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리는 논어 한마디
 
지은이 : 판덩(역: 이서연)
출판사 : 미디어숲
출판일 : 2022년 05월




  • 우리에게는 여전히 태산처럼 풀어야 할 난제들이 쌓여 있고, 삶은 늘 고단하고 지난합니다. 이에 논어는 인생에 한 번쯤은 꼭 읽어야 할 책입니다. 연로하지만 늘 여유롭고 느긋한 표정으로 우리를 내려보는 공자의 처세가 있는 한 우리가 풀지 못할 생의 곤혹은 없을 것입니다.


    나를 살리는 논어 한마디


    리인 편 : 어진 사람들에 의한, 어진 마음을 위한

    “꽃이 핀 마을에 머무르면 매향을 품은 인생이 따라온다.”_인위미

    공자가 말하길 마을은 어질어야 아름답다. 어질지 않은 곳을 선택한다면 어찌 지혜롭다고 하겠느냐?


    첫 문장은 공자가 환경이 성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강조한 문장이다. 공자는 사람은 반드시 어짊과 덕성을 갖춘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직 행동론 전문가인 히스 형제가 쓴 『스위치』는 동네 분위기가 아이들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해 준다. 작가는 학업 성적이 좋지 않은 아이들이 치안이 좋지 않았던 거주지를 벗어나자, 학교 성적도 점차 좋아졌던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빈민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고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뒤 어떻게 생활했는지 몇 년에 걸쳐 추적 조사한 내용들이다. 빈민 지역을 벗어난 가정의 아이들은 학업 성적과 교우 관계 등 많은 면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이루어졌다. 반면 그 지역을 떠나지 않은 가정의 아이들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성적이 좋지 못했다. 이는 사람은 유전적인 요인보다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사례이다.


    아들 맹자의 교육에 대한 어머니의 열정을 나타낸 ‘맹모삼천지교’는 너무나 유명한 고사성어이다. 주변 환경이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발견하면 맹자의 어머니는 곧장 그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맹자가 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팔할이 그의 어머니 덕분이었다.


    “어짊은 밥을 먹는 사소한 순간에도 나를 다스릴 줄 아는 것이다.”_군자무종식지간위인

    공자가 말하길 “부유함과 고귀함은 사람이 원하는 것이지만, 합당하게 얻지 않았으면 처하지 않아야 한다. 가난함과 비천함은 사람이 싫어하는 것이지만, 합당하게 얻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버려서는 안 된다. 군자가 어짊을 버리면 어떻게 이름을 이루겠느냐? 군자는 밥을 먹는 사이에도 어짊을 어기지 않으며, 급작스러운 상황에서도 반드시 어질어야 하며, 곤궁한 상황에서도 반드시 어질어야 한다!”


    인터넷이나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 나는 생활의 편리함을 제공해 주고, 긍정적인 가치관을 전파하고,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는 인터넷 스타들을 많이 보았다. 하지만 일부는 그저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도 한다. 인터넷 개인 방송국을 개설해 자극적인 뉴스를 확인도 거치지 않고 편파적으로 방송하고, 저속한 표현을 사용해 인터넷 이용자들을 자극하거나, 기괴하고 삼키기도 힘든 것을 먹거나 심지어 동물을 학대하면서 트래픽을 올리려 한다. 개방적인 인터넷 세계는 누구나 접속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어린이들이 시청자가 될 수 있다거나 잘못된 정보로 특정인을 궁지로 몰아넣는 등의 사회적인 폐단은 안중에도 없다. 이런 인터넷 스타들의 목적은 오로지 자기 영향력 확대와 금전이다.


    그래서 공자는 말한다. “군자가 어짊을 버리면 어떻게 이름을 이루겠느냐?” 유명해지고 싶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자. 치졸한 방법으로 유명해진다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자신이 될 수 있다. 덕성이 부족한 채 유명세만 높아진다면 언젠가는 안 좋은 결과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한 걸음 앞설 때와 한 걸음 물러날 때를 지키는 자의 여유를 배워라.” _능이례양위국호

    공자가 말하길 예와 양보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면 무슨 어려움이 있겠느냐? 예와 양보로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면 어찌 예를 하겠느냐?


