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
 
지은이 : 토머스 모어(역:박문재)
출판사 : 현대지성
출판일 : 2020년 11월




  • 토머스 모어가 살았던 시대에 영국은 백년전쟁과 장미전쟁을 거치며 무법천지가 되어버렸다. 숲에는 도적 떼가 몰려 있었고 상인들은 무사를 고용해야만 했다. 인클로저 운동으로 농민이 몰락하고 런던의 인구는 폭발하여 온갖 사회문제가 발생했다. 모어는 범죄자를 처벌하는 데 그치지 말고 그런 범죄자가 나오지 않도록 예방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보았다.
     
    저자가 16세기에 언급한 기본소득, 공공주택, 6시간 노동 정책, 경제적 평등과 같은 여러 급진적 사상은 후대에 마르크스의 『자본론』 등으로 연결되었으며, 21세기인 지금도 활발히 논의될 정도로 파격적이고 혁신적이다. 플라톤이 『국가』에서 제시한 최상의 공화국을 철학적 담론이 아닌, 하나의 실제 모델로 생생하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토피아


    유토피아 섬

    유토피아 사람들이 사는 섬에 대해 말하자면, 그 섬 가운데서 가장 폭이 넓은 정중앙의 길이는 200마일(1마일은 약 1.6킬로미터)입니다. 정중앙에서 양쪽 끝부분으로 갈수록 점점 폭이 좁아지긴 하지만 서서히 조금씩 좁아지기 때문에, 양쪽 끝부분을 제외하고는 200마일보다 훨씬 더 좁은 지역은 없습니다. 정중앙에서 양쪽 끝부분까지는 지름이 500마일인 원의 원주처럼 둥근 모양으로 완만하게 곡선을 그리고 있어서, 섬 전체는 초승달 모양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지금 유토피아인이 사는 땅이 전에는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 아니었다고 하고, 실제로 그곳에는 이전 모습을 보여주는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 땅은 전에 아브락사라 불렸는데, 유토포스라는 사람이 정복해서 그곳 이름을 유토피아 섬이라고 개명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거기에 살던 야만족 무리를 가르치고 이끌어, 지금은 지구상에 있는 거의 모든 민족보다 월등한 문명 수준을 지닌 인류를 만들어냈답니다.


    유토피아 섬에는 54개의 도시가 있습니다. 이 도시들은 모두 넓고 웅장하며, 거기에서 사용되는 언어와 관습과 제도와 법률은 완전히 동일합니다. 또한, 모든 도시는 각각의 도시가 들어선 지형이 허용하는 한, 같은 설계도에 따라 지어져서 형태도 동일합니다. 도시는 서로 최소한 25마일 떨어져 있습니다. 반면에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는 도시도 사람이 하루에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 안에 있습니다.


    이 나라의 영토는 각 도시에 아주 적절하게 배분되어 있어서, 한 도시는 적어도 사방으로 12마일씩의 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도시와의 간격이 좀 더 멀리 떨어져 있는 도시가 보유한 땅은 훨씬 더 넓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관할하는 땅을 넓히려는 도시는 없습니다. 시민들은 자신을 지주가 아니라 경작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 전역의 모든 농촌 지역에는 곳곳마다 적절한 곳에 농사 짓는 데 필요한 농기구를 갖춘 농장들이 있습니다. 도시민은 자기 차례가 되면 번갈아 농촌 지역으로 이주해 와서 이 농장에 거주합니다. 한 농장에는 최소한 40명의 남녀 성인이 거주하고, 두 명의 노예가 상주합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성실한 부부가 농장 하나를 담당하고, 필라르코스라 불리는 감독관 한 명은 30곳의 농장을 관할합니다.


    해마다 한 농장에서 20명의 도시민이 2년 동안의 농촌 복무를 마치고 도시로 다시 이주합니다. 그리고 도시에서 새로 온 20명이 그 빈자리를 채웁니다. 이 새로 온 도시민들은 그들보다 먼저 농촌에 와서 1년 동안 일을 해왔던 도시민에게서 농사일을 배웁니다. 따라서 1년 후에는 도시에서 새로 온 사람들에게 농사일을 가르쳐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농사일을 전혀 모르는 사람만 농사일을 하다가 한 해에 필요한 농작물 생산에 큰 차질이 빚어질 위험을 방지하려는 것입니다.


