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피라미드사회
 
지은이 : 하승우
출판사 : 이상북스
출판일 : 2020년 11월




  • 이 책은 한국 사회를 ‘신분피라미드사회’라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런 사회에서는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큰 만큼 신분에 대한 복종심도 크고, 격차가 커지는 만큼 신분에 대한 집착도 강해진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일시적 조치가 아니라 격차를 메우면서 신분피라미드를 바꾸는 것이다. 단순히 신분을 순환시키는 것이 아니라 ‘능력주의’로 포장된 신분피라미드 자체를 무너뜨려야 한다. 


    신분피라미드사회


    민주화는 왜 신분피라미드를 무너뜨리지 못했나

    왜 신분인가: 세습되는 불평등

    한국의 신분피라미드는 출생지와 학벌, 직업이 촘촘하게 엮여 만들어지고, 그만큼 강력하다. 그리고 신분을 얘기하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등급’과 ‘서열’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계급이나 계층과 달리 신분은 가문이나 친족 같은 타고난 특징만이 아니라 지연이나 학연 같은 특징에서도 비롯되고, 그것이 위계질서로 등급화되어 현실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고 계급과 신분이 대립하거나 신분의 위계가 계급을 압도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삼성그룹의 이건희는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숙부이자 홍석현 중앙그룹 회장의 매형이고, 그 자식들은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선 사장이다. 이렇게 계급과 세습되는 신분이 서로 얽혀 있고, 계급의 변동이 신분질서를 해체하지 않고 함께 공고화되기도 한다.


    이미 현실이 된 영화 <설국열차>의 풍경

    2010년경에 이른바 ‘수저계급론’, 즉 부모의 능력에 따라 자식의 신분이 금ㆍ은ㆍ동ㆍ흙수저로 나뉜다는 주장이 등장한 것은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수저계급의 정의나 계급간 구분이 다소 자의적인 면은 있지만 한국 사회의 불평등이 심화되었을 뿐 아니라 세습되고 있음을 드러낸 현상이다.


    실제로 김낙년은 “한국에서의 부와 상속, 1970-2014”(<경제사학>, 2017)에서 고도성장기에는 청년층이 자산을 늘릴 수 있지만 고령화가 본격화되고 저성장이 장기화되는 추세에는 상속으로 인한 불평등이 심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낙년은 상속이나 증여가 전체 자산 형성에 기여한 비중(이전자산비중)이 1970-1980년대 20%였다가 2000년대에 42%를 넘어섰다고 지적한다. 이렇게 상속의 중요성이 커지는 만큼 신분질서는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다.


    이제 한국은 1%는 기득권은 넘볼 수 없는 상위층이 되었고, 상위 10%는 자기 몫 챙기기에 바빠 평등 따윈 나몰라라 내팽개쳤다. 나머지 사람들이 피라미드 맨 아래층을 채우며 남은 자원을 두고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치열하게 경쟁해도 그 위의 층으로 올라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영화 <설국열차>의 풍경이다.


    학벌과 능력주의에 포획된 민주화

    기회균등과 자기계발을 내건 교육은 신분피라미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숨기기에 좋은 장치다. 심각한 불평등과 차별이 존재해도 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를 교육이 만들기 때문이다. 교육받을 수 있는데 성공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개인의 탓이다. 1987년 이후의 민주화는 경제민주화만 이루지 못한 것이 아니라 교육의 방향전화도 이루지 못했다.


