을 이용해서 이 같은 ‘경쟁’이 유익하며 효율성을 높인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을 찾아보면 나처럼 도처에서 만날 수 있다.


    예를 들어 2013년 율리히 마우러 스위스 대통령은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유치 경쟁이 우리 국경 안에서 벌어지고 있으며 다양한 요소가 경쟁을 고무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지 산업계뿐 아니라 정계에서도 그렇습니다. 이 결과 사회기반시설을 탄탄하게 확충하고 비능률적인 관료주의를 근절하고 세금을 낮춥니다.” 이 같은 주장은 결국 호소력 있는 간결한 한마디로 요약된다. 경쟁은 좋다. 그리고 기업에 잘 들으면 국가에도 잘 듣는다. 주정부와 국가도 사업체인 양 경쟁을 해서 번영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학문적 신뢰성을 부여한 이들은 티부와 오츠와 시카고학파였다. 그리고 이 생각은 세상을 바꾸어 놓을 만큼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쳤다.


    물론 이 논문 자체는 한계가 분명하다. 티부는 이렇게 썼다. “이 모형을 경쟁력 향상에 집중하는 민간 모형과 비교하고 싶은 사람은 실망할지도 모른다.” 이 모형의 여러 주요 결함은 하나하나가 치명적이며 한데 합쳐지면 재앙을 부른다. 입문자라면 얼핏 생각해 보고도 국가끼리 혹은 세금 체계끼리 ‘경쟁하는’ 일이 시장에서 기업끼리 경쟁하는 일과 닮은 점이 ‘전혀’ 없다고 말할지 모른다.


    이 주제를 살짝 맛보려면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카릴리온이나 엔론 같은 파산한 기업과 소말리아처럼 파탄한 국가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회사 파산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고용인은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다. 그리고 기업이 시장에서 서로 경쟁할 때 일어나는 창조적 파괴는 자본주의에 활력을 불어넣는 원천이 될 수 있다. 군벌과 살인과 핵무기 밀거래로 파탄한 국가는 이와 전혀 다르다. 단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영어로 된 공용 단어, 경쟁이다. 내가 그렇듯 개인 행위자끼리 어떤 방해공작도 없는 시장에서 경쟁하는 행동이 유익한 일일 수 있다고 믿을지라도, 국가 대 국가 차원으로 옮아가면 유구무언이다.


    세상에 불평등이 깊어지는 때에 이런 종류의 ‘경쟁’은 항상 그리고 일반적으로 해롭다. 경쟁은 다국적 대기업에, 세계적인 은행에, 부유한 개인과 요동치는 자본의 소유자에게 보상을 준다. 그래서 이들은 수익도 자신도 쉽사리 국경을 넘나들게 하고 가장 짭짤한 거래와 가장 싼 세금, 노동조합 조직률이 가장 낮은 노동자와 재정 활동에 대해 입이 가장 무거운 자, 금융규제가 가장 느슨한 곳을 찾아다니며 주정부가 지원금을 주지 않으면 다른 데로 가 버리겠다고 협박할 수 있다.


    마을 세차장과 이발소, 가족이 운영하면서 마지막까지 버틴 청과상과 평범한 노동자는 세율이나 과일 위생규제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제네바로 훌쩍 옮겨갈 수 없고 또는 옮겨가겠다고 위협해도 믿지 않는다. 그래서 큰손은 보조금을 챙겨 가고 잔챙이는 좋든 싫든 문명의 이기에 제 값을 다 치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추가요금을 내서 억만장자 계급 내에서 어슬렁거리는 부류도 떠맡아야 한다. 이 ‘경쟁’은 조직적으로 빈자에서 부자에게 위쪽으로 부를 옮기며 경제활동을 어그러뜨리고 우리 공동체와 민주주의를 좀먹는다.


    무임승차 문제는 “경제학 첫 학기에 듣는 여러 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지만 그 뒤로는 두번 다시 들을 수 없는 주제이지요”라고 나와 금융의 저주 개념을 함께 정립한 존 크리스텐슨은 말한다. “경제학에서 가장 커다랗지만 어두운 대륙입니다.” 내가 정책 입안자에게 던지는 세 가지 질문에서 두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제 분명하다. 주정부 사이에서 법인세를 두고 벌이는 ‘경쟁’은 실로 제 살을 도려내는 경쟁이며 불평등을 심화하고 대체로 세상에 해악을 끼친다.


