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에도 심장이 있다면
 
지은이 : 박영화
출판사 : 행성B
출판일 : 2019년 08월




  • 『법에도 심장이 있다면』은 16년을 판사로, 16년을 변호사로 살아온 저자가 법정에서 만난 사람과 사건을 중심으로 진정한 법과 정의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판사와 변호사의 실제 삶과 법정에서 펼쳐지는 또 다른 세상을 생생히 마주하게 된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그동안 잘 몰랐거나 오해한 법의 진면목을 살펴볼 수 있다. 법조인임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꼭 필요할 때만 법을 선택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법에도 심장이 있다면


    법봉의 무게

    끝나지 않은 이야기

    나는 16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법대에 앉아 최선을 다해 판결을 내렸다. 그럼에도 당시에 내린 모든 결론이 진실과 정의에 부합하는 판단이었다고 확언할 순 없다.


    판사는 검사와 피고인, 또는 원고와 피고가 사실 관계에 대해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사건을 수없이 만난다. 자신은 사실을 직접 체험하거나 보지 않았음에도 누구의 주장이 진실에 부합하는지 판단해야한다. 또 법전엔 깨알 같은 글씨로 수많은 법령이 실려 있고 법률 서적과 판례는 나날이 쌓여가고 있다. 하지만 정작 법을 현실에 적용하려면 애매하기만 하다. 그래서 판사는 끊임없이 어느 이론이 법의 정신이나 정의에 부합하는지 판단해야한다.


    판사는 정답을 알 수 없는 문제들을 가지고 끝없이 고심하며 최선의 답을 찾아가는 사람이다. 정답을 알기 어려운 문제뿐 아니라 아예 정답이 없는 문제를 풀기 위해 머리를 싸매기도 한다. 어쩌면 판사는 주어지는 문제들을 끊임없이 풀어야하는 영원한 수험생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판사의 하루는 길고도 고된 시간이다.


    판사는 현재 주어진 사건과 관련해 최선의 판단을 내리기 위해 깊은 생각을 거듭하지만 때로는 과거의 판결에 대해 과연 더 나은 선택은 없었나?를 곱씹으며 묵은 고민을 이어가기도 한다. 덕분에 법복을 벗은 지 오래됐지만 나는 지금도 그 시절의 사건 보따리를 가슴 한편에 묶어두고 살아간다.


    판사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나 역시 짧지 않은 세월 동안 판사로 일하며 단 한 건의 사건도 가벼이 여긴 적이 없다. 온종일 사건 기록과 관련 자료들을 살펴보고 늦은 밤까지 어느 주장이 맞는지 저울질하다가 어렵게 판결문을 완성했다. 하지만 아침에 눈을 뜨면 다시 고민이 시작됐다.


    과연 내가 어젯밤 내린 결론이 옳은 것일까? 최선의 답일까?


    그렇게 출근길에서도 내 결론이 타당한지 스스로 묻고 답하길 거듭했다. 결국 사무실에 도착해 그게 아니다 싶으면 결론을 바꿔 판결문을 고친 다음 선고하기도 했다. 판사는 수많은 사건을 심리해 판결을 선고한다. 메스를 잡은 의사가 수술대에 누운 환자의 살을 도려낼 때처럼 판사의 판결은 누군가의 인생을 하루아침에 바꿔놓을 만큼 날카롭고 중대한 결정이다. 그러니 판사는 마지막까지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며 고민할 수밖에 없다.


    주검으로 변한 의뢰인

    오랜 기간 판사로 근무하다가 사직하고 변호사로서 새로운 길을 걷게 됐을 때, 무거운 법복을 벗어서인지 내 마음의 무게도 한결 가벼워진 듯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난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선택하고 결정을 내리는 고민에서 변호사도 결코 자유로울 순 없었다. 사건을 수임할지 결정하고 승소 포인트를 잡아내는 건 물론, 나의 판단이 사회에 끼칠 영향도 고려해야하는 등 매 단계마다 고민하고 최선의 결정을 내려야했다.


    몇 년 전의 일이다. 중년 여성인 K가 이혼 소송을 의뢰하러 나를 찾아왔다.


    “남편과 이혼하고 싶어요.”


