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을 깨는 사고력
 
지은이 : 양첸룽 (지은이), 이에스더 (옮긴이), 오드리 탕
출판사 : 미디어숲
출판일 : 2023년 10월




  • 16살 스타트업 CEO, 천재 프로그래머, 시빅 해커 출신의 세계 최연소 대만 디지털 장관의 사고력을 소개합니다.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선형적 사고를 버리고, 틀을 깨는 디지털 천재의 사고법과 만나보세요.


    틀을 깨는 사고력


    천재의 생각법 : 협력하고 혁신하고 공유한다

    저마다 다른 가치관을 제공하는 고전의 매력

    오드리 탕에게 아시모프, 테드 창, 뱅크스와 같은 SF소설가들의 작품들이나 제자백가 등의 여러 가지 고전들은 각각 서로 다른 가치가 있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여러 가지 윤리관을 제공했다. 예를 들어,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을 통해 오드리 탕은 ‘무위이치(無爲而治)’라는 것은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고, ‘특정한 방식으로 특정한 결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이 펼쳐지게 하는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모든 행동은 특정 결과를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펼치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드리 탕은 자신이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두 사람에게 큰 영향을 받았는데, 한 사람은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이고, 다른 한 사람은 아일랜드의 유명한 작가인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이다. 심지어 그는 자신이 ‘비트겐슈타인 신봉자’라고 말하기도 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전설과 같은 삶을 살았다. 오스트리아의 명문 가문에서 태어나 유대인 출신 철강왕인 아버지 슬하에서 자랐으며, 케임브리지대학을 다니며 영국의 유명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을 스승으로 모셨다.


    비트겐슈타인이 쓴 『논리철학 논고』(책세상, 2006)는 천재적인 작품이라고 인정받아 훗날 케임브리지대학 트리니티 칼리지의 교수로 추대되는 영광을 얻게 된다. 그의 부유함은 한 나라의 경제력과 맞먹는 수준이었지만, 아버지가 남긴 모든 유산을 기꺼이 기부하고 외딴 시골로 내려가 초등학교 선생님을 자처해, 말년엔 몹시 가난한 삶을 살았다.


    비트겐슈타인은 오드리 탕이 중학교 시절 독학할 때 접한 철학자로, 당시 그는 정치대학 철학과 수업을 청강하면서 칸트, 가다머, 파울 파이어아벤트, 하이데거의 철학 이론을 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를 시작으로 『철학적 탐구(Philosophische Untersuchungen)』, 『청색 책, 갈색 책(The Blue and Brown Books)』 등에 담긴 비트겐슈타인의 초기와 후기의 학설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비트겐슈타인이 철학에 관해 말한 명문장이 있다.


    “파리에게 (파리를 잡는) 꿀통에서 빠져나올 출구를 알려 주는 것이 철학의 임무다.”


    여기서 ‘꿀통’이라는 것은 옛 철학적 사고를 가리키는 것으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사고는 이런 기존의 철학적 사고를 끊임없이 해체하고, 심지어는 과거 자신의 논리적 사고 또한 깨트리는 것이었다.


    오드리 탕은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사고가 언어의 세계에 매우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초기의 비트겐슈타인은 세상을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두 가지로 나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해야 하고,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언어를 통해 명백하게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점은 인공지능기술이 보편화되기 전에 프로그래머들이 0과 1이라는 간략한 방식으로 이 세상을 설명하고, 자신들이 구축하려는 모습을 컴퓨터가 컨트롤할 수 있게 한 것과 매우 비슷하다.


    하지만 후기의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과거의 논리를 깨트렸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에는 사실 더 많은 공간이 있으므로 상호작용을 통해 의미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인공지능 역시 이런 사고방식을 모방하고 있다. 어떤 것을 반드시 문자로 정의해야만 이에 대해 소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의에 앞서 공감대를 형성해야 소통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의 VR은 추상적인 묘사 없이 사용자를 어떤 상황 속으로 이끌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과거처럼 문자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특히 문자를 통해 공감을 재구성할 때는 중간에 많은 부분이 생략된다. 게다가 모든 사람이 문자를 통한 구체적인 묘사를 잘하는 것도 아니다.


