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바꾸는 인생 공부
 
지은이 : 신진상
출판사 : 미디어숲
출판일 : 2023년 05월




  • 우리는 왜 고전을 읽어야 할까요? 인생에서 만나는 수많은 난제에 대해 고전이 족집게 같은 해답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프롬과 니체부터, 공자와 손자에 이르기까지 고전이 답합니다.


    내일을 바꾸는 인생 공부


    이기적 유전자의 ‘가치관’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사랑한 철학자의 충고

    세계적인 철학자가 월든 숲에서 살았던 이유는 자연이 아니라 ‘삶’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이 맞습니다. 인생에서 추구해야 할 가치 중에서 삶 이상의 것은 없습니다. 돈도 사랑도 가족의 행복도 자기 삶이 있어야만 가능한 가치들입니다. ‘행복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려면 그 전에 자기 삶부터 사랑해야 한다’라는 소로의 가르침은 지금 이 시대에도 시사해 주는 바가 큽니다.


    소로가 몸소 살았던 깨어 있는 삶은 현대적으로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우선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가치를 거부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돈을 많이 버는 것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너무나 중요하지만 오로지 돈만 추구하며 모든 것을 돈의 잣대로 이해하려 한다면 가치 없는 삶이 될 수 있습니다.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 줄 정도의 경제적 부는 필요하지만, 그 이전에 삶의 가치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최고라고 생각하는 가치관이 다릅니다. ‘사랑’을 제일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사람, ‘돈’을 최고로 생각하는 사람, ‘명예’를 으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모두 제각각이죠. 그런데 어떠한 하나의 가치에 너무 몰입해 우위에 두는 삶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도법 스님의 가르침은 자신의 삶을 옥죄는 모든 절대적인 가치를 거부하라는 뜻입니다. 설사 그것이 자신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일지라도 말이지요. 도법 스님이나 헨리 데이비드 소로 모두 같은 가치를 말합니다.


    “있는 그대로 자신의 삶을 사랑하라. 그것이 바로 깨어 있는 삶이다.”


    깨어 있는 삶은 자신의 생각을 깊이 성찰하고 분석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삶의 가치를 우선으로 추구해야 한다면 어떤 일을 해야 할까요? 삶은 ‘산다는 것’을 전제하니 살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해도 된다는 사실을 의미할까요? ‘삶이 가장 소중한 가치’라는 뜻은 ‘무슨 일을 해도 좋다. 설사 타인을 해치는 일이라도’와는 다릅니다. 내게 주어진 것들을 사랑하고 내게 없다고 해서 자신을 탓하거나 남을 부러워하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남을 탓하거나 남을 부러워하는 것, 그것이 바로 불행의 씨앗입니다.


    이기적인 유전자의 사회적 진화 프로그램

    ‘이기적인 유전자’를 쓴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인간의 번식은 유전자를 존속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이라고 주장합니다. 유전자의 프로그램 때문일까요? 인간은 생존을 위해 누구나 자기 이익을 추구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의 이익이 충돌할 때 갈등을 겪게 됩니다. 나와 타인의 이익이 충돌할 때 사회는 어떤 기준에 따라 해결할까요? 바로 ‘정의’와 ‘공정성’입니다. 사회에서 공정성이 사라질 때 그 사회는 부패합니다.


    공정성에 대해 고민한 철학자가 있습니다. 바로 맹자입니다. 맹자의 경전 제1장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한자는 바로 ‘의’입니다. 맹자가 말하는 ‘의’는 쉽게 ‘정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맹자는 ‘인’과 ‘의’를 동시에 강조하고 있지만 무게 중심은 뒤에 있습니다. 공자는 ‘인’을, 맹자는 ‘의’를 강조했죠. ‘인’이 개인적인 덕목이라면 ‘의’는 바로 사회적인 가치입니다. 맹자는 ‘의’가 아닌 이익을 추구할 때 사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예견했습니다. 모두가 같은 이익을 추구하면 결국 모두가 손해를 보는 세상이 올 수 있음을 맹자는 경계합니다. 사람들은 각자 이익을 추구합니다. 국가는 많은 사람의 이익을 조율하고 조정하는 협의체입니다. 그래서 국가는 ‘의’를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정의와 공정성의 가치가 화두에 오르곤 합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특히 아빠 찬스와 엄마 찬스를 이용해 자녀 교육에 특혜를 준 사실에 분개했습니다. 정의가 훼손된 사회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양분화시켜 사회 통합을 저해하고 분열시킵니다. 우리 사회가 지금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각자 자기 이익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사회에서 공정성과 정의의 가치가 훼손되지 않게 노력해야 합니다. 맹자는 이기적인 유전자를 가진 인간이 사회에서 조화롭게 살기 위해서 ‘의’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모든 ‘갈등’에서 벗어나기

