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티뉴어스
 
지은이 : 윤소정
출판사 : 다산북스
출판일 : 2023년 05월




  • 속상해하지마세요. 우리 모두는 느긋하게 성장할 뿐입니다. 더 잘하고 싶어서 자꾸만 조바심이 생기는 당신에게 지치지 않고 오래오래 일하는 법, 진정으로 ‘나’를 키우는 법을 이야기합니다.


    컨티뉴어스


    시간의 중력: 시간에도 무게가 있다면?

    20대의 빠른 실행력은 30대의 조급함이 된다

    20대 윤소정은 매우 빨랐다. 전투력이 좋았다. 1000시간 영어 공부를 하면 영어 천재 된다고? 강사님 말만 따라 해서 6개월 만에 진짜 한양대 외부 영어 강사가 되었다. 리더들은 인문학을 공부한다고, 전국의 기업가들을 위한 강연을 연다는 설명을 보고 겁도 없이 학교 등록금을 빼서 회장님들과 함께 공부하러 갔다. 결국 그들 중에서도 10퍼센트 들어가는 인문학 클럽에 들어가 진짜 넓은 세상을 볼 수 있었다.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통장에 2000만 원만 있어도 2000만 원 내고 외국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배웠고, 적용했고, 써먹어서 꽤 멀리 왔다. 진부하지만 사실이다. 땡전 한 푼 없이 시작해서, 이만큼 온 건 그 빠른 행동력 덕분이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 난 변한 게 없는데 30대가 훌쩍 넘은 지금은 빠른 실행력이 조급함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인스타그램 잘하는 사람들을 보고 영감 얻어 실천하면 내 색이 사라지고, 번쩍이는 아이디어라고 다 실행하면 팀원들이 폭발한다. 멋진 사람이라고 다 만나 배웠다가는 집중력이 고갈된다. 급한 성격 덕분에 20대에는 빠르게 실행하며 꽤 멀리 왔는데, 30대에는 조급함이 되어 내 발목을 잡는다. 일정 궤도에 오르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기술이 있다. 게임을 쉽고 빠르게 이기도록 도와주는 명력어, ‘치트키’가 달라진 거다. 난 그 코드를 새롭게 찾아내야 했다. 일정 궤도에 올라오면 언어가 달라진다.


    마치 히말라야를 오를 때, 여기까지는 차를 탈 수 있지만 여기부터는 걸어가야 하고 여기부터는 눈발이 거세 아이젠을 착용하고 걸어가는 기술이 필요한 것처럼. 또 일정 구간부터는 헬기를 타지 않고는 보지 못하는 세계가 있듯 이 언어 체계가 달라진 세계가 있다. 서른 중반. 지금인가보다. 빠른 속도가 내 발목을 잡는 시점에는 무기력해질 줄 알았다. 아니다. 숙성의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당황했다. 나···. 전투력이 왜 이리 떨어졌지? 무기력한 건가? 최근 만난 20대 친구들은 전투력이 좋았다. 옛날의 나처럼 그날 배운 것을 바로바로 실천해서 멋진 결과를 낸다. 그런데 나는? 움직이지 않는다. 이런 내가 낯설다. 열정이 없는 걸까? 늙은 건가? 그건 아닌데···. 아, 성격 급한 윤소정은 이제야 ‘숙성의 힘’을 키우고 있다. 늘 아이디어가 생기면 시도부터 했던 나에게 생긴 새로운 변화다 김치가 숙성의 시간을 거쳐야 감칠맛을 내듯, 위스키도 숙성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가치가 높아지듯, 아이디어도 숙성의 시간을 거쳐야 심플해진다는 것을 몸이 알아차린 거다. 복잡한 아이디어는 늘 복잡한 결과를 만들었다. 심플해질 때까지 숙성의 시간을 거쳐야 함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선택의 중력: 그때는 옳았지만, 지금은 틀린 것들

    지속하지 못해서 사라지는 힙한 가게들

    옆집 사장님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오늘 송리단길에서 가장 힙했던 카페가 또 영업을 종료했다. 이로써 비슷한 시기에 함께 오픈한 다섯 개 매장이 모두 문을 닫았다. 이 골목에 남은 건 오직 우리뿐. 그래서 기쁘냐고? 전.혀. 씁쓸함에 침까지 쓰다. 남 일이 아니다. 나도 3년 전, 8년간 영혼을 갈아 넣어 만들었던 브랜드를 정리하고 여기서 다시 시작했으니까.


