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나보다 덜 내는가
 
지은이 : 이매뉴얼 사에즈 외(역:노정태)
출판사 : 부키
출판일 : 2021년 04월




  •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가 2018년 한 해 동안 벌어들인 소득은 40억 달러로 추산된다. 페이스북이 200억 달러의 이익을 냈고, 저커버그는 페이스북 주식의 20퍼센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페이스북이 배당을 하지 않은 탓에 그는 이 소득에 대해 단 한 푼도 소득세를 내지 않았다. 물론 페이스북에 법인세를 부과할 수는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페이스북의 이익은 서류상 미국이 아닌 케이먼제도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되어 있고 케이먼제도의 법인세율은 0퍼센트다. 2008년 이래 매년 40퍼센트씩 재산을 불려 왔으며 현재 재산 규모가 600억 달러 이상으로 추정되는 억만장자가 그동안 세금을 전혀 안 내고 있었으며, 그것이 완전히 ‘합법적’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공정한 일일까.


    그들은 왜 나보다 덜 내는가


    왜 가난한 사람들이 더 내는가

    미국의 조세 체계는 얼마나 재분배에 기여하고 있을까? 유럽 국가들은 부가가치세에 크게 의존한다. 그런데 부자들은 가난한 이들보다 더 많이 저축하므로, 소비에 세금을 물리는 부가가치세는 가난한 이들에게 상대적으로 더 큰 부담을 주게 된다. 하지만 미국에는 부가가치세가 없다. 그렇게 보자면 미 연방정부의 재정은 소득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부유한 이들에게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수도 있다.


    반대편에서 누진세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볼 때 그런 말은 진실과 정반대다. 세법에 존재하는 수많은 구멍으로 인해, 그리고 특정한 이익집단을 위해 합법적으로 만들어져 있는 허점 때문에, 부자들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상위 1퍼센트가 얻는 것과 하위 50퍼센트가 잃는 것

    “우리는 99퍼센트다”라는 구호가 떠오르면서, 가장 부유한 이들과 그 나머지 사이의 간극이 크게 벌어져 있다는 주장이 널리 알려졌고 이제는 그저 친숙하게만 들린다. 하지만 저 말은 다시 한 번 곱씹어 볼 가치가 있다. 오늘날 미국 경제에 대한 근본적인 진실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 현황을 알고 싶다면 머릿속에 이런 상황을 떠올려보는 것이 가장 빠르고 정확할 것이다. 세금과 정부 이전 지출을 논외로 했을 때, 1980년 상위 1퍼센트는 미국의 국민소득 중 10퍼센트보다 조금 더 벌었고 하위 50퍼센트는 20퍼센트 가량을 벌고 있었다. 상위 1퍼센트는 국민소득 중 20퍼센트 이상을 벌어들이고 있으며 노동계급의 소득은 12퍼센트에 가까스로 도달하는 수준이다.


    미국은 선진국 중에서도 부의 분배 문제에서 유별난 나라다. 일단 미국과 서유럽을 비교해 보자. 1980년만 해도 상위 1퍼센트가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대서양의 동쪽과 서쪽에서 거의 비슷하게 10퍼센트 정도였다. 하지만 그 후의 세월을 거치며 불평등의 동역학은 매우 다른 방식으로 작동했다. 서유럽의 경우 상위 1퍼센트가 차지하는 소득 비중은 2퍼센트포인트 늘어났고, 오늘날의 12퍼센트 정도다. 반면 미국은 10퍼센트포인트 상승했다. 하위 50퍼센트가 차지하는 소득의 비중도 24퍼센트에서 2퍼센트포인트 줄어들어 22퍼센트가 되었을 뿐이다. 좀 더 시야를 넓혀 보더라도, 소득 수준이 높은 민주주의 국가 가운데 미국처럼 불평등이 크게 증가한 나라는 찾아볼 수가 없다.