    변호사로 일하며 이혼 소송을 종종 의뢰받긴 했지만 나는 사연을 들어 본 후, 이혼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판단되면 일단 소송을 만류한다. 특히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엔 부부 관계가 완전히 파탄에 이르지 않았다면 조금 더 노력해보길 권한다.


    “왜 남편 분과 이혼하려고하십니까?”


    “무능해서요.”


    K는 이혼을 바라는 사유로 남편의 무능함을 꼽았다. K의 남편은 결혼 후 몇 년 동안 작은 사업체를 운영했다. 그런데 경영이 점점 어려워지자 아내인 K에게 이 사업체를 넘기고 다른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엉겁결에 맡아 시작한 사업이지만 K는 수완이 좋았던 덕분인지, 피나는 노력의 결과였는지, 나를 찾아 왔을 땐 창업 무렵보다 10배 가까이나 사업체를 성장시켰고 재산도 제법 일구었다. 이에 비해 남편은 손대는 사업마다 적자를 면치 못했다.


    “능력도 없는 사람이 기어이 사업을 하겠다고 우겨선 10년이 넘도록 계속 돈만 까먹고 있어요. 저와 애들을 위해서도 남편은 없는 편이 나아요.”


    사실 경제적인 부분만 보자면 K는 아쉬울 게 없는 상황이었다. 지난 몇 년간 사업을 성장시켜 번 돈으로 본인 명의의 재산을 제법 마련해둔 상황인 데다 사업가적 면모까지 뛰어나, 딱히 남편의 도움이 필요 없어 보였다. 하지만 부부의 인연을 경제적인 부분만 따져서 맺고 풀고 할 순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아직 어린 자녀들을 생각하면 좀 더 현명한 방법을 찾아볼 필요가 있었다.


    나는 혹시나 해서 그녀에게 재혼할 남자가 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물었다. K에게 이혼을 결심할 만한 또 다른 사연이 있다면 이를 참작해야 했다. 그런데 K는 남편의 무능함 외에 다른 이유는 없다고 했다.


    “소송을 한다고 해도 이혼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높지 않아요. 배우자가 경제적으로 무능하다고 해서 이혼 사유가 성립되는 건 아니니까요. 부부는 서로 부양할 의무가 있으므로 어느 한 사람이 돈을 벌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도와줘야 합니다. 게다가 이혼하면 재산분할을 해야 하는데, 두 분이 가진 재산은 모두 의뢰인 명의로 돼 있어요. 결국 본인 재산 중 상당 부분을 남편에게 나눠줘야 해요.


    그러니 이혼하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다면, 지금처럼 본인이 재산을 관리하고 혼인관계를 유지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요?”


    변호사로서 내 소견을 충분히 설명하고 K에게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보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오래 고민해봐도 꼭 이혼해야겠다고 판단되면 그때 다시 찾아오라고 했다. K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섰고, 그 뒤로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두 달쯤 뒤 신문기사에서 K를 만났다. 남편과 잘 살아보려 노력하고 있겠거니 짐작한 K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다. 그것도 남편에 의해……. 아내의 지속적인 이혼 요구에 앙심을 품은 남편이 청부 살인을 했다고 한다.


    나는 한동안 초점 잃은 눈으로 멍하니 신문만 바라보았다. 그날 그렇게 K를 돌려보내선 안 되었던 것인가, 그날 K의 이혼소송을 맡아줬더라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고인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내가 좀 더 세심하게 상담하고 부부 관계를 회복시키는 조언까지 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깊은 자책감이 밀려왔다.


    변호사는 법률적 조언과 재판을 통해 의뢰인의 고충을 해결해주는 직업이다. 하지만 문제 해결 방법이 적절한지, 더 좋은 방안은 없는지 생각해야 하고, 의뢰인의 숨은 사정도 헤아려야 한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법률적 조언 이상의 무엇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환자의 병든 몸뿐만 아니라 지친 마음도 함께 보듬는 의사가 좋은 의사이듯, 변호사도 주어진 사건을 해결하는 것 외에 의뢰인의 무거운 마음도 잘 풀어줘야 한다.


