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이 분노에 답하다
 
지은이 : 충페이충
출판사 : 미디어숲
출판일 : 2022년 09월




  • 일상 속에서 불끈 솟아나는 분노의 감정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다면 일이나 인간관계는 훨씬 수월해지고 성공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내 안의 분노를 이해하면, 분노는 시작할 수 있는 힘이 되니까요! 자신의 분노를 탐색하고 이유를 찾을 수 있도록 돕습니다!


    심리학이 분노에 답하다


    분노를 이해하면 인생이 달라진다

    분노는 무언가 잘못됐다는 신호

    아침에 일어나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시다가 그만 입을 데었다. 이때 느껴지는 통증은 나의 입술이 화상을 입었을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면 얼른 찬물을 한 모금 마시고 통증을 완화한다. 아픔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만, 이는 꼭 필요한 감각이다.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셨는데도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면 더 무섭지 않은가. 입술이 화상을 입어도 깨닫지 못하고 상처가 더 심각해져도 모를 수 있기 때문이다. 신체의 통증은 우리 몸에 문제가 생겼음을 알려주는 일종의 신호다.


    분노 역시 신호다.


    분노는 괴로운 감정이지만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이상 증상이 나타났다고 알려 주므로 의미가 있다. 이때 분노를 억누르거나 표출하는 방법 말고도 그 순간의 분노에 대해 생각해 보는 방법도 있다.


    나의 마음은 무엇을 겪었는가?

    나의 삶 어디에 문제가 생겼는가?

    분노는 나에게 어떤 정보를 알려 주는가?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한다면 그 대상은 분노가 아니라 마음속의 진짜 문제다. 마음속부터 변화를 준다면 더 즐겁고 행복해질 수 있다. 분노가 자신을 더 이해하고 강하게 만드는 기회이자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분노라는 신호가 전달하는 정보를 탐구하고 해석하여 마음속 진짜 문제를 해결하면 분노 신호도 ‘깜빡임’을 멈춘다. 그러면 분노라는 감정이 준 선물이 고마울 것이다. 분노에 대한 탐구는 다음 6가지 측면에서 전개할 수 있다.


    분노 안의 심판

    분노 안의 기대

    분노 배후의 자기 요구

    분노 안의 사랑

    분노 안의 상처

    분노 안의 욕구


    이는 이 책의 핵심 내용이기도 하다. 분노를 탐구할 때의 장점은 명확하다. 분노 탐구는 자신을 이해하고 더 강하게 변화시키는 최고의 방법이다. 하지만 분노 탐구에도 한계가 있다. 우선 분노 탐구가 언제나 적절한 적은 아니다. 이따금 자신만의 세계에 빠지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먼저 처리해야 하는 일도 있다.


    심리적으로 굳건할 때 분노에 대해 탐구해야 한다. 따라서 나는 분노가 지나간 후에 분노에 대해 탐구하라고 제안한다. 분노가 지나간 후 에너지와 여력, 관심이 있을 때 다시 상황을 복기하며 그 당시의 분노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해도 충분하다.



    라벨링에 따라 분노가 올라온다 : 분노는 심판이다

    나의 해석에 따라 감정이 결정된다

    타인의 행위에 대한 나의 해석, 라벨링

    다른 사람의 행동과 말은 모두 외부 자극이다. 이 외부 자극이 우리의 눈, 귀, 코, 피부 등 감각기관을 통해 유입되면서 우리에게 영향을 준다. 하지만 자극 자체가 분노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자극이 중추신경 계통을 통해 대뇌로 전달되고, 대뇌는 판단을 거쳐 타인의 행위를 정의한다. 대뇌가 이 이해의 과정을 거치면서 타인에 대한 분노가 시작된다.


    따라서 라벨링은 ‘명명(命名)’, 혹은 ‘심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과정은 자신이 판단했는지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우리는 그 판단에 따라 반응한다.


