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돈 버는 행복한 경단녀입니다
 
지은이 : 주머니
출판사 : 태인문화사
출판일 : 2023년 03월




  • SNS 유명 인플루언서이자 브런치 작가인 저자가 지극히 평범한 경단녀 엄마였던 자신이 ‘돈행녀’, 즉 돈 버는 행복한 여자가 된 비법을 시원하게 전달해드립니다!


    나는 돈버는, 행복한 경단녀입니다


    엄마, 경단녀 되다

    엄마도 엄마는 처음이라서

    어쩌다 마흔이 되었나 싶지만 시간이 지나니 마흔이 되었다. 어쩌다 경단녀가 되었나 싶지만 시간이 지나니 경단녀가 되었다. 아이를 낳아서 키우며 금방 되어버렸다. 그리고 주위에 수많은 경단녀들이 있었다.


    그녀들 역시 나와 비슷했다. 결혼하기 전에 하던 일을 첫 아이 낳기 전까지 했다. 간호사로 일했고, 작은 회사의 경리 업무를 보았다. 복지관에서 복지사로 일을 하다가, 학원에서 강사로 일을 하다가 경단녀가 되었다. 나처럼 아이를 낳았고 키우다 보니 그렇게 경단녀가 되었다는 그녀들.


    몸과 마음을 다해 아이를 키우지만 이 사랑에 과연 끝이 있을까 싶다. 힘이 들었다. 엄마는 사랑받는 만큼 힘든 자리였다. 힘들다 소리를 하면 늘 돌아오는 말은, “애는 예쁘잖아. 애 크는 거 잠깐이야. 지금은 힘들어도 지나고 보면 다 추억이야.” 같은 말이었다.


    등산하면서 정상의 위치를 묻는 내게 거의 다 왔다고, 조금만 가면 된다고 말하는 하산하는 어른들 같았다. 차라리 ‘정상은 아직 멀었지만 조금 가다보면 평지가 있으니까 거기서 조금 쉬고 다시 올라가라’고 말해줬다면 그 평지까지 힘을 냈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 일이 생겼다. 평지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둘째가 드디어 어린이집이라는 평지에 등원을 시작한 것이다.


    우울증은 나약해서 걸리는 게 아닙니다

    내가 품고 있다가 낳은 아이, 나를 닮은 아이, 너무 작고 소중해서 차마 만지기도 조심스러운 그 아이를 낳기 전에는 몰랐다. 아이를 낳으면 마냥 행복할 줄 알았다. 몸은 힘들겠지만 늘 기쁠 줄만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몸이 힘든 건 물론이고 마음까지 힘이 들었다.


    뉴스에서 보던 산후우울증 사건은 남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나는 괜찮을 줄 알았던 자신감은 3개월도 되지 않아서 무너지고 말았다. 큰 아이 때도 그랬지만 그때는 그게 산후우울증인지도 몰랐다. 애는 너만 낳았냐고, 뭘 그렇게 짜증내고 싫은 티를 내느냐고 조금 참으라고 하기에 어영부영 첫 아이를 키워냈다.


    둘째는 달랐다. 아이를 출산하기 전부터 두려웠다. 아는 맛이 무섭듯이 아는 우울이 더 무서웠다. 41세에 출산은 몸과 마음이 다 힘들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잠만 자고 싶었다. 아침이면 씻지도 못하고 둘째를 유모차에 태워 큰아이 등원을 시키고 나면 하루가 또 힘들게 시작되었다는 것이 두려웠다. 그렇게 어김없이 우울증은 더 깊이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표현하면 남편은, 친구들은, 어른들은 그랬다. 네가 강해져야 한다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강해져야 한다고. 그래야 그런 나약한 생각을 안 한다며 나의 무기력하고 의지 없음을 나무랬다.


    이제는 세상이 달라져서 그렇지도 않다고 산후우울증 치료도 많이 받는다고 하지만 내 주변 아이 키워본 엄마들에게 물어보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나고 보니 그걸 어떻게 견뎌냈나 싶다는 엄마, 그게 우울증이라는 걸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알았다는 엄마들만 있었다.


