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력의 비밀
 
지은이 : 황시투안 (지은이), 정영재 (옮긴이)
출판사 : 미디어숲
출판일 : 2023년 09월




  • 한마디 말이 희망을 주기도, 삶의 의욕을 꺾기도 합니다. 그렇게 말의 힘은 거대합니다. 오랜 기간 심리학 멘토로 활동한 저자가 사람의 심리를 기본으로 한 대화의 기술을 알려드립니다.


    대화력의 비밀


    공감과 지지를 끌어내는 대화의 법칙

    잠재의식에 스며드는 한마디의 주문

    1919년 미국의 작은 농장에 사는 열일곱 살 소년이 갑자기 전신 마비가 되면서 말하고 눈동자를 굴리는 것 외에 어떤 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소년의 엄마는 용하다는 의사 세 명을 불러서 소년을 진찰하게 했지만, 세 의사는 모두 똑같은 진단을 내렸다. “죄송하지만 아드님은 곧 세상을 떠날 것입니다.” 몸은 움직일 수 없어도 정신만은 맑게 깨어 있던 소년은 의사의 잔인한 진단에 마음 아파하는 엄마를 보며 속으로 다짐했다. ‘의사의 단언이 절대 현실이 되지 않게 할 거야!’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소년의 엄마는 또다시 의사를 불렀다. 아직 살아 있는 소년을 보고 의사는 무척 놀랐다. 그는 진료를 마친 후 다시 한번 가슴 아픈 진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목숨은 유지할 수 있어도 다시 걷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소년은 또 한 번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절대 의사의 단언이 현실이 되게 하지 않을 거야!’ 그 결과는 어땠을까? 몇 년 후, 소년은 다시 일어나서 걸었고, 여든 살까지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 소년이 바로 유명한 심리치료사 밀턴 에릭슨이다. 그는 의료 최면, 비지시적 최면의 창시자로 ‘현대 최면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어릴 적 이 경험을 통해 그는 언어 속에는 사람의 ‘잠재력’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고, 신체의 질병은 물론 심리적 문제도 이겨낼 수 있게 해주며 사람의 운명을 바꾼다는 것을 발견했다. 훗날 그는 말 한마디로 한 외로운 노부인의 인생을 바꾸었다. 이 이야기가 바로 우리가 살펴볼 두 번째 이야기다.


    말 한마디로 우울증에서 벗어난 노부인

    에릭슨이 미국 중남부 어느 작은 마을에 갔을 때 일어난 일이다. 마을에는 에릭슨의 제자가 살고 있었는데, 에릭슨이 온다는 얘기를 들은 제자는 그에게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선생님, 제 고모를 좀 도와주세요, 고모가 우울증을 앓고 있는데 큰 집에서 혼자 외롭게 지내고 있어요. 생활 방식을 바꿔 보라고 여러 차례 권했지만, 고집이 너무 강해서 제 얘기를 듣지 않아요. 어떻게 해야 할지 선생님께서 와서 좀 봐주시면 안 될까요?”


    에릭슨은 시간을 내어 그 노부인의 집을 찾아갔다. 그가 데리고 간 큰 집에는 듣던 대로 얼굴에 생기가 없고 근심이 가득한 노부인이 살고 있었다. 에릭슨은 노부인에게 집을 둘러봐도 되는지 물었다. 그는 노부인의 생기 없는 생활 환경에서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무언가를 찾으려 했다.


    마침내, 그는 방 한 칸의 창턱에서 유일하게 활력을 가진 제비꽃 화분 몇 개를 발견했다. 에릭슨은 감탄하며 말했다. “정말 아름다운 꽃이군요.” 이 말을 들은 노부인은 약간 감동한 듯 대답했다. “집에서 너무 할 일이 없어서 조금 심어 봤어요. 얼마 전에 꽃을 피웠더라고요.” 노부인의 말에 에릭슨이 건넨 다음 한마디는 노부인의 미래를 바꾸었다.


    “부인의 이웃 혹은 친구들이 그들 인생의 특별한 날, 예를 들어 결혼식, 출산 또는 생일날에 이런 아름다운 꽃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에릭슨은 이 말을 남긴 뒤 유유히 마을을 떠났다. 이후에 노부인은 제비꽃을 대량으로 심기 시작했고 이웃들의 특별한 날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그날이 오면, 가장 아름다운 꽃을 그들에게 선물해주었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나고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녀를 ‘제비꽃 여왕’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어느 날 마을의 지방 신문에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가 크게 났다.


