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멸의 인류사
 
지은이 : 사라시나 이사오(역:이경덕)
출판사 : 부키
출판일 : 2020년 06월




  • 인간은 지구의 거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 불을 사용하고, 언어로 소통하고, 복잡한 기계를 만드는 것은 인간이 유일하다. 하지만 인간이 처음부터 특별했던 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700만 년 전에 등장한 인류의 조상은 약한 존재였다. 강한 신체도, 날카로운 이빨도, 몸을 보호해 줄 털도 없는 벌거숭이였다. 그렇지만 그들은 살아남았고 현재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인류가 되었다. 분자고생물학자인 사라시나 이사오는 인류가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를 유약함에서 찾는다. 우리 조상은 약했지만, 아니 약했기 때문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약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이 모순적인 주장의 근거는 무엇일까? 인류는 어떻게 험난한 진화의 흐름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절멸의 인류사


    인류 진화의 수수께끼

    결점으로 가득한 진화

    인류와 침팬지의 차이

    인류와 침팬지류는 약 700만 년 전에 갈라져 서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 700만 년 동안 인류는 다양한 특징을 진화시켰고 현재의 사람이 되었다. 예를 들어, 인류 진화의 후반부인 약 250만 년 전부터 우리의 뇌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침팬지류와 갈라진 이후 인류 계통에서 가장 먼저 진화한 특징은 무엇일까? 화석 기록을 토대로 보면 최초로 진화한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직립 이족 보행과 송곳니 크기의 축소가 그것이다. 이는 매우 중요한 특징이다. 이 두 가지 특징이 인류와 침팬지류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를 만들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침팬지류에서 갈라져 인류가 된 이유를 위의 두 가지 특징에서 찾을 수 있다.


    먼저 직립 이족 보행부터 살펴보자. ‘직립해서 두 발로 걷기’와 ‘두 발로 걷기’는 다르다. 하지만 흔히들 같은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예컨대 닭이나 캥거루도 두 발로 걷는다. 하지만 몸통을 곧추세워 걷고 걸음을 멈추었을 때 머리가 다리와 일직선상에 오는 동물은 사람밖에 없다.


    직립 이족 보행은 어쩌면 그 불편함 때문에 생존에 불리한 특징일지도 모른다. 만약 유리한 특징이었다면 다른 여러 동물 계통에서도 직립 이족 보행의 진화가 일어났을 것이다. 하늘을 나는 능력은 곤충, 익룡, 새, 박쥐 등 여러 계통에서 진화했다. 그런데 직립 이족 보행은 아득할 정도로 기나긴 진화의 역사를 모두 살펴보더라도 인류 이외의 종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좀 이상한 일이지만 인류를 제외하고는 직립해서 두 발로 걷는 동물은 없다.


    직립 이족 보행의 가장 큰 단점

    그런데 직립 이족 보행과 초원 생활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즉, 직립 이족 보행에는 어떤 장점이 있었던 걸까?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햇볕이 닿는 면적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여름 바다에서 해수욕을 하면 어깨나 코가 빨갛게 타게 된다. 그 부위가 어깨나 코 정도인 것은 우리의 몸이 직립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엎드린 자세로 있다고 가정하면 등 전체가 빨갛게 타서 곤란해질 것이다.


    우리 조상이 삼림에 살았다면 나무 그늘에서 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초원에 살게 되면서 그럴 수 없었다. 아프리카의 강렬한 햇볕은 뜨겁게 내리다. 조금이라도 더위를 피하려면 직립해서 두 발로 걸으며 햇볕을 받는 면적을 줄이는 것이 좋다. 적어도 네 발로 걸으며 넓은 등 전체에 햇볕을 받는 것보다는 낫다.


