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쉴 때마다 새로운 내가 된다면
 
지은이 : 마셜 골드스미스(역:안솔비)
출판사 : 한국경제신문
출판일 : 2023년 04월




  • ‘세계적인 리더십 전문가’이자 ‘최고의 리더십 구루’로 알려진 마셜 골드스미스 박사가 수십 년간의 코칭 경험을 통해 겉보기의 성공이 아닌, 진정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사는 방법을 전합니다.


    숨 쉴 때마다 새로운 내가 된다면


    당신의 삶을 선택하라

    ‘새로운 호흡’ 인식 체계

    석가모니가 “숨을 쉴 때마다 새로운 내가 된다”라고 한 말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었다. 그의 말은 글자 그대로를 의미했다.


    부처는 삶이란 과거의 나로부터 현재의 나로 이어지는 끊임없이 환생하는 순간의 연속이라는 가르침을 전달했다. 선택과 행동으로써 당신은 한순간 기쁨과 행복, 슬픔과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감정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새로운 호흡마다 감정은 변하고 결국에는 사라진다. 그 감정은 과거의 당신이 경험한 것이었다. 당신은 다음 호흡에, 내일에, 또는 내년에 일어나길 바라는 어떤 일이든 그건 또 다른 당신, 즉 미래의 당신이 경험할 것이다. 여기에서 유일하게 반복되는 것은 방금 숨을 들이쉰 현재의 당신이다.


    나는 부처의 말이 옳다는 가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그렇다고 해서 신앙을 버리거나 불교로 개종하라는 뜻은 아니다. 시간의 흐름에 대해 생각하고 마땅한 삶을 살기 위한 새로운 인식 체계로써 부처의 통찰력을 고려해달라는 것뿐이다.


    불교에서 중심으로 삼는 개념은 무상(無常)이다. 즉, 현재의 감정과 생각, 물질적인 소유는 지속되지 않는다. 이러한 것들은 새로운 호흡을 채우는 시간만큼 짧은 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 우리는 이미 경험을 통해 이 사실을 알고 있다. 통제, 동기, 즐거움 등 모든 것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손에 잡히자마자 돌연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삶을 이해하는 합리적인 방법으로 무상의 개념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사실 사람의 정체성과 특성이 통일되고 하나뿐이라는 것은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깊게 뿌리박혀 있는 서구식 인식 체계는 무상에 반대되는 현존하는 관점이다. 이는 “그리고 그들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언제나 같은 결말로 끝나는 동화와 같다. 서구식 인식 체계는 미래에 더 좋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 노력하면 다음 두 가지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다. 어떤 성장을 했든 과거의 나와 본질적으로 똑같은 사람이고 모든 증거에도 불구하고 이번만큼은 쭉 지속될 것이다. 이러한 인식 체계는 우리의 영혼을 갉아먹는 모든 것에 대한 영구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좌절감을 안겨주기에 나는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을 권한다. 바로 과거나 미래보다 현재의 순간을 귀중하게 대하는 것이다.


    목표를 설정하고 대단한 업적을 성취하는 데 익숙한 고객들에게 새로운 호흡 인식 체계를 설명하면, 그들은 과거의 성공을 기억하는 즐거움이나 야심 찬 목표를 추구하는 미래 지향적 기대감보다 현재가 최우선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약간 시간이 걸린다. 미래 지향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그들에게 당연한 일이고, 과거의 업적을 자랑하기 위해 뒤를 돌아보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놀랍게도 현재의 순간은 부차적인 생각일 뿐이다.