    ‘제비꽃 여왕 영원히 잠들다.’ 그녀의 장례에는 수천 명이 참석해 애도를 표했다. 노부인의 말년은 분명 행복으로 가득했으리라!


    ‘X=Y’로 시청자를 사로잡는 광고 효과

    사용하기 쉬운 동일시 어법

    전통 최면 치료사들이 최면을 진행할 때 많이 하는 말이 있다. “자, 이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뱉으세요. 심호흡을 할수록 온몸이 편안해지고 마음은 차분해질 겁니다.” 사실 심호흡과 몸이 편안해지는 것에는 별 관계가 없다. 하지만 이 둘을 연결 지었을 때 최면의 효과가 나타난다. 일상 속 광고에서 이런 현상을 자주 볼 수 있다.


    진정한 남자의 상징, ○○ 면도기.

    아름다운 여자가 되는 길, ○○ 화장품.

    ○○ 자동차, 세계 최고 안전한 자동차.


    면도기와 진정한 남자는 사실 아무런 관련이 없는 서로 다른 개념이다. 하지만 이 둘을 묶었을 때, 당신은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고 알게 모르게 받아들였다. 이건 또 무슨 최면 어법일까? 이 최면 언어는 인과법과 어느 정도 비슷하다. X로 인해 Y가 생겼으니, X를 받아들인 상대방은 더욱 쉽게 Y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인과법의 논리였다.


    지금 살펴볼 최면 언어는 이보다 더 간략하다. 이 최면 언어는 X와 Y를 곧장 동일선상에 놓아 버린다. 즉,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두 가지 일을 동등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이런 어법을 우리는 ‘동일시 어법’이라고 부른다. 동일시 어법은 비교적 사용하기 쉽다. 그저 상대방이 지닌 자질을 우수한 특성과 동일시하면 긍정적인 최면 작용을 일으킬 수 있고 상대방에게 긍정적인 격려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안경 낀 사람들은 모두 학문에 조예가 깊다.”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모두 긍정적이다.”

    “요리할 줄 아는 사람들은 모두 행복하다.”


    ‘안경을 낀 것’과 ‘학문에 조예가 깊은 것’,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것’과 ‘긍정적인 것’, ‘요리할 줄 아는 것’과 ‘행복’. 사실 이들 사이에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이것들을 동일시할 때 상대방의 잠재의식은 이를 거부하기 어렵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전한 긍정적인 명령이 내면에 각인되기 때문이다.


    선택할 수밖에 없는 ‘선택 없는 선택’

    음식점에서 주문을 할 때 주인이 이렇게 물었다고 해보자. “국수사리를 하나만 추가하시겠어요, 아니면 두 개 추가하시겠어요?” 고객은 하나 또는 두 개 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어떤 선택을 하든 모두 사리를 추가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보기에는 선택지가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어떤 선택을 하든 세워진 틀 안에 있을 수밖에 없는 최면 어법이 바로 ‘이중 혹은 다중 제약’이다.


    상대에게 두 가지 중에서 선택하게 하는 것이 이중 제약이고, 더 큰 선택의 범위를 주어서 선택하게 하는 것이 ‘다중 제약’이다. 예를 들어보자. “나한테 어떤 걸 사 줄 계획이야? 중식, 양식, 한식?” “언제부터 운동할 거야? 오늘, 내일, 아니면 내일모레?”