    오드리 탕은 비트겐슈타인이 『철학적 탐구』에서 말한 자동 추론 논리를 접한 뒤, 비트겐슈타인의 사고를 중학교 시절의 과학 전시나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대거 응용했다.


    천재 중의 천재라고 불리는 비트겐슈타인은 “천재성은 가장 고귀한 도덕성이므로 천재성을 갖는 것은 모든 사람의 의무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천재라고 불린 오드리 탕은 이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는 이백(李白)이 말한 “천생아재필유용(天生我材必有用)”을 예로 들었다. ‘이는 모든 사람의 재능은 하늘이 정한 것이므로, 모든 사람은 저마다 각자 기여를 하기 때문에 타인을 부정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어떤 재능이 있는지 이해하는 과정이며, 동시에 이런 재능을 통해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도덕성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오드리 탕은 재능과 기여는 개별적인 것이 아닌 ‘하나의 행위’라고 강조했다. 먼저 재능을 발견한 다음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도록 자신을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끊임없는 사회적 상호작용이 필요하고, 자신에게 속한 퍼즐 한 조각을 발견했다는 것은 어떻게 사회라는 그림에 맞춰 넣어야 할지 알게 된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자신에게 재능이 있다고 느끼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일이다. 자신이 인정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여’를 통해 사회가 그 시점에 당신이 기여한 바가 있다고 느껴야만 진정으로 하늘이 주신 재능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오드리 탕은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소위 ‘의무’가 바로 ‘공유’라고 생각했다. 천재는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며 배타성을 가질 것이 아니라, 자신의 창조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공유될 수 있고, 이를 통해 사람들이 어떤 세계를 볼 수 있게 되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신의 창조가 타인의 소재가 되게 해야 한다.



    일하는 방식 : 영역을 뛰어넘는 협력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시간 관리법

    2020년, 한 매체에서 오드리 탕이 ‘포모도로 기법’으로 시간을 관리한다고 보도하면서 열띤 논쟁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었다. 그 덕분에 많은 사람이 이 기법의 높은 효율성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드리 탕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오드리 탕이 현명한 시간 관리를 통해 뚜렷한 사고를 하고, 업무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 포모도로 기법 (Pomodoro technique) : 1980년대 후반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코 시릴로(Francesco Cirillo)가 제안한 것으로, 25분간 집중해서 일이나 공부를 한 뒤 5분간 휴식하는 방식을 네 번 반복하는 사이클로 이루어지는 시간 관리법.


    포모도로 기법으로 내 시간의 주인으로 산다

    그녀는 출근하기 전에 한 번, 퇴근 후에 한 번 ‘라인(LINE)’을 확인하고 업무 중에는 절대 확인하지 않는다. 라인에서든 왓츠앱(WhatsApp)에서든 많은 사람이 별생각 없이 대화를 시작하고 끊임없이 서로의 집중력을 빼앗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시간이 많이 소모되는 일은 글을 쓰는 일이다. 글을 쓰려면 생각해야 하고 또 즉각적으로 상대방에게 반응해야 한다. 누구든 이렇게 산만하면 효율적으로 무언가를 처리할 수 없다. 그래서 그녀는 하루에 딱 두 번만 라인을 확인한다. 모두가 생각을 정리한 뒤에 그녀에게 말을 걸도록 하여 서로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업무가 시작되면 그녀는 포모도로 기법을 사용한다. 하루 근무 시간을 여러 조각으로 나눠 각각 포모도로 기법을 적용하고, 미리 업무 진행률을 계획한다.