    직립 이족 보행의 가장 큰 단점은 단거리 달리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즉, 달리는 속도가 늦다. 만약 산길을 걷고 있는데 큰곰이 나타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초원을 걷고 있을 때 표범과 마주친다면? ‘달려서 도망쳐’라는 조언은 적절하지 않다. 왜냐하면 도망쳐 봤자 곧 붙잡힐 것이기 때문이다. 달리는 속도가 느린 우리는 애초에 달려서 도망치는 걸 포기하게 된다. 육식 동물 중에서 달리는 속도가 느린 편에 속한다는 사자도 올림픽 100미터 달리기에서 금메달을 딴 우사인 볼트보다 빠르게 달린다. 하물며 뚱뚱한 하마조차 우사인 볼트와 비슷한 속도로 달릴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지금까지 다른 동물이 직립해서 두 발로 걷는 쪽으로 진화하지 않은 것이 이해된다. 일어서서 아무리 멀리 볼 수 있다 해도 일단 육식 동물에게 발견되면 어차피 잡히고 만다. 아무리 빨리 도망쳐도 붙잡혀 잡아먹히게 된다. 그러니 직립 이족 보행으로 진화할 이유가 없다. 앞서 언급한 파타스원숭이는 가끔 두 발로 서서 육식 동물의 유무를 확인한다. 하지만 도망칠 때는 네 발로 재빠르게 달린다.


    인류는 평화주의자

    말에게 물려도 죽지 않는다

    언젠가 승마 동아리 활동을 하는 지인이 말에게 물렸다. 그의 등에는 말의 커다란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몸통을 콱 물렸던 모양이다. 나는 잠깐 동안 말의 그 멋진 이빨 자국을 홀린 듯 바라본 기억이 난다.


    사자는 말보다 작은 동물이다. 그렇지만 사자에게 물리면 큰일이 난다. 피부가 찢어지고 피를 흘리다가 죽음에 이른다. 작은 개나 고양이에게만 물려도 큰 문제가 발생한다. 엄니 때문이다. 엄니의 유무에 따라 공격력은 큰 차이가 난다.


    종종 살인 사건이 발생하는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게 된다. 수사를 맡은 경찰은 범행에 사용되었을 흉기를 찾는다.(실제 수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텔레비전 안에서는 그렇다.) 왜 흉기를 찾을까? 그것은 살인을 위해서는 대개 흉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몸에는 살인을 위한 흉기가 없다. 만약 엄니가 있다면 흉기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는 엄니라는 흉기를 버렸다.


    약 700만 년 전에 침팬지류와 인류는 분리되었고 서로 다른 진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침팬지류는 흉기를 계속 갖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인류는 흉기를 버렸을까? 그것은 인류가 서로 위협하거나 죽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물론 다툼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온순한 존재가 된 것만은 틀림없다.


    인류의 송곳니는 왜 작아진 걸까

    공정하게 반론도 들여다보자. 인류의 송곳니가 작아진 이유가 단단한 것을 먹기 위해서라는 의견도 있다. 단단한 것을 깨서 먹기 위해서는 가로 방향으로 씹는 운동이 필요하다. 가로 방향으로 이를 움직일 때 송곳니가 다른 치아보다 튀어나와 있으면 방해가 된다. 그래서 송곳니가 작아졌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 정도의 초기 인류의 화석을 봐도 가로 방향으로 씹는 운동이 발달했던 흔적이 없다. 위턱과 아래턱의 송곳니를 비교하는 것도 이 주장에 대한 반론이 된다. 가로 방향의 씹는 운동에 방해가 된다면 위턱의 송곳니도 아래턱의 송곳니와 마찬가지로 작아져야 한다. 한편 무기로 사용할 때는 아래턱보다 위턱의 송곳니가 더 필요하다. 따라서 수컷들 간 싸움의 양상이 온화해진 것이 원인이 되어 송곳니가 작아졌다고 한다면 먼저 위턱의 송곳니가 작아져야 한다. 실제로 초기 인류의 송곳니를 조사해 보면 위턱의 송곳니가 먼저 작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송곳니가 작아진 원인은 식성의 변화도 얼마간 관계가 있겠지만 수컷끼리의 싸움이 잦아들었기 때문이라 생각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멸종한 인류들