    시작하고 딱 1년 만에 코로나가 터졌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업을 여섯 배로 성장시켰다. 하지만 벌써 사업 16년차. 키우는 것이 제울 쉽다는 것쯤은 안다. 급속도로 성장시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속하는 것···. 그건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20대에는 꿈이 영원할 것 같았다. 실적도 좋았고, 그야말로 힙했다. 유일무이했다. 그러나 지속가능성에 대한 개념을 배워본 적 없었던 난 실수투성이였다. 그때는 일단 ‘시작’만 할 줄 알았다. 심지어 작은 카페 같은 것을 오픈하면서 퇴로를 짠다는 건 바보들의 일인 줄 알았다. 어리 나에게 누구도 ‘입구’, ‘출구’의 개념을 설명해주지 않았으니까. 참 상식적인 건데 말이다. 꿈만 꾸라고 했지, 끝점을 그려보자고 한 어른을 만나지 못했다. 영원할 것 같던 국가도 사라지는 판에 매장이 사라지는 것, 브랜드가 소멸하는 건 당연한 일인데 왜 나는 젊음, 패기, 하루살이 인생의 플랜만 알고 있었을까?


    20대는 입구를 찾고, 40대는 출구를 찾는다. 그러나 지속가능성을 생각해 보지 않고 출구 없이 일하면 결국 내가 걸었던 길은 미로가 되어 내 손으로 그 길을 폭파해야 한다. 반면, 제국이 되었다는 것은 이제 쇠퇴할 일만 남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린 날의 난 성장한 뒤에 오래 지속하는 것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평생 건강할 줄 알아서일까? 늘 오늘이 전부인 양 다 갈아 넣어 일했다. 그러다 보니 진짜 오늘밖에 없었다.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쯤, 우린 몸이 지쳐서 자신의 성을 스스로 부수게 된다. 지속한다는 것에 대한 개념 없이 시작한 모든 친구의 최후였다.



    마음의 중력: 착해지기 전에 강해지기로 했다

    착해지기 전에 강해지기로 했다

    네가, 내 글을 좋아할까?

    네가, 내 수업을 좋아할까?

    네가, 내 제품을 좋아할까?

    네가, 우리 회사를 좋아할까?

    .

    .

    .

    청소를 해두면 엄마가 좋아하겠지?

    시험을 잘 보면 엄마가 좋아하겠지?


    날 병들게 했다.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 너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 세상에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좋게 포장하면 고객 중심적 사고다. 까보면 뭣도 아닌 나약한 마음이다. ‘윤소정의 생각’을 유재석이 구독했다면? 크하···, 유재석이 나를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커질수록 의식하게 되는 것. 참 초딩 같은 마음이다. 이 초딩 같은 마음으로는 험난한 세상에서 무엇 하나 할 수 없단 걸 난 일찍이 받아들여야 했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난 스물한 살에 꿈과 희망에 가득 차 일을 시작했다. 순수했지만, 순진했다.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지만 온몸이 부서져라 하니까 뭔가 좀 이룬 것 같았다. 개뿔, 아니었다. 내가 만든 교육으로 2만 명을 모았다는 사실에 취해 내가 커뮤니티 비즈니스, 사람 모으고 연결하고 이런 걸 잘한다고 착각했다. 심지어 천직이라고 생각했다. 완벽한 착각이었다. 난 사람과 관련된 일을 하기엔 최악의 성격이다. 그러나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진짜 잘하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야 받아들였다.


    한번은 남편이 이런 얘기를 했다.


    “당신은 진짜 커뮤니티, 사람 만나는 일. 이런 거 하면 안 되는 사람이야. 오히려 사람들을 위한 일에 잘 맞는 사람은 S같은 독한 놈이지. 나 그 사람 진짜 별로야. 정말 싫어. 내 친구 T는 그 새끼가 너무 싫어서 청부살인이라도 하고 싶은 충동까지 일어났더래. 근데 S가 만든 커뮤니티를 봐. 순식간에 100억짜리 규모로 만들었어. 그는 자신과 뜻이 다른 수많은 사람을 적으로 만들었어. 그런데 앞으로 나아갔지. 나쁜 사람? 글쎄. 분명한 건 나도 인정해야 했다는 거야.