    위의 두 문장을 제시하면 많은 사람이 중식, 양식, 한식 중 어떤 걸 사 줄지 생각하게 되고, 오늘이나 내일, 모레 중 하루는 운동을 해야 할 것처럼 느끼게 된다. 이와 같은 어법은 판매업계의 한 가지 공인된 철칙으로 인해 아주 유용하게 쓰인다. 이들은 고객에게 반드시 객관식 질문을 해야 한다. 주관식 질문은 절대 금지다. 바로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 세 가지 중에서 어떤 게 마음에 드나요?” 이것은 객관식 문제다. “이 셋의 느낌은 어떤가요?” 이 질문은 주관식이다. 두 가지 질문 방식이 가져오는 결과는 완전히 다르다. 객관식 질문은 한 가지 가설을 숨겨 놓는다. 몇 가지 중에서 선택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이중 혹은 다중 제약이다. 선택지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상대방이 어떤 선택을 하든 우리가 세워 놓은 틀 안에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중 제약을 더 은폐해 놓는 방식도 있다. 상대는 애초에 이게 선택 문제인지조차 알 수 없지만, 사실은 하나의 선택이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당신은 언어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까?” 당신의 대답이 ‘네’나 ‘아니요’ 중 무엇이건 간에, ‘당신에게는 언어 재능이 있다’라는 암시는 이미 당신의 잠재의식 속에 입력되었다.


    직설보다 효과적인 교묘한 암시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다음과 같은 상황이 생길 때가 있다. 상대를 민망하게 하거나 기분 나쁘게 하지 않고 무언가를 지적하고 싶은데, 직접적으로 하자니 너무 무례할 것 같고,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자니 위태롭고 불안한 경우다. 이때 이 어법을 사용하면 그다지 예의 없어 보이지도 않고 상대방도 무난히 받아들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약간의 웃음도 줄 수 있다.


    아이가 장난감을 바닥에 던지며 놀고 있을 때, “그렇게 하면 부서 져, 던지지 마.”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면, 반항심을 불러올 수 있다. 이렇게 말할수록 아이는 더욱 장난감을 던지고 싶어 할 것이고, 더 강력하게 말할수록 자녀와의 전쟁은 피할 수 없게 된다. 말을 살짝 바꿔서 이렇게 말하는 것은 어떨까?


    “아이고, 아파라! 장난감이 지금 많이 아프다는데 살살 가지고 놀까?” 이렇게 장난감을 의인화해서 장난감의 기분을 표현하면 아이는 장난감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해 더 쉽게 공감하며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단속하게 된다.


    선택적 제약 위반을 알게 되면 교묘한 암시가 직접적인 표현보다 낫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완곡하게 돌려서 한 말은 온화하지만 힘이 있고, 잘 사용하기만 하면 자신과 타인 모두 마음 편하고 즐겁게 대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모든 일의 능률이 배가 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삶을 변화시키는 언어의 마술

    상대의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언어의 마술

    한 사람의 신념은 그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행동은 결과를, 즉 오늘날의 일상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인생을 보다 멋지게 변화시키고 싶다면 반드시 과거의 관념을 바꿔야 한다. 하지만 신념이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해 깨부술 수 없다면 어떻게 바꿔야 할까?


    다이아몬드 가공 과정에서 방법을 터득할 수 있다. 다이아몬드는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질이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다이아몬드를 가공할까? 똑같은 재질의 다이아몬드만이 다이아몬드를 다듬을 수 있다. 이와 같은 이치로 누군가의 고집스러운 신념을 바꾸고 싶다면 한 가지 방법, 그의 신념으로 변화시킬 수밖에 없다. 상대방의 힘을 역이용해 상대방의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합기도처럼 말이다.


    이것이 바로 언어의 마술이다. 이 기술은 미국의 심리학자 로버트 딜츠가 신경 언어 프로그래밍을 기초로 발전시켰다. 로버트 선생은 내가 매우 존경하는 학자로 그의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의 가르침은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 그의 이론 시스템에서 나는 많은 영감을 받고 깨우침을 얻었다.


    마술 공연은 바로 눈앞에서 펼쳐짐에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환상적인 일들이 벌어진다. 무언가에 홀린 듯한 기분이다. 하지만 무대 뒤에서 마술의 비밀을 본다면 머리를 탁 치며 “아하!”를 외치게 된다. 언어의 마술, 이 어법은 마술과 비슷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이는 사물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를 크게 바꾸고, 관념을 없애 버릴 수 있다. 이 어법의 구성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 별 어려운 것은 없다.


    하지만 마술의 비밀이 간단하다고 해서, 그리고 그걸 알았다고 해서 마술사처럼 공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 연습하지 않는 이상 말이다. 언어의 마술 또한 그렇다. 알기만 해서는 소용이 없다. 끊임없는 연습을 통해 제대로 장악해야지만 신비한 작용을 발휘할 수 있다.