    여전히 강력한 학벌의 위세

    김상봉의 <학벌사회>(한길사, 2004)는 그 위계적인 학벌구조를 문제 삼았다. 김상봉은 “학벌차별이 한국 사회 특유의 사회적 불평등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계급론을 연구하는 사회학자들이 이 문제를 철저히 무시한 까닭은 주관적 또는 심리적 측면에서 볼 때 한국 사회학계에서 주도적으로 계급론을 연구해온 많은 학자들의 학벌이 너무 좋은 까닭에 자기 자신이 처해 있는 사회적 모순을 직시하기 어려웠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보다 본질적이고도 객관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그 까닭은 한국의 사회학자들이 존중하는 서양의 계급론 교과서에 학벌이라는 항목이 없기 때문이라 해야 할 것이다.”라고 지적한다. 물론 외국에도 명문대가 있고 학력에 따른 불평등이 존재하지만 학벌이라 불리지는 않는다.


    지금은 해외 명문대라는 크립토나이트 때문에 그 힘이 약해지기는 했지만 서울대의 힘은 여전히 강하다. <학벌사회>에 따르면,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1급 공무원 총원 255명 중 서울대 출신이 48.2%, 2003년 10대 기업 대표이사 142명 가운데 서울대 출신이 43.6%, 1990년 기준 중앙 방송 및 신문사 간부 477명 가운데 서울대 출신은 37%, 2002년 전국 대학교수 4만 7천 명 중 서울대 출신이 1/4이었다.


    2020년 4월 잡코리아가 시가총액 상위30대 기업의 2019년 임원 학력 데이터를 분석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대기업 임원을 가장 이 배출한 학교도 서울대로 전체의 10.8%를 차지했다. 고려대가 7.4%, 연세대가 6.8%를 차지했고, 해외 대학 출신 임원이 24.1%였다. 성별로는 대기업 임원 중 95.6%가 남성이었고 여성 임원은 전체의 4.4%에 그쳤다. 재계의 학벌은 SKY출신이 외국 대학 출신에게 밀리는 양상이지만 남성 집중현상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2016년 방송기자연합회가 KBSㆍMBCㆍSBSㆍYTN(지역사 제외) 기자 1287명의 출신학교를 전수조사한 결과 SKY 출신 비율이 60.1%였다. 한국은 중앙언론이 여론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기에 언론에서 학벌의 영향력은 여전히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이념은 어디로 갔을까

    민주화를 이끈 시민사회운동은 왜 이런 신분구조를 없애지 못했을까? 또는 없애지 않았을까? 이철승은 불평등은 세대와 연관시켜 분석한 <불평등의 세대>에서 민주화 세대라 불리는 1960년대 출생 세대가 자신들의 네트워크와 조직화의 경험, 이념, 운을 활용해 기득권을 강화했다고 비판한다. 마치 불평등을 해결할 것처럼 부르짖었지만 정치권력과 시장권력을 접수하고 그것을 활용해 자신들을 중심으로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을 강화시켰다고 말이다. 민주화 세대가 동아시아의 봉건적 위계구조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재구축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동아시아의 위계와 네트워크만으로 그들의 선택을 설명하는 건 뭔가 부족해 보인다. 혁명과 개혁을 부르짖었지만 너희도 결국 자기 이해관계를 챙기는 거였어, 라는 식으로 얘기를 정리할 수도 있다. 어쨌거나 그 시절에 학생운동을 한다는 건 자신의 이해관계를 버리는 희생이었고, 때로는 신체의 자유나 목숨까지 거는 위험한 승부이기도 했다. 그 이념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중산층에의 욕망 혹은 강요

    사회운동 내에서도 능력주의에 따른 동일시와 배제의 위계질서가 존재했음과 함께 이 책은 ‘중산층’이라는 키워드에도 주목하려 한다. 신광영은 <한국의 계급과 불평등>(을유문화사, 2004)에서 “중산층이라는 용어는 1960년대 중반 군사독재 체제하에서 만들어진 독특한 사회과학 용어였다”고 말한다.