    새로운 호흡 인식 체계와 마땅한 삶을 사는 것에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이 연관성은 스위치를 탁 켜서 어두운 방을 밝히는 것처럼 즉각적이고 직접적이다. 당신이 얻은 가치 있는 모든 것, 작게는 선생님의 칭찬부터 크게는 좋은 평판이나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받는 사랑까지 세상의 변덕과 무관심에 의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이러한 소중한 ‘소유물’ 역시 거의 날마다 또는 매 시간, 어쩌면 숨을 쉴 때마다 끊임없이 다시 얻어야 하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나의 고객들에게 과거의 실수를 자책하지 말라고 상기시켜 주는 일은 그들에게 중요한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반대의 상황, 즉 고객들이 과거의 가장 빛나던 순간을 재현하고 싶어 할 때도 마찬가지다. 15년 전에 금메달을 목에 건 순간이든 6개월 전에 2만 명의 조직을 이끌 때든, 그들을 현실로 돌아오게 해서 더 이상 존경받는 운동선수나 위엄 있는 CEO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들에게 상기시켜주고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내 의무다.


    과거의 업적은 다른 사람이 이룬 것이다. 당신이 소셜 미디어에서 꾸준히 팔로우하는 유명 인사를 보며 대리 만족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 유명 인사는 당신이라는 존재를 알고 있지도 신경 쓰지도 않는다. 서로가 전혀 모르는 사람일 뿐이다. 그저 과거의 명예로 끊임없이 돌아가는 것이다. 그 당시에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었던 명성과 관심, 존경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지만 이제는 희미해졌다. 과거의 영광을 회상하는 것은 더 이상 만족감이라고 볼 수 없다. 그보다는 얼마나 덧없는지, 그리고 얼마나 가차 없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지에 대한 후회의 한탄에 가깝다.


    과거의 내가 누구였고 무엇을 성취했는지 추억에 젖은 채로는 만족감을 되찾을 수 없다. 만족감은 오로지 지금 당장의 나라는 사람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새로운 사람이 되는 순간마다 계속해서 얻어야 한다.


    선택하지 않는 것의 힘

    직업적인 측면에서 볼 때 세상에서 가장 운 좋은 사람은 “나는 돈을 받지 않아도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있어요”라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음악가, 프로 게이머, 공원 경비원, 패션 디자이너, 음식 비평가, 프로 포커 선수, 댄서, 개인 쇼핑 도우미, 성직자 등 이들은 모두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재능이 있고, 자신이 재능 있는 일을 사랑한다. 그리고 사회는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 이들은 월급이 어마어마하든 보잘것없든 자신이 선택한 길을 후회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들 앞에 놓인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소수의 운 좋은 사람들과 멀지 않은 곳에서 뛰어난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현재의 위치에 어떻게 도달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그게 내가 유일하게 잘하는 일이었거든요.” 그들이 자신을 소개할 때 흔히 하는 말이다.


    마땅한 삶을 사는 것은 선택과 함께 시작한다. 미래를 위해 당신이 품고 있는 모든 아이디어를 꼼꼼하게 살피고 그 중에서 전념할 한 가지를 선택한다. 말은 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어쩌면 당신은 가만히 있지 못하는 창의적인 유형의 사람으로, 아이디어가 너무 많아서 한 가지를 딱 집어내지 못할 수도 있다. 또는 정반대의 문제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디어가 부족해서 자동으로 관성에 머무르는 것이다.


    이처럼 난처한 상황이라면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어떤 희생을 치러야 할지, 누구와 공유할지, 어떤 곳을 선택할지 등 미래에 대해 어떻게 결정을 내려야 할까? 최종 선택이 후회보다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기회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상투적인 방법은 가장 먼저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다음에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또는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한가? 마땅한 삶을 사는 것은 무엇보다도 규모의 문제다. 즉, 당신의 목적에 부합하는 일에는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는 일에는 큰 노력을 들이지 않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마땅한 삶을 사는 비결이다. 양극단의 삶을 사는 것. 꼭 해야 하는 부분은 극대화하고,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부분은 최소화한다.


    나 자신을 지탱하고 행복하게 하는 심리적이고 정서적인 원천이 있는가? 그리고 나는 오랫동안 꾸준히 다른 우선순위나 방해 요소를 물리치고 그러한 원천을 극대화할 의지가 있었는가? 다시 말해, 나는 새로운 도전을 성공하기 위해 기꺼이 대가를 치렀는가?