    그 사람이 만든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은 성장했어. 또 우리 회사만 좋은 회사냐? 아니. 그 사람 회사도 좋은 회사야. 어쩌면 우리 회사보다 더 좋은 것들을 하고 있어. 그는 그냥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해 적을 만드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 사랑받으려 하지 않고, 인정받으려 하지 않지. 근데 윤소정은? 사람들을 너무 신경 써. 진짜 큰일을 해야 할 때 마음에 걸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 당신은 사람과 연결될수록 마이너스야. 그 사람들 다 챙겨줘야 하거든. 그래서 목표에 써야 하는 에너지를 사람들에게 쓰고 있지. 냉정하게 생각해 봐···. 그런 마음으로 진짜 사람을 위한 일을 할 수 있나?”


    너무 뼈 때리는 말이라 한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릴 때는 그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젠, 정말 모르겠다. 도대체 나쁜 사람이 누구고 착한 사람은 누군지. 분명한 건 그는 강한 사람이었다는 거다. 적어도 나보다는 훨씬 강한 사람. 커피숍에 앉아 있는데, 어떤 돈 많은 사모님이 그런 말씀을 하고 있더라.


    “세상 사람들은 무언가 이룬 이들을 보고, 참 저 사람 세 보인다고 하거든? 잘 보면,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은 약한 사람들이야. 반대로 그들이 세 보인다고 하는 사람들이 ‘강한 사람들’이지. 자기 뜻을 펼치려면, 이 땅에선 강해야 해. 심지도, 신념도, 의지도 강해야 해.”


    그 말을 듣는데 왜 청승맞게 눈물이 났을까? 나도···, 참 강해지고 싶나 보다. 약한 이 마음 개나 줘버리고 싶다. 정말 난 자꾸 신경이 쓰인다. 뒤처진 사람, 소외된 사람, 표정이 좋지 않은 사람, 아픈 사람,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이해하지 못할 사람, 혹시라도 상황이 좋지 않아 나에게 상처받을 사람까지. 참 오만 가지가 다 신경이 쓰인다. 그게 착한 마음인 줄 알았는데 아니다. 약한 마음이다. 사랑하는 것들을 지켜가려면 착해지기 전에, 강해져야 했다.



    안목의 중력: 아무리 노력해도 배울 수 없는 게 있다면?

    안목의 삽질

    그때부터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는 게 맞는 표현일 거다. 정말 포기하지 않고 계속 떠났고, 지금도 그러하다. 좋아하는 것과 좋은 것은 다르며, 좋아 보이는 것을 만드는 것과 좋은 것을 만드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좋은 것을 볼 때는 좋아만 하지 않고 왜 좋은지 알려 했고, 좋은 공간에 가면 어느 브랜드를 쓰는지 스스로도 민망해질 만큼 찾아보고 기록했다. 더불어 여기가 왜 좋게 느껴지는지 대화할 수 있는 사람들을 곁에 많이 두려 했고, 이런 나를 귀찮아 할 정도로 철판 깔고 물어봤다.


    “대표님, 이거 어디 브랜드예요? 왜 이 브랜드 쓰신 거예요?”

    “인테리어 실장님, 이 사진 속 가구가 어디 건지 알아봐 주실 수 있어요?”

    “여보, 가서 물어봐 봐. 여기 인테리어 어디서 했는지.”


    세상에 ‘감각적으로 보이는’ 사람은 참 많지만 감각적으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이는 몇 없다는 걸 안 순간부터, 난 글로 쓰는 뻔지르르함의 뻔뻔함을 인지하게 되었다. 매일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찍던 시간에 설계도를 보려 했고, 셀카 대신 벽면이 어떻게 생겼고 어떤 브랜드를 썼는지 디테일을 찍기 시작했다. 좋아 보이는 것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만 진짜 오래도록 좋은 작품을 만들기까지는 삽질 또는 삽질의 시간이 필요해서, 거리 앞에서 난 늘 학생이어야 했다.