    세번째 질문은 좀더 거창하다. 솔직히 역대 가장 커다란 경제학 문제다. 바로 ‘경쟁’이 제 살 깎아먹는 해로운 경쟁이어서 대개 세상을 다치게 하든 말든, ‘우리’ 국가나 주정부가 ‘경쟁’에 나서는 일을 지역이기주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할까?


    뿌리 깊은 믿음이 존재한다. 맞다, 경품은 꼭 필요하며 근린궁핍화(beggar-my-neighbour) 정책을 펴야 한다는 판단을 굳게 고수한다. 국가가 법인세나 금융규제 같은 부문에서 ‘경쟁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많은 이에게 그럴듯하게 들린다. 사실 이 생각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영국의 주요 국내경제 전략에서 토대를 이루어 왔다. 전 영국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에 따르면 “우리는 오늘날 지구 차원에서 경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우리 같은 나라는 한 시간 정도 계산해 보면 답이 나옵니다. 가라앉느냐 아니면 솟아오르느냐, 전진하느냐 아니면 후퇴하느냐.”


    하지만 이 신념체계는 완전 잘못되었다. 티부의 이론처럼 이 신념체계를 받치는 토대는 경제학의 기본 오류이며 학생이 어이없이 적어낸 오답이다. 일반적인 표현으로 말하자면 국가는 경제에 아무런 불이익도 입히지 않고 실은 오히려 국가에 순편익을 안기면서 이 시합에서 일방적으로 손을 뗄 수 있다. 이웃을 거지로 만들려다가 실상 스스로 쪽박 차는 신세가 된다. 이런 시합은 남들이나 하게 놔두자.


    우리에게 독식을 허하라

    독점은 어떻게 경제를 좀먹는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여러 상황과 전략이 존재한다. 공급자가 하나인 독점, 공급자가 소수인 과점, 수요자가 하나인 수요독점, 수요자가 소수인 수요과점, 약탈가격, 임금 결정, 특허 등 매우 다양하다. 이 같은 구조는 시장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어떤 시장에서도, 틈새시장과 초 소규모 틈새시장에서도, 지역 차원에서도 국가 차원에서도 세계 차원에서도 작용한다. 이제 불필요하게 복잡한 문제를 피하기 위해 대체로 이 모든 유형을 하나로 묶어 다루고자 한다. 대개 어마어마한 수익을 뽑기 위해 누군가가 시장에서 힘을 행사하는 독점 특유의 성격을 규정하는 데 다소 부정확하더라도.


    가장 단순하고 널리 알려진 형태가 수평독점이다. 기업이 비슷한 제품을 생산하거나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쟁회사를 인수하거나, 우세하고 여유로운 재정력을 앞세워 원가 이하로 팔아 경쟁회사를 흔들어 궁지로 몰아넣는다. 큰길가에서 가족이 운영하던 가게가 대형 슈퍼마켓이나 좀더 최근에는 아마존 때문에 문을 닫는 경우가 그 한 예다. 수직독점은 살짝 복잡하다. 대형 제조사가 해당 제품을 파는 도매상과 소매상을 다 사들여 장악한 다음 경쟁 제조사 제품을 팔지 않겠다고 거부하는 것이다.


    다른 형태로, 가정에 기반을 두는 독점이 있다. 예를 들어 월마트는 슈퍼마켓 두 개도 유지하기 힘든 작은 마을을 집중공략해 이 마을 고객에게서 어마어마한 수익을 뽑고 지역 공급업자를 말살하는 가격을 매겨 수익을 더욱 늘려서는, 이 수익으로 다른 마을에 매장을 열어 여러 독점 전략을 지원하면서 성장해 나갔다. 지역이나 지방의 독점시합 역시 은행이 선호하는 전술이며 최고의 독점자 워런 버핏은 이런 독점 형태를 지방언론사에 적용해서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다. 버핏은 이렇게 말한다. “탄탄한 사업체를 지니고 있다면, 독점 신문사를 지니고 있다면, 전국 텔레비전 방송사를 지니고 있다면, 멍청한 조카라도 운영할 수 있다.”