    동기부여와 능력, 이해, 자신감의 영역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다. 이 일을 하는데 얼마나 희생할 수 있는가를 판단하는 것이다. 우선순위를 정하고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절충점과 마주했다. 누군가는 비상식적으로 불균형하다고 여길 만한 삶에서 나는 균형을 찾을 수 있을까?


    삶의 만족감을 좌우한다고 생각한 여섯 가지 요소를 정리했다. 모두 익숙한 하나의 사슬로 연결돼 있었다. 목적은 내가 하는 일에 이유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고, 이는 만족스러운 직업을 보장했고, 목적 성취의 가능성을 키웠으며, 그 결과 삶의 의미뿐만 아니라 잠깐의 행복도 더해주었다. 새로운 도적이 이 모든 것들을 가져다준다는 데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하나를 극대화하면 나머지는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었다. 이제 남아있는 것은 관계다. 나는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하는 상황이 아니었다. 나에게는 한 가지 선택만이 있었다. 즉, 선택권이 없었다. 나는 그저 절충점의 조건과 규모를 협상하고 있었다.


    만약 마땅한 삶이 희생과 절충을 통해 중요한 영역에 주력하는 것이라면, 나는 이때부터 마땅한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나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열망: 현재보다 미래에 특권을 줘라

    우리만의 삶을 이끌어가기 어렵다고 느끼는 이유, 또는 변화에 앞서 매번 망설이는 이유는 구체적인 문제와 상관없이 상상하는 삶이 어떤 기분일지, 그 삶을 좋아하기는 할지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인생의 한 단계가 끝난 뒤 즉시 다음 단계가 깨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루 동안 예전의 나에서 새로운 나로 급격하게 바뀌지 않는다. 길고 점진적인 과정을 거치며 미래를 엿보며 깨우침을 얻는다. 이는 시카고대학교의 철학자 애그니스 칼라드(Agnes Callard)가 “열망”이라고 부르는 과정이다.


    아이를 낳을지 결정하는 것은 인생의 매우 큰 선택으로, 다른 선택과는 성격이 다르다. 부모로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기도 하지만, 말 그대로 아이에게 새로운 삶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없는 삶과 부모가 되는 삶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가 바로 열망이다. 부모가 되는 것은 하나의 개별 사건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과거의 사람이 새로운 사람이 되고 싶은 열망을 갖는” 과정이라고 한다. 칼라드 교수의 말에 따르면, 열망은 “새로운 무언가를 관심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합리적 과정”이다. 열망 덕분에 가치와 기술 및 지식을 획득하는 힘을 얻는다. 하지만 즉각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인내심을 요구하며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된다. 본격적으로 긴 수영을 하기 전에 각자의 방식대로 물에 발을 담가보며 마음에 드는지 확인할 수 있게 하면서 서두르거나 부담을 주지 않는다. 이러한 면에서 열망의 과정은 기자가 기사를 쓰기 위해 조사하고 보도하는 것과 비슷하다.


    나의 고객들이나 다른 코치들은 행동(Action)/야망(Ambition)/열망(Aspiration)모델에 대해 설명해주면 잘 ‘이해’했다. 처음 배운 것은 이 세 가지 요소가 독립적인 변수이며, 반드시 연결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이 세 가지 변수를 연결해야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 행동은 무작위적이고 불분명하며, 충동적이고 즉각적인 욕구를 충족하는 데에만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사람들은 배가 고파서 요리한다. 월급을 벌기 위해 출근한다. 친구들을 따라 동네 술집에 가서 좋아하는 팀을 응원한다. 이는 꼭 암울하거나 씁쓸하지만은 않은 타당한 행동이지만, 이들이 연결돼 있는 목적 달성이나 더 놓은 목표는 과연 무엇일까?