    언어의 마술은 일종의 교묘한 ‘틀 부수기’ 어법이다. 이는 상대방의 틀에 도전할 수 있지만, 상대방과 갈등을 일으키지는 않고, 교묘한 수법으로 상대방이 고집하는 생각을 없애 버린다. 지금부터는 여러 해 동안의 경험을 결합해서 로버트 딜츠의 이 신비한 어법을 독자들과 나눠보려 한다. 부디 이 언어 모델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


    자존감이 낮다면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라

    불교에서 전해 오는 이야기 중에 ‘입설단비’ 이야기는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다. 불교 경전을 공부하다 난관에 부딪힌 신광 스님은 가르침을 얻기 위해 천 리를 걸어 달마대사를 찾아갔다.


    하지만 달마대사는 조사당 앞까지 찾아온 그를 만나주지 않았다. 때는 추운 겨울이었고 그날따라 폭설이 내려 눈이 신광 스님의 무릎까지 쌓였지만, 그는 조사당 앞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달마대사를 기다렸다. 이에 달마대사가 나와서 이런 식으로 불법을 깨닫고자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그를 꾸짖었다. 그 말을 들은 신광은 자신의 진심과 결단을 보여 주기 위해 날카로운 칼을 뽑아 자신의 왼팔을 잘라 버렸고 그 피는 눈밭을 붉게 물들였다.


    이 이야기가 바로 ‘입설단비’이다. 배움을 얻으려는 태도가 매우 경건하고 정성스러울 때 이 표현을 쓰곤 한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달마대사는 신광에게 물었다. “무엇을 위해 왔는가?” “마음을 편히 하려고 왔습니다.” 그러자 달마대사가 그에게 말했다. “그 마음을 가져오너라, 내가 편안하게 해주겠다!”


    신광은 문득 자신의 마음은 보여 줄 수조차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달마대사는 말했다. “꺼내 볼 수도 없는 마음 때문에 불안해할 필요가 뭐가 있는가!” 신광은 크게 깨닫고 후에 중국 선종의 제2조, 혜가대사가 되었다. 보기에 간단한 한마디가 상대방으로 하여금 관념을 내려놓고 깨달음을 얻게 했다.


    신념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는 현실 검증 전략

    불안한 마음으로 인해 마음을 편하게 하고자 하는 관념은 ‘마음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전제 조건하에 성립된다. 전제가 성립되지 않으면, 결론 또한 자연스레 성립되지 않는다. 다리가 부족한 책상은 서 있을 수 없듯이, 신념 또한 책상다리와 같은 지탱이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는 ‘신념의 전제 조건’을 파고들어서 신념을 파괴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방법을 ‘현실 검증 전략’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우리의 뇌가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건 사실 뇌의 상상에 불과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른들은 아이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혼내곤 한다.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말했다’는 이유다. 사실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실제 경험한 일과 상상 속에서 한 일을 잘 구분하지 못할 뿐이다.


    성인들도 이와 비슷한 일을 종종 겪는다. 나는 분명 상대방에게 말했다고 알고 있는데 상대방은 전혀 모른다고 해서 그와 얼굴까지 붉히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한 명은 얘기했다고 하고, 한 명은 전혀 듣지 못했다고 확신하는 이 상황, 도대체 누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일까?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 말했다고 기억하는 사람이 상상 속에서 말한 것을 사실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현실에서는 입도 벙끗한 적 없는데 말이다.


    사람이 어떤 한 신념에 집착하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 이 관념이 뿌리내릴 수 있는 땅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토양을 갈아엎으면 관념이 뿌리내릴 공간 또한 사라진다. ‘현실 검증 전략’은 신념을 직접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신념의 성립 조건을 깊숙이 파헤친다. 신념이 뿌리내릴 토양이 존재하지 않으면 관념은 그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할 것이다.