    당당하게 나 우울증이라고 건드리지 말라고 해야 했다. 위가 아파서 매운 걸 못 먹는다고, 이가 아파서 딱딱한 걸 못 씹는다고 말할 수 있듯이 마음이 아프니 건드리지 말라고 해야 했다. 그걸 못 하니 위가 아프고 이가 아프듯이 마음이 아프기 시작했다. 자꾸 슬퍼지고 어두워졌다.


    집에서도 아이와 있으면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남들은 24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쓴다는데 나는 24시간을 함부로 흘려보낸 것 같았다. 자꾸 무언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 않고는 이 우울과 슬픔의 무기력에서 빠져나올 길이 없을 것 같았다. 뭐라도 잡고 그 터널을 빠져나와야지 생각하고 있을 때 주변에서 해주는 말은 큰 위로가 된다. ‘이 또한 지나간다고, 너 진짜 잘하고 있다’고 말해줄 인생 선배, 선생님을 찾아 나서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그때 만났다. 언제 어디서든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원하면 위로를 건네주고 그 마음을 알아주었다. 책이 그랬다. 운이 좋았던 나는 그때 책을 잡고 그 터널에서 천천히 빠져나오고 있었다.



    엄마, 서평가(인플루언서) 되다

    책 먹는 엄마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한심하고 무능력한 내가 싫어서 터널 안에서 꼼짝하기 싫던 무렵에 책 맛을 알게 됐다. 그렇다고 굳이 책을 먹는단 표현을 할 필요가 있느냐 싶겠지만, 그때는 정말 책을 먹고 살았다. 밥은 안 먹어도 책은 읽어야 살았다. 답답하고 무료하고 슬프고 억울한 마음이 들면 약 대신 책을 찾았다. 책이 밥이었고 살 길이었다.


    하루에 1권을 읽기도 했다. 한 달이면 20권을 넘게 읽기도 했다. 소설과 시를 좋아했던 문학소녀였다며 학창시절을 회상하던 아줌마는 성공학서와 부자학서라는 분야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부자학서를 읽으면 당장 부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심리학서를 읽고 나면 남편의 행동 원인이 그래서였나 싶어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정말 조금씩 티 나지 않게 개미눈물만큼 달라지고 있었다. 가족들이 먼저 알았다. 자주 웃고 덜 화내고 있었다.


    SNS라는 모래밭에 모래성을 쌓기

    남 잘 사는 꼴, 남 놀러다니는 꼴 보기 싫어서 안 한다고 했다. 뭐 하러 남든 사는 걸 보면서 배 아파하냐며 안 하고 살았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고 취미가 같은 사람들과 소통도 하고 정보도 교환하기 좋다고 SNS를 권하는 지인에게 모르는 사람이랑 소통 안 하고 살아도 된다고 말했다.


    네가 읽은 책에 대한 기록이라고 종이 공책에 그렇게 쓰지만 말고 SNS에 올리라고 말했지만 됐다고 했다. 다단계 권하는 사람을 내치듯 그렇게 좋으면 너나 하라고 말했지만 사람들이 그토록 재밌어하고 공을 들이니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남들이 보는 게 싫으면 나만 볼 수 있게 비공개로 온라인에 남겨볼까 싶었다. 어떤 사람은 그걸로 돈도 번다는 말에는 귀가 솔깃했다.


    잘 사는 남도 많고 놀러 다니는 남도 많은 그 SNS를 시작했다. 남들이 내 얼굴 아는 건 싫다며 얼굴은 절대 공개하지 않겠다고 비공개로 했다. 계정을 만들어서 책 사진을 올리고 짧은 글을 올렸다. 해시테크도 몰라서 ‘#오늘의도서’라고 올렸다.


    SNS가 뭔지도 몰랐지만 내 눈에도 좋아 보이는 계정이 있었다. 그런 계정들을 찾기 시작했다. 이웃 많고 ‘좋아요’와 댓글이 많은 사람의 계정으로 가서 열심히 보고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니 ‘좋아요’도 점점 늘었고 모르는 사람의 댓글도 달리기 시작했다. 나도 달려가서 ‘좋아요’를 눌러주고 댓글을 달아주며 ‘서로 이웃’이 되었다.