    자녀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저녁 8시까지 텔레비전을 시청한다면 어떨까? 숙제할 생각은 없고 놀기만 하는 상황을 마주한 대뇌는 무슨 라벨을 붙일까? 어떤 부모는 ‘나태하다’, ‘불성실하다’, ‘학업을 게을리한다’ 등의 라벨을 붙인다. 자녀에게 이런 종류의 라벨을 붙인 뒤 자녀의 행동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분노 감정이 형성된다.


    어떤 부모는 ‘여유를 즐긴다’, ‘공부와 휴식의 균형을 맞춘다’와 같은 라벨을 붙인다. 이들은 자녀가 자기 관리를 잘하는 것 같아 기쁘다.


    또 퇴근한 남편이 집안일에 관심 없고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도 않으며 소파에 누워 있다고 가정해보자. 게다가 아내와 대화도 나누지 않고 휴대전화 게임만 한다. 그 상황을 목격했다면 어떤 라벨을 붙일 수 있을까? ‘가정에 관심 없다’, ‘무책임하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와 같은 라벨을 붙인 아내는 남편에게 분노한다. 한편 ‘남편이 무척 피곤하구나’, ‘가정을 위해 남편이 고생하는구나’와 같은 라벨을 붙인 아내는 남편의 고충을 이해하고자 한다.


    라벨링은 자신의 내재적인 경험과 이해에 따라 외재적인 사물을 가공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이 그다음의 감정을 결정한다. 따라서 분노에 대해 탐구하기 전에 먼저 라벨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라벨에 대한 탐구는 ‘나는 분노할 때 타인을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다.



    과잉 기대가 불러온 분노 : 분노는 기대다

    기대가 크면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분노는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했을 때 일어난다. 화난 사람이 있다면 그의 분노에 착안하여 그가 어떤 현실을 바라는지, 어떤 염원이 있는지 알 수 있다. 분노는 상대방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전달한다. 한 학생이 나에게 말했다. “남자친구가 문자 메시지에 답장하지 않아서 계속 전화하다가 불안감이 몰려와 결국 화를 냈어요.”


    이 학생의 분노에는 ‘내 메시지에 답장하고 내 전화를 받았으면 좋겠어. 언제든 나와 연락이 되면 좋겠어’라는 기대가 숨어 있다.


    한 여성은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아이는 주말에 숙제를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월요일 아침에 되면 밀린 숙제를 몰아서 해요. 그런 모습을 보면 너무 화가 나요.”


    이 여성의 분노에는 ‘아이가 주말에 숙제를 다 마치고 여유로운 월요일 아침을 보내면 좋겠다’라는 기대가 있다.


    분노는 타인에 대한 기대가 클 때 생긴다

    이런 기대가 실현되지 않으면 우리는 분노한다. 그런데 기대가 실현되지 않은 이유는 기대치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기대의 높고 낮음은 입장에 따라 달라진다. 분노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기대가 전혀 높지 않다. 하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분노한 사람의 시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이유는 기대가 높기 때문이다.


    분노하는 사람은 입장을 바꿔 생각하기 어렵다. 그저 자신의 관점에서만 볼 뿐 상대방의 관점을 헤아리지 못한다. 그런데 상대방도 나의 기대를 실현하고 싶지만, 능력의 한계로 그러지 못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원래의 기대를 유지하면 분노하게 된다.



    상대방을 향한 요구는 나에 대한 요구다 : 분노는 자기 요구다

    서로 다른 관점이 화를 부른다

    나에 대한 요구 먼저 해결하기

    분노했을 때 특정한 누군가에게 요구를 충족시키라고 할 수 있지만 모든 사람에게 언제나 요구를 충족시키라곤 할 수 없다. 언젠가는 나의 요구와 현실이 함께 공존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워야 한다. 이보다 자신에 대한 요구를 먼저 해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분노는 기회다. 다른 사람에게 하는 요구를 보며 내가 평소 나에게 어떤 요구를 하는지 깨달을 수 있다. 그리고 자기 요구를 해결하는 법을 배우면 다른 사람의 요구를 해결하는 법을 자연스레 배울 수 있다. 따라서 분노할 때 먼저 자신에게 질문하자.


    그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자신에 대한 요구를 상대방에게 요구하는가?