    농촌으로 이주해 농사일을 하는 기간은 법에 2년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원하지 않더라도 그보다 오래 살도록 강제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천성적으로 농촌에서의 삶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원하는 만큼 더 오래 머물 수 있습니다.


    유토피아의 도시들, 특히 아마우로스

    그곳의 도시들 중 어느 한 도시만 제대로 알면, 나머지 모든 도시에 대해서는 저절로 알게 됩니다. 특정 도시가 세워진 곳의 자연 지형이나 지세로 불가피하게 생긴 약간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모든 도시의 형태는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중 한 도시에 관해 설명하려고 합니다. 어느 도시를 선택해도 상관없지만, 아무래도 아마우로스에 관해 설명하는 것이 가장 좋지 않겠습니까? 다른 모든 도시가 흔쾌히 아마우로스로 자기 대표를 보내는 것은 그 도시가 최고라는 것을 그들도 인정하기 때문이며, 나도 거기에서 꼬박 5년을 생활했기에 그 도시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더 잘 알기 때문입니다.


    아마우로스는 경사가 완만한 산비탈에 자리잡고 있고, 그 형태는 거의 정사각형 모양입니다. 이 도시는 산 정상의 조금 아래에서 시작해서 아니도르 강을 따라 직선거리로 2마일정도 뻗어 있지만, 이 강의 강둑을 따라 측량하면 그 길이는 조금 더 깁니다.


    도시는 두껍고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성벽 위에는 망루와 보루가 많이 세워져 있습니다. 도시 삼면에는 해자가 넓고 깊게 파져 있습니다. 거기에는 물이 채워져 있지 않고, 그 대신에 날카로운 가시가 나 있는 나무로 이루어진 여러 장애물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도시의 네 번째 면은 강 자체가 해자 역할을 합니다,


    도시의 거리는 교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면서도 바람도 잘 막아줄 수 있도록 편리하고 훌륭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집들은 대단히 깨끗하고, 도로변을 따라 조화롭게 세워져 있어서, 한 구역에 속한 집들 전체가 한데 어우러져서 아름다운 저택 한 채와 같은 모습을 보입니다. 도로변을 따라 지어진 집들 전면에는 20피트(약 6미터) 너비의 도로가 있습니다.


    각각의 집 후면에는 도로 너비만한 정원이 있는데, 이 정원은 사방으로 다른 집들의 후면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모든 집에는 길거리로 통하는 정문이 있고 정원으로 통하는 후문이 있습니다.


    이 문들은 손으로 밀면 쉽게 열리고 자동적으로 다시 닫히게 되어 있어, 아무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사유재산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살게 될 집은 10년마다 추첨으로 새로 정해집니다.


    관리들

    해마다 서른 가구가 한 단위가 되어 관리 한 명을 선출합니다. 이 관리는 고대 언어로는 ‘시포그란토르’라 불렸지만, 지금은 ‘필라르코스’라고 불립니다. 그리고 10명의 시포그란토르와 그들이 대표하는 가구들을 관할하는 관리가 있는데, 전에는 ‘트라니보라’로 불렸지만, 지금은 ‘프로토필라르코스’라 불립니다.


    이 도시에는 200명의 시포그란토르로 구성된 의회가 있고, 이 의회에서 시장을 선출합니다. 그들은 시장을 선출하기에 앞서, 도시에 가장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을 시장으로 선출하겠다고 서약합니다. 그런 후에 비밀투표가 실시되고, 도시의 네 지구에서 각각 한 명씩 의회에 추천한 후보 네 명 중에서 한 명이 시장으로 선출됩니다.


    시장직은 독재를 한다는 의심을 받아 실각하지 않는 한 평생 유지됩니다. 트라니보라는 해마다 선출되긴 하지만, 교체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반면에 다른 모든 관직은 한 사람이 오직 1년만 맡을 수 있습니다.