    왜 가난한 사람들이 더 내는가

    가장 가난한 미국인들이 무거운 세금을 짊어지게 하는 원흉은 크게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급여에 붙은 온갖 세금이 첫째 원인이다. 최하위 10퍼센트라 해도, 아무리 적은 돈을 받고 있어도, 노동을 통해 받는 급여에는 즉각 15.3퍼센트의 세금이 매겨진다. 12.4퍼센트는 사회보장세로, 2.9퍼센트는 메디케어 재정을 위한 세금으로 나간다. 게다가 최저임금은 허물어진 지 오래다.


    연방에서 정한 최저임금에 따라 일하는 전일제 근로자는 2019년 현재 1년에 1만 5000달러를 가까스로 벌게 되는데, 이는 성인들이 버는 국민소득 평균의 5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세전 소득이 이렇게 극적으로 줄어든 가운데,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의 급여에 따라붙는 세금마저 상승했다. 1950년에는 소득의 3퍼센트 정도가 세금이었지만 지금은 15퍼센트 이상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미국의 노동계급이 내는 높은 세율의 세금은 소비세인데, 그것은 가난한 미국인들이 높은 세금을 내는 두 번째 이유이자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는 부가가치세가 없지만 매출세와 내국소비세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으며 결국 부가가치세처럼 물가상승을 유도하고 있다.


    게다가 일반적인 부가가치세와 달리 미국에서 적용되는 매출세와 내국소비세 등은 대부분의 서비스에 대해서는 부과되지 않는데, 재화가 아닌 서비스의 소비가 전체 국내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이는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고 볼 수 있다. 주로 재화를 소비하는 가난한 이들의 소비에는 세금이 붙는 반면, 상대적으로 부유하고 여유 있는 이들이 소비하는 서비스는 면제 항목이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부가가치세가 없는 나라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만 부가가치세를 내는 나라다.


    왜 부자들은 세금을 덜 내는가

    애초에 누진세가 도입되었던 것은 핵심적인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진적 성격을 지니는 소비세의 영향을 완화함으로써 과세에 대한 사회적 저항을 줄이는 것이었다. 불행히도 오늘날의 소득세는 그러한 목적 달성에 대체로 실패하고 있다. 핵심적인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이다.


    억만장자들이 그들의 소득에 대해 낮은 세율을 부담하는 첫 번째 이유는 그들의 소득 대부분이 개인소득세의 과세 대상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이것은 가장 핵심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소득세의 과세 대상으로 간주되는 소득은 국민소득 중 오직 63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같은 면세 조치로 인해 혜택을 보는 납세자는 상당한 규모에 이르지만, 특히 진짜 부자들에게는 훨씬 더 큰 혜택이 돌아간다. 슈퍼리치들 중 많은 이들은 사실상 거의 모든 소득이 면세 항목이기 때문이다.


    마크 저커버그의 실질적인 경제적 소득은 어느 정도일까? 그는 페이스북 주식의 20퍼센트를 가지고 있는데, 페이스북은 2018년 200억 달러의 이익을 냈다. 그러니 그가 그 해에 벌어들인 소득은 200억 달러의 20퍼센트인 40억 달러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페이스북은 배당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40억 중 단 한 푼도 소득세 과세 대상이 되지 못했다.


    저커버그가 내는 세금 가운데 규모가 큰 것은 페이스북의 법인세뿐이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두 번째 문제가 발생한다. 페이스북은 납세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한 적이 거의 없다. 자신들이 내는 이익을 케이먼제도의 법인으로 돌려놓은 덕분에 페이스북은 오래도록 법인세를 내고 있지 않았다.


    부자들이 낮은 세율을 누릴 수 있게 된 세 번째 이유는 연방소득세 자체가 최근에 변했기 때문이다. 20여 년이 채 되지 않은 최근에 걸쳐 연방소득세는 노동과 자본에 골고루 부과되는 종합세에서 벗어나 근로소득보다 자본소득에 더 우호적인 성격을 지니는 세금으로 탈바꿈했다.