    SNS라는 모래성을 아는가? SNS는 겉으로 보기에는 누구라도 금방 만들 수 있을 것 같고 쉬워 보이는 바닷가 모래성 같은 것이다. 조금 쌓다가 그만두면 작은 파도에도 금방 무너지는 모래성이다. 그러니 매일 그 바닷가로 가서 어제 쌓은 모래성에 또 모래를 얹는 수고를 하며 단단하게 해둬야 조금씩 높아진다. 매일 그 바닷가로 가서 모래성에 모래를 얹고 모양을 다듬고 튼튼하게 해두면 웬만한 파도에는 잘 넘어지지도 않는다. 모래성이 조금 높아져야 사람들도 관심을 가지고 저건 뭔가 싶어서 찾아오게 된다.


    모래성을 단단하고 높게 쌓기 위해서는 시간과 공을 들여야 했다. 금방 만들고 쉽게 만드는 건 금방 무너지고 쉽게 부서졌다. SNS라는 모래성은 금방 쉽게 만들 수 없는 것이었다. 매일 조금씩 단단하게 시간과 품을 들여 내 손으로 높게 쌓아가야 했다.


    매일의 힘은 놀랍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밥솥 사용법도 몰랐지만 엄마가 되고 매일 아이들 밥을 차려줘야 하니 밥솥에 밥 하는 건 발로도 할 수 있는 경지가 되었다. 그렇게 기계치로는 둘째가라면 서럽던 내게 SNS 하는 법을 알려달라는 친구가 생길 정도로 익숙하게 사진을 올리고 리뷰를 올릴 수 있었다.


    모래성을 매일 쌓다 보니 높게 단단하게 만이 아니라 예쁘게 나만의 스타일로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내 모래성이 좋다는 사람들도 하나씩 생기기 시작했다 글이 재미있다는 사람들의 댓글에 어깨춤이 절로 나왔다. 집에서 아이만 키우던 평범하고 우울하던 아줌마는 이제 모래성 안에는 없었다.


    두 번째 이름 서평가

    인플루언서라는 말보다 자주 듣는 말은 서평가였다. 어느 순간 한 달에 10권 가까이 책 리뷰 요청이 들어왔다. 출판사에서 보내는 리뷰 요청은 “서평가님 안녕하세요…”라고 시작하는 메시지가 훨씬 많았다. 서평가라니, 감히 그런 이름으로 불릴 수 있으리라곤 1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했다. 집에서 아이만 키우던 경단녀가 우울증 한번 극복해보자고 시작한 책읽기가 여기까지 와버렸다.


    더 많은 신간 리뷰 요청이 들어왔다. 이웃도 점차 더 늘기 시작해서 1,000명이 넘어가고 있었다.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던 분야의 책들도 있었다. 가끔 그런 책들 속에서 진주를 발견하기도 했다.


    서평가는 돈 벌려고 하는 게 아니라고 했지만 책이 아니라 생활용품이었다면 생활비가 좀 굳었겠구나 싶었다. 책리뷰만 하던 이웃들이 갑자기 일상 사진을 올리고 맛집 사진을 올리더니 생활용품 협찬을 받고 공구를 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다른 사람이 하는 건 다 좋아 보이는 나의 줏대 없는 안목이 살짝 흔들리기 시작했다. 진짜 돈이 되는 걸 해야 하나, 책은 아무리 읽어도 돈은 안 되는데, 서평이라고 해봐야 보내주는 책 한 권이 다인데, 한 달에 아무리 많이 받는다고 해도 책 10권 정도인데, 나도 일상 계정으로 바꿔서 돈이 되는 협찬을 받아볼까 흔들리던 어느 날 아침 DM을 받았다.


    ‘서평가님 안녕하세요. 어제 올려주신 책 리뷰를 참 재밌게 봤습니다...’로 시작하는 긴 메시지였다. 용기가 없어 댓글을 못 달지만 내가 쓰는 리뷰가 너무 재미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책보다 리뷰가 더 재밌어서 매일 아침, 오늘은 어떤 리뷰가 올라오는 지 기다리고 있다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글이 마치 연애편지 같았다. 내가 좋다니 내 글이 좋아서 기다린다니 뭐 이런 달콤함 고백이 있단 말인가.


    이 정도의 영향력이 있다면, 한 사람에게라도 그런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하게 해주는데 돈이 된다는 생활용품 협찬은 안 받아도 되겠구나 싶었다. 누군가 내가 쓴 리뷰를 기다린다는데 내가 갈 길은 이 길이구나 싶었다. 돈은 다른 길로 벌면 그만이었다.


