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가면을 쓰고 있나요
 
지은이 : 양스위엔(역:박영란)
출판사 : 미디어숲
출판일 : 2023년 06월




  • 척, 척, 척 하는 것 이제 그만! 관객을 위해 서툰 연기를 하지 말고, 자신만의 소극장에서 행복한 주인공이 되기를 추천 드립니다! 심리상담사가 알려주는 마음 가면을 벗고 나답게 사는 법!


    당신은 어떤 가면을 쓰고 있나요


    외향성 고독 -알고 보면 내향성 인간입니다
    쾌활한 모습이 진짜가 아닐 수 있다

    나는 감정 기여자 또는 감정 조력자?

    다희는 모두가 인정하는 조직이나 또래 집단에 잘 어울리고 유행에서 앞서간다는 인사이더(Insider), ‘인싸’다. 파티나 모임의 주최자가 누구든 다희만 있으면 분위기가 어떨지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지금까지 그녀가 속한 모임에서 분위기가 가라앉은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모임이나 파티를 빼고 그녀의 삶을 얘기하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똑똑하다. 활발하다. 열정적이다. 유머러스하다.’


    주변 사람들이 그녀를 생각했을 때 떠올리는 말들이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정작 그녀는 화려한 껍데기 안에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 싫어하고 소외된 고독한 자아가 숨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매번 사람들과 함께 있는 자신의 모습이 진짜가 아니라는 생각을 떨쳐내기 힘들었다.


    사실 ‘인싸’들에게는 넘치는 에너지와 충만한 열정 외에도 남들이 잘 눈치채지 못하는 특징이 있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쉽게 열고, 일반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상대방의 감정을 잘 포착할 뿐만 아니라 대화를 나누는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 준다. 어떻게 보면 그들은 자기 비하에 탁월하고 자신은 특별히 원하는 게 없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자, 이제 어떤 생각이 드는가? ‘인싸’의 화려한 후광이 아닌 숨겨진 ‘감정 기여자’ 또는 ‘감정 조력자’라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어떤 모임이든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만족시키고 별 다섯 개짜리 ‘좋아요’를 얻으려면 사람들의 감정을 살피고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그러니 어찌 피곤하지 않겠는가.


    자기감정의 필요는 무시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적 에너지원이 되기를 선택한 셈이다. 이것이 바로 다희가 ‘인싸’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인 동시에 그녀가 외로움을 느끼고 극심한 심신의 피로를 느꼈던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민감한 이유

    감정에 민감한 사람들의 이러한 기질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어떤 사람들의 감정적 민감함은 유전적 요인 때문일 수도 있다. 즉, 그들은 비정상적으로 민감하고 과도하게 공감하는 뇌 구조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의미다. 반면에 어떤 이들은 성장 과정에서 영향을 받아 후천적으로 감정에 민감해진 경우도 있다.


    다희에게 어린 시절 특별한 경험에 관해 묻자 그녀는 남의집살이를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 다희는 집과 학교가 너무 멀어서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외삼촌댁에서 지냈다. 외삼촌과 외숙모 모두 따뜻하게 대해 주셨지만 그녀는 늘 어딘지 모르게 위축되고 소심하게 지냈다고 한다.

    그때부터 다희는 다른 사람의 감정 변화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비록 외삼촌댁이라 해도 남의 집에서 지내는 환경이라 늘 안정감을 주지 못했다. 이런 환경에서 그녀는 자신을 불안한 상태에 밀어 넣었다. 이런 불안함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주변 환경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야만 했다. 그래야 자신이 상처받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외삼촌 부부가 그녀에게 해코지하거나 상처를 줄 리는 없지만 어린 10대 소녀에게 자신이 ‘반갑지 않은’, ‘환영받지 못한’ 존재일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가 이미 감당하기 힘든 상처다. 그녀의 민감함은 자기를 보호하는 하나의 수단이 된 셈이다.