    2003년 이후 주식 배당금에 부과되는 연방소득세에는 20퍼센트의 상한 세율이 적용되었다. 2018년부터 의사, 변호사, 컨설턴트, 벤처 투자자 등이 올리는 사업소득에는 20퍼센트의 공제 혜택이 주어지게 되었고, 근로소득의 경우 최상위 구간의 소득세율이 37퍼센트인 데 반해 사업소득의 경우에는 최상위 구간 세율이 29.6퍼센트에 불과하다. 이는 트럼프가 주도한 조세 개혁의 핵심 요소 중 하나로, 가장 큰 논란거리이기도 하다.


    미국의 조세 체계를 망가뜨린 폭발물의 구성 성분은 단순하다. 자본소득을, 다양한 층위에서, 면세 소득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부자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재산의 성격 덕분에 여러 측면에서 혜택을 보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큰 기업의 주식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으로부터 소득을 얻는 슈퍼리치들이 이 경쟁에서 압도적인 승자가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구글이 세금을 떼먹는 방법

    미국의 정치ㆍ경제ㆍ지식 엘리트들 중 다수는 법인세 인하가 꼭 필요한 올바른 일이라는 입장을 공유하고 있었다. 재임 기간 동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법인세율을 28퍼센트까지 낮추는 게 좋고, 제조업은 25퍼센트까지 내려야 한다는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세계 시장에서 승리를 거두고 있는 기업은 국경을 뛰어넘는다. 우리는 그들에게 너무 많은 세금을 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세율을 인하한다고? 우리도 세율을 낮춰야만 한다. 구글이 지적 재산권을, 따라서 그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이익을 버뮤다제도로 이전했다고? 그 지적 재산권을 미국으로 되찾아오려면 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어야만 한다.


    이런 세계관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세계화라는 것이 그 주된 승자들, 즉 거대 다국적기업의 소유주들에게는 점점 더 낮은 세율을 적용하고 세계화의 혜택을 못 받는 노동계급의 가족들에게는 더 높은 세금을 물리는 것을 뜻한다면, 세계화에는 미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익 이전이 시작되다

    법인세가 만난 최초의 훼손은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 인플레이션이 상승하고 기업 이익이 하락하는 맥락 속에서 등장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말까지 사실상 유럽과 일본은 미국 기업의 경쟁 상대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매우 큰 이익을 남길 수 있었다. 1969년과 1970년, 정부가 베트남전쟁으로 인한 예산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세금을 높이고 연방준비위원회가 인플레이션을 막고자 기준금리를 틀어막았다. 그 결과 미국은 경기 침체를 경험하게 되었고 상황은 달라지고 만다.


    1973년의 오일쇼크는 심각한 불경기를 낳았고 1970년대 내내 기준금리를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는데, 그리하여 수익률은 계속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달라진 거시경제적인 여건은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변화를 낳았다. 기업을 위한 조세 회피 산업이 탄생한 것이다. 같은 이념적 맥락 속에서 조세 회피 산업은 번창해 나갔다.


    고소득을 올리는 개인들이 열광적으로 가짜 파트너십을 맺었던 것과 같은 무언가가 기업에 있었다면, 그건 무엇이었을까? 네덜란드령 안틸레스제도에 위치한 금융회사들이었다. 미국 기업들은 아루바나 보네르 또는 퀴라소에 지사를 설립할 수 있었다. 그 계열사는 유럽 은행에서 당시 3퍼센트 내외를 오가던 이율에 따라 대출을 받아 그 돈을 미국의 모기업에 다시 빌려주었는데, 같은 시기에 미국의 이율은 8퍼센트 정도였다. 기업들은 이런 수작을 통해 일석이조의 혜택을 얻을 수 있었다. 역외에 설립된 금융회사는 5퍼센트포인트 차이만큼 수익을 올릴 수 있었고, 네덜란드령 안틸레스제도에는 소득세가 존재하지 않았던 덕분에 그 소득에 대해서는 세금을 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마치 가짜 파트너십이 그랬듯이, 이렇게 대대적으로 작동한 탈세 방식은 결국 세무 당국에 의해 1980년대 중반 철퇴를 맞기에 이른다.


