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100년 전통 행복 수업
 
지은이 : 류창장
출판사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출판일 : 2024년 02월




  • 세계 최고의 명문대학 하버드에서 행복해지는 방법을 가르치는 탈 벤 샤하르 교수의 ‘행복학’ 강의와 만나보세요. 행복에 관한 최신 연구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행복 훈련법을 담았습니다.


    하버드 100년 전통 행복 수업


    긍정의 기쁨을 발견하다

    이 순간부터 행복한 사람이 되자

    아름답고 따뜻한 단어 중 하나가 ‘행복’이다. 이 단어를 떠올리면 마음이 훈훈해지면서 미소가 피어난다. 개인별로 느끼는 행복의 충만함은 다르겠지만 아주 옅은 흐뭇함에서부터 가슴 벅찬 감동까지 느끼는 행복은 넓고 깊다. 행복을 느끼는 각도도 모두 다르다. 사회적 성공, 가정, 직업, 인간관계 등 자신의 관심이 치중하는 곳에서 행복을 느낀다. 그래서 섣불리 행복을 정의할 수 없다.


    해자(海子)는 “내일부터 행복한 사람이 되자. 말에게 먹이를 주고, 장작을 패고, 세계를 두루두루 여행하자. 내일부터 음식과 채소에도 더욱 관심을 가지자. 나는 바다를 마주하여 바라보는 방이 있는 집이 있다. 봄은 따뜻하고 꽃은 활짝 피었다.”라고 말하며 일상생활에서 행복을 만끽하려 했다. 반면 삐수민은 “행복은 고통이 없는 시간을 의미한다. 행복이 등장하는 빈도는 생각보다 많다. 하지만 사람들은 흔히 행복이란 금으로 된 마차가 저 멀리 떠나버렸다고 생각하며 땅에 떨어진 금빛 말갈기를 주우며 이전에 행복을 보았다.”라고 말했다. 행복을 대단한 행운으로 여기는 것을 안타까워한 것이다.


    “당신은 행복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라고 누군가 물으면 자신의 불행했던 과거와 현재를 떠올리며 한 번도 행복했던 적이 없다고 답할지 모른다. 그러나 진지하게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면 순간순간 행복했던 일들이 가득하다. 행복이 자신의 곁을 멀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행복의 존재를 무시하고 어둠 속에 숨겨놓고 꺼내보지 않은 것이다.


    톨스토이를 만난 어느 무명작가가 “사랑하는 것들을 다 갖고 계시니 선생님은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톨스토이는 담담하게 “아닙니다, 저는 제가 사랑하는 것들을 다 가진 것이 아니라,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사랑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행복은 모든 것이 충족되었을 때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는 것이 톨스토이의 지론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불우한 상황이나 악조건까지도 포용하며 감내하는 마음에서 행복은 발견된다.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다.


    사람은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질주하는 동물이다. 별을 가지면 하늘을 갖고자 하고, 물을 가지면 바다를 갖고자 한다. 지금 가지고 있는 별과 물을 만족하지 못하고 그 가치를 과소평가한다. 자신이 얻지 못할 것을 추구하면서 그것이 있어야만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면서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평범하지만 작은 행복들은 소홀히 여긴다. 지금 자신이 누리는 행복은 다른 사람이 그토록 갖기 원하는 행복인데, 상상 속 신기루만 잡으려 한다. 하지만 명심하라. 자신이 가진 행복을 무시한다면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행복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과시도 안 되고 드러내놓고 전시할 수도 없다. 오로지 자기 마음에 기쁨이 충만한 상태이다. 그 행복의 순간을 포착하고 붙잡아야 한다. 잡을 수 있는 사람도 자신뿐이다. 자기 분신 같은 존재라 하더라도 행복을 함께 나눌 수는 있지만 대신 느껴줄 수는 없다. 오로지 자신의 자각에 의해서만 행복이 가능하다.