    본질적으로 열망은 현재보다 미래를 우선시하는 행동이다. 권력이 과거에서 미래로 이동하는 것이다. 아무리 위험을 회피한다고 해도, 무언가를 열망한다면 약간의 도박을 선택하게 된다. 시간과 에너지라는 돈을 가지고 미래의 당신이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데 내기를 거는 것이다. 당신이 내기에서 이기기 위해 얼마나 끈질기게 노력하고 창의성을 발휘하는지 놀랄 준비가 돼 있는가? 이것이 바로 마땅한 삶을 살게 되는 과정이다.



    마땅한 삶을 획득하라

    인생 계획 검토

    인생 계획 검토(LPR)의 목적은 계획한 것과 실제로 실천하는 것 사이의 격차를 줄이는 데 있다. 이를 시작하는 방법은 그 이름에서 찾을 수 있다. 인생, 계획, 그리고 검토. 먼저 당신이 원하는 인생은 어떤 모습이고, 모든 일이 계획대로 흘러갔을 경우 미래의 모습은 어떠할지 결정한다. 하지만 수많은 목적 지향의 자기 계발과는 다르게 이 방법은 당신에게 동기부여나 습관, 지혜, 용기를 설교하는 데만 의존하지 않는다. LPR은 자기 점검의 훈련으로써,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한 당신의 노력을 매주 검토한다.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를 측정하고, 꾸준함보다는 실수를 예측하며, 대부분 완벽하지 못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인정한다. 얼마나 쉽게 실수와 거부, 타성에 무너질지,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지는 오로지 당신에게 달렸다.


    LPR이 유일하게 요구하는 점은 얼마나 노력하는지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굉장한 노력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그런 다음, 마치 트레이너가 윗몸 일으키기 한 세트를 더 요구하듯이 한 가지를 더 권한다. 그 결과를 공동체 안의 사람들과 공유하라는 것이다. 그냥 수치를 읊어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의견을 교환하며 서로를 도와야 한다.


    LPR은 공동체가 없으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집단의 규모는 적절한 사람을 데려오고 잘못된 사람을 배제하는 기능을 한다.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모임에 가치를 더해줄지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단순히 인원수를 채우는 것으로 걱정을 덮어두지 말라. 그 사람이 모임의 분위기를 해치게 두는 것보다는 제외하는 것이 좋다. 최소 다섯 명에서 최대 여덟 명을 넘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회의 시간은 90분을 넘지 않도록 한다.


    LPR은 치료법이 아니다. 미래의 목표를 공유하는 성공한 사람들의 모임이지,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 푸념을 늘어놓은 자리가 아니다. 그리고 ‘성공한 사람’이라는 말은 대단한 지위나 권력, 연봉으로만 평가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당신은 희생자나 순교자가 아니라 발전하겠다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진 다양한 유형의 사람을 찾고 있다.


    누군가는 모임을 주도해야 한다. 만약 LPR모임이 당신의 아이디어라면 당신에게는 회의를 운영할 책임이 있으며, 이왕이면 지나친 개입보다는 약간의 도움을 주는 정도가 좋다. 그렇지 않으면 그 LPR은 동료 코치의 표현에 따르면 “지나치게 원활히 진행되지 않는” 모임이 될 수 있다.


    습관으로 만들기

    우리의 노력은 언제 시작할까? 그리고 언제 끝날까? 언제쯤 모든 일을 쉬면서 지난 과정을 음미하고 재평가하며, 때로는 새로운 무언가를 성취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가? 규율은 마땅한 삶을 이루는 데 필요하며, 후천적인 능력으로 규칙 준수, 책임, 추적 조사, 측정, 공동체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또한 계획을 유지하기 위한 시스템으로 LPR의 간단한 구조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더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도 되짚어보았다.