    기업들의 조세 회피가 만개한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1990년대 중반까지 기다려야 한다. 조세 회피와 탈세는 어느 날 갑자기 솟아오른 것이 아니다. 1990년대 조세 회피 산업 앞에는 오직 녹색 신호등뿐이었다. 베를린 장벽이 막 무너진 다음이었다. 자유시장 이념은 승리를 만끽하고 있었다. 1980년대에 걸쳐 주주가 왕이라는 생각을 주입받은 새로운 세대의 경영자들이 미국의 다국적 기업을 틀어쥐기 시작했다.


    동시에 세계화는 세금을 아낄 수 있는 새로운 기회의 창을 열어 주었다. 모든 고객들이 미국에 있는 상황에서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유령회사를 설립하는 등의 행동은 조세 당국에서 수상쩍은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이 되자 미국 밖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의 비중이 폭발적으로 중가하기 시작했고, 2000년대가 시작된 후 10년 동안 그 비중은 30퍼센트까지 올라갔다. 수익이전이라는 광란의 축제가 시작된 것이다.


    다국적기업의 이익 중 40퍼센트가 조세 도피처로 이전된다

    1970년대 말까지 미국의 다국적기업들은 50퍼센트에 달하는 법인세율에도 불구하고 역외 조세 도피처를 거의 활용하지 않았다. 일부는 스위스나 카리브해의 작은 섬에 지주회사를 갖고 있곤 했지만, 전체적으로 보자면 그 비중은 무시해도 좋을 만한 수준이었다. 1970년대 말, 네덜란드령 안틸레스제도를 통한 탈세에서 영감을 얻은 이들이 수익이전을 늘려 나갔다. 1980년대 초에 접어들면 미국 회사의 이익 중 해외 법인으로 이전된 액수가 25퍼센트에 달할 정도로 올랐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미국 기업들은 여전히 미국 땅에서 많은 수익을 기록하고 있었다. 수익이전이 진정 확연한 현상으로 자리잡은 것은 1990년대 말에 이르러서였다.


    오늘날, 미국의 다국적기업들이 내는 이익의 60퍼센트 가까운 돈이 세율이 낮은 외국으로 빠져나가 그 나라 법인의 이익으로 기록되고 있으며, 이 액수는 점점 더 커지는 중이다. 아일랜드와 버뮤다가 1순위다. 엄밀한 지리적 경계를 긋는 일은 불행히도 불가능하다. 편의상 우리는 ‘버뮬랜드’라고 부르기로 하자.


    2016년 현재, 미국의 다국적기업이 버뮬랜드에서 올린 수익은 영국, 일본, 프랑스, 멕시코를 합친 것보다 더 많다. 그 뒤로 네덜란드, 싱가포르, 케이먼제도, 바하마가 줄을 잇고 있다. 이곳 하나하나에서 미국의 다국적 기업이 올리는 이익이 중국이나 멕시코에서 나오는 이익보다 많다.


    마지막으로 짚어보아야 할 것은 지금까지 나온 것 중 가장 기괴하다고 할 수 있을 텐데, (가장 최신 자료에 따라) 2016년 현재 다국적기업이 미국 외 지역에서 얻은 이익 중 20퍼센트는 “무국적 항목”으로 분류된다는 것이다. 유령회사가 어딘가에 설립되어 있지만 그 어떤 나라도 아니기 때문에 어디에서도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1조 달러 상당의 이익이 지구가 아닌 어딘가의 외계행성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뜻이다.