    독점 역시 전염된다. 방어적인 독점이 이런 경우다. 규모가 더 큰 회사가 나타나 시장에서 우리를 쫓아내려고 할 때 유일한 대응은 다른 회사와 합병하여 물리칠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세인스버리는 아스다와 합병을 계획하고 있다고 2018년 5월에 발표했다. 여러 분석가는 이를 ‘아마존 분쇄기’를 낳는 전략이라고 표현했다. 스탠더드 라이프와 애버딘 자산운용사가 2017년 합병한 산물인 스탠더드라이프 애버딘(Standard Life Aberdeen)의 공동 최고경영자 마틴 길버트는 자산운용 회사 사이에 규모를 더 키우려고 시합을 벌이고 있다고 설명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이제는 규모가 중요합니다.”


    이제 비밀에 싸인 역외 독점을 들여다보자. 보통 스스로가 소유자이거나 아니면 적극 협력하는 금융집단이, 경쟁하는 척하며 조세 도피처의 베일에 꽁꽁 싸인 페이퍼컴퍼니 뒤에 회사 소유권을 숨기고 실제로 지배한다. 이 전략이 기막힌 점은 성공할 경우 정부 규제기관에 은밀히 개인 지분을 넘겨줄 수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누가 이런 방법을 이용해 금융권력을 키워 우리 경제 위에 군림하려는지 우리가 어떻게 알겠는가.


    독점은 곧 권력의 문제다. 알 수 없는 외국 세력이 독점 자물쇠를 손에 넣어 경제 체제 내 여러 부문을 걸어잠글 수 있다면, 국가 안보까지 위협당할지 모른다. 그리고 이 세력은 위험을 무릅쓰고 더 넓은 영역으로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다. 에너지와 기술 시장에서 발생하는 병목 구간을 쥐락펴락하는 러시아의 가스프롬과 중국의 국영기업은 그 이점을 훤히 알고 있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는 가스 공급업체를 둘러싸고 가스프롬과 지금 힘겹게 씨름하고 있는데, 이 상황을 “반트러스트 10년 충돌”이라고 부른다.


    그들이 세상을 지배할 때

    거대 기업은 분명 규모의 경제 덕에 효율성을 근근이 유지했다. 하지만 소유자가 이런 이익을 소비자에게 돌려주느냐 아니면 혼자 꿀꺽 먹느냐는 별개 문제다. 대형 슈퍼마켓이 지역으로 파고들었을 때 구매자는 편리성과 분명 저렴해 보이는 가격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이는 전체 그림에서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슈퍼마켓이 지역의 소시지시장을 꽉 쥐고 있으면,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소시지를 정육점보다 싸게 팔지 모른다. 더 싼 소시지가 등장해서 정육점이 파산한다는 이 연관성은 대체로 타당해 보인다. 단, 지역 소비자의 주머니에 돈이 더 남아 시내 중심가에 다른 사업을 유지할 수 있다면.


    하지만 독점기업이 창출하는 부는 상당 부분이, 아니 흔히 거의 대부분이 지역공동체에서 빠져나와 배를 타고 런던이나 뉴욕이나 제네바 같은 곳에 사는 대체로 부유한 주주의 손으로 들어간다. 반면 정육점과 몇몇 지역 공급업체와 유통업체에서 일하던 일꾼은 일자리를 잃는다. 이는 누군가의 호주머니에서 슬쩍 지갑을 꺼내 열고는 고작 몇 푼 돌려주면서 담뿍 미소 띤 표정으로 참 수지맞는 거래를 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게다가 독점이 대세를 이루면서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노동자에게 매운 주먹을 휘둘렀다. 1970년대 이후 노동자의 임금은 선진 부국에서 자그마치 국민소득의 10~15퍼센트나 뚝 떨어졌다. 이 결과 우리 경제는 대체로 성장세를 탔을지 모르지만 노동자는, 특히 미숙련 노동자는 이 성장의 열매를 맛보지 못한다. 미국을 대상으로 추산해 볼 때, 다른 요소는 모두 똑같을 때 임금이 이만큼이나 대폭 떨어지지 않았다면 기업의 순이익은 3분의 2가 더 낮아진다. 다른 식으로 접근해 영국의 국민소득에서 노동자의 몫이 1975년 수준이라고 가정하면, 다른 요소는 모두 똑같을 때 영국의 노동자들은 ‘매년’ 평균 6000~9000파운드를 더 받는다.