    마음 깊은 곳에 박힌 두려움

    다시 말해서 그녀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인싸가 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필요로 하지 않는, 가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녀를 사람들 속으로 몰아넣는 원동력은 다름 아닌 마음 깊은 곳에 뿌리박힌 ‘두려움’이었다. 우리는 두려움을 느낄 때 자연스럽게 타협하고 양보하며,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과도하게 휘말리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억지로 밀어 붙인다. 그러면 결국 몸도 마음도 버티지 못하고 지치고 만다.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다

    다른 사람과의 교제에서 지치지 않고 자유로우려면 두려움부터 내려놓아야 한다. 그러나 두려움을 내려놓기 위해선 매우 안정적이고 강인한 핵심 자아를 가지고 있어야 하므로 말처럼 쉽지는 않다. 자아를 변화시키는 것은 길고 어려운 과정이지만 인식을 바꾸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고 간단하다.


    다희가 깨닫지 못한 사실은 스스로 ‘다른 사람의 감정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인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린 시절 외삼촌댁에서 자라는 과정에서 심어진 잘못된 인식이다. 생각 외로 다른 사람의 감정은 우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경우가 많으며, 다른 사람의 감정을 책임질 필요도 없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평가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느끼는 실망감,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우리에게 다른 사람을 실망하게 만들어도 괜찮다는 여유로운 마음만 있으면 굳이 관계 안에서 ‘인싸’가 되려고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되고 다른 사람의 감정 변화에 크게 휘둘리지도 않을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피로감을 느끼고 싶지 않다면 감히 다른 사람을 실망시키는 일부터 시작해보자.



    경계 의식 -내 중심을 잡으면 휘둘리지 않아요
    경계 의식이 부족한 관계는 재앙이다

    폭력의 대물림, 공격자와 동일시

    영이의 존재는 어머니에게 원죄나 다름없었다. 영이가 생기는 바람에 남편을 떠나지 못하고 자신의 운명을 바꿀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했다. 이 ‘원죄’라는 생각 때문에 어머니는 영이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고 심지어 딸을 미워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장애로 인해 남편이 더는 가족을 부양할 수 없게 되자, 어머니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모든 수고와 무거운 짐을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했다. 그러면서 어머니의 마음속 원망도 점점 커져만 갔다.


    그녀는 자라면서 어머니의 원망과 비난, 트집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사랑 받지 못하는’ 감정을 자신의 일부로 내면화했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공격자와 동일시(identification with the aggressor)’라고 한다. ‘욕하면서 닮는다’는 말이 있다. 나를 괴롭히고 공격하는 사람의 행동을 따라 하는 등 자기도 모르게 닮아가는 것을 말한다. 자신이 두려워하는 대상의 특징을 따라 하여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미성숙한 방어기제 중 하나이다.


    공격자와 동일시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 내재화된 경찰을 배치한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쉽다. 이 내재화된 경찰은 항상 우리를 감시하며 어린 시절 공격자가 자신을 대할 때의 느낌을 상기시킨다. 자라면서 우리는 점차 자신을 부정하고 비판하는 습관이 생기고 다른 사람의 감정에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며, 다른 사람과 갈등을 일으킬 용기가 없어서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긴장된 관계를 완화하려고 한다. 또 갈등이 생기면 자신에게서 그 원인을 찾는 사고방식을 가져 모든 일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여긴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과 공생관계를 이루다

    영이처럼 자신을 향한 어머니의 공격을 내면화하다 보면 자기 정체성을 발전시키기 어렵다. 영이가 자신을 인정하려 할 때마다 폭력적인 어머니의 이미지가 무의식중에 튀어나와 자신을 공격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영이에게서 어머니의 이미지가 항상 떠나지 않고 머물러 있어서 어머니와 분리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면세계가 어머니와 분리되지 않으면 이런 공생의 감정은 외부로 투사된다. 엄마로부터 비난을 당한 딸은 그 비난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비난을 퍼붓는다. 상사에게 비난받은 남편이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화를 내는 식이다.