    타인에게 가혹한 요구를 할 때 자신에게도 이렇게 가혹한 요구를 한 적이 있는가?


    자신에 대한 요구를 해결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 바로 자기 배려의 과정이다.



    내가 울적하면 너도 울적해야 해 : 분노는 감정의 연결이다

    내가 즐겁지 않으니 당신도 즐거우면 안 돼

    나와 상대의 심리적 균형

    동료, 이웃, 친구 등 다른 사람의 행복한 모습을 마냥 기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아주 흔한 현상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경쟁 관계인 그들이 자신보다 조금 덜 잘 지내길 바란다.


    분노는 에너지가 비교적 낮은 상태로, 이때 분노는 ‘지금 나는 즐겁지 않아! 그러니까 지금 당신도 즐거우면 안 돼!’라는 의미를 가진다. 상대방이 가장 가깝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이 규율을 준수해야 한다. 이성적으로는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 건강하고 행복하며 편안하고 유쾌하길 바란다. 하지만 분노하면 이성을 잃고 상대방이 슬프고 울적하길 바란다.


    사악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런 자신을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잠재의식은 ‘합리화’라는 방어기제를 이용해 ‘다 너를 위해서야!’라며 위장한다. 그러므로 자신이 즐겁지 않을 때 잠재의식은 상대방도 즐겁지 않기를 바란다. 그 목적은 ‘내가 즐겁지 않으니 당신도 즐거우면 안 된다’라는 심리적 균형을 위해서다.


    상대방의 빈곤한 현실을 이해하면서도 그에게 더 성장하고 고생, 불안, 바쁜 생활을 경험하라고 요구한다. 나와 같아질 때까지 ‘나는 아직 부족해’라는 느낌을 계속 체험하라는 것이다. 상대방이 부유해진 후에 성장에 힘쓰지 않는다면 그에게 또 언젠가는 위태로운 시기가 올 거라며 자신과 같은 불안한 감정으로 만들어야 만족한다.


    분노할 때 상대방이 무엇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가 어떤 감정을 겪었는지, 그가 즐거운가이다. 상대방이 나처럼 즐겁지 않아야 ‘이래야 나 혼자 비참하지 않아’라고 생각하며 심리적 균형을 찾는다.



    걱정이 분노로 표출된다 : 분노는 두려움이다

    걱정을 분노로 표현한다

    나 혹은 상대를 보호하기 위한 분노

    한 어머니가 말했다. “우리 아이는 숙제든 시험이든 잘 아는 문제도 틀리고 대충하는 태도를 보여서 너무 화가 나요.”


    “그런 태도는 어떤 태도인가요?”

    “성실하지 않은 태도죠.”


    그렇다면 성실하면 어떻게 될까? 성실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성적이 나쁘고 무슨 일이든 성실하지 않으면 제대로 하기 어렵죠. 학생으로서 공부를 잘하지 못하고, 성인으로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경쟁력이 약하고 쉽게 도태되잖아요. 그러면 사회에서 발붙이기 어렵고 심지어 생존하기도 어렵죠.”


    이 어머니의 분노는 아이의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비롯됐다. 아이가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자 어머니는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아이가 편안하고 행복한 미래를 맞이하길 바란다. 그녀의 동기를 보면 그녀의 분노는 아이에게 유리하고, 자신의 아이를 보호하고자 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걱정할 때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없으면 분노라는 방식을 선택한다. 분노는 나 또한 상대방을 보호할 뿐 아니라 나와 상대방 모두를 보호할 때도 있다. 상대방의 행위가 나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그가 행동을 멈추면 그에게도 좋다.


    사랑의 두 관점

    사랑은 두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사랑을 바쳤다.

    나는 사랑을 받았다.


    어떤 사람의 동기가 다른 사람의 행위에 이득이 된다면 ‘사랑을 바친다’라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녀에게 낭비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자녀가 절약하는 습관을 기르면 앞으로의 생존에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배우자에게 책임을 지라고 요구하는 이유는 가정의 화목이 그의 남은 인생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은 사랑이라고 불린다.