    포모도로 기법이 많은 사람에게 환영을 받은 것은 25분의 시간이 일에 전념하기에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은 적당한 시간이고, 이 25분 동안 외부 정보가 들어오거나 일시적으로 처리해야 할 다른 일이 생각나더라도, 그 시간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처리해도 일을 그르치거나 늦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전 세계를 휩쓸었던 이 시간 관리 기법이 당시 대만에서는 그다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2020년에 팬데믹을 겪으면서 전 세계가 원격 근무 체제에 돌입하자 언론에서 원격 근무의 베테랑인 오드리 탕이 일찍부터 포모도로 기법을 사용했다고 보도하고 나서야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오드리 탕은 이 기법을 사용하면서 25분간 업무를 보는 동안에는 온 정신을 집중해 일했다. 이메일을 확인하지도 않았고 휴대전화도 방해금지모드로 설정해 알람이나 전화 수신 표시조차 뜨지 않게 했다. 25분이 지나 타이머가 울리면, 그제야 5분간 휴식 시간을 가지면서 이메일 답장을 보낸다. 휴식 시간 5분이 끝나면 다시 타이머를 맞추고 다음 업무를 시작한다.


    이 기법의 장점은 타이머를 설정하는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다는 점이다. 25분은 이메일에 답장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리 큰 실례가 되지 않는 정도의 시간이다. 어차피 이 기법을 사용하는 이유는 업무에 집중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에 한 텀이 중간에 끊겨서는 안 된다. 하지만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길 수 있다.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면 갑자기 택배가 도착할 수도 있고 각종 대여 제품의 점검을 위해 기사가 방문할 수도 있다. 이처럼 예기치 못하게 업무가 중단되었다면 오드리 탕은 이번 타이머 설정을 취소하고 방금 하려고 했던 일을 다음 타임으로 넘겨 진행한다. 만약 오늘 출근해서 7개의 타이머를 설정할 계획이었으나, 네 번째 타임에서 중간에 업무가 중단되었다면, 다섯 번째 타임에 네 번째 업무를 하는 것이다.


    쉬는 5분 동안 오드리 탕은 이메일은 확인하면서 라인은 확인하지 않는 루틴을 가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이 이메일을 보낼 때는 한 줄씩 보내는 것이 아니라 한 문단을 모두 완성한 뒤에 보낸다. 그래서 그가 25분에 한 번씩 확인하는 이메일은 모두 온전한 맥락이 있는 글이기 때문에, 2분 안에 이를 처리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바로 판단할 수 있다. 가능하다면 바로 처리하면 되고, 불가능하다면 누가 자신보다 이 일을 처리하기에 적합한지 판단해 이메일을 전달해 주고 그 사람에게 처리하게 하면 된다. 이렇게 아주 빠르게 대부분의 이메일을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라인은 그렇지 않다. 이야기를 시작하면 언제 끝날지 모를 대화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마지막 타임인 저녁 7시 퇴근 전, 그녀는 오늘 주고받은 모든 이메일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그리고 퇴근한 후에는 개인적인 시간이 시작되므로 더 이상 이메일을 확인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오드리 탕의 하루다. 그녀는 주도적으로 시간을 관리하고 시간에 끌려다니지 않으며 더 효율적으로 ‘오늘 할 일은 오늘 끝내자’라는 목표를 달성한다.



    AI 시대의 공부법 - 배움은 나를 깨우는 일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법을 배워라

    세상이 급변하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자주, 그리고 빠르게 뚜렷한 해결책도 없는 미지의 상황을 맞닥뜨린다. 개인의 능력은 이미 급변하는 시대를 따라 잡기에 역부족이다. 더군다나 사회를 운영하는 수많은 기능을 모두 기계에 맡길 수 있다고 할 때, 사람이 기계로 대체될 수 있는 영역을 준비하거나 공부하고 있다면 그 과정에서 쉽게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배워 두면 쓸모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들이 1년 사이에도 빠르게 새로운 과학 기술 도구로 대체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그 업계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 그렇게 오랜 시간 공부해 온 것들이 학교 교문을 나서자마자 폐기물 취급을 받는다는 사실은 학생들의 학습 심리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이게 바로 오드리 탕이 “우리는 아이들을 쓸모없는 사람으로 키워야 한다.”라고 말한 이유다. 그녀가 말한 ‘쓸모없는 사람이 되라’는 것은 너무 일찍부터 자신을 특정 용도로 정의하지 말라는 뜻이다. 공부하는 사람을 ‘사물화’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사물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을 어떤 기술을 공부하는 하나의 도구로 생각해선 안 된다.