    트라니보라는 3일에 한 번씩, 또는 필요한 경우에는 좀 더 자주 시장과 만나 공무를 협의합니다. 그리고 극히 드물게 일어나는 일이긴 하지만, 시민들 사이의 개인적인 분쟁 사건이 있다면 함께 논의해서 신속하게 처리합니다. 이 시정협의회에는 언제나 두 명의 시포그란토르를 참석시키는데, 참석자는 매일 다른 사람으로 바뀝니다.


    사회 조직

    이제 유토피아 사람들의 상호관계, 즉 그들 사회가 어떤 식으로 조직되어 운영되고, 그들 사이에 재화는 어떤 식으로 분배되는지를 설명해보겠습니다. 이 나라의 각 도시는 가구들로 이루어지고, 하나의 가구는 혈연관계로 맺어진 다수로 구성됩니다. 딸들은 성인이 되어 결혼하면 남편이 속한 가구로 편입됩니다. 반면 아들과 손자는 부모가 속한 가구에 그대로 남습니다. 구성원 중에 가장 연장자가 가구주이지만, 나이가 들어 정신이 온전하지 않다면 두 번째로 연장자인 구성원이 가구주를 맡습니다.


    도시에 부속된 주변 농촌 지역을 제외한다면, 각각의 도시는 6,000가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도시 인구가 너무 줄거나 느는 것을 막기 위해, 한 가구에 속한 성인이 10명보다 적거나 16명보다 많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법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미성년자 수를 규제하는 일은 실제 시행이 어렵지만, 성인의 경우 정원 초과 가구에 속한 성인을 정원에 미달하는 가구로 보냄으로써 그러한 법 규정을 쉽게 준수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한 도시의 인구가 법에서 정한 것보다 많아지면, 여분의 사람을 인구가 부족한 도시로 보냅니다.


    모든 도시는 크기가 동일한 네 개의 지구로 구분됩니다. 각 지구의 중앙에는 온갖 물건을 취급하는 시장이 있습니다. 각 세대는 자신이 생산한 물건을 모두 여기로 가져오고, 그 물건은 종류별로 각 상점에 분배됩니다. 가구주는 자신이 속한 가구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필요한 양만큼 해당 상점에 가서, 돈이나 현물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그냥 집으로 가져오면 됩니다.


    사실 모든 동물은 자기가 필요로 하는 것들이 아주 풍부해, 필요할 때 얼마든지 구할 수 있기에 결핍이나 결여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다면 탐욕을 부리거나 남의 것을 약탈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직 사람만, 자기에게 꼭 필요한 것이 아닌데도 그런 것을 남보다 더 많이 소유하고 있음을 과시하고 자랑하려는 허영심과 오만으로 탐욕을 부추깁니다. 하지만 유토피아의 제도 속에는 그런 종류의 악이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거리마다 크기가 동일한 큰 건물로 된 관청이 일정 간격으로 있고, 이 관청들은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불립니다. 이 관청에는 시포그란토르가 거주합니다. 한 명의 시포그란토르가 담당하는 서른 가구 중에서 열다섯 가구는 이 관청의 오른쪽에, 나머지 열다섯 가구는 왼쪽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시포그란토르는 자신이 담당하는 모든 가구를 이 관청에서 잘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른 가구에 속한 모든 사람은 관청에서 식사합니다. 이 관청에서 식사 준비를 맡은 모든 조리장은 정해진 시간에 시장에서 만나, 소속 관청에서 모두가 먹는 데 필요한 양만큼의 식료품을 요청해서 받아 옵니다.


    생산물의 공평한 분배

    유토피아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이러하기에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자가 풍부한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공평하게 분배되므로, 빈곤층으로 전락하여 거지가 되는 일은 없다는 것도 분명합니다.