    영이는 뚜렷한 경계 의식이 부족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미 성숙한 어른이었지만 내면은 항상 인정을 갈구하는 어린 소녀였다. 그녀에게 주위 사람들은 ‘어머니’를 대신하는 존재였다. 그녀는 자신과 타인을 심리적으로 묶고 ‘나를 인정해 달라’고 마음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공격자와 동일시’하는 방어기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뚜렷한 경계 의식을 구축하지 못하면 우리 삶은 그야말로 재앙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경제 의식이 부족한 사람은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무조건 참고 양보하고 타협하는 방법으로 자신을 내버려 두는 것은 결국 다른 사람이 마음대로 쳐들어오도록 문을 열어두는 꼴이다. 심리적으로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는 사람은 반드시 현실에서 반복적으로 상처를 입게 된다.


    영이에게 어머니의 공격은 사실 일종의 보이지 않는 조종이며, 이 조종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끊임없이 어머니에게 인정을 구할 수밖에 없으며 결국 끝없는 내적 갈등을 초래할 것이다.


    경계 의식을 뚜렷이 하는 방법

    그렇다면 뚜렷한 경계 의식을 세우는 방법은 무엇일까?

    (1) ‘아니요’라고 말하라

    다른 사람에게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의 감정을 존중하는 것뿐이다.


    (2) 외부에 투사되는 자신의 모습을 점검하라

    우리가 이 세상과 관계를 맺는 것은 투사 방식을 통해서이다. 간단히 말해서 ‘투사’는 ‘내가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반드시 진실이 아닐 때가 많기 때문에 일이 생길 때마다 ‘정말 그런가?’라고 자문해 보아야 한다.


    (3) 중요한 것은 ‘틀려도 괜찮다’는 신념이다

    완전한 자기 수용을 이루기 위해서는 핵심 자아를 확립해야 한다. 자신의 실수를 허용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것도, 우리의 경계를 허무는 것도 어렵다.


    성장 과정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원가족의 흔적을 짊어지게 되는데 그 흔적에 얽매이면 매우 고단한 삶을 살게 된다. 또한 진정한 자신으로 살아가기도 힘들다. 우리가 처한 상황을 명확하게 보고 이러한 속박을 용감하게 돌파해야만 진정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



    단단한 자아 만들기 -진짜 행복은 단단한 자아에서 옵니다

    ‘보통의 힘’이 있다면 어떤 어려움에도 쓰러지지 않는다

    현실의 포레스트 검프, 가오위예

    영화 얘기를 하다 보니, 몇 년 전의 뉴스가 생각난다. 2017년 화둥이공대학교 졸업식에서 선천적으로 청력을 잃은 가오위예가 졸업생 대표로 인사말을 했다.


    “제가 청각장애인이라 발음이 다소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한 글자 한 글자 정확하게 말하기 위해 노력할 테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부모가 모두 청각장애인인 가정에서 태어난 가오위예는 부모의 유전자까지 물려받아 태어나자마자 소리 없는 세상에서 자랐다. 그러나 할머니는 손녀를 포기하지 않고 낱말카드를 들고 손녀의 입을 틔우기 위한 학습과 훈련을 이어 갔다. 마침내 그녀는 일반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갈 수 있었고 정상적인 교육을 받았다. 오랜 노력은 결실을 보았고 청각장애가 있는 소녀는 전체 예술계 학생 중 교양과목 1등, 전공과목 2등의 우수한 성적으로 화둥이공대학교에 입학했다. 포레스트 검프의 어머니가 아들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처럼 가오위예의 할머니도 손녀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지 않다’고 굳게 믿었다.