    ‘다르다’와 ‘틀리다’는 다르다

    인간은 무인도에서 로빈슨 크루소처럼 살지 않는 한 타인과의 갈등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갈등은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지만 궁극적으로 이유는 같습니다. 바로 너와 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르다’라는 말을 ‘틀리다’로 해석하면 어떻게 될까요?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며 상대를 공격합니다. 즉, ‘아시타비’가 되는 것입니다.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토마스 홉스는 인간이 다른 인간과 갈등을 빚는 이유는 바로 인간의 ‘자기 보존에 대한 욕구’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저서 ‘리바이어던(Leviathan)’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은 기계나 다름없다. 이 기계는 자기 보존의 운동을 통해 움직이거나 생명을 유지하게 된다. 인간은 더 높은 곳, 선 아니면 신을 향해 노력하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의 움직임은 인간을 움직이는 데만 기여한다. 인간은 천성적으로 자유의지가 없는 충동적인 존재다. 자기 보존 외에 인간은 다른 것에 관심이 없으므로 인간은 항상 자기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고 언제라도 부족한 재화를 얻기 위해 싸우고자 한다. 상상할 수 없는 가장 나쁜 경우인 자연 상태에서 인간의 삶이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다. 삶은 고독하고, 불쌍하며, 거칠고, 동물적인 투쟁이다.”


    홉스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생존을 위한 기계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사람에게 있어서 늑대’라고 그는 말합니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죠.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타인을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이 모여 사는 사회는 정글의 법칙이 적용됩니다. 오직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오징어 게임과 같은 세상이 바로 사회인 것이죠.


    인간은 그래서 갈등 조절 기구로 국가라는 ‘리바이어던’을 만들었습니다. 성서에 등장하는 괴물인 리바이어던은 바로 ‘국가’를 뜻합니다. 국가는 물리력을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습니다.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경찰과 군대라는 폭력 수단을 사용하는 조직이 국가입니다. 사람들은 국가가 어느 정도 자신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을 알면서도 더 큰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국가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이죠. 즉, 최악을 피하기 위한 차선책입니다. 국가라는 사회계약은 이렇게 이루어진 셈입니다.


    홉스는 국가를 거대한 유기체로 상상했습니다. 국가의 가장 높은 꼭대기에 왕이 있다고 생각한 홉스는 절대 왕정을 옹호했다고 합니다. 그는 모든 신하는 왕에게 충성을 바칠 의무가 있지만 그렇다고 왕은 모든 신하를 보살필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홉스가 활동하던 당시 영국은 왕과 시민 간의 치열한 갈등이 벌어져 결국 시민군이 왕인 찰스 1세를 단두대에 세워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왕을 처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우려하면서 쓴 책이 ‘리바이어던’입니다.


    따라서 현재의 관점에서 홉스의 견해는 분명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 대 인간의 갈등이 사회를 움직이는 축이고, 이를 막기 위해 자신의 권력을 조금씩 특정인에게 위임해 질서를 유지한다는 원칙은 지금의 민주주의나 당시와 같은 권위주의 사회나 같습니다.


    갈등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타인과의 갈등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왜 사람들은 남과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까요? 그 이유는 자신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장자가 제시한 갈등의 처방은 바로 ‘연결’을 통한 ‘소통’입니다. 연결은 너와 내가 설사 다르다고 해서 관계를 끊지 않습니다. 다르다고 해도 얼마든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고, 너와 내가 연결되어 세상을 이루고 있다는 기본적인 세상의 구성 원리를 받아들이는 것이죠.


    장자가 생각한 갈등 해결의 궁극적 목표는 소통이지만 실천이 힘들다는 건 장자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궁극의 목표라고 말합니다. 특히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정치인은 겉으로는 소통을 강조하면서 속으로는 부정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소통이 이리도 어려운 이유는 바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하고, 그 틀림을 바로잡으려는 인간의 ‘욕심’ 때문에 소통은 늘 요원하게만 보입니다. 다름을 차이로써 인정하고 고치려고 하지 말라는 가르침은 공자도 하셨습니다. ‘논어’의 ‘자로’ 편에 보면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공자가 말하길, “군자는 화목하되 부화뇌동하지 아니하며, 소인은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화목하지 못한다”


    갈등의 가장 좋은 대처 방법은 ‘화’입니다. 자기와 다른 가치를 존중하는 것이죠. 타인을 지배하고 자기 뜻을 강화하려는 자세에서 벗어나 사람과 사람, 문명과 문명, 나라와 나라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습관’의 새로 고침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결국 습관의 문제

    습관이 중요한 이유는 사고가 습관을 만드는 게 아니라 습관이 사고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무언가가 습관이 되면 편해집니다. 그러면 습관대로 살고 생각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처럼 지금까지 해 온 일들이 당연지사로 느껴지면 자기 삶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발견하는 비판적 사고가 마비됩니다. 비판적 사고의 마비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무엇이 내게 필요하고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 등에 대한 감각을 사라지게 합니다. 지금까지 해온 그대로 길들게 되는 것이지요.