    그녀는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 중에 나오는 대화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혜시는 장자에게 길가에서 자라는데도 상처가 많고, 가지도 비비 꼬인 탓에 목재로 쓰기에 전혀 적합하지 않아 목수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가죽나무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러자 장자는 ‘그 나무의 쓸모없음을 걱정하기보단 그 큰 나무를 넓은 곳에 심어 사람들이 나무 아래서 더위를 피해 쉴 수 있고, 여유롭게 즐기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 나무가 목재로는 쓸 수 없지만, 그런 이유로 베이지 않을 수 있으니 아주 좋은 일이 아니냐’고 덧붙였다.


    ‘쓸모 있음’보다 ‘재미’가 더 중요

    우리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돌이켜 보자. 왜 요즘 젊은 학생들은 공부하는 과정에서 좌절을 경험할까? 이는 무엇보다 공부에서 ‘쓸모’를 지나치게 강조하기 때문이다.


    ‘쓸모 있음’은 유용한 것을 말한다. 과거 전통 사회에서도 ‘쓸모 있음’은 좋은 것을 뜻했다. 사람들은 쓸모 있는 재주를 배워 사회의 수요에 맞게 사용하면서 걱정 없이 한평생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과학 기술의 시대에 ‘쓸모 있다’라는 것은 오히려 점점 모호해지고, 좀 더 심층 있게 다뤄야 할 토론 거리가 되어 가고 있다. 과학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사람이 하던 일이 점점 기계로 손쉽게 대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장자의 말처럼 사물에 대한 사람의 수요가 곧 ‘쓸모’다. 만약 망치를 가지고 있었는데 망가졌다면 사람들은 “쓸모없어졌다.”라고 말할 것이다. 사람이 부여한 망치의 기능을 잃어버렸으니 ‘쓸모없는 망치’가 된 것이다. 우리가 어떤 기계에 계산기의 기능을 부여하고 이를 정해진 용도로 사용할 때, 우리는 이 기계에 다양한 기능이 두루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 기능만 들어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 기계나 망치를 정의하는 방식으로 누군가를 정의한다면, 그것은 곧 그들을 ‘물화(物化)’하는 것이다.


    사람을 물화하면 특정 기능 속에 가두기 쉽고, 일단 그 기능이 시대 변화로 인해 도태되거나 자동화로 대체된다면 좌절감을 느끼기 쉽다. 그들이 한 공부가 외부로부터 강요된 것이고 자신의 마음속에서 흥미를 느껴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학생이든 근로자든 요즘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공부에서 모두 ‘벽에 부딪히는’ 느낌을 받는 이유다. 오늘 겨우 한 가지 재주를 키웠는데 내일 더 효율적으로 일하는 로봇에게 대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쓸모없는’ 사람으로 키울까?

    그렇다면 학습 면에서 어떻게 ‘쓸모없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아이들을 ‘쓸모없는’ 사람으로 키울 수 있을까?


    오드리 탕은 국가 12년 교육 과정 발전 위원회(교과 발전 위원회)에서 일하는 동안 전통적인 교육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가 문제로 삼은 것은 이것이다. 전통적인 학습 방식은 특정한 구조를 갖고 있으며, 학습자들은 그 구조에 맞춰 일방적인 방식으로 학습해야 한다. 이로 인해 학습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강요받는 느낌을 받으며, 이러한 방식으로 오랫동안 배운 내용과 관련된 산업이 사라지거나 자동화될 경우 좌절감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오드리 탕이 속한 교과 발전 위원회는 어떻게 학생들에게 학습의 흥미를 끌어낼지를 알아내기 위해 ‘자발성, 소통, 공동 작업’ 순으로 중요도를 설정하여 연구하고 있다.