    규율, 계획 유지하기, 도움 요청하기를 뒤따르는 중요한 주제는 타이밍에 관한 것이다. 마땅한 삶에 도달하는 것은 힘든 여정이며, 때로는 완벽하게 몰입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다. 우리의 자원, 즉 에너지와 동기부여, 집중력은 고갈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가속페달을 밟아야 하고, 언제 뒤로 물러나 회복하고 다시 시동을 걸어야 할까? 그래서 어떻게 ‘항상 얻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과 지금까지 무엇을 이루었고 앞으로 어떤 것이 남아 있는지 고민하는 시간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


    인생은 긴 게임이다. 꼭 명심하라. 매우 긴 게임이다. 자기 자신은 물론 주변 상황을 잘 파악하는 전략을 마련하고 있어야 긴박감을 유지하면서도 자원 고갈을 피할 수 있다. 그러면 언젠가 마땅한 삶을 향한 노력은 습관이 될 것이다.


    우리가 시작한 일을 이루었을 때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상황이 변해 지금까지 해오던 일을 계속 유지할 필요가 없을 때, 우리의 노력은 끝난다. 그러나 나 자신을 재정립하기 위해 삶을 재창조해야 한다는 판단이 들 때, 그래서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라도 나의 것으로 만들겠다고 결심했을 때, 노력은 다시 시작된다. 시작과 끝 사이에서 우리의 역할, 정체성, 과거에 대한 미련, 기대감 등 많은 것들을 떠나보내고 새로운 것을 채워야 한다. 이렇게 우리는 새로운 시작을 얻는다. 한쪽 문을 닫고 새로운 문을 열어야 한다.


    신뢰는 두 번 얻어야 한다

    마땅한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


    내가 감탄한 한 가지 대답은 피터 드러커의 말이었다.

    “인생의 사명은 자신이 얼마나 똑똑하고 옳은지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변화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지는 우리가 결정한다. 어떤 사람들은 엄청난 규모의 희생과 야망을 통해 변화를 만든다. 생명을 구하는 의사, 잘못을 바로잡는 활동가, 사회를 개서하는 자선가가 그렇다. 또 어떤 사람들은 소박하고 작은 활동을 한다. 친구의 고통을 위로하려고 애쓰고, 어린이 야구단에서 코치를 하고, 인연이 될 두 사람을 소개해주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부모가 되려고 한다. 이와 같은 양극단 사이에는 배려와 친절함을 낳은 무수한 선행이 존재한다.


    성공한 사람들에게 마땅한 삶을 추구함으로써 얻는 만족을 설명해달라고 부탁했을 때, 여태껏 단연 1등을 차지한 답변은 “사람들을 돕는” 행위였다. 나는 이 대답들이 피터 드러커의 예리하면서도 관대한 통찰력을 다시 한번 확인해준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사명은 긍정적인 변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는 우리에게 옳은 일을 하라고 촉구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존재하는 것, 우리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설명하고 있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때 가장 온전한 삶을 누린다는 것이다.


    당신이 이루고 싶은 긍정적인 영향력의 유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매우 개인적인 두 가지 특성부터 파악해야 한다. 첫 번째는 신뢰, 두 번째는 공감이다.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려면 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신뢰는 오랜 시간에 걸쳐 사람들이 당신을 믿을 때 얻게 되는 평판이다. 신뢰를 얻는 과정은 두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단계는 다른 사람들이 가치 있게 여기는 일에서 능력을 쌓고 그 일을 꾸준히 잘 해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신뢰를 얻는다. 사람들은 당신이 약속한 것을 지킬 것이라고 믿는다. 두 번째 단계는 그 능력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서 인정을 얻는다. 확실한 신뢰성을 얻으려면 믿음과 인정이 모두 수반되어야 한다. 신뢰는 사람들이 옳은 일을 하도록 설득할 수 있는 권위이며, 결국에는 긍정적인 변화를 만드는 우리의 능력을 끌어올린다.


    단 하나의 공감

    긍정적인 영향력을 만드는 능력을 형성하는 두 번째 자질은 공감이다.