    이런 변화에는 기술, 업무 위탁 처리, 억만장자 감세, 노동조합 퇴세, 경제 금융화에 따른 수탈, 세계 금융위기가 남긴 오랜 후유증 등 다른 여러 원인이 있다. 하지만 몇몇 연구가 밝히듯 독점은 위에 열거한 다른 요소와 더불어 주인공 역할을 했다. 오늘날 기업이 불평등을 야기하는 커다란 원인은 최고경영자에게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연봉을 주는 데 있기보다는 초극강의 부를 이룬 독점기업이 부상하며 경쟁자를 숨이 막혀 죽을 만큼 목을 조르는 데 있다. 더구나 드러나는 내용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도 있는데 가난한 나라에서도 바로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무역 이론가는 이렇게 생각하곤 했다. 부유한 나라의 기업이 미숙련 일자리를 가난한 나라에 외주를 주면 이 가난한 나라가 벌어들이는 소득에서 노동자의 몫이 늘어나리라고.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이 수수께끼는 다국적 독점 ‘주도 기업’이 상품과 서비스가 이동하는 기나긴 국제 공급 사슬에서 주로 역외에 위치한 요충지에 자리를 잡고 세계 시장에 지배력을 휘둘러 수익을 수탈하면서, 가능한 곳에서는 노동자를 로봇으로 대체해 부유한 나라에서든 가난한 나라에서든 노동자의 임금을 낮게 유지하면서 성장해 왔다는 사실로 대부분 설명할 수 있다. 모든 나라에서 벌어지는 이 시합에서 문제는 거대 기업이 밥그릇에서 더 커다란 몫을 떼어가는 현실이 아니다. 실은 밥그릇이 점점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노동자가 구매력을 잃어버리고 따라서 스스로 상품을 살 여력이 되지 못하면서 기업의 상품에 대한 당당한 권리 주장도 맥을 못 추게 되었다. 그리고 기업 경영자가 다시 이런 상황에 주목하면서 투자에서 멀어지고 금융공학으로, 그리고 더 강력한 독점으로 다가가 수익 증진을 꾀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봉급이 높은 넉넉하고 튼튼한 일자리와 번영하는 공동체로 균형을 이룬 경제를 비틀거리는 경제, 제로아워 즉 0시간 계약, 사분오열한 공동체, 값싼 텔레비전과 맞바꾸었다. 아마 텔레비전도 아주 싸지는 않을 것이다. 시장이 제 기능을 다하도록 돕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독점권력이 무자비하게 휘두르는 보이지 않는 주먹과 맞바꾸었다. 이런 변화는 금융규제 완화, 독자적인 중앙은행 체계, 유로마켓의 대두와 같은 여러 국면과 맞물려 있으며 태풍급 바람을 몰고와 대형 은행과 다국적기업이 탄 배의 돛에 한껏 바람을 실어 주었지만, 그보다 소규모의 국내 경쟁자와 납세자에게는 거의 해악만 끼쳤다.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드는 신탁의 마법

    자산관리 산업의 성장과 부의 영원한 대물림

    자산관리 전문가는 국제적인 대형 복합체계를 구축하고 관리하는 데, 은행, 조세 도피처, 신탁, 재단, 유언장, 법률과 회계, 기업, 주식과 채권 목록, 보험상품, 헤지펀드 등등과 관련을 맺으며 곧장 세계 금융장치의 심장부로 들어간다. 때로는 팀을 이루어 일을 하거나 때로는 단 한 가족의 요구에 부응해 ‘가족 뒷간’에서 일을 처리하면서 초일류 부자의 그렇고 그런 정예 종복 노릇을 한다.