    남들은 돈도 안 되는 그 일을 왜 하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돈보다 더한, 돈으로 못 사는 것을 받는다는 걸 그들은 모른다. 무보수 직업 주부이자 경단녀에게 이름이 생겼다. 서평가라는 이름이다. 서평가라고 불러주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엄마, 주식투자자 되다

    남편도 못하는 그 어렵다는 주식을 제가 하고 있습니다

    주식투자자라고 생각하면, 흔히 넥타이를 맨 수많은 남자들이 빨갛고 파란 그래프가 가득한 큰 전광판 아래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을 상상한다. 주식투자자라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자를 상상하게 된다.


    부업을 찾아 헤매며 책을 먹고 살 때 돈이 되는 책이 뭘까 찾기 시작했다. 부자학서와 성공학서에는 새벽에 일어나서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얼마를 벌겠다는 걸 종이에 쓰라고 했지만 뭘 해서 어떻게 벌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책에서 하라는 대로 해서 성공했다는 또 다른 부자의 책을 읽었지만 그 사람이 하는 일이 나와 맞지는 않아 보였다.


    대한민국은 부동산 강국이니 부동산을 사고팔고서 부자가 되는 길이 제일 안전해보이고 확실해보였지만 그럴 돈은 없었다. 전세를 끼고 작은 아파트를 하나 사려고 해도 1억 정도는 있어야 가능했다. 그러다 주식투자자가 되어야겠다고, 마이너스에 마이너스만 기록하는 주식계좌를 소유한 내가 이걸로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순전히 책 덕분이었다.


    코로나로 대한민국의 주식장이 바닥을 치던 때부터 시작한 주식공부로 2020년 8월부터 매수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의 주식장은 잡으면 오르고 내일이면 상한가를 치던 때였다. 마스크 관련주나 코로나 치료제라는 이름만 붙으면 너도 나도 살 때였지만, 내가 읽은 주식서들은 그러지 말라고 했기에 차근차근 우량주를 모았다.


    2021년 배당금을 받아보고 이게 내 길이구나 싶었다. 오를 주식을 사서 언제 오르지 언제 팔지 하는 게 아니라 좋은 주식을 싸게 사서 오래 들고만 있으면 되는 이 공식이 내게는 딱 맞았다. 나는 내가 배운대로 공식을 정하고 그대로 따라 하며 주식이 마냥 어렵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2022년 주식장은 미국의 금리 인상과 환율이 급등과 반도체 수급 문제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코로나 때만큼 하락했다. 어떤 이는 주식계좌는 쳐다도 보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이는 주식앱을 지웠다고 하는 2022년에는 마이너스만 아니면 다행이라고 했지만 배당금만 4%, 돈이 필요해 눈물을 머금고 매도한 종목들의 수익률은 80%이다. 이 기록들을 모두 내 SNS에 올렸더니 이웃들은 대단하다며 박수를 쳐주었다.


    이 정도 수익률이면 어때요

    주식한다고 하면 그래서 얼마 벌었냐는 질문을 제일 많이 받는다. 1년에 10%의 수익률을 목표로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2022년 하반기 장에서 욕심이 과하다고 한다.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금리인상으로 그런 수익률은 어렵다고 한다. 1년에 10%의 수익률을 목표로 한다고 2020년에 말했을 때 사람들은 그 정도 수익률은 지금 장에서는 아무거나 사서 일주일만 있으면 오른다고 했다. 그렇게 주식해서는 돈 못번다며 1년에 10%라니 욕심도 없다고 했다.


    불과 2년 만에 사람들이 변했다. 정말 2022년에도 10%의 수익이 났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다. 설마 이런 장에서 수익을 봤느냐며 믿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수익률을 SNS에 올렸다. 배당금 받은 것도 표로 만들어 올렸다. 물론 지금 팔지 않고 보유하고 있는 종목은 마이너스인 것도 있다. 이 종목들은 10년 이상 가져가겠다는 마음으로 샀고 그래서 당분간은 팔 생각이 없다. 손실이 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지만 팔지 않아서 실제적으로 입은 손실은 없다.