    판사에서 변호사로 직업이 바뀌면서 ‘천근만근 무거운 고뇌의 짐을 벗어버리고 이제 홀가분하게 살리라’ 기대한 내 생각이 잘못됐음을 깨달은 사건이었다. 변호사는 남의 고충을 머리에 이고 사는 사람이다. 의뢰인의 이익만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깊은 성철과 고뇌가 필요한 직업이다. K는 내게 그런 가르침을 주고 떠났다.


    천근보다 더한 판결의 무게

    모든 판사가 그렇겠지만 나 역시 가장 피하고 싶은 판결이 사형선고였다. 요즘엔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사형 폐지론이 비등하고 있지만 악랄한 수법으로 여러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극악무도한 흉악범은 사형선고를 피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은 국가사회라는 공동체를 이루어 살고 있다. 이 공동체의 뼈대라 할 수 있는 우리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그런데 같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말살하는 살인 행위, 특히 방법이 흉악하거나 명백히 다수의 피해자를 낳은 경우엔 공동체 유지를 위해 부득이하게 사형을 선고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오판의 위험은 없는지 철저히 심리해야만 하고, 정치적 배경이 깔린 사건에서 사형을 선고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물론 공동체를 위한 선택이라고 해도 판사로서 사람의 목숨을 끊는 사형 판결을 내리는 일은 무척이나 어렵고 괴롭지 않을 수 없다.


    난생 처음 사형 판결을 선고할 때가 생생히 기억난다. 벌써 30년 전의 일이다. 당시 나는 합의부 배석판사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주심은 아니었지만 사건을 함께 논의하고 사형을 선고하는 판결문에 서 명해야했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재판장이었던 부장님은 배석판사들에게 선고기일 두 달 전부터 해당 사건 기록을 상세히 읽고, 어떻게 판결을 선고할지 깊이 고민해보자고 하셨다.


    그 사건 피고인의 죄명은 살인과 살인 미수였다. 그는 동거녀와 그녀의 부모를 흉기로 살해하고 동거녀 여동생의 가슴을 찔러 장애가 남을 정도로 치명적인 상해를 입혔다. 겉으로 드러난 행위론 여느 흉악범 못지않은 악행이라 사형이 마땅해 보였다. 그러나 사건의 내막을 살펴보니 사형선고를 당연시하기엔 다소 안타까운 사연이 숨어 있었다.


    사실혼 관계에 있던 아내가 다툼 끝에 집을 나가자 피고인은 처가에 찾아가 아내를 내놓으라고 했다. 그런데 처갓집 식구들이 아내가 있는 곳을 가르쳐주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비난하자,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고 돌이킬 수없는 범행을 저지른 것이었다. 극악무도한 흉악범 수준으로 판결하기엔 다소 안타까웠지만, 사람을 셋이나 죽이고 살아남은 한 명은 평생 장애인으로 살게 만들었으니 피고인의 처지만을 생각할 순 없었다. 두 달이 넘도록 고심해도 결론을 내리지 못한 부장님은 결국 선고기일을 한 달 뒤로 연기하기까지 하셨다. 그럼에도 결국 우리 재판부는 그에게 사형 선고를 내려야 했다. 훗날 항소심과 상고심을 거친 후 사형이 집행되었다는 언론 보도를 접하며, 새삼 법복에 내려앉은 애환이 천근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과연 그 판결은 정당했던가?



    사람 가까이

    시민이 공무원을 평가한다면

    국민들에게 차갑고 무거운 곳으로 인식되기 쉬운 법원이 따듯하게 국민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선, 법원 안팎의 시설물이나 비품보다 더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다. 재판을 담당하는 판사를 비롯해 업무를 보는 직원 모두가 국민을 위해 법률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사명감을 갖지 못한다면, 법원은 국민에게 여전히 권위적이고 차가우며 멀게만 느껴질 것이다.


    나는 특이하게도 두 차례 지방법원의 지원장으로 근무했다. 1995년부터 2년간 영덕지원장으로, 1999년엔 안동지원장으로 1년 동안 근무했다. 안동에서 근무할 때도 나는 시민들이 법과 법원을 더 친근하고 편안하게 생각하도록 만들려고 애썼다. 그런데 영덕지원에서 근무할 때와는 달리, 안동지원에서 근무한 1999년은 외환위기 직후였다. 그래서 돈이 들어가는 시설이나 비품을 설치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법원 같은 관공서부터 허리띠를 졸라매 모범을 보여야 할 때였다. 나는 지역 주민과 함께 하는 친근한 법원을 만들기 위해 그 안의 사람들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법원도 일반 기업과 마찬가지로 매년 일정한 기준에 따라 직원들의 업무 능력이나 태도 등 근무 성적을 평가하는 근무평정을 한다. 보통 내부에서 상사들이 하향식 평가를 많이 하지만 최근엔 쌍방향 평가라고 해서, 상사가 하급 직원을 평가하고 하급 직원이 상사를 평가하기도 한다.