    어떤 점에서는 중산층에의 욕망이 생겼다기보다 ‘중산층에로의 강요’가 있었다. 당시의 정치발전론이나 민주주의 이론들은 민주주의나 경제발전이 중산층의 존재와 그 층의 확장에 달렸다는 식의 이데올로기를 열심히 전파했다. ‘중산층’이라는 의식은 노동계급과의 분리의식을 낳았고, 노태우 정권이 범죄와의 전쟁을 내세우며 노동운동과 노동조합을 강도 높게 탄압하는 것을 무관심하게 바라보게 만들었다. 이를 증명하는 대표적인 사건이 1991년 5월 대학생 강경대의 죽음으로 촉발된 ‘분신정국’에 대한 시민들의 냉담한 반응이었다. 결국 사회경제적 위기가 심화되면 중간계층은 반동적으로 움직이기 쉽다.


    사상가 앙일 르페브르(Henri Lefebvre)는 <현대세계의 일상성>에서 중산층, 중간계급이라는 존재 자체가 체제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음을 주장한다. 그들의 실제 생활은 노동계급과 별로 다를 것이 없지만 “중간계급은 프롤레타리아에 대해 일종의 높은 신분, 우월한 권위, 요컨대 계급의식을 과시한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부르주아지에게 봉사한다.” 즉 중산층은 노동자계급에 대한 차별화였고, 이것은 민주화 이후에도 노동에 대한 무시와 차별이 지속되게 만들었다.


    경제성장을 위해서라면, 이익을 위해서라면 폭력을 묵인하고, 그러면서도 불편함은 피하려는 중산층의 의식을 반영했다. 또한 중산층은 기득권층과 마찬가지로 농민, 노동자, 빈민 같은 자기 아래 계층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이 중간층은 우리가 주도권을 쥐면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오만함, 우리가 아래층 사람들을 잘 돌봐주면 된다는 선민의식과 시혜의식을 가지고 신분피라미드의 존재를 인정했다. 학벌도 사회에서 인정되는 능력도 없는 맨 아래층 사람들의 처지는 점점 더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공간의 신분화 - 농촌과 지방은 왜 소멸의 대상인가

    열외국민이 된 농민

    한국의 농업은 경제성장을 위한 희생양이었다. 2018년 12월 12일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들이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의원실을 점거했을 때의 구호는 “밥 한 공기 300원, 쌀 목표가격 24만 원 쟁취”였다. 1996년의 쌀 한 가마 가격이 평균 13만 6713원이었으니 다른 물가상승률을 따지면 쌀값은 오히려 내려간 셈이다. 생각해보니 식당의 밥값은 올랐어도 공기밥 가격은 거의 오르지 않았다. 무슨 비결이 있기에 쌀값은 이렇게 싼 걸까?


    경제성장을 위한 저임금, 저곡가 정책

    쌀 가격이 낮은 이유는 쌀 수입과 쌀 소비량의 빠른 감소 탓도 있지만, 기본적로 정부의 정책 탓이 크다. 한국 정보는 경제성장을 위해 ‘저임금, 저곡가’ 정책을 고수해왔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은 중화학공업 중심의 수출전략을 취했고, 이를 위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제조업에 투입될 노동자와 그 노동자들이 낮은 임금으로도 구매할 수 있는 농산물. 이 두 조건은 농촌의 붕괴로만 가능했다. 농립축산식품부의 통계에 따르면, 1970년 전체 인구의 44.7%를 차지했던 1442만 명의 농가인구는 2019년 224만 명 (전체 인구의 4.3%)으로 빠르게 줄어들었다. 1970년에서 2000년, 30년 사이에 농가 인구는 1039만 명이 줄었고, 이들은 도시로 유입되었다. 산업화를 위해 한국의 농촌은 희생되었다.