    전 세계로 트렌드 투어를 다니다 보면 얼굴이 빨개지는 순간들이 있다. ‘어머···. 여기 이 디자인 카피한 거야?’ 모두가 알 만한 가장 핫한 브랜드들의 카피 흔적을 수도 없이 목격했다. 물론 카피하고, 그 정도의 브랜드로 키워내기까지 그들도 머리통 터지게 고민하고 깨졌다는 걸 안다. 카피는 창작의 시작이지만, 끝이 돼서는 안 된다. 안목을 키워가는 방법으로 얼마 전 우리 캡틴은 팀원들에게 “편집숍을 만들기 전 1000장의 사진을 찍어 오세요”라는 미션을 줬다. 여기서 핵심은 진짜 1000장을 찍어보라는 거다.


    이는 많은 브랜드에서 신입을 훈련시키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 과정에서 감각이 꽤 열린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는 사람이 있고, 자기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있다. 진짜 내 것을 만들고 싶다면 고통의 과정에 아주 깊게, 또 깊게 들어서야 하는데···. 아, 이게 진짜 뼈아픈 일이다.


    카피캣이 되고 싶지 않다. 분명 훌륭한 예술가들도 일정 시간은 남을 따라 하고, 수많은 자료를 보며 그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그러나 대부분은 자신의 분위기를 넘어서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부끄러운 지도 모른 채. 진짜들은 온몸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안다. 뿌리부터가 다르다. 남의 것을 보고 따라 한 것은 가짜 냄새가 난다. 미술관에 가보면 기념품 샵에서 원본을 카피한 제품을 판다. 왜 그건 가지고 싶지 않을까? 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경험상 자기 안의 것을 꺼내 쓰는 이들은 이쑤시개 하나에서도 냄새가 난다. 분위기가 있다. 내가 곁에 두고 싶은 것들은 그 분위기들이며, 알아보고 싶은 것들은 진짜배기들이다. 친구 하고 싶은 사람들은 와인 한 잔 두고 밤새도록 그 가치에 대해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이들이다. 한 친구가 물었다. 진짜 내 것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그녀에게 다음 글을 전해주고 싶다.


    “어릴 때부터 좋은 옷을 많이 입은 아이들은 좋은 배우자를 만날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연애 상대를 선택할 때 자신이 입던 옷의 소재와 촉감의 옷을 입은 이들이 자연스레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죠.”


    어디선가 주워들은 이야기인데 지금까지 기억하는 걸 보면 꽤 충격적으로 공감했었나 보다. 패션업을 하다 보면 절실해진다. 좋은 퀄리티의 옷을 만들려면 좋은 옷을 온몸으로 기억하는 팀원이 많아져야 한다. 온몸으로 기억하는 것이 자산이다. 나야 일을 핑계로 좋은 옷을 수도 없이 입어봤지만, 진짜 일을 하는 건 팀원들이다. 백번은 강조했을 거다. 사지 않아도 괜찮으니 백화점에 가서 좋은 옷을 입어보고 또 입어보라고. 그 촉감을 기억해야 좋은 옷을 만들 수 있다고. 더불어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진짜가 되려면, 좋은 것이 왜 좋은 것인 지까지 알아보는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좋은 교육도 마찬가지고, 공간도 마찬가지다. 경험으로 기억해야 한다. ‘온몸의 감각이 기억하는 일이 첫째다.


    요새 만나는 친구마다 자기만의 것을 가지고 싶단다. 퍼스널 브랜딩을 어떻게 하냐고 묻는다. 내가 퍼스널 브랜딩이 안 된 이유는 아직 드러날 만큼 가진 게 없어서고, 가진 게 있다고 생각하지만 생각보다 초라하기 때문이다. 내 것을 가졌을 때 브랜딩이 될 것이다. 지금 당장은 어렵다. 그러나 나는 꼭 가지고 싶다. 윤소정의 것. 이번 생에 안 된다면 다음 생에서라도 꼭 가져보려고 오늘도 나를 쓴다.