    잡아먹힌 만큼 낳으면 된다

    어떻게 몸을 지켰을까

    잠시 복습을 해 보자. 직립 이족 보행을 하면 빨리 달릴 수 없다. 머리가 높은 곳에 있어서 멀리 볼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쪽에서 멀리 볼 수 있다는 것은 반대로 멀리서 이쪽을 볼 수 있음을 뜻한다. 쉽게 눈에 띄는 것이다. 육식 동물에게 발견되기도 쉽다. 그리고 일단 발견되면 끝이다. 달려서 도망친다 해도 곧 붙잡혀 잡아먹히고 만다. 직립해서 두 발로 걷는다는 것은 불편한 것이다. 따라서 초원에는 수많은 동물들이 살지만 직립 이족 보행으로 진화한 동물은 하나도 없다.


    개코원숭이가 자기의 몸을 지키는 방법은 크게 네 가지이다. 하나는 몸집을 키우는 것이다. 개코원숭이는 대형 유인원 다음으로 큰 영장류로 체중이 20~24킬로그램 정도 나간다. 몸집을 키우는 것은 그 자체로 방어가 된다. 사자는 어른 코끼리를 공격하지 않는다. 이 점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게도 적용된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개코원숭이보다 조금 더 컸다.


    두 번째는 빨리 달리는 것이다. 개코원숭이의 가장 뛰어난 방어 능력은 달리기일지도 모르겠다. 개코원숭이는 영장류 가운데 가장 빠르게 달릴 수 있다. 이 점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게 적용할 수 없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에서 호모속이 되면 직립 이족 보행이 한 단계 더 능숙해진다. 그 호모속에 속한 우리 인간조차 개코원숭이보다 달리기가 느리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개코원숭이보다 훨씬 느렸던 것은 확실하다.


    세 번째는 이빨(큰 송곳니)이다. 표범은 개코원숭이의 포식자이지만 낮에는 개코원숭이를 공격하지 않는다. 개코원숭이가 이빨을 사용해서 반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표범은 개코원숭이가 자는 밤에 공격한다. 이 점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게 적용할 수 없다. 송곳니가 작아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네 번째는 무리를 이루는 것이다. 집단의 크기가 커지면 포식자에게 쉽게 노출되지만 자기가 붙잡힐 가능성이 줄어든다. 포식자는 개코원숭이를 한 번에 몇 마리씩 먹지 못한다. 또 하나하나는 약할지라도 무리를 이루어 대항하면 육식 동물을 쫓아낼 수도 있다. 이 점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게 적용할 수 있다. 인류의 조상은 인류가 되기 전부터 음식을 분배한 듯이 보이고 인류가 되면서 고도로 협력적인 사회관계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앞에서도 지적했다. 또 아르디피테쿠스와 비교하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뇌의 용량이 조금 늘어났다. 따라서 한층 고도의 협력적 사회 활동이 가능해졌을지도 모른다.


    왜 인간은 아이를 많이 낳는가

    앞에서 살펴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의 최초 화석인 타웅 아이의 두개골에는 작은 구멍 여러 개나 있었다. 독수리의 공격으로 추정되는 이 흔적을 통해 타웅 아이는 독수리에게 습격당한 희생자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실제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육식 동물에게 상당히 많이 잡아 먹힌 듯하다. 그렇지만 잡아먹힌다고 멸종되는 것은 아니다. 잡아먹혀 줄어든 만큼 아이를 낳으면 된다.