    우리는 먼저 예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예는 원시사회와 문명사회를 구분해 주는 하나의 지표이다. 생존이 목적이었던 원시 시대의 인류는 매일 야생동물과 싸우며 사냥해야 했다. 원시인들은 동물처럼 싸우지 않으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약육강식의 법칙에 따라 살 수밖에 없었다. 이후 문명사회에 진입한 인류가 생존을 위해 싸우지 않아도 안정되고 풍족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자 비로소 ‘예’가 생겨났다. 이때 생겨난 예는 양보로써 표현되었다. 예를 들면 신사들이 ‘레이디 퍼스트’를 말하거나, 연장자에게 음식을 먼저 드리는 식사 예절 등은 모두 양보에 해당한다.


    공자는 예와 양보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면 군왕과 제후, 대신과 가신, 백성들까지 모든 사람이 예와 양보의 태도를 보이게 될 것으로 생각했다. 서로 양보하며 세금도 조금 걷을 것이니 국가를 다스리기도 훨씬 쉬워지리라 생각한 것이다. 강제로 세금을 걷을 필요 없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세금을 내고, 국가에 이익이 되는 일을 알아서 한다면 나라는 저절로 순조롭게 돌아간다. 예를 들어서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한국의 국민이 자발적으로 손목시계, 반지 등을 기부하며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해 국가가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도록 했던 것처럼 말이다.



    공야장 편 : 어짊을 추구했던 공자의 뛰어난 제자들, 공문십철

    “섣부른 발걸음은 깨진 얼음을 발견하지 못한다.” _부자지언성여천도

    자공이 말하길 “부자의 문장은 들을 수 있지만, 부자가 성과천도를 말씀하신 건 들을 수 없다.”


    자공이 공자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자공이 말하는 ‘부자’는 공자를 일컫는 말이다.


    공자는 자신이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일은 쉽게 믿거나 부정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에 근거해 진리를 탐구하는 실증주의적인 태도가 강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공자는 죽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녔을까? 귀신의 존재를 믿었던 과거에 공자는 어떤 의견을 가졌을까? 귀신도 형이상학적인 존재일까? 귀신에 대한 공자의 이야기는 유머러스한 면이 있다. 공자가 귀신에 대해 말했다.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해야 한다” 이 외에 공자의 언행과 공자와 문인의 토론을 수록한 공자가에서 사후세계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사람이 죽은 뒤에는 어디로 갑니까? 사후에도 삶이 있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나는 알지만 말할 수 없다.”


    자공이 물었다. “말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내가 만약 사람이 죽은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자식들은 늙고 병든 부모를 돌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죽음 이후에는 아무것도 없으므로 굳이 부모를 위해 노력하고 고생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야기한다면 상황은 더 골치가 아파질 것이다. 부자들은 사후세계를 위하여 살아 있는 사람을 순장하려 하고 금은보화를 함께 무덤에 묻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사후세계의 존재에 대해 말할 수 없다.”


    “Don’t look back in anger!, 지난 일에 분노하지 마라.” _원시용희

    공자가 말하길 백이, 숙제는 과거의 악행을 생각하지 않았기에 원망이 드물었다!

    『루이스 헤이의 치유 수업 You Can Heal Your Heart』의 저자이자 심리 치료사인 루이스 헤이는 일상의 사소한 것에서부터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상실로 인한 고통을 치유하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루이스 헤이는 우리가 괴롭힘이나 부당한 대우를 당했을 때 받은 과거의 상처를 계속 떠올리는 상황을 설명한다. 과거의 상처는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잠재의식 속에 침투해 자신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며 같은 일에서 계속 실패를 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과거의 상처를 잊는 방법은 없을까?