    “직원들이 업무 친절도에 대해 외부 평가를 받았으면 합니다.”


    ‘일반 기업들도 고객이 왕이라며 고객 감동을 외치는데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관공서가 서비스에서 뒤처지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권리를 보호받으려는 절박한 처지에 놓인 국민에게 사법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무원이, 어깨에 힘을 주고 권위적으로 응대하거나 불친절해서는 안 되었다.


    직원들에게 나의 이런 뜻을 이야기하자 처음엔 당황스러운 반응이었다. 그동안 별 생각 없이 민원인을 대하던 직원들로선 어느 날 갑자기 민원인들에게 매일 시험을 치르는 셈이 되니,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함부로 말하고 행동했다간 지원장에게 보고될 수 있기에 겉으로 보이는 태도뿐만 아니라, 아예 마음가짐 자체를 통째로 바꿔야 한다는 나름의 혁신이었다.


    “대신 이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분에겐 가족과 함께 연말 여행을 갈 수 있는 여행권을 상품으로 드리겠습니다.”


    당연히 직원으로서 열심히 하고 잘해야겠지만, 적절한 포상이 따라준다면 더 의욕이 생기는 법이다. 법원이 사법 서비스 기관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문턱을 낮추고 민원인들에게 더 바짝 다가서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직원들의 밝은 미소와 친절한 태도는 기본 중의 기본이었고, 이를 이끌어내려면 적절한 포상을 내세울 필요도 있었다.


    예상대로 효과는 아주 좋았다. 괜히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며 ‘민원인들에게 친절하게 응대하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으름장을 놓을 필요도 없었다. 또 직원들을 따라 다니며 서비스 상태를 일일이 확 인하지 않아도 되었다. 적절한 시스템을 도입하고 잘 정착될 수 있도록 포상으로 의욕을 고취하니,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직원들은 스스로 알아서 잘했다. 그리고 직원들의 친절한 태도와 업무에 대 한 열정은 곧 시민들의 만족으로 이어졌다.


    법원을 찾는 시민들 대부분은 마음이 편치 않은 분들이다. 말로 설득하고 인정에 호소해도 안 되니, 최후의 수단으로 법의 힘을 빌려서라도 권리를 찾고 억울함을 호소하려는 분들이다. 이들의 불안하고 불편한 마음을 덜어주고, 법에 따라 편안하게 해결하는 길로 이끄는 일이 법원 공무원들의 소임이다.


    함께 분노하고 울어줄 순 없더라도 최소한 법으로 인도하는 길에서 사람에 대한 따뜻한 배려만은 잊지 말아야한다. 법은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


    법, 쉽고 편하게 갑시다

    “뭐가 이렇게 어려워?”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죠?”


    법원 안팎의 시설물, 그리고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까지 시민들과 가까워지려면 법원의 담장을 낮추고 법원 구성원들의 얼굴과 태도가 부드러워져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정작 법을 활용하는 절차가 어렵고 복잡하면 시민들은 여전히 법을 불편하게 여기게 된다.


    이젠 법원에서 기다리지 않아도 됩니다

    판사로 재임하던 시절, 재판받으려고 법원을 찾는 시민들은 하나같이 경직되고 피곤해 보였다. 피고의 입장이든 원고의 입장이든 재판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게다가 재판을 받으려면 몇 시간이고 하염없이 기다려야하니 몸까지 덩달아 피곤해진다. 요즘엔 재판기일이 확정되면 재판이 시작되는 시각을 적어도 10분 단위로 미리 정해 준다. 재판 당사자와 대리인이 재판을 받기 위해 대기하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한 배려다.