    앞에서 나는 모든 도시에서 해마다 3명의 대표를 아마우로스에서 개최되는 국가회의에 보낸다고 했습니다. 이 회의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각 도시가 생산한 물자 중에서 어떤 것이 남아돌고 어떤 것이 부족한지를 파악한 후, 그 즉시 각 도시의 잉여 생산물을 그 물자가 부족한 도시로 보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상으로 이루어지므로, 잉여 물자를 다른 도시에 보냈다고 해서 그 대가로 다른 것을 받지는 않습니다. 각 도시는 자신의 잉여 생산물을 다른 도시에 무상으로 주고 아무 대가도 요구하지 않지만, 자신이 필요로 하는 다른 물자를 다른 도시에게서 무상으로 받으므로, 결국은 모든 도시가 서로 혜택을 입어, 다 공평하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렇게 유토피아 섬 전체가 하나의 가족과 같습니다.


    유토피아 사람들은 이듬해 작황을 미리 내다볼 수 없으므로 2년 치 물자를 준비해두지 않았다면 충분히 비축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정도 분량의 물자를 제외한 잉여 생산물이 있어야만 다른 나라에 수출합니다. 이 나라가 수출하는 품목들로는 엄청난 양의 곡물과 꿀, 양모와 아마포, 목재, 주홍색과 자주색으로 물들인 옷감, 짐승의 가죽, 밀랍과 수지와 가죽, 가축 등이 있습니다. 이 모든 품목을 수출할 때 그중 칠분의 일은 수입국의 가난한 사람에게 무상으로 나누어 주고, 그 나머지만 적정 가격에 판매합니다.


    유토피아 사람들은 이러한 교역 대금으로 자기 나라에서 거의 유일하게 부족한 품목인 철을 현물로 받거나, 아니면 막대한 양의 금과 은을 받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두 분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세월 교역을 해왔으므로 이 나라에는 금과 은이 이미 엄청나게 비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자신이 수출한 품목에 대한 대금을 금과 은 같은 현물로 받든 외상으로 하든 그다지 상관하지 않게 되었고, 실제로는 어음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모든 거래에서 개인 어음은 받지 않고, 해당 국가가 공식적으로 보증하고 발행한 법적 효력이 있는 지불각서만 받습니다.


    지불하기로 약속한 기일이 되면, 그 국가는 개인 수입업자로부터 대금을 받아 국고에 넣어두고, 유토피아 사람들이 지불을 요구할 때까지는 그 돈을 자유롭게 사용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유토피아 사람들은 지불 기한에 그 대금을 청구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지금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데 그 돈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서 가져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막대한 금과 은과 자금을 비축해두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지, 금은보화와 돈을 귀하게 여기고 좋아해서 쌓아두려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이렇게 말해도 두 분은 내 말을 믿지 못하실 것이므로, 나도 이렇게 말하는 것이 정말 조심스럽고 망설여집니다. 사실 만일 다른 사람이 내게 그런 말을 들려주었더라도, 내가 직접 그 나라에서 여러 해 거주하면서 내 눈으로 똑똑히 보지 않았더라면, 나 역시 믿지 못했을 것이니까요. 사람은 자기가 늘 보거나 들어왔던 것과 다른 이야기를 들으면 믿기 힘들어하는 법입니다.


    하지만 유토피아 사람들의 제도가 우리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금이나 은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가 우리와 판이하게 다르다는 말을 듣더라도, 생각 있는 사람은 별로 놀라지 않을 것입니다. 요컨대 이 나라에서는 돈을 사용하지 않는데, 단지 비상상황에 대비해 돈을 비축해놓으려는 것일 뿐입니다. 이렇게 그들은 비상상황에서 써야 할 자금으로 금과 은을 비축해놓는 것이므로, 금과 은을 그 금속 자체가 지닌 가치 이상으로 평가하여 귀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유토피아 사람들이 다른 무엇보다도 가장 이상하게 생각하고 혐오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신세진 일이 없고 앞으로도 신세질 일이 없으며 어떤 점에서도 존경할 만한 것이 없는데도 단지 부자라는 이유로 하늘처럼 우러르고 공경하는 정신 나간 태도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부자가 아주 인색하고 탐욕스러워서 자기 집에 금화를 무수하게 쌓아놓고도 살아생전에 그들에게는 단 한 푼도 주지 않을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양육과 학문

    유토피아 사람들이 지닌 이러한 가치관과 생각은 부분적으로는 앞에서 말한 다른 나라의 어리석기 짝이 없는 제도와는 완전히 다른 이 나라의 제도 아래에서 양육받고 성장한 덕분이고, 부분적으로는 교육과 독서 덕분이기도 합니다.