    유령회사 놀음을 끝장내기 위한 호루라기

    2019년, IMF는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세율 인하 경쟁과 법인세의 미래에 대한 그들의 견해를 물어보았다. 초청된 전문가들 대부분은 예측 가능한 미래에 조세 경쟁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대답을 내놓았다. 조세 도피처가 법인세를 뚝뚝 떨어뜨릴 때 그런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자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것이 스스로에게 이익이 되는 한 어떤 나라들은 반드시 다른 나라보다 세율을 더욱 낮출 것이라는 데에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했다. 이익은 조세 부담이 가장 낮은 곳을 찾아 움직일 것이다. 하지만 다국적기업에 높은 세율을 매기는 게 가능할까? 전 세계가 점점 더 밀접하게 뒤엉켜 가는 현 시점에서?


    오늘날 가열차게 벌어지고 있는 법인세 0퍼센트를 향한 경쟁은 우리가 집단적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설령 완전히 명료한 인식하에 의식적으로 내린 결정은 아닐지라도, 또한 투명하고 민주적인 토론을 통해 이루어진 것은 분명히 아니겠지만, 아무튼 어떤 의미에서건 결정을 내리긴 한 것이다. 우리는 국제 공조를 택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다국적기업이 세율이 낮은 곳을 찾아가 자신들의 이익을 장부에 기입하지 못하게 막는 쪽을 택할 수도 있었지만, 그들이 그런 짓을 하도록 내버려둔 것도 우리들이다. 우리는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오늘 당장이라도 시작해 보자.


    탈세로 인한 조세 결손을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

    국제 공조가 활성화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가까운 시일 내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의 계획에는 국제 협력에 참여할 것을 거부하는 국가에 본사를 둔 기업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이 포함되어야만 한다.


    실무적 차원에서 보자면 탈세와 싸우기 위해 더욱 대범한 기법이 동원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세율이 높은 국가들은 네슬레가 세계시장에서 얻은 이익을 배분하는 대신, 네슬레로 인해 발생한 조세 결손을 배분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미국(이나 참여하고 싶은 국가들)은 네슬레가 다른 나라에서처럼 25퍼센트의 실효세율을 적용받는다면 냈어야 할 세금과 실제로 납부한 세금의 차액, 즉 네슬레의 국제적 조세 결손액을 산정할 수 있다. 그러한 계산 하에 스위스가 낳은 거대 식품기업 네슬레가 미국에서 세계시장 매출 가운데 20퍼센트를 올렸다면 네슬레의 조세 결손액 중 20퍼센트를 세금으로 징수하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이러한 해법은 단 한 번도 제안된 적이 없었는데, 여기에는 많은 이점이 있다. 첫째, 이 방법은 즉각 시행 가능하다. 앞서 살펴보았다시피 다국적기업이 국가별로 올리는 이익, 세금, 판매에 대한 자료는 이미 존재하고 있다. 네슬레의 회계 정보는 스위스 세무 당국에 의해 자료화되지만 2018년 이후 외국의 세무 당국과 자동적으로 교환되고 있다. 설령 그런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간단하게 요구하면 그만이다.


    우리의 해법에는 현존하는 국제 조약을 위반하지 않는다는 이점 또한 존재한다. 기업이 이중과세의 대상이 될 위험을 막기 위해 오랜 세월에 걸쳐 국가들은 수없이 많은 협약을 맺어 왔다. 현실적으로 이러한 협약들, 그리고 그 협약 속에 내재된 결함들은 온갖 종류의 탈세가 가능하게 해 주는 구멍 노릇을 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조세 회피에 맞서 우리가 제안하고 있는 방어세는 최소세율의 기준인 25퍼센트에 미달한 액수만을 기업으로부터 징수하게 되어 있으므로, 우리의 해법은 구조적으로 그 어떤 이중과세 방지 협정 중 그 무엇도 위배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방어세를 도입하지 않는 것은 남들이 가져가건 말건 탁자 위에 돈을 놓고 자리를 뜨는 것과 같은 짓이다! 다국적기업의 매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나라들이 일제히 방어세를 도입한다면, 각국이 겪고 있는 세수 결손은 완전히 채워질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버뮤다에 본사를 두고 있는 회사라 해도 최소한의 실효세율 25퍼센트의 납세를 피하지 못한다. 세상 어디에도 숨을 곳은 없다.