    이런 시차제 소환이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예전엔 재판 당사자들에게 보통 오전 재판은 아침 10시, 오후 재판은 낮 2시에 나오라고 통지했다. 평소 오전엔 증인이 없는 사건을 적게는 20건, 많게는 50건 정도 진행하고, 오후엔 주로 증인 신문을 하는 사건을 적게는 10건, 많게는 20건 정도 진행했다. 그런데 오전 재판은 아침 10시, 오후 재판은 낮 2시에 나오라고 하니 당사자들은 무조건 그 시간에 맞춰 법정에 출석해야했다. 그러고 나서 자신의 사건을 진행할 때까지 남의 재판을 구경하며 온종일 기다려야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같은 시간에 여러 건을 변론해야 하는 변호사의 업무상, 이런 어려움을 감안해 변호사들은 법정에 나오는 순서대로 재판을 진행했다. 그러다 보니 변호사 없이 나 홀로 재판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이제나저제나 자기 차례를 기다려야 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변호사를 선임한 사람은 미리 예약이라도 한 듯 오자마자 재판을 받고 가는 것이다. 변호사 없는 재판 당사자의 눈에는 변호사들이 새치기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합의부 판사로 일할 때 재판장께 ‘변호사 재판 우선 진행’은 공정하지 못한 일이 아닌지 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마침 재판장도 그 부분을 고민하며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평등권에 어긋나지 않는지에 대해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외국의 판례나 자료들까지 찾아보았다’고 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 판례를 찾아보니 그건 위헌이 아니라는 판결이 있더군요.”


    “아니, 그 논거가 무엇이죠?”


    “일반 개인은 각자 한 사건에 대해 재판받으러 오지만 변호사는 여러 사건을 맡아 국민 다수의 권익을 대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법정에서 변호사들이 재판에 신속히 참여하도록 배려하는 게 평등권에 위배되지는 않는다고 보더군요.”


    틀린 말은 아닌 듯했지만 그렇다고 쉽게 수긍할 수도 없었다. 어떤 이유든 결국 변호사 없이 재판받는 사람이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그래서 단독판사가 되어 혼자 재판을 진행하면서부터는 당사자들에게 법정에 나오는 시간을 30분 단위로 통지했다. 그리고 변호사를 선임한 당사자들과 같은 시간에 출석 통지를 받은, 변호사 없이 소송을 벌이는 당사자들의 사건을 30분마다 먼저 진행했다. 그러고 나면 다음 시간대에 출석 통지를 받은 변호사가 변론하는 사건을 변호사가 도착한 순서대로 재판했다.


    그 후 이런 재판 진행 방식이 제도화되도록 법원에 공식적으로 제안하기도 했다. 1993년 3차 사법파동(사법권의 독립과 개혁을 요구한 판사들의 집단적 움직임. 우리나라 사법사에는 1971년, 1988년, 1993년, 2003년 총 네 차례가 있었다) 당시 나를 비롯한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 단독판사 40여 명이 <사법부 개혁에 관한 건의문>을 발표하고, 법원의 독립성 확보를 위한 법관의 신분보장과 법관 회의 등 사법부의 개혁을 요구했다.


    당시 회의에서 내가 제안했던 내용 중 하나가 앞서 말한 시차제 재판 시스템 도입이었다. 사법부의 독립, 법의 공정성 등 당연히 지켜야 할 것들 외에도 내가 법을 집행하며 느낀, 국민이 법 진행 과정에서 체감하는 불편함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안타깝게도 당시로선 너무나 앞서가는 생각이었던지 ‘쌍방의 변호사들이 알아서 나오는 대로 재판을 진행하는 현행 방식이 낫다. 만일 그런 시스템을 도입한다고 치자. 그 후론 어떤 사건의 재판기일을 변경하면 법정에서 재판을 진행하던 판사가 판사실에 올라갔다가, 다음 사건 당사자가 나왔다는 연락을 받고 다시 법정으로 내려가야 하는 불편이 있다’며 외면당했다.


    다행히 요즘엔 그때 내가 제안한 시차제 재판 시스템이 모든 법원에 도입돼 당연한 듯 일상화되었다. 이런 재판 진행 방식 덕분에 시민들은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자신의 재판을 기다리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되었다. 또 같은 시각에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법정에 들어오지 않으니 법정의 크기도 훨씬 작아져, 법원의 공간 활용도까지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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