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 카네기 성공대화론
 
지은이 : 데일 카네기(역:임상훈)
출판사 : 현대지성
출판일 : 2022년 10월




  • 모든 성공은 ‘어떻게’ 말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데일 카네기의 ‘성공대화론’은 미 오바마 대통령도 극찬했다고 하지요. 품격 있는 말하기의 구체적인 공식과 만나보세요.


    데일 카네기 성공대화론


    두려움이 나가면 용기가 찾아온다

    첫째, 강하고 끈질긴 욕망으로 시작하라

    당신 생각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가르치는 사람이 당신의 머리와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그 간절함을 측정할 수 있다면, 얼마나 빨리 성과를 낼 수 있을지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욕망이 미미하고 보잘것없다면, 성과 역시 그와 같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이 주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마치 고양이를 쫓는 불도그처럼 적극적인 자세로 덤벼든다면, 그 무엇도 당신을 막을 수 없다.


    그러니 열정을 가지고 하라. 이 수업이 주는 장점을 나열해보라. 자신감을 가지고 비즈니스에 임할 때 설득력 있게 대화하는 능력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생각해보라. 또 그것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얼마만큼 가치가 있는지, 사회적으로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보라. 그로 인해 사귈 수 있는 친구, 더 커진 영향력, 당신이 갖게 될 리더십을 생각해보라. 말하는 능력은 당신이 생각하고 상상해온 어떤 활동보다 훨씬 더 빠르게 리더십을 길러줄 것이다.


    둘째, 이야기할 내용을 철저하게 파악하라

    해야 할 말을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고 무엇을 말해야 할지 계획조차 세우지 않는다면 그 누구라도 청중 앞에서 마음이 편할 수 없다. 마치 자신도 맹인이면서 맹인들을 이끄는 기분일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연설자는 당연히 자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태만을 후회하며 부끄러워할 수밖에 없다.


    셋째, 자신 있게 행동하라

    미국의 유명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행동은 감정을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행동과 감정은 동시에 일어난다. 따라서 인간의 의지로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한 행동을 조절함으로써 우리가 직접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을 간접적으로나마 조절할 수 있다. 따라서 용기를 내야 한다면 용기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라. 모든 의지를 그 목적에만 집중하라. 그러면 갑작스러운 두려움 대신 예기치 못했던 용기가 생겨날 것이다.


    제임스 교수의 조언을 활용해보라. 청중 앞에 섰을 때 이미 용기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며 용기를 끄집어내라. 물론 말할 내용을 준비하지 못했다면 연기를 아무리 잘해도 크게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하려는 내용을 알고 있다면 활기차게 발걸음을 내디디고 숨을 깊게 들이마셔 보라. 청중과 마주하기 전 30초가량 깊은 숨을 내쉬어라. 충분한 양의 산소가 몸속으로 공급되면 기분이 좋아지고 용기도 생긴다. 위대한 음악가이자 테너인 장 드 레슈케(Jean de Reszke)는 숨을 크게 쉬어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다면 초조함은 곧 사라진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자세를 곧추세우고 청중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마치 그들 모두가 당신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는 사람처럼 대하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라. 청중이 당신에게 원금 상환 일자를 연장해달라고 애원하기 위해 거기 모였다고 상상하라. 그러한 상상은 마음에 대단히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것이다.


    넷째, 끊임없이 연습하라

    마지막으로 강조하는 이 내용이 가장 중요하다. 대중연설에서 자신감을 개발하는 첫 번째이자 마지막 방법 그리고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 방법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직접 말해보기’다. 사실 이제까지 했더 모든 말은 단 한 마디로 환원할 수 있다. “끊임없이 연습하라.”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말이다. 연습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그러니 끊임없이 연습하라. 사업상 해야 할 일 때문에 준비가 부족했다는 이유로 수업을 빼먹지 마라. 준비되었든 그렇지 않든 간에 무조건 출석하라. 일단 출석한 다음 강사에게 혹은 동료들에게 주제를 제시해달라고 하라. 청중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고 싶은가? 그 원인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제임스 하비 로빈슨(James Harvey Robinson)교수는 ‘정신의 발달과정’에서 “두려움은 무지와 불확실성에서 비롯된다.”라고 말했다. 다시 말하자면 두려움은 확신이 부족해 생긴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원인은 무엇일까? 당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데서 두려움이 비롯된다. 그리고 뭘 할지 모르는 이유는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공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두려움 따위는 사라질 것이다. 두려움은 찬연하게 비치는 7월의 아침 태양이 밤안개에 비칠 때처럼 순식간에 사라져버릴 것이다.