    우리의 중력: 내 인생 최고의 자산은 함께 일한 동료들입니다

    오래오래 돈을 법시다

    난 팔로워 수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다. 원래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SNS에 팔로워 숫자가 많은 인풀루언서를 보며 주눅 들었던 나날도 있다. 하지만 ‘오래가는 숫자’의 비밀을 알게 된 이후부터 다른 숫자를 보게 된다. 큰 숫자는 의미없었다. 그중에 쌓인 인연이 과연 몇 명인지에 따라서 관계에도 중력의 법칙이 작용하는 법이다.


    준오헤어 대표님이 비밀 그래프를 보여주신 적이 있다. 디자이너의 매출이 떨어졌다는 건 ‘단골손님’ 관리를 안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단골의 방문이 줄어들면 신규 고객 유입률은 자동으로 떨어진다. 새로운 매출을 더 내려고 마케팅을 할수록 망하는 이유다. 진짜배기 디자이너들은 단골을 쌓고, 쌓아서 10년째 오는 고객이 전체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너무나 당연한 원리인데 쉽게 잊어버리는 관계의 법칙이었다. 돌아보면 내가 ‘단골’로 가는 가게는 나에게 장사하지 않았다. 장사를 하지 않았더니 진심이 팔리기 시작했다는 대목이 딱 어울리는 사장님들이었다. 오히려 그들이 장사를 멈출까봐 내가 홍보를 하고 다녀줬다.


    블로그에 쓰던 글을 유료 구독 서비스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한 2019년 10월. 그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10만원을 지불하며 아직 발행되지도 않은 글을 사겠다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85퍼센트가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다. 내 글을 오래 읽은 친구는 13년째 친구다. 계속 글을 쓰는 나도 대단하지만, 꾸준히 읽는 친구들이 더 대단하다. 가끔 그들이 보내오는 글에는 ‘일흔 살 생일파티까지 우리 같이 성장하자’라는, 눈물이 핑 도는 반가운 메시지들이 있다. 어릴 때는 베스트셀러 작가, 스테디셀러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다. 그러나 이젠 확실히 안다. 수백만 명에게 알려지는 것보다 한 사람이 1년, 3년, 10년, 20년, 30년 읽고 싶어 하는 글을 쓰는 것의 가치를. 그리고 난 친구들에게 받은 글값을 진심으로 하고 싶다.


    언젠가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과 수업을 마치던 날, 마지막 인사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오래오래 돈을 버세요. 전 매일 밤 나랑 공부하겠다고 친구들이 돈을 내줘서 정말 고마웠어요. 그대들이 나한테 입금해 준 돈, 그거 진짜 귀한 거잖아. 나 그 돈값 정말 하고 싶었거든. 다들 그 돈 벌려고 얼마나 열심히 일했어요? 그래서 난 이 밤이 아깝지 않게 만들고 싶었어···. 돈을 번다는 건 참 멋진 일이야. 누군가가 자신의 시간으로 번 돈을 나에게 지불했다는 것? 그건 자기 인생의 시간을 나눠 준 거잖아. 월급이 250만 원이라면 누군가는 그달 번 돈의 5분의 1을 나에게 준 거잖아. 난 반드시 그 이상의 값어치를 하고 싶었어요. 그대들의 돈을 오래오래 벌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어요. 그러니까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일로 오래오래 돈을 버세요. 그거 진짜 가치 있는 삶이거든.”


    오래오래 돈을 벌자···. 참 멋없는 인사다. 하지만 내가 아들과 작별하는 날 꼭 남겨주고 싶은 인사였다. ‘복아, 오래오래 돈을 벌렴. 그럼 네 시간이 가치 있어질 거야. 그러다 보면 네 주변에 정말 좋은 사람이 쌓이게 될 거야. 그게 엄마가 배운 세상이란다.’



    학습의 중력: 지치면 나만 손해라서, 매일 밤 우리가 선택한 것들

    ‘체인지’의 의미

    어릴 때부터 책 읽는 사람을 극도로 싫어했다. 아빠 때문이다. 아빠는 방 안 가득 책을 쌓아두고 아무것도 실천하지 않았다. 하루는 돈이 없던 아빠가 카드빚을 내서 책을 사 온 적이 있다. 집에 먹을 반찬은 아무것도 없는데, 책을 사서 읽지도 않는 아빠가 엄마는 참으로 한심해 보였을 거다. 그 부부싸움을 오래 지켜본 어린 나는 실천하지 않는 지식에 대한 혐오가 생겼다. 아빠는 똑똑했지만, 실제 현장에서 할 수 없는 것들이 없는, 지식인의 저주.