    같은 사회계층 출신이면 고객이 더 편안하게 여기기에 어려서부터 똑같은 태도와 관습을 몸에 익힌다. 구권을 보면 몰락한 귀족이 되고 신권을 보면 세련된 신사가 되는 것이다. 능력 있는 자산관리 전문가라면 고객의 자산이 서로 다른 법체계 사이를 계속 종횡무진 누비도록 하고 탈세구멍을 이용해 법률과 책임에 걸리지 않게 잘 피하도록 하면서 각 나라에서 부침을 거듭하는 법과 정치의 동향에 정통하도록 늘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고객이 인품 좋은 억만장자라면 이 고객을 도와 미술관이나 자선재단을 세우거나 포도밭을 일구고 두뇌집단을 지원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상속세를 폐지하고 법인세를 감면하고 반독점이나 반조세도피처 법을 철폐하라고 압력을 넣는 로비활동을 벌일 수도 있다. 현명한 투자조언을 하고 으드등거리는 가족 간의 불화와 결함을 조정하고 보증인을 설정하고 정원사와 고용인에게 급료를 지급하면서 친구가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가, 심리상담자가, 투자조언자가, 집사가, 정부와 일탈과 가족 비밀의 수호자가 될 수 있다. 정말 훌륭한 자산관리 전문가라면 어마어마한 참을성과 사교수완과 겸손과 한 번에 열 일 하는 능력과 무엇보다 신중함을 지녀야 한다.


    그런데 대다수 자산관리 전문가는 한낱 부자에 지나지 않는 이런 사람들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1000만 달러 이상의 자산을 소유한 160만 명을 위해 일한다. 특히 5000만 달러 이상의 자산을 지닌 15만 명 남짓한 초고액 자산가를 위해 일한다. 그리고 이 수치는 1년에 10퍼센트씩 크게 늘어나고 있는데 금융화와 조세 도피처, 합병과 기술, 국제 범죄조직의 증가로 더욱 급증하는 추세다.


    그런데 이 수치는 분명 과소평가한 것이다. 국민계정이 대개 신탁과 조세 도피처 등 자산을 국가의 주류 경제와 떼어놓는 여러 수단을 간파하지 못해, 초고액 자산가의 실제 자산을 잡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위탁자가 자산을 넘기더라도 신탁 때문에 수익자가 자산을 받지는 않으므로 자산은 일종의 소유자가 없는 어중간한 상태에 놓인다. 그래서 대부분 통계는 문제의 규모를 심각할 정도로 축소해서 말한다. 세계 초고액 자산가와 이어져 있지만 실제로 소유하지는 않는 수조 달러를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업계 중심부에서도 똑같은 ‘경쟁’ 과정이 벌어지고 있다. 내가 몇 번이고 되돌아가는 주제로, 억만장자에게는 훨씬 이롭지만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훨씬 해로운 법을 암암리에 휘두르면서, 어느 관할권에서나 끊임없이 서로를 능가하려고 분투한다. 예루살렘 히브리대학에서 강의하는 아담 호프리비노그라도프에 따르면 이 제 살 깎아먹기 경쟁은 무엇보다도 ‘신탁의 봉인해제’에 이른다. 가장 그악스러운 형태의 신탁과 자산보호 수법으로부터 사회를 보호하고자 하는 법 조항이 차츰 무디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경쟁은 어느 곳보다 미국에서 격렬하다.


    예를 들어 미국의 주정부들은 영속재산을 금하는 오랜 규정을 포기하고 있다. 예컨대 몇 대를 뛰어넘는 자손에게 부를 남기는 일이 불법이라고 정하면서 영원한 부의 왕조가 탄생하지 못하도록 설계된 미국 신탁법의 기반이 허물어지고 있다. 델라웨어주는 미국 내에서 특히 악명 높은 조세 도피처인데 1995년 적극적으로 법을 새로 마련해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20년도 채 못 되어 미국 주정부의 절반 이상이 뒤를 따라 이 규정을 포기하거나 제한했다. 매우 심사숙고하며 제한했다는 뜻이다. 지금 알래스카와 콜로라도, 유타와 와이오밍 같은 주정부는 이 신탁 기한을 1000년으로 제한하고 있다. 눈덩이효과가 뒤따른다. 그래서 영원한 왕조 신탁이 이제 가족의 핏줄을 따라 부를 길이길이 전한다.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엄밀한 조사 한 번 받지 않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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