    일단 소재를 선택하라. 자기가 잘 알고 있는 분야면 더 좋다. 3분 스피치를 만들어보자. 그리고 혼자서 여러 번 반복해 연습하자 그런 다음 가능하면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집단 앞에서 당신의 모든 힘과 노력을 쏟아 발표해보자.



    위대한 연설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메모를 가지고 놀아라

    다양한 아이디어와 사례를 종잇조각에 적어 그것들을 가지고 놀아라. 이 종잇조각들을 서로 관계있는 것끼리 모으라. 중심이 되는 종잇조각 뭉치는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주제가 된다. 종잇조각들을 다시 좀 더 작은 덩어리로 나누라. 필요 없다 싶은 조각들은 버리고 정말 중요한 조각 하나만 남겨두어라. 심지어 그 중요한 조각도 무시해버리고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과정을 제대로 했다면 자기가 모은 재료의 극히 일부밖에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연설이 완성될 때까지 종잇조각을 버리고 다시 가져오고 다시 나누는 작업을 절대 멈추지 마라. 심지어 연설을 마친 다음에도 요점이나 개선점, 바꾸었어야 할 것들에 대해 생각하라.


    훌륭한 연설자는 연설을 마치고 나면 네 가지 종류의 연설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준비했던 연설, 사람들 앞에서 한 연설, 신문에 실린 연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해 아쉬웠던 연설이다.


    “연설 도중에 원고를 봐도 될까요?”

    링컨은 뛰어난 즉흥 연설가였지만, 백악관에 입성한 다음에는 어떠한 즉흥 연설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모든 것을 완벽히 작성하기 전까지는 각료들과 비공식적인 대화조차 하지 않으려 했다. 물론 취임사 등의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정확한 어법이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에 연설문 없는 즉흥 연설은 당연히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일리노이 시절만 해도 링컨은 연설 중에 절대 원고를 들여다보지 않았다. 심지어 “연설문을 보고 읽는 연설은 언제나 듣는 사람을 지루하게 하고 짜증나게 하지요”라고도 말했다.


    누가 그의 말에 반박할 수 있겠는가? 원고를 보고 읽는 것은 말의 재미를 절반은 감소시킨다. 화자와 청중 사이에 있어야 하는 매우 소중한 친밀감이 원고로 인해 차단되거나 대폭 줄어들지 않는가? 어떤 인위적인 느낌이 조성되지 않는가? 청중은 화자가 자신감과 여유가 없다고 느끼지 않겠는가?


    반복해서 말하지만, 메모하라. 연설을 준비 중이라면 정성 들여 많은 것들을 써두어라. 혼자서 연습할 때 원고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청중을 마주하고 있을 때도 주머니에 원고가 있다면 마음이 좀 더 편해질 것이다. 굳이 원고를 봐야 한다면, 아주 간략하게 정리해서 커다란 종이에 큰 글씨로 필요한 것만 써두어라. 그런 다음 연설하기로 한 장소에 일찍 가 단상 위에 있는 책 뒤에 숨겨놓으라. 필요하다면 흘낏 쳐다보아도 좋지만, 그 순간을 청중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하라. 영국의 정치가이자 웅변가였던 존 브라이트는 테이블 위에 커다란 모자를 올려두고 그 안에 원고를 숨겨놓고 했다.


    지금까지 한 이야기와는 사뭇 다를 수 있지만, 원고를 보는 것이 더 지혜로울 때도 있다. 예를 들어 대중 앞에서 처음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너무 긴장한 나머지 사람들 눈을 의식해 준비한 연설을 까맣게 잊었다고 하자. 결과는 어떻겠는가? 연설은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열심히 연습했던 내용을 잊고, 원래 목표했던 길에서 벗어나 진창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될 것이다. 그런 사람이라면 처음 몇 번쯤은 내용을 압축해서 요약해놓은 메모를 손에 쥐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게 더 낫지 않겠는가?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는 일단 손에 잡히는 가구를 짚고 일어난다. 그러나 계속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문자 그대로 외우지는 마라

    연설문을 읽지 마라. 낱말 하나하나 있는 그대로 외워서 말하려 하지 마라. 시간을 낭비하는 일일뿐더러 엄청난 참사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렇게 단단히 주의를 줘도 이 경고문을 본 사람 중 분명 그런 시도를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이 연설할 차례가 되었다고 하자. 무슨 생각을 할까? 전달하고픈 메시지를 생각할까? 아니다. 정확한 문구를 떠올리려고 애쓸 것이다.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과정과 정반대로, 이제 곧 벌어질 일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과거만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한 연설은 뻣뻣하고, 차갑고, 아무런 색채도 없어서 비인간적으로 느껴진다. 간청하건대, 제발 그런 쓸데없는 일에 당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마라.