    인생이라는 망망대해를 항해하며 그날그날 낚는 행복을 만끽하라. 크든 작든 다시 못 잡을 행운처럼 기뻐하라. 그것이 매일 매일 행복할 수 있는 비결이고 아름다운 인생을 설계하며 살아가는 비법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은 칙칙한 회색빛으로 덮이고 삶의 열정도 사라진다. 자, 당장 미소를 지어보자. 그렇게 웃을 수 있으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행복은 현재진행형이다

    보이지 않는 미래에 전전긍긍하지 마라

    일상생활에서 많은 사람이 오늘이 아닌 내일을 산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운전면허를 따고 대학에 가고 독립하는 날만을 기다린다. 인생의 출발점에서 “나중에 이렇게 되면?”이라든가 “나중에 저걸 한다면?”이라는 말을 달고 산다. 그런데 과연 계획대로 될까? 계획대로 된 게 몇 개나 있을지 궁금하다. 현실은 냉정하고 냉혹하다. 오늘 화나고 슬펐는데 내일 갑자기 모든 것이 좋아지지 않는 것처럼 오늘 집중해야만 내일이 보인다. 이것만이 꿈이 현실이 될 유일한 방법이다.


    내일의 꿈은 지금 당신이 서 있는 곳에서 시작된다. 현재 가장 자주 생각하고 가장 주의를 많이 기울이는 그 지점에서 미래가 바뀐다. 당신은 지금 마라톤의 출발선에 섰다. 출발신호를 내리는 이도, 박차고 나갈 이도 바로 당신이다.


    우리는 가끔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한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탑승 시간을 착각해 비행기를 놓치는 상상, 파티에 초대받은 사람이 모두 술 한 병씩 가져왔는데 자신만 빈손인 난처한 상황,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며 심각한 병이 발견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움에 떠는 등 이런 부정적인 상상은 우리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든다.


    그러나 현실의 당신은 여유 있게 비행기에 탑승하고, 파티에서 주의를 집중시키는 호감을 사며, 검진 결과는 아주 양호한 건강을 보여준다. 당신은 기쁘겠지만 무의식 혹은 내면에 불안이 잠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안다.


    우리는 미래를 상상할 때 극단적이 되기도 한다.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고 그 일이 현실이 되는 경우를 떠올린다. 예를 들어 연구 중인 대상에게 내일 아침에 미트 스파게티를 먹는 게 좋을지 아니면 오늘 오후에 먹는 게 좋을지 예측해보라고 가정해보자. 대상자 중에는 배가 고픈 상태인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배가 고픈 상태인 사람들은 오늘 오후에 스파게티를 먹는 게 내일 아침에 먹는 것보다 더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배고픔의 감각이 스파게티를 먹어야 할 시간을 앞당기는 것이다.


    그러나 각기 다른 분위기의 음악 선율의 환경에서 미트 스파게티를 언제 먹을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감각기관에도 여러 영향이 미치기 때문이다. 많은 일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은 사람의 상상을 멈추게 한다.


    감각으로 느끼는 배고픔은 다르다. 배고픈 사람은 시간과 상관없이 스파게티가 먹고 싶을 것이고 배가 고프지 않은 사람은 그리 먹는 욕구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배고프다면 상상만으로도 ‘맛이 괜찮다.’라고 생각할 것이고, 배고프지 않다면 ‘구역질할 것 같다.’고 느낄 수도 있다.


    미래를 상상할 때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상태가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지금을 시작점으로 삼아 내일의 기쁨을 예측한다. 이는 행복의 정도를 예상할 때도 똑같이 적용된다. 자신의 행복이 미래에 증대될지 판단할 때, 현재를 기준점으로 삼아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가령 꿈을 이룬 미래에는 얼마나 행복할까라고 인정받는 기분을 누리는 기쁨을 떠올려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상은 그 과정에 투자되는 시간과 땀, 열정, 노력은 생각지 않은 것이다. 이를 아는 주변의 냉정한 평가를 하는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상상에 빠지지 말라고 조언한다. 상상도 역시 현재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며 현재를 꽉 붙잡고 있어야 꿈꾸는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는 첨삭도 빼놓지 않는다. 대신 현실에 주어진 상황의 조건에서 불안을 걷어내야 한다. 귀에 들리는 음악이 미트 스파게티를 언제 먹을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것을 잊고 선율에 집중하는 것처럼, 눈앞에 드러나지 않는 결과에 전전긍긍하며 시간을 소비하거나 에너지를 낭비하지는 말자. 현재의 중요한 요소에 집중하자. 그것만이 당신이 설계한 미래에 다가가는 길이다. 불안한 마음으로 탑을 쌓지 마라. 그러면 반드시 무너진다.