    박현제는 <한국경제구조론>에서 이 과정을 좀 더 세밀하게 분석하는데, 한국 자본주의는 농업에 두 가지 상호 모순되는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한편으로는 상품경제가 농업에 침투해 농민층을 와해하고 분화를 촉진했다. 농산물이 상품화되고 농업용 장비가 늘어나며 농업은 상품경제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그 속도와 규모를 맞추지 못하는 농민들은 도시로 나가 산업노동자가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가 농산물의 가격을 낮게 묶어두면서 농민은 부를 축적하지 못하고 작은 규모의 농가로만 남게 되었다. 근근이 먹고 사는 가족 단위의 농가가 유지되며 한국 농업은 발전의 기회를 잃어버렸고, 농업은 더욱더 고된 일이 되었다. 박현채는 이런 모순된 영향이 이농 현상을 자극하는 한편 농촌에 남은 농민들의 생활을 더욱 열악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한다.


    박현채는 이를 국민경제의 이중성과 불균형이라 불렀다. 농업과 산업, 도시와 농촌이 균형을 맞추며 함께 성장해야 하는데, 한국의 경제는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이런 이중성과 불균형을 자극한 것은 다른 아닌 원조경제와 해방 후의 일제 자산 외국 자본 등을 통해 특정 산업 부문을 육성해온 ‘관료자본’이다. 특히 박현채는 이런 관료자본이 민족자본을 형성하지 않고 경제적 잉여를 해외로 내보내는 매판적 성격을 가졌으며 독과점 기업을 육성했다고 비판했다.


    농촌 위에 군림하는 도시

    아마시카 유스케는 <지방회생>(이상북스, 2019)에서 지방소멸론이란 인구가 줄어드는 불안감(인구감소 쇼크!)을 이용해 중앙부처가 만들어낸 신자유주의 전략이라고 비판한다. 일본 정부는 개발로 경기를 부흥하고, 인구가 줄어드는 시정촌을 합병하고, 선택과 집중으로 공공투자를 효율화하려는 의도를 가졌다. 한마디로 중앙정부가 자기 입맛대로 살릴 지역과 없앨 지역을 구분하고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지역의 불안감을 이용했다는 이야기다. 목표가 마을 만들기, 지방창생이라고 하지만 정확히는 ‘돈을 벌어들이는 마을 만들기’였고, 돈벌이로 인구감소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유스케가 보기에 인구감소의 원인은 농촌이 아니라 바로 도시에 있다. 원래 인구가 많고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일수록 출산율이 낮아지기 때문에, 지나친 도시화가 인구감소를 초래했다고 본다. 특히 한국의 수도권 집중과 비슷한 도쿄 중심의 ‘도쿄일극집중’이 인구감소의 주요 원인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도시가 아닌 마을의 정의가 실현되어 ‘다양성의 공생’이 보장되고, 행정기관의 이전이 아니라 국가에 집중된 권한이 지역으로 내려와야 한다고 유스케는 주장한다. 또 일자리 만들기보다 노동개혁이 우선되어야 인구를 유지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당분간 인구감소는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인구가 감소해도 지속될 수 있는 사회를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점점 심화되는 도시와 농촌의 격차

    그렇다면 일본을 따라가고 있는 한국의 상황은 어떤가? 경제가 아닌 사람, 수도권이 아닌 지역, 일자리가 아닌 노동 중심의 대안이 마련되고 있나? 안전한 나라를 표방하며 집권한 정부가 화학물질이나 기술 관련 규제를 풀고 있는 모순된 현실은 부정적인 답을 내리게 한다.


    외려 한국 현실에서는 도시와 농촌이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통계청의 <농가경제통계>에 따르면, 1968년이 농가 가구당 평균소득은 17만 8959원이고 도시근로자 가구당 평균소득은 28만 6080이었다. 농가의 소득이 도시의 소득보다 훨씬 낮았지만 이후 조금씩 농가소득은 증가한다. 그러나 1983년 119%로 정점에 달한 후 감소 추세가 시작되어 1987년 100% 밑으로 떨어졌고 2000년에는 84%, 2008년에는 65%에 불과하게 되었다.