    실패가 두렵다면 틀의 규모를 키워라

    2020년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했고, 심리 업계도 이례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이신리’(중국 심리상담 서비스 기업)에서 진행한 업계 조사의 결과에 따르면, 상담사 중 63퍼센트의 소득이 대폭 감소했으며, 심리 교육 쪽 기업들은 거의 아무 수익이 없었다. 나 또한 많은 심리 업계 종사자들과 얘기를 나눠 본 결과, 절대다수가 어려움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020년 한 해는 비관적인 시선이 팽배했다. 딱 한 사람 ‘이신리’의 대표 황웨이창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어렵다고 느끼는 것은 그들이 오직 자신과 회사의 입장에서만 문제를 바라보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저는 심리 업계 전체의 관점에서 현 상황을 바라봤어요. 코로나19는 많은 이의 마음을 피폐하게 했어요. 그래서 그들은 심리상담을 더 원할 것입니다. 고객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그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만 있다면 우리 또한 이 상황을 이겨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 말을 듣고 나는 고대의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의 왕 초공왕은 사냥하기를 좋아했다. 한번은 그가 사냥감을 추격하다가 자신이 아끼던 활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신하들은 벌벌 떨며 왔던 길을 되돌아가 활을 찾아오겠다고 했다. 그러자 초공왕은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초나라 백성이 줍게 될 터인데, 굳이 찾을 필요가 있겠는가?” 같은 일이라도 어떤 사람은 문제라고 생각하는 반면, 또 어떤 사람은 이를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위 두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차이는 문제를 바라보는 틀에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주로 말하는 ‘시야’가 그 차이다. 황웨이창 대표처럼 개인 혹은 자신의 회사 입장에서 봤을 때는 어려움일 수 있으나, 업계 전체적인 각도에서 봤을 때는 어려움도 기회가 될 수 있다.


    생각의 틀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

    아무리 큰 빵도 그 빵을 구워낸 오븐보다 클 수는 없다. 한 사람이 가진 생각의 틀은 이 오븐과 같으며, 그의 사업은 그 오븐 속 빵과 같다. 오븐이 작으면, 빵을 아무리 크게 구우려 해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이 법칙은 사람뿐만 아니라 한 나라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더 큰 빵을 굽기 위해서는 우선 더 큰 오븐을 준비해야 한다. 중국 문화학자 여추우의 말처럼 말이다. “사람의 그릇이 크면, 생활 중 자질구레한 것들 속에서 나뒹굴 일이 없다.”


    ‘틀의 규모 바꾸기’가 바로 그런 언어 기술이다. 이는 질문을 통해 상대가 더 긴 시간 선상에서, 더 많은 사람의 입장에서, 더 높은 곳에서,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새롭게 신념을 평가할 수 있게 한다. 어떤 고정된 관념을 갖고 있을 때 그 틀을 깨기 위해 우리는 조금은 떨어진 곳에서 그 관념을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람이 곤경에 빠지는 것의 근본적인 원인은 사고의 제한이다. 사고의 제한은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넓힐 수 있다.


    시간 타임라인

    공간 위치 감지법

    사고의 높이 의식 레벨


    당신이 이 세 가지 차원으로 이루어진 공간에서 끊임없이 조합할 수 있다면 구속성 신념은 연기처럼 사라진다. 따라서 시간의 틀만 바꿀 수 있다면 기존의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공간이나 사고의 높이도 이와 같다.


    틀의 규모를 바꾸면 인생도 바꿀 수 있다. 바둑을 좀 둬 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느껴 봤을 것이다. 나는 대학생이 되고 나서 처음 바둑을 배웠는데, 시작하고 얼마 동안은 승리를 맛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나중에 한 바둑 고수 친구가 던진 말 한마디로 나는 깨달았다. “그 한순간에만 이기려고 해 봤자 소용없어. 전체를 봐야지.”


    심리학 연구 결과, 실패를 무서워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주 작은 실패라도 용납할 수 없는 게 바로 인간의 본능이다. 사람들은 실패를 피하기 위해 모든 힘을 아주 작은 곳에 쏟아붓고 그 한순간의 경쟁에서 승리하려고 사력을 다한다. 하지만 그렇게 승리를 얻었다 할지라도 전체적인 국면에서는 패배할 수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실패를 피하려고 아예 행동 자체를 포기한다. 시도하지 않으면 실패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더 큰 실패일 것이 분명하다.


    실패가 두려워 시도조차 못하고 있다면 틀의 규모를 바꾸는 방법을 터득하면 된다. 그리고 사소한 실패는 전체적 국면에서의 승리를 위한 한 발짝이자 하나의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야만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인생에서 더 큰 승리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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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