    공자는 과거의 일들을 내려놓는 방법으로 “과거의 악행을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과거의 악행을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뭘까? 악행은 어떤 인연들과 원인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결과다. 무수히 많은 원인이 하나로 모여야 비로소 나쁜 일이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원인들의 조합은 계속 변화한다. 따라서 과거의 악행을 원망하는 것은 소용이 없는 일이다. 실패한 일은 이미 지나간 과거일 뿐이다.


    “자비로운 사람으로 포장된 나를 버리고 정직으로 무장한 삶을 살아라.” _숙위미생고직

    공자가 말하길 “누가 미생고가 정직하다고 말했는가! 어떤 사람이 그에게 식초를 빌리려 하자 이웃집에 가서 빌려다가 주었다.”


    노나라에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 미생고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느 날 사랑하는 사람을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기다려도 여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때마침 장대비가 쏟아졌다. 물은 점점 높아져 허리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미생고는 다리 기둥을 부둥켜안고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결국 그는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이번 문장에 적힌 한자 ‘미생고’는 미생지신의 고사에 등장하는 미생고를 말한다.


    공자가 미생고에 대해 말했다. “누가 미생고가 정직하다고 말했는가! 어떤 사람이 그에게 식초를 빌리려 하자 이웃집에 가서 빌려다가 주었다.” 공자가 말하는 것은 미생고에 대한 또 다른 일화이다. 미생고의 집에는 식초가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식초를 빌리려 하자 미생고는 이웃집에서 식초를 빌려 그에게 주었다. 미생고의 행동은 과잉 친절일까? 분명한 것은 자기 집에 식초가 없다는 점을 감추려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미생고의 행동이 정직하지 않다고 보았다.


    진실로 정직하다는 것은 어떤 걸까? “곧은 마음이 도량이다”라는 말이 있다. 진실로 곧은 마음은 무심해 마음이 없는 것과 같다는 의미이다. “내가 만물에 무심하면 만물에 둘러싸여 있어도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도 마찬가지의 뜻이다. 미생고가 만약 세상일에 마음이 없다면 다른 사람이 자신을 찾아와 식초를 빌리려 할 때 솔직하게 말했을 것이다. 상대방에게 미움을 사기 싫은 마음이 있었던 미생고는 식초를 안 빌려준다는 오해를 살까 두려워 이웃집의 식초를 빌린 것이다.


    옹야 편 : 지나침도 없이, 모자람도 없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 분노의 씨앗을 잠재워라.” _불천노, 불이과

    애공이 묻기를 “제자 중 누가 배우길 좋아합니까?”

    공자가 대답하길: “안회가 배우기를 좋아해 노여움을 옮기지 않고, 잘못을 두 번 되풀이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명이 짧아 죽었습니다! 지금은 없으니 배우길 좋아한다는 사람을 듣지 못했습니다.”


    노나라 임금 애공이 나이 70을 넘긴 노년의 공자에게 물었다.


    “제자 중 누가 배우길 좋아합니까?”


    공자의 머릿속에는 먼저 세상을 떠난 안회의 얼굴이 떠올랐다.


    “안회가 배우기를 좋아해 노여움을 옮기지 않고, 잘못을 두 번 되풀이하지 않았습니다.”


    노여움을 옮기지 않고, 잘못을 두 번 되풀이하지 않는 것은 본받아야 할 배움의 자세다. 여기서 “노여움을 옮기지 않고”는 화풀이를 다른 사람에게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부정적인 감정은 바이러스만큼 전파력이 강하다. 한 사람의 화는 고양이를 다치게 할 수도 있다. 무슨 뚱딴지같은 이야기냐고? 감정 오염에 대한 심리학자들의 설명을 살펴보자.