    이것은 2980년대 이후 농가소득이 증가하지 않고 고의 제자리에 머물 때 도시근로자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990년 약 94만 3천 원에서 2000년 약 236만 6천 원, 2010년 약 403만 3천 원, 2018년 약 540만 1천 원으로 증가한 탓이 크다.


    농업의 쇠퇴와 더불어 농촌의 인구도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이것은 소득만이 아니라 생활 근거지로서 농촌 기반도 계속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자리만이 아니라 교육, 의료, 문화, 교육 등 모든 면에서 농촌과 도시의 격차가 커지고 있다.


    그런데 어찌 보면 이런 격차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농촌의 인구가 도시보다 줄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는 문화, 교통, 의료 모두 시장수요가 이윤을 맞춰주어야 가능한 서비스다. 공공성의 관점에서 보면 달라질 수 있지만 시장에 맡기면 인구가 적은 농촌에서는 이런 서비스들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시간의 신분화 유연적 전문화는 누구의 삶을 밀어냈나

    우리 삶을 불안하게 하는 시간의 유연성

    전통적인 노동 개념으로 보면 특수형태고용노동자나 플랫폼 노동자와 같은 유연한 노동력의 증가는 정규직 일자리를 줄일 뿐 아니라 파업과 같은 노동자들의 집단행동을 가로막을 수 있다. 정규직 일자리의 공백을 임시직이 메우기 때문이다. 언제든 일하기 위해 대기해야 하는 사람도, 이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길까 전전긍긍해야 하는 사람도 모두 힘들다. 그런데도 왜 노동자들은 이 노동의 유연화를 받아들였을까?


    노동자들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라 강요를 받았다. 국가가 세계화를 위한 정책으로 강요하면서 유연적 전문화와 탄력근로제는 피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으로 받아들여졌고, 이 과정에서 자본을 가진 사람들은 엄청난 이득을 얻었고 노동자들은 같은 계급 내에서 서열과 차별을 경험하게 되었다.


    고용신분사회의 출현

    경제학자 모리오카 고지스는 <고용신분사회>(갈라파고스)에서 같은 계급 내에서도 발생하는 신분 격차에 관해 이야기한다. 신분의 격차는 정규직 안에서도 발생하는데 “남성은 종합직이 많은 데 비해 여성은 일반직이 많고 직무, 근무지, 노동시간 등이 한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남성에 비해 신입 연봉이 적고 승급 곡선이 완만해 승격과 승진의 기회가 적다.


    모리오카 고지는 일본에서 고용신분사회가 형성되기 시작한 시기를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반으로 잡는다. 그 당시부터 시간제노동이 증가했고 주로 여성들이 그 노동을 담당했다. 고지는 “‘회사형 인간’이라는 용어가 정착한 시기도 ‘정사원’과 마찬가지로 1980년 전후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정사원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삶의 기준이 회사가 되어야 했다. 그러니 회사형 인간은 회사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고용에 대한 불안정이 강요한 충성이었다.


    누가 나의 쓸모를 정하나

    ‘열정페이’라는 말이 있다. 인턴, 실습생, 수습 등으로 불리는 노동자들이 정당한 임금을 받지 못하면서 자신이 원해서 하는 일이니 열정을 바치라는 요구에 꼼짝 없이 착취당하는 처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열정노동 강요의 시대