    현생 침팬지의 형제자매에게는 연년생이 없다. 침팬지의 수유 기간은 4~5년으로, 그 기간에는 아이를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매년 아이를 낳는 것은 무리다. 침팬지는 암컷이 홀로 아이를 양육한다. 아이가 젖을 뗄 때까지 아이를 돌봐 줘야 해서 아이 하나가 한계일 것이다. 암컷이 죽었을 때 할머니 등 혈연관계가 있는 개체가 양육한다는 보고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한편 인간의 수유 기간은 2~3년이다. 수유 기간이 짧을 뿐만 아니라 수유하고 있을 때도 다음 아이를 낳을 수 있다. 인간은 유인원과 달라서 출산하고 몇 개월이 지나면 다시 임신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따라서 연년생도 드물지 않다. 인간은 16세부터 40세까지의 기간에 아이를 집중해서 낳을 수가 있다. 프랑스의 왕비였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는 아이를 열여섯 명이나 낳은 것으로 유명한데, 한국이나 일본에서도 최근까지 형제자매의 수가 많은 것이 드물지 않았다. 참고로 내 할머니는 형제자매가 열한 명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아이가 많으면 어머니 혼자서 돌보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게다가 대형 유인원은 수유 기간이 끝나면 비교적 빨리 독립을 하지만 인간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수유 기간이 끝난 뒤에도 독립할 때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고 그 기간 동안 양육을 필요로 한다. 어머니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인간은 공동으로 양육을 한다. 아버지는 물론이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 외의 친척이 양육에 협조하는 일이 자주 있고 혈연관계가 없는 개체가 양육에 협조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보육원 같은 활동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인류가 아주 예전부터 해 온 당연한 것이었다.


    인류에게 일어난 기적

    석기를 처음으로 만든 인류

    에티오피아에서 약 250만 년 전 소와 말의 뼈 몇 개가 발견되었다. 그 뼈에는 예리한 석기에 의한 상처 자국이 나 있었다. 그곳에 살고 있던 인류가 석기를 이용해 대형 동물의 사체를 해체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가까운 지층에서 인류의 화석이 발견되었다. 그들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가르히라고 명명되었다. 머리뼈와 팔다리뼈가 다른 장소에서 발견되었기에 다른 종일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가까운 비슷한 지층에서 발굴되었기 때문에 일단 머리뼈와 팔다리뼈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가르히의 것이라 해석되었다. 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가르히(화석은 약 270만~250만 년 전)가 이들 석기를 사용한 인류일지도 모른다.


    사실 석기를 만든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나뭇가지나 돌을 도구로 사용하는 침팬지도 석기는 만들지 못한다. 컴퓨터를 이용해서 인간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정도지만, 석기는 아무리 알려 줘도 만들지 못했다. 그러나 동아프리카에 있었던 초기 호모속 사이에서는 석기 제작이 곧바로 퍼져 나갔다. 초기의 호모속은 석기 제작에 필요한 인지 능력과 뛰어난 손재주를 갖고 있었던 듯 보인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단계에서 고도로 협력적인 사회관계를 만든 것이 인지 능력을 발달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동아프리카에 살면서 같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에서 진화한 것으로 보이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는 석기를 만들 줄 몰랐다. 끝을 날카롭게 만든 골기(骨器)나 뿌리와 나무줄기 등을 파내는 도구를 사용한 듯하지만, 석기는 만들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고기를 거의 먹지 않았기 때문에 만들 능력이 있어도 만들지 않았을 수도 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는 약 230만~130만 년 전에 살았는데 뇌 용량은 500cc 정도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가르히보다 조금 컸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보아 뇌가 크다고 석기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아닌 듯하다.


    직립 보행의 숨겨진 이점

    호모 에렉투스는 어떻게 해서 키가 큰 걸까? 그것은 아마 먼 거리를 걷기 위해 다리가 길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루시와 투르카나 보이를 비교하면 서로 다른 다리의 길이가 확연하게 눈에 들어온다.


    열대 우림에 사는 침팬지라면 열매나 잎을 찾아내기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초원이나 숲이 듬성듬성한 소림에서 먹을 것을 찾아야 했던 인간은 먼 거리를 걸어야 했다. 먹을 것이 넓은 범위에 흩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기를 먹기 위해서는 동물의 사체를 찾아야 했다. 사체는 쉽게 찾아내기 힘들었기에 호모 에렉투스는 점점 더 먼 거리를 걸어야만 했다. 참고로 현대의 수렵 채집민은 하루에 15킬로미터 정도를 걷는다는 보고가 있다. 의외로 적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건강을 위해 걷기나 뛰기를 전혀 하지 않지만, 이런저런 볼일을 보다 보면 결국 하루에 10킬로미터 정도를 걷고 있다. 그러나 포장된 도로를 걷는 것과 자연의 거친 땅을 걷는 것은 전혀 다르다.