    인생의 본질과 목적은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영화 속 포레스트 검프와 현실 세계의 청각장애 소녀 가오위예 모두 자신의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남들과 다르지 않다’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받았다. 이러한 경험은 결국 내재화를 통해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고난 앞에서 침착하게 대처하는 사람은 모두 ‘보통의 힘’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 안에는 ‘나는 괜찮다’는 믿음이 있다. ‘나는 괜찮다’는 믿음은 ‘나는 완벽하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불완전한 자신도 포용한다는, 즉 ‘나에게 결함이 있어도 나는 괜찮다’는 자기 정체성이다. 이런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힘겨운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 세상의 불확실성과 함께 춤을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갑작스러운 실직이나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 자녀의 입시 실패, 가까운 사람의 죽음 등 고통스럽고 막막한 순간이 찾아온다. 이처럼 인생의 암울한 순간에 우리는 마치 제니를 잃은 포레스트처럼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한다.


    우리는 달리기를 선택한 포레스트와 달리 불안이나 우울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빠지면서 문제에 대한 확실한 해답을 찾으려 애쓰고 상황을 바꾸는 데 집착한다.


    세상에는 해답이 없는 질문과 바꿀 수 없는 일이 많다. 이 세상의 불확실성과 함께 춤을 출 수 있을지는 ‘보통의 힘’을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보통의 힘’은 ‘그럼 그렇게 하자’라는 고차원의 지혜다. ‘그럼 그렇게 하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 뒤에 원래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자신과 화해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 최선이다

    ‘보통의 힘’을 기르는 방법은 무엇인가? 포레스트 검프처럼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다. IQ는 낮지만 포레스트 검프는 군대에 입대한 후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침대를 정리하든, 무기를 분해하고 장착하든 항상 모든 일을 가장 먼저 끝냈다.


    분명히 그가 의존하는 것은 낮은 지능이 아니라 일에 대한 집중력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했기 때문에 모든 일을 다른 사람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침착하게 사는 사람은 좀처럼 미래를 예측하지 않는다. 미래의 일은 아무도 알 수 없고 인생은 무수한 현재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매 순간’에 전념할 수 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서 하고, 바꿀 수 없는 일은 ‘그냥 그렇게’ 두면 된다. 벌어진 일은 그냥 받아들이고 현재에 집중하라.


    인생의 난제를 해결하는 특효약이 있습니다!

    ‘그만두자’의 지혜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을 바꾸고 싶어 하잖아. 일찍 일어나고,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자기감정을 다스리고 싶어 하는데 왜 그렇게 어려운 거야?”


    이 질문을 정신분석학적 관점으로 접근해 보면 답은 여러 가지가 있다. 예를 들어 만족 지연이 불가능하거나, 이러한 일에서는 즐거움을 얻기 어렵거나 추진력이 부족하기 때문일 수 있다. 도전은 ‘초자아’가 명령하고 ‘자아’는 이에 맞서기에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러나 내 생각에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좋은 답은 ‘충분히 고통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고통은 흔히 우리가 인생에서 부딪치는 많은 난제를 해결하는 두 가지 특효약을 만들어내는데, 하나는 ‘하자’고 다른 하나는 ‘그만두자’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작가인 왕샤오보는 “인간의 모든 고통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무능력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된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다.


    대부분 사람은 ‘하자’는 용기가 없고, ‘그만두자’라는 담대함이 부족해 결국 자신을 고통스럽게 한다.


    나는 고통 속에서 용기를 북돋아 눈부신 반전을 이룬 사람들을 존경한다. 그들은 투사다. 또 인생의 어려운 문제 앞에서 과감하게 ‘그만두자’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도 존경한다. 그들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물론 소중하고, 모든 사람에게 ‘하자’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에도 동의한다. 하지만 해결할 수 없는 난제에 부딪혔다면 ‘그만두자’보다 더 좋은 해답이 있을까?


    ‘그만두자’라는 말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인생 문제에 특효약 중 하나는 ‘하자’이고, 다른 하나는 ‘그만두자’이다. 자신의 증상에 맞게 약을 처방하면 모든 병은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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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