    사업상 중요한 인터뷰가 잡혔을 때, 당신은 자리를 잡고 앉아 인터뷰때 해야 할 이야기를 한마디도 빼놓지 않고 모두 외우는가? 물론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분명히 떠오를 때까지 생각에 잠길 것이다. 약간의 메모를 하고 기록해둔 것을 참조할 수도 있다. 그러고는 이렇게 혼잣말을 할 것이다. “이러저러한 것을 제안해야지. 이러저러한 이유로 반드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해야겠어.” 그런 다음 그 이유를 열거하고 구체적인 사례도 생각해볼 것이다. 사업상 인터뷰는 원래 이렇게 준비하지 않는가? 연설을 준비할 때도 이처럼 상식적인 방법을 사용해보는 건 어떨까?



    제대로 전달된 연설이 좋은 연설이다

    대중 연설할 때 해야 할 행동

    자연스러운 말의 특징을 살펴보겠다. 그래야 자연스러운 말이 무엇인지 좀 더 분명하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나로서는 피하고 싶던 논의이긴 하지만. 틀림없이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아! 알았어요. 이것만 열심히 하면 괜찮아지겠군요.”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것을 열심히 하더라도 여전히 목각인형 같고 로봇 같은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어제 저녁에 먹은 음식을 소화시키듯 어제 나눈 대화에서 이 원리 대부분을 무의식적으로 사용했다. 그것이 이 원리를 이용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대중연설에서 이 원리를 이용하려면 이미 말했듯이 연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첫째, 중요한 말에는 강세를 주고 중요하지 않은 말은 약하게 말하라

    우리는 대화할 때 한 낱말의 한 음절에만 강세를 둔다. 그런 다음 다른 것들은 마치 부랑자 무리를 스쳐 지나가는 철도처럼 서둘러 무시하며 지나친다. 예를 들어 매사추세츠(MassaCHUsetts), 어플릭션(affLICtion), 어트랙티브니스(attRACtiveness)를 읽어보라. 문장도 마찬가지다. 한 두 개의 중요한 낱말이 브로드웨이에 있는 울워스 빌딩처럼 다른 건물보다 높이 솟아 있다.


    내 설명이 낯설거나 특이하게 들리지 않을 것이다. 잘 들어보라. 주변에서 항상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당신도 어제 하루에 백 번, 아니 천 번은 활용했고, 내일도 백 번은 더 쓸 것이다. 강조하는 데 절대적인 규칙이란 없다. 상황에 따라 다르다. 의미 있는 중요한 단어는 강조하고, 다른 단어는 서둘러 읽고 넘어가도록 한다.


    둘째, 높낮이에 변화를 주어라

    대화를 할 때 당신의 목소리는 마치 바다의 수면처럼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높아졌다 낮아졌다 한다. 홰 그럴까? 아무도 모른다. 게다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그로 인해 기분 좋게 들린다. 자연의 방식이 모두 다 그러하다. 굳이 공들여 배워야 하는 것도 아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체득한 것이다. 그러나 자리에서 일어나 청중을 마주하면 우리의 목소리는 아마 네바다 사막처럼 다시 지루하고, 권위적이고, 단조로워질 것이다.


    목소리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만으로도 어떠한 말과 표현을 앞마당의 푸른 월계수 나무만큼이나 두드러져 보이게 할 수 있다. 이것은 브루클린의 유명한 목사 캐드먼(John Cadman)이 즐겨 쓰던 방식이다. 올리버 로지 경이나 브라이언, 루스벨트 대통령 역시 이 방법을 사용했다. 사실 저명한 연설가라면 대부분 이 방식을 사용한다.


    셋째, 말의 속도에 변화를 주어라

    어린아이가 말할 때나 우리가 일상적인 대화를 할 때, 말은 끊임없이 빨라졌다 느려졌다 한다. 듣기 좋게 하고, 때론 특정 단어나 메시지를 강조하려는 자연스럽고도 무의식적인 방법이다. 실제로 이것은 어떠한 생각을 돋보이게 만드는 가장 훌륭한 방법 중 하나다.


    미주리 역사학회에서 발행한 ‘기자가 본 링컨’을 썼던 월터 스티븐스(Walter B. Stevens)는 링컨이 핵심을 전달하기 위해 즐겨 사용했던 방법을 이렇게 전한다.