    각 도시에서 노동을 면제받고 오직 학문에만 전념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어릴 때부터 탁월한 재능과 뛰어난 지성과 학문 연구에 필요한 적성을 갖추고 있음이 분명하게 드러난 사람만이 학자로 선발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을 제외한 모든 아이도 스스로 학문을 해나가도록 기본 교육을 받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대로, 남녀를 불문하고 상당수의 사람이 노동하는 시간을 제외한 여가 시간에 강좌를 듣거나 독서를 하며 평생에 걸쳐 스스로 자기계발을 해나갑니다.


    모든 학문의 연구와 교육은 그들의 언어인 유토피아어로 이루어집니다. 유토피아어는 어휘가 풍부하고, 듣기에도 좋을 뿐 아니라, 그 어떤 생각도 정확하고 충실하게 표현해낼 수 있게 합니다. 이 언어는 지역마다 약간씩 달라지기는 했지만, 거의 동일한 언어가 유토피아 섬 대부분에서 통용됩니다.


    우리가 거기 가기 전에는, 이 세계에서 아주 유명한 모든 철학자에 관해, 단 한 사람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음악, 논리학, 대수학, 기하학에서 우리 선조가 이루어놓은 업적을 이미 거의 동일하게 성취하고 있었습니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그들이 이룬 것은 우리의 선조가 성취한 것과 대등했습니다.


    하지만 논리학 분야만은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최근 학자들이 발견한 것에 한참 못 미쳤습니다. 심지어 우리 세계에서는 어린 학생들이 도처에 있는 학교에서 초급 논리학을 통해 배워 아주 분명하게 알고 있는 한정이나 확장이나 가정 등과 같은 기본 개념조차도 그들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그들은 별들의 운행과 천체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대단히 현명하게도 자신이 발명해낸 다양한 형태의 여러 도구를 사용해서, 섬에서 보이는 해와 달과 별들의 운행과 위치를 정확하게 알아냈습니다. 하지만 해와 달과 별들 사이의 상생 관계나 상극 관계를 따져 미래를 예언하는 온갖 사기극을 벌일 생각은 꿈에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확신하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들의 생각이나 그들이 옳다고 믿는 원리에 대해 사람들이 어떤 평가를 내리든, 그들보다 더 뛰어난 백성 혹은 그 나라보다 더 행복한 나라는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입니다.


    유토피아에 사는 사람들은 친절하고 쾌활하며 영리하고 재주가 많으며 여유로움을 즐깁니다.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육체노동을 감당하지만, 그런 경우를 제외하면 결코 육체노동을 즐기지는 않습니다. 반면, 정신을 계발하는 일에서는 싫증을 내지도 않고 지칠 줄도 모릅니다.


    이렇게 유토피아 사람들은 학문을 좋아하는 성향 덕분에 그들의 생활 수준을 상당히 높일 기술과 문물을 놀라울 정도로 신속하고 능숙하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두 가지, 즉 인쇄술과 제지술에는 우리도 일조했습니다. 물론 우리는 단지 단초만 제공했을 뿐이고, 대부분은 그들이 스스로 해냈습니다.


    유토피아 공화국을 칭송함

    지금까지 나는 유토피아 공화국이 어떤 나라인지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정확하게 두 분에게 설명해드렸습니다. 내 생각에는 그 나라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나라일 뿐만 아니라, 공화국이라고 부르는 것이 합당한 유일한 나라입니다. 다른 나라도 어디서나 자신을 공화국이라고 하고 자기 나라는 공공의 이익을 추구한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진정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할 뿐입니다. 반면에 유토피아에는 개인의 이익을 위한 일이 없으므로 모든 사람이 공공의 이익을 열심히 추구합니다. 하지만 여기서나 거기서나 사람들은 각자가 속한 나라의 체제에 따라 자신이 처한 형편과 처지에 맞추어 행동할 뿐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공화국이라 불리는 자기 나라가 아무리 잘살더라도, 개개인이 먹고살 것을 따로 챙겨놓지 않으면 영락없이 굶어죽기 십상이라고 믿습니다. 이 잔혹한 현실로 사람들은 나라와 국민, 즉 다른 사람보다는 자신을 우선적으로 챙겨야 한다고 부득불 생각합니다.