    그리고 호모 에렉투스의 시대에 기적이 일어났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직립 이족 보행은 빨리 달릴 수 없다는 치명적인 결점이 있었다. 그 때문에 인류 이전에는 지구상에서 직립해서 두 발로 걷기로 진화한 생물은 없다. 그러나 손으로 물건을 옮길 수 있다는 직립 이족 보행의 최초의 이점이 일부일처에 가까운 사회와 결합하면서 우연히 초기 인류의 진화에 포함되었다. 그것은 지구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그로부터 450만 년이 지나고 인류는 석기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고기를 빈번하게 먹게 되었다. 그러자 숨겨져 있었던 직립 이족 보행의 이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거리 달리기에는 불리하지만, 장거리 걷기에는 유리하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서 인간과 침팬지가 걷는 동안 어느 정도 산소를 사용하는지를 측정한 연구가 있다. 호기성 호흡을 통해 에너지를 만들 때는 산소를 소비한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산소가 사용되는지 조사하면 에너지 소비량을 측정할 수 있다. 그 결과 인간의 직립 이족 보행은 침팬지의 네발 걸음의 4분의 1밖에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졌다. 다만 이런 연구는 활용하는 개체에 따라 결과에 큰 차이를 드러내기 때문에 조금 설득력이 떨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직감적으로 직립 이족 보행의 효율이 뛰어나다는 것은 마라톤 등을 보면 분명해진다. 침팬지나 고릴라가 마라톤을 완주하는 것은 무리다.


    직립 이족 보행의 뛰어난 효율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에도 어느 정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삼림보다 음식물이 적은 소림이나 초원에서는 뭔가를 먹기 위해 먼 거리를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모 에렉투스가 직립 이족 보행을 통해 받은 혜택은 엄청났다. 고기를 찾아서 걷는 거리가 늘어난 것도 있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아마 호모 에렉투스는 처음으로 달린 인류였을 것이다.


    만약 달릴 수 있었다면 손에 넣을 수 있는 고기의 양이 증가했을 것이다. 독수리가 하늘을 선회하고 있으면 그 아래에 죽은 (또는 죽어 가는) 동물이 있을 것이다. 호모 에렉투스는 그곳이 멀어도 달려갈 수 있었다. 그렇다면 때로는 하이에나보다 먼저 도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고기를 손에 넣은 다음에도 직립 이족 보행의 이점을 활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고기를 손에 들고 달려서 돌아오면 된다. 그리고 여자와 아이에게 분배하면 된다.



    호모 사피엔스는 현재 진행 중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하다

    30만 년 전의 화석은 호모 사피엔스인가

    아프리카를 떠나 유럽에 정착한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의 일부에서 네안데르탈인이 진화했다. 한편 아프리카에 머물렀던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또는 그와 가까운 종)의 일부는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DNA 분석에 따르면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이 갈라진 것은 약 40만 년 전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 시대에는 아직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이 없었다. 40만 년 전이라는 연대는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중에서 집단이 분리된 때를 표기한 것이다. 즉, 유럽으로 향한 집단과 아프리카에 머문 집단이 갈라진 시기를 뜻하는 것이다.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한 것은 그로부터 10만 년이 더 지난 뒤의 일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이마의 모양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다른 인류의 이마는 수평에 가까운데 호모 사피엔스의 이마는 튀어나와 직각에 가깝다. ‘이마’가 있다는 게 우리의 특징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고도의 사고를 담당하는 대뇌 전두엽의 크기가 커진 덕분이다. (다만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전두엽의 크기는 거의 비슷하다.) 안와상 융기가 낮아져서 사라진 것도 또 다른 특징이다. 여기에 턱이 작아지고 안면이 뒤로 들어가며 상대적으로 턱의 끝이 돌출되었다. 즉, 아래턱이 발달한 것도 우리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네안데르탈인과 결별하다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제기되었다. 예를 들면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에 의해 대부분 살해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호모 사피엔스의 턱뼈와 석기에 의해 상처가 있는 어린 네안데르탈인의 턱뼈가 프랑스의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아마 네안데르탈인 아이는 살해되어 잡아먹혔을 것이다. 또 이라크의 샤니다르 유적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의 갈비뼈에는 치명적인 상처가 있었고 그것이 사망의 원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분석 결과 호모 사피엔스가 사용했던 던지는 창에 의한 상처로 결론이 났다.