    사장이 기분이 좋지 않아 업무를 보고하러 온 부장을 질책했다. 이유 없이 욕을 먹어 기분이 상한 부장은 아래 직원에게 화풀이했다. 억울하지만 화풀이를 할 수 없었던 말단 직원은 퇴근한 뒤에 집에서 시끄럽게 뛰어노는 자녀를 꾸짖었다. 별로 잘못한 것도 없는데 꾸지람을 들어 화가 난 아이는 소파에 잠든 고양이를 발로 걷어찼다. 갑작스러운 구타에 겁을 먹은 고양이는 집 밖으로 뛰쳐나가 도로 위를 달렸다. 승용차의 운전자는 갑자기 나타난 고양이를 피하려고 핸들을 꺾다 전신주에 충돌하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사고를 낸 운전자는 바로 부장에게 까닭도 없이 화를 냈던 사장이었다. 이것이 ‘걷어차인 고양이 효과’다.


    이 효과는 부정적인 감정을 타인에게 발산하면 그 화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일종의 부메랑 효과를 설명한다. 부메랑이 되기 위해서는 오염된 감정의 사슬이 연결되어야 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사슬의 고리를 끊어버린다면 부정적인 감정은 더 이상 확산할 수 없다. 물론, 별다른 이유 없이 화를 낸 첫 번째 사람이 없다면 사슬의 고리를 끊어버리는 수고로움도 필요 없을 것이다.


    “인생을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닌, 일상을 열심히 사는 지혜를 지녀라.” _삼월불위인

    공자가 말하길 “안회는 그 마음이 석 달 동안 어짊에서 떠나지 않았으나 나머지는 하루나 한 달 정도 어짊에 미칠 뿐이구나!”


    공자가 말했다. “안회는 그 마음이 석 달 동안 어짊에서 떠나지 않았다.” 문자 그대로 안회는 3개월 동안 어진 모습을 보여왔다는 것이다. 다른 제자들은 몰라도 안회만큼은 어짊에 다가선 사람이라고 공자가 평가한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은 기껏해야 “하루나 한 달 정도 어짊에 미칠 뿐”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어짊은 다가서기 어려운 경지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어짊에 대한 공자의 또 다른 말은 이렇다.


    “내가 어질어지고자 하면 어짊에 이를 수 있다”


    우리는 늘 인생을 멋지게 살고 싶다며 그럴듯한 계획으로 새해를 맞이한다. 하지만 그것은 작심삼일이 될 뿐, 일 년 중 자신이 계획했던 일들을 지키는 날들은 그리 많지 않다.


    인생을 열심히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일상을 부지런히 사는 것이다. 그리고 어짊은 매일 매일 그 부지런한 수신과 성찰의 노력 끝에 만들어지는 것이다.


    “배움을 통달한 세 가지 경지, 아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즐기는 사람.” _지지자, 호지자, 락지자</P> 먼저 “아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우리가 일반적으로 만나게 되는 학교의 선생님들 대부분이 아는 사람에 해당한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우리가 만난 선생님들은 주로 자신이 맡은 직무와 책임을 신경 쓰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성실히 가르치지만, 수업 방식은 매우 비슷하다. 생계를 위해 가르치는 업종에 종사하는 것이다.


    공자가 말했다. “아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다.” 즉,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은 생계를 위해 배우고 가르치는 사람보다 더 낫다는 이야기다.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은 탐구의 목표를 세우고 자기 자신을 발전시키려고 한다.


    학문에 대해 ‘좋아하는 사람’의 경지보다 더 높은 것은 ‘즐거워하는 사람’이다. 학문을 좋아한다는 것은 배움을 통해 더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는 단계이다. 하지만 학문을 좋아하는 것과 즐기는 것은 다르다. 무엇을 얻고자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배움의 과정이 즐겁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특정한 목표를 위해 공부할 뿐, 학문 그 자체를 즐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대부분 무엇을 성취하기 위해 학습한다.


    배움을 즐거워하는 사람은 배움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 욕심이 없다. 따라서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배움을 즐길 수 있다. 반면, 배움을 즐거워하는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괴로움을 느낀다. 공자는 배움을 ‘아는’ 사람보다는 ‘좋아하는’ 사람이,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즐기는 사람이 더 낫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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