    반면에 유토피아에서는 모든 것이 공동소유이기 때문에, 공공의 창고가 채워져 있기만 한다면, 사람들은 자기가 쓸 것 중에서 뭐 하나라도 부족하면 어쩌나 걱정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넉넉하게 분배되므로 그 나라에는 가난한 자도 없고 거지도 없습니다. 아무도 사유재산이 없지만, 모든 사람이 부자입니다. 온갖 걱정과 염려에서 벗어나 즐겁고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보다 더 큰 부는 없기 때문입니다.


    유토피아 사람 중에서는 아무도 생계 문제 해결을 놓고 스스로 고민하지 않고, 돈 벌어 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내에게 끊임없이 바가지를 긁히는 일도 없습니다. 아들이 가난하게 살까 봐 걱정할 필요도 없고, 딸에게 해줘야 할 결혼 지참금을 염려하지도 않습니다. 도리어 그들은 자기는 물론이고 가족 전체의 생계와 행복이 확실하게 보장되어 있음을 확신하며 살아갑니다. 아내와 자녀, 손자, 증손자, 고손자는 말할 것도 없고, 귀족들이 그토록 원하는 것, 즉 모든 자손이 자자손손 아무 걱정 없이 풍요롭게 잘 살아가는 것 역시 확실하게 보장됨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나이 들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사람들도 일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똑같이 보장받습니다.


    유토피아에는 사유재산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돈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돈에 대한 탐욕도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사회문제가 제거되었고, 수많은 범죄가 근본적으로 뿌리 뽑혔습니다. 형벌은 예방 기능보다는 처벌 기능이 더 강해서, 아무리 형벌을 강화해도 사기, 절도, 강도, 싸움, 폭동, 분쟁, 반란, 살인, 반역, 독살 같은 온갖 범죄는 매일 발생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돈이 사라지자, 그런 온갖 범죄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돈이 사라지자마자 두려움, 염려, 걱정, 힘든 노동, 불면의 밤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또한, 오직 돈만 해결해줄 것처럼 보였던 가난이라는 문제도 돈이 사라지자 그 즉시 함께 사라졌습니다.


    유토피아 사람들은 그런 체제를 채택함으로써, 사람들이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줄 그런 국가 그리고 미래를 예측하는 인간의 능력으로 판단했을 때 영원히 지속할 수 있는 국가적인 토대를 마련한 것입니다.


    역사상으로 그토록 놀랍게 번영하고 안전해 보였던 수많은 나라를 와해하고 멸망하게 한 것은 단 한 가지 원인, 즉 내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토피아 사람들은 자기 나라에서 야심과 파벌과 그 밖의 거의 모든 다른 악이 발생할 근원을 원천적으로 뿌리 뽑았기 때문에 그 나라에서는 내분이 일어날 위험이 전무합니다.


    온 백성이 화합하여 일치단결하고 나라의 제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한, 이웃 나라 왕들이 아무리 그들이 미워하더라도 결코 그들의 국가 체제를 와해하거나 그들을 흔들어놓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과거에 이웃 나라 왕들이 그들을 미워하여 멸망하게 하고자 쳐들어온 적이 종종 있었지만, 그때마다 언제나 격퇴당해 물러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라파엘이 모든 이야기를 끝냈을 때, 나는 유토피아 사람 사이에서 시행된다고 말한 관습과 법과 제도 중에서 상당수가 너무나 터무니없어 보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쟁 수행 방식이나, 신에 관한 생각, 종교 생활을 비롯해 그 밖의 다른 관습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가 대단히 박식하고 견문과 식견이 아주 넓다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가 우리에게 들려준 모든 것에 다 동의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럼에도 유토피아 공화국에서 시행되는 것 중에서 아주 많은 것이 우리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도 시행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다. 그리고 나의 이런 바람이 하나의 희망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이루어졌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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