    한편 상대방의 헌신이 나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았다면 ‘사랑을 받았다’라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행동으로 기쁘고 풍족함을 느끼면 사랑받은 것이다. 햇살이 따스함을 주었고, 어머니가 아침 식사를 챙겨 준 것은 모두 사랑의 표현이다.


    분노는 사랑을 준 사람의 관점에서 정의한 사랑이다. 많은 경우 우리는 다른 사람의 분노 속에서 ‘너를 구하고 싶어’와 같은 강렬한 정을 느낀다. 비록 그것의 결과로 상처를 낳고 좋은 의도가 나쁜 결과로 이어지긴 해도 말이다.


    우리는 결과로 사랑을 판단하는 데 익숙하다. 결과적으로 피해를 입으면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사랑을 준 사람에게 불공평한, 사랑을 받은 사람의 이상화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분노할 때 비록 상대방이 나에게 상처를 줘도 그 배후에 나를 사랑한다는 동기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상대방의 사랑을 느끼면 그에 대한 분노를 줄일 수 있다. 사랑을 받는 사람으로서 원하지 않으면 거절할 수 있지만, 그래도 나를 사랑한 상대방에게 감사함을 갖고 말하자.


    “나를 아끼는 당신의 마음 잘 알아. 나를 위해 노력하는 것도 고마워. 하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당신이 말한 대로 할 수 없어.”



    헌신할수록 쉽게 분노한다 : 분노는 사랑이다

    사랑받고 싶어서 분노가 생긴다

    사람은 분노하면 타인에게 강하게 요구한다. “당신은 책임감이 있어야 하고 말을 잘 들어야 하고, 성실해야 하고, 약속을 잘 지켜야 하고, 진취적이어야 하고, 절약해야 하고, 예의가 있어야 하고, 마음이 넓어야 해…. 그러니까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당신이 하면 돼.”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왜 상대방에게 그런 요구를 하는가?

    그 사람이 그 일을 하는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다른 사람이 잘못했는데 왜 나를 벌하는가?

    나는 왜 이렇게 비이성적일까?


    분노에 장점이 전혀 없다면 아무도 다른 사람이 잘못했을 때 자신을 벌주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 이기적이고 나태하며 성실하지 않은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은데 설마 모두 화를 낼 것인가?


    무엇에 분노했든, 상대방의 무엇을 바꾸고 싶든, 상대방의 어떤 가치관을 바꾸고 싶든, 분노를 선택했다면 그 배후의 이익이 자신에게 주는 상처보다 크기 때문이다. 분노의 최종 목표는 ‘그는 헌신하고 내가 수혜를 입는 것’이다.


    분노를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사랑’이다. 분노는 사랑받고 싶은 욕구 때문에 생긴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랑은 이해, 인정, 관심, 중시, 존중, 지지, 도움, 보호, 수용이다. 분노는 이런 욕구를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분노할수록 그만큼 사랑이 결핍되었다는 뜻이다. 


    자기 사랑을 위한 궁극적인 해답

    타인의 존중이 필요한 당신, 자신을 존중하는가?

    한 학생이 말했다. “어머니가 제 인생, 자산, 결혼 등을 당신 뜻대로 계획하려 해요.”, “어머니가 제 의견을 존중해 주면 좋겠어요.”


    그가 어머니에게 붙인 라벨은 ‘통제’다. 그에게 물었다.


    “스스로 자신의 의견을 존중하나요?”


    어머니가 자신의 인생을 계획하는 것이 싫다면 거부할 수 있다. 자신의 생활 리듬도 매우 중요하고 존중받아 마땅하다. 타인의 존중은 나의 의지에서 온다. 자신의 생각을 중시하고자 하면 아무도 상대방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다.


    나는 다양한 관계 속에서 존중받고 싶은 욕구가 있는 사람을 많이 만나 왔다. 사실 그들이야말로 자신을 가장 경시하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과 생각이 타인과 충돌하면 먼저 자기 자신을 포기한다. 자신도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는데 어째서 타인이 존중해 주길 바랄까?


    자신을 존중하는 사람만이 타인으로부터 존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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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