    주식서가 새로 나왔다고 해서 보면 제목부터 자극적이고 돈 냄새가 난다. 적금처럼 꼬박꼬박 주식을 사서, 나만의 펀드를 만들 듯 여러 종목을 사서, 배당금을 많이 주는 회사를 골라서, 10년 뒤에도 돈을 잘 벌 것 같은 종목을 찾아서 주식을 사야하는데 그러지 않는 사람들이 안타깝다.


    주식은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것이고, 돈은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서 버는 것이다. 순서를 잘 기억하자. 주식은 돈을 벌기 위해서고, 돈은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서다.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서는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떼이거나 억울하게 사기당하지 않아야 한다. 도박으로 날려버리거나 실수로 잃지 않아야 한다. 주식을 투기하듯 해서 돈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엄마, 영어강사 되다

    HELLO, I'M BACK

    결혼 전 8년을 유치원으로 영어수업을 나갔다. 첫 아이는 3월생이라 37주까지 일을 했다. 배가 남산만한 선생님이 수업을 끝내고 뒤뚱거리고 있으면 아이들은 배를 만지며 이 안에 아기가 있냐고 했다. 대부분 태어나서 처음 본 영어선생님이 나였던 그들은 내가 영어를 제일 잘한다고 생각했다. 영어나라에서 왔느냐고 귓속말로 물어보기도 하고 우리 영어선생님은 외국 사람보다 영어를 잘한다고 집에 가서 자랑하는 친구도 있었다.


    유치원 영어강사로 사는 삶은 그랬다. 출근이 행복하고 퇴근이 아쉬웠다. 20대에는 그나마 체력이 되니 장점만 보였다. 30대가 되니 몸이 조금씩 힘들기 시작했다. 아이들과의 수업은 조용하고 차분하게 하는 수업이 아니라 시끄럽고 방방 뜨게 하는 수업이어야 했다. 수업마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게임을 해야 했다. 게임에 져서 우는 아이는 달래줘야 했다. 집에 오면 교구를 만들어서 수업을 준비했다. 부모참여 수업을 해야 하고 발표회의 음악과 동작을 몇 달씩 익혀서 무대에 올려야 했다. 그러다 보면 1년이 지나 있었다.


    평생을 하고 싶었던 일이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내 아이가 아프면 봐줄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일을 그만두었고 둘째를 낳아 키우면서 이제 유치원으로 수업 갈 일은 없겠구나 싶어 추억처럼 그 일을 그리워했다. 주식투자자, 작가, 서평가, 대학생으로 살고 있으니 다른 일은 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2022년의 2학기부터 다시 유치원으로 수업을 갔다. 대학등록금을 주셨던 시아버지가 쓰러지시고 나서부터였다.


    남편은 공황장애를 겪으며 정신과 치료를 받고, 시어머니는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시아버지는 유난히 가족애가 많으시고 오로지 가족밖에 모르시던 분이셨다. 그런 분이 쓰러지시고 나니 온 가족들이 다 같이 휘청거리고 아프기 시작했다. 시아버지는 핏줄이 아니라 괜찮을 줄 알았던 나도 그랬다.


    바쁘게 살다 보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 5년 만에 전에 일했던 회사에 연락을 했다. 그 시절 잘 지냈던 본부장님은 이제 사장님이 되었고 다행히 자리가 있다고 하셨다. 일주일에 3일, 하루에 2시간 수업을 했다.


    아시 돌아간 유치원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사이 쓰러진 후 의식 없이 누워 계시던 시아버지는 휠체어에 앉으시고 묻는 말에 대답도 하신다. 아들을 보면 눈물을 흘리시고 간단한 말도 하신다고 한다. 당신이 좋아하던 며느리가 쓴 책이 나올 때는 꼭 집에서 만나자는 소원을 빌어본다.



    엄마, 작가 되다

    투고의 길은 멀고도 험해서

    요즘은 쉽게 작가가 된다. 자비로도 되고 10명이서 공저로도 작가가 되는 세상이다. 작가가 되는 수업을 몇 백만 원을 내고 들으면 기획서 쓰기부터 책의 투고까지 도와준다. 책 한 권 내고 나면 작가라는 이름으로 강연을 다닐 수 있다고 하니 글이 좋고 책이 좋아서 쓰는 게 아니라 돈을 벌려고 책을 쓰고 돈을 벌려고 책쓰기를 알려주는 세상이다.