    이미 10년 전에 한윤형ㆍ최태섭ㆍ김정근은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웅진지식하우스, 2011)라는 책에서 이 문제를 다뤘다. “열정은 고용, 사후평가, 자기계발의 모든 측면에서 주요한 고려 대상이 되었다. 이 열정의 시대에 우리는 ‘자발성의 의무’ ‘열정의 제도화’ ‘노동자의 경영자화’ 같은 형용모순이 제도로 정립되고, 심지어 도덕으로 선포되는 광경을 보고 있다”고 고발한다. “나는 누군가의 명령이나 받으며 시키는 일을 하는 그런 수동적이고 나태한 노동자가 아니다. 능력을 계발하고, 인맥을 형성하고, 몸값을 올리고, 비전을 갖고, 성공과 행복을 향해 달려가는 능동적인 존재이다.” 이런 주문을 외우게 하는 캠페인들이 노동자를 1인 기업가로 만들고 끊임없는 자기계발을 강요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너나없이 외치는 ‘청년창업’도 비슷하다. IMF사태 이후 불었던 ‘벤처열풍’이 엄청난 재정 낭비와 대규모 신용불량자 양산으로 끝났음에도, 이 사회는 청년들에게 창업을 권한다. 그리고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은 “우수한 제조 창업 아이템 및 4차 산업분야 등 성장 가능성이 높은 초기 창업자를 발굴하여, 창업 全 단계를 패키지 방식으로 일괄 지원하여 성공 창업기업으로 육성”한다는 ‘청년창업사관학교’를 운영하며 1천억 원에 가까운 예산을 쓰고 있다. 전 국민의 1인기업화라도 할 생각일까?


    물론 다음이나 네이버, 카카오처럼 성공한 벤처신화도 있다. 즉 소수의 성공한 IT산업은 실력도 있었지만 운이 좋았다는 이야기다. 이미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영세 자영업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소수의 사례를 청년들에게 강요하며 실패의 책임을 개인에게 묻는 것은 부당하다.


    상황이 이러한데 소위 좋은 일자리를 누리는 삶은 행복할까? 좋은 곳에 취직을 해도 그곳에서 살아남으려면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해야 한다. 지금의 행복이 아니라 미래의 행복을 위해 끊임없이 현재를 유예시켜야 하는 삶,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자기 시간을 넉넉히 채워놓은 소수의 기득권층을 제외하면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시민운동마저 능력주의에 포획된 이유는 무엇인가

    수도권으로 집중된 구조를 바꾸지 못한 이유

    시민운동 내부에서도 작동한 능력주의

    2006년에 <시민의신문>이 발간한 <한국민간단체총람>에 따르면, 1997년 약 3900개였던 시민단체가 2006년 약 2만 3500개로 늘어났다. 그런데 서울과 수도권에 위치한 시민단체가 전체의 54.7%, 서울에 위치한 시민단체가 37%나 된다.


    수도권으로의 초집중 현상이 해결되지 않듯 시민운동의 중앙집중 현상도 바뀌지 않았다. 이슈파이팅 중심의 시민운동은 여전히 기자회견과 성명서 발표, 토론회를 주된 활동수단으로 삼았고, 행사가 언론을 타려면 언론사들이 위치한 서울에서 열려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호는 <풀뿌리운동, 새로운 복원>(포도밭출판사, 2017)에서 “90년대의 시민운동은 주로 자신의 주장을 성명서 같은 방식으로 표현했고, 이를 언론에서 자주 다뤄줌으로써 그 존재감이 컸었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언론에서도 시민운동의 주장을 그리 잘 다뤄주지 않았다. 시민들과의 소통수단이 막힌 것이다. 이는 언론에 기댄 성명서 중심의 운동이 지닌 한계를 여실히 보여줬다”고 평가한다.


    문제의 원인이 밝혀지고 있음에도 시민운동이 방향전환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소수의 능력 있는 대표나 사무처장들이 단체를 이끄는 시민단체의 내부구조라고 생각한다. 총회가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기구라고 하지만 사실상 사무국이 제출한 1년 계획을 승인할 뿐이고, 운영위원들이 단체의 실무를 맡지 않으니 사무국의 판단이 중요하다. 그리고 실무를 능력 있게 추진할 수 있는 대표와 사무처장, 그들이 가진 사회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이 언론이나 정치, 기업과의 연결고리를 만든다. 능력주의는 시민운동 내부에서도 작동한 셈이다. 이렇게 움직이다보니 모든 자원이 집중된 수도권을 벗어날 수 없고 중앙집중식 운동방식을 포기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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