    공자는 나쁜 습관을 없애는 방법보다는 좋은 습관을 어떻게 몸에 익힐지에 대해 강조합니다. 그가 강조하는 습관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생활 속 습관’이라는 말처럼 일상생활 속 습관은 작으면 작을수록 좋은 법이지요. ‘논어’에서는 작은 습관의 중요성을 ‘군자무본’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유자가 말하길, “그 사람됨이 효도할 줄 알고 공경할 줄 알면서 윗사람을 거역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윗사람을 거역하는 걸 좋아하지 않으면서 난을 일으키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군자가 근본에 힘을 쓰는 것은 근본이 세워져야 도가 생기기 때문이며, 효도하고 공경할 줄 안다는 것은 바로 어짊의 근본이다!””


    유자는 공자의 3대 제자인 유악을 말합니다. ‘근본에 힘을 쓴다’라는 것은 기본에 충실하다는 뜻입니다. 작은 것에 충실해서 좋은 습관을 쌓으라는 것이죠. 효도를 습관화한 사람은 직장에서 윗사람과 갈등을 덜 빚고 우호적인 관계로 생산성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공자는 인을 실천하라고 하기보다는 효도하고 공경하는 실천적 태도를 습관화할 것을 요구합니다. 습관은 이처럼 거창하고 묵직하기보다는 잘게 쪼개면서 각개 격파하는 전략으로 나아가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유교에서 강조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도 결국은 습관의 문제입니다. 나를 수련하고 가정을 다스리는 습관을 형성하면,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화롭게 한다는 인과관계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습관의 시작은 작을지언정 결과는 거대한 성취로 이어집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습관의 힘

    니체가 본 인간이 악습에 빠지는 이유는 바로 그게 쉽기 때문입니다. 악습에 젖어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만큼 고통스럽고 피를 말리는 게 없습니다. 나쁜 습관의 문제점은 그것이 얼마나 나쁘고 내게 부정적인가를 모르는 상태에서 악습을 반복하면서 상황을 더욱 나쁜 방향으로 끌고 간다는 사실입니다. 신을 우습게 보는 니체가 악습에 빠진 인간도 우습게 보는 것은 이해할만한 일입니다. 가까운 사람이 악습에 빠져 자신을 망치는 것을 보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것은 없습니다.


    삶의 능동성과 역동성을 강조했던 니체는 악습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들을 위해 어떤 조언을 했을까요? 우리는 신체를 긍정하고 의식을 노예로 본 니체의 관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니체에 따르면 습관은 신체적인 것이 아니라 의식적인 것입니다. 뇌에 깊숙이 박혀 있는 습관은 놀라울 정도로 끈질깁니다. 우리의 손이 담배를 피우는 것이 아니라 니코틴을 간절히 원하는 우리의 뇌가 담배를 피우는 거죠. 잘못된 습관은 인간을 노예로 전락시킵니다. 우리는 신체가 지닌 역동성과 반동성으로 좋은 습관은 받아들이고, 나쁜 습관을 물리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니체의 해결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쁜 습관의 가장 큰 문제는 중독성 때문입니다. 악습은 언제든지 다시 그 습관으로 돌아가려는 관성이 있습니다. 인간은 간사하여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유혹하죠. ‘맞아, 그때가 좋았어.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이 다시 폭식해서 살이 찌는 요요 현상이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이럴 때는 자신이 나쁜 습관과 결별하려 했던 근본적인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처음 나쁜 습관을 끊고자 했을 때 그 느낌과 이유를 적어놓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노트가 되었든 인터넷 메모장이 되었든 그 이유를 적고 의지가 약해질 때마다 다시 돌아보면서 나쁜 습관과 결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유혹에 흔들릴 때마다 자신의 시야를 넓혀서 먼 미래에 내가 얼마나 행복할지를 그려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꽃을 피우는 ‘목표’

    목표 달성에 성공한 사람들의 특성

    나폴레온 힐은 성공한 이들을 분석해서 어떤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상상력’입니다. 공상으로 끝나는 상상력이 아니라 미래에 실현된 기술과 부의 흐름에 대한 상상력이죠. 이 상상력은 끝없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행동할 때만 내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슬럼프에 빠질 시간도 그들에게는 아깝게 여겨지겠죠. 슬럼프는 사람을 수동적인 존재로 만듭니다. 성공에 안주해서 또 다른 성공이 마치 감나무 밑에서 감이 떨어지듯 내게 찾아올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죠. 슬럼프를 이겨내려면 능동성의 스위치를 항상 켜고 있어야 합니다.