    소득액이 같으면 세금도 똑같이

    버핏은 자신이 너무 적게 세금을 내고 있다고 한탄했던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입법자들을 상대로 그 정의롭지 못한 현상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제안하기까지 했다. 그러한 방향의 시도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한 해에 100만 달러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개인에게 최소 30퍼센트 이상의 세율을 적용하자는 것으로, 2011년 버락 오바마가, 2016년에는 힐러리 클린턴이 옹호하고 나섰던 제안이다. 이른바 “버핏 룰”은 민주당의 조세 개혁 논의에 주춧돌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버핏 룰”은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에 적용되는 세율의 차이가 크다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기도 했다.


    버핏이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한 줌 팔아서 20퍼센트의 세율을 적용받아 내는 세금은 그가 벌어들이는 지대한 수입과 비교해 볼 때 그야말로 나노단위의 입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 나노 단위에서 20퍼센트가 30퍼센트로 바뀐다 한들 차이는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할 수밖에 없다.


    탈세의 구멍을 막자: 동일 소득 동일 세율

    조세 회피를 막기 위한 다음 단계는 같은 액수의 소득을 올리는 사람은 같은 액수의 세금을 내야 한다는 단순한 상식을 현실화하는 것이다. 이 명백해 보이는 상식은 21세기가 시작된 후 지난 20여 년 동안 이루어져 왔던 온갖 종류의 세제 개혁 중 대부분의 방향과 정반대되는 것이었다.


    같은 소득액을 보이는 사람들이 같은 세액을 내도록 하는 것은 이른바 “탈세의 구멍 막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와 같은 정책 방향은 다양한 함의를 지닌다.


    첫째, 그러한 방향의 개혁은 모든 종류의 소득이 누진적인 개인소득세의 대상이 되어야 함을 뜻한다. 임금ㆍ배당ㆍ이자ㆍ임대료ㆍ사업소득 뿐이 아니라, 미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현재 낮은 세율의 비례세가 적용되고 있는 양도세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수많은 나라에서 양도소득세를 단일 세율의 비례세로 규정했던 이유는 역사적 맥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주식ㆍ채권ㆍ주택 등 거래의 대상이 되는 모든 자산의 매입 가격을 세무당국이 모두 추적할 수 없으므로, 양도소득에는 다른 방식으로 과세하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선택했던 차선책이었던 것이다. 미국의 경우 2012년이 되어서야 국세청이 그와 같은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오늘날의 정부는 자산을 매입한 시점을 알고 있다고 가정하다면, 자산소득을 산정할 때 물가상승의 영향을 자동적으로 계산하고 물가상승분을 제하여 세액을 산정하는 세법 개정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현행 세법 체계 하에서는 2012년에 100달러를 주고 샀던 자산을 2020년에 150달러에 팔면 50달러가 양도소득세의 과세표준이 된다. 이건 다소 문제가 있는 계산법이다. 그 50달러 중 20달러는 전반적인 물가상승을 반영하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오직 30달러만이 진정한 양도소득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외해야 할 20달러에까지 세금을 매긴다면, 그 정체가 모호하고 어떻게 분류해야 할지 애매하지만 아무튼 부에 대해 따라붙는 부유세인 셈이 되고 그 부유세는 물가상승률의 의해 결정되고 마는 것이다. 저런 부유세를 없애는 감세 개혁이라면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 * *


    본 도서 정보는 우수 도서 홍보를 위해 저작권자로부터 정식인가를 얻어 도서의 내용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으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저작권자의 정식인가 없이 무단전재, 무단복제 및 전송을 할 수 없으며, 원본 도서의 모든 출판권과 전송권은 저작권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