    그는 몇 구절을 엄청나게 빠르게 읽다가 강조하고 싶은 단어나 구절에 이르면 시간을 오래 끌면서 천천히 그러나 또박또박 말합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번개처럼 문장 끝까지 달려갑니다. 강조하고 싶은 단어 한둘을 발음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다음에 이어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대여섯 단어를 말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엇비슷합니다.


    넷째, 중요한 아이디어 앞과 뒤에서 잠깐 멈추어라

    링컨은 연설 도중 자주 말을 멈추었다. 청중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은 문구가 떠오르면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사람들의 눈을 그윽하게 바라보면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침묵은 갑작스러운 소음과 같이 사람들을 주목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사람들의 주의를 끌고, 관심을 집중하게 하며, 다음에 어떤 말이 나올지 궁금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보자. 더글러스와의 유명한 논쟁이 끝나갈 무렵, 모든 지표가 링컨의 패배를 가리키자 그의 말투에 애절하고 울적한 느낌이 묻어나왔고 이는 사람들의 연민을 자극했다. 연설을 마무리하던 중 그는 갑자기 말을 멈추고 잠시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고는 반쯤은 무관심한 듯, 반쯤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같이 침울하고 움푹 패인 눈으로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치 이 힘겨운 싸움에 지쳤다는 듯 팔짱을 끼며 특유의 단조로운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중요하지 않습니다. 별로 큰 차이도 없고요. 저나 더글러스 판사 중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더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오늘 저희가 여러분께 제시한 쟁점은 개인의 이익이나 정치적 운명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 그는 다시 말을 멈추었다. 청중은 낱말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쟁점은 형편없고, 연약하고 말조차 제대로 못 하는 저나 더글러스 판사가 죽어 무덤에 묻힌 다음에도 살아 숨 쉴 것입니다.”


    링컨의 전기작가 중 한사람은 이렇게 썼다. “이 단순한 말과 이것을 말하는 방식이 모든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링컨은 강조하고자 하는 문구 다음에도 말을 멈추곤 했다. 의미가 사람들 마음속에 충분히 자리 잡고 새겨질 때까지 침묵 속에서 잠시 기다리며 그 말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키플링은 말했다. “당신은 침묵으로 이야기한다.” 침묵이 금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연설 중에 지혜롭게 사용한 침묵보다 더 빛나는 금은 없다. 침묵은 무시하고 넘어가기엔 너무나 중요한 도구다.



    청중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는 법

    최고의 주장은 설명이다

    청중과 논쟁하려 들면 그들의 고집을 키우고 방어적으로 만들어 결국 설득이 더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이해했는가? “저는 이런저런 것을 증명하려 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시작하는 게 현명할까? 청중은 이런 태도를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마음속으로는 ‘그래, 잘하는지 어디 한번 보지 뭐’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당신과 청중이 같이 공감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그런 다음 모두가 해답을 듣기 원하는 적절한 질문을 제기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그리고 나서 청중을 당신이 제시한 해답으로 이끌고 가는 것이다. 해답을 말할 때는 사실을 명확하게 제시해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당신의 결론을 자기 것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 사람들은 스스로 발견했다고 믿는 사실에 더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즉 최고 수준의 연설은 마치 단순한 설명에 불과하게 들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아무리 의견 차이가 크고 심각한 토론이라도 합의 가능한 공통된 사안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화자는 그 사안 위에서 모든 사람을 자신의 해답으로 이끌고 갈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심지어 공산당 지도자가 미국 은행가협회에서 연설하더라도 그들과 공유할 수 있는 몇 가지 유사한 욕망이 있다. 다음 연설을 한번 살펴보자.


    가난은 항상 인간 사회의 잔인한 문제 중 하나였습니다. 미국인으로서 우리는 가능한 한 언제 어디에서나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게 의무라고 여겼습니다. 우리는 관대한 민족입니다. 역사상 어떤 민족도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해 그렇게 사심 없이 막대한 돈을 쏟아부은 적이 없습니다. 이제 과거와 같은 관대함과 이타심으로 우리의 현실을 살펴봅시다. 그리고 가난이라는 사회악을 예방하고 완화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공정하고, 정의롭고,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단은 없는지 살펴봅시다.


    이런 말에 누가 감히 반대할 수 있을까? 극우적인 성향을 보였던 찰스 코클린(Charles Coughlin)목사라면 가능할까? 미국 사회당을 대표한 노먼 토머스(Norman Thomas)는 생각이 달랐을까? 미국 최고의 부호 중 한명인 J.P.모건은 반대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힘과 에너지와 열정 있는 말하기를 준비하라는 가르침과 상반되는 주장인가? 그렇지 않다. 모든 것은 다 때가 있기 마련이다. 서두는 힘을 내보이기 위한 시간이 아니다. 재치가 필요한 시간이다.