    쉽게 작가가 되고 아무나 작가가 된다고 말했지만 내가 작가가 될 엄두는 못 내고 있었다. 글도 쓰지 않으면서 책 한 권 내고 싶다고 말하고 다닌 건 나중에 나이가 들면 시간이 많고 돈이 많아서 내가 쓰고 싶은 걸 쓰고 내 돈으로 한 권 내면 되지 않겠냐는 말이었다. 그렇게 상상 속에만 있던 작가라는 이름을 꿈꾸게 된 것은 책 덕분이었다. 매일 읽는 책이 나를 작가로 만들어주었다.


    그래도 작가라니, 감히 책이라니 하던 내게 꾸준히 책을 써보라고 해준 건 서평을 읽어주고 리뷰가 재밌다고 하는 이웃들이었다. 이런 주식서가 있으면 좋겠다고. 이렇게 쉽게 써우면 좋겠다고. 아줌마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주식서가 필요하다며 나를 부추겼다. 유니콘 같고 44사이즈 같던 작가라는 꿈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래! 결심했어. 작가가 되는 거야.’ 그런 의지를 가지고 시작한 게 아니었다. 그런가? 진짜 그런 책은 없나 싶어 찾아보다가 진짜 없다는 걸 알았다. 그렇다면 또 누군가 겁 없이 주식장에 뛰어들어 돈을 잃을 텐데 안쓰러웠다. 아이들 내복 한 장을 사면서도 리뷰를 꼼꼼히 챙기던 엄마들이 공부 없이 자기 돈을 주식에 투자한다는 것이 걱정되었다.


    남편이 사라고 했다고, 남편 친구가 추천해줬다고, 옆집 아줌마가 사기에 같이 샀다고 말하는 그녀들이 스스로 찾아 읽고 공부할 책을 써야 했다. 아니, 잔소리를 써야 했다. 차트와 그래프로 단타를 하는 방법은 서점에 차고 넘치지만 주식을 하면서도 불안하지 않고 큰 수익이 아니라도 1년에 10% 수익에 만족하는 투자법을 써야 했다. 그렇게 주식서 리뷰를 모아가며 책이란 걸 쓰기 시작했다.


    ‘아무나 안 쓰는 주제를 이렇게 잘 썼으니 출판사 찾기는 식은 죽 먹기겠지’라고 생각하며 투고를 시작했다. 처음 출판사로부터 받았던 메일은 스팸메일인 줄 알았다는 답장이었다. 작가 소개도 없이 출간기획서라는 제목에 원고 일부만 파일로 보냈으니 말이다.


    스팸메일인 줄 알았다는 출판사는 소재도 좋고 글도 재밌다며 전체 원고를 보내달라고 했다. 이제 드디어 출판을 하는 것인가? 그러나 전체 원고를 보내고 며칠이 지나고 몇 주가 지나도 답은 없었다. 작가님들께 물어보니 전체 원고를 보냈는데 답이 없는 경우는 거절이라고. 그럼 또 다른 데를 찾아야 되는구나 싶어 다시 투고를 시작했다.


    몇 주를 투고하며 원고를 보고 또 보았다. 너무 보고 고쳐서 이제 그만 보고 싶었다. 그냥 조용히 할 것이지 여기저기 소문을 내서는 이제 그만두지도 못하게 생겼다. 남들이 잘 쓴다니 진짜 그런 줄 알고 어리석게 책까지 내보자고 생각한 내가 모자란 사람이었다.


    전체 원고를 보내주시면 바로 연락을 해주겠다는 출판사의 메일이 왔다. 저번에 그랬으니까. 전체 원고를 보내도 연락을 기다리지 말자 하면서도 마음은 메일로 가 있었다. 오후에 보낸 메일에 답이 없기에 그래 뭐 내일은 오겠지 하며 저녁 식사를 하려는데 모르는 번호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안녕하세요. 북**출판사의 OOO입니다.”


    인사에 정신이 멍해졌다. 원고가 좋아서 바로 계약을 했으면 한다고, 지금 퇴근하는 길인데 계약이 급해서 이렇게 연락을 드린다는 말이 꿈처럼 들렸다. 그러나 다음 날 출판사로부터 계약서를 받고서야 알았다. 유니콘이 꼭 상상 속에서만 사는 게 아니라는 것을. 꿈같고 거짓말 같은 일이 이루어지기도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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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