    행복의 의미를 찾아서

    자기 신념에서 행복이 피어난다

    ‘행동 가치관’이라는 말이 있다. 마틴 샐리그만과 크리스 피터슨이 공동으로 제시한 개념으로 어떤 행동을 할 때 투영되는 성격, 도덕관, 가치관을 의미한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행하는 일거수일투족에 내재된 자기 삶의 방식이자 관점이다. 이것은 자신이 추진하는 계획이나 목표의 바탕이 된다.


    사람은 자기가 추구하는 목표를 설정한다.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분야, 흥미를 느끼는 일이나 이상과 가치관이 일치하는 종목에서 계획하고 꿈을 설계한다.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디자인이나 회화 작품으로 대중과 소통하기를 원한다. 봉사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람은 의료나 서비스업에서 자기 인생을 설계한다. 감각적인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창조적인 일을 찾는다. 물론 가족의 권유나 경제적・사회적인 측면까지 고려해 선망하는 목표를 택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목표에 의무와 책임감을 비롯해 자기 가치를 심겠다는 의지이다.


    빵을 만드는 일에 흥미를 가진 아이가 있었다. 빵 향기를 맡으면 넋을 잃을 만큼 황홀해했다. 그 아이는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한 결과 바라던 대로 제빵사가 되었다. 그는 빵을 만들 때 반드시 네 가지 원칙을 철저하게 지켰다. 첫째 정직하고 올바른 품질의 밀가루와 신선한 기름, 둘째 먼지 하나 묻지 않은 깨끗한 도구들, 셋째 완벽한 제빵 보조원, 넷째 아름답고 감동적인 음악이었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되어야 빵을 구웠다.


    그는 하나의 예술 작품을 탄생시킨다는 생각으로 빵을 대했다. 단순히 생계를 위한 수단이거나 타성에 젖어 게으름을 피우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빵의 맛을 음미하기도 전에 먹어치우겠지만 그는 먼저 눈・코・입으로 자신의 예술혼이 전해지기를 바랐다. 그래서 기름이 조금이라도 신선하지 않으면 예술이 오염된다고 여겼다. 엄선된 좋은 재료에 정성을 가미해 빵을 만들 수 없으면 기꺼이 가게 문을 닫았다.


    그는 한 번도 오늘 얼마를 벌었는지 따져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이 제빵사의 빵집은 어떤 브랜드의 빵집보다 더 잘 됐다.


    사람의 성공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명예와 이익의 성공과 인격의 성공이다. 전자는 물질과 관련된 것이고, 후자는 일생을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정신적인 차원이다. 의심할 것 없이 제빵사는 후자에 속한다. 그에게는 빵을 만들 때 즐거웠는지, 다른 사람의 존중과 사랑을 받았는지가 더 중요했다. 자신의 명예와 이익은 처음부터 목표에 넣지 않았다. 물질을 좇다가 자기 삶의 가치관이 무너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자기 신념을 행동으로 실천했고, 자신과의 약속이기에 더 철저하게 지켰다.


    현대 사회는 갈수록 물질의 가치를 더 중시한다. 돈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회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가진 돈의 정도에 따라 삶의 질이 보장받는다. 하지만 돈이 정신적 가치를 채워줄 수는 없다. 오히려 물질에 대한 집착으로 정신이 피폐해지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


    모든 사람은 타고난 자질과 성장한 환경, 교육의 정도가 다르다. 자기 삶을 주관하는 가치관이 모두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 성숙한 사고를 바탕으로 목표를 설정했다면 소신껏 이행하라. 그로 인해 자기만족이 올라가며 자부심과 자존감이 형성된다. 이것이 진정한 성공을 확신하게 되는 지점이다. 물질적 가치로 환산될 수 없는 무한한 가능성이 나오는 삶의 화이다.