    가장 인기 있는 주장은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보다 머리가 좋아서 혹독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머리가 좋으면 사냥의 기술 등에서도 호모 사피엔스가 뛰어났을 것이다.


    네안데르탈인도 수렵 기술이 뛰어났다. 사냥에 창을 사용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처음으로 석기를 나무 자루와 묶어서 창을 만든 것은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였을지 모르지만, 일상적으로 창을 사용하게 된 것은 네안데르탈인이 처음이었다.


    야생 당나귀와 같은 큰 동물을 사냥할 때 창은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창을 사용하려면 사냥감에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찌르는 창으로 사용할 때는 물론이고 던지는 창으로 사용할 때에도 10미터 이내로 접근하지 않으면 상처를 입히기 힘들다. 실제로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에는 큰 상처를 입은 것이 꽤 많다. 네안데르탈인의 사냥은 위험한 것이었다.


    한편 호모 사피엔스는 창을 멀리까지 날릴 수 있는 투창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투창기 자체는 아무리 멀리 거슬러 올라가도 약 2만 3000년 전의 것 외에 출토되지 않는 데 그것은 투창기가 뼈 등으로 만들어진 이유로 석기보다 남아 있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의 끝에 달린 석기에서 투창기를 사용했는지 아닌지를 추정하는 연구를 했다. 멀리까지 던지기 위해서 창끝을 작게 만드는 등 석기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약 8만~7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투창기가 사용되기 시작했고 유럽으로 향한 호모 사피엔스는 처음부터 투창기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밝혀졌다.


    투창기를 사용하면 찌르는 창이나 던지는 창으로는 사냥할 수 없는 새와 같은 동물도 사냥할 수 있다. 따라서 호모 사피엔스는 음식을 손에 넣는 것에서도 네안데르탈인보다 훨씬 유리했을 것이다.


    창조성만으로는 문화를 발전시킬 수 없다

    이러한 기술적인 차이는 석기에서도 발견된다. 이것은 호모 사피엔스의 높은 창조성을 보여 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뛰어난 창조성만으로는 문화를 확산시킬 수 없다.


    학습은 인류 이외의 동물에서도 가능하다. 쥐나 비둘기도 시행착오를 통해서 학습한다. 침팬지나 칼레도니아까마귀는 시행착오 없이도 몇 개의 막대기를 이용해서 음식물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게다가 침팬지와 칼레도니아까마귀는 나뭇가지를 가공해서 도구를 만들 줄도 안다. 즉, 침팬지와 칼레도니아까마귀는 통찰을 통해 학습하는 것이다. 그리고 네안데르탈인은 틀림없이 침팬지나 칼레도니아까마귀보다 훨씬 뛰어난 인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약 4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만든 석기나 투창기 정도라면 네안데르탈인 중에서도 만들 수 있는 개체가 있었을지 모른다. 상상에 머물 수밖에 없지만, 당시 호모 사피엔스가 사용한 도구가 네안데르탈인이 따라 만들기엔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복잡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문화가 전해지기 위해서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능력도 필요하다. 누군가 멋진 발명을 했다고 해도 다른 사람이 그걸 이해하지 못하면 발명은 퍼지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발명은 전해지지 않는 것이다. 네안데르탈인은 그런 부분에서 사회적 기초가 약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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