    자발성이 선두인 것은 교육은 서비스와 학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학생이 교육 구조에 맞추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의를 계획할 때 가장 먼저 학습에 대한 학생의 흥미를 유발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매체 관련 수업을 들을 때는 뉴스만 볼 줄 알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학생에게 매체에 대한 소양을 길러 주고, 소재를 재창조하는 방법을 알려 줘야 한다. 데이터 관련 수업을 들을 때는 데이터 과학이나 빅데이터에 대한 이해를 넘어서 측정하고 기여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즉, 법을 배우는 것이 ‘쓸모 있는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만은 아니고, 의학을 배우는 것이 ‘쓸모 있는 의사가 되기 위해서’만은 아니듯이 학생이 뭔가를 배우는 것을 특정한 용도를 위해서라고 학습의 폭을 좁히지 말아야 한다.


    또한 과거에 초등학교의 실과, 음악, 미술 등과 같은 재능과 기예 과목을 ‘생활 과정’으로 융합하고, 선생님들은 ‘가르친다’라는 개념을 내려놓고 학생들과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 요컨대 시험 점수로 좋은 학생과 나쁜 학생으로 가르지 말고 한 사람 한 사람의 학습 상태에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여 학생들이 흥미를 느끼는 것에 대해 표현하는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격려하고 지지해야 하는 것이다.


    오드리 탕은 학습 과정에서 아이들이 자신의 흥미를 탐구할 수 있도록 도와야 그들이 사회적 요구에도 맞출 수 있고, 공동의 가치도 창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공동의 가치가 생기면 사회에 친근함을 느껴 반사회적 인간이 되는 것 또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부모 역시 ‘가르친다’는 개념을 내려놔야 한다. 오드리 탕은 “아이와 토론하는 것이 아이에게 모범 답안을 주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다.”라고 말한다. 그녀는 현재 우리의 세계에는 언제든지 새로운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러한 상황은 이전 지식 체계로는 대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오드리 탕이 13살일 때, 어머니는 13살이면 이미 어른이라며 그녀와 어른의 방식으로 상호작용을 했다. 어른 사이에는 경계선이 있기 때문에, 어머니는 오드리 탕을 어느 정도까지는 이끌어 주고 그다음부터는 오드리 탕이 알아서 하게 했다. 당신이 친구에게 조언을 해주었을 때, 친구가 그대로 따르지 않는 것은 그 사람의 사정이고, 모두 어른이기 때문에 자신의 결정엔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어른 대우는 피그말리온 효과도 불러일으킬 수 있다. 13살 아이가 성숙하게 행동하길 기대한다면 어른처럼 대우해라. 그러면 아이는 금방 성숙해질 것이다.


    오드리 탕은 무엇보다 아이 스스로 자신의 흥미를 알아내고 배우고 싶은 것에 다가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어른은 그저 곁에서 기초적인 학습환경만 만들어 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자기 내면에서 비롯되는 학습이야말로 사람이 기계와 다른 점이자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사람을 기계처럼 보지 않을수록 ‘쓸모’가 강조되지 않을 것이다.


    오드리 탕이 ‘쓸모없는 사람’을 키워야 한다고 제안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을 키우자는 얘기가 아니다. 외부의 강요에 의해 자신을 특정 용도로 정의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인공지능’을 머신 러닝에 비유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소위 머신 러닝은 사실 기존 자료를 경험에 따라 판단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사고할 때 경험만을 반추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도 뇌에서 생각을 거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어떤 얼굴을 봤을 때 바로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 것은 머신 러닝과 매우 흡사하다. 즉, 우리가 2초도 채 지나지 않을 만큼 ‘생각하지 않고’ 반응하는 것은 모두 기계와 비교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의 뇌에는 또 하나의 작업 영역이 있다. 그곳에는 서로 다른 개념들이 있어 의식적으로 종합적인 판단을 진행할 수 있고, 창의성이나 영감 등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반드시 각자의 주관과 의식적으로 경험한 현상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그래서 이 부분은 AI와 비교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기계와 다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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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