    어떻게 끝낼 것인가

    연설할 때 당신이 초보자인지 전문가인지, 아니면 능력이 모자라는지 재치가 넘치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이 있다. 바로 시작과 끝이다. 연기자들이 굳게 믿는 연극계의 오랜 격언이 있다. “등장과 퇴장만으로도 그 배우의 수준을 알 수 있다.”


    시작과 끝! 어떤 행동을 능숙하게 해야 할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많이 모인 모임에서 우아하게 입장하고 퇴장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힘든 부분 아니겠는가? 면접을 볼 때도 가장 어려운 부분이 좋은 첫인상과 믿을 만한 끝인상을 주는 것 아닌가!


    마무리는 연설에서 전략상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한 말, 마지막으로 뱉은 낱말은 듣는 사람의 귀에 여운을 남긴다. 가장 오래 기억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초보자는 끝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그러다 보니 초보자의 연설 마무리는 늘 아쉽기 마련이다.


    그럼 해결책은 무엇일까? 끝을 미리 계획해야 한다. 청중과 마주한 상태로 긴장감을 느끼면서 혹은 연설 내용에 집중하면서 어떻게 마무리할지 그 자리에서 생각해내는 게 과연 지혜로운 일일까? 상식적으로 조용할 때 침착하게 구상해놓는 편이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심지어 웹스터, 브라이트, 글래드스턴 같은 명망 높은 연설가들조차도 수준 높은 연설 능력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말은 미리 써두고 정확하게 외우려고 애썼다.


    초보자들도 이들처럼 한다면 후회할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일단 어떻게 이야기를 마칠지 정확하게 계산해야 한다. 몇 번이고 미리 연습하되 그때마다 말을 조금씩 바꾸어가며 전하고자 하는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해야 한다.


    즉흥 연설은 연설 과정에서 주요 내용이 바뀔 때도 있고,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전개되어 준비했던 말을 빼거나 줄여야 할 때도 있으며, 청중 반응에 맞추어 조정해야 할 때도 있다. 따라서 두세 개 정도의 결론을 미리 준비해놓은 게 현명하다. 하나가 어울리지 않으면 다른 하나를 쓸 수 있도록 말이다.


    연설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내려가는 화자도 있다. 마구 침을 튀기며 열띤 연설을 하다가 엔진이 꺼져버리듯 엉뚱한 말로 갑자기 끝을 낸다. 필사적으로 여기저기 마구 찔러대다가 갑자기 아무런 동작도 없이 멈춘다. 고장이라도 난 듯하다. 물론 준비와 연습이 부족한 경우다. 연료 탱크에 기름을 좀 더 채우고 출발했어야 했다.


    한 발로 서 있을 동안만 말하기

    좋은 시작과 좋은 마무리를 위해서는 끊임없이 찾고 뒤지고, 실험하라. 그리고 그것들을 늘 가까운 곳에 두라. 지금처럼 빠르고 급박한 시대에 말을 적당히 끊지 못하고 질질 늘어놓는 화자는 환영받지 못하며 때로는 미움을 사기도 할 것이다.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편집자인 로리머 씨는 신문 연재물이 인기 절정일 때 끝내는 게 자신의 원칙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연재를 이어가라고 아우성쳤을 것이다. 그런데 왜 중단할까? 왜 하필 그때일까? 로리머 씨는 말했다. “인기 절정인 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곧 싫증내거든요.”

    똑같은 지혜를 연설에도 적용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 청중이 듣고 싶은 말이 아직 있을 때 연설을 끝내라.


    예수의 말씀 중 최고로 꼽히는 산상수훈은 5분 안에 다 읽을 수 있다.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은 겨우 열 개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창세기의 창조 기사를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은 조간신문에 난 살인 기사를 읽는 것보다도 짧다. 간결하라! 간결하게 줄여라!


    아프리카 니아사의 부주교였던 존슨박사(William Percival Johnson)는 한 아프리카 원시 부족에 관한 책을 썼다. 그는 49년간 원주민과 함께 살며 그들을 관찰했다. 그 부족에서 누군가 지나치게 오래 말하면, 그곳에 모인 청중은 ‘이메토샤!’를 연호해 연설을 중단시킨다고 한다. ‘충분하다’라는 의미다. 또 다른 부족은 화자가 한 발로 서 있을 수 있는 시간까지만 말하기를 허용한다고 한다. 들어 올린 발의 발끝이 땅에 닿으면 하던 이야기를 중단해야 한다. 좀 더 예의 바르고 자제력이 있다는 문명인도 아프리카 부족민처럼 긴 이야기를 싫어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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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