    무언가 배웠다면? 반드시 체인지(CHANGE)되어야 한다. 나에게 교육 기획을 알려준 최재웅 대표님이 남겨준 문장이다. 한때 나는 독서 모임도 크게 운영해 봤고,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전파도 했다. 그러나 어떤 순간부터 공부와 책을 강조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 무엇을 기억했고, 실천했는지를 물어야 했다. 탁상공론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읽었다는 자기만족 때문이다. 우리는 만족감을 넘어 어려움이 있기를 바랐다.


    오늘 무언가 공부했다면 내일 작은 태도라도 변화되어야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임했다. 그렇게 매일 만나면,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릴 때는 내가 운영하는 수업 또는 프로그램에서 결과를 만들어낸 사람들이 있다면, 그 후기를 엄청나게 자랑했다. 그러나 앤드엔클럽만큼은 그럴 수도 없었다. 성과를 만들어내는 이가 너무 많았던 것도 사실이고, 그것이 나의 공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합이었기 때문이다.


    코로나시기에 서너 배씩 매출을 올린 친구부터 연봉 앞자리를 세 번이나 갈아치운 친구, 실제 투자를 받은 친구, 엄마가 된 친구, 책을 출판한 친구. 정말 다 나열할 수도 없는 업계의 프로 학습러들이 거미줄처럼 연결됐고, 성장했다. 그냥 우리는 매일 2시간씩 만나서 대화를 한 것뿐이다. 같이 공부했고, 대화했고 실천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과였을 뿐. 난 그 과정에서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친구와 소중한 추억을 가득 만든 사람이 되었다.



    사랑의 중력: 사랑도 숙성될수록 아름다울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엄마일까?

    엄마가 되었다. 그러나 나비가 ‘알’이었을 때는 자신의 날개 빛을 알 수 없듯이, 유충이 되고 번데기가 되고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야 색을 가질 수 있듯이, 내가 어떤 엄마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그저 되어가고 있다.


    8년 전 운전을 처음 배우던 날이 생각난다. 남편은 중고차를 주며 프로포즈를 했다. ‘여기 부서지고, 저기 부서져도 괜찮으니 운전은 실전’이라며 겁먹은 나를 도로로 끌고 갔다. 운전 연수 선생님을 붙여 맹훈련을 받았으나 홀로 운전을 하니 어김없이 사고가 났다. 언덕길에서 후진 기어로 엑셀을 밟아 범퍼를 날렸고, 직진 차로에서 좌회전을 해서 앞 범퍼를 날렸다. 차는 점점 멀쩡한 곳 없이 다 박살났지만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무사고로 9년간 운전 잘하고 다녔다. 차 뒤 창문에서 ‘초보운전’딱지를 떼기 전까지. 참 모든 게 어설프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그 초보의 시간을 거쳐, 운전을 한다. 그때는 어깨에 긴장이 잔뜩 들어가 다시 못 할 것 같지만, 결국은 해내게 될 초보의 시간. 나는 그런 초보의 시간, 그중에서도 엄마 파트에 있다.


    아이를 안는 법도 서툴고, 기저귀도 잘못 채워 똥 세례를 받기도 한다. 먹여야 하는 양보다 너무 많이 먹여 아이가 배앓이를 해서 종일 울기도 한다. 서툰 엄마 때문에 우리 아가 고생이 많다. 그러나 모든 엄마가 초보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때의 내 엄마도 서툰 이 시간을 거쳐 갔다. 그냥, 그 사실이 날 안심하게 했다.


    시작부터 엄마처럼 지혜로운 엄마가 될 것도,

    오은영 박사님처럼 전문가가 될 것도 없었다.

    그냥 나는 복이와 함께 세월을 살아가며

    초보 엄마에서 복이 엄마로 가는

    그 시간 위에 있다.


    * * *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