    목표에 집중할수록 그 가치가 서서히 빛을 발하고 사회에서 인정받는다. 그로 인해 경제적 이익까지 동반되는 효과를 거둔다. 자신이 세운 가치관과 신념이 분명하다면 흔들리지 말자. 그것이 피워낼 아름답고 매력적인 결과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행복 더하기 행복

    손에 쥐고 있는 오늘을 먼저 완성하라

    장자(庄子)는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산다는 것은 마치 흰 망아지가 문틈을 휙 지나가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사람이 태어나 산다는 것은 순간의 일이어서 인생이 매우 짧게 지나간다는 뜻이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삶이지만 어느 순간 돌이켜보면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온 것처럼 느껴진다. 이는 굳이 장자의 말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동의하는 말일 것이다. 그러니 어느 순간 앞으로 다가온 인생의 말미에 많은 일을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지 말고 오늘 맞는 순간들을 최선으로 채우자.


    “들보에 상투를 매달고 송곳으로 허벅지를 찌르다. → 분발하여 열심히 공부하다.”

    “형설지공(螢雪之功) → 갖은 고생을 하며 학문을 닦다.”

    “벽에 구멍을 뚫어 이웃집의 불빛을 빌리다. → 가난하나 학문에 힘쓰다.”


    이와 같은 고전의 문구는 고대부터 얼마나 ‘시간’을 소중히 여겼는지를 보여준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오지만 영원하지는 않다. 자기 인생의 정해진 기간 안에서만 반복될 뿐이다. 청춘과 삶은 유한하며 시간은 화살같이 빠르다. 바로 이 글을 읽는 순간에도 오늘은 당신에게서 멀어지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동시에 또 다른 내일을 다가오며 우리는 점점 늙고 결국 죽게 된다. 그래서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인생을 연장하는 것과 같다.


    ‘지금’이라는 말에는 하는 일, 있는 곳, 주변에서 함께 일하고 생활하는 사람을 모두 포함해야 한다. ‘지금을 사는 것’은 현재의 초점을 자기 주위에 있는 사람과 일, 상황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공감한다면 순간을 소중히 여겨라. 전심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며 음미하고 몰입하여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는 선대(先代)의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은 오늘을 소중히 한다는 것과 같다. 원리는 매우 간단해보이지만 대다수 사람은 ‘현재’에 집중하기 어려워한다. 그래서 미래를 위해 오늘을 산다고 말한다.


    미래의 일로 손에 잡히지 않고, 저 멀리에 있어서 확실하지 않은 것에 집중하지 말자. 현재 내 주변에 있는 확실한 상황이 삶에 더 의미가 있다. 오늘을 제대로 산다는 것은 최선을 다해 앞으로 나가고, 꿈을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 노력하라는 말이 아니다. 자신이 맡은 일에 전심전력을 다 하되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일을 중시하고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격려와 지지를 보내는 사람의 소중함을 알고 함께하는 기쁨을 나누게 된다. 기쁨이 커질수록 의욕이 생기니 지지부진했던 상황은 나아지고 업무 능력도 높아진다. 그로 인해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확실히 알고 매일 주어진 업무를 열심히 완성할 수 있다. 이는 행복 순환의 법칙으로 ‘하이얼 기업’의 홍보 문구이기도 하다.


    “오늘의 일은 오늘 끝내고, 그런 하루가 쌓이면 자신만의 다채로운 행복을 갖게 될 것이다!”


    일찍 깨달은 만큼 일찍 누리는 행복

    젊을 때는 인생의 진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중년 즈음엔 이해하고 싶으나 이해가 어렵다. 나이가 들었을 때는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지만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을 잃어버린 뒤다. 그러므로 이 이치를 빨리 깨달으면 굽은 길을 안 가고 좌절하지 않게 된다. 삶의 길을 더 평온하고 순조롭게 걸을 수 있고 행복을 느끼는 감흥도 더 커진다.


    행복은 사람의 마음이 편안한 환경과 생활을 뜻한다.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되었을 때 느껴지는 충만한 기쁨이다. 이 행복은 사람마다 각기 다른 이해와 경험이 있기에 행복의 기준이나 척도도 모두 다르다. 인생의 여정 속에서 아름다운 부분들을 경험한 만큼 더 풍성하게 느끼고 행복해할 줄 안다.