    목표 달성에는 분명하며 매우 단순한 것들이 필요하다

    경영학은 자본주의 학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경영학은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경영자가 직원에게 어떻게 동기부여를 하는지에 대한 이론입니다. 조직의 목표 달성을 위한 고민은 개인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가 1966년에 출간한 ‘자기경영노트’는 지금도 자기경영 분야의 훌륭한 지침서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피터 드러커로부터 배워야 하는 것은 바로 어떻게 목표 달성 능력을 배울 수 있는지에 대한 통찰입니다. 그는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지능, 상상력, 지식이 모두 필요하지만 그것을 꿰는 실은 바로 ‘목표 달성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피터 드러커는 실천하지 않는 지식은 무용지물이라고 지적합니다. 실천과 생각하기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서 돌아가야 합니다. 실천하기 전에 이런 것들을 고민하고 필요하면 계획서를 만들어 작성해야 합니다.


    앞으로 내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가 먼저 고민의 대상입니다. 그리고 바라는 결과와 예상되는 제약을 반드시 고민해야 합니다. 물론 미래는 언제나 그렇듯 돌발변수가 생겨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 내가 그린 미래와 실제 만날 미래의 갭을 줄일 수 있는 것입니다.


    피터 드러커는 특히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가 목표 달성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계획 없이 성공적인 전쟁을 치를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시간을 세분화해 세운 계획이 없다면 경영자는 결국 시간의 포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미래와의 전쟁에서 지는 거죠. 아무리 지적 통찰력을 지닌 인물이라도 체계적인 계획이 없다면 성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피터 드러커는 실천 계획을 꼼꼼히 세웠다면 그 순간부터 중요한 것은 ‘실행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단언합니다. 실행 능력은 학습과 반복으로만 익힐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자신감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복과 학습을 통해서 자신감을 획득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피터 드러커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강점 파악 능력’입니다. 뛰어난 경영자 그리고 성공한 지식 노동자는 강점 판독가입니다. 자신의 강점을 파악하고, 팀원의 강점을 파악한 후 경쟁 상대의 강점을 파악합니다. 강점을 파악하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되며, 할 수 있는 것에 시간을 집중해 성과를 이뤄냅니다.



    사랑의 기술은 지금도 진화 중

    잃어버린 사랑을 찾기 위한 ‘사랑의 기술’

    사랑의 기술도 교과서 공부처럼 배워야 할까요? 아니면 사랑은 인간의 본성이기에 따로 배울 필요가 없을까요? 20세기 최고의 심리학자로 꼽히는 에리히 프롬은 대표작 ‘사랑의 기술’에서 단언합니다.


    “사랑은 타고 나는게 아니라 배우는 것이다”


    20세기에 쓰인 책으로 아직 고전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이를 수도 있겠지만 사랑에 관한 책 중에서 이보다 더 훌륭한 책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은 사람들이 배워야 하는 기술에 가깝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누구나 사랑을 갈망하지만 정작 사랑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죠.


    첫 번째는 대부분의 사람이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즉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받는’ 문제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주고받는 상호작용이지만 사람들은 사랑받으려고만 합니다. 주려는 사람과 받으려는 사람은 1대 1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을 주기보다는 받으려고만 하니 심각한 불균형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제대로 사랑하기가 어려워지는 겁니다.


    두 번째는 사랑이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이 문제라는 관점 때문이죠. ‘누구’를 사랑하느냐가 ‘어떻게’ 사랑하느냐보다 물론 중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에리히 프롬은 말합니다. 사랑하는 대상의 발견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상대를 제대로 사랑하기는 그보다 훨씬 더 어렵다고 말합니다.


    세 번째 이유는 사랑하게 되는 최초의 경험과 사랑하고 있는 지속적인 상태, 즉 사랑에 머물러 있는 상황을 혼동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누군가를 만나 행복해지는 경험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사랑의 감정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첫눈에 반한 것이 단순한 욕정이었음을 알게 된 이후에 헤어진 부부나 커플이 얼마나 많은가요. 지속적인 사랑의 관계 유지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따라서 ‘사랑의 기술’을 배워야 합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순수한 사랑은 누군가에 의해 야기된다는 의미에서의 감정이 아니라 사랑받는 자의 성장과 행복에 대한 능동적 갈망이며, 이 갈망은 자신의 사랑의 능력에 근원이 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할 줄 아는 힘’의 실현이고 집중화이다. 사랑에 내포된 기본적 긍정은 본질적으로 인간적인 성질의 구현자로서의 사랑하는 사람을 지향하고 있다. 한 사람에 대한 사랑에는 인간 자체에 대한 사랑이 내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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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