    공감은 다른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경험하는 행위다. 1873년 독일의 한 철학자가 사용한 아인퓰룽(Einfuhlüng)이라는 단어에서 기원했다. 이는 ‘감정을 이입하다’라는 뜻으로, 오늘날 우리는 다른 사람의 정서와 상황에 감정을 이입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마땅한 삶을 살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자질 중 하나는 긍정적인 관계를 쌓는 것이다. 아마 모두 인정하겠지만 공감은 관계를 쌓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변수다. 대부분의 중요한 문제들처럼 이 역시 학습을 통해 배워야 한다. 신뢰는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돕지만, 공감은 긍정적인 관계를 쌓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긍정적인 변화를 만든다는 같은 목표를 갖는다.


    우리는 보통 공감을 좋은 것으로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주의를 기울이고 관심을 두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하지만 다른 사람의 아픔을 느끼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공감은 적응력이 뛰어난 반응으로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는 머릿속으로만 공감하기도 하고, 때로는 마음에서 우러나 직접 표현하기도 한다. 또는 공감이라는 감정이 우리를 육체적으로 압도하며 무력하게 만들 때도 있다. 충동적으로 행동함으로써 공감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렇듯 상황이 변하면 공감도 따라 변한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이해의 공감이다. 이 공감을 통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이유와 과정을 이해한다. 이를 인지적 공감이라고 부르는데, 우리의 머릿속을 다른 사람과 똑같은 생각으로 채울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동기를 이해한다. 결과에 어떻게 반응할지 예측할 수 있다. 인지적 공감은 부부나 오래된 연인들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유능한 판매원이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의존하는 비법이며, 그렇기에 그들의 자긍심이 된다. 시장조사나 제품 테스트를 통해 얻게 되는 예리한 통찰도 마찬가지이다.


    예일대학교 철학 교수인 폴 블룸(Paul Bloom)은 2019년 도발적인 제목의 책 ‘공감에 반대하다(Against Empathy)’에서 공감이 가진 여러 단점에 주목했다. 예를 들어 공감은 편향돼 있다.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 매력적인 사람, 위협적이지 않고 친근한 사람’에게 감정이입을 하려고 한다. 블룸은 연민과 염려, 친절, 사랑, 도덕성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블룸은 이성이나 절제된 사고가 수반되지 않은 공감, 근시안적이고 감정적인 반응에 반영된 공감에 반대한다.


    찬란한 선함이 내재된 특성으로서 공감은 자기 자신에게 안 좋은 감정을 갖게 만든다. 공감은 우리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면 죄책감을 느낀다. 공감의 대상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고 우리가 느꼈던 감정을 정리하고 나면, 마치 보여주기식 공감을 연기해온 양 자신이 가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언제 우리는 공감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 편해질 수 있을까?


    공감의 가장 큰 역할을 효과적으로 현재에 집중하도록 일깨워준다는 점이다. 당신은 긍정적인 영향력을 만들 수 있을 때만, 즉 그것이 중요한 순간에만 공감을 표현하고 경험하고 있는가?


    나는 “단 하나의 공감”이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이 표현은 하나의 사람과 상황에만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고, 공감을 표현할 기회들은 유일무이한 사건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단 하나의 공감은 그 순간에만 존재하며,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때로는 이해의 공감과 비슷하기도 하고 때로는 감정, 배려, 행동의 공감과 닮아 있다. 단 하나의 공감을 보여준다면 당신은 가식적일 수 없다. 가까운 과거든 오래전이든 다른 순간의 사람들에게 무례한 행동도 아니다. 그 진가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 즉 지금 함께하고 있는 사람에게만 공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나는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고 있는가?’


    이 질문에 한 번만 긍정적으로 대답해보면, 그 순간은 당신의 것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그리고 이 질문을 습관적으로 계속 던지다 보면, 며칠에서 몇 달, 그리고 몇 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마땅한 순간들이 쌓여 마침내 마땅한 삶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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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