    행복은 내면 깊은 곳의 깨달음이어서 일부러 솟아오르게 하지 않는 이상 그 기운을 파악하기 어렵다. 행복하다고 느끼기, 다가온 행복 깨닫기, 일상에서 행복 발견하기는 생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아무리 길어도 인생은 100년을 넘지 않는다. 그 안에 일, 도전, 노력, 열정, 성공으로 가득 채우더라도 행복이 빠지면 허탈해진다. 행복을 꽉 붙잡는 법을 배워야 하고 잘 붙잡을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1823년 35세의 시인 바이런(George Gordon Byron)은 삶에 대한 소망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의 삶은 죽은 것처럼 무료하게 변해버렸다. 그해 여름 군에 입대한 그는 그리스로 진격하게 되었다. 그는 행군 중에 자신의 고통을 괴테에게 편지로 호소했다.


    편지를 받을 당시의 괴테는 이미 75세의 고령이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괴테는 젊은 여성에게 구혼을 준비하고 있었고, 열정 또한 젊은 남자 못지않게 왕성했다. 반면 젊고 유망한 바이런은 삶의 목표가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도 없고, 결혼할 마음도 없고, 연애도 하지 않고 인생을 전쟁에 던지려 하고 있었다. 그러다 괴테의 답신에 활력 넘치는 괴테의 모습을 발견한 바이런은, 자신은 젊은 노인이고 괴테는 나이 든 젊은이라고 말했다. 1년 뒤 바이런은 전쟁 중에 병사하였다. 죽기 전에 그는 의사에게 말했다.


    “나는 내 삶에 질렸어요. 나는 하나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 피곤한 삶을 끝내기 위해 그리스에 왔어요. 지금 나를 구하려고 하는 것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냥 가주세요!”


    반면 괴테는 구혼에 성공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의 시는 모두 화려했으며 열정이 가득 차 있었다.


    바이런과 괴테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누구는 젊은 나이에도 비관적인 삶을 사는데 누구는 나이에 관계없이 행복한 삶을 살까? 단순히 성격 차이일까? 아니면 환경이나 상황 차이일까? 그렇지 않다. 긍정적으로 행복의 가능성을 찾고 볼 줄 아는 마음의 차이이다. 일, 성공, 꿈 등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행복이 없으면 불행하다. 바이런 역시 세상에서 가장 진귀한 것이 행복임을 깨닫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았더라면 삶이 달라졌을 것이다. 기쁨과 즐거움이 교차하며 삶의 희열을 느꼈으리라. 하지만 자기 삶에서 기쁨을 우울로 덮어버린 바이런은 마음속 행복을 솟아오르게 하지 않으니 인생도 그에게 행복을 보여줄 수 없었다. 결국 우울과 원망 속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다.


    행복은 음미하는 것이고 느끼는 것이다. 사람이 깨닫는 감정 중 하나이며 확실하게 이해할수록 더 큰 행복으로 다가온다. 이해하고 이해받는 것은 서로 통하는 것이어서 이해하는 사람끼리는 행복해질 수 있다. 기쁨과 만족을 키울 수 있다. 행복의 층위는 각양각색이고 넓고 고르게 퍼져 있다. 하지만 행복이 스스로 달려와 당신 품에 안기지는 않는다. 매사에 불평불만을 쏟아놓는 사람에게서는 도망친다. 응어리진 마음을 풀지 못하는 사람, 이기적인 사람, 관용을 베풀 줄 모르는 사람, 배려심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는가?


    괴테는 “당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신이 소유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행복을 느끼고 기억하는 법을 배우면 삶이 무료하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평범하고 재미없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행복의 범위를 넓힐수록 공허함과 외로움은 찾아들지 못한다. 당신의 가슴에는 이전에 경험한 행복뿐만 아니라 아직 누려본 적 없는, 앞으로 기대할 수 있는 행복까지 보관되어 있다. 그